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서운 예언 사건 요다 픽션 Yoda Fiction 3
곽재식 지음 / 요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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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순서 배열 때문에 미드 24시를 떠올리며 읽었다. 세상이 멸망하기까지 시간을 쫓아가니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지구가 망할 거라는 이 무서운 예언이 말하는 진짜 뜻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괜히 시간 여행은 불가능할 것 같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사람은 마치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의 로봇이 케첩 때문에 감정을 가지게 되고 급기야 인간으로 인정받게 되는 여정을 겪게 되는 것처럼,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안다고 한 그 사장은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모르니 과연 우습다. 곽재식 작가님의 이야기는 언제나 좋다. 특유의 재치와 풍자가 소설 곳곳에 녹아 있어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언제나 인간의 탐욕은 상식을 통과해서 저 멀리 태양계 너머까지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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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1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01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eBook] 한 겨울 밤의 공포특급
안소진 / e퍼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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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물어란 것이 있다. 백 개의 촛불을 켜두고 백 가지의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하나씩 촛불을 끄는 놀이 같은 것이다. 백 개의 초가 다 꺼지면 귀신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이 이야기는 지훈이 동기와 후배와 함께 폐가에 갔다가 안 좋은 일을 당해 그 귀신을 떼 내기 위해 학교에서 과동기 및 선후배들과 백물어를 하는 이야기이다. 백 가지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아니고 자신이 혹은 친구가 경험했다는 무서운 이야기가 여러 편 나온다. 각 이야기들은 제법 흥미로웠는데, 아쉽게도 오타가 많아서 아쉬웠다. 요즘 이런 괴담 소설들이 구어체로 쓰여 그대로 책으로 나오는데 그런 부분은 괴담 소설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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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어가 나타났다 환상문학웹진 거울 대표중단편선 17
정보라 외 지음 / 아작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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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예은 님을 좋아한다. 특히 '홍연'이랑 '이방인', '피루엣', '상사화', '난파', '능소화' 등등의 노래를 좋아한다. 가사도 너무 멋지다. 특히 '홍연'은 가사가 진짜 좋은데 그 중에 '당신은 세상에게 죽고 나는 너를 잃었어'란 가사는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러다 '창귀' 뮤직 비디오를 유튜브로 틀었다가 옆에 있던 남편이 기겁을 했다. 아마 보신 분들은 아실텐데 좀 으스스하긴 하다. 하지만 '창귀'나 '물귀신', '액귀' 등은 자기가 놓여나려면 다른 이를 그 자리에 데려다 놓아야 하기에 안타깝고 슬픈 귀신들인 것을...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 중에 안예은 님의 '홍연'과 '위화'를 모티브로 삼아 쓴 소설이 있다. <위화>는 최지혜 작가님의 이야기이다. 위화(衛華)... 빛의 호위? 혹은 빛을 수호하다? 이런 뜻인 것 같은데 너무 가슴 아픈 커다란 마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이라는 말로는 담을 수 없는 커다란 마음으로 그대의 한숨을 들고 이 세상 끝까지 달려가 허공에 흩뿌리고 돌아오는 화자는 도대체 어떤 이일까. 수많은 환생 끝에 그리움을 받아들이고 망각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인연에 마침내 '나'는 그 고통마저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임을 깨닫는다.


<홍연>은 구한나리 작가의 이야기이다. 초자연적인 존재마저 탐내는 해금 타는 실력을 가진 오라버니는 '미르'라 불리는 '물의 용'에게 존재를 빼앗긴다. 부역을 간 줄만 알았던 오라비가 3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하영은 어머니를 집에 두고 오라비를 찾으러 수도로 간다. 노랫말처럼 세상에게 오라비를 빼앗긴 하영은 끝내 오라비를 잃었다. 끊어진 현은 끊어진 붉은 실을 상징하듯 다시는 울지 않았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오라비를, 하영은 만났을까. 애달픈 사랑이다.


<달콤한 죄를 지었습니다>는 남세오 작가의 이야기이다. 달콤한 것을 즐기는 행동은 과연 죄일까? 왜 사람들은 달콤한 것, 칼로리가 높은 것을 먹고나면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비만'이 죄악시 되고, '다이어트'가 일상이 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카르파탐'이라는 칼로리도 없고 맛있는 단맛을 내는 물질이 개발되었다. 칼로리가 없는데 맛있다? 이건 가히 혁명이 아닐까. 이거 만든 사람은 노벨상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카르파탐이 든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낀다. 그런데 우습게도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노동을 강제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죄책감을 심어주고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죄가 아닌 것을 죄라고 하니, 바꿔야 하지 않을까.


<거인을 지배하는 법>은 지현상 작가의 이야기이다. 영화 <맨 인 블랙>이 생각난다. 초반부에 결말이 예상되는 이야기인데, 결말을 예측할 수 있다는 자체가 씁쓸한 이야기였다. 결국 우리나 우리보다 조금 못하거나 우리보다 조금 더 뛰어난 지성을 가진 존재는 모두 침략 본능이 있는 것인가. 어쩌면 진짜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 건 아닌가 또 생각해 본다.


<문어>는 정보라 작가의 이야기이다. 강사법 때문에 수많은 강사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 상황에서 대량 해고된 강사들은 노조에 가입해고 농성 중이었다. 그런데 위원장님이 어디선가 나타난 문어를 잡아 먹었다. 아니, 어디서 문어가 기어와서 "지구 - 생물체는 - 항복하라" 이러면 악, 문어가 말을 한다 내지는 엄마야 하면서 도망쳐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위원장님은 군침을 삼키며 문어를 잡아 먹었다. 문어 숙회가 맛이 있긴 하지만, 찝찝하지 않을까? 말을 하는 문어라니. 내가 볼 때 말을 하는 외계 문어는 하필 대한민국에 와서 망한 거다. 우리는 문어를 좋아하고 잘 먹으니까... 엉겁결에 같이 있게 된 '나'는 괜히 위원장님과 함께 알 수 없는 어떤 정부기관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심문을 당하고 입을 다무는 조건으로 나오긴 하는데... 그 뜬금없는 문어가 나타나도 잡아먹을 정도라면,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괜히 희망을 가져본다. 


<실버해머>는 엄정진 작가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유전자 조작이나 유전자 교정 같은 일들이 과연 윤리적일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과학 기술은 윤리를 모른다지만, 호기심으로 수많은 문들을 열어보기엔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말이다.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일들이 기술의 진보란 이름으로 행해지면, 인간의 범위는 어디까지 확장되며 어디까지 축소될까. 영화 <매트릭스>보다 더 비극적일 것 같은 이야기. 증강현실이 일상이라면 우리 뇌에 장착된 것들을 벗으면 아무것도 없을 지도 모른다. 실체 없는 환상 속에서 진짜라 믿으며 살아가는 삶... 거기다 GOU(Grand Old men's Union)라는 단체는 이름만 봐도 딱 꼰대같지 않은가. GOU는 과거 권력자들의 인격과 지성을 통합하여 만든 인공지능인데, 우리의 우주를 통합하여 다스리는 기구이다. 그리고 반대 세력으로 영 건(Young Gun)이란 단체가 있고. 율리와 모라는 둘 다 인간의 유전자를 교정하여 인간의 몸이 아닌 실험기구에서 태어난 희망둥이다. 그러나 둘의 삶은 달랐고, 율리는 기득권을 향해, 모라는 전복(顚覆)을 목표로 한다. 이런 미래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당신의 모든 것>은 클레이븐 작가의 이야기이다. 가장 현실성 있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팬데믹을 겪은 우리는 전염병이 얼마나 우리 사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지 잘 알고 있다. 만약 이런 역병을 막지 못해 국가가 부도 나고 무정부 상태가 된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인공장기 혹은 살아 있는 장기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사람들과 혼란을 틈타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사람들이 난무(亂舞)할 것이다. 얼마나 인간이 하찮아지면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장기를 배양하는 모체로 쓰고 동의 없이 신체를 스캔한 후 동의 없이 장기를 떼낸다. 있을 법한 미래라 무섭고, 포지판도 없는 길을 따라 걷는 '나'는 건조하다.


<정신강탈자>는 엄길윤 작가의 이야기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동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저 누가 요약해 놓은 것을 보며 안다고 생각하고, 누군가 읽어주는 신문을 듣고, 누군가 떠먹여주는 지식이나 거짓 뉴스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쉬운 시대. 하지만 '나'로 살아가려면 최선을 다해 '나'란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미지의 존재에게 몸을 빼앗기지 않고, 멍하니 사는대로 살지 않으려면 말이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전혜진 작가의 이야기이다. 남아가 아니라는 이유로 태어나지도 못한 채 사라져야 했던 수많은 원혼들이 무당을 통해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린 시절, 주변엔 딸 여럿에 막내가 아들인 경우도 많았고, 첫째 딸과 둘째 아들 사이의 터울이 큰 경우도 많았다. 낙태죄는 언제나 있었다는데, 임신중절이 어떤 때는 죄가 되고 어떤 때는 권장 되는 이상한 현상도 있었다. 그래서 작가는 원점으로 돌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고쿠라에서 J를>은 고타래 작가의 이야기이다. 운명적 만남을 믿는가? 우연인지 운명인지 J가 일본에 간다는 것을 알게 된 고태원은 일본으로 간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J를 잊지 못한 고태원은 과연 J를 만날 수 있을까. 적당히 말랑말랑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 이야기였다.


<통곡왕>은 곽재식 작가의 이야기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궁홀산(弓忽山)은 고조선의 도읍이다. 백악산의 아사달 혹은 금미달이라고도 한다. 고조선 때 향부란 사람이 삼성(三聖)의 도(道)를 깨닫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인데, 향부가 아플 때 궁홀거사란 이가 삼성의 도로 그를 낫게 했기에 그러했다. 세상 이치를 깨닫는다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는데, 도를 깨친 이는 세상이 고통임을 역설한다. 우리가 믿는 것과 있는 사실 그대로가 동떨어져 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공포일까, 회피일까.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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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31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이예요.
따뜻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꼬마요정 2022-12-31 17:5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도 따뜻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다정하세요. 고맙습니다. 늘 행복과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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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태어나서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모두에게 둘러싸여 있는 순간에도 누구나 문득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외로움이란 갑자기 찾아오기도 하고, 어디 가지 않고 언제나 함께 머무는 경우도 있다. 개개인이 서로가 되어볼 수 없기에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렇기에 인간에게 외로움은 필연적일 수 밖에.


이 책에서 다루는 외로움 그런 본질적인 외로움이라기보다는 사회로부터 유리(遊離)되거나 가족이나 연인이나 친구 등 사랑하는 이로부터 이해받지 못했을 때 느낄 외로움을 이야기 한다. 서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희망을 느끼게 하는. 물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해 스스로의 기억을 잃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채 늘 상실감에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으나 언제나 희망은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할로우 키즈>이다. 영화 <할로우맨>을 안다면 느낌이 확 살아날 것 같은데, 말 그대로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아이라고나 할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사라졌으면 할 때가 있다. 끔찍한 실수를 하거나 멍청이가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그러곤 하는데, 투명인간이 되는 방법을 알거나 투명망토를 구하지 않는 이상 그럴 수가 없다. 하지만 재이는 사라졌다. 바쁜 부모님 때문에 늘 8시 이후까지 집에 가지 못한다. 선생님들은 그런 재이가 불쌍하다가도 자신들의 퇴근이 늦어지기에 마냥 가엽게 여기지만은 않게 된다. 재이는 반에서도 조용하고 자기 주장을 하지 않는데, 핼로윈 행사 때 드라큘라 역을 맡고 싶다고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 역은 내정자가 있었고,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어른들의 친목은 작동하고 있었다. 그저 유령 3 역할을 하게 된 재이는 넘어지는 순간 사라졌다.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자신의 부모조차 관심을 가지지 않던 재이는 과연 돌아올 수 있을까. 이렇게 사라진 아이들 혹은 어른들이 얼마나 많을까...


두 번째 이야기는 <고기와 석류>이다. 혼자 남은 옥주의 삶은 남의 선택에 좌우된 삶이었다. 변화를 싫어하고 적응하지 못한 남편 때문에 이사할 때를 놓친 그녀는 결국 버려진 상권이 있는 건물에 혼자 남았다. 남편은 투병하다 세상을 떠나고 아들은 사업을 한답시고 필리핀으로 떠난 후 연락이 끊겼다. 옥주는 장례식장에서 일하며 하루 하루 살아간다. 그런 그녀에게 의사는 몸에 이상이 있으니 조직검사를 꼭 받아보라고 하고, 삶에 의욕이 없는 그녀는 병원비를 감당할 자신도 이유도 없다. 그렇게 그냥 살던 그녀에게 어떤 기이한 존재가 나타난다. 마치 호모 사피엔스가 멸절시켰다고도 하는 네안데르탈인 같은 존재.


신기하게도 인간의 모습을 한 그것은 인간을 먹는다. 그리고 옥주는 그것에게 '석류'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어릴 때는 곧잘 먹던 석류를 지금 떠올려서 '석류'에게 주면서 말이다. 그것의 눈이 가끔 붉어져서일까. 어릴 때 옥주가 그렸던 미래는 지금과 같은 삶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외롭지만 외로운 줄도 모르던 그녀는 처음에는 '먹혀도 좋다'는 마음으로 석류를 들였고, 이제는 석류가 혼자 남으면 어쩌나 싶어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게 된다. 그렇다. 옥주에게 석류는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자신이 돌보고 의지하는 존재인 것이다. 누군가를 보살피고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힘들고 지루하다 여겼던 삶을 이어가고 싶게 한다. 주변을 둘러보고 함께 살아갈 궁리를 해야할 것 같다.


세 번째 이야기는 <릴리의 손>이다. 미래의 어느 날, 세상에 시공간을 가르고 넘나들 수 있는 틈이 생긴다. 물론 인간이 자의적으로 갈 수는 없고, 재해와 마찬가지로 그저 빨려들어가고 틈은 닫혀 버리는 것이다. 그 틈은 예측할 수 없고 틈에 빠진 사람은 살던 시대로 되돌아 올 수 없다. <닥터후>가 참 많이 생각났더랬다. 맷닥을 애정했는데, 맷닥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시공간 틈을 통해 흘러들어 온 힘으로 재생성도 했고 갈리프레이의 힘으로 재생성을 막기도 했었다. 지금은 다 지나간 이야기. 이렇게 생긴 틈 때문에 다른 시간, 공간에서 넘어 온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들은 이방인이라 불렸다. 이방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기억상실이란 부작용이 발생했는데, 이런 이방인을 돕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릴리와 연주였다. 


2017년인지 2018년인지 그 즈음 '연주'는 교통사고 피해자로 병원에서 눈을 뜬다. 기억을 잃은 '연주'는 어떤 기억을 잃었으며, 평생을 그리워 한 이는 누구였으며, 또한 '연주'는 누구였을까? '기억'이란 것이 한 사람을 알 수 있는 전부는 아니겠지만 자신을 지금 모습으로 있게 한 실마리이자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기억'을 잃었지만 희미한 그 흔적 속에서 기어코 떠올리고자 한 대상은 누구인가. 교통사고 자리에 떨어져 있던 로봇 손 같은 손은 왜 마음을 따뜻하게 했을까. 마지막 편지는 그런 외로움과 그리움이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마무리 된다.


네 번째 이야기는 <새해엔 쿠스쿠스>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게 틀림없겠지만(사랑하겠지?), 자신이 되고 싶었던 모습을 자식에게 투영하거나, 자신의 욕망이 절대적 성공이라 믿으며 자식에게 그 방식을 강요하거나, 자식을 남과 비교하며 때때로 전리품처럼 생각하는 '엄마'가 있다. 사랑한다면서 사랑하는 대상의 말이나 바람 같은 것은 제대로 듣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그런 말을 해주지 않으면 기억을 왜곡한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자녀는 자신의 삶이 가치를 증명해야만 하는 강박으로 가득 차 버리는 것을 느끼지만 벗어날 줄 모르다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엄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서울대학교를 자퇴하겠다고. 엄마가 원한 것은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자식이고, 남들에게 내보일만한 자식이라고. 엄마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연우 언니의 말도 그런 맥락이지 않을까.


'나'를 '나'로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의 딸도, 어느 학교의 선생님도, 어느 대학의 학생도 아닌 그냥 '나' 자신 말이다. 어린 시절 자신과 닮은 연우 언니와 함께 먹고 싶었던 쿠스쿠스를 먹으러 모로코로 가면 알 수 있을까. 언니가 먼저 먹어보긴 했으나 유리는 안 먹어 봤으니. 연우 언니도 유리와 함께 먹으면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숨 막히는 엄마에게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느끼면서 말이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자신을 찾고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가장 작은 신>이다. 정말 말 그대로 작은 신은 맞는 듯 하다. 먼지의 신이라니... 그것도 미세먼지... 팬데믹과 겹쳐지는 이야기인데, 사람이 병들고 죽을 만큼의 재난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전쟁과 역병과 기후 위기가 섞인 시대를 살고 있고.


미세먼지바람 때문에 죽을 뻔한 수안은 그 일이 일어난 2년 전부터 집 밖을 나서지 않는다. 아홉 번째 면접에 떨어지고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던 그 때, 처음 일어난 먼지 바람에 휩쓸렸다. 마스크를 사수하려 꼭 붙잡고 방어하던 손과 팔은 피부가 처참하게 곪아 버렸다. 일주일만에 병원에서 깨어난 수안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 집에 찾아 온 동창 미주. 다단계 영업사원인 미주는 목적을 가지고 수안에게 접근했으나 각자의 외로움을 안고 잇는 둘은 어느새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만다. 2년 전 첫 먼지바람과 미주의 아버지와 그 날 이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된 수안과 아버지의 일을 떠맡게 된 미주의 사연은 가슴이 아팠다. 명예욕이 있던 먼지의 신의 허황된 욕심이 불러 온 참사는 그래도 희망을 엿보게 했다. 굳이 제물이 없어도 재앙을 불러오던 그 신은 어쩌면 외로웠던 건지도 모른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기에 악명을 떨쳐서라도 존재감을 가지고 싶었는지도. 그 신의 그릇된 욕망 앞에서 수안과 미주는 서로를 필요로 했고, 용기를 내었고, 연대를 이루었다. 수많은 고난이 있을테지만 둘은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당장 먼지바람이라도 그쳤으니. 수안이 미주를 위해 문 밖으로 나올 때, 너무 멋졌다.


여섯 번째 이야기는 <나쁜 꿈과 함께>이다. 몽마도 외로운가보다. 살아있는 사람과 닿으면 불에 덴 듯 화끈거리고 심하면 화상을 입는 것 같다는데 그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은성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뭘까. 정이 많으면 멍청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보면 난장판이지만 자세히 보면 물건에 정을 주어 버리지 못한 상태인 은성의 방을 기웃거리는 몽마는 어쩌면 은성에게서 정을 갈구하는 것일까? 허기와 갈증을 해소해주는 건 따뜻한 관심일지도. 요즘 세상은 인간도 외롭고 인간이 아닌 존재들도 외로운가보다. 아니면 인간이 외롭기에 그 마음이 투영되어 그들도 외로울 거라 생각하는 걸까. 은성은 악몽을 꾸게 하는 몽마에게마저 정을 줄 수 있을까? 그래서 몽마는 더 이상 배고프지 않고, 은성은 악몽을 꾸지 않고 말이다.


일곱 번째 이야기는 <유니버셜 캣숍의 비밀>이다. 이 이야기는 예전에 <공공연한 고양이>에 실렸던 이야기이다. 정말로 고양이 별이 있었다니. 참으로 신선했고, 따뜻한 이야기였다.


여덟 번째 이야기는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이다. 이 이야기는 <러브, 칵테일, 좀비>에 실린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를 떠오르게 한다. 운명은 정해진 것일까,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것일까. 푸른 수염 이야기가 떠오른다. 금기와 여자 살해. 푸른 머리칼을 가진 블루의 운명은 그녀가 태어났을 때 찾아 온 노파도, 아직은 어린 시절 만났던 점성술사도 아닌 바로 그녀 자신이 만들어 간 것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문을 넘나들며 그녀가 구한 수많은 생명들은 그녀가 덜 외로울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정당방위라 할지라도 그녀가 지은 '죄' 때문에 겪어야 한 외로움을 마지막에나마 덜어준 것일지도. 포기하지 않은 블루도, 결국은 그녀를 찾아 낸 썸머도 더 이상 외롭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외로움은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진부한 이야기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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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29 05: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에 읽었던 일본 소설에서도 석류의 이미지가 과일이 아닌 다른 것이 되었을 때 서늘한 느낌이었어요. 아마 이 책에서도 그런 느낌이 조금 있을 것 같네요.
잘읽었습니다. 꼬마요정님,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12-29 16:34   좋아요 0 | URL
석류에 그런 이미지가 있군요. 왜 그럴까요? 뭔가 알알이 보석 같아서 그런가... 이 책에서도 석류는 서늘한 느낌이지만 또 따뜻한 느낌도 있습니다.
서니데이님도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기억의집 2022-12-29 07: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한 아이들 이야기는 언제나 맘이 아프네요. 오늘 잠깐 만난 언니가 작년 자기네 반 아이소식을 다른 선생님한테 들었는데 그 선생님이 선생님, 00이 거의 투명인간이예요. 엄마도 선생님도 아이한테 거의 관심 없어요. 선생님님만큼 00이 이뻐해주는 사람이 없네요!! 라는 말을 듣고 맘이 편치 않다고 하네요. 애기가 이제 네살인데.. 엄마가 아이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데 저도 그 말 듣고 맘이 편치 않었어요. 저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가난하면 애를 낳지 말라고 하는데, 가난한 것보다 자기 아이한테 돈 쓰기 싫어하는 사람들, 전혀 애한테 관심 없는 사람들은 애 낳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첫이야기는 씁쓸하네요. 요정님 연말 잘 마무리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꼬마요정 2022-12-29 16:37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기억의 집님!! 자기 아이한테 관심이나 사랑을 줄 수 없다면 안 낳는 게 맞지 않겠어요? 어릴 때부터 아이는 홀로 얼마나 외롭겠어요ㅠㅠ 그래서 너무 슬픕니다. 관심을 가져주던 선생님도 한 해가 지나면 반이 바뀌니 바뀌기 전보다 신경을 덜 쓸 수 밖에 없으니 아이는 또 외롭겠죠. 마음이 아프네요. 첫 이야기가 제일 짧은데 참 아팠습니다. 기억의집님도 연말 잘 마무리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레이스 2022-12-30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예은 소설 두번째로 보는 것 같네요
표지 사진 보기만 해도 침 고입니다.

꼬마요정 2022-12-31 00:18   좋아요 1 | URL
저는 <칵테일,러브,좀비>가 너무 좋아서 조예은 작가 작품 좀 찾았더랬죠. 이 책도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단편들은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한번씩 이렇게 모아 주면 좋겠어요. 책 표지가 빤딱빤딱 맛나보입니다^^

서니데이 2023-01-06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3-01-07 10:4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날씨가 좀 풀리긴 했는데 미세먼지가 심하네요. 건강 유의하시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3-01-07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이 모두 잘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꼬마요정 2023-01-08 23:5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thkang1001님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벌써 일요일이 끝나갑니다. 시작하는 한 주도 힘차고 밝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thkang1001 2023-01-09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Book] 괴담의 밤 (무서운 이야기) (1~5권) 괴담의 밤
송준의 / 21세기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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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은 왜 반 개 표시는 안 되는걸까. 두 개 반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그닥 무섭지도 않고 인터넷에 았는 괴담들을 모아놓은 것 같다. 요즘 이런 이야기들이 괴담으로 돌아다니는 걸 보면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서운가 보다. 예전에는 홍콩 할매 귀신이나 빨간 마스크나 망태기 할아범이나 빨간 휴지 파란 휴지 이야기가 괴담이었는데. 이제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물론 이 책에는 기이한 이야기들도 많다. 호텔에 묵는데 밤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잠을 설쳤는데 알고보니 화재로 그 방에 갇혀 죽은 손님이 있었다거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에 밤늦은 시간이어도 피곤해도 운전해서 가서 보니 할아버지가 문 앞에서 손자도 온겨? 이런다거나 말이다. 심심할 때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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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12-25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 님 크리스마스 잘 보내고 계신가요?
꼬미랑 귀여운 냥 사진 다시 봤어요. ㅎㅎ
올 한 해 고마웠습니다. 내년에도 사랑과 기쁨 가득하길 바랍니다. :)

scott 2022-12-25 17:47   좋아요 1 | URL
요정님에 귀요미 냥이들 보여주세요😍

꼬마요정 2022-12-25 22:37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 크리스마스 잘 마무리 하고 계신가요? 꼬미랑 아이들 귀엽죠? ㅎㅎ
저도 올 한 해 고마웠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꼬마요정 2022-12-25 22:37   좋아요 1 | URL
스콧님 ㅎㅎ 냥 사진 몇 장 투척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