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낫한 스님의 아! 붓다
틱낫한 지음, 진현종 옮김 / 반디미디어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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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불교의 개념들을 틱 낫한 스님 특유의 쉬운 설명으로 비유를 들어 가면서 풀이하고 있는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선뜻 잡았을 때는 부처의 전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읽어가면서, 깨달은 자로서의 붓다, 그 깨달음의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는 책임을 알게 되었지만, 결론은 만족이다. 대만족이라고 쓰려고 했지만, 그냥 만족이라 적은 것은, 내가 이 책의 개념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내가 아는 개념은 극히 적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수준은, 우리가 외국어를 공부할 때, 초급에서 재미를 붙이지만, 중급의 수준을 갖추기 어렵듯이, 불교에서도 초급을 흥미롭게 적은 책은 많지만, 중급을 그럴싸하게 적은 책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보면, 누가 커리큘럼을 짜 주지 않아도, 스스로 책들이 척척 내게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 늘 경탄할 뿐이다.

틱 낫한 스님의 책들과 몇 권의 불교 서적에서 만났던 개념 중, 가장 어렵다고 느꼈던 것이 <팔정도>였는데, 이 책에서 스님의 육성으로 팔정도에 대한 설명을 차근차근 듣는 것은, 마치 상쾌한 가을 아침,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느끼는 쾌감과도 비견할만한 것이었다.

이 책을 읽고 얼마나 불교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한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요즘은 이런 책들을 읽을수록 개념이 명확히 서지 않는다. 다만, 읽는 중간중간 내가 맑아지는 느낌이고, 나를 비워가는 과정임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즐거울 따름이다. 무엇을 알기 위해 메모하며 읽는 것이 아닌, 틈틈이 몇 장을 읽고 곰곰 되씹어보고, 여행하는 버스 안에서 졸다가 몇 페이지를 넘기는 읽기의 과정에서 승원에서 스님들이 정진과 면학의 자세로 배우는 이론과는 자세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내 나름의 즐거움을 찾자니 그런 것이었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이루어진다. 제1부는 사성제. 제2부는 8정도, 여기까지가 재미있게 읽힌다. 제3부는 기타 불교 교리가 상세히 적혀 있는데, 좀 공부같아서 나처럼 사이비 독자는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을 주로 읽는다. 제대로 읽으려면, 필기를 준비하고 면밀하게 읽어야 하니 말이다. 제4부에는 부처님 말씀이 세 가지 적혀 있다.

8정도의 <정어> 편에 적힌 아래 구절은 선생인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아닌가 하여 적어 본다.

무심코 뱉은 말과 다른 이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일로 야기되는 고통을 알고 있기에 나는 다른 이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고 그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고자 사랑이 깃든 말을 하고 경청하는 자세를 기를 것을 서원합니다. 말이 행복이나 고통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는 자신감과 기쁨 그리고 희망을 불어넣은 말로 정직하게 말하리라 결심합니다. 그 진위를 확실하게 알고 있지 못한 소문을 퍼뜨리지 않을 것이며 확신이 가지 않는 일을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않겠습니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젯밤에도 나는 잘난체하는 어떤 사람의 말을 고깝게 여기면서 듣고 있었다. 말을 하고 듣는 것이 우리 삶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별 생각없이 뱉고 듣고 하는 생활을 반성하는 기회로 삼는다.

사무량심이란 것이 있다. 사랑, 연민, 기쁨, 그리고 평정을 닦는 법을 배우면, 화, 슬픔, 불안, 중오, 외로움과 여러 가지 건전하지 못한 집착에서 비롯되는 병을 치료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능력을 갖추려면 사랑, 연민, 기쁨, 평정이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켜 고해를 헤쳐나가게 된다.

육바라밀은 수행의 단계를 여섯 단계로 설명한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의 단계로 수행을 통하여 피안의 세계, 자유와 조화의 세계를 사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들은 불교 관련 서적에서 흔히 읽을 수 있으나, 스님의 쉬운 설명은 탁월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같은 말을 해도, 어렵게 여겨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 그리고 비유를 통해서 쉽게 핵심에 접근하는 방법은 스님의 장점이면서도 그 이야기하는 위치가 비범한 곳임을 깨닫게 해 주는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주례사 비평을 써 놓고는, 이 책을 다시 읽지 않는 것이 내 습관이지만, 내 좁은 독서를 통해 읽은 다른 몇 종류의 책에 비한다면 탁월하다는 것이 내 의견이어서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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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5-05-27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불교서적을 읽고 나면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서 리뷰를 쓸 수가 없답니다. 대단하세요~~ 부러워요~ 저도 리뷰로 쓰고 싶지만...흑흑.. 유익하게 읽고 갑니다. 추천 날릴게요~^^*

글샘 2005-05-28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건 마찬가지랍니다. 교과서를 읽고 독후감을 쓰기가 어렵듯이... 그래서 횡설수설하게 마련인데... 부러워하신다니... 부끄럽네요.(사실은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아, 부처>로 못 읽고, <아, 부-웃-다(경상도 사투리로 부었다는 뜻)>으로 보았답니다. ㅋㅋㅋ 칭찬을 하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부디 나를 참이름으로 불러다오
틱낫한 지음, 이아무개 (이현주) 옮김 / 두레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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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생을 통하여
삶과 죽음이 있어서
나고 죽고 나고 죽는다.
살고 죽는다는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삶과 죽음이 거기에 있다.
살고 죽는다는 생각이
죽는 순간
참된 삶이 태어난다.

틱낫한 스님의 책 중에서 가장 뜨거운 책이다. 스님의 책은 보통 평온하고 고요하기 그지없는데, 이 책은 베트남 전쟁과 혼란의 시기에 뜨거운 입김들을 불어 넣은 책이므로 고요할 수가 없다.

인터넷으로 25년 전, 살육의 현장의 사진들을 바라보면 이십 년 전 뜨겁던 대학 생활이 되살아온다.
광주의 십자가는 매년 한반도를 달구었고, 그 범죄자를 단죄하는 데 실패한 나라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삶은 죽음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것이다. 빛을 내며 타오르는 촛불이 방을 비추면서 길이를 짧게 하듯이... 그러나 그 초는 그 사실을 알 수 없듯이... 초가 줄어든다는 것은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 나의 사념일 뿐.

살고 죽는다는 생각, 모든 고통의 시작과 끝인 삶과 죽음의 두려움을 죽이는 순간, 참된 삶이 태어난다는 역리는 얼마나 간단하면서도 묘한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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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인도
임현담 지음 / 초당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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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텅빈 인도는 뭐, 그런 뜻 아닐까?

며칠 전, 직장 동료들끼리 등산을 가는데 내가 운전을 했다. 옆자리에 수다스런 영감님이 타셨는데, 제법 여행 다닌 폼을 잡으신다. 그런 이일수록 조금 띄워줘야 좋아하기 때문에, 인도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냐고 했더니, 인도를 좋아하는 사람은 칭찬만 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딱 질색이라는 동문서답을 한다.

한 동안 열병처럼 인도를 가려고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지금도 있을 것이다. 나도 인도를 가고 싶던 적이 있었다. 낭만적인 생각으로. 그렇지만, 원효의 의상 대사의 이야기처럼, 인도에 가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본연의 나>를 찾기 위해서 척박한 땅으로 가길 원한다면, 왜 그곳이 인도가 되어야 하는가 말이다.

아무튼 이 책의 저자는 의사이면서 드자브에 이끌린듯이 인도로, 히말라야로 다닌다. 그러면서 본질에 대해 탐구하고, 나에 대해서 질문한다. 어머니의 강 갠지즈에서 작가가 본 것은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천민들의 삶에 대한 번뇌, 죽음에 대한 초탈, 신격화된 강물에 대한 경원이었다.

인도를 여행한다는 것은 가난과의 만남이고, 불구와의 만남이고, 가장 더러움과의 만남이다.

그렇지만, 가난이, 불구가, 더러움이 인도에 가야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가난이, 더러움이 만연한가 말이다.

<신들의 대지, 혼돈의 땅에서 잃어버린 나>라는 부제를 볼 때, 저자는 솔직하다. 인도를 여행했을 뿐, 자기 자신을 찾겠다는 뜨거운 열정은 나를 잃어버린 여행으로 마무리되었음을 솔직하게 시인하는 거다.

어떤 기행문들은 여행자로서 기행에 불과하고, 어떤 기행문들은 인도 예찬(류시화의 글이 좀 그렇다.) 일색인데, 이 책은 평범한 의사(하긴 이 정도면 평범한 사람은 아니지)가 철저한 자기와의 대면을 위해서 인도로 간 기록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객관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 점이 이 책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여행안내서가 아니므로 컬러 화보가 중요하지 않고, 그저 다비하는 모습만 많이 실려 있다. 죽으면 한 줌 재로, 타다 남은 몸 한 토막은 강물의 바위에 걸려 울렁거리고 있을 이 육신, 얽매여 살지 말자는 이야기겠다.

그가 인도에서 만난 어느 회사원. 일류로 일류를 위해서 평생을 바쳐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게 아닌데, 왜 이렇게 살지?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그 이야기는 우리를 충분히 겸손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인도를 찾는 이들이라면, 그래서 삶의 본연의 모습을 만나고 싶은 이라면, 의상과 원효처럼 서역으로 진리를 익히려 달아나 보려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권할만한 책이다.

나바호 원주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노래. 진리는 어디에나 있지 않으냐...

네 발을 꽃가루처럼 내려 놓아라.
네 손을 꽃가루처럼 내려 놓아라.
네 머리를 꽃가루처럼 내려 놓아라.
그러면 네 발은 꽃가루, 네 손을 꽃가루, 네 몸은 꽃가루,
네 마음은 꽃가루, 네 음성도 꽃가루
길이 참 아름답기도 하고 잠잠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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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物과 나눈 이야기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 이레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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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무개 님의 물과 나눈 이야기를 만났다.

물이란 색이다. 어떤 존재로 현현한 것을 물이라 한다. 이 물질을 바라보면 세상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고, 그리고 변화하는 것이어서 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현주 목사는 이름을 이아무개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목사인가 하면 목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글들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스님의 글인 듯 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가 목사가 아닌가 하면 그는 목사다.

이아무개라고 한들 그가 그가 아닐 수 없듯이, 세상 만물은 존재하면서 의미를 갖고 있고, 결국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그야 말로, 미친소의 <그 때 그 때 달라요, 마음 속에 있는 거죠...>의 연속인 거다.

이 책은 전자책으로 만났는데, 두고두고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선물할 책의 일순위로 올려둘 듯 하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남이 나를 알겠는가.(이거 유행가 타타타 가사 비슷하지?) 나는 나를 모른다는 사실을, 내가 느끼고 내가 인식하는 나는 참 나가 아님을 깨닫게 하는 것은 비단 부처님, 예수님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물이 너는 누구냐 하고 나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이 책에서 만난다.

이제 세상 사물을 만날 자신이 없다. 무섭다. 선풍기가, 형광등이, 볼펜꽂이가, 달력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 질물할 것이니까... "너는 누구냐?"고...

그렇지만 두려워할 것도 없다. 책상이, 의자가, 그리고 내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이들이 또 이렇게 물어볼 것이기 때문에. "너는 누구고, 누가 너를 아느냐?"고.

이아무개의 책을 읽으면서 진리는 하나라는 것. 금강경에서 말한,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진리는 세상에 단 하나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진리란 바로...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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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랑은 명사가 아닌 동사다...
    from 글샘의 샘터 2012-06-06 23:11 
    예전에 <물과 나눈 이야기>란 제목으로 되었던 책을 읽었다.몇 년만에 새로 나온 책을 다시 읽었다. 이참에 이현주란 이름으로 태그를 만들었는데, 그이 책을 제법 찾아 읽었던 모양이다. 나도 몰랐다. ^^ 삶의 목적이 '사랑'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러나 그 '사랑'이 '목적'이 되어버린다면, 그 삶은 노예가 되기 쉽다.'돈'에 대한 사랑, 돈의 노예가 되고,'결혼'을 향한 사랑, 결혼의 노예가 되고,'육체'를 향산 사랑, 육
 
 
달팽이 2005-04-3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죠...
 
오쇼 법구경 1
오쇼 라즈니쉬 지음, 노호상 옮김 / 황금꽃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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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래 잡고 있었다. 재미있는데도, 다른 책들을 읽느라 이 책은 천천히 봤던 것 같다.

법구경은 담마파다라고 불린다. 담마dhamma는 법, 진리, 신 같은 뜻이고, 파다pada는 단계, 길의 뜻이다. 곧, 담마파다란 진리의 길, 궁극의 법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 주는 귀중한 경전이란 뜻이다. 그 길은 물리적 도로도 아니고 시각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길도 아니다. 그 길은 '마음'에서 '무심'으로 움직이는 단계라고 오쇼는 말한다.

그리고 그 진리는 언어로 말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언어들은, 단어들은 무엇인가를 말해주려고 하지만 늘 부적절하고 부분적인 표현만이 가능할 따름이다. 그래서 침묵만이 전체적으로 교감하게 되고, 그래서 명상이 필요한 것이다.

아침에 조용히 걷는 산책로를 따라 새소리, 새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아니면 우리 심장 뛰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떻게' 뛰는지, 들리는지는 설명할 수 있지만, <왜>는 설명할 수 없지 않은가.

진리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진리는 노래이지 삼단 논법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오쇼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에 곁들여 설명한다.

그의 이야기들은 간혹 핵심을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지만,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기에 다른 경전 설명에 비해 읽기 쉽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본질을 만난다는 것,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는 것, 그래서 화내지 않고, 탐욕에 빠지지 않고, 그래서 어리석어지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낀다. 새소리를 들으면 깨달아야지. 되도록 새소리를 많이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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