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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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일기라면 으레 diary를 떠올렸는데, 이 책의 제목은 journal extime이다.
보통 일기라면 자기 내면을 떠올려 적는 journal intime이기 쉬운데,
이 글은 그야말로 작가의 외부 세계에서 일어난 잡다한 일들을 기록해 둔 글이다.
일기라기 보다는 일지라고 해석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다.
journal에 일지란 뜻도 있으니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매일매일 떠오른 생각이나, 사건들, 보고 듣게 되는 것들을 스쳐 지나가 버리게 된다.
일기에 적더라도 내가 가장 충격적이거나 인상적인 몇 가지에 대해서만 적게 되고...
그렇지만 작가라면, 뭔가 달라야 할 것이다.
하나의 인상, 하나의 사건에 대한 기록도 훗날, 얼마나 훌륭한 이야깃거리가 될는지 알 수 없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방문할 정도로 큰 작가의 삶이라면...

간혹 신선한 부분은 있지만, 그닥 재미는 없었다.
내면 일기는 재미있겠지만, 작가에게 일어난 일들을 일지에 기록한 거라면 재미있을 이유가 없지 않겠나.
그렇지만 글쓰는 사람이라면 이런 시도도 좋지 않을까 한다.
그런 걸로 책을 내기까지는 좀 별난 시도일 듯...

어떤 학교를 방문했는데 막 새로칠한 벽에 더러운 작은 손들이 남겨놓은 자국들. 이 엄격한 건물에 생명과 정다움의 표시... 역시 그의 눈은 신선한 것을 잡아내는 힘이 있다.

성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그분이 커지도록 나는 작아져야 해." '그분'이란 태양, 즉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래서 성 요한의 날은 6월 26일로 낮이 가장 길어졌다가 점점 짧아지기 시작한다. 반대로 그리스도의 탄생은 12월 25일이니 낮이 가장 짧았다가 점점 길어지기 시작한다... 음, 역시 시간을 내서 내일부터 성경을 읽어야겠다. 불경처럼 틈틈이 조금씩이라도 읽고 정리를 해 보자.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성인들은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단다. 니체가 한 말이 증명되었다.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공격은 나를 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그는 말했다. 면역학의 원리가 그러하다. 즉 백신은 나에게 죽지 않을 정도의 공격을 가함으로써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 아파도 아파하지만은 말자.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것은 고금의 진리인 모양이니...

문학 분야에 있어서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을 구분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즉 자신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책의 탁월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프로페셔널의 특권이 아닐까 한다. 반대로 아마추어는 자기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 싶으면 즉시 그 책의 분명한 장점들에 대해서도 아예 장님이 되어 버린다. ... 역시 나는 아마추어다.

장님이 말한다. "나는 이제 어둠이 어떤 것인지 알겠다. 그대가 내 몸을 더 이상 건드리지 않을 때 그것이 어둠이구나."... 그래 사랑의 반대편에 무관심이 있었지... 망각의 무관심, 굳이 망각하려했던 무관심.

여자 꼽추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남자는 예수이기 때문에 수녀가 된 어린 여자 꼽추 이야기... 아, 예수님의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역시 성경의 예수님 말씀을 읽어야겠다.

로맹 가리는 재능과 소질을 아주 적절하게 구별하여 설명했다. 어렸을 때 그는 그림에 열렬한 소질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해 동안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결국 자신이 그린 그림들이 별 볼일 없는 것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문학 쪽으로 관심을 돌려 우리 모두가 가 아는 바와 같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본인은 조금도 열정을 못 느꼈다. ... 낱말이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 누구에게나 그런 것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지 않을까? 열렬하게 집중하는 것이 있고, 별로 열정적이지는 않지만 누구에게서나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들... 나는 책을 정말 좋아하고 잘 읽는데, 그런 건 남들이 모른다. 남들은 나의 다른 능력을 인정해 줄 뿐... 세상이 그렇다는 걸 새삼 느끼고 깨달으면 그닥 슬프지만은 않고, 담담할 수 있다.

한 채식주의자, 내 접시에 담긴 비프스테이크를 끔찍하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당신은 상처를 먹는군요."... 그렇게 남에게 상처를 줘야 옳을까? 그렇지만 일면 옳기도 하다.

"avoir le coeur gros" (마음 아프다.) 나는 프랑스어의 이 숙어를 좋아한다. 이 표현을 보면 슬픔은 결핍이 아니라 그 반대인 가득함, 즉 추억, 감정, 눈물 등이 넘쳐날 정도로 너무 가득한 상태임을 암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말을 직역하면 심장이 터질 듯이 커졌다는 뜻이란다. 그래, 마음 아픈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뭔가가 정말 하고 싶은 바로 그래서 미칠 것같은 그 상태가 마음 아픈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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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쇼 선생님께 보림문학선 3
비벌리 클리어리 지음, 이승민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보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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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녀석더러 읽으라고 사 주었더니, 처음에 조금 보다가 그냥 뒀기에, 들춰봤더니... 참 재미있었다.
금세 다 읽고 말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왜 이렇게 읽기에 약한 것일까? 좀 걱정된다.

초등학교 꼬마가 자기가 좋아하는 동화작가에게 편지를 써 보라는 선생님의 숙제를 하다가,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게 되고, 글쓰기를 통해 자기의 성장을 열어 보인다는 이야기다.

특히 이혼한 상태의 어머니의 힘든 생활과,
전국을 누비는 트럭 기사 아버지의 외로움을 아이 나름의 시각으로 천진하게 담아낸다.

그렇지만, 정확한 아이의 눈으로 세계를 읽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점으로 보인다.

글쓰는 원칙도 간단하게 드러나 있다.

<다른 누구도 흉내내지 않고 네 자신 그대로, 가장 너답게>

어린 아이들도 나름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비록 도시락을 훔쳐 먹고, 그 도시락을 지키기 위해서 안간 힘을 쓰는 웃기는 짓을 하지만,
그 아이들도 하나의 세계를 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초등 고학년 수준이라면 꼭 읽혀볼 만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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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지막 본 별
나카 칸스케 지음 / 세시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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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또 하나의 창작이다.
번역을 통해서 원작자의 문체가 살아나고,
잘된 번역은 원작자의 작품을 함께 호흡하도록 도와주어,
번역의 또 하나의 창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번역이 창작일 수는 없는 법.

번역이 허접하면, 작품의 원래 가치가 얼마나 떨어지는지를 이 책에선 잘 보여준다.

일본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도 없는 이가 번역을 맡다 보니, 그런 일이 생길 수 있겠지만,
한글 맞춤법에 대한 기본적인 교양도 없이 번역을 하고 책을 내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일본의 나카 칸스케가 쓴 성장소설이다.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나약하고 허약한 심신을 가진 어린이가 자라나는 나날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나도 어린 시절, 가난과 잦은 이사가 이유였는지는 몰라도, 몹시도 심약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가 어린 시절 바라보았던 세계는, 어쩌면 내가 느꼈던 그것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였다.

중간 중간 맞춤법이 틀린 곳을 집어 내기엔 너무도 중요하지 않은 책이긴 하지만,
일본 여자 아이들에게 그토록 중요한 명절인 히나 마쓰리(3월 3일에 여자 아이들이 제단에 히나 인형을 장식하는 큰 명절)도 모르고 계속 병아리를 놓아 둔다든지 헛소리를 하는 통에, 서울 안 가본 사람이 남대문에 대해서 우기다가 이긴다는 말이 떠오를 지경이다.

하긴 인터넷도 없던 시절, 공부를 통해 이 정도 번역이 된 것도 옮긴이에 있어서는 큰 업적일는지 몰라도, 책 내기가 쉬워진 요즈음, 감수도 받지 않은 이런 책을 보면, 아쉽기 짝이 없다.
아마 인터넷이 있었다면, 저자가 '히나 마쓰리'를 찾아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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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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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이란 공간은 삶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늘 부차적인 공간으로 취급받는다.
요즘처럼 아파트로 획일화된 구조에서 안방과 거실은 주요 생활 공간으로 취급하면서도,
부엌은 크게 차별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듯하다.

그 부엌을 찾아서 바나나는 들어간다.
조금은 소외된 공간에서 마음 편함을 느끼는 바나나.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휑한 마음을 상징한 것일까?

그의 키친은 외롭고 쓸쓸했다.
다양한 무지갯빛 삶을 살 젊은 나이에, 무채색 부엌은 고독했다.

언젠가는 모두가 산산이 흩어져 시간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할머니의 사망과 함께, 혈혈단신 홀로 된 미카게는 그 이름 만큼이나 허전하다.
미카게는 美影일까? 예쁜 그림자란 이름의 그녀는 삶의 실체에 부대끼기보다는,
추상적인 삶의 무게에 허청거린다.

육체적인 부대낌이 없는 삶이기에 유이치와의 동거도 전혀 무게감이 없다.

죽음은 그만큼 어디에나 널려 있는 것이었다.
고소하고 기름진 내음새가 풍만하게 풍기는 오렌지색 부엌의 향기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은 그만큼 고독하고 푸석거리는 것이다.

키친을 읽으며, 인간만의 특권, 목숨을 인위적으로 버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것 또한 하나의 삶의 양식일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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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새
에쿠니 가오리 지음 / 문일출판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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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의 빛깔을 조금 녹슬려고 하는 구릿빛, 낡은 유리창틀의 고동색, 오래된 먼지낀 커튼 빛... 이렇게 재미없는 빛깔이라 생각한다면, 창문을 열고, 커튼을 털고, 창틀도 한번 닦아보고 싶은 기분일 것이다.

나의 작은 새.

이 이야기에는 실망스럽게도 별 이야기가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에쿠니 가오리가 늘 하듯이, 그 아무 것도 아닌 일상을 이야기로 만들어 냈다.

창틀로 날아든 작은 새 한 마리.
그 날부터, 새에게 집을 지어주고, 이불을 덮어 주고,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그 새는 간혹 투정도 부리고, 자기가 아프다고도 한다.
술을 마시면 자기도 술을 달라고 하고, 차를 마실 때 자기도 차를 마신다는 작은 새.

행운을 준다는 파란새만 쫓아 다닐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의 작은 새에게도 마음을 열어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던져 주는 가벼운 책이다.

책도 가볍고, 그림도 가볍고, 마음도 가볍게 만드는 여자, 에쿠니 가오리의 독특한 글을 언젠간 일본어로 읽어 보리라. 정말 그렇게 가볍고 톡톡튀는 느낌이 살아 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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