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경이야기
김호성 지음 / 민족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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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많이 듣던 이 주문은 바로 천수경이라는 불경의 맨 처음 다라니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라니 말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하는 진언이라는 뜻이다.

천수경은 그야말로 천수천안 관음보살님께 나의 지혜를 열어 주시길 빌고, 세계에 자비를 널리 펴 주시길 비는 우리나라에서 중요하다는 불교 경전이다.

그렇지만, 내게는 대학교때 친구로 더 가까운 이름이다. 이름이 그냥 천수경이다. 성이 천이고 이름이 수경. 같은 부산 출신이어선지, 일찍 친해 졌고 그야말로 대학 시절 내내 정말 친한 친구였다. 그런데 졸업하고 근무지도 다르고 하다 보니 어언 이십 년 가까이 만나지 못하고 있다.

불경이라고 해서 상당히 어려울 거란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막상 읽어 보니, 많은 학자들이 경전을 쉽게 풀이하기 위해 이런 큰 노력들을 기울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도 쉽게 쉽게 잘 풀어 준다.

정구업진언으로 시작해서, 경을 펴는 게송이 나오는데 참 아름답다.

위없이 높고 한없이 깊은 미묘한 진리   無上甚深微妙法
영원을 흐른대도 만나기 어려워라          百千萬劫難遭遇
다행히 이제 보고 듣고 수지하오니         我今聞見得受持
여래의 진실한 뜻 알고자 하나이다.        願解如來眞實義

그리고 관자재보살에 염원하는 내용, 찬탄의 내용, 참회의 게송이 이어지고,

그 유명한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 옴 마니 반메 훔 이 등장.

마지막에는 서원을 세우고, 귀의로 마친다.

끝이 없는 중생을 마침내 다 건지오며
끝이 없는 번뇌는 마침내 다 끊으오리다
끝이 없는 가르침은 마침내 다 배우며
끝이 없는 깨달음은 마침내 다 이루리이다

제 마음의 중생을 마침내 다 건지오며
제 마음의 번뇌는 마침내 다 끊으오리다
제 마음의 법문을 마침내 다 배우며
제 마음의 깨달음을 마침내 다 이루리이다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그 생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동의 도가니다.

계정혜의 삼학, 스스로 경계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지혜의 눈으로 깨닫는 공부.

이것을 다만 공부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염불 또는 진언을 염하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모든 번뇌의 씨앗들을 비우게 되는 것이 천수경의 역할이라 한다.

몰록 계합의 순간을 얻어 깨닫게 되는 돈오의 경지든, 꾸준히 염하고 되뇌어 깨닫는 점수의 노력이든 기본은 스스로를 경계하는 것이란 말에 동감을 표한다. 당분간 불교 경전에 재미를 붙이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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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민족사 불교경전 1
불전간행회 엮음 / 민족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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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공룡 둘리에 도우너라는 외계인이 나온다. 그 외계인은 바이얼린처럼 생긴 우주선을 타고 현을 켜면서 '깐따삐야'라고 소리치면 시공을 초월한 이동이 가능하다. 깐따삐야가 별 의미없는 소리라고 치부했는데, 화엄경을 읽다보니 특별한 의미가 읽힌다.

화엄의 범어 명칭은 간다-뷔하이다. 간다는 잡화(雜華)를, 뷔하는 엄식(嚴飾)을 의미한다. 즉 이름없는 꽃을 포함한 수많은 종류의 꽃으로 법계를 아름답게 장식한다는 것. 세상에 이름 없는 작은 꽃에서도 무한한 우주의 생명이 약동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 그것이 화엄경의 깨달음인 것이다.

서른 네 챕터로 나누어져서 <불도를 어떻게 실천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깨달음이란 무엇인지...>, <중생은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지...>를 제기하는 것이 큰 내용이다.

화엄경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내용과 무산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기자기한 재미는 없었으나, 화엄경을 소재로 차근차근 설법을 한다면 무한한 세계를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멋진 화엄경 설법을 만나고 싶다.

특히 마지막의 선재동자의 입법계품은 그 열렬한 구도정신이 돋보인다. 법정 스님의 입법계품 설명이 있던데 기회가 되면 그 책도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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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다릴 앙카 지음, 류시화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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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채널러, 바샤르 ... 이런 낯선 말이 이 책엔 등장한다.

사실 그 말은 별 뜻 없다. 다릴 앙카라는 사람이 우주의 혼의 주파수를 맞추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일종의 영매라고 할 수 있다. 바샤르는 그 영의 이름이다. 그 이름에는 별 의미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걸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다 웃고 말았다. 믿는다는 것이 뭔가 싶어서...

사실, 믿음이란 것이 별것 아니지 않은가?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 하고 떠드는 할머니들을 지하철에서 많이 만났다.
선생님은 믿을 수 없는 학생을 격려하는 척하면서 한 마디 던진다. "난 너를 믿는다."
바람핀 남자 친구 또는 남편이 여자친구 또는 아내에게 식상하게 하는 말, "날 그렇게 못 믿어?"

믿는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을 그렇다고 강하게 세뇌시키는 강화 행동에 다름 아니지 않을까? 강화된 착각 말이다.

그러나, 저 제목은 얼마나 가슴 떨리게 아름다운지... 이 책을 읽으면서 중반 이후론 평범한 내용도 많았지만, 제목은 정말 맘에 들었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가슴 뛰는 삶. 내가 언제 가슴이 뛰어 봤던가. 그리고 무슨 일을 할 때 가슴이 뛰었나...

초등학교 시절, 만화 속의 환상을 보면서 가슴 떨린 기억이 난다.
가난하고 평범한 현실과 너무도 다른 꿈속의 세계.
그리고 대학교 입학하고 미팅을 기다리면서 가슴 뛰었던 적이 있지만, 결과는 너무도 뻔했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와 데이트할 때 참 가슴이 많이 뛰었다.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만날 꿈에 부풀어 있을 때, 가슴 뛰었고, 요즘도 3월 2일 아침이 되면 1년에 한 번씩 가슴이 뛴다. 올해는 어떤 운명들을 만날 것인지...

우주의 기운, 바샤르는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은 다른 사람의 거울이 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충분히 자기 자신을 사는 일. 이거, 많이 듣던 말이다.

공자가 말한 극기복례, 부처의 자비, 예수의 사랑, 그런 거 아닌가. 생기긴 다르게 생긴 듯 하지만, 그 파도의 속에는 바다라는 본질이 든 것. 바샤르라는 가상의 신비로운 믿음의 대상을 상정하여 우리 삶의 파도들의 거품들을 들여다 보는 작업은 일정정도 신선한 방식이다.

가슴이 뛰는 일, 그것은 우리를 위한 길이고,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일을 하면 우리의 삶이 매우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난 요즘 도서관에 새 책을 빌리러 가면서 가슴이 뛴다. 나를 기다려 줄 책들. 자기 존재를 드러내려 빛나는 책으로 보이려고 보이지 않게 키높이를 하는 책들. 까치발한 책들 중에서 몇 권을 고르는 일은 즐거운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바샤르가 남긴 말 중에 심장에 남는 말이 있다.

물건을 떨어뜨리면 줍는가, 주으려고 노력하는가. 나를 만나는가, 만나려고 노력하는가.

해답은 이미 당신들 내면에 있다.

 

물건을 떨어뜨리면 주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없다. 몸이 심하게 불편한 상태가 아니라면. 그저, 대뇌의 큰 노력 없이 주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 수련, 마음 공부, 종교 등의 <말, 말, 말>을 가지고, 그 <지혜, 반야, 다르마>를 배우려고 갖은 꾀를 쓰지 않는가. 노력하는 체 하고 있지 않은가. 그건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닌데... 그저, 주으면 되는 것인데...

 

금강경에서 읽던 말을 바샤르에게서 듣는 기분은 묘하다. 공부를 오래 한다고 알아 지는 것은 아니다. 몰록 어느 순간 알아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사도, 도사도, 부처도 모두 죽이라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님의 앞에 나타난 그 많은 나환자들은 모두 죽어가는 육신이었지만, 썩어가는 시체의 부패하는 냄새 가운데 예수님이 계셨던 것이다. 그것을 만나면 되는데, 우리는 만나려고 <노력>만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말고, 는...(나의 그림자가 우리라고 아이들에게 늘 가르치면서, 난 불리할 때면 툭하면 우리를 걸고 나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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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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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십여 년 전에 옆자리 앉았던 선생님이 <작은 나무야>라는 책을 읽고 계셨다. 재밌어요? 하고 지나는 말로 물었는데, 그 선생님이 고개를 들었을 땐 눈에 물기가 묻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왠지 그랬다. 그래서 빌려서 읽었던 책이 이 책인지, 다른 판인지는 알지 못하겠다. 아마 1991년에 애비상을 받았다는 걸로 봐서 그 책이 맞지 싶다.

십년 전에 읽었던 책인데도, 새삼 읽으니 구구 절절이 심장을 찌른다. 북한 노래 중에, '심장에 남는 사람'이란 노래가 있다는데(노래는 모르지만, 정말 멋진 제목 아닌가. 정말 이런 노래라면 궁금하다.), 이 책은 심장에 남는 책이다. 십년도 전에 이 책을 읽을 때, 지금처럼 심장에 남진 않았던 것 같다.

처음엔 그저 읽다가, 좀 뒤엔 빌려온 책이라 줄을 그을 수 없으니, 노트를 펼치고 몇 구절을 적었다. 그렇지만, 결국은 적는 것도 포기하고, 되도록이면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고, 머릿속에 잡다한 생각들이 들어서 눈으론 읽었지만 놓친 구절이 있을 땐, 과감하게 몇 페이지를 다시 읽곤 했다. 책이 반이 넘자 아쉬움에 떨다가, 마지막 몇 장을 남겨 놓고는 책을 놓기 싫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러나, 책은 어디까지나 책일 뿐, 멋진 풍경은 사진으로 남길 수 없듯이, 멋진 책은 외울 수도, 베낄 수도, 사서 책꽂이에 꽂아둘 수도 없다. 책을 만나면 책을 버려야 한다. 멋진 경치를 마음에 담아 오는 것이 익숙한 여행가이듯이, 내 영혼이 따뜻하게 해 주었던 작은 나무에게 감사의 마음을 두고두고 남기는 것이 익숙한 독자의 몫이리라.

체로키 인디언들의 삶의 방식에서 배울 수 있는 겸손함,
어린이에 대한 배려의 시선, 용기를 심어주는 격려의 한 마디 한 마디.
자연과 동화되는 삶의 지혜,
결코 욕심 부릴 필요 없음을 체득한 신선한 삶의 태도,
개척민들의 사고방식에 치를 떨면서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동등한 존재로서 인정하는 휴머니즘.
갖가지 동물들과 자연과의 교감에서 느끼는 숭고함과 아름다움,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노동의 성취감과 사용가치의 소중함을 느낄 줄 아는 순수한 마음,
교환 가치에 영혼을 팔지 않을 만큼의 자존심,
강제 이주를 당하면서도 인간의 존엄함을 잃지 않던 기개.
몸을 꾸려가는 마음과 영혼의 마음의 반비례 관계를 통한 소유의 절제에 대한 통찰, 집착을 버리라!
아이들이 자연에서 행하는 일에 대해 꾸짖는 법이 없는 체로키 족.

끝없는 해석을 필요로 하는 것들에 비해, 간결하면서도 쉬운 말로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책, 이런 것이 진정한 고전이 아닐까? 우리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생각하게 하는, 바로 철학하게 하는 그런 고전 말이다.

리틀 트리와 작별하는 지금, 리틀 트리로 하여금 내 영혼이 따뜻해 졌음을 진심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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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맨 처음 사랑이 아니다
틱낫한 지음, 이아무개 (이현주)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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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안 어울려도 한참을 안어울리는 조합이다.

그런데, 이게 하나로 어울려도 멋진 그림이 된다. 틱 낫한 스님의 사랑 이야기. 그 풋풋한 젊음의 내음이 잘 묻어 난다. 그러면서도 이아무개 목사님의 글도 멋지다.

글을 읽으면서 반가운 것은, 내가 읽었던 반야심경의 아는 구절들이 툭툭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금강경에서 읽었던 대목들도 나의 지적 허영심에 즐거움을 준다. 그러지 말라고 가르쳤거늘, 아는 게 나오면 즐겁다.

그리고 아직 안 읽은 화엄경과 법화경은 입맛을 돋우는 봄나물처럼 나를 슬슬 흥분시킨다. 불교 경전들이 그닥 재미난 글들은 아니련만, 십년 전에 읽었을 때는 무미한 절밥 내음이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불과 그 십년 동안에 입맛이 변해서 무미를 유일한 맛으로 느끼게 되었다.

지난 겨울, 틱 낫한 스님의 글들을 접하면서 불교에 대해서, 명상에 대해서, 그리고 나를 찾는 길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 소설이나 다른 글들은 별로 맛이 없다.

사랑, 그 가장 세속적인 소재가 궁극적 차원의 인드라의 그물에 비친 모습은 첫사랑도 맨 처음 사랑 아님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어떤 것이 모양으로 분별되면 그 곳엔 속임수가 있다. 어떤 말이 <처음>이라고 분별된다면 반드시 거기엔 속임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첫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첫 사랑이란 있을 수 없으니깐. 첫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고, 믿고 싶은 것 뿐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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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4-13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도..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한데요..^^;;

글샘 2005-04-14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님의 첫사랑 이야기, 찡하면서도 사랑의 껍질과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좋은 책이었답니다. 비숍님,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