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3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민음사 / 200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머리 여가수? 왜 여자가 대머리지? 그리고 가수면 왜 가발이라도 쓸 일이지, 대머리람... 이런 논리적인 생각은 필요없다. 이 희곡은 부조리 연극 대본으로, 인간의 언어는 <논리의 근간>이라는 상식 자체를 부정하는 <언어의 비논리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 있는 것'이라는 작중 인물의 말은 작가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인간들의 막연하고 근거없는 집단적 믿음(조리) 앞에,
그들이 믿으려 하지 않는 적나라한 현실(부조리)을 제시함으로써, 삶의 본질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회화된 인간들에게, 그래서 현실 앞에서 눈울 돌리는 사람 앞에 집요하게 진실의 거울을 들이대어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직시하도록 하여 해결책 내지 행동 방침을 마련하게 하는 <부조리 연극 The theater of the absund>을 읽는다는 것은 문제를 읽는 지적 행위는 될 지언정, 재미를 찾거나 감동을 얻는 정서적 행위에서는 거리가 멀다.

무의미한 행위를 반복하는 시지포스의 <부조리함> 만큼이나 우리 삶의 단편들은 무의미하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

언어가 가지는 공유 면적은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른 것이다.
인터넷에서 특정 기사를 읽고 댓글을 다는 행위들을 보면, 사람들 사이의 공유 면적이 얼마나 상이한가를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댓글은 가능한한 무시하려고 한다.

내가 알라딘에서 서재를 짓고 살림살이를 한 것이 어언 2년 반쯤 되었다.
알라딘에서 집을 짓고 살면서도 무의미함을 느낀 적도 많고, 수치에 휘둘리는 나를 싫어하기도 했지만, 이 공간의 장점이라면 다른 공간에 비해 공유 면적이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는 공간이라는 착각을 하게 하는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또 하루를 산다. 부조리하게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왕자 (책 + CD 2장) - 개정판
생 텍쥐페리 지음, 이종관 옮김, 길문섭 그림 / 월드컴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같은 작품도 드물다. 성경이 아닌 다음에야, 어느 페이지나 펴서 주섬주섬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 내겐 이 책밖에 없다.

이번 기회엔, 영한 대역으로 된 책을 빌려 와서, 영어로 된 부분을 주---욱 얼음에 박 밀듯이 매끄럽게 읽어 나가려고 생각했으나, 역시 오산이었던가. 얼음에 박 밀기는 고사하고, 잔디밭에서 공차듯이 삐그덕거리는 일이 잦았다. 비교적 단어가 쉬운 편이었지만, 그리고 문장 구조도 어렵지 않았지만, 결국 5장 정도부터는 한글판을 읽어 나가고 말았다. 이 책에는 씨디가 두 장 들어 있어서 출근길에 들어보았는데, 외워질 정도로 반복하지 않고서는 쉽게 들리지 않는다. 내게 영어란 듣기 정복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좀 들으려고 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 뭐니뭐니해도 쓸 일이 적으니 그런 것 같다.

어린 왕자는 읽을 때마다 신선한데, 이번엔 전철수에서 눈이 멈춘다. 22장에서 전철수가 신호를 보낸다. 어린왕자가 뭐하냐가 묻자, 전철에 사람들을 1000명씩 태워 보낸단다. 그렇지만, 그에게 그 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저 일일 따름... 아, ... 나도 아이들과 보낸 십여 년을 그저 그렇게, 별다른 의미없이 보내버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They are pursuing nothing at all... 이 그들은 우리 반 아이들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하다.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는 그들과 나... 이런 허탈한 모습이 아닐는지...

영한대역이라면 전문 번역가가 옮긴 것일텐데... 사소한 착오로 보이는 부분이 눈에 들어오고 나서는 맘이 상한다.

p. 13. I would talk to him about bridge, and golf, and politics, and neckties.를 해석한 구절에서,
전 그 사람에게 다리와 골프, 정치와 넥타이에 대해 이야기했죠...라는 풀이가 있다.
여기서 브리지는 <카드 게임>을 의미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보이지 않는 곳에 꽃이 있기 때문에 별은 아름다운 거라는 어린 왕자의 위안을 들어서 반갑다.
The stars are beautiful, because of a flower that cannot be see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속 깊은 이성 친구
장자끄 상뻬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8년 7월
구판절판


(이 책은 특이하게도 페이지가 없군.ㅋ)
그녀는 얼마 전부터 나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건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버릇없는 응석받이일 뿐이라면서 자기가 어른스러워지려면 남자 때문에 아픔을 겪어 보아야 할 것같다고 말했다.
나는 떠나기를 결심하고, 내가 그녀에게 가져온 커다란 장미꽃 다발을 냉정하게 창 밖으로 던졌다. 장미 가시들이 내 왼손에 상처를 냈다.(아, 사는 건 이렇게 졸렬하다.ㅠㅠ) 나는 속이 거북했다.(그래, 이렇게 거북한 심정, 나도 안다.) 그녀가 갖다 준 브랜디 때문에 심하게 욕지기가 났다.(그렇다. 적절하지 못한 시점의 음주는 욕지기를 나게 한다. 상뻬는 인생을 좀 안다.ㅍ) <지금 나는 이 여자를 잃고 있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그렇지, 이런 생뚱맞은 생각들로 우리 해골은 맨날 복잡한 법.ㅋㅋㅋ)-??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샘 2006-05-02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 자끄 상뻬의 이름을 쓰면서 나는 <외래어 표기법>에 심한 저항을 느낀다.
그의 이름을 장 자크 상페라고 발음한다면 그에대해 실례라 생각한다.
 
속 깊은 이성 친구
장자끄 상뻬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성일까? 친구일까?
그 이성 친구가 속까지 깊다면 금상 첨화가 아닐까?

이성이라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성이라고 다 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성이면서 친구가 될 정도로 정서가 어울려야 한다.
자신이랑 이성 친구가 되어 주면서 속 깊은, 사려 깊은 사람을 만난다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그런 친구와 평생 좋은 친구 사이를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이성과 지켜야 할 선이 있는데, 그 선의 위치는 사람마다 다르고,
친구와 지켜야 할 것이 있는데, 그 것은 마음 속에 있어서 보이지 않고,
속 깊은 배려도, 그때 그때 다를 수 있는 것이어서, 우리는 숱한 <속 깊은 이성 친구>를 놓치곤 한다.

그러면서, 놓친 이성 친구를 아쉬워 하면서 다른 한 눈으론 또 새로운 이성 친굴 바라본다.
저 친구가 속 깊은 이성 친구가 아닐까 하면서...

사람들이 첫눈에 끌릴 때는 자신과 다른 점이 돋보여서 사랑에 빠지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자신과 다른 점에 못 이겨서 헤어지게 된다고 하는데...
그만큼 속 깊은 이성 친구와 행복하게 지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냉정과 열정 사이... 그 거리라는데,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두뇌와 감성적으로 판단하는 마음 사이의 그 거리.

속 깊은, 이성, 친구...는 이 거리를 오락가락 하기 때문에 늘 명쾌하지 못하고 뿌연 황사가 낀 듯, 또는 안개가 자욱하기도 하고, 혹은 유리창 너머로 번득거리며, 간혹 내 옆에 있지만 그리운 마음이다.

그의 사랑 이야기들은 달콤하기도 하고, 쌉싸롬하기도 하다.
달콤한 눈물도 있고, 쌉싸롬한 웃음도 있다. 그게 인생이고, 그렇게 사랑하는 게 인생일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그림에는 이성도 있고, 어린 아이도 있다.
서로 마주 보기도 하고, 같은 방향을 지향하기도 한다.
때론 이미 지나쳐 버렸고, 때론 아직 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그림 속의 그들은, 남자든, 여자든, 아름답다.
그들이 쌉싸롬한 감정이든, 달콤한 감정이든, 친구가 앞에 오든, 이성이 앞에 오든...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05-01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6-05-02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속 깊은 이성 친구가 결혼을 하게 되면요... 당분간은 결혼 생활에 몰두할 수 있도록 행복을 빌어줘야겠죠? 다시 속 깊은 이성 친구로 돌아오기엔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요. 정말 tomorrow doesn't know...지만 말이지요... 살다 보면 만나고 싶은 마음 가득하면서도 못 만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 책의 그림들은 이런 여러 복잡한 마음들을 떠올리게 한 책이었죠.
 
세상 끝의 정원 - 바깥의 소설 30
가브리엘 루아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가브리엘 루아의 '이 세상의 아이들'을 정말 감동을 느끼며 읽었던 기억이 나지만, 이 책은 도서관에서 차일피일 미루어 두었던 책이다. 마음이 좀 편안할 때라야 조용히 읽을 염이 날 듯 해서.

시험 기간이면 일이 더 많이 생기지만, 마음이 좀 한가롭기 때문에 이 책을 잡고 앉았다.

이 세상의 아이들과 공간적 배경은 같다. 캐나다 개척기의 황량한 들판과 가난.

그렇지만, 내 생애의 아이들은 어디까지나 '아이들'과 '아이 티를 벗지 못한 선생님'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풋 풋하고 싱그럽고 따사롭고 포근한 사랑의 눈물을 기대하는 책인 반면,
어른들의 세상은 낭만적일 수 없었다. 이민의 역사치고 눈물흘리지 않은 역사가 있으랴만, 미국처럼 따스한 지역도 아닌 캐나다의 이민들은 나날이 팍팍한 삶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 팍팍한 삶들이 오롯이 들어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부모님들의 삶을 읽었고, 우리의 미래도 읽을 수 있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한강의 기적을 일구신 우리 부모님 세대의 희생과, 그 꽃밭을 바라보는 우리.
그리고 앙칼진 날씨와, 바람과, 모래 먼지들...

글쓰는 것은 우리의 유일한 구원이며 우리를 해방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작가의 '소신'은 리얼리즘의 승리에 다가가고 있다.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 일이다.
정원을 가꾸고, 쑤시는 옆구리를 부여안고, 하루를 또 살 일이다. 그것이 인생이니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석란1 2006-05-08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생애의 아이들>이 아닌가요? 아니면 <이 세상의 아이들>은 그분의 또다른 작품인가요?

글샘 2006-05-08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이런... 이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