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소리 - 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120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죽비 소리.

내가 졸고 있을 때, 마음을 놓치고 있을 때, 스승님께서 등짝을 내려치시는 그 서늘한 소리를 기대했는데, 야금 야금 읽어가는 동안 간혹은 마음에 차는 글도 있고, 때로는 받아적고 싶은 글들도 만났지만, 제목 만큼의 서늘함을 얻지는 못한 듯하다.

유광익의 그릇,

영남 사람들이 이원익과 유성룡을 일컬어 이렇게 말했다.
“이원익은 속일 수는 있지만 차마 속이지 못하겠고,
유성룡은 속이고 싶어도 속일 수가 없다.”

날카로우면서, 부드러운 오묘한 맛이 있고,

이제현의 숙독,

지극히 오묘한 말은 오래되어야 맛을 알게 되고

낮고 가벼운 작품은 언뜻 보기에는 좋아 보인다.
배우는 사람은 책을 볼 때, 마땅히 되풀이해 읽고 깊이 생각하여 글쓴이의 뜻을 얻으려고 기약해야 한다.

 

책읽기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이덕무의 하루,

 

해는 묘시에 떠서 유시에 진다.

그 사이에 책을 읽지 않고 마음을 거두지 않으며,

스승과 벗을 마주하지도 않고, 하는 일도 없이 빈둥빈둥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며 시끄럽게 떠들고 망녕된 생각이나 하며,

비스듬히 기대 앉거나 벌렁 드러눕고, 바둑두고 장기 두거나 미친 놈처럼 술에 취하고,

한낮에 잠이나 퍼잔다면, 여유럽게 스스로 즐거워한다 할 만하다.

밤에 자다가 깨어 어제 내가 한 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의 일을 갖추지 못함이 마치 몸에 마비가 와 거동이 불편한 반신불수나 다름이 없다.

반나절을 허랑하게 보내는 것은 비유하자면 상란을 만나 결혼할 시기를 놓치는 것이나,

홍수나 가뭄으로 씨 뿌리고 거둘 때가 어긋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상란과 홍수나 가뭄이야 어찌 내 스스로 한 것이겠는가?


게으른 나를 깨우쳐 주며,

 

권근의 수졸,

 

졸한 것은 교묘한 것의 반대다.

임기응변의 교묘한 짓을 하는 자는 부끄러워하는 것이 없다.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사람의 크나큰 근심이다.

남들은 이로움을 즐겨하여 구하려 나아가도,

나는 부끄러움을 알아 그 의로움을 지키는 것이 ‘졸’이다.

남들은 속임수를 즐겨 교묘한 짓을 하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알아 그 참됨을 지키는 것 또한 ‘拙졸’이다.

졸이란 남들은 버려도 나는 취하는 것이다.

 

낮은 것의 미학을 가르친다.

 

옛글을 이렇게나마라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오롯이 정민 선생의 덕이라 할 만한데, 정민 선생의 설명이 좀 부연되는 듯한, 구차한 듯한 느낌이 든다는 건방진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죽비 소리 울리는 청정한 마음을 담기에는 하드 커버와 반들거리는 윤기나는 종이가 너무 과분하지 않은가... 하는 주제 밖의 생각이 이 책을 주전부리 삼는 한 달 동안 내내 든 것은 내 생각이 그저 빈 생각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망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을 건너는 지혜의 징검다리
구보 순료 / 일출 / 1997년 12월
평점 :
품절


일본의 구보 순료라는 승려가 경전에서 뽑아낸 68편의 이야기들을 간추린 책이다.
크게 9장으로 나누어서,

1. 인생을 되돌아보고 싶은 분께
2. 직장일에 지쳐있는 분께
3. 인간 관계로 괴로워하는 분께
4. 친구가 없어 쓸쓸한 분께
5. 배금주의에 혐오를 느끼는 분께
6. 자신의 능력 이상을 요구하는 사회가 부담스러운 분께
7. 솔직한 자신을 되찾고 싶은 분께
8. 위대한 인간이 되고 싶은 분께
9. 평온한 삶을 원하는 분께

이렇게 아홉 개의 큰 제목을 붙여 놓았다.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고 팍팍하기만 하고,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이기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는 선진국도 아닌 주제에 자살률 세계 3위를 차지한다는 대단한 순위를 가지고 있다. 왜 죽는가. 삶이 아무런 재미가 없으니 죽는다. 그러면, 재미로 사는가? 삶이 너무 힘들어 죽는다. 그럼, 힘들지 않은 삶도 있는가? 생각하기도 싫어 죽는다. 얼마나 생각해 보았기에...

젊은이들의 죽음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80년대의 사회적 고민에서 유발된 죽음들과는 달리, 어느 정도 풍족한 속에서 자기의 존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과 만나려는 노력이, 철학을 심어주는 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느낀다.

남의 눈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면 더없이 초라하고 왜소하게 보인다. 옥상에서 부감하는 느낌으로 오그라든 자신을 바라보면서 외로움을 길러 깊어가는 쓰라림을 이기지 못하는 젊음들에게... 비단 불교 뿐 아니라, 모든 생각하는 것을 권하는 책들은, 모든 자기를 찾기를 바라는 책들은, 주제가 종교든, 명상이든, 아니면 단순한 자기 계발이든... 경쟁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나의 본질>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센千>이 되어 허둥대고 버둥대는 가치없는 삶을 사는 행방불명 되었던 나의 이름은, 본래는 <치히로千尋>였음을 발견한다면 더 큰 악업을 남기는 행동을 섣불리 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은 별을 많이 주기는 어렵다. 번역의 문제인지는 몰라도, 문체가 부드럽지 못하다.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법정 스님의 '인연 이야기'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아홉 개의 챕터로 나누긴 했지만, 별로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이야기와 해설(마음을 풀어주는 자리) 간에도 <촌철살인>의 설명이랄까, 강의랄까 그런 것을 배우기 어렵다. 정민 선생의 <죽비 소리>의 해설이 주는 <확장된 텍스트 읽기>의 재미를 느끼게 했더라면 별 넷은 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로 이번 생에
우빤디따 지음 / 불광출판사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In this very life.

<열 개의 살인 군단>

육체적 쾌락이 그대의 첫째 군단,
불만이 그대의 둘째 군단이라 하지.
그리고 셋째는 배고픔과 목마름.
넷째는 갈망.
게으름과 무감각이 다섯째.
여섯째 군단은 공포.
일곱째는 의심.
자만과 배은망덕이 여덟째.
소득, 명성, 명예 그리고 속여 얻은 명성은 아홉째.
자화자찬하고 남을 깔보는 자는
열째 군단의 희생자.
이것이 그대의 군단. 마라.
암흑의 공습 세력.
그것을 정복치 못하는 자는
영웅이라 할 수 없지. 그러나 정복했다면
행복을 얻으리.

미얀마의 우빤디따 스님의 위빠사나 수행에 대한 가르침을 상세히 설명한 책이다. 우리의 안이비설신의(눈귀코입몸뜻)가 느끼는 색성향미촉법(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생각)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눈의 노예가 되고 내지는 마음의 미망에 휩싸여 어리석을 짓을 반복하며 '마라'의 노예가 되고 만다.

호시탐탐 나를 노리는 <마라>의 군단을 막는 방법은 계,정,혜를 지키는 법이다. 세속인이지만, 다섯 가지 계(살생하지 말 것, 훔치지 말 것, 바른 성생활, 거짓된 말 하지 말 것, 금주)를 지키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읽을 때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내 몸이 조금만 불만스럽고, 피로할 때라도 내 마음은 바로 마라의 포로가 되고 만다.

늘 깨어있기. 걸음을 걸을 때 천천히 걸으며 깨어 있고, 전화기가 울리거나 종소리를 들으면 문득 깨어있어야 하고, 밥숟가락을 들 때도, 이야기를 할 때도 나의 행동을 내가 깨어서 <보는> 것이 위빠사나 명상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영적 스승과 면담을 중시하는 데 선원이라면 그것도 가능할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나를 괴롭히는 사건, 사람 상황들에게 휩싸여 있다보면 마음의 평정을 잃기 쉬운 것이 나날의 현실이다. 매 순간, 깨어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 세상의 모든 것이 무상함을 깨닫는 것. 그래서 늘 공평하게 바라보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 작은 색감들에도 쉬이 물드는 내 어리석은 마음을 볼 때면 정화의 물살을 자주자주 퍼붓는 수밖에 없다.

십여년 전에 <상담원>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어느 강사분께서 맑은 비이커에 먹물을 조금 떨어뜨리셨다. 먹물은 금세 비이커 전체에 퍼져 물을 검게 흐렸다. 그 먹물 몇 방울을 원래의 맑은 물로 만드는 데는 말통들이 주전자 한 통을 다 퍼부어야 했다. 그 때 공부하던 선생님들이 깜짝 놀라 깨닫고 박수를 보낸 적이 있다.

잘못된 마음이 고요한 마음을 흔들어 버리기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 오염을 정화하기에는 그 오염원의 수천, 수만배의 맑은 물이 필요한 것이다. 오염된 육신과 정신을 가다듬기에 독서는 큰 도움을 준다. 비록 읽고 또 금세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중생이라 할 지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파리의 뼈
도널드 길버트 지음, 윤구용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파리에 웬 뼈? 차라리 오징어라면 몰라도...

미국인 스님이 재치있는 만화와 함께 진리를 찾는다는 것의 의미를 그린 책이다.

진리를 찾는 개는 늘 <진리를 찾는다는 행위 자체>에 집착하고, 간혹 <진리를 찾았다>고 착각하며, 주변에서 <진리>를 발견한 사람을 놓쳐버리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나>에 대해서 모르면서, 모른다는 사실 자체도 인식하지 못하고, 세계의 인식 주체가 <나>임을 놓치고 사는 우리의 일상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는 이 책은, 일단은 만화로 되어 있어 부담스럽지 않다. 그렇지만, 조금 어렵다. 번역이 잘못 된건지... 아무튼 잘 모르겠지만, 하긴 禪이란 것이 알고 모르는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요즘 명상에 관심을 가지면서 무엇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경우 또렷하게 생각이 맺히지 않고, 나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가 된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내 말로 정리하지 못하고, 그저 읽고 수긍하다보면 그것으로 만족스럽다.

알라딘에 리뷰를 올리면서, 이것 또한 집착이 아닌가... 하여 그만둘까도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으나, 간혹이라도 내가 남긴 기록들을 돌아 볼때 계속 적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 부족한 것도 나중에 찾을 수 있고, 아, 내가 저 때 저런 생각도 했구나, 하고 깨달을 수도 있으니까...

진리의 길을 잃고 헤매는 개를 보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공감을 하게 된다. '이 뼈는 맛있다.'는 것을 못 느끼고 헤매이기만 하는 존재를 보면서... '이 뼈가 맛있음'을 행복하게 누리며 살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을... 지금 이 순간이 경이로운 순간이며, 나의 지금의 위치가 정말 감사할 일임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탄트 메시지 - 그 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말로 모간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200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난 이 이야기가 픽션같다. 그리고, 정말 픽션이면 좋겠다. 그런데 아무래도 넌 픽션 같다. 정말 작가가 지어낸 멋진 명상 소설이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미국인들이 학살한 어메리컨 인디언들의 메시지와 호주 참사람 부족의 메시지는 참 많은 공통점을 준다. 그들은 잘난 체하는 인간들에게 하나도 잘난 것 없음을, 그리고 무탄트(돌연변이) 우리들이 얼마나 평화로운 땅에서 멀리 떨어져있는지를 알려 준다.

미국에서 멀쩡하게 의사를 하다가, 불현듯 호주에서 들어온 제의에 따라 호주로 날아간 지은이는 희한한 납치를 경험한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참사람 부족과 서너 달 간의 여행에 합류하고... 비통한 참사람 부족의 후손 단절 선언을 듣게 된다. 현실로 돌아와 행복해 하면서도 그는 다시 그 여행을 그리워한다.

그는 시험을 통과하는 유일한 길은 시험을 치르는 일이란 단순하면서도 인정하기 어려운 진리를 깨닫고 있다. 그래서 시련을 시련으로 여기지 않고, 신비한 체험들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 소유의 물건을 빼앗기고, 불살라지는 과정을 통해 분노할 뻔 했지만, 그는 <물건이나 자신이 가진 어떤 관념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야 말로 참다운 인간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첫 걸음>임을 배운다. 소중한 것은 물건이 아니라 '경험'임을...

여행 중에 견디기 힘든 파리떼의 공격에, 미용실에서 하듯이 온 몸을 내 맡기고 파리들의 애무를 즐긴다. 근는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것의 진정한 존재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무조건 나쁘다거나 힘들다고 평가한 것을 반성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해결책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말보다 텔레파시로 의사 소통이 가능하고, 외과 수술에서 주술적 요소가 담긴 특효약 치료를 경험하는 의사. 62인의 호주 원주민과 함께한 특별한 여행은 마치 티몬과 품바와 함께하는 라이언킹의 <심바>의 경험처럼 극적이고, 복잡한 구성을 이루는 픽션에 가깝다. 낯모르는 카페에서 그날 있지도 않던 점술가가 예언을 남긴 것이 그대로 이뤄지는 것도 그렇고, 그 상황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고... 신비로움과 우연의 일치 치고는 작위적인 듯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는 거울이 없음이 의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석 달간 변변한 세수 한 번 하지 못한 멋쟁이. 정비석의 산정무한에 <거울이 태어나면서 세상의 비극은 시작되었다>는 구절이 있는데, 정말 우리는 자기의 시선, 남의 시선에 얼마나 <나의 본질>을 빼앗기게 되는지... 내 마음의 흔들림 없는 평화로움을 거울에게 얼마나 많이 빼앗기고 마는지... 비단 백설공주의 못된 왕비뿐 아니라, 우리도 얼마나 거울을 보면서 "거울아, 거울아..."하며 살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 새삼 차도르 속에 감춰진 자유로움을 떠올릴 수도 있지 않은가.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란 레스토랑이 인기다. 넓은 매장과 다양한 할인, 그리고 맛으로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영업 전략은 유사한 티지아이나 베니건스에 비해 탁월한 면이 있다. 그래서 아웃백은 유난히도 많이 늘어난다. 그런데, 그 아웃백(호주의 '오지'라는 말)에 우리가 알지 못하던 <백호주의>의 피해자들이 지구의 멸망을 예언하며 비통해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는 전혀 모르고 살지 않았던가. 그 아웃백에서 원주민들이 즐기던 스테이크를 질겅거리며 우리는 우리가 최고의 문화인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지 않았나...

작가는 여행을 마치고 원주민들에게 <두 가슴>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속된 사람과 참 사람의 두 가슴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도 이런 책을 통해서 세례를 얻고 정화되어 두 가슴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올해 인문계 고교에서 실업계 고교로 전보 발령이 났을 때, 처음엔 좀 원망스러웠고, 다음엔 시간이 빨리 지나길 바랐다. 아직 실업계 근무도 해 보지 않고서 말이다. 그런데, 막상 일 주일을 아이들과 보내고 나니, 일반계 고교에 비해 훨씬 아이들이 싹싹하고 여유가 있다. 수업 시간에 똑똑한 척은 못하지만 참여도는 아주 높다. 내가 문학을 십육년 동안 가르치면서도 몰랐던 진리를 아이들이 헛소리를 통해서 들려준다. 예를 들면,

선생님 : 자, 그러면 (가)에 나온 신문 기사와 (나)의 시에 나온 언어의 차이는 뭐죠?
엽기학생 : 네, (나)의 언어는 그 때 그 때 달라~요.(컬투 버전, 이런 통찰력은 지식과는 다르다.)
선생님 : 아, 엄청 훌륭한 학생입니다. 그럼 시는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엽기학생 : 아, 시는 마음 속에 있는 거~죠.(정말 엽기적이지만, 난 이런 번득임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평화롭게 받아들이는 지혜,
그리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바꾸는 용기,
그것들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길... 간절히 빌다 보면, 다시 그는 <당신이 신에게 말하느라고 바쁘면, 신의 목소리를 들을 겨를이 없다>고 해서 나를 명상으로 되돌리곤 한다.

'인간이 삶이라는 거미줄을 짜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 역시 한 오라기의 거미줄에 불과하다. 인간이 거미줄에게 가하는 모든 행동은 반드시 그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고 한 시애틀 추장의 말처럼 우리는 겸손해 져야 하고,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뒤에야, 마지막 강물이 더럽혀진 뒤에야,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사람이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 크리족 인디언 예언자의 말처럼 인간은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고 나아질 비전은 없어 보인다.

그들의 안타까운 메시지를 조용히 듣고, 명상에 잠기자. 그리고 한 번에 한 사람을 돕자...

왜 무탄트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부른 노래가 단 한 사람 만이라도 행복하게 해 준다면, 그
것은 훌륭한 일이라는 것을.
단 한 사람만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는 한 번에 한 사람밖에는 도울 수 없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