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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의 공감
펠리치타스 폰 쇤보른 지음, 김희상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수학여행 가는 가방에 이 책을 넣고 갔었다. 역시 책을 읽을만큼 한가한 시간은 별로 없었다.
둘쨋날은 조금 일찍 들어와서 아이들에게 자유시간을 준 덕에 책도 몇 쪽 읽긴 했지만, 역시 교사에게 수학여행은 힘들다. 아이들은 틈을 노려 술을 사 오거나 담배를 피우려고 하고, 교사들은 숙소 현관을 지키며 피로를 쫓는다. 이십 년 전이나 변함없는 그림이다.
사랑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남이 당하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을 자기 것처럼 느끼고 받아 들이면 된다는 달라이 라마의 말은 쉽고 간명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스스로 공고생이란 자격지심에 시달리고 있다. 그것을 벗어던지라고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아이들의 고통을 내 것으로 느낄 수 있는 섬세한 촉감, 그 <공감>의 촉수가 있어야 하는데... 늘 실패한다.
수학여행가서 우리 숙소에, 서울서 온 모 여고생들이 같이 묵었다. 헐~ 공고생들과 여고생들을 같은 호텔에 묵게 하다니... 엄청나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 반 아이 하나가 물었다. "쌤, 정말 여고생들이 와요?" "야 임마, 그냥 남고도 아니고, 공고생들인데 한 숙소를 쓸 수 있겄냐?" 하고 나는 별 생각없이 말했는데, 인석이 좀 풀이 죽어서 "쌤, 사회에선 공고를 안 좋게 인식하지요?"하고 물어온 것이다. 아이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아픈 상처를 무심결에 건드린 것이다. 아무튼 그날 밤, 서너 대의 버스에 나눠탄 여고생들이 도착했고, 다시 우리반 아이들은 경악했다. 그 여고생들은 60이 넘은 할머니들이었던 거다. 늦깎이 여고생들을 보고 우리 반 아이들은 도망갔다.
이 책은 독일의 쇤보른이란 사람과 달라이 라마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적은 글이다. 글쎄, 도올이 이런 이야기를 펼쳤다가 어색한 내용만 가득하게 채워놓았던 걸 읽은 기억이 난다. 이 책은 도올을 읽을 때의 나와 다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판단할 순 없지만, 달라이 라마의 삶, 그리고 종교에 대해서, 티베트에 대해서 상당히 깊이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다.
달라이 라마가 주방장과 나눈 이야기 중, <일 처리를 하면서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제멋대로인 관리가 많다.> 그래서 백성의 지도자는 언제나 평민과 떨어져 있어서는 안 된다. 백성의 고충을 모르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지도자는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쫓는 관리나 자문관들에게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아, 이런 구절을 읽으면 삶 자체가 슬퍼진다. 지금의 많은 노조들과 열린우리당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평민>에서 출발했지만, <평민>과 떨어져 버린 그들의 모습을... 그래서 백성의 고충에 귀기울이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오버랩하게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연꽃이라는, 옴 마니 밧메 훔(오, 너 연꽃 속에 핀 보석이여) 속에 담긴 사랑과 공감의 정치가 많은 노조들과 정치인들에게서 볼 수 없음은 진정 슬픈 일이다.
여행중 잠시 만난, KAL 조종사 친구의 말이 귓전에 계속 울린다. "노조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노조가 비겁한 자들이 숨는 공간으로 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고 하던 말.
어떤 일을 하든 <사랑과 공감>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달라이 라마의 말씀은 슬프고 혼란스런 마음 속에서도 중심이 되는 말이다.
끊임없는 사념과 감정으로 혼미하기만 한 우리의 불안한 정신을 평정에 이르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종교이며 명상이고 참선이 아닐까 한다. 외팅거의 <평온 기도문>의 한 구절. 당분간 명상의 주제로 삼아야겠다.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정을 허락하시고,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어갈 용기를 주시며,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할 지혜를 내려 주소서.
요즘 학교가 심심치 않게 뉴스거리를 만들어 낸다. 방송국은 즐거워하겠지만, 학교는 피곤하다.
교사가 무릎을 꿇고, 여고생 엉덩이를 각목으로 팬다. 여중생이 교사를 폭행한다.
교사가 무릎꿇는 장면을 방송하는 머저리도 있고,
스승의 날 기념식에 빠진 아이들과 숨겨준 아이들을 패서라도 보복하겠다는 생활지도의 왜곡이 있고,
아이들이 우습게 보는 기간제 교사의 허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결국 학교 안에서 사랑과 존경이 제자리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우리의 미래는 청소년에 대한 균형 잡힌 교육에 달려 있다는 칼 포퍼의 말을 인용하는 달라이 라마의 교육관에 캄캄한 밤에 별빛을 본 듯 서늘함을 느낀다.
균형 잡힌 교육. 이 얼마나 요원한 불가능의 명제인가.
세상은 신자유주의 물결이 넘실대는 신제국주의 시대로 이행한다.
일제시대처럼 동족을 짓밟더라도 나만이 살아남는 비정한 시대로 흘러 간다.
학부모는 제 자식만이라도 승리자로 남기를 바라며 비장한 투자를 한다.
학생은 초등학교부터 인생을 위한 투쟁에 모든 싸가지를 소모한다. 결국 싹수가 노랗게 변한다.
교사는 인성교육, 전면교육의 심각성을 느끼지만, 아이들과 학부모는 경쟁에서 승리만을 바란다.
국가는 다시 8차 교육과정 운운하지만, 아이들의 부담을 줄여줄 생각은 언감생심, 내지도 못한다.
내가 초임 시절, 동료 선생님들이 너무 무서워서, 나는 아이들 앞에서 웃고 다니려고 한 적이 있다. 이젠 습관이 되어 복도에서 실실 잘도 웃고 다닌다. 별 생각없이 웃기로 한 거지만, 웃는 일은 인간에게 용기를 주는 것 같다. 이제 좀 생각을 가지고 웃어야 할 나이다. 사랑과 공감을 주는 웃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