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철도의 밤 - 양장본
미야자와 겐지 지음, 이선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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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마지막 은하수를 본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그러니깐,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이론적으로, 은하는 두터운 부분과 얇은 부분으로 이뤄져 있는데, 지구에서 볼 때, 그 두터운 쪽에는 별들이 몰려 있어서 마치 은빛 강물처럼 보인다고 하는데, 내가 평상에 누워서 본 은하수는 상상 속의 강물이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은하수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별을 볼 수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영원한 아동성을 추구한다는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는, 은하철도 999의 모티프가 되었다고도 하는데, 어린이에게 미지의 세계로 상상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키와 더불어 마음을 자라게 하는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요즘 어린이들에겐 그런 자양분이 부족하단 생각이 자꾸 든다. 은하와 은하 철도의 꿈을 잊고, 그저 늘씬 미녀 메텔에 눈을 빼앗기는 어린이로 자라버리는 것이나 아닌지...

은하수는 별로 이루어졌음을 알면서도 발표하지 못하는 조반니의 마음을 나는 안다. 같이 눈을 찡긋대는 캄파넬라의 마음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캄파넬라가 물에 빠져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조반니가 느꼈을 충격, 그것조차 겐지는 녹여버린다.

하늘의 은하수로 여행하는 아이들과 강물 속의 여행은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진정한 행복은 은하수를 통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바르고 강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자신 안에서 은하계를 의식하고 그에 따라 나아가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하계를 포용하는 투명한 의지, 그리고 거대한 힘과 정열...이란 겐지의 서문이 왠지 동화엔 어울리지 않는 듯 하지만, 다 읽고 나서 다시 보니 썩 어울리는 문구 같기도 하다.

시어를 심상 스케치라고 했다는 미야자와 겐지의 글을 일본어로 읽을 기회가 된다면 만나보고 싶다.

그나저나 호두나무를 호나우두로 읽게 될 정도로 '축구' 신드롬에 걸려버린 요즘, 은하수 건너 휙 한 달 사라져 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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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6-15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저 우주 속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인간의 별에서
내게 주어진 영혼의 약속들에 때로는 가슴이 뛰기도 합니다.
존재란 얼마나 절실하면서도 고마운지...

조선인 2006-06-15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전 은하수를 본 적이 없어요. ㅠ.ㅠ

글샘 2006-06-15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시절 누워서 보던 은하수가 저랬지요.

조선인 2006-06-15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근사합니다. 글샘님. 사진인가요? 그림인가요?

BRINY 2006-06-15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0년도 더 된 옛날 해남 땅끝마을에서 보았드랬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거기 고등학교에 근무하셔서 방학 때 찾아갔었거든요. 화장실이 밖에 있는 오래된 농가가 할아버지 자취집이었어요. 밤중에 고모를 깨워 화장실 갔다가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별이 쏟아질 거 같다는 게 바로 이런거구나!하고 어린 맘에도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글샘 2006-06-16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으로나마 은하수를 보니 행복하지 않으세요?

조선인 2006-06-16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언젠가는 꼭 내 눈으로도 보고 싶어요. *^^*
 
이혼전야
산도르 마라이 지음, 강혜경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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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사랑해요~
이런 말들을 잘도 흘리고 산다.

그런데 이 말은 어떤 빛의 분산된 모습일까?
이것도 사랑일까? 하는 생각을 사람마다 하지 않을는지...

일곱살 무렵, 내가 보는 연두색과 남들이 보는 연두색이 같을까, 다를까를 궁금해한 적이 있었다. 나는 부모님께 여쭈어보지 않았다. 부모님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같다고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꽤 오랜 동안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그리고, 아직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아들도 사랑한다. 그러나 그 둘의 사랑은 같지 않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사랑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이 땅의 서글픈 역사를 사랑한다. 이 사랑은 또 얼마나 다른가...

안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안나. 당신은 사랑이 무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안나가 유치환의 시 <깃발>을 읽었더라면, 밤마다 얼마나 눈물로 지새웠을는지...

<깃발>
           유 치 환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
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
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이 시의 주제는 <닿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동경과 좌절>이다.

안나는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공중에 달고 나서야, 사랑이 집착임을 깨달았던 것일까?

이혼 전날 밤에야 깨닫게 된, 거리감의 실체는 장편 소설답지 않게 오. 헨리의 단편에서 일어나는 반전처럼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한다. 묵직한 인생의 무게를 놓치지 않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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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그대를 찾아오거든 가슴을 열어라
칼릴 지브란 지음, 이영선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01년 11월
평점 :
품절


칼릴 지브란... 레바논이란 어떤 땅일까... 지도책에서나 만났던 레바논.

어떤 나라이기에 지브란의 이야기들이 방랑으로 점철하는지... 궁금함을 많이 갖게 한 책이다.

지브란의 글들을 모아 두어서 신비주의적인 글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만한 책이다.

그의 예언자를 부분부분 감명깊게 읽었기 때문에,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만나는 일은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은 지나치게 두껍다는 것이 단점이다.

칼릴 지브란의 책들은 오랜 동안 마음을 담으면서 조용히 읽어야 하는데, 이 책은 너무 무거워서 오래 잡고 있기에 불편하다.

레바논의 거친 산들 사이로 오르고 내리는 천사들의 부드러우면서도 명확하지 않은 선들은 내 마음을 어린 시절로 되돌리기도 하고, 하느님 나라로 소풍 보내기도 한다.

선구자를 forerunner라고 한단 것도 들었다. <선구자>의 짤막한 이야기들과 <예언자>의 경구들은 따로 책으로 소장하고 싶을만치 아름다운 반면, 다른 소설들은 취향에 맞지 않은 것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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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31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6-05-31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일이 있었군요. 서재를 정리하시다니...
좋은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날 수 있으리다.^^ 잘 지내슈~~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김호영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5월
평점 :
절판


좋은 친구 이야기가 많다.

백아와 종자기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지음이란 말이 거기서 나왔다고 한다.

지난 겨울 상담 공부를 하는데, 지금 자기의 상황을 색종이나 색연필로 그린 다음에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그리는데... 친구가 없었다.

 

내가 살면서 정말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지금은 카자흐스탄이란 낯선 땅에서 한국어도 모르는 고려인 여인과 함께 살고 있다.

이제 연락하기도 어렵다.

또 한 선배는 하늘 나라로 갔다.

 

난 친구는 함께 있어도 지루하지 않고, 서로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게 그런 친구는 아내밖에 없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만나보아도, 서로 먼 마음만 확인하게 된다.

 

이 책엔 얼굴 빨개지는 아이와 재채기하는 아이가 서로 지루하지 않은 친구가 되어 준다.

그런 친구를 사귀어 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어색하게 있는 자리가 얼마나 고역인지 안다.

술을 마셔야만 헤헤거리면서 나를 잃고 있을 수 있는 거친 자리들.

세상을 살다가 좋은 친구를 만나게도 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 친구와 헤어져 외롭게 살아가게 마련이다.

 

재채기하는 라토와 얼굴 빨개지는 마르슬랭 까이유처럼 다시 만나 서로 지루하지 않게 앉아있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나도 그렇게 보면 아내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다. 지루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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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아이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오석윤 옮김 / 양철북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교사 초년 시절에... 그 시절엔 일본 문학이 우리 문단에 소개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미국이 만든 국립서울대학교에는 일어일문학과가 없다. 그것은 미국이 부추긴 것이기도 하고, 일정 정도 국민 정서 반영이기도 할 것이지만, 일본에 대한 무지 또한 미국과 지배 계층의 조장 탓일 수도 있다.


그 때 읽은 하이타니 겐지로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는 참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여느 한국 소설이 주는 뻔한 결말과 감동과 다른 시선이랄까.


이 책은 오로지 하이타니 겐지로 이름만 믿고 대출해 온 책이다. 그의 책은 두어 권 더 읽을 것이 있었지만, 그의 책이라고 뽑아 읽을 생각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도 나의 무심과 함께, 일본에 대해 무식한 증오심만 길러 주려는 <지배 이데올로기> 탓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태양의 아이는 한 마디로 <류큐>였던 오키나와의 상처를 감싸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아동 문학으로 처리하는 것은 등장 인물과 이야기 구성이 아이들도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결코 아동 문학이 아니다. 어린이들이 그 고통과 시련을 이해할 수도 없을 뿐더러, 어린 아이들에게 남의 나라 고통까지 들여댄다는 것은 자못 잔인한 일이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엄청난 전투를 치렀지만, 본토에선 전쟁을 하지 않았다. 오직 이 오키나와에서만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결국 전후 오키나와를 미군 기지로 주게 되고, 오키나와의 원주민들은 일본인들의 멸시 속에 죽어갔고, 스스로를 부정하며 상처투성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오키나와를 고향으로 둔 어른들의 상처투성이 과거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삐뚤어지게 되고, 저항하며 자라나고, 그것을 보는 어른들은 더욱 상처 속으로 빠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일본에서 가장 학력이 낮고 소득이 낮은 땅, 오키나와...라는 강박관념 속으로...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땅에서 벌어졌던 학살과 피비린내, 그리고 쉬쉬하며 숨겨왔던 징그러운 역사와, 아직도 그 역사를 반도들의 무리에 의해, 폭도들에 의한 반란이라고 곧이곧대로 믿고있는 사람들이 서로 대립하면서, 전라도는 빨갱이와 같은 <적대적 존재>로 규정짓는 현실이 오버랩 되어 마음이 착잡하다.


‘모래 시계’나 ‘박하 사탕’ 등의 영상 예술을 통하여 <광주의 진실>이 얼핏 비추어지긴 하였지만, 아직도 이 땅에선 진정한 의미의 <용서>를 경험하기엔 지난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죄를 지은 자들은 당당하게 대머리를 빛내며 돌아다니고, 그들의 징그러운 배암 껍질들은 전국 곳곳에서 범종에 또아리를 틀고 앉았고, 각종 현판과 기념 조형물에 새겨져 치가 떨리게 하고 있다.


광주를 휩쓸었던 피의 망령들은 아직도 한반도에서 <전쟁의 이데올로기>로 살아남아 이 땅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짓밟고 있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80년 광주와 06년 대추리는 명백히 다르다고.

그때는 민주화 운동이었지만, 지금은 민주 정권이 지배하고 있는데 어떻게 두 사건이 같은 맥락이냐고... 그들은 아마 그랬을 것이다. 80년 광주에서 시대의 어둠만이 가득하던 시절, 폭도들을 어쩔 수 없이 진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그들이 가진 자들일 수도 있고, 못가진 자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의식의 공통점은 이것이다. <지켜야 할 것은 자유 민주주의>이고 <막아야 할 것은 적화 통일>이라는 레드 콤플렉스.


한국에서 민주 노동당이 국회의원이 되는 데는 1948년 제헌국회 이후 56년이 걸렸다. 기회주의적인 가진 자들의 정당이 이전투구를 벌이는 동안, 다시 레드 콤플렉스는 국민들의 의식을 휘감을 것이다.


한국을 두 동강 낸 분단도, 정치를 두 동강 낸 지역 의식도, 원인을 따져 보면 오키나와와 다르지 않다. 오키나와라는 피해자 집단을 서로 미워하고 서로 욕보이는 본토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미국’이라는 보이지 않는 조종자가 피아노줄을 놀리고 있었던 것이다. 부산항에 미군의 제7함대가 입항하여 광주를 살려줄 것이라고 어리석게도 믿었다는 믿기 힘든 전설을 들으면서, 나는 오늘날에도 그 피아노줄은 시퍼렇게 살아 이 땅에서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횡행하는 것을 본다.


신동엽이 껍데기는 가라고 외쳐도 들은 척도 하지 않던 그 껍데기.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하늘 덮은 쇠 항아리일 뿐이라고 했을 때도 사람들은 하늘을 보았다고 착각하며 살았다.

아직도 한국의 하늘에는 쇠항아리가 가득 덮여 있다. 내가 보고 있는 저 하늘은, 하늘이 아니다.


80년 빛고을에서 죽어간 형제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을 놓아버리고, 원통해서 마음을 빼앗기고 넋을 잃은 동포들... 그들의 넋을 위한 진혼곡은 아직 이 땅에서 울리지도 못했는데, 이 땅에는 다시 군홧발 아래 짓밟힌 땅이 생겼다. 그 방패로 간고히 막고, 군홧발로 짓밟은 농토에, 서리서리 서릿장보다 엄한, 북한과 대치한다는 휴전선보다 강고한 몇 겹의 철조망을 두르고, 그 안에 거주하실 분들은, 바로 그 피아노줄의 주인들이시다.


백 년 전,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이야기하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조선 영토를 내준 이씨 조선 패거리들과, 을사 오적 같은 잡놈들은 죽일 놈이고, 이제 백 년 후, 다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이야기하는 코쟁이들이 여기 나섰는데, 거기 도장을 찍은 대한민국 정부 패거리들은 살릴 놈들일까? 과연 그 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무엇인가.


오키나와의 눈물은 약자의 눈물이었다.

빛고을의 눈물은 약자의 그것이었고,

대추리의 눈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억누르는 자의 논리는 언제나 정의롭고 평화를 가장하며,

죽은 자는 말 없기를 강요당한 것이 <거짓된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역사는 말한다.

<말 없기>를 강요당한 존재들은 언젠가는 <진실>을 밝힌다는 것을.

<거짓된 역사>의 쇠항아리를 찢고, 태양 아래 반짝이는 바다를 보며 진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리란 것을.


하이타이 겐지로는 피비린내나는 역사를 ‘따뜻한 마음’으로 이겨내려 한다.

좋은 사람일수록 이기적인 인간이 될 수 없으니까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거지... 좋은 사람이란 자기 안에 남을 살고 있게 하는 사람이야... 하는 말로써.

용기란 싸움을 해서 이기는 일도 아니고, 용기란 조용한 것이란다. 용기란 것을 따뜻하고 착한 거야. 용기란 것은 서슬이 퍼런 거야... 하는 말은 어쩐지 빛고을 사람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란 착각이 든다.


바닥 위에 마루

마루 위에는 다다미

다다미 위에 있는 것은 방석

그 위에 있는 것이 안락

안락 위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일까.

어서 깔고 앉으세요, 권하는 대로

안락하게 앉은 쓸쓸함이여.

바닥 세계를 멀리 내려다보고 있는 듯이

생소한 세계가 쓸쓸하구나.


야마노구치 바쿠의 <방석>이란 시다. 오키나와 사람 바쿠의 시.


일본의 오키나와는 그렇게 내게로 왔고, 이제 막 18일이 된 이 아카시아향 진한 오월에, 핏빛 빛고을과, 군홧발에 유린된 미군의 땅, 한국 복판의 오키나와, 대추리로 사고는 헤매이고 다닌다.


역사는 끝없는 순환인가... 생소한 세계가 쓸쓸하구나. 나는 너무도 안락하여.


하이타니 겐지로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 “불행이나 슬픔은 제각기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줄줄이 이어져 있는 것임”을 깨닫게 만들고, “동그라미를 그릴 수 없는 컴퍼스”가 가슴에 묻힌 가난과, 지쳐 자살한 누이와, 불발탄을 건드려 죽은 아빠와, 집떠난 엄마... 이런 군상을 통하여 “슬픈 일은 모두 오키나와에서 온다.”고 할 정도로 모든 일은 연결되어 있는 고리임을 적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옛날 내 담임 선생치고 어느 한 사람 제대로 된 선생이 없었어. 그저 ‘이런 것도 몰라?’하고 벌 주는 것밖에 모르는...”하는 푸념 섞인 어른들의 대화에서 그저 뜨끔하다가도, “선생님이 후유코는 기특하다고 하실 때, 후유코도 힘껏하고 있지만 저도 힘껏 하고 있다고 제 마음 속으로 말한답니다.”하고 편지를 쓰는 도키코의 마음도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었다.


이 소설을 통해 세계가 연결되는 고리와, 그 고리 속에서 힘없는 컴퍼스로 원을 그리는 나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어떨 때는 원이 그려지다가, 어떨 때는 원이 그려지지 않는 나의 힘없는 컴퍼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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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란1 2006-05-18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읽고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마치 자기들이 희생자인양 그려진 부분에서 울분을 느꼈습니다. 그 전쟁과는 하등 무관한 우리는 징용으로, 정신대로 끌려가서 얼마나 많은 희생을 당했으며, 아직도 그 고통은 진행형이지 않습니까? 하이타니 겐지로씨가 일본의 대표적인 양심으로 <태양의 아이>를 쓰셨겠지만, 저는 한국인으로써 우리의 아픔을 느끼며 글을 읽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글샘 2006-05-18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키나와는 일본 내의 또하나의 속국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전쟁을 일으킨 것은 본토 사람들인데, 오키나와는 완전 쑥대밭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하이타니가 이야기한 것은 오키나와지, 일본의 옹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오키나와에 폭력을 행하는 일본 본토에 대한 비판이 강한 소설이지요.

balmas 2006-05-18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언제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좋은 리뷰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