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2월 6일 사건의 영향 - 1934년 프랑스 우익의 쿠데타에 붙여」

공동전선은 다양한 가능성들을 열어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공동전선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오직 대중의 투쟁만이 결정할 뿐이다.

위대한 전쟁이론가 클라우제비츠의 멋진 말을 그대로 옮기면, 전쟁은 다른 수단을 가지고 하는 정치행위이다. 이 정의는 내전에도 완벽하게 적용된다. 물리적 투쟁은 정치투쟁의 다른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군사기계 뒤에는 기술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사냥감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소총에 총알을 장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너무 신중한 사냥꾼이 말한다. 그러나 사냥감이 나타났을 때 장전하면 너무 늦는다.

'만약에' 라고 생각하는 것은 투쟁형태가 부르주아계급의 선의에 따르며 계급이해의 비타협성에 따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다시 한번, 프랑스는 어디로?>

경기의 요동은 노동계급이 자본주의를 타도하기에 좀 더 쉽거나 좀 더 어려운 상황을 조성할 뿐이다.

자동적으로 모든 것이 상승했기 때문에 과거의 방식대로 선전, 선거활동, 조직 등에만 치중하면 승리가 저절로 성취될 것이라는 개량주의적 환상이 조금씩 생겨났다.

맑스주의자와 레닌주의자에게 선동은 언제나 대중과 나누는 대화이다.

혁명적 위기가 다가오면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많은 지도자들이 대중의 보수적 경향 뒤로 숨어버린다.

지방자치선거와 의회선거는 계급역관계를 파악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상은 아니다.

노동계급 지도자들은 대중 앞에 혁명적 군력장악의 임무를 계속 제기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총파업의 정치적 의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들은 총파업에 대해서 감히 입도 뻥끗하면 안된다. 총파업을 투쟁수단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곧 혁명투쟁을 부인하는 것이며 이것은 곧 노동계급을 파시즘 세력에게 팔아넘기는 범죄행위가 된다.

기회주의와 모험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현대적 기술로 무장한 군대에 대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주장만큼 공허하고 진부한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군대의 핵심부를 획득하거나 최소한 중립화시키지 않고는 혁명은 승리할 수 없다.

결정적인 것은 단결 자체가 아니라 단결의 실제적 내용이다.

독재의 기초는 노동자 민주주의다.

<결정적 단계>

대중은 행동을 통해서만 배운다. 이들에게는 이론적인 연구를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세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

스탈린은 러시아의 인민전선을 제압했던 10월혁명의 이름으로 프랑스의 인민전선을 지원했다.

<결정적인 순간>

원하든 원치 않든 지구가 계속 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매일 확인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계급투쟁의 법칙들은 우리가 인식하든 않든 독립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혁명계급의 혁명적 공세가 제때에 객관적 요인을 돕지 않는다면 혁명적 상황은 반혁명적으로 변한다.

투쟁전선에 제일 먼저나서고 제일 나중에 물러서는 혁명정당의 도리

<프랑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논조는 정치적 내용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내용인 것입니다.

<중도주의와 제4인터내셔널>

중도주의의 치명적인 질병은 자신의 일반적인 원칙으로부터 전술적 조직적 결론들을 용기있게 도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혁명운동의 역사 전체는 중도주의자들이 이렇게 사실들과 사상들을 가지고 숨바꼭질하는 행태를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혁명가는 정치적 거처를 두 곳에 둘 수 없습니다. 영혼을 위해 부르주아 거처에 있다가 현실정치를 위해 노동자 거처에 있을 수 없습니다. 이중성은 노동자 혁명과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공동전선"은 대중조직들간의 문제일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트로츠키주의와 노동자농민사회당>

분파가 무엇인가? 가능하면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자신들의 올바름을 당에 설득시키려는 목적으로 당내에 생각이 가장 가까운 자들이 일시적으로 규약없이 자발적으로 모인 그룹이다.

정치인의 견해가 애매모호하면 할 수록 그리고 그가 남의 비판을 참는 능력이 적으면 적을 수록 그에게는 날카로운 논쟁이 비하하는 발언인 것처럼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인민전선 비판>과 <랜드 앤 프리덤>

러시아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인민전선 비판>을 읽고 있습니다.
'인민전선'이란, 사회주의정당이 부르주아정당과 공동의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과거 스탈린이 지배하던 러시아공산당과 제3인터내셔널(각국 공산당들의 연합체)가 각국으로 내린 지침이기도 했죠. (중국에서 중국공산당이 장개석의 국민당과 합작한 것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레온 트로츠키라는 혁명가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같이 주도해놓고도 나중에 스탈린에 의해 추방당하고 살해까지 당한 혁명가인데요,
그는 스탈린의 제3인터내셔널이 혁명성을 상실했다며, 진정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해 제4인터내셔널을 창립하자고 주장하게됩니다.

여튼, '인민전선'은 중국 뿐 아니라, 프랑스, 스페인, 등 당시 제3인터내셔널에 가입되어 있던 각국의 사회주의정당이 채택한 전술인데요,
<랜드 앤 프리덤>은 스페인의 그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 귀에 솔깃하지 않나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절대 화해는 없다' 던 러시아공산당이, 각국의 사회주의정당에 부르주아정당과 동맹을 맺으라 지시를 내리다니.. 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스탈린 이사람도 나름대로 숨을구멍은 만들어놓았습니다.
'파시즘'이 그것인데요, 1930년대이면 1919년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던 독일이 재무장에 들어가면서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할 그 즈음일겁니다. 물론, 히틀러 보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선배이긴 하지만.

여튼, 파시즘이 바로 스탈린의 숨을구멍이 됩니다.
'부르주아정당이든 사회주의정당이든, 일단 파시즘부터 몰아내고 보자' 라고 주장한거지요.

'인민전선'을 선택한 여러 나라 공산당 중 하나가 스페인의 POUM(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입니다.
POUM도 스페인의 여러 정당(8개인가 9개)과 연합해 공동정부를 구성하게 되고,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던 프랑코 라는 파시스트군대에 맞서 전쟁을 시작하게되죠.
<랜드 앤 프리덤>의 주인공 데이빗이 그렇습니다. 그는 영국사람이었지만, 스페인이 파시스트에게 넘어가면 영국도 유럽도 파시스트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주장에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여자친구만 남겨두고 스페인으로 떠납니다.

'파시즘부터 몰아내자'
여러분의 귀에도 솔깃하지 않나요? 이것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논리이기도 합니다.

# 1930년대 스페인

1930년대 스페인이 권력의 위기상태였습니다.
위기에 휩싸인 기존 정부를 둘러싸고, 파시스트들 뿐만 아니라, POUM을 비롯한 노동자 세력도 광범위하게 존재했죠. 이들은 붕괴한 공화정 위에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정당들이 공동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이전처럼 서로의 이해를 곧이곧대로 주장하기는 힘들죠. 공동정부 구성이란 곧, POUM이 그들을 믿고 따르는 노동자 세력들을 통제하고 잠재워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혁명의 열기는 사그러들고, 공동정부는 파시스트에 대항한 전쟁을 수행합니다.
POUM에 소속되어있던 당원들은 정부군과는 달리 민병대를 구성해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민병대란, 국가가 소집한 정규군이 아닌 비정규군을 뜻하는데, 이들은 장교도 투표를 해서 뽑고, 중요한 전술과 전략을 토론을 통해서 결정하는 민주성을 보여줍니다.
(여담이지만, 저도 군생활 할 때 차기 분대장을 투표로 뽑았더랬죠. ^^)

민병대는 정규군처럼 훈련을 받지도 못했고, 무기도 부실하지만, 파시스트에 대한 분노로 혁명에 대한 열정으로 끊임없이 세력을 넓혀갑니다.

# 공동정부 구성의 함정

문제는 공동정부 구성이, POUM으로 하여금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제함으로써, 기존의 정부를 위기에서 구출해주었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의 적이었던 파시즘이 어느정도 물러나자, 다시금 POUM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을 선심으로 구해주었더니,
뭍에 올라오자마자 되려 빠뜨리는 격입니다.

결국, POUM은 불법화되고, POUM의 지도자들은 체포되어 처형되죠.
더욱이 POUM의 와해와 함께 노동자 세력이 와해되자, 파시스트 프랑코가 쿠데타에 성공해 기존의 정부를 전복시켜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후 30여년간 스페인에서는 군사정부가 지속되죠.

주인공인 데이빗은 영화의 초반부에 POUM의 민병대에서 전쟁을 치르다가,
팔이 다치는 바람에 마르세이유에서 치료를 받다가 전장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눈치챕니다. POUM이 되려 탄압을 받고 있었던거죠.

데이빗이 다시 전장으로 복귀한 즈음에는 이미 POUM이 불법화 된 이후입니다.
그리고, 정부군이 나타나 POUM의 민병대 마저도 해체시키고, 데이빗의 새 여자친구 블랑카를 살해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배신감에 오열하는 POUM의 민병대원들을 보여주며 끝을 향합니다.

# 스탈린

사실, 스탈린이라는 자는 1917년 러시아의 노동자들이 혁명으로 건설한 사회주의 국가를 접수한 이후(1924년? 25년?),
혁명 당시의 볼셰비키당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게됩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이미 2차 세계대전 전에 파시스트 히틀러와 이면 상호 방위조약을 맺은 바 있고, 공개적으로는 프랑스, 영국, 등과 동맹을 맺었죠. 어떻게든 자신이 장악한 국가를 위협받고 싶지 않았던겝니다.

히틀러와 이면 조약을 맺은 것 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아무튼 그는 프랑스, 영국, 등을 속이기 위해서 '인민전선' 이라는 정책을 각국 공산당에 내려보내는겁니다.

쉽게 얘기해서, 자기가 살자고 남을 이용한거죠.
그는 이미 혁명가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동지를, 그것도 부르주아들에게 판 셈이니까요.
자신의 이해를 위해서, 자신의 통치를 위해서, 그는 동지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영국의 부르주아들도 속인 셈입니다.

# 백미

그래서일까요?
<랜드 앤 프리덤>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켄 로치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영국, 스페인, 독일 3개국이 함께 투자해서 만들었더군요.
모두 스탈린에게 속은 나라들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한가지 더.
보통 소자본으로 만들어지는 노동영화가 TV시리즈물로 제작되었다길래 의아했는데,
스페인 내전을 다룬다한들 POUM의 노동자들, 사회주의자들 보다는, 스탈린의 배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까요 충분히 그럴법 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훌륭한 반공영화인 셈이죠. 조지 오웰의 <1984년>이 그러했듯이 말이죠.

<랜드 앤 프리덤> 케네스 로치 감독, 이안 하트 주연, 109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에서야 마지막편을 시청했네요.
전두환과 노태우가 김대중의 은총을 입어 특별사면 되는 것으로 종영이 되었습니다.

처음 방영할 때는 군 복무 중이었는데,
당직근무를 설 때면, 당직사관의 눈치를 슬슬 보아가며 채널을 돌렸던 기억이 나네요.

역사란, 역사가가 사료를 선택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객관성을 잃어버린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회의 제목이었던 '적과 동지' 는, 어쩌면 <5공화국>을 연출한 제작진의 시각을 그대로 투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뭐 쉽게 얘기하면 그렇습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확실한 적으로, 김영삼은 반쯤 적으로, 김대중은 약간 적으로.
동지는 단연 시청자들이겠죠.

함께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켰고 518 대학살을 자행하며 정권을 장악했던 전두환과 노태우.
전두환의 지명과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노태우.
그런 노태우와 3당 합당을 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해 준 김대중.

그런 그들이 매번 대통령에 당선되어 과거사를 청산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볼품 없는 연극에 불과할겁니다.

참으로 볼품 없는 연극.
그러나, 이 박한 평가는 이 드라마에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마치, '액자소설' 과 같은거죠.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아니, 조지오웰이 <1984년>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라고 했듯이,
입맛에 맞는 과거만을 골라 좋아하는 양념을 쳐놓은 과거란, 어쩌면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누더기가 되었다던 과거사청산 소동이,
전두환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이니, 5공 인사들의 항의서한이니 온갖 헤프닝을 만들어온 <제5공화국>이,
꼭 그렇습니다.

이제 이 드라마에서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시민들이,
청와대에 국정원에 정당을 비롯해 온갖 주요 기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극장에서 잘 짜여진 한편의 연극을 보고나온 사람들은, 얼마간 그 감동에 휩싸여 지낼 것입니다.

보수 대 민주라는 낡은 구도 말이죠.
하지만, 차마 연극을 볼 여유가 없었던 사람들, 아직도 엑스트라에 불과한 사람들은 더 쉬이 진실을 눈치채고 있을지 모릅니다.

다시 한번.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서 진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권력자도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서 진실을 밝히지 못할 것입니다.
밝히는 순간, 그는 더 이상 권력자가 아닐테니까요.

그래서,
진실은 아래로 흐른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 방용석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노무현 대통령,
과거 민주화운동을, 노동운동을 20년 30년 했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무척이나 들먹입니다.

"내가 노동운동 20년 했는데, 너희들처럼 하지는 않았다."
"니들이 노동운동가냐, 폭력집단이지."

29일째 단식농성을 하고있는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에게,
방용석 이사장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과거를 기념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그들이 현실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던지는 과거사 교육이란,
이렇듯 못마땅한 것이었습니다.

드라마 잘 봤습니다.

 


참, "한국 드라마 참 대단해졌다" "한국 역사 많이 발전했다" 호들갑 떠는 분들께, 한마디 더 해야겠습니다.
5공이래봤자 고작 20년 전일 뿐입니다. 정확히 20년 후에 또 이런 드라마가 방영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이 드라마를 시청할 당신의 딸, 아들들이 똑같은 평을 할 것입니다. 20년 전일 오늘날을 비판하면서 말이죠.

역사는 진보합니다. 이 시절을 앞당기려면,
양념된 과거를 기념하기 보다는, 냉혹한 현실에 주목하는 당신이길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범죄를 바라보는 자본주의적 관점

지난 6월 19일,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 GP에서, 근무병 한명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동료 부대원 8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군은 사건 직후 합동조사단을 현장에 파견하고 수사를 진행하였으나, 끊임없이 책임소재로부터 벗어나고 사건의 원인을 은폐하려는 무책임으로 일관하여, 심지어 자본가 정치인, 언론으로부터도 지탄을 받았다.

또한, 자본가 정당인 한나라당은, “참여정부의 대적관이 해이해졌다”며 날뛰었고, 심지어 국방장관 해임, 내각총사퇴와 같은 자본가 정치판의 정치공세로 끌어갔다. 열린우리당 역시, 이번 사건을 군사문화의 탓으로 몰며, ‘병역문화 개선을 위한 특별위원회‘ 라는 부질없는 캠페인을 주장했으며, 민주노동당도 캠페인에서 한발 더 나아가 민간인이 참여하는 ’군 인권감시기구‘ 의 설립을 주장했을 뿐이다.
이들 중 가장 가관인 것은, 단연 군 합동조사단이었다. 이들은 김일병의 성격결함이나 정신병 경력 등을 조사하는데 집중하였는데, 이것은 이들이 자본가 군대 내에서의 범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범죄를 바라보는 관점을 극명하게 드러내주었다.

자본주의 사회를 의심하지 않으며, 자본의 이해관계에만 충실히 복무하는 자본가 계급은,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될 문제의 원인은 결코 분석해 낼 수 없고, 분석해내지 않는다. 이들은 끊임없이, 문제를 자본주의로부터 떨어뜨리려 노력할 뿐이며, 그 결과는 결국, 근본적인 원인의 주위만 맴돌 뿐이다. 캠페인 수준의 생색내기는 오히려 나은 편이며, 더러운 자본가 정치판의 정치공세, 심지어 개인 병력을 들추어내는 조잡함까지 보이고 있다.

이들의 행동은, 자본가들의 그것과 꼭 닮아 있다. 자본가들 역시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끊임없이 하락하는 노동조건과 비정규직화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산재와, 고용불안, 실업과 같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책임지기를 거부하며, 심지어 그것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바쁘지 않은가.

하지만, 이들의 아무리 부산스럽게 소란을 떨며 문제를 진정시키려고 발악해봤자, 그것이 결코 문제의 해결과 요원함은 자연스레 증명이 될 것이다. 가혹행위 금지, 병사 인권 존중, 병영문화 개선과 같은 공문구는 물론이고, 병영 내 시설보강, 인권기구, 상담기구의 확충과 같은 해결책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지리하게 등장했던 해결책들이며, 이런 해결책들이 군대 내 사고사례를 줄이는데 어떤 기여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 노동자들은 잘 알고있다. 최근 2~3년간의 병영 내 연간 자살사고만 해도 70여건에 달한다!

이번 총기난사사건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은폐되어 왔던 병영 내 의문사들, 숱한 자살사고들은, 근본적인 원인에서 동일한 동전의 양면일 뿐인 것이다..

노동자 병사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라

군에서는 이 쟁점과 관련해, GP관련 시설의 전면 재보수, 병사월급 인상, 등과 같은 노동조건 개선안과 더불어, 병사들의 인권을 위해 고충심사 기구의 확대, 등을 제시한 바 있다.

문제를 봉합하기 위한 생색내기가 아니라면, 실제적으로 병사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되는 것을 우리는 환영해야 한다.
병사들에게는 더 많은 휴식시간과 임금이 주어져야 하며, 현재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끊임없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데에 우리는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이러한 노동조건의 개선 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병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더불어, 병사들의 심리적인 압박과 고통, 이에 따른 부적응 사례가 문제의 중심에 놓여있음을 알고있다.
자본가 군대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 병사들에게 동지적 애정을 갖고있는 진지한 선진투사라면, 물리적 심리적인 폭력에 대한 병사들의 고통을, 자본가 언론의 무책임한 논평처럼 단지 문화적 현상으로 치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본가 군대 내에서 노동자 병사들은 끊임없이 장교들과 갈등한다. 그 자체로 모순덩어리이지만, 정치적인 중립을 표방하며 이루어지는 쇄뇌성 정신교육, 효율적인 임무수행을 빌미로 이루어지는 관료적이고 폭력적인 명령체계와 복종에의 강요, 일과시간과 자유시간의 구분이 없는 고통스러운 노동착취,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 마저도 없는 징계와 영창의 위협, 외부와의 완전한 단절, 마지막으로 장교들의 지배체제를 체내화 해버린 노동자 병사들 사이의 또 다른 폭력이 그것이다.
덧붙여, 오랜 군부독재를 경험한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한 조건에서는, 과거 군부가 입지를 마련해왔던 장관과 같은 정부기관의 요직, 국회의원, 국영기업체에서 군부의 입지가 좁아진 이후, 장교들에 대한 진급압박과 더불어 이러한 통제와 착취가 더욱 가속화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주적은 장교들이다.” 라는 병사들의 은어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러한 신체적 정치적 자유의 억압은, 일상적 시기에는 장교에 의한 폭력, 혹은 병사들 상호간의 폭력을 통해 일시적으로 봉합되는 듯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 불완전한 봉합은 휴화산 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의문사, 자살사고, 항명, 수류탄과 총기난사에 이르는 이번 사건으로 각기 다르게 터져나오는 것이다.

정당한 신체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라

하지만, 자본가 군대는 일시적인 노동조건의 개선으로 생색을 내고 상담기구의 확대 정도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면서, 병사들의 자유 확대를 근본적으로 막아설 것이다.

상담기구의 확대란 무엇인가. 그동안 군대에서 시행해왔던 ‘관심병사 분류작업’ 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궁극적으로 신체적 정치적 억압에 저항하는 이들이 봉합을 끊어내는 고리가 되지 못하도록 격리하여, 심리적 회유와 정신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정책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병사들의 자유가 확대되지 않는 한, 그들의 억압을 합리화하는 어떤 말장난으로도 병사들의 저항을 막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군이 국회 조사단에 제출한 ‘비전캠프 - 심리 치료 및 상담 프로그램 - 운영현황’ 만 보더라도, 03년 11월부터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3,000여명이 넘는 병사들의 대다수인 75%가 그대로 ‘복무부적응 상황’ 이나 ‘부대적응 관리병사’ 로 분류되어 퇴소하지 않았는가!

뿐만 아니라, 관심병사 분류작업은 자본가 군대에 입대한 젊은 노동자 투사들을 대중과 분리시키는 계략이기도 하다. 이는 과거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을 선별 분류하여 사업장 내 전환배치, 및 공격적 직장폐쇄, 공단 내 블랙리스트 배포, 등을 자행했던 자본가들의 공격과 완전히 닮아있는데, 이들은 이러한 탄압을 통해 끊임없이 병사들의 자유 확대를 막아설 것이다.

우리는 비정규직화, 폐업과 실업, 산재에 의한 노동자들의 고통과, 열악한 노동조건, 신체적 정치적 자유의 억압에 의한 병영 내 젊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동일한 동지적 애정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이들의 고통과 죽음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병영 내 병사들의 신체적 자유, 사상의 자유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허울 아래 이루어지는 도서 및 음반에 대한 검열을 철폐하고, 정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며, 병사들이 좀 더 자유롭게 사회와 교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군대, 계급적 본질의 폭로

병사들의 정당한 신체적 정치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남북의 군사적 대립구도, 안보논리,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허구와 기만을 꿰뚫고, 반드시 대중적으로 폭로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기만은, 일상적인 시기에 폐쇄된 군대 안에서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미화하기 위한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실제, 복무신조 1항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통일의 역군이 된다.” 에서 드러나듯이, 이들이야 말로 가장 체제 지향적인, 따라서 정치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병사들은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채 중립성이라는 허울을 둘러쓰고, 자본가 체제의 수호, 한미동맹의 강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정당화를 세뇌적으로 주입받고 있는 것이다.

군대는 창설 이래 지금까지 자본가들의 오른쪽 날개를 자임해왔고, 일상적 시기에는 정치적 중립성을 표방하지만, 노동자들의 투쟁이 자본가들의 지위를 뒤흔들 때면, 어김없이 중립성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졌다.
61년 이후 30여년간의 지속되었으며 아직도 정계 곳곳에 남아있는 군부정치의 그림자가 그것이며, 사전에 전문적인 시위진압훈련을 받은 특수전사령부의 공수부대가 80년 광주를 열사들의 피로 물들였고, 대중적으로 폭로된 계급적 투사들에 대한 녹화사업과 삼청교육대, 그리고 90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골리앗 투쟁을 미포만의 군함으로 짓밟은 바가 있지 않은가.

안보논리 역시 마찬가지로 노동자 · 병사들의 입과 귀를 막기 위한 책동에 불과하다. KAL기 사건, 수지김 사건과 같이 이미 폭로된 북풍(北風)사건들 뿐만 아니라, 정치선거를 앞두고 이들은 제일 먼저 북한 정권과의 협잡을 시도했던 것이다.

모병제추진국민연대(이하 모추연)와 같은 시민단체, 소부르주아 학자, 논평가들 일각에서 추진하고 있는 개병제(징병제)에 대한 문제제기와 모병제 추진은, 이러한 군의 정치성과 계급적 본질을 명확히 폭로를 수행하지 않고 드러나는 현상적 문제들에만 치중하면서, 군의 효율적 축소라는 자본가 계급의 관점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우리 노동자들은, 저들의 이권각축장일 뿐인 각국 자본가들의 더러운 군비경쟁을 위해서는 단 한푼의 세금도 보태줄 수 없다.
우리는 오로지, 노동자 병사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에 지지를 보낼 뿐이며, 병사들의 정당한 신체 정치적 자유가 확장시키고, 허울뿐인 안보논리 대신 사회와의 원활한 교류가 보장될 때 만이, 이번 총기난사사건과 같은 사고를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군과 자본가 정당에서 내어놓은 잡다한 캠페인과 인권기구 확대안은 착취받는 노동자의 아들을 교정하고 치유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볼 뿐이지만, 우리는 이들을 동지적으로 바라볼 것이며, 이들이 자본가들의 이해에 동원되는 2중대가 아니라, 진정한 삶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동지적 연대를 보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미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경제학자가 분량이 부족해 할 말을 못한다는건 좀 비약인 것 같은데요?
그가 적은 분량에 대략적인 논리전개만 담아내었다는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공병호씨는 익히 알려진 시장주의자입니다. 구체적인 자료와 논증을 거쳐 충분한 분량을 써냈어도 중심 줄기에는 변함이 없었을겁니다.
그가 동전의 한면만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 역시도 비판의 근거로는 충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시장주의 자체가 생산, 내지 공급이라는 경제의 단면만을 중시하는 논리이니까요. 그는 그 나름대로 자신의 시장주의 원칙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어쩌다 '시장주의' 라는 단어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그에 대한 적절한 비판은 두가지 정도일 것 같습니다. 그의 처방 자체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내다보는 것이 하나요, 사회적 빈곤에 대한 그의 몰상식한 태도와 발언이 둘입니다.
후자야 세심한 배려로 감당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전자의 경우는 좀 힘들겠죠? 물론, 후자는 전자의 영향을 강하게 받습니다.
 
공병호경제연구소에서도 『달러의 위기 세계경제의 몰락』를 추천하고 있더군요. 물론, 연구소에서는 '환율하락이 수출중심국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력' 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후반부에는 거의 20년 가까이 세계경제를 움직여온 통화주의에 관한 논평도 있습니다.
던컨은, '생산과 소비'의 두 축을 '음주와 해독'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한국처럼 소비에 비해 공급이 과잉한 경제상황을, '몸이 해독하지 못할 정도로 음주를 한 숙취'에 비유하고 있어요.
공병호씨의 처방대로라면, 우리는 숙취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음날 아침 해장술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해장술 좋다고 할 수도 있고 나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단, 알콜중독의 지름길이기도 하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