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사자의 서
허일범 외 / 불교춘추사(불교영상회보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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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므라 아쯔노리(河邑厚德)와 하야시 유카리(林由香里)가 서양에 '티베트 사자의 서'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실제 티베트에는 갈 수 없었지만, 그 전통이 유구히 이어지는 라다크에서 '사자의 서'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잘 적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태어남과 죽음은 각각 인생이란 선분의 한 끝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내 생각이 많이 틀렸다고 느낀다. 태어남은 없던 선분이 갑자기 생겨난 것도 아니고, 죽음이 갑작스런 선분의 소멸도 아닌 것이다. 원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었고, 그리하여 내가 생긴 것이고, 내 육신이 수명이 다하면 다시 세계로 이어지는 것이 나의 존재인 것이다. 이것이 <空>이다.

공이란 것이 이렇게 뇌리에서는 그럴 듯하게 그려지다가도,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접하고 나면 막상 머릿속의 사념은 '말짱 황'이 되어 버리곤 한다.

티베트에 대한 책들을 읽다 보면, 1959년 중국의 티베트 침략의 야만성이 잘 드러난다.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도 달라이 라마는 중국인을 용서한다니... 대단한 일이기도 하다.

<죽음의 책>이란 '사자의 서'는 죽음 이후의 세계(발도)에 대한 이야기다 부처님께서는 연옥같은 거 없다고 하셨지만, 티베트 밀교에서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그림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난다.

사자의 머리맡에서 <육신의 죽음 이후에 계속 진행되는 일>을 지키며 49일 동안 사자의 서를 읽어 준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자란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덜 두려워하고 자연스럽게 <호스피스>에 익숙해지는 환경이 될 법도 하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을 관념적으로 이겨낸 슬기가 담긴 책이라 하겠다. 이 책은 오래 전에 지어진 책이라서 제본 상태가 조잡하다. 그래서 페이지를 넘기고 책을 꽉 잡고 있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요즘 나온 책들로 읽었다면 훨씬 부드럽게 읽혔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정말 별스러운 죽음에 대한 관념과 의식에 대해서... 예전엔 사람이 죽으면 우선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축제' 준비를 하고, 피붙이들이 다 모이면 <염>을 한다. 그리고 입관하여 삼일이나 오일이 지난 뒤(박통은 구일장을 지냈다, 죽고나서도 끈질긴 집착...) 선산으로 모셔 하관하고 토장을 한다. <好喪(호상)>의 경우 정말 동네 축제가 될 만도 하다.

그러나, 요즘의 <죽음>은 정말 번잡하기 그지없다. 오죽하면 황동규는 <풍장>을 하고 싶다고 했을까... 일단 죽고 나면 병원의 <영안실>을 잡기 위해 모든 인맥이 동원된다. 핵가족으로 생활 양태는 바뀌었는데도 관념적인 문화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사례라 할 것이다. 그래서 영안실을 잡고 나면, 영안실 옆의 식당에 음식을 주문해야 한다. 그리고 또 손님 접대할 젊은이들을 섭외해야하고... 장지를 잡아야 된다. 선산이 있더라도 거리가 멀면 상당한 부담이 되고, 공동묘지를 잡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그래서 노인네들이 성당에 다닌다는 이야기가 있다던가... 저녁이 되고, 문상객들이 오면 상주는 절을 받고, 곡을 하고, 술상을 차리게 한다. 이 일이 이틀 계속 되면 상주는 그야말로 탈진하게 된다. 마지막 발인날은 아침 일찍부터 선도차, 장지와 연락을 취해야 하고... 시간에 맞춰서 장지 도착해서 방위 잡고, 포크레인 진도 맞춰 매장하고... 떡이되어 돌아온다...

내가 죽었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장례지낼 걱정하고, 그 숱한 절차들을 거치고... 그 비싼 땅에 묻어 놓고, 아내와 자식 죽고 나면 공동묘지 인부들이나 간혹 와서 벌초할 그런 죽음을 맞고 싶지는 않다. 공병우 박사님이 그러 하셨듯이, 내 죽고 나면 이왕 풍장 해주지 못할 바에야, 그저 기증할 수 있는 거 있으면 모두 기증하고, 대학병원에 줄 수 있는 것 있으면 다 주고, 그러고 나중에 나중에 쓸모가 정히 없어질 무렵에는 고이 모아서 화장하고 이 작고 푸른 별 어딘가에 훌훌 뿌려버리면 내 죽은 육신이야 어차피 쓸모 없는 것을... 가벼이나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난 정말 간단하게 죽고 싶다. 내 죽고 나서 울어줄 사람이 없다고 아쉬워한다는 것 자체가 집착이고, 소유에 대한 불쾌한 욕망이 아닐는지... 우리 산하를 뒤덮은 고봉밥과 같은 반원형 무덤떼를 보면, 이천 년 불교 국가였던 나라치곤 희한하게 육신에 집착하는 우리를 발견하고, 죽은 자가 산 자의 땅을 그렇게 차지하고 앉은 걸 보면 소유욕의 삐뚤어진 발현을 보는 듯 불편하다. 하긴 요즘은 장례예식장과 납골당을 만든다고들 하긴 하지만, 그 또한 <장삿속>의 놀음에 지나지 않아 보여 죽음에 대해 얽매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아, 그렇네. 살아 있을 때, 그야말로 삶은 맘껏 누리고, 죽고 난 뒤에는 그야말로 가벼이 휘~~~이~~~ 떠나가면 그만이리. 티베트 사자의 서를 읽고 나니, 황동규의 <풍장1>이 새삼 반갑고, 동지를 만난 듯 읽힌다.

풍장 1

                                      황 동 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 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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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츄리 2005-03-06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후세계 또한 내가 살아있을적 만든 관념의 연장선일 뿐이라는게 머리에 쥐가 나게 만듭니다. 철들고 난 이후로 "다음 생에는 여자로 태어나고 싶냐? 남자로 태어나고 싶냐?" 고 물을 때 "다시는 안 태어난다"고 말하는데...... 아마 힘들겠네요.
풍장이라......

코마개 2005-03-08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랑에게 항상 말해두는데요 내가 죽으면 그냥 입던 옷 입혀서 가능하면 이불에 둘둘 말아(산사람이 보기 괴로우면 싸구려 관이라도 쓰던가) 죽은 그날로 가지고 나가서 산에 나무 밑에 뭍어버리라고...죽어서 거름이라도 보태주고 죽고싶다고. 화장하면 가스라도 쓰고 죽을 터이니 죽는 순간까지 소비하며 죽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집에 와서 누가 물어보거든 죽었다고 간단히 대답해 주라고.

글샘 2005-03-09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칸츄리님... 다시 안 태어나려면 죽음이 끝이라야 하는데, 만약 죽음이 끝이 아니면 어떡하죠? 가볍게 살아야겠습니다.
강쥐님... 현행 법상 신랑에게 사체유기죄를 뒤집어 씌우시고 싶진 않으시겠지요? 그러니깐 황동규도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으로 가라고 가르쳐 주잖아요. 무인도로 가야 한다고... 인간들은 그렇게 죽음에 대해 어수선한 존재라고요...
 
용서
텐진 갸초(달라이 라마).빅터 챈 지음, 류시화 옮김 / 오래된미래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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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표지의 강렬한 인상에 끌려서 내가 읽지도 않고 벌써 몇 권을 선물했던 책이다. 책날개에 적힌 글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기에... 그리고 책날개도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복수는 더 큰 불행을 낳는다. 따라서 더 넓은 시각에서 생각해야 한다.
복수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므로, 용서를 선택해야 한다.
용서는 과거를 잊어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과거의 고통이 양쪽 모두이 편협한 마음 때문에 일어났음을
자각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더 지혜로워지고 성장했음을 느낀다.

미움은 강인함이 아닌 나약함의 다른 모습이다.
미움을 통해 얻어진 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미움이나 분노를 통해서는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
용서를 통해, 개인적인 차원에서든 국가적, 국제적인 차원에서든
우리는 진정한 평화와 행복에 이르게 된다.
용서는 가장 큰 수행이다.

그렇지만 막상 나를 위해서는 사지 않고 있다가, 학교 도서관에 거의 새 책으로 오롯이 앉아있는 이 책을 만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얼른 빌려왔다. 주위에 얼씬거리는 학생들이 혹시나 집어들지도 몰라서...

토요일 반나절을 투자해서 촛불을 켜 놓고, 잠잠한 거실에서 혼자 뒹굴며 읽은 책의 소감은, 정말 감동적이다. 중국인 출신의 저자가 중국의 핍박으로 망명해 살고 있는 달라이 라마의 거처에서 관찰한 기록과 대화한 것들을 상당히 잘 서술하고 있다. 중간에 김용옥이 달라이 라마와 대화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도올의 <돌올한(높이 솟아 우뚝한)> 깡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직선적인 대화로 그려진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받는다는 달라이 라마의 '가해자 조차도 이해하고 용서하는' 수행의 계단은 머릿속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정말 이해한다고 하기는 어려울 정도다. 우리가 진정 일본을 용서할 수 있는가... 일본의 과거 행적은 미워하더라도, 일본인들을 미워하진 말자고 마음 먹긴 쉽다. 조영남이처럼 얼치기가 되어 <나는 친일파가 될래요.>하는 짓거리를 저지르는 것이 별 것 아닌 듯 하다가고, 간혹 <망언>이 불거지면, 가슴 한 구석에서 예전에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다 입이 찢어져 죽었다고 날조되었던 이승복 어린이 만큼이나 비장한 마음 속에서 <일본이 밉다>는 세뇌를 받았던 것이 나의 어린 시절 아니었던가.

달라이 라마에게 생명의 실체는 '인드라의 그물'과 같다. 고대 인도인들은 우주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닥의 실로 짜여진 거대한 그물로 생각했다. 그리고 각각의 그물눈에는 다이아몬드가 매달려 있다. 그 다이아몬드의 수많은 면들은 마치 무한한 숫자의 거울들처럼 나머지 모든 다이아몬드를 완벽하게 비춘다. 그리고 각각의 다이아몬드는 다른 모든 다이아몬드들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물의 어느 한쪽에서 일어난 파동은 아무리 미미한 것일지라도 나머지 그물 전체에 물결 효과를 일으킨다. 그것은 '나비 효과'와 같다.

이 책에서 저자 빅터 챈은 달라이 라마의 생각에서 불교의 핵심 두 가지를 짚어 내고 있다. 그 첫째가 '자비'이고, 둘째가 '상호 연관의 시각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인드라의 그물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떤 것도 자신만의 원인과 조건에 의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불교의 <공> 사상이다. 이 <공>을 깨닫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내가 이해하기론, 자비는 가슴에 있고, 공은 머리에 있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공+자비=행복>이라는 등식을 도출한다. 불교의 두 가지 원리를 체득해서 깨닫는다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거다. 누구나 행복해 질 수 있고, 그것이 마음 공부고, 수행이다.

그분은 "나의 수행은 내가 쓸모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고 말한다. 쓸모있는 나를 만들어 주는 수행. '사람과 행동을 구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나쁜 행동에는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행동을 한 사람을 적으로 몰면 안 된다.'고 하는 수행은 우리를 더 단순한 삶을 살도록 요구한다. 그리고 고요한 마음으로 나의 본질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것만이 세계의 본질에 가까이 가는 길임을...

예전에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학교장이 아주 폭력적인 언사를 일삼은 일이 있다. 모든 교사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그 말투를 생각하면 아직도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다. 그러나 그 때, 나는 그 사람이 가엾어 보였다. 왠지 주변에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강퍅한 성격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는 듯한... 학년 회식에 지나가는 말로 참석하시겠냐고 물어 보면, 불쑥 와서 두 시간을 혼자 큰 소리로 떠들던 그 사람을... 어떤 사람들은 원수 보듯이 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불쌍하다 했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만, 가엾은 사람. 적어도 그런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겠다... 그리고,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하자. 결국 쓸쓸하게 퇴임해 버리던 그 날을 생각하면 그렇게 아둥바둥 잘난 체하며 살 것 뭐 있나 싶다.

적극적인 명상으로 <나를 쓸모있는 삶의 주인>이 되도록 깨어있자. <공+자비=행복>의 공식을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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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 지음, 우계숙 옮김 / 정신세계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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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아 마운틴 드리머의 ‘초대’는 명상을 통해 일상의 고통들을 이겨내는 이야기다.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고, 평범한 아니 오히려 재수없게도 나쁜 일들이 많이 일어난 여성이다. 두 번이나 이혼했고, 친하던 친구가 큰 병에 걸린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런 경험들이 가져다 준 고통을 통해서 명상의 힘을 깨닫게 된 기록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전혀 어렵지 않다. 이론적이거나 추상적인 이야기는 없고 오로지 자기의 경험담 속에서 우러난 진심의 경험이 담담한 어조로 적혀 있다. <초대>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는 명상의 초대라기보다는 <고통>, <슬픔>, <우울함>에 시달린 사람들에 대한 초대장이라고 할 만하다.


특히, 맞벌이 가정의 경우 육아의 고통에 휩싸인 채, 나날을 우울함으로 보내고 있을 수많은 여성들에게, 작가는 단 한마디, <살아라!!!>를 외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라 볼 수 있다. 삶에서 오직 필요한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계속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다음과 같은 말은, 직장일과 육아와 가사 노동의 삼중고에 시달리면서, 빨래통에는 빨래가 가득 넘치고, 싱크대에는 설거지를 기다리고 있는 접시들이 가득하며, 현관에는 신발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구 얽힌 신발들이 서로를 짓밟고 있는 것을 견디기 힘든 눈으로 바라보는 한 여인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슈퍼 우먼이 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

우선 소중한 것과 긴급한 것부터 한다.

덜 소중하고 덜 긴급한 것은 시간이 나면 천천히 한다.

그리고 별로 소중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것은 과감히 생략해 버린다.”


그런데, 어떤 ‘착한 여자’인가는 소중하고 긴급한 육아를 먼저 하고, 덜 소중하고 덜 긴급한 가사 노동들을 시간이 나면 천천히 하며, 자기를 위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무엇을 배우거나 문화 생활을 누리거나 느긋하게 텔레비전을 즐기는 일을 과감히 생략해 버리지나 않을는지... 나는 내심 걱정될 따름이다.


이 책을 보면서 이 땅의 여성들이 사회와 가정과 직장의 트라이앵글에서 얼마나 힘든 자리에 놓여있는지를 새삼 생각한다. 오늘은 집에 가서 아내에게 잘 해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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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3-03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오늘만 잘해주지 마시고 매일매일 잘해 주세요! 물론 그러시겠지만...
저도 이책 읽어 볼래요!

글샘 2005-03-03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매일 잘해주려고 노력할게요. ^^
 
달마 고양이
데이비드 루리 지음, 재연 옮김, 테드 블랙올 그림 / 문학동네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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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루리가 연재한 세 컷짜리 만화를 재연스님께서 해설을 붙이셨다.

그림은 귀엽고, 캐릭터는 흥미롭고, 진리는 명쾌하다.

어찌 저리도 닮았을꼬,
소인과 저울대!
눈꼽만한 것으로 올라왔다 내려갔다...

옛 인도의 경구라고 한다.

인식주체의 의지와 주관에 따라 지각 대상의 가치가 달라지는 <일체유심조>의 뜻을 재미있게 그린 책이다. 재연스님의 덧붙임글보다, 데이비드 루리의 만화가 찌르는 정곡은 따끔하다못해 숨을 멎게 할 때도 있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자꾸 쳐다보게 되는 어리석은 우리에게, 목불(木佛)따위 땔감으로 때어버려도 그만이지 않느냐는 간명한 가르침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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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3-02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새 학교의 도서관에서 읽으셨나요? 새 학교는 어떠셨는지 궁금하여요. ^^

글샘 2005-03-02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부산공고 도서관에 책이 많더군요. 공학 관련 서적도 많지만, 읽을만한 책이 제법 있더라고요. 한 해는 무사히 버틸 수 있습니다. ^^ 일반계 있다가 실업계로 오니 생각이 많네요. 시간도 많고. 그래서 교사 일기를 주절거리고 적어볼까 합니다. 제가 일기 한 편을 적고 나서, 해콩샘의 리플을 발견했습니다. 새 학교는 아주 좋았습니다. ^^
 
이른 아침 나를 기억하라
틱낫한 지음, 서보경 옮김 / 지혜의나무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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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깨어나자 마자, 나를 기억해야한다. 아침형 인간이라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신문을 들고 화장실로 가서 세상의 잡다한 번사를 읽어대고, 몇 개의 화분에 물을 뿌린 후,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샤워하고 아침먹고 출근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아침에 깨어나자 마자 나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더군다나 나처럼 지각의 마지노선까지 한쪽눈을 찡그려가면서 시계를 바라보고 '오분 더'를 생각하다가 '후다닥 출근'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침에 깨어나자 마자 나를 기억할 방도는 없다. 깨어나자 마자 '늦었다!'는 생각에 일분 일초를 아껴 이닦고 세수하고 면도하는 매일 해야하는 몇 가지 잡무에 시간을 촉박하게 쓰고 마는 것이다.

<오늘>이라는 <선물>을, 그 귀하고 고마운 선물을 생각하면 한없이 게으름을 부릴 순 없는데도 말이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다들 쿨쿨 휴일의 단잠을 만끽할 시간에도 어린이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선물의 행방을 찾아 좁은 집안을 여행하지 않던가. 그러다 선물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 그 의기양양한 모습이란... 매일 아침,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초롱한 눈빛으로 깨어나, 나를 기억해야 한다. 나의 존재의 가치를 행복하게 온 몸으로 느끼고, 짧은 시간이나마 대지의 순환에 감사하고, 화산재에 파묻히지 않은 나의 존재를 감사하고,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 혈관을 줄기차게 달리는 피톨들, 들숨과 날숨을 편안하게 인도하는 신의 숨결을 행복하게 느끼는 시간이 필요하다.

절에서는 종을 친다. 그 종 소리를 들으면서, 문득 깨달아야 한다. 나는 절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나를 일깨우는 깨우침의 소리이고, 평화를 널리 퍼뜨리는 소리라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더랬다. 성당이나 예배당에도 종이 있고, 가끔 그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요즘의 번잡한 속세엔 종소리를 듣기 어렵지만, 나같은 선생에게는 하루에도 수십번의 차임벨이 있지 않은가. '나를 깨닫게 하는' 수십 번의 종소리가. 그리고 전화기에서 울리는 벨소리...

나는 기독교인들이 밥먹기 전에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을 우습게 바라본 적이 있다. 밥먹는 시간까지도 깨어있어야 하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전화 받기 전 세 번의 호흡, 밥먹기 전 세 번의 호흡, 아, 이것이 <참을 인자 세 번 쓰면 살인을 면한다>는 그 진리였구나... 세 호흡만 숨죽이고 세상을 보기, 나를 깨닫기... 수업 종소리를 듣고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황소와 같은 눈을 하는 교사들을 나는 보았다. 세 번의 호흡으로 도살장 신세를 면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어찌 <경이로운 순간>이 아닐 수 있으랴.

우리가 쫓아가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우리는 자신으로 돌아가서 숨쉬기와 미소짓기와 우리 자신과 아름다운 환경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구름을 따르다,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음을 깨달은 강물처럼...

이 책은 한 주제로 일 분 정도의 읽을 거리를 마련해 놓았기 때문에 화장실에서나 목욕탕에 몸담그고 있을 때나 쉬는 시간이나 라면끓일 물 올려놓은 시간에도 간단히 읽을 수 있는 점이 북한말로 <웃점>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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