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모든 것은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에스비에스가 27일부터 방송하는 월화 대하사극 〈왕과 나〉의 주제를 뭉뚱그린 한 문장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왕이 아닌 내시다. 조선시대 성종과 연산군을 모신 실존인물 내시 김처선(오만석·사진)을 둘러싼 이야기다.

제작발표회부터 ‘블록버스터급’이었다. 22일 제작발표회가 열린 서울 목동 에스비에스 사옥 13층 홀은 300여명의 기자와 관계자들로 가득 찼다. 퓨전국악 주제가 연주회에 이어 등장인물들이 한복 차림으로 오른 패션쇼가 열렸다. 이례적으로 하금열 에스비에스 사장과 드라마 제작사인 올리브나인의 고대화 대표도 참석해 인사말을 했다. 이 드라마에 걸린 언론과 방송·제작사의 기대치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50부작으로 예정된 〈왕과 나〉는 우선 사극 연출의 대가 김재형 피디의 작품이라는 점부터 눈길을 끈다. 〈용의 눈물〉 〈여인천하〉를 잇달아 성공시킨 그는 2004년 〈왕의 여자〉 이후 3년 만에 이 작품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시달렸던 건강 문제를 훌훌 떨쳐버리고 화려한 재기를 노리고 있다. 〈여인천하〉에서 호흡을 맞춘 유동윤 작가와의 재회가 어깨를 가볍게 해준다.

기존 사극에서 철저하게 주변인으로 그려져 온 내시의 삶을 깊숙이 파고든다는 점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고자 놈들이 기생들 끼고 술 먹으니 기분 좋더냐?”는 조롱을 받으면서도 실은 궁내 보이지 않는 실세인 내시부. 후궁을 중전의 자리에 올리고 왕위에까지 손길을 미칠 정도로 권력 암투의 중심에 자리한 이들의 속살을 낱낱이 까발린다.

그 안에는 “내시도 심장이 뜨거운 사람”이라는 돋을새김 명제가 있다. 사랑하는 여인 윤소화(훗날 폐비 윤씨·구혜선·가운데)를 위해 거세하고 내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처선이 그 한가운데 있다. 사랑 때문에 내시가 되고, 사랑 때문에 궁중 암투에 휘말리고, 사랑 때문에 피비린내를 맡게 되는 처선은 내시로서의 비운을 온몸으로 부르짖는다. 다른 사극에선 주로 왕을 연기했던 전광렬과 안재모도 각각 내시부 수장 조치겸, 처선의 라이벌 내시 정한수 역을 맡아 긴장감을 더한다.

오만석은 “연기에 앞서 내시에 관한 책들을 많이 찾아서 읽었다”며 “다만 드라마에선 내시도 가슴이 뛰는 인간이라는 데 초점을 뒀기 때문에 굳이 목소리를 얇게 내는 등의 연출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광렬은 “내가 왕이 아닌 내시 역을 맡았다고 하니 다들 의아해하더라”며 “이 드라마가 사람들이 잘 몰랐던 내시의 참모습을 재조명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재형 피디는 “요즘 사랑은 꼭 장난감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드라마를 통해 지고지순한 사랑은 무엇인지, 과거의 우리 사랑은 어떤 것이었는지 꼭 보여드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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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보관할 곳이 없군요.)

- 통제이론은 범죄 행위가 충동과 그것을 저지하는 사회적 통제간 불균형의 결과로 발생한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범죄가 증가하는 이유는 범죄의 기회와 대상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 사회와의 결속력이 약하다면 잠재된 비행과 일탈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 통제이론은 범죄 예방 역시, 목표물 강화가 최선책이라고 말한다. 근본적인 충동(범죄자) 보다는 사회적 통제(범죄를 저지르는 기회와 상황)을 조정해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

- 목표물 강화 이론은 정치가들의 호응을 얻어 실용화되었고, 주로 부유층의 요새 심리가 두드러진 나라에서 범죄 발생률을 줄이는 데에 성공했다.

- 이 방법은 범죄의 원인을 다루지 않아 무장 사회를 초래할 수 있고, 범죄의 목표물이 강화되면서 범죄의 대상이 끊임없이 다른 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발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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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름포럼에서 <푸른 눈의 평양시민>을 보다. 씨네21에서 정기적으로 메일링리스트 메일을 받아보고 있지만, 시사회 응모는 처음이었다. 시사회 응모는 떨어졌지만, 표를 나눠주는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볼 수 있었다.

- 표를 나눠주기로 한 분이 늦어, 20분 지각하다. 내용을 이해하는데에 20분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시작 부분이라면 문제가 된다. 아쉽다.

- 마침 주인공 '제임스 드레스넉'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었다.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이혼, 이모집에서의 생활, 가출, 절도와 감옥. 감옥에서 나온 그가 군에 지원하는 것 까지가 하나의 흐름이다. 드레스넉이 불행하다고 생각한 과거로부터 도망친 곳은 군대였고, 불행하다고 생각한 군대로부터 도망친 곳은 신혼의 가정이었다. 하지만, 군대가 신혼의 가정을 갈라놓았고(해외근무), 가정을 잃은 그는 다시 군대로 향한다(재입대).

- 재입대한 그가 배치받은 곳은 62년 한반도 DMZ. 전장의 긴장과 피로 속에서 방황을 이어가던 그는, 부대 근처 홍등가로의 외출을 허락하지 않는 답답한 부대를 떠나, 북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느닷없이 북으로 돌려진 카메라에 빠르게 '오라 평양으로'라는 북의 선전문구가 잡힌다. 그리고 이어진 관객들의 폭소. 최전선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미국 군인이 공산주의 국가에 투항한 이유 치고는 너무 어이가 없다는 것인가?

- 하지만, 드레스넉의 북한행은 그저 수많은 선택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이모집에서 가출을 결정할 때 처럼, 입대와 결혼을 결정할 때 처럼 말이다. 그를 설명하는 것은, 그가 미국에 사느냐 한국에 사느냐 북한에 사느냐가 아니다.
이혼을 회상할 때, 자식을 갖지 않아 다행이었다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드레스넉이고, 북한 외국어대학교에서 공부하며 외교관이 되고싶어하는 아들 짐과 토미에게 큰 소리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드레스넉이며, 노년을 낚시터에서 보내며 자식들이 좋은 교육을 받길 원한다고 소회하는 사람이 드레스넉이다.
일관되게 그를 표현하는 것은 그것 뿐이며, 가출 입대 결혼 이혼 재입대 북한행까지 이어지는 어이없다는 인생역정은 그것을 위한 선택에 다름 아니다.

- 자유민주주의, 사회주의, 국가자본주의, 무엇이라 부르든 그에게 체제는 선택일 뿐이었다. 한 국가의 선전도구로 활용되고, 경제제재 속에서 생활은 불편했으며, 그 만큼의 배급도 받지 못한 대다수의 국민들이 참혹하게 굶어죽는 모습을 목격했지만, 영화에 출연할 기회를 기뻐했고, 자신에게 잊지 않고 배급을 주는 국가를 사랑했고,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대학 강단에서 최선을 다하고, 자식들의 교육에 애쓰고, 볼링이며 낚시로 여가를 즐기고 싶어하는,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뒤섞이기 마련인 선택 말이다.

- 더 좋은 사회에서 살고싶어하는 욕망은, 존중받아야 한다. 점심 먹고 산책하듯 군사분계선을 넘은 드레스넉의 선택이든, 그것을 보고 어이없다며 폭소하는 한국 관객들의 선택이든, 그 무엇이든 말이다.

- 영화는 전반적으로 무척 섬세하게 편집했다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봤던 고작 몇 편의 다큐멘터리와 비교할 뿐이지만, 화면에서 전혀 군더더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 깔끔하고 말끔했다. 감독의 촬영 후기가 무척이나 궁금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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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한겨레)
 


제작비 100억원을 들여 광주민주항쟁의 열흘을 직설화법으로 묘사한 〈화려한 휴가〉는 광주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기보다는 현재의 관객에게 “만약 당신이 광포한 폭력에 부모 형제를 무참히 잃었다면 어떻게 하겠냐”라고 묻는다. 민감한 해석을 피하고 안전한 흥행공식을 광주민주항쟁이라는 소재에 끼워맞췄다는 비판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화려한 휴가〉가 광주민주항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알리는 데 효과적인 전략을 택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영화가 던진 질문에 개봉 8일 만에 2백만명 관객이 20대건 50대건 눈물, 콧물로 답했다. 여전히 뜨거운 역사의 상처를 다루면서 지역과 연령의 경계를 넘어 공감대를 끌어낸 것만으로도 〈화려한 휴가〉의 의미는 얏잡아 보기 어렵다. 지난 13일 서울 삼청동에서 〈목포는 항구다〉로 데뷔해 〈화려한 휴가〉를 두번째 작품으로 만든 김지훈(36·오른쪽) 감독과 주인공 민우를 맡은 배우 김상경(35·왼쪽)을 만났다.

-김상경씨도 시사회에서 우셨다면서요?

(김상경) 지금 또 봐도 울어요. 제 영화는 잘 안 보고, 봐도 “저땐 왜 저렇게 했을까” 객관적으로 따지고 드는 편인데 이번엔 달라요. 제 연기가 보이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너무 슬퍼 보이는 거예요. 그만큼 5·18이 가진 힘,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적인 요소가 큰 것 같아요. 대구, 부산에서 반응이 좋으니까 광주를 걱정했는데 다행히 유가족이나 생존자분들이 좋아하셨어요. 한 시사회에선 중학교 여학생이 서서 대성통곡을 해서 어깨 두드려줬더니 놀라서 더 울더군요.

(김지훈) 역사적 의미를 퇴색시키는 건 아닌지 …. 제가 하고 싶은 거랑 잘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니까요. 부담이 많이 됐는데 시사회 끝나고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 역사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사람을 다루려 했던 점에 호응해주는 게 아닐까요?

-준비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김지훈) 대구에서 자랐는데 저도 광주민주항쟁이 폭동인 줄 알았어요. 대학 때부터 영화로 꼭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내공도 없고 해서 제가 만들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제작사인 기획시대의 유인택 대표가 “‘먹물 냄새’ 잘 빼겠다”고 저보고 해보라는 거예요. 2004년부터 시나리오 작업을 했어요. 증언록, 다큐멘터리, 소설을 보고 유가족을 인터뷰했죠. 극적인 인물들도 많았지만 취지에 맞는 캐릭터로 골랐어요. 군인들의 폭력에 동의할 수 없어 옷 벗은 경찰 이야기도 증언록에 나오는데 시민군 편에 서는 퇴역 장교 박흥수(안성기) 캐릭터는 거기서 가져온 거예요. 금남로 재현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미술감독이 당시 도면을 구해 오고 사진, 영상물과 대조해보며 꼼꼼하게 만들었어요.

(김상경) 대학교 다닐 때도 연극 공연하랴 뭐 하랴 5·18 비디오테이프 하나 못 봤어요. 그래서 평범한 민우 역에 더 잘 어울렸는지도 몰라요. 매니저한테 〈화려한 휴가〉에 대해 듣고 “지금 광주 이야길 왜 한대?”라고 물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어보니까 처음 반까진 웃기고 뒤로 갈수록 참혹해지는 거예요. 이거다 싶었어요. 광주민주항쟁이란 역사 자체가 무겁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기 눌려요. 감독도 배우도. 뭐 하나 잘못하면 욕먹을 것 같고…. 힘 빼는 게 어려웠어요.

-익숙한 규칙들을 많이 가져다 쓰신 것 같아요. 그래서 역사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등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정치적 의견이 없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점도 비슷하고요.

(김지훈) 당시에도 민초들의 관심사는 내 가족의 평안과 행복 아니었을까요? 일반인들이 어떻게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 자기 존재감을 발견하게 되느냐가 광주민주항쟁의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해요. 광주항쟁의 역사적 정치적 평가는 끝났다고 봐요. 무서운 건 당시 사람들이 잊혀져 간다는 거죠. 주인공 민우 캐릭터는 원래 시민군의 대변인이던 윤상원 열사에서 출발했지만 공부할수록 민초의 힘을 제대로 표현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바뀌었어요. 또 영화에 상업적인 요소가 있다고 속물적이라고 보는 건 잘못이에요. 모든 영화는 돈이 들어가니까 상업적일 수밖에 없어요. (익숙한 장치를 넣은 건) 관객이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야 하잖아요. 역사적 사실과 관객이 만나게 다리를 놓아야죠. 관객과 소통하면서 투자자의 위험 부담도 줄여줘야죠. (정치적인 해석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영화감독은 판사도 정치가도 아니에요. 저는 원래 아예 “빵” 총소리가 난 뒤 사람들의 고민과 갈등을 파고들고 싶었지만 광주항쟁을 모르는 세대도 있으니 당시 정황은 요약 정리해 넣었어요.

(김상경) 주요 인물들은 한번도 ‘민주’라는 말을 안 해요. 그런데 이념과 정치적 메시지가 주도하는 영화라면 10대, 20대는 “지루해” 그러고 안 봐요. 30대 이상은 “아는 걸 왜 또 만들어” 그러면서 안 봤을 거예요. 그저 남의 슬픈 얘긴 거죠. 이 영화는 단순하고 무식해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보고 관객이 “열 받네”하면 굳이 영화에서 발포를 누가 지시했는지 의미가 뭔지 선생님처럼 가르쳐주지 않아도 관객이 찾아봐요. 우린 찾고 싶은 마음만 주면 되는 거죠. 그리고 광주항쟁 자료를 보면 모인 분들이 대개 그냥 아저씨, 아줌마들이에요. 무고한 시민을 군인들이 말도 안 되게 괴롭힌다니까, 모인 거예요. 그 평범한 사람들이 너무 화가 나서 나온 건데 빨갱이라고 폭도라고 하니 얼마나 황당하고 외로웠겠어요.

-그런데 왜 주인공들은 모두 표준말을 쓰고 웃기는 조연인 인봉(박철민) 용대(박원상)만 전라도 사투리를 써요?

(김지훈) 이건 한 공간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잖아요. 그동안 광주는 내 일이 아니라고들 생각했잖아요. 그래서 그냥 표준어를 쓴 것도 있고 사투리를 쓰면 아무리 연기 잘하는 배우도 연기가 좀 어색해져요. 박철민씨나 박원상씨는 원래 전라도 말을 잘해요.

-슬픈 장면 앞뒤로 코믹한 장치들을 넣어두셨더군요.

(김지훈) 가장 슬플 때 웃음이 나올 수도 있고 웃음이 나올 때 눈물이 흐를 수도 있죠. 광주민주항쟁 때 시민들은 자신의 슬픔이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지 않도록 애썼어요. 그런 배려와 같은 맥락에서 코믹한 설정들도 넣은 거예요.

-그런데 주인공 민우는 너무 바르기만 한 청년 아닌가요?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나요?

(김상경) 너무 삐뚤어지신 거 아닌가요? (웃음) 첫 장면에서 민우 얼굴이 펑퍼짐하게 터질 것 같잖아요. 뒤로 갈수록 까칠해지죠. 민우는 그저 신애랑 결혼해서 동생이랑 행복하게 살고 싶은 소박한 사람인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사로 변해가죠.

(김지훈) 상경씨가 민우의 얼굴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자신이 알아서 살도 빼고 …. 우린 맛있는 거 많이 먹었는데 미안하죠. 그야말로 창자를 끊어내는 슬픔을 찍을 땐 그 전날 밤을 새고 왔더라고요. 
 
-애국가가 흐를 때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발포하고 아비규환이 되는 장면에선 김상경씨가 진짜 넋을 잃은 듯 보이더군요.

(김지훈) (증언을 들어보면) 더 지옥 같았어요. 그만큼 극한으로 몰고 갈까 하다가 관객이 분노와 두려움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두기로 했어요. 그 장면은 유리창도 깨지고 그래야 해서 딱 한번에 가야 했어요. 상경씨가 뛰어나오는 순간 상경씨 같지가 않더라고요. 동생을 부여잡고 울 때는 한 마리 가냘픈 짐승 같다고나 할까?

(김상경) 진짜 동생이 죽어간다면 다리가 풀리겠죠. 바보처럼 뛰어야 해요. 우는 건지 웃는 건지도 모르는 공황 상태에 빠지겠죠. 넋을 잃어야죠. 망월동 국립묘지에 참배 갔을 때 묘비에서 당시 고교 1학년이던 학생 사진을 봤어요. 초등학생처럼 앳된 얼굴인데 딱 동생 같은 거예요. 그분 생각을 많이 했어요. 금남로 장면에선 저도 모르는 제 얼굴이 나오더라고요. 동생을 병원으로 옮기는 장면을 찍을 때 정말 처음으로 컷이 된 뒤에도 울음이 멈춰지지 않는 경험을 했어요.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거의 다섯 달 내내 광주에 있었어요. 금남로 세트에 있으면 차도 포니고 80년대 풍경인데 거기서 먹고 자고 하다가 서울에 오면 정신이 흐트러지더라고요.

-마지막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오더라고요.

(김지훈) 윤상원 열사가 숨지고 난 뒤 영혼결혼식을 올릴 때 만들어진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에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가요처럼 대중을 사로잡는 정서가 있어요. 꼭 넣고 싶었어요. 살아남은 신애(이요원)의 표정에는 제가 관객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 숨어 있죠. 그거 말하면 영화 보실 때 재미없겠죠?(웃음)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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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우울해하는 친구녀석과 별 생각 없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습니다. '팜플렛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정도면 그냥 볼'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죠. 중국 지아 장커 감독의 <세계>였습니다. 상영관은 꽤 한산하더군요.

- 포스터에서 한 중국인 여성이 비를 맞으며 유럽의 어느 거리를 걷고있길래, 중국식 사랑얘기이겠거니 했지만, 배경은 중국 베이징의 세계공원(각국의 유명한 조형물들을 축소시켜 모아놓은 공원)이었고, 앞으로 사랑하게 될 남여가 아니라, 이미 사귀고있는 남여, 타이성과 타오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 장면 하나. 타이성은 세계공원의 경비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를 찾은 고향 친구, 그는 일자리를 찾아 고향 동생을 데리고 무작정 올라왔습니다. 그에게 공원 이곳저곳을 소개시켜주는 타이성. 그에게 친구 하는 말. "너 제국주의의 수호자가 다 됐구나."
중국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자본주의 국가의 조형물들은 오늘날 자본주의 중국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 장면 둘. 타오를 찾아온 타오의 옛 남자친구. 불안해진 타이성은 사랑을 확인하겠다며 거칠게 타오의 가슴을 파고듭니다. 타오는 화를 내고, 이튿날 브로커들을 만나 위조여권을 팔고있는 타이성의 모습이 잡힙니다.

- 장면 셋. 타오가 일하는 극단에 함께 하게 된, 러시아 배우들. 안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타오와 곧 친해지지만, 안나는 극단을 떠날 생각을 합니다.

- 장면 넷. 타이성은 사채업자의 심부름으로 사채업자의 돈을 받으러갑니다. 그리고, 그와 동행하는 쉬첸. 동행길에 친해진 두 사람은, 다시 만나기로 합니다. 쉬첸의 직장으로 찾아온 타이성. 빽빽히 들어앉은 재봉틀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니, 쉬첸은 견습 재단사들과 함께 요즘 젊은이들에게 유행이라는 춤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타이성은 쉬첸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만, 쉬첸은 곧 프랑스로 떠날거라며, 먼저 떠나있는 남편의 사진을 보여줍니다.

- 장면 다섯. 타이성에게 걸려온 전화. 얼마 전 친구와 함께 그를 찾았던 고향 동생이 수당이 높은 야간작업을 하다 심각한 재해를 당했습니다.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동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종이에는, 돈을 빌린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 장면 여섯. 타오의 극단에서 연 파티. 한 극단주가 타오를 따로 불러내어, 극단을 그만 두고 자신과 함께 대만으로 가면 호강시켜주겠다며 유혹합니다. 끈적한 유혹을 거절하고 화장실로 몸을 피하는 타오. 거울을 바라보는 타오 옆으로 짙은 화장을 고치는 접대여성들이 분주합니다. 그리고, 뜻밖에 안나를 만난 타오는 끝내 울고맙니다.

- 장면 일곱. 몇일 전 부터 극단주와 애정행각을 벌이던 극단 동료가 새 매니저로 취임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동료의 결혼식에서 타오는 우연히 타이성의 휴대폰 문자메세지를 확인하고 맙니다.

- 장면 여덟. 타이성으로부터 떠난 타오를 타이성이 찾아옵니다. 타이성은 타오를 달래보지만, 타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가스에 중독되어 죽은 두 사람의 시체가 동네 사람들에 의해 실려나옵니다.

- 생각 하나.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직접 느끼는 것에는 늘 약간의 오차가 있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았거나, 경험이 많거나, 진지할 수록 그 오차가 줄어들지만, 제게는 꽤나 박한 능력이지요. 물권법이 통과되었다느니, 빈부격차가 심각하다느니, 농촌에 사람에 없다느니, 도시에 일자리가 없다느니, 폭동이 일어났다느니 하는 숱한 풍문들이 이 영화 속에 오롯이 녹아 있었습니다.

- 생각 둘. 사실, 영화는 꽤나 익숙한 풍광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라면, 5공화국을 전후로 해서 제작되고 상영되었을 영화들이겠죠. 중국의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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