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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가 전해주는 마음의 열쇠 뼈
이외수 지음 / 동방미디어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이외수는 내 맘 속에서 기인이었다. 머리와 수염을 기른 '도인'같은 풍모와 왠지 센치하면서 알듯 모를듯한 소설이나 글들. 그래서 이외수를 읽고 싶은 호기심과, 세상에서 동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지는 얄궂은 멸시가 공존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돌아 본다.
모든 가치라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인지...
얼마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것인지를...
이외수의 두뇌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산문들이 가득하다.
비라도 부슬부슬 내리는 날, 훈훈한 차 한 잔 들고, 창가에 나앉아 빗소리 들으며 읽는다면 참 그럴싸하게 마음을 울릴 글들로 가득하다.
마치 불경을 읽는 듯이, 성경을 마주한 듯이, 그렇지만 종교적으로 지나치게 경건하지 않게...
시인의 가슴으로 마주한 세상의 씁쓸함, 쓰라림, 비탄을 뱉어내고 있다.
만약 그대 눈에 미운 것이 보이면, 그대 스스로 그 속에 들어가 보도록 하라. 참으로 미운 것은 하나도 없다.
결혼해서 애 길러본 사람만이 아이들을 제대로 본다는 말이 있다. 개인차야 있겠지만, 사람을 기른다는 일은,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일 것이다. 미운 것은 하나도 없다.
슬픈 날, 술푼 날... 만사가 슬프고, 그래서 술이라도 푸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죽어서 식물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것이 될 수 없다면, 그래서 굳이 동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절대로 사람으로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 차라리 어두운 이불 속을 길고 지루하게 기어다니는 한 마리 외로운 이 또는 햇빛 좋은 날 금빛 물결 일렁거리는 맑은 연못 속을 헤엄치는 한 마리 거머리, 그런 것으로 태어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 그는 지렁이가 사람보다 낫다고 한다. 지렁이가 만드는 것은 얼마나 쓸모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옳은 소리다. 인간은 지렁이, 아니 무엇보다 지구에 악이 되는 존재니깐. 그리고 지렁이는 나처럼 먹이 때문에 자존심을 버릴 필요는 없기 때문에...
언제나 젖어 있으라. 땅이 마르면 물이 고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슴이 마르면 사랑이 고이지 않는다는 사실.
천상 예술가인 그는, 아름다운 말과 선율과 색채를 창조하는 예술가가, 사람의 깨어진 머리를 꿰매거나 콩팥을 떼어내고, 사람 뼈를 덜그덕거리는 의사나, 죄인들을 다루는 법관들보다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을 혐오한다.
진정한 예술가는 완성된 작품에 대한 자부심만으로 살 수 있다고 하면서, 세상의 천대, 몰인정에 눈물흘린다.
인간은 이제 모든 것의 천적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는 인간이 인간에게까지 천적이 되어 있는 형편이다.
먹이 사슬의 최상층은 인간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것은 아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일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만물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망쳐가는 혐오스런 인간 존재에 대하여, 그러나 또한 세상에서 가장 경이롭고 가치있는 인간 존재에 대하여 그의 탐색은 폭넓고 겸허하다. 이외수가 드디어 도사가 되려나 보다. 좋은 일이다. 그가 도사가 되어 만물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런 이들을 아는 것만으로도 나는 영장에 가까운 사람처럼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악한 천적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