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김성 옮김 / 책만드는집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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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글을 읽고 있으면, 수천 년 전에 인생의 덧없음과 자연에 동화할 것을 노래한 소동파의 적벽부도 떠오르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도 떠오른다.

케이티엑스가 시속 삼백킬로로 달리고, 하늘의 비행기는 시속 천킬로로 나는데, 우리는 시속 사, 오 킬로의 속도로 걸어다니면서도 쉴 틈을 못 낸다. 이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벌써 백오십 년 전에 소로는 느리게 살 것을 권하고 있다.

우리가 매달리는 부와 명예와 출세라는 것은 행복과 멀리 있는 것인데, 우리는 적게 먹고 천천히 사는 '웰빙'의 길을 버리고, 경쟁과 스트레스의 '배드빙' 내지 '워스트빙'의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진리는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통하는 것인지, 소로의 길을 따라 풀냄새를 듣고(聞香), 선득하게 발목을 스치는  풀잎 이슬을 걷어 차며 폐부 가득 신선한 아침 공기를 들이키며, 하늘 가득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는 아침을 갖는 것만으로도, 삶은 풍부해 지는 묘미를 가진 것이어늘, 작은 머리의 욕심을 억제치 못하여 이른 아침에 일어나기를 그토록 힘들어하고, 밤 늦도록 헛된 일에 머리를 썩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오랜만에 소로의 책을 읽으며 풀밭을 거닐 시간을 얻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유럽여행까지 갈 수 있는 행운을 얻었고, 거기에 소로의 글을 읽으며 선진국 사람들의 훈향이 담긴 공원들을 달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여행이 끝날 즈음에는 발이 시큰거리기도 했지만, 조용히 걷는 것 만으로도 느리게 사는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평범함 속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나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 성공한 삶을 사는 길이리라.

또 한가지 기쁨. 이 책의 단 한 명의 리뷰를 작성한 분이 여우님이라니... 오후 네 시에 나를 기다린다던 밀밭이 떠오르고, 약속한 적 없지만 여기 와서 기다리신 여우님이 정말 반갑다. 미리 약속한 만남도 아닌데 문득 만나게 되는 인연이 있다. 그럴 때면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이 떠오른다.

What is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   맑은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면 장님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나!

그리고 그의 '한 사람의 인생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어떠한 전망을 제시하는지는 누구도 알아맞힐 수 없다.'는 글을 읽었을 때, 나의 일이 단순한 업무가 아닌 '사업'임을 깨닫게 되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하는 인기 있는 인생이란 수많은 인생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왜 다른 삶의 방식을 희생하면서 하나의 삶만을 과대평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나는 예전에 석회석 세 덩어리를 책상 위에 놓아둔 적이 있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가구의 먼지는 전혀 쓸어내지 못한 주제에 이 돌멩이에 쌓인 먼지는 매일 쓸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내 두려워져 석회석 덩어리들을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매일매일 무엇을 버리고 사는가. 쓸데 없는 것들을 모으는 데 집착하고 있지 않을까.

가장 기품있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만족을 아는 것이다.

그들은 시장 가치를 갖기엔 너무 순수한 것이다. 이것은 호수를 두고 한 말이지만,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십년 전에 서태지가 교실이데아에서 외친 '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니 옆에 앉아 있는 그애보다 더.'의 상대로 우리 애들을 보아선 안된다 안된다 하면서 자꾸 눈이 삐뚤어져가는 나를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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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야생초 편지 2
황대권 지음 / 도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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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속에 핀다고 실망하지 않고, 건물 구석진 먼지 틈새에 뿌리 내리는 잡초, 잡스런 풀들, 예쁜 꽃 피우지 못해 이름도 얻지 못한 잡초들, 그 잡초들의 이야기.

지구상에 15만 가지의 풀 중 이름이 있는 것은 3천 종이란다. 14만 칠천 종의 잡초에 대한 보고서이다. 그런데 서울대 나온 농업 학자가 그저 환경에 관심을 갖는다면 당연한 학술 서적이니 우리가 읽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벌써 리뷰를 쓴 사람만도 이백명이 넘는 것을 보면, 그가 농학자가 아닌 것이 오히려 다행일 수 있겠다. 아차. 상업적 책읽기, 느낌표 도서였단 걸 간과해선 안 되겠다.

난 재생지 책이 참 좋다. 우선 가벼워 좋고, 눈이 피로하지 않아서 좋다. 난 주로 형광등, 스탠드 아래서 글을 읽는 시간이 많아서 번득거리는 코팅지는 눈에 아주 해롭다.

인생이란 그렇게 웃기는 것이다. 그가 서울 농대를 졸업해서, 그 사회과학이 풍미하던 80년대 중반에 무사히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 와서 어디 적당한 대학의 사회과학대학에 전임 자리라도 땄다가 해직 교수가 되고 했더라면, 지금쯤 상당한 유명인사가 될 수도 있었을 게다. 아마 환경운동가가 되진 못했을 지도 모르고. 그러나 간첩으로 살아온 십여년은 그를 농부로 만들어 버렸다. 땅에 대한, 생명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하는 옥살이.

서준식의 옥중 서한을 읽고 있는데, 솔직히 지겹다. 아직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많은 글을 적고, 상당부분은 원칙적인 이야기들을 적고 있으니, 마음은 아프지만, 생경하게 느껴지는 편지들이 많다. 요즘 생각 같아선, 지금처럼 진도가 안 나가면 조만간 포기할 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같은 옥중 서한이지만, 황대권의 글은 훨씬 원숙미를 느낄 수 있다. 세상을 벗어난 자연이 그 속에 있다.

팔십년대 말에 나온 노래 중에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하는 노래가 있었다. 감옥 속에 핀다고 한탄하지 말고 꽃을 피우라던 노래. 그 당시 대학 다니던 우리에겐 감옥은 하나의 닫힌 미래였다.

우리가 이름도 모르는 숱한 풀들, 관목과 교목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곧 생명에 대한 성찰에서 우러난 진심이었다. 늘 만나는 잡풀들, 그 속에 내가 있고, 내 삶이 있고, 내 세포와 혈액들이 속해있는 이 우주가 담겨 있다.

늘 '우리꽃 백가지, 우리 나무 백가지, 도감들'을 읽으면서 알고 싶은 건 많지만, 정말 이 분야는 쉽게 도전할 염이 생기지 않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건, 괭이밥. 자주 보던 건데 몰라보던 녀석이어서 반가웠고, 지금도 먹고 싶은 마이산에서 먹었던 비름나물. 데쳐서 된장에 무쳐 먹으면 환상적인 맛이다.

이론으로만 환경 사랑하는 잡스런 인종들에 비하면, 그의 청순함은 오히려 눈물겹다. 감옥에 갇힌 '다른 생각'이 부른 절창. 갇혀있기에 누릴 수 있었던 호사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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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
류시화 지음 / 김영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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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학교 도서실에서 빌려 오면서 '왜 이렇게 두꺼운 책으로 편집했을까, 2-3권으로 충분히 분책할 수 있는 책인데...'하는 생각이,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 이해가 되었다.

이 책은 어메리칸 인디언들의 죽음과 삶에 대한 웅변이자, 그들 삶의 경전이기 때문이다. 경전을 분책한 경우는 없지 않은가.

물론 그들은 특별한 종교도 문자도 갖지 않았지만, 이 책에 기록된 그들의 영혼의 울림은 어떤 종교 경전도 갖지 못한 다원성과 상대성이 내포되어 있다. 900쪽을 넘는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주제를 논하고 있지만, 미타쿠예 오야신,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대로 '하나'의 영혼인 것이다.

불교의 진리를 찾으러 온 벽안의 스님에게, 지하철에서 '사탄아 물러가라'를 외치는 천민 자본주의 국가의 폐쇄적 이기주의 종교관을 가진 우리 종교인들이 떠올랐다. - 우리는 얼마나 미개한가.

딸년과도 같은 여고생의 몸을 돈을 주고 샀던 가장이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던 사마리아란 영화가 생각났다. - 우리는 얼마나 야만인인가.

우리는 약소국이었다. 그래서 남을 짓밟아본 일이 별로 없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자위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핏줄에 평화란 없었다. 베트남전에서 용감한 따이한으로, 동남아 해외연수생 노동자들에게는 공포의 압제자로, 이라크 파병까지 우리의 핏줄에 서린 거지 근성을 보았다. - 우리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새로 열리는 시대는 폭력, 전쟁, 강철이 지배하는 남성성의 시대를 넘어서, 평화, 사랑, 흙이 포용하는 여성성의 시대가  될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의 중심엔 늘 '사람'이 있었다. 6000만 마리의 들소가 있었음에도 늘 허락을 받고 잡던 자연 속의 사람들.

새로 펼쳐지는 시대는 웰빙의 열풍이 불 것임을 그들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들의 정기적인 단식과 '땀천막'을 읽으면 현대인의 무식한 피트니스와 웰빙 열풍이 얼마나 하잘것 없는 시스템인지를 본다.

그 들소들을 멸종에 가까이 말살시키고, 전-미국인, 전-캐나다인들을 말살한 얼굴 흰 사람들의 문명이 오히려 야만으로 평가될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다.

다양한 주제로 행한 연설들의 모음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언어는 날줄이 되고 씨줄이 되어 장엄한 미래를 여는 심포니가 되어 우리의 영혼을 울린다.

이 책은 빌려 읽어서는 안되는 책이었다.

그들의 빛나는 단편들을 아래 기록한다.

= = = = = = = = = = = = = = = = = = = = = =

미타쿠예 오야신 :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안다. 모든 종교적인 열망, 모든 진실한 예배는 똑같이 하나의 근원과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또 안다. 학식있는 자의 신, 어린아이의 신, 문명화된 사람의 신, 원시적인 사람의 신이 결국은 모두가 같은 것이라고. 신을 결코 생김새가 어떻게 다른가를 놓고 우리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신은 이 대지 위에서 올바르게 살고 겸허하게 행동하는 모든 이들을 자신의 품안에 받아들인다.

젊었을 때 그대의 혀를 잘 지키라. 그러면 늙어서 그대의 부족에게 도움이 될 한 가지 생각이 그대 안에서 익어갈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부족 회의를 열 때 말하는 지팡이를 사용한다. … 누구든 말하는 지팡이를 잡은 사람은 그의 손 안에 신성한 말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지팡이를 손에 잡고 있는 동안은 오직 그 만이 말을 할 수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침묵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 그에게 진실되고 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기 이해 말하는 지팡이에 독수리 깃털을 매달기도 했다. 지팡이 끝에 매단 토끼털은 그가 하는 말이 그의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하며 또한 부드럽고 따듯한 말이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또한 지팡이에 매단 파란색 돌은 위대한 정령이 그가 하는 말뿐 아니라 그의 가슴이 하려고 하는 말을 다 듣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무지개 빛을 지니고 있으며 수시로 색깔이 달라지는 조개는 세상이 날마다, 계절마다, 해마다 변화하며 사람들과 상황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다. … 가슴속에 있는 것을 말하는 순간 그가 자신의 손에 우주의 모든 힘을 쥐고 있음을 말해 주었다.

그대의 가슴 속에 죽음이 들어올 수 없는 삶을 살라. 다른 사람의 종교에 대해 논쟁하지 말고, 그들의 시각을 존중하라. 그리고 그들 역시 그대의 시각을 존중하게 하라. 그대의 삶을 사랑하고 그 삶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고, 그대의 삶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만들라. 오래 살되, 다른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에 목적을 두라. 이 세상을 떠나는 위대한 이별의 순간을 위해 고귀한 죽음의 노래를 준비하라. 낯선 사람일지라도 외딴 곳에서 누군가와 마주치면 한두 마디 인사를 나누라.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누구에게도 비굴하게 굴지 말라. 자리에서 일어나면 아침 햇빛에 감사하라. 당신이 가진 생명과 힘에 대해. 당신이 먹는 음식, 삶의 즐거움들에 대해 감사하라. 만일 당신이 감사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 잘못이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마음 속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즉한 사람처럼 되지 말라. 슬피 울면서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그 대신 그대의 죽음의 노래를 부르라.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인디언 전사처럼 죽음을 맞이 하라.

그들 사회에는 거짓, 허위, 배신, 탐욕, 시기, 욕설을 의미하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풀잎들이 햇빛 속에 고요히 있듯이 대지는 내게 침묵을 가르쳐 주네. 오래된 돌들이 기억으로 고통받듯이, 대지는 내게 고통을 가르쳐 주네. 꽃들이 처음부터 겸허하게 피어나듯이 대지는 내게 겸허함을 가르쳐 주네. 어미가 어린 것들을 안전하게 돌보듯이 대지는 내게 보살핌을 가르쳐 주네. 나무가 홀로 서 있듯이 대지는 내게 용기를 가르쳐 주네.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들처럼 대지는 내게 한계를 가르쳐 주고, 하늘을 쏘는 독수리처럼 대지는 내게 자유를 가르쳐 주네. 가을이면 떨어져 생명을 마감하는 잎사귀들처럼 대지는 내게 떠남을 가르쳐 주고, 봄이면 다시 싹을 틔우는 씨앗처럼 대지는 내게 부활을 가르쳐 주네. 눈이 녹으면서 자신을 버리듯이 대지는 내게 자신을 버리는 법을 가르쳐 주네. 마름 평원이 비에 젖듯이, 대지는 내게 친절을 기억하는 법을 가르쳐 주네.

<나바호족 인디언들의 결혼식사>
이제 두 사람은 하나의 불을 피울 것이다. 이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사랑과 이해, 지혜를 상징하는 하나의 불꽃을 갖게 될 것이다. 이 불이 두 사람에게 따뜻함과  음식과 행복을 가져다 주리라. 이 새로운 불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새로운 삶과 새로운 가정을. 이 불은 언제가지나 타올라야 한다. 두사람은 언제까지나 함께 있으리라. 이제 두 사람은 새로운 삶을 위한 불을 밝혔다. 이 불은 꺼지지 않으리라. 늙음이 그대들을 갈라 놓을때까지.

<아파치족 인디언 식사>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모든 만물 속에서 움직이는 위대한 정령을 통해 인간의 의식을 바꾸는 데는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 사람은 또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그 생각이 만물을 통해 드러난 때까지. 전체 새들의 무리가 방향을 바꾸는 것은 똑같은 생각, 똑같은 힘 때문이다. 새떼 전체가 한 가지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네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네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눠야만 한다.

위대한 정령 와칸 탕카. 대지 전체가 살아있는 경전.

네가 삶의 길을 여행할 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말라. 누구도 슬프게 하지 말라. 할수 있는 한 언제나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라. … 조용한 삶을 살고, 모두에게 친절하라.

존중한다는 것은 하나의 존재 방식이다.

대지와 대지 위에 사는 모든 생명들을 존경심을 갖고 대하라. 위대한 정령으로부터 멀어지지 말라. 동료 인간들을 존중하라. 모든 인류의 이익을 위해 함께 일하라. 필요한 곳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라. 몸과 마음을 잘 돌보라. 보다 좋은 일에 자신의 노력을 쏟으라. 언제나 진실되고 정직하라.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라.

교사들 중 많은 이들이 소위 교육받은 바보들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삶을 사랑하라 가르치고, 우리가 자연의 일부분임을 가르친다. 하지만 교실에 앉아 그것들을 배울 때, 아이들은 자연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 대신 온갖 것들을 암기할 뿐이다. 학교가 아이들의 창조성, 꿈꾸는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다.

미국 사회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 속에 큰 약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나라는 폭력을 기초로 세워져 있다. 폭력을 숭배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폭력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사랑으로 폭력과 맞서는 것 역시 무의미한 파괴로 끝이 난다. 미국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라. 미국은 전쟁에서 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전쟁에 개입할 때마다 미국 정부는 언제나 과잉 살상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며,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가루로 만둘어 버린다. 항의를 해도 수그러드는 법이 없다. 베트남 전쟁을 보라. 미국은 2차 세계 대전때 사용한 것보다 더 많은 폭탄을 떨어뜨렸다. 과잉 살상의 대표적인 예다.

환경은 이쪽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다. 환경은 저쪽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 자신이 곧 환경이다.

지혜라는 것은 그것을 찾는 것을 중단하고 신이 그에게 바라는 진정한 삶은 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찾아온다는 것.

그가 그 자리에 있든 없든, 절대로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말라. 다른 사람이 가진 종교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라.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으라. 설령 그가 하는 말이 무가치하게 느껴질지라도, 마음을 담아서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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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19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인용하신 부분.. 퍼갑니다. 실은 사보려고해요. 두꺼운 책 겁나지만... 글샘님의 리뷰에 용기를 얻어 시도해보려구요. ^^

비로그인 2005-10-16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 갈께용~~~
 
2막
스테판 M. 폴란 지음, 조영희 옮김 / 명진출판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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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사는 매일매일이 2막이다.

우리가 태어난 것 자체가 서막이었고, 하루하루가 새로운 인생인다.

어제 내게 있었던 것으로 여기던 머리카락과 세포들은 오늘 아침에 세면대를 향해서 쿨컥쿨컥 소리를 내며 죽어갔으니, 내게 있던 같은 것이 아닌 새 것이 나를 대신해 간다. 먼 훗날 내 얼굴에 늘어난 주름과 희어진 머리칼을 헤아리며 제2막을 준비한다면 이미 그 새로운 막은 내 인생에 큰 충격일 것이다.

그러나,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고 싶을 때가 있고, 그런 걸 적고 싶을 때가 있다.

피아노를 정말 그럴 듯하게 연주하고 싶고, 플룻도 잘 불고 싶다. 그리고 외국에 나가서 맘껏 걷고 싶다. 한비야처럼. 그들의 삶은 누추할수록 안심될지도 모른다. 난 별 달린 호텔에서 자는 게 너무 아깝다. 전에 경주 힐튼 호텔의 물 500cc가 4000원에 부가세 400원 붙은 걸 보고 4400원이면 가난한 사람들 수십명이 끼니를 때울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많이 걷고 싶고, 자유를 느껴 보고 싶다. 물론 불안하겠지만, 돌아오고 싶겠지만, 열사의 사막 비슷한 데라도 가고 싶다.

가족이 가로막을지도 모르고, 돈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창고등학교 직업 선택의 십계명에 나온대로 가족과 아내가 가로막는 길은, 의심하지 말고 가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서슴지말고 가라.는 말을 떠올리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도 싶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아침에 새벽반 영어회화반에 다니고 싶다. 수영장도 다니고 싶고. 그리고 다섯 시에 퇴근해서 가끔은 커피 마시면서 지는 해도 보고 싶고, 아들과 자전거도 타고 싶다.

매일매일 새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매일매일 피곤에 찌든 수동적이고 즉자적인 내 형이상학적 피로는 오늘도 2막을 읽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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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절은 정말 좋다.  " ... 열린 문을 통과했을 때 나타나는 것은 막다른 길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막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문을 통과하든 반드시 다른 문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안심해도 좋다.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실패는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있을 때만 찾아온다. 우리가 인생을 돌이켜볼 때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은 활짝 열려 있었는데도 들어가 보지 못한 문이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앞두고 "내 인생에서 기회가 좀더 적어야 했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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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밭에 무얼 심지?
최영순 지음 / 해토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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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주제였다. 선과 마음 공부. 그걸 쉽게 만화로 그릴 수 있는 천재가 나올 수 있으려나.. 하는 의아한 기대. 그러나 결론은, 아직은 실망. 이었다.

마음 공부에 있어서, 늘 깨어서 나를 살피고 나의 욕심 주머니를 비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으랴마는, 책을 만날때마다 더 좋은 책을 만나고 싶은 욕심은 줄이기 어렵다. 그게 마음 공부 덜 된 내 모습이고, 결국은 아직 어리석음이다.

꽃은 반쯤 피었을 때 아름답고, 술은 반쯤 취했을 때 즐겁다. 난 늘 술을 마시면서도 반쯤 취했을 때의 즐거움을 취하지 못했던 걸 이제야 반성한다.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고 나서의 그 막막한 자괴감의 원인이 무엇이었던가를 이제야 그 무명을 알게 된 거다. 알고 있음을 넘어서는 깨달음의 순간, 나는 기쁘다.

술집여자와 스님의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수도를 하면서도 늘 아름다운 여인, 쾌락... 에 마음을 빼앗겼던 스님보다도, 환락의 술집에서도 늘 수도와 진리를 우러렀던 여인. 결국 중요한 건 어디 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는가이다.

석공 작품의 눈과 코. 석공은 돌을 다듬으면서 코는 넉넉하고 눈은 조그맣게 시작한다. 코는 줄여가야 하고 눈은 키워가야 하므로. 코를 늘리거나 눈을 줄일 수 없는 일이므로. 사람을 재단해서는 안되는 일도 마찬가지리라. 사람의 재질을 잘 살펴 키울 부분과 줄일 부분을 미리 생각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 2월이다. 새로 만날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올해는 좀 넉넉하게 품어줘야지 하고 늘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상처만 주진 않았던지... 올해는... 해 본다. 다시 한 번.

큰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나의 약한 마음과, 나의 잡다한 욕망과, 나의 추잡한 인간사를 늘 경계해야할 경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소의 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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