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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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는데 사서 선생님이 처음엔 좀 의도가 색다른 재미로 읽다가 결국 포기했다는 이야길 하셨다. 사서 샘이 좀 쉬운 책을 읽는 취향이긴 하지만...

이 책을 몇 장 읽으면서 쉽지 않지만, 결국 모자이크  시선으로는 세상의 진실을 모두 바라보기 어려울 것이란 예감을 갖게 되었다.

이름도 참 강렬하고, 속표지도 그만큼 빨강으로 처리해 두었다.

노벨상 탄 작품치고 재미있는 작품 본 적 없고, 노벨상이란 것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는 아직도 나는 전혀 동감할 수 없지만, 이 책은 참 재미있게 읽고 있는 중이다.

1권에 등장하는 33편의 짧은 이야기들의 제목은 모두 '나'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그 '나'는 각기 하나의 시선들이 되는데, 그 시선은 카라, 셰큐레, 나비, 황새, 에니시테, 에스테르처럼 사람일 수도 있지만, 개, 금화, 죽음, 빨강처럼 사물이나 추상이 되기도 한다.

파충류의 홑눈은 사물을 각 홑눈에 비친 단편들의 모자이크처럼 인식하게 된다고 한다.
인간의 눈도 신기한 것이 앞을 향한 서로 다른 두 개의 초점이 두뇌 속에서 하나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어떻게 뇌는 두 장의 다른 장면을 하나로 합성할 수 있을까?
그럼 풀을 뜯는 초식동물처럼 양편으로 달린 눈망울들이 합성한 그림은 가히 하나의 파노라마가 되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다초점 소설이다.

터키의 세밀화 전통을 소재로 삼으면서 살인 사건이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삽입하지만, 이 소설은 그저 추리 소설로 전락하지 않는 생각들을 그 하나하나의 시선마다에 부여하고 있다.

결국 삶이란 것은 하나의 시선으로 완성할 수 없는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담으려고 쓴 것일까?

여느 추리 소설이 한방에 주르륵 읽히는 반면, 이 책은 자꾸 독자의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게 만들기도 하고, 끊임없이 다양한 사념에 잠기게 하기도 해서 마지막까지 범인을 감추려는 작가의 의도라기 보다는 기법의 낯섦이 주제를 응시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또다른 생각에 빠지게 하는 좀 복잡한 책이다.

재미가 있어서 리뷰가 제법 많을 줄 알았는데, 아직 세 편밖에 오르지 않은 걸 보면... 역시 노벨상은 뻥인게야. ㅋㅋ(아, 실수... 2권의 리뷰가 세 편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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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15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두고 아직 못 읽고 있어요. 추리적 내용인가 보군요.
어서 읽고 싶어라~~
 
길가메시 서사시 범우고전선 10
N.K. 샌다스 지음, 이현주 옮김 / 범우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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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하면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가 왓다다. 왜 그럴까? 모든 문화의 표준이 유럽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이야기로 정돈되어 재미와 교훈을 함께 준다. 많은 경우 서양 문화 분석의 잣대가 되는 것이 이 신화임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럼, 아랍의 신화는 어떻게 되었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최초의 신화라고 하는 길가메시 서사시는 후대의 성경에 큰 영향을 미친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신들의 모습이 힌두의 신들처럼 무시무시하기도 하고 다정다감하기도 하다.
문명의 발달에 따른 신화의 발달도 부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동양의 문명에 대하여는 밝혀진 것이 드물다.

설형 문자(쐐기 문자)라는 특이한 문자 체계로 적힌 길가메시 서사시는 동양 신화의 대표작으로 제법 흥미진진하다.

책의 1/3 가량이 저자의 해설이 붙어 있는데, 해설이 지루하다.

이 서사시, 만화로 만들면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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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2-23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언제나 길가메시 서사시를 줄줄 꿰어서 '잘난체'를 한답니까.
왜 그런거 있잖아요. 어떤 자리에서 이런거 하나 확 풀어놓으면 제법 '되'보이는.^^

프레이야 2007-02-23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어야하는데 이 책으로는 별로인가 봐요. ^^

글샘 2007-02-24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시는군요^^ 염소들에게 길가메시 이야기 해도 그냥 메~~~할텐데요... 인간도 염소나 그게 그거 아닐까요?
배혜경님... 이 책은 범우사 책이어서 좀 옛티가 나더군요. 길가메시 이야기 자체가 가지는 박진감이 재미있습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저는 시립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좀 낡은 책이어서 해설부분은 읽기 싫더라구요. 원래 시집보다 해설은 재미없잖습니까?ㅎㅎㅎ
 
루쉰의 편지
루쉰 외 지음, 리우푸친 엮음, 임지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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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루쉰의 편지글에서 느껴지는 그의 인품이나 정치적 소견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지만, 사실 이 책은 루쉰이 그의 제자이자 아내가 된 쉬광핑과 주고 받은 편지들을 옮긴 것이다.

그 앞뒤 상황을 엮어주기 위해 엮은이 리우푸친이 해설을 곁들인다. 리우푸친의 해설에서 남의 연애담을 엿보는 이의 재미있어 죽는 마음이 고대로 드러난다.

루쉰의 글들을 읽으면 엄정한 시대에 꼿꼿하게 대적하는 한 지식인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는데, 생각 밖으로 이 편지들에서는 다정다감한 그의 모습을 만나게 되어 참 반가웠다.

쉬광핑은 그의 수업을 맨 앞자리에서 들을 정도의 열성을 가진 여학생이었는데, 민국 14년(1925년) 3월 11일 루쉰 선생님께... 하는 편지를 보낸다. ... 매주 수요일이면 10시부터 1시까지, 일주일에 거의 한 번 뿐인 선생님의 강의 시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맨 앞줄에 앉아서 때로는 당돌하고 거침없는 질문을 즐기던 바로 그 조그마한 학생...이 이 편지를 보냄으로써 두 사람은 뗄 수 없는 인연의 끈으로 얽히게 된다.

쉬광핑이 학내 문제로 곤란을 겪을 때는 위로의 편지를 보내 주었고, 졸업 후 두 사람이 떨어져 살게 되면서는 편지를 쉽게 주고 받지 못하는 고통을 호소하며 낱낱의 삶의 자투리들을 편지로 전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두 사람의 편지는 연애 편지이면서도 진지한 시국 토론과 사건에 대한 분석이 곁들여져있고, 때로는 인생에 대한 진지한 의논을 편지글 안에 녹여두고 있다.

당시 중국 사회의 부정적 현실을 '중국 사회는 너무 늙어빠진 탓에 사건의 규모가 크건 작건 그 본질은 모두 추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마치 검은 물감이 들어있는 항아리레 아무리 깨끗한 물건을 집어넣는다 해도 모두 검게 물들고 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니 암만 생각해도 개혁이 아니고는 별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59쪽)'라는 말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을 한국으로 치환하는 상상의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한숨만 나왔다.

그러면서 제자에게 '광핑형, 당신이 지나친 열망을 품지 않길 바랍니다. 열망이 지나치면 실망을 가져오는 법이거든요. 하지만 미래는 분명 나아질 거라는 희망만은 저버리지 않도록 합시다...(98)'라고 하여 희망을 주려고 한다. 이런 것이 사랑의 힘이 아닐까? 부끄러운 선생의 모습을 반성하게 한다.

그렇지만 때론 사회를 위한 희생에 절망적인 표현을 하기도 한다. '군중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면 군중은 제사가 끝난 후에 그의 살점을 산산조각 내어 뜯어 먹는다...(126)'는 말은 사회 운동의 허망함과 의지가 강해야 함을 되새기게 한다. 지식인들의 운동이 갖는 한계가 그런 것 아닐까? 제 살점을 뜯어먹을 민중을 위해 희생할 수 있을까? 체 게바라도 살점이 뜯기기 전에 콩고와 볼리비아로 도망쳤는지도 모르겠다.

군중 뿐 아니라, 사회에서 개혁자와 반개혁자의 위상에 대한 그의 분석도 탁월하다. '반 개혁자가 개혁자를 독살하는 것은 예로부터 결코 늦추어진 적이 없고, 그 악랄한 수단 역시 날이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단지 개혁자들만이 환상에 사로잡힌 채 매번 고통을 당했다. 그래서 중국이 개혁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니 앞으로는 마땅히 태도와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191)'는 의견을 보면 그가 왜 그렇게 민족의 개조를 위하여 힘을 기울였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런 100년 전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독살당했다는 설이 나돌 정도인 정조 임금의 급서와 백범, 몽양, 장준하 선생에 대한 테러에 대해서도 고통스런 연민이 밀려온다. 이 암울한 역사에...

쉬광핑은 연인으로써 루쉰에게 '당신의 단점이라면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 지나친 증오심을 갖기 때문에 절대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숨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또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너무 기대가 커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듭니다. 그러다가 기대에 못 미치면 이내 서글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너무 민감하고 열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270)'라는 평가를 내린다.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어쩌면 이런 것들이 지식인 운동의 한계를 노정하는 공통점일 수도 있으리란 생각을 하기도 한다.

루쉰이 교직원 친목회에 가서 교장을 칭송하는 아부파에게 비난을 퍼부은 교직원이 곤란해지는 사건을 겪고, 친목회의 무의미함을 회의하는 장면은 많은 교사들이 친목회에 던지는 의문의 눈초리를 떠올리게도 된다. 왜 친목회는 여행을 가고 술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 친목이라면 학기초에 직원들이 새로 오면 환영회를 열어 준다든지, 가신 분들을 초청하여 석별의 정을 나누는 모임이라도 좋지 않을까? 하는...

당시 서양 유학파 교수들은 '고등 인간론'에 경도되어 저급한 인간들의 한계에 치를 떨었던 반면, 루쉰은 평민들의 의식을 일깨우려 부단히 노력했다. 어느 시대나 가진 자들과 지식인들은 '중립'을 내세우면서 민중에게 <자기를 배반하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던 반면, 문제 제기 교육을 외치는 개혁가들은 민중을 깨우치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분은 단지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비록 가난하지만 자녀들은 총명하고 지혜롭습니다. 단지 여러분이 고군분투하기로 결심만 한다면 분명 성공할 수 있습니다. 분명 여러분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당신들을 노예로 살도록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또한 어느 누구에게도 당신들이 평생을 가난에 허덕이며 살도록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없습니다...(341)'는 말은 어느 시대에도 패배 의식에 젖게 되는 민중들에게 삶의 비료가 되는 말이었을 것이다.

교사로서, 한 인간으로서 그의 편지 행간에서 읽을 수 있는 고뇌들을 읽는 일은 언제나 새롭고 유의미하다. 특히 이 책에서는 유쾌한 그의 연애 편지 사이에서 건질 수 있는 수확들이어서 유쾌하고도 신선한 읽기의 재미를 더한다. 역시 난 사람은 연애 편지 조차도 예술이다.

17쪽의 편지 겉봉은 분명 루쉰의 필적으로 쉬광핑에게 보낸 것인데, 쉬광핑이 보낸 겉봉투라고 실수를 저질렀다. 귀엽게 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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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9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7-01-29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책 자체가 애교로 넘칩니다.^^ 루쉰 선생님이 평소 모습과는 사뭇 다른... 사랑은 그런 거죠.

달팽이 2007-01-29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시절에 읽었던 루쉰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허나 자신을 시대적 걸음의 디딤돌로 사용했던 마음은 느꼈습니다.

글샘 2007-01-30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루쉰은 결코 읽기 쉬운 작가는 아니죠. 그 유명하다는 아큐정전도 얼마나 비비꼬아서 적어 두었는지... 이 책에서도 루쉰은 자기를 딛고 후배들이 자라는 것을 바라고 있답니다.
 

오쿠다 히데오 지음, 임희선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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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본어를 배울 때, 강사가 테입을 틀어 주고 받아쓰기를 하는데 '갸-루'하는 발음을 듣곤, 도대체 모르겠다고 했더니, 외래어라고 했다. 나중에 보니 gaaru는 girl의 일본식 발음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원 제목이 <가-루>다. 일본어에서 <가-루>는 여학생이나 이런 의미가 아니라, 여성이란 의미가 강하다. 고딩인데 좀 노는 애들을 <고-갸-류>라고 하고.

<걸>은 다섯 편의 단편이 모인 소설집이다. 주제는 당연히 여성의 문제다.

그런데, 이 소설집이 '왓다'인 이유는, 어쩜 이렇게도 섬세한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아내가 결혼했다...는 소설을 읽었는데, 아내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정말 남성스럽고 마초다워서 한참 리뷰에서 씹었던 기억이 나는데, 히데오는 이 사람이 <사우스 바운드>의 걸걸한 이치로씨를 그린 그 사람 맞아?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띠동갑>은 제일 새초롬한 소설이다. 띠동갑 남자 사원이 들어왔더니 회사가 온통 난리도 아니다. 지도사원이 된 띠동갑 여자 상사는 매사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다는 이야긴데, 이야기는 별 것도 아니지만, 순간순간 톡톡튀는 대화와 상황 전개들이 정말 젊고 싱싱한 선남선녀들이 상큼한 향수와 분내음을 흩뿌리면서 까르르 웃는 커피향 가득한 공간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는 멋진 인트로 역할을 하고 있다.

<히로>는 정말 멋진 남편을 둔 직장 여성의 이야기다. 여성이 워낙 능력이 좋지만 그 신랑 히로는 더 멋진 남자다. 파벌을 따지고 여성을 비하하는 일본 직장의 풍토를 정말 통쾌하게 압도하는 멋진 걸, 세이코에게 이마이와 기하라 부장이 '둘이 나란히 머리 숙여 사과'하는 장면은 오쿠다의 팬이 된 걸 감사하게 만들 지경이다. 직장다니는 여성이여,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당장 사서 읽기 바란다.(그렇지만, 역시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이란 평범하기 보다는 자극적으로 능력이 있어서 책을 읽고 쉽사리 초라해 지는 이라면 읽지 않는 편이 나을는지도...)

<걸>은 나이든 직장 여성들의 애환을 경. 쾌. 한 목소리로 드라마 게임처럼 펼쳐 보여 준다. 그 빛깔을 농염한 물랭 루즈이기도 하고, 톡톡 튀는 분홍 립스틱이기도 하다.
여자는 즐거워야지. 하고 혼자 속삭이는 이 글은 정말 여자의 글이 아닐까?

<아파트>는 집과 여성의 관계를 섬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다. 서울에 비해 더욱 까다로운 주거 환경을 가진 도쿄의 전문직 여성의 집고르기 에피소드.

<워킹맘>은 제일 멋진 작품이라고, 그래서 빨간 하트무늬 스티커를 다섯 개 붙여 주고 싶은 작품이다. 올해 서른 여섯 히라이 다카코의 철봉 오르기와 공 던지기는 다카코의 피곤한 삶을 활기 넘치게 그리고 있다.

장난기로 넘치는 이라부의 <공중 그네> 이후로,
세상을 굵은 눈썹 아래 형형한 눈초리로 진지하게 읽어 내는 <사우스 바운드>에 이어,
여성보다 여성스런 글발로 직장 여성들의 삶을 경쾌하게 이끌어내는 <걸>까지 그의 팬클럽에라도 들어야 할 판이다.

<그렇지만, 많은 책들이 하드 커버로 되면서 책값이 천 원 정도 올라버린 일들은, 나무에게 미안하고 독자들에게 바가지 씌우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계속 하게 한다.

나는 하드 커버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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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2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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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성장소설에 비하면 2권의 이리오모테 섬생활이 나는 훨씬 재미있었다.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는 사실적이긴하지만 소설의 재미를 이끌어내긴 힘들다. 인생의 진실성이란 극한 상황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섬에서는 텔레비전도 전기도 없는 생활이 이어지지만, 전교생 다섯 명의 학교와 베니건스를 연상시키는 베니라는 자유인, 그리고 끝도없이 무언가를 가져다주는 이웃들이 있었다. 물론 거기도 땅을 사고 파는 개발업자도 있었고, 자본가의 개 노릇을 하는 경찰들도 있었지만, 초절정 구제불능 운동권 고수 아버지와 덩달아 기둥에 몸을 매다는 어머니도 있어서 섬생활의 어려움들은 행복하게 마무리된다.

이 소설의 통쾌함은 아버지와 어머니, 베니가 잡혀가지 않고 자유롭게 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도시의 서점 순례나 돈많은 외갓집도 조금 좋긴 하지만, 전교생 다섯 명의 수업과 싱싱함이 묻어나는 누나 요코의 모습이 사람사는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사우스에서는 깡패따윈 없었다.

내가 1권을 읽으면서 기대했던 바대로, 남쪽을 사랑하는(南愛子) 미나미 선생님의 편지가 배달되었는데, 정말 미나미 선생님은 멋진 분이셨다. …지로 세대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부디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손해보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서로 협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쁜 일에 협력해서는 아무 의미도 없겠지…. 나는 제자에게 이런 멋진 말을 써보지 못한 부끄러운 교사였기 때문에 깊은 반성을 했다.

아버지가 운동권에 대해 내뱉는 일갈은 곱씹어볼 만한 내용이다. “나는 당신 같은 운동꾼들에게는 더 이상 어떤 공감도 느낄 수가 없어. 좌익 운동이 슬슬 힘이 빠지니까 그 활로로서 찾아낸 게 환경이고 인권이지. 즉 운동을 위한 운동이란 거요. 포스트 냉전 이후 미국이 필사적으로 적을 찾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야.” 우리 문학에서 이런 말을 읽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특히 아버지가 개발 반대 투쟁을 앞두고 지로에게 해준 말은 삶의 방향을 이끄는 등대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오쿠다 씨는 이치로 씨를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 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한 사람. 싸우는 사람 중의 한 사람. 개인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어떤 명목으로도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꿋꿋하게 버티는 것이 운동에서 얼마나 중요하던가. 힘빠질 일이 아니다. 그저 한 사람으로서 운동의 자리에 서야 하는 것이다. 교수대로부터의 리포트란 책에서 ‘해방되기 전, 마지막 전사가 되어도 혁명가가 될 것인가?’하는 대목을 읽고 고민했던 대학 시절이 있었다. 결국 누구나 마지막 전사일 수 있고, 한 사람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버지는 ‘한 개인’으로 당당하게 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분이다. 경찰 입장에서는 영원한 위험 인물이지만, 이미 아버지도 혁명 같은 건 믿지 않는다. <권력자가 벌레보다 싫고, 국가가 하라는 대로는 죽어도 하기 싫은 한 개인>일 따름이다.

내가 배운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는 <나, 너, 우리, 우리 나라, 대한 민국>으로 시작했고, 어린시절부터 ‘우리’는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항상 내 옆에는 너와 우리의 눈이 가득했고, ‘우리’를 벗어나는 일은 큰 죄악인 것처럼 여겼던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며, <나>를 생각하게 해주기 위해 남쪽으로 튄 ‘이치로 씨’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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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12-21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리오모테 섬으로 글샘님과 함께! 개인 만세!

글샘 2006-12-22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제 흘러간 마음을 잘 보관해 주세요. ^^
이리오모테 섬에 수학여행이라도 다녀온 느낌입니다. 아련한 추억처럼... 정말 개인 만세입니다!!

몽당연필 2007-02-26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우리 모임에서도 읽기로 했답니다. ^^

2007-03-08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7-03-09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당연필님... 모임에서 같이 읽고 이야기도 나누면 색다른 감흥이 있겠군요.
s님... 그렇다고 리뷰를 안쓰시는 건 무효입니다.^^

석란1 2007-06-03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주 우리 모임의 커리인지라 금요일밤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와서 밤 11시경부터 .....밤을 꼴딱세웠습니다. 지로의 아버지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죠. 저희 아이가 다니고 있는 방과후 학교는 공동육아협동조합에서 하는 것입니다.조합원의 대부분이 대학시절 가열찬 운동권이었고 지금까지 현재 진행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지로의 아버지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한다고 볼 수있지만 환경이나 인권운동으로 옮아온 운동권의 모습도 많이 보여지고 있지요. 참 많이 공감했고 반성했습니다.

글샘 2007-06-04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읽는 모임이군요^^
가열찬 운동권 출신이나, 헌재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그런데 오쿠다 이치로씨처럼 멋진 운동가 보기는 쉽지 않지요.^^
함께 하지 않으면... 결국 '개인'은 없다는 생각을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