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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짖자.
로 시작해서,
나는 개 짖는 소리가 싫어...로 끝나는 소설.

한번 짖어 볼까나... 하고 짖어 두고는 나는 내 짖음이 싫다는 거였을까?

눈먼 자들의 도시에는 실명을 한 사람들일망정, 백색 실명이라고 할 정도로 어둡지 않았다.
그 책의 표지가 하이얀 색이었던 것도 일종의 알레고리였을까?
이 책에선 그 실명증 환자들이 눈을 뜬 지 4년이 지난 시점이지만,
표지도 검고 내용도 검다.

아. 마. 도...
정치가들이 주로 등장해서 그럴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정치가가 아닐까 싶다.

정치의 abc...라는 게 있다면,
a에 해당하는 것이 뭘까?

그건 바로, 심각한 문제 상황에서 자기만 쏙 빠져나오기 위해 '희생양'을 만드는 실력 아닐까?

이 여자와 백지 투표라는 이 새로운 전염병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든 없든 그 연관을 확립하는 것이다...(272)
그냥 목표로 삼을 과녁이 필요할 뿐이야...(336)

이런 것이 a다.

그 희생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b란 증거가 필요한데, 그 증거를 만드는 실력도 정치가의 솜씨다.

증거란 필요하면 나타나게 마련이기 때문이오. 부인, 반박의 여지없는 증거를 한두 개 만들어내가만 하면 그만이거든.(325)

비운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경정의 멋진 한 소리.

꼭 눈이 멀었을 때에만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게 아니야.

눈먼 자들의 세상에 비해 눈뜬 자들의 세상은 훨씬 혐오스럽고, 희망이 없어 보인다.
전자에 비해 후자는 모티프에서 좀 덜 신선하고, 진행도 좀더 느리지만, 담고 있는 함축은 큰 것 같다.

한 손이 다른 손을 씻는다.
고장난명 孤掌難鳴 이랬던가. 손바닥 하나로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더러운 일도 못 한다.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댔다.
두 손이 얼굴을 씻는다.
손을 씻고 얼굴을 씻는 행위가 어떤 상황을 빗댄 것인지는 독자의 몫이겠다.
내 귀엔 이렇게 들린다.
눈 번히 뜨고도 도둑들이 판치는 것을 막지 못하는 이 세상.
너 혼자 먹고 사는 걸로 만족할래?
다른 손은 시커먼데... 손끼리 부딪혀야 씻어지고, 그 손들이 힘을 합쳐야 얼굴도 씻는 법.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비유로써 말할지니... 귀가 있는 자는 알아들어라.
내가 못 알아들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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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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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바람돌이 님이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칭찬하시는 바람에 학교 도서관에 물어봤더니 이 책이 있었다. 그래. 눈뜬 자들보담, 먼저 감은 자들을 읽어야쥐... 하고는 어제 시립 도서관에 갔더니 눈뜬 자들도 있어서 빌려다 두었다.

이 소설은 어마어마하게 메가톤급으로 재미있게 시작한다.
근데, 중간 넘어가면서는 주제 사라마구가 존경스러워졌다. 이런 소설을 어떻게 끝냈을까 싶도록...
뒷부분은 겨우 읽어냈다.

얼마나 신선한가.
어떤 한 사람이 갑자기 세상이 하얗게 되는 실명증에 걸린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상상력은 그 증상이 전염성이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솔직히 말하면 이 두 가지 모티프만 만들었을 뿐이다.
그 이후엔 당연히 저질스런 말종 인간들이 이야기를 끌어 간다.
그 이야기는 미국이었든, 포르투갈이었든, 아니면 한국이었든 비슷하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현대 과학이라는 보잘 것없는 힘을 믿고 자연 위에 군림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인간을 망가뜨릴 수 있는 길은 아주 쉬운 것들이다. 그렇다. 결국 인간은 이런 사소한 질병 하나로 멸망해 버릴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상상 소설이 아니다. 미래에 일어난 일을 그냥 그렸을 뿐인 실화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주제 사라마구는 엄청난 흡인력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인간은 제 앞길도 모르기때문에, 점집이 흥성한다.
그런데 인류의 앞길을 보여주는 이런 소설이 안 팔릴 도리가 있나.
이 소설은 우화 소설의 알레고리를 쓰는 것처럼도 보이고, 인간 세상을 소설에 빗대서 깨우치려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알 필요도 없는 사람들 - 눈 멀고 나니 아무 쓸모가 없는 안과 의사 양반, 의사의 부인, 맨 처음 눈먼 사람, 그의 아내 등... 의 이름도 없고, 그 공간도 얼마나 좁은지 말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그 좁고 냄새나고 더러운 곳에서 제 앞길도 모르면서 잘난 체 하고 떠드는 것들이 인간이란 점을 이처럼 잘 보여주기도 어렵다.

다만 내 바람이라면, 이 소설이 딱 절반 두께만 되었으면 얼마나 환상적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 너무 오래 가면서 상황 자체가 지긋지긋했기 때문인데, 그것이 이 소설의 주제가 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제, 주제라... 사라 마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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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7-02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빨리도 읽으셧네요. 전 요즘 책이 손에 잘 안잡히는지라 책 읽는 속도가 자꾸 더뎌집니다. 이 글이 펼쳐놓은 상황들은 정말 지긋지긋했습니다. 마치 내가 그 더러움속에 계속 빠져있는 느낌을 계속 가질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정말 그 지긋지긋함이 작가가 진정으로 노리는 바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샘 2007-07-02 02:54   좋아요 0 | URL
스페인어로 읽으면 호세가 될 사람이 포르투갈어로 읽으니 주제가 되는군요.^^
그러게요. 그 지긋지긋함을 넘어서 인간에게 희망이 보여야 할텐데...
눈을 감으나 눈을 뜨나 인종들이 슬픕니다.^^

드팀전 2007-07-02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전 이 책이 소리없이 리뷰 108개가 올라올만큼 인기 있는 소설이 된 게 무척 좋습니다.<눈뜬자들..>을 샀더니 -더운 여름에 보려고- <눈먼자들..>도 주어서 또 가지고 있는데 새로운 책은 벌써 개정판 27쇄네요.노벨상작가는 재미없다는 편견이 좀 사라졌겠지요.^^

글샘 2007-07-02 09:4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노벨상 작가치곤 훌륭하게 잘 쓴단 생각을 안 그래도 했습니다.^^
리뷰가 그렇게 많이 달린 작가군요.
알라딘을 떠날 수 없게 되고, 점점 더 집착하는 것이 좋은 책들을 만날 수 있는 끝없는 가능성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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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특이했다. 원 제목을 봐도 그대로다.
시끄러운 건 이해가 간다 해도 가까운은 또 뭔가 싶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미국인, 유태인, 그리고 일본인....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해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겐 공통적으로 <피해의식>이란 망상증이 있다. 그것이 심각해도 아주 심각한 것이 탈이다.

이천 년 전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잃어버리고 유랑해야했던 디아스포라의 슬픔을 어찌 우리가 이해할 수 있으리오마는, 팔레스타인의 피울음은 그들의 피해의식을 상쇄하기엔 너무도 긴 숙제다.

원자 폭탄을 맞았다고 731부대의 만행이, 중국인들의 머리통을 톡톡 잘라놓구는 시신에 담배꽁초를 물려 놓고는 시시덕대던, 조선의 여인들을 데려다 성노예로 삼았던 과거가 한방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9/11은 충분히 슬픈 일이고, 충분히 공분을 살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세계 무역 센터와 펜타곤에 비행기가 꼬라박혔다고 해도, 그걸 기회로 아프가니스탄의 가스와 이라크의 석유를 뺏으러 전쟁을 벌이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반성할 줄 모르는 것은 역사가 아니다.
9/11은 충분히 시끄러웠던 사건이었고, 그들에겐 믿을수없을 정도로 죽음과 이별이 가까이서 느껴졌던 일이었겠지만, 왜 그 사건이 <자작설>이란 소리가 날 정도로 그 이후 일련의 사태가 질서정연한 폭력 일변도였던가를 그들은 돌아봐야 한다.

포어의 소설은 마치 다양한 재료를 합성하여 구성한 오브제와 같은 느낌을 주는 신선한 형식이다. 마지막에 거꺼로 배열된 사진이라든가, 컬러로 구성된 글씨들, 중간에 빨간펜으로 마구 교정이 된 원고 등... 신선한 형식에 비해, 그 내용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웠던 9/11의 한쪽 면만을, 그것도 미국인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쪽의 한쪽 면만을 지나치게 접근한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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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6-27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딜레마죠. 폭력의 피해자로서 보편적으로 느껴야 마땅할 슬픔의 공감과 분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또다른 아니 더 큰 폭력의 행사자의 슬픔이라는데서 오는 망설임.... 뭐 잘해봤자 양비론밖에는 안될 소재죠. 그럼에도 말예요. 이 책을 읽으면서는 거대이념에 희생되어버린 개인들의 처절한 슬픔이 더 와닿았습니다. 그만큼 책을 잘 썼다는 얘기겠죠. 적어도 저에게는요.

글샘 2007-06-27 22:04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이야기는 슬픈데... 아이가 참 안쓰럽고 그런데... 2차대전의 독일이 나오고, 원폭맞은 일본이 나오는데 왜 그렇게 자꾸 밸이 꼬이던지요...

드팀전 2007-06-27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큰 이름으로 읽으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봅니다.앞에도 말씀하셨지만...미국인,일본인,유태인들이 가해자인가 생각해보죠...전 그들이 가해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그들의 정부와 그들의 체제가 가해자이지 그들은 그냥 평범한 사람들일뿐입니다.평범함이란게 물론 그 시스템이 주는 열매를 별 생각없이 받고 또 시스템을 지지해주지요.그렇지만 그것이 희생되어도 마땅한 만큼의 죄과라고 생각치는 않습니다.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시스템에 별소리 없이 월급받으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도 그런 댓가를 받아야 공평해지겠지요.그들 정부의 잘못을 왜 그들이 보상해야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글샘님께서도 '국민'으로 호명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갖지 않으실거라 봅니다.전 미국인 일본인과 연대하고 싶습니다.워싱턴에서 한미FTA 삼보일배에 동참해주던 미국인,일본에서 위안부문제에 사과하라고 시위하는 일본 할머니들...전 그들이 가해자라고 생각치 않으며 '미국인' '일본인'이라는 '국민'의 이름으로 그들을 싸잡아서는 안된다고 봅니다...원폭맞은 일본을 생각치 마시고 원폭 맞은 평범한 일본인들을 생각하시죠.우리의 위안부가 아픔이었듯이 일본의 원폭도 밸꼴리는 일이 아니라 인류의 아픔이었다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일본은 당해도 싸지만 일본의 평범한 개인들이 그 모든 죗값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부당합니다.


글샘 2007-06-28 02:35   좋아요 0 | URL
저도 드팀전님의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빠의 상실에 아이가 얼마나 가슴아팠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순 없었겠지요. 그렇지만... 이 책을 가로지르고 있는 그 상처들을, '나, 아파' 하고 넘기기엔, 국가의 광기가 너무도 큰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에는 눈을 감으면서 사소한 것에 열받는 것이 초라한 인간이지만, 이 땅을 거저 점유하고 쓰면서도 그 땅속에 기름 칠갑을 하는 그런 나라에는 반대해야 옳지만, 그렇다고 미국인을 미워할 순 없겠지요.
예술가가 역사를 생각하지 못하고 사건들을 나열해 버리면 본질이 흐려지면서 오히려 본질을 호도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삐딱한 리뷰를 쓰게 된 거죠.

드팀전 2007-06-28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이 정치적 함의를 모두 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그런 방식은 물론 중요하지만 예술의 범위를 리얼리즘이나 계몽의 그릇으로만 한정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그럼에도 독자가 그 안에서 정치적 함의를 읽어내야 한다면 그것 역시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제가 쓴 댓글 역시 상당히 정치적이라는 것을 아실 수 잇을겝니다.제가 생각하는 부분은 거대한 것으로 모든 것을 환원하는 방식이라는 것이지요.정치란 이름은 중요한 요소이고 사실 모든 것들이 연관되어 있지만 그것이 블랙홀같은 형태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저 소설을 읽었던 미국인이 또한 미국민의 아픔만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지만-그것은 미국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걱정하는 부분은 민족/국가 라는 현실태를 인정하지만 그것으로 모든것을 환원시키는 방식이 가진 폭력성의 예감같은 것들 말입니다.그것은 강대국이나 약소국이나 근대세계에 사는 이들에게는 똑같은 방식으로 적용됩니다. 9.11을 제국의 심장에 타격을 가한 일로 볼 수도 있습니다.맞는 말입니다.호주 사는 제 친구가 9.11 이후 쌤통이다라는 식의 이메일을 보냈는데...당시 9.11의 반동이 사실 걱정되었습니다.제가 걱정했던 것은 좀 단순하게 이슬람에게 가해지는 미국 사회의 폭력이었는데 ..사실 더 큰 반동은 9.11 이후 여론을 등에 업은 미국의 일방적 군사주의였습니다.이것도 오래가진 못하겠지만 말이지요.이런 방식이 작동하는 원리가 바로 민족/국가로 문제로 환원해버리는 방식이지요.그것은 정치적이지만 또한 반동적인 일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석과 희생자들의 이야기는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희생자는 개인으로 국가.민족.역사의 그냥 희생자일 뿐입니다...전쟁을 하는 자는 미국이고 희생당하는 사람은 미국인과 다른 약소국의 민간인일 뿐입니다.더 쉽게 말하자면 전선을 미국/이슬람...미국/억압받는 국가들이 아니라 미국/희생받은 사람들...이라는 관점입니다.김훈은 이런 방식을 극단적으로 몰아가면서 개인을 탈정치화 해버리는 극단으로 몰고갑니다. 글샘님이 우려하시는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지요.그런면에서 작가는 사실 정치적이며 텍스트로는 독자를 탈정치화하는 반동적인 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나는 아무편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어딘선가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내 조국을 지키기위해 싸우는 것으로 알고 전쟁에 나섰다.그러나 뒤에 진실을 알았다.내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부자들의 지하창고에 있는 금고였을 뿐이다"

전쟁과 자본의 관계를 이야기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국가/민족이란 이름이 개인을 동원하는 방식과 개인을 국가/민족으로 호명하는 문제에 대해 딴지거는 성찰을 요구하게 하는 글입니다.

글샘 2007-06-28 08:49   좋아요 0 | URL
제 이야기나 드팀전님 이야기나 상당히 정치적인 부분이기때문에 이 소설을 어떻게 읽느냐는 방법은 둘 다 정답일 수도 있겠지요.
아우슈비츠에서의 증언 문학은 인간성의 추악함에 치를 떨게 만들지만, 유태인의 시오니즘과 중동 전쟁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은 측면도 있습니다.
소련의 강제 수용소 같은 이야기들은 미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치하되구요.
우리 교과서에 왜 독립군 이야기는 없고, '소나기(51년 작품)'처럼 탈정치적 작품이나 염상섭처럼 중산층 작가만이 살아남는지와도 연관성이 있는 문제입니다. 박완서와 이청준같은 작가의 글이나 교과서에 실리는 이유가 그런 것이죠.

한국어 최고의 문학인 홍명희의 '임꺽정'이 80년대 금서였던 사실을 아십니까? 사계절 출판사는 임꺽정의 활판을 압수당해 망할 뻔 하기도 했지요.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고 꼴깝을 떨기도 하지 않았나요.

예술에 중립을 강제하는 자들의 의도는 딱 하나입니다.
자기들의 이데올로기를 강제하려는 의도입니다.
 
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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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공부한다고 일본 소설을 처음 일본어로 접했을 때, 그 작품들이 근대 시기의 작품들이기도 했지만, 뭐랄까... 그 소설들을 꿰뚫는 공통점 같은 것들이 느껴지곤 했는데... 서양을 만난 놀람과 동경, 그리고 자기들의 것에 대한 집착과 애증의 혼합 같은 것이 섞여있곤 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이라 일컫는 '마음'을 읽었다.

이 마음은 '내 마음 나도 몰라'에 가깝다고 하겠다.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어떤 일을 경험하고 난 후, '나는 할 수 없이 죽은 목숨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자'고 결심했다는 선생님의 마음 속에서 일어났을 일들을 추측해 보는 것이 이 소설의 독자들의 몫이랄까?

더럽혀진 햇수가 긴 사람일 따름인 선생님.
아무리 책을 읽어봐야 그리 훌륭해질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선생님.

그렇지만, 그 선생님의 뒤를 밟는 후배들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엉뚱하게도 내가 나이 들어 저런 말을 하는 인간이 되어있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별로 훌륭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나랑 비슷하기도 하니 말이다.

열흘간의 꿈 이야기를 읽노라니, 차라리 소세키의 무의식을 투명하게 비쳐준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과 사랑과 만남과 이별, 추악함과 깨끗해짐 사이를 오가는 것이 삶일진댄, 그 삶에 투영된 마음이란 것은 실체가 있는 것이라기 보담도 물질적인 소용들의 반영이 만화경에 드러난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소세키는 너무도 빨리 변해가는 세상을 보면서, 과거에 얽매이는 마음과 교활하게도 새 세상에서 제 좋을대로 움직이려는 마음의 반영을 모두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스스로에게 반항하는 '마음'이란 놈을 붙들고 앉아, 그것도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어떤 이상적이라 생각하기만 하는 인물을 상정해 두고, 그 마음이란 것이 사실은 어떠한 것인지... 골똘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이란 놈을 두고 생각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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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
데브라 딘 지음, 송정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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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뻬쩨르부르그가 된 레닌그라드.
굳이 제목을 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라고 지은 것은, 공산주의 혁명의 영웅 레닌을 기릴 만큼 소련 제2의 도시에서 일어난 일에 무게 중심을 얹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지어 본다.

이 책의 표지에 <미국 문단이 주목하는 신예 작가, 데브라 딘 감동 소설>이라고 작지만 잘 띄게 적어 두었다. 랜덤하우스란 출판사의 장삿속이 잘 보인다. 감동 소설이라는 분야가 요즘 생겼나? 감동의 프랜차이즈랄까? 그리고 소설의 맨 앞에 작가 서문이나 뭐, 한국의 독자를 만나 반갑다는 이런 글 대신, 나는 잘 모르는 어떤 아나운서의 애독일기를 하나 붙여 두었다. 그래도 어느 아나운서처럼 제가 번역했다고 안 하고 3번 열심히 읽었다고 했으니 조금 용서해 줄 수 있겠다. 정말 세 번 읽지 않았대도 말이다. 회사 욕은 나중에 또 하자.

이런 사소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참 좋았다.

우선, 예술 작품을 설명하는 큐레이터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마치 유럽의 궁전이나 박물관을 들렀을 때 가이드들이 열심히 주워 섬기던 목소리들과 오버랩되는 경험이 되살아나는 듯, 현장감있게 생생하게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달착지근한 초콜릿 하나를 시식 코너에서 나눠주고는, 그걸 살 여유도 주지 않고 재빨리 돌아서 사라진 여인의 향기처럼 또다른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밀어넣은 채로... 아, 빨리 큐레이터의 달콤하고 아름다운 설명을 더 듣고 싶은데...

이야기는 반전되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할머니 이야기로 이끌린다. 이 소설의 주축이 되는 이야기는 마리나의 치매 이야기다. 젊었을 때의 기억, 전쟁의 기억, 전쟁 속에서 미술관을 지키던 기억은 분명한데도 딸의 얼굴도, 딸의 이혼도, 손자의 결혼 사실도 갑자기 낯설어지는 삶이란... 전날 밤의 과음으로 기억이 끊겼다가 불현듯 소파에서 눈뜰 때의 기분과 같을까? 정신차리고 보니 갑자기 내가 있는 곳이 낯설고 주머니에 지갑도 휴대폰도 없어졌을 때의 황망함처럼...

소설은 총 10장으로 진행되는데, 그 1장이 상실이고, 9장이 실종이다. 기억의 상실과 함께 주인공의 인생이 실종되어버리는 과정 속에서 과거의 기억과 단속적이지만 현재의 상황들이 파편적으로 나열되고 있다. 그렇지만 작가는 '기억 상실'의 과정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마지막 10장의 제목을 <초록의 세상>이라고 붙인 것으로 보아, 기억의 상실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우리가 정말 기억해야할 것이 얼마나 될까? 내 옆자리에 누워서 베개에 머리를 비비대며 숨을 고르고 잠들어있는 아내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날마다 만나고 인사하며 지내는 사람들, 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긴 '일들'이 과연 기억할 만한 가치들이 있는 것일까?

마리나가 잊지 않았던 미술관의 기억들, 남편이 된 드미트리와의 추억들, 영원히 각인되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미술품들의 생생한 모습들처럼, 그 '초록의 세상'이란 이름의 '절대 경지'를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런 주제에 헛소리를 지껄인다고 조롱의 대상으로 삼고 만다. 이런 시시한 것이 인생일는지도 모른다.

기억할 필요조차 없는 관계들의 집대성, 우리의 뇌는 말랑말랑한 젤 상태의 전해질이라 순간순간 찌릿찌릿하는 끝없는 전류의 흐름으로 '기억'이라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기억이란 것이 전류의 작용이기때문에 절대적으로 완벽하게 인쇄된 고형물이 아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기억은 모두 착각일 수 있다. 착각이 무가치하듯이 모든 기억은 무가치할 수도 있겠지.

뭐, 이런 생각을 재미있게 쓴 소설이다.
전쟁 이야기가 지긋지긋하게 나오지 않아서 좋았고, 앞에서 쓴 대로 미술품을 설명하는 카랑카랑하면서도 온화한 목소리를, 그 뚜벅거리는 러시아어로 떠들어대는 듯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아픈 것은, 한반도에 남은 문화재의 부실함에 대한 것이었다. 유럽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모두 '장물 전시장'에 불과하기도 하지만, 암튼 그 궁궐이나 미술관, 박물관의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 될 법한 것들이었다. 러시아의 황제들 역시 그런 사치의 극을 달리며 살았으리라. 중국의 베이징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땅에 건조된 건물들은 그 숱한 전쟁의 참화에 남아난 것이 없다. 모두가 개발독재 시절에 지어진 것들이어서 시멘트 냄새가 풀풀 난다. 어느 구석인가는 늘 공사중이며, 박물관 안에 들어가서 돌아다니는 동선 자체가 관공서를 헤매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청원 경찰복같은 옷을 주워입은 관리인들의 모습은 아직도 문화에 대해서 깜깜한 모습들이다. 융단 폭격으로 초토가 된 북측의 건축물들, 그 '궁전'들이야말로 더욱 거대하고 웅장하기만한 돌덩이임은 한반도 문화 예술의 가장 큰 비극이 아닐까 싶다. 일제는 경복궁을 깨부수고, 다시 독립 정부는 총독부 건물을 깨부수는 역사의 악순환이 이 땅의 구석구석을 더럽히고 있다. 일본놈들은 산의 혈맥마다 쇠말뚝을 박았다더니, 미국놈들이 비켜준 군사 시설의 땅 속에는 온갖 오염물질들이 차고 넘치는 모양이다. 정말 <괴물>이 등장할 법한 무서운 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계대전 중인데도, 더 안전한 곳으로 미술품을 옮기는 기차가 몇 차례나 오고간다는 이야기, 있지도 않은 미술품들을 '인민'을 위하여 풍부한 상상력으로 설명해주는 아름다운 큐레이터의 이야기, 오랜 역사를 가진 궁전이 미술관으로 쓰이게 되는 역사의 유전 등은, 아름다운 덕수궁의 아기자기한 돌담 안에 어색하기 그지없는 석조전으로 남은 한국의 건축물의 몰개성에 대하여 가슴아픈 회한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난 가끔 시립박물관과 유엔 공원, 문화회관을 잇는 동선으로 산책을 나가곤 하는데, 그 건물들의 네모 유전자와 직선 지향성에 대하여 매번 실망이다. 역사의 때가 좀 묻은 건물들을 한 100년 후의 아이들은 구경할 수 있으려나?

재미있는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없는 생각들을 하는 게 내 특기인지도 모르겠다.^^
잘 쓴 소설을 <잘 못 만든> 출판사에 몇 마디 잔소리를 내두르며 리뷰를 마친다.
책을 좀더 뜸을 들여서 만들지 못한 흔적이 구석구석 남아있다. 한두 번만 더 교정을 꼼꼼하게 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랄까. 처음 한두 번은 그냥 스쳐지났는데, 나중엔 굳이 표시를 해 두면서 읽었다. 정신 좀 차리면 좋겠다.
8쪽 3째줄 : 윤기 흐르는 모을 드러냅니다.(모양, 모습인가본데, 말도 안 되는 글이 많이 등장한다.)
137쪽 아래서 5째줄 : 한눈에 부드러워지는 느낄 수 있었다. (부드러워지는 것을 이겠지?)
278쪽 아래서 2째줄 : 갈 증을 띄어서 썼다.(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신뢰성을 잃기로 들면 대책없는 게 인간 맘이다.) 띄어쓰기가 안 지켜진 곳은 제법 있는데 다 지적하진 못하겠다.(혹시 돈 준다고 찾아 달라면 꼼꼼하게 읽겠지만 ㅋㅋ)
285쪽 6째줄 : 아뇨.. 마침표가 두 개. (왜 그런 거만 보냐고 따지면 할 말 없다.)
333쪽 2째줄 : 폭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있기 위해... 보호하기 위해겠지...

그리고, 가운데 넉 장 들어있는 그림들의 인쇄상태가 깨끗하지 못하다.
내가 빌려본 책은 네 페이지는 글자가 선명하지만, 네 페이지는 글자가 흐려 읽기 힘들 지경이다.

랜덤 하우스! 제발 책을 띄엄띄엄 만들지 말 지어다.
random이 띄엄띄엄 되는대로여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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