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하이쿠 선집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34
마쓰오 바쇼 외 지음, 오석륜 옮김 / 책세상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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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금도 일본 방송에 가끔 하이쿠 짓기 시합을 하는 모습이 비친다.

시의 언어는 비교적 자유롭고 고난도의 표현을 구사하기 때문에

일본어 실력이 짧은 나로서는 그 감동은 커녕 해석에 도전하기도 어렵지만,

정형시의 모습 중 하이쿠라는 독특한 시에 빠져 든다.

 

이 책에서는 마쓰오 바쇼, 요사 부손, 고바야시 잇사, 마사오카 시키, 카와히가시헤키고토.

이렇게 다섯 사람의 시를 뽑아서 풀이하고 일본어 원문을 소개하고, 해설을 곁들였다.

나처럼 얼치기 일본어 학습자들이 음독을 할 수 있도록 음을 붙여주었다면 더 친절했을 것을...

 

하이쿠는 <계절어>와 <기레지>라는 내용과 575 음절의 형식을 가진 정형시다.

열 일곱 자 속에서 주로 느껴지는 것은 계절의 정취, 인생의 무상함 같은 것이다.

동양의 여백미, 자연과 공존하는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시들을 만날 수 있다.

 

바쇼의 '여름 잡초여, 병사들 고함 소리, 꿈의 자췬가'처럼 전쟁과 인생을 읽을 수도 있고,

요사 부손의 '시원함이여 종에서 떠나가는 종소리여라'처럼 신선한 표현도 만날 수 있다.

'국화의 이슬, 물 대신 받아서 긴 벼루 목숨'같은 재치도 엿보이고,

'눈에 꺾인 가지여, 눈을 뜨거운 물로 만드는 가마 밑이네.'처럼 역설적 상황도 만난다.

'도끼질하다 향기에 놀랐다네. 겨울 나무 숲.'처럼 자연의 한적 고답을 느끼게도 한다.

 

<사비>라고 하는 한적 고답의 멋과

<시오리>라는 부드럽고 정연한 맛,

<호소미>라는 섬세한 감정이 하이쿠의 내적 깊이를 이루고 있다.

그 정취를 맛보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 아닐까?

하이쿠의 유미적 낭만성을 함뿍 맛보는 것은 정신의 사치를 누리는 멋이라고 하겠다.

 

가장 다작이라는 잇사의 시도 좋다.

'파란 하늘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쓰는 가을의 저녁'은 묘사적 서정을 보여 주고,

'달아나는구나. 좀의 무리 중에도 부모 자식이'에서는 초코파이 정을 진하게 느낄 수 있고,

'저녁의 벚꽃 오늘도 또 옛날이 되어 버렸네.'는 인생의 덧없음이 그대로 녹았다.

'덧없는 세상은 덧없는 세상이건만 그렇지마는' ... 아, 이 시처럼 안타까움을 잘 나타낼 수도 있을까 싶다.
露노世와 露로世나가라 사리나가라...

'오늘이란 날도 장구벌레여, 내일도 또한' 이 시도 마찬가지다. 삶의 순간들은 참 아쉽게 흘러간다.

 

시키의 시.

'유채꽃이네. 확 번져가는 밝음 변두리 동네.'는

마치 갑자기 등불을 확 들이댄 것처럼 독자를 깜짝 놀래이는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헤키고토의 시 '봄날은 춥고 水田 위에 비치는 조각 구름아'에서는

뿌리 없는 풀(부평초, 네나시구사)에서 뿌리없는 구름(네나시꾸모)을 유추하는 번득임을 본다.

 

한 줄도 너무 길다...는 정신으로 무장한 정형시, 하이쿠.

한시의 절제미보다 더 간단한 언어로 <계절과 자연에서 직관적으로 얻어지는 정서>를 잡아내는 글맛은 일품이다.

 

일식집에서 기름기 자르르 도는 회 한 점을 혀에 닿게 할 때 느껴지는

 와사비의 매콤쌉싸롬하면서도 향긋하고 신선한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듯.

얼떨결에 이벤트에 시 패러디를 올렸다가 선물로 받은 책이다. 기인님께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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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야찬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세욱 옮김, 선종훈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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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단편집이나 시집을 골라 들면, 표제로 올라 있는 작품을 우선 뽑아서 읽으려 든다. 제일 맛있는 것을 먹어 보고 고놈의 매력에 따라서 나머지 작품들의 짠한 맛을 배가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겠다.

그런데 미셸 투르니에의 단편집 <사랑의 야찬>에는 19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는데, 10편은 다른 책에 수록되어 있어 나머지 9편만 실려 있다. 저작권 문제가 좀 묘한 책을 만든 셈이다.

투르니에의 이야기들은 콩트와 누벨로 나누는데, 누벨은 현대식 단편소설인 반면 콩트는 구두 전승과 신화와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역자의 해설도 재미있다.

그래서 여기 실린 그의 콩트들은 신화와 전설 그 사이에서 희극과 비극의 모습을 띠며 구전의 형식으로 인간의 구체적 삶의 모습을 되살리고 있다. 아무래도 풍자적이고 재미있는 콩트에는 음률적 요소들이 작용하게 마련인데, 번역으로 읽는 맛은 원어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난 <짚북데기 위의 아이>의 상상력이 가장 인상적이다. 요즘 아이들이 병원 분만실의 기곗덩어리와 번들거리는 벽들 사이에서 태어나 병원 중독, 의료 중독, 약물 남용에 쉽게 빠진다는 가정이다. 인간에게 '출생의 자국'은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엔 충분히 동의할 만하다.

<두 향연>과 <그림에 관한 전설>은 탈무드를 읽는 기분이고,
<음악과 춤에 관한 전설>과 <향수에 관한 전설>은 성경의 모티프를 차용한 것이다.

미셸 투르니에를 좋아하는 이라면 읽어볼 만도 한데, 그의 글들이 좀 어렵다고 생각했거나, 그의 글을 읽으려다가 덮어버린 이라면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쉽게 읽을 수 있고 재미있다.

아쉬운 점은 200페이지의 책을 한 페이지의 절반에만 인쇄를 시도한 것은 여백을 주는 글이라는 새로운 형식이긴 하지만, 나더러 편집하라면 80페이지면 충분히 시집처럼 얄팍한 책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무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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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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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향수로 유명한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을 모은 책이다.

단편이기 때문에 이야깃거리가 아주 단순하다.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서 나는 <삶의 전형>을 본다. 죽음이라는 한계를 가진 인간의 불안정한 하루 하루를...

첫 번째 단편, <깊이에의 강요>는 깊이가 없다는 비평을 들은 여류 화가가 자살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남의 말에 그렇게 귀기울이다 죽어간 불행한 사람은 단지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는 정도는 아닐 것 같다. 나도 얼마나 남의 칭찬을 그리워하는지... 어리석게도 말이다. 그 칭찬한 사람들도 몇 년 후면 모두 사라져 버릴텐데 말이다.

두 번째 단편, <승부>에는 삶의 규칙을 곧이곧대로 준수해 어느 정도의 지위에 오른 인물과, 전혀 새로운 기법으로 그에게 도전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주변에 새로운 도전자를 응원하다가 우물우물하고 마는 관객들을 그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사회의 규칙에 따라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렇지만 그런 자리에 오를 기회가 전혀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전자를 높이 사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도전자는 대부분 박살나 버리기 십상이고, 그 도전자를 추종하던 관객들은 다시 묵묵한 비겁 속으로 뒷걸음질칠 뿐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아, 나는 어떤 삶을 살 거냐... 쉽지 않은 소설이다. 아주 간단한 쉬운 소설인데 말이다. 인생이란 부질없는 것이면서도, 포기할 정도로 쉽진 않은 까닭이다.

세 번째 단편, <장인 뮈사르의 유언>은 세계와 인간이 점점 돌조개로 변하고 있다는 모티프를 이야기한다. 삶은 이렇게 화석화되는 과정인가? 현대란 화석화가 급격히 일어나는 과정에 불과한 것인가?

마지막에 덧붙인 에세이, <... 그리고 하나의 고찰>에서는 문학이란 어떤 힘을 가진 것인지를 직접 화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너는 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제가 대부분인 문학이란 놈은, 사실 우리 머릿속에 그닥 남아 있지도 않다. 토스토예프스키를 읽었다고는 하지만, 별로 기억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나도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이야기가 꼬여버리는 일도 많고, 아이들 앞에서 소설 줄거리를 엮다가 잊어버리기도 한다. 건망증으로 시달리는 우리에게 문학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일까? 그리고 문학을 가르친다는 것도 황당무계하고 무의미한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이야기들은 아주 쉽다. 그러면서도 꼭꼭 씹다 보면, 삶의 섬유질들이 남아서 질겅거리고, 단물은 금세 사라져 버리는 유혹임을 우리에게 증명해 보인다.

우연히도 멋진 책을 만나는 기쁨. 이것이 책 읽는 기쁨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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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메이 아줌마 (양장)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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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 죽음을 이해하기 어렵다. 어린이의 경우엔 죽음으로 이별하게 될 경우 더욱 곤란을 느낄 수 있다.

그리운 메이 아줌마는 그런 상황을 현명하게 통과하는 과정을 적고 있는 동화로 보인다.

이야기가 별로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담담한 이야기 속에서 아이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을 쓰고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메이 아줌마지만 진한 사랑을 담아 주인공 '서머'를 기른다.

메이 아줌마와의 이별은 서머에게도 충격이지만, 남편인 오브 아저씨도 큰 공황에 빠지고, 결국 영매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렇지만 영매로 찾았던 이도 죽었음을 확인하고 다시 원위치로 회귀하는 이야기다.

아이들이 가까운 사람들과 이별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 상황을 이해하라고 하는 것도 잔인한 일이다.

그러나, 그 상황을 현명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은 중요한 일로 보인다.

이 책은 그러한 등장 인물들의 마음을 통찰력을 가지고 살펴주고 있는 점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하는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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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소녀 카르페디엠 8
벤 마이켈슨 지음, 홍한별 옮김, 박근 그림 / 양철북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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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소녀는 나무를 잘 타는 마야 소녀다.

중부아메리카의 과테말라를 침탈하는 라티노들의 잔혹 행위를 고발하는 소설.

제국주의자들의 거짓되고 잔인한 행위들은 <역사>라는 거짓말 책에는 쓰여있지 않지만, 그 잔혹행위를 당한 사람들의 핏속엔, 유전자마다 피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게 되는 것 같다.

호주를 살해한 이야기를 적은 독수리의 눈.
어메리컨 인디언들의 학살에 대한 <운디드 니>와 <제로니모> 같은 책들에 비해 이 책은 훨씬 소름끼친다.

가족들을 모두 잃은 나무 소녀가 나무 위에 올라서 한 마을의 살육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내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끝없이 흘렀다. 장난처럼 사람을 죽이고, 강간하고, 사냥하는 잔인한 짐승에 불과한 두발로 선 짐승을 읽을 때 책을 읽으면서 메슥거리는 구역질에 시달렸다.

이 책은 중고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식민지의 역사를 배우면서, 인간은 왜 평화를 공부해야 하는지, 왜 파시즘에 저항해야 하는지를 공부하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의 힘은 이런 것 아닐까? 할일 없는 부유국 남녀들이 짐승처럼 서로를 탐하는 느글거리는 글줄들은 문학이라고 하기에 추잡한 것이다. 약소했기에 평화롭게 살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당한 이야기들. 이런 것들을 통해 핏줄 가득 펄떡이는 잔혹 행위에 대한 저항의 정신을 설명문으로 가득한 역사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이다.

나무 소녀라는 <형상화>된 인물을 통해서, 시대 배경을 인식하게 되고, 인간 역사의 보잘것 없음을 배우게 되는 좋은 교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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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란1 2006-06-27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일전에<나무소녀>를 읽었는데,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입니다.
무지한 백성들이 게릴라가 될 수 밖에 없는 내용이더군요.

글샘 2006-06-27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서운 책이었어요. 아무 욕심 없는 사람들에게 욕심 많은 사람들이 저지른 일들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