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나무 풀빛 그림 아이 15
숀 탠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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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굳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세상은 희망이 있고 즐거워서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때론, 정말 옛날 어른들이 입에 달고 살던 <죽지 못해> 사는 날들도 있게 마련이다.

세상은 내게서 등을 돌리고, 나에게만 나쁜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다.

나보다 못해 보이는 저 사람들도 잘 살고 있는데...

빨간 나뭇잎의 존재를 지나치고 세상을 보면, 온통 시커멓고 어두컴컴하고 복잡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다들 달팽이처럼 자기 등에 지고 있는 작은 집 안으로 자아를 밀어 넣어버리고 싶어하지, 자기 본색을 남들에게 조금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 어른들을 위하여 숀 탠이 그림책을 선물한다.

네 안에 가득한 빨간 나무의 희망을 보라고.

네가 아무리 어두울 때라도 빨간 나무의 <단추>는 어디에나 있지 않느냐고.

힘들기 때문에, 서로 사랑과 격려가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세상은.

난 도서관 서고에 기대 서서 이 책을 몇 번이고 읽었다.
아니 그림책을 몇 번이고 다시 넘겼다.
힘들 때, 서점에 가서 5분만 아니 10분만 이 책을 들여다 보면, 입가에 쓴웃음이라도 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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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3-0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저 이 책 읽고 있어요!

하이드 2006-03-0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어제 책정리하다가 이 책 꺼내 읽었는데!

글샘 2006-03-03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살다 보면, 우연한 데서 사람을 다 만난다니깐요.
여우님, 하이드님. 같은 책을 통해서 만나 무쟈게 반갑습니다.
 
네 발 달린 명상가
주디스 아들러 지음, 김충현 옮김, 토니 터커 사진 / 인북스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네 발 달린 명상가.. 개들의 이야기다.

개들은 인류가 가장 먼저 길들인 동물종이다.
처음에 개를 길들인 이유는 식용으로 쓰기 위한 것이었음이 당연하다.
식용과 애완견이 애초에 분간되었을 리는 없다.

인간이 먹을 것이 풍부해지면서, 개는 집도 지키고, 사냥도 하고, 애완용으로도 쓰인다.

그렇지만, 개들은 애초에 인간에게 복종하기 위해 태어난 것도, 집을 지키거나 사냥을 하거나 애완용으로 쓰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개들도 존재의 이유는 품성 그대로인 것이다.

개들을 보면서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겠다 싶은 기획 의도가 돋보이는 책.

멋진 개들의 사진이 있고, 한 면에는 선과 관련된 구절들이 기록되어 있다.
장자에 실렸던 이야기나, 법구경, 선 관련 서적들에서 뽑은 구절들...

긁어 부스럼!
모든 중생은 본래 부처다.
깨달음을 이루라는 재촉이 긁어 부스럼이다.
깨달음에 대한 재촉이 긁어 부스럼이란 말, 새롭다.

다름에서 같음이 나온다.
다름을 인정해야 같음을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이 같음 속에 다름이 있고, 다름 속에 같음이 있다.
한국인들은 나와 다름을 유달리 인정하지 못하지 않나 싶다. 나와 다름 속에 같음이 있고,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여유는 얼마나 더 걸려야 얻을 수 있는 덕목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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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일간의 우화 여행 70일간의 여행 시리즈 3
박광수 지음 / 새터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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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남자들이 여자를 찝적거리다가 못생겼으면 이런 소릴 한다는 우스개가 있다.

이 책은 십년 정도 전에 ** 여행 시리즈가 유행할 때에 나왔던 책이다. 그 당시엔 책 사는 데 그렇게 돈을 많이 투자하지 못했고, 학교 도서관엔 아주 인색하던 시절이었고, 서울에 살았건만, 동네에 도서관은 없었다. 이런 가벼운 책은 읽지 못하던 시절...

어느 반 교실에 주인 없이 이 책이 뒹굴고 있었다. 몇 년 전에 도서실에서 빌려왔던 책을 반납하지 않고 뒹굴리던 책. 우연의 이름으로 날 찾아 왔으리라.

짤막한 이야기가 70편 실려 있다.
70일이면 하루 한 편씩 읽는다면 10주의 코스다.
그 코스를 이 이야기들을 읽으며 명상에 잠긴다면 도를 통하고도 남을지 모를 기간이다.
그런데... 난 이 책을 하루에 30분 정도, 이틀만에 다 읽어버렸다.

텔레비전에서 살을 빼려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일찍 일어나서 고요히 명상에 잠긴다면 건강에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일 아침부터는 꼭 실천에 옮길 법도 한데...
아침에 추워서 조금 귀찮긴 하겠지만, 우리 식군 아침잠이 많아 나 혼자 일찍 일어난다면 나 혼자만의 시간을 얻기 쉬운 일이다. 조용히 혼자 거실로 나와 볼 일이다.

이 책에서 가장 잊지 못할 이야기는 "그래요?"만 하던 선사다.
덕이 높은 선사가 있었다. 마을의 처녀가 애를 배서 애비가 누구냐 물었더니, 마지 못해 선사라고 둘러댔다. 처녀의 아비가 선사에게 마구 욕을 퍼 붓자, "그래요?"하고 대꾸했단다. 마침내 처녀가 아기를 낳아서 기를 수 없자 선사에게 기르라고 가져다 버렸다. 그랬더니 선사는 다시 "그래요?"라고 했다. 나중에 처녀는 죄책감을 못이기고 실토하였고, 아비와 같이 선사에게 죄를 빌었단다. 선사의 말. "그래요?"

명상이란, 나를 찾는 것이다.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도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나에 관심을 두는 것 말이다.
게을러서 나에 관심을 둘 시간 갖지 못하면서, 디립다 읽기만 하는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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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탄잘리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22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지음, 김광자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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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탄잘리는 신에게 바치는 송가란 뜻이라는데,

이번에 채점 들어가서 해질 무렵 저녁을 먹고는 저물어가는 남한강을 보며 기탄잘리를 읽었다.
누가 나에게 하느님께 바칠 것을 내 놓으라고 한다면, 한 톨의 티끌도 없이 바칠 수 있을까?

불우이웃 돕기는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주는 행위가 아니었는데...

그의 경건한 어조와 고요한 마음은 오직 드리기만 하는 마음을 잘 나타낸다.

기탄잘리를 읽으면서 한용운을 떠올리는 것은 한용운이 그만큼 나에게 친숙하기 때문이요,
기탄잘리가 또 그만큼 한용운에게 친숙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기탄잘리같은 시를 우리 말로 읽는 것보다,
타고르가 쓴 그 말로, 그 보드라운 언어로 읽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글일 것인가.

일본어 공부 10년 한 것을 별로 써먹을 기회가 없다가도,
간혹 일본어로 된 간단한 시를 일본어로 읽으면서 깜짝 깨닫는 순간을 느끼고는
원어로 시를 읽는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 많이 아쉽다.

이 책을 읽으면,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란 것을 알게 된다.
아침이면 따뜻한 이불 속을 그릴 것이 아니라, 우주와 나를 생각할 시간을 즐겁게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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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12-1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현암사에서 나온 걸로 읽었는데...
나는 신의 입김에 의해 불리워지는 악기...
신의 소리가 아무런 여과없이 나를 통과하도록
나의 집착과 아상을 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무심 - 사람은 어떻게 자유로워지나
문화영 지음 / 수선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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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디서 난 책인지 우리 집 서가에 한 일년 얹혀 있었다. 그 동안 명상 서적, 요가나 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빌려다 읽었건만, 막상 손만 뻗으면 될 이 책에 눈길을 안 둔 것은 나도 모를 일이다.

오랫동안 집을 비워두고 돌아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읽을 책을 찾다가 이 책을 들고 욕탕으로 들어갔는데...

제목 <무심>에 비해선 격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사람은 어떻게 자유로워지나... 하는 부제를 달았는데, 이 글을 풀고있는 저자는 도무지 '한 생각' 얻었다고 볼 수도 없었고(수준 낮은 나의 판단이지만), 사람들에게 뭔가를 자꾸 가르치려 하고 있었다.

내가 읽었던 몇 권 안 되는 명상 서적들은 한결같이 느껴지는 것이 있다.
이 책을 내가 골라 읽은 것이 아니라, 이 책이 내게로 왔다는 느낌.
그리고, 그 글을 쓴 사람은 책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

감명 깊은 명상 서적들은 우주의 진리에 대해, 하느님의 목소리에 대해 우리에게 일깨움을 주는 것이었다.
물론 이 책도 여느 명상 서적들과 유사한 부분도 적지 않다.
그리고 명상이 별 것인가. 마음 비우는 것. 무심해 지는 것이 소중하단 것 깨달으면 명상이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아직도 욕심이 많구나... 이런 느낌이 계속 든다.
명상 관련 서적들을 줄줄이 엮어낸 노력을 크게 사 줄수도 있지만, 그런 것이 욕심일 수도 있다.
틱 낫한 스님도 책을 참 많이 만들지만, 그 분의 글에선 욕심이 한 점도 묻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글에선 왠지 세속의 인간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틱 낫한 스님도 플럼 빌리지란 명상 센터를 운영하시고, 이 글의 저자도 명상 센터를 운영한다.
그런데 왜 이 저자의 글에선 장사꾼 냄새를 맡게 되는 것일까?
틱 낫한 스님의 글에선 가진 것 없는 백성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반면,
왜 이 글의 명상은 가진 자들의 명상이란 느낌이 자꾸 드는 것인지...
좀 미안하긴 하지만, 이 글의 저자는 명상 센터보담은 글에서 드러낸대로 <카페 마담>이 더 어울릴 성 싶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작가의 글을 읽고 이런 글을 쓰기가 뭣하지만,
책을 읽은 느낌을 상세하게 적어서 이 책을 살지 말지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자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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