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범주는 남성이 여성의 재생산과 생산을, 결혼 계약으로 실제 여성 개인을 전유하는 이성애 사회의 생산물이다. (51)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주장에 모니크 위티그는 반대한다. 보부아르에 따르면, ‘여성이라는 이 본래 존재한다는 것인데, 위티그는 누구도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여성이라는 원형에 대한 생각이야말로 여성과 남성 이분법에, 이성애 사회=’정상이라는 생각에 힘을 실어 줄 뿐이라고 말한다.

 

성이 계급으로 존재한다고 했을 때, 계급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표식이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쉽고 간단한 표현 양식. 자켓, 정장바지, 짧게 자른 머리카락, 블라우스, 미니스커트, 긴 생머리, 화장, 하이힐. 남성 혹은 여성으로서의 구별이 확인되면, 그에 적합한 대우가 가능하다.

 

여성이 젠더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남성적인 것은 일반적인 것으로 이해되기에, 성의 표식 대부분은 여성에게 주어진다. 여성은 여성다운옷차림으로 여성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일시적으로 그리고 평생에 걸쳐 여성으로서의 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 출산, 양육, 육아, 가사의 책무가 모든 계층의 여성에게 동일하게 부여된다.

 


여성이 국가 최고 자리에 올랐을 때도 마찬가지다. 독일수상 메르켈에게 따라붙는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의 의미는 명확하다. 여성은 국가 수반이라 하더라도 여성적이어야 하며 여성적 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쪽 면에서는 세간의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켰다고 볼 수 있다. 국가 원수들간의 일대일 환담 자리에서조차 여성성의 상징인 핸드백을 포기할 수 없는 그 극한의 여성성’.

 


여성이 쉽게 마녀로 변할 수 있는 건, 흑인이 쉽게 도둑으로 오해받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난 생각한다. 농노 계급만큼 구조화된 계급인 여성 계급이 그의 제안대로 이성애 질서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것인가.

 

















제일 먼저 클릭 경험click experience이 필요할테고, 자신만의 개인적 경험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연대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의식화consciousness를 위한 자발적 학습 과정은 더 큰 변화를 위한 필연 조건이 될 것이다.(73) 자발적 학습이 어려운 경우에는 친구 찬스도 괜찮은 선택지다. 이를 테면,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같은.

 




젠더는 성별 사이의 정치적 대립에 대한 언어학적 색인이다. 젠더는 여기서 특이하게 사용된다. 왜냐하면 실제로 두 개의 젠더는 없기 때문이다. 젠더는 하나뿐이다. 여성. ‘남성’은 젠더가 아니다. 남성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이다. (<관점: 보편적인 혹은 특수한?>, 143쪽)

나는 항상 여성은 농노 계급만큼 구조화된 계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그들이 한 명씩 도망쳐서 이성애 질서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사회계약에 대하여>, 100쪽)

여성은 자신들이 남성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마침내 그 사실을 인정했을 때 여성들은 그 사실을 "믿지 못한다." 그리고 종종 그 날것의 잔인한 현실 앞에서 마지막 의지를 다해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는 것"을 거부한다. (억압은 억압하는 자보다 억압당하는 자에게 훨씬 더 끔찍한 것이다). 반면 남성은 자신들이 여성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앙드레 브르통이 말하길, "우리는 여성의 주인이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지배하도록 훈련되었다. 남성은 그 사실을 항상 표현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한 지배를 거의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의 범주>, 47쪽)

여성은 오직 성, 그 성이다. 그리고 성이 여성의 마음, 몸, 행동, 제스처를 만든다. 심지어 살인과 구타도 성적이다. 정말로, 성 범주는 여성을 꽉 옭아매고 있다. (<성의 범주>, 53쪽)

‘여성’은 우리 각자가 아니라 ‘여성’ (착취 관계의 산물)을 부정하는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형태다. ‘여성’은 우리를 헷갈리게 하고 ‘여성들’의 현실을 숨긴다. 우리가 계급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계급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가장 강력하게 유혹적인 측면(나는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 작가의 첫 번째 임무는 "집 안의 천사"를 죽이는 것이라던 말을 생각한다)을 포함해서 ‘여성’ 신화를 없애야 한다. (<누구도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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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7-16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단발머리님의 글을 읽으니,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해당도서에 대한 글을 읽으니, 이제야 뭔가 막혔던 게 풀리는 것 같고 제자리를 찾은 것 같고 막 그런 기분이 듭니다. 사랑해요 단발머리님. 제 사랑 여기에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 또 살포시 놓고 갑니다. 아니야, 오늘은 쿵- 떨어뜨리고 갑니다.

단발머리 2020-07-16 12:26   좋아요 0 | URL
‘계급‘에 대한 자세하고 적확한 설명은 syo님의 글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전, 이 글 쓰기전에 한 번 더 정독했더라지요.
다락방님의 사랑이 변함없이 입금된 오늘.... 우리는 다시 한 번 부자가 됩니다. 사랑부자!! 😘😍🥰

비연 2020-07-16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 있는 글들이. 쉽게 와닿진 않아도 상당히 대단한 생각이라는 느낌에 조금 콩닥거리는 중입니다.
단발머리님 글 읽으니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고... 강남순 교수의 글도 읽고 계신가요? 좀 현학적이라 사놓고도 망설이고 있는데 펼쳐봐야겠습니다. 요즘 심란하고 우울하여 책이 손에 수이 안 잡히는 세월에 단발머리님이 청량한 종을 울려주시는^^

단발머리 2020-07-16 15:03   좋아요 1 | URL
어렵기는 하지만 전 나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 무척이나 많았지만요.
네, 근래 강남순 교수님 책도 읽고 있어요. 전에 읽었던 책[페미니즘과 기독교]에 비하면 이 책은 좀 더 쉽게 쓰여진것 같아요. 망설이지 않으셔도 될듯 합니다. 제가 종을 울렸나요. 댕댕댕!!! 청량하게 울리려면 어쩌야지요? 디이우웅~~~~~!!! 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0-07-16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재독해야하는데! 재독해야지! 얼른!!

단발머리 2020-07-16 21:38   좋아요 0 | URL
재독합시다! 재독재독재독!!! ㅎㅎㅎ
 
감염도시 - 대규모 전염병의 도전과 도시 문명의 미래
스티븐 존슨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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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님의 리뷰를 읽고감염도시』를 찾아 읽었다. 리뷰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생각한다. blanca님의 리뷰는 그 자체로 훌륭한 한 편의 글이어서 그 글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뺄 필요가 없다. 완벽하게 잘 정돈된 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글을 읽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 책을 읽어봐야겠어. 나도 그 책을 읽어봐야지. 따라읽기로의 행복한 초대. 그렇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1854, 당시 세계 최고의 도시였던 런던에서 콜레라가 발생한다. 불과 열흘 만에 진원지로부터 반경 225미터 이내에 거주하던 사람들 중 500명이 쓰러지고, 특히 브로드 가에서는 열 명 중 한 명 꼴로 사망자가 속출했다(302, 옮긴이의 말). 당시에는 악취가 모든 질병의 원인이라는 독기론이 우세했는데, 의사 존 스노와 브로드가 교구 목사 헨리 화이트헤드는 콜레라에 대한 특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비전문가, 아마추어였음에도 죽음의 도로를 오가는 끈질긴 추적 끝에, 콜레라가 오염된 물을 통해 전파된 수인성 전염병임을 밝혀냈다. 저자는 그들이 완성해낸 감염지도의 탄생과정을 따라가며, 새롭게 탄생한 거대도시가 가진 한계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도시민들의 분투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지어낸 이야기인 소설 속에서 독자들은 감동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만, 소설 아닌 실제 사건의 소설적 재구성이 소설보다 더 큰 혹은 소설만큼의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그런데 몇 안 되는 이동 경로를 통해 근근이 살아남으며 무수한 나날을 보낸 끝에 콜레라균이 행운을 맞았다. 사람들이 역사상 유래 없이 높은 인구 밀도를 보이며 도시 지역에 몰려 살기 시작한 것이다. 4층짜리 건물에 50명이 끼어 살고, 1에이커 땅에 400명이 몰려 살기 시작했다. (59)

 


역사상 유래 없는 인구 밀도를 보이며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런던은 사람들의 분뇨로 가득찼다. 대도시 공간의 필연적 겹침 현상으로 상수망과 하수망이 마구 얽히기 시작했고, 콜레라균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기 복제와 재생산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마구 쓰러져갔다. ‘… 꺼지지 않는 생생한 빛을 내며, 영혼은 시체 속에 갇힌 채 공포에 질려 밖을 본다.’(51)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화이트헤드의 마음속에는 펌프 손잡이를 제거하던 날 세인트루크 교회에 모였던 과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야 왜 그들이 해를 면했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인들이 죽은 자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해서도 아니고, 체질이 강건하거나 생활 습관이 위생적이어서도 아니었다. 여인들의 공통점은 나이 들고 허약하며 혼자 산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물을 길어다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208)

 

질병의 원인이 악취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일면 이해되기도 한다. 못 볼 것은 눈감으면 되고, 고개를 돌리면 피할 수 있지만, 냄새는 피할 수가 없다. 저자의 주장대로 악취로 인한 불쾌감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방어기제이기 때문에, 악취가 질병을 불러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여러모로 쉽고 편리한 방법이었다. 이에 더해 가난한 사람들의 청결하지 못한 생활환경을 그들의 게으름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불결-악취-질병의 연결고리는 더욱 견고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의 높은 유병률을 손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1866 6월 말, 이스트런던은 다시 끔찍한 콜레라에 휩싸였다. 1853년에서 1854년의 참상 이후 최악의 상태로 8월말까지 무려 4,000명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윌리엄 파라는 사람이 나서서, 스노가 주장했던 대로 콜레라 사망자들이 이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상수원을 신속히 찾아냈고, 사망자 대다수가 이스트런던 상수회사의 고객임을 확인했다. 곧 이스트런던의 여과 체계를 살펴보는 역학 전문가가 투입되었고, 콜레라 발생지를 찾을 수 있었다. 존 스노의 선구적 연구는 윌리엄 파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내가 궁금해하는 지점을 저자는 자세히 설명해준다. 정보를 관리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모형을 만들어낸 존 스노와 화이트헤드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들 모형에서 발견할 수 있는 원칙은 무엇일까. 첫번째 원칙은 아마추어와 비공식적 지역 전문가들의 중요성을 믿는 것이고, 두번째 원칙은 학제의 벽을 넘어 사방으로 아이디어들을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도심의 공공장소나 커피숍은 전문 분야와 관심 영역에 따라 엄격하게 나뉜 공간이 아니다. 대학이나 회사 조직과는 다르다. 다양한 직업이 뒤섞이고, 다채로운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디어와 기술을 교환하는 공간이다. 스노는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이었다. 스노가 독기라는 미망을 쫓아낼 수 있었던 것은 여러 분야에 걸쳐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는 현업 의사이자 지도 제작자, 발명가, 화학자, 인구통계학자였으며, 의학 탐정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재다능한 배경을 갖고 있었어도 전혀 다른 종류의 기술을 남에게서 더 빌려 와야 했다. 지적이라기보다는 교분에 바탕한 기술, 헨리 화이트헤드의 토박이 지식이라는 기술 말이다. (264)  

 


서로 다른 배경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도심 공간이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 스노라는 인물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런던으로의 인구 집중과 밀집 현상이 콜레라의 창궐을 불러왔지만, 도시인 스노는 콜레라에 맞서 싸워 결국에는 콜레라를 이겨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성의 힘을 통해서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스노의 감염지도로 막아낼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에겐 긴급 문자 메시지와 확진자 동선만이 주어진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다면 이기는 게 좋겠다. 아주 오래는 아니지만 조금 더 살고 싶다. 그렇다면, 이제 스노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비공식적 지역 전문가들의 지혜를 빌리고, 학제의 벽을 뛰어넘어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 커피숍에만 자주 가지 말고, 살아있는 커피숍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쓰던 중에 나는 거의 20년간의 내 발자취가 바로 이 책을 쓰기 위한 준비였음을 깨달았다. 계기는 전염병에 대한 문화적 대응을 주제로 대학 논문을 쓰기로 한 것이었다. 나는 몇년 뒤 대학원을 다닐 때는 빅토리아 시대의 도시 소설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당시 작가들이 런던이라는 너무나 압도적인 존재를 표현하는 데 얼마나 큰 상상력의 한계를 경험했는가 하는 대목에 관심이 있었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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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7-16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제 자기전에 [야밤의 공대생 만화]를 읽었거든요. 거기에 ‘폰 노이만‘이라는 천재학자가 나와요. 그는 순수수학, 응용수학, 물리학, 컴퓨터공학, 경제학, 통계학, 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대요. 위키피디아에 그의 업적을 검색하면 어마어마하다고요. 저랑은 너무나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저는 본 적조차 없는 엄청난 천재인데요, 오늘 아침 밥 먹으며 단발머리님의 이 리뷰를 읽다가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 같은 스노에 대한 부분을 읽고 이 세상엔 천재가 정말 많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

아무튼 저도 이 책 읽고 싶어 내내 보관함에 넣어두었는데 조만간 사서 읽어야겠어요!

단발머리 2020-07-16 09:24   좋아요 0 | URL
가끔 그런 사람이 있더라구요.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천재적인 사람이요. 전 마야 안젤루 책 읽으면서 검색해보니 그 분도 천재시더라구요. 마지막 설명이 르네상스적 인간이다. 이렇게 되어 있더라구요. 전 그 분들의 업적을 감탄하는 사람이 되어도 참 좋은데,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 같은 인간.... 이런 묘사 들을 때는 다락방님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는.... 하하하!

다락방 2020-07-16 0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ㅜㅜ

단발머리 2020-07-16 09:2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 같은 사람이라니..... 키햐, 근사하죠?
 

















『엄마, 나 그리고 엄마』에 대한 내용이 많을 것 같아 이런 순서로 배치했지만, 제일 먼저 출간된 책은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1969)이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2010년에, 『엄마, 나 그리고 엄마』는 마야 안젤루가 발표한 일곱번째 에세이이자 고인이 되기 전 발표한 마지막 책으로 2013년에 출간되었다. 순위에 집착하는 사람이라서 (왜 그럴까, 진짜), 세 권 중에 제일 좋았던 책 한 권을 고르라 하면새장에 갇힌 새가… 』를 꼽고 싶다.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보니 내용이 서로 겹치기도 하고, 다른 책의 사건이 더 자세히 서술되기도 하는데, 마야 안젤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읽어봄 직하다.

 

나는 엄마니까 아무래도 엄마의 입장에서 읽게 된다. 부모가 자녀의 삶에 좋은 모범이 되면 참 좋겠지만 그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가까이 지내다 보면 장점보다는 약점이나 단점이 더 잘 보이기도 하고, 모든 잔소리 ‘~ 해라‘~ 하지 마라를 종합할 때 부모는 자녀에게 억압이다. 부모도 완전한 인간은 아니기에 자신의 주장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할 때도 있다. 나는 그렇다. 마야 안젤루 어머니의 특별한 점은 여기에 있다. 솔직함. 자신의 실수 혹은 선택에 대해서 자녀에게 솔직하게 말한다는 점.

 

 

너희가 보고 싶었지만, 그곳이 너희에게 가장 알맞은 환경이라는 걸 알았어. 난 끔찍한 엄마가 됐을 거야. 참을성이 없었거든. 마야, 네가 두 살쯤이었을 때 나더러 뭘 달라고 한 적이 있었어. 내가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어서 네가 내 손을 찰싹 쳤는데, 내가 생각하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너를 현관 밖으로 날아갈 만큼 세게 때렸지 뭐니. 널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니야.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거지. 난 지금 사과하는 게 아니라 설명하는 거란다. 내가 너희를 키웠더라면 우린 셋 다 비참했을 거야.“(41)

 


전 세계 공통의, 특별히 흑인 여성에게 더 많이 강요되는 모성애에 대해 그녀처럼 솔직하게 반응하기는 쉽지 않다. 엄마도 인간으로, 여자도 사람으로 인식되는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어쩌면 그것도 여자들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 여자는, 엄마는, 아직 사람이 아닐 수도…) 엄마는 인간이 아니라 초인으로 살기를 강요당한다. 그럴 수 없는데 그래야 한다고 요구 받는다. 마야의 어머니는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던 자신을 어린 자식들에게 고백한다. 난 준비가 안 된 엄마였어. 그 때 우리가 같이 살았더라면 우린 불행했을거야. 난 이 지점이 훌륭하다고 본다. 마야 안젤루의 어머니가 모성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이 아니라, 정확한 상황 판단으로 자신으로서는 최선의 선택,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점.

 

 


아쉬운 점을 쓸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렇게 쓴다. 옮긴이의 말이 좀 불편하다. 마야의 어머니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마야 역시 특별한 사람이다. 강하고 지혜로우며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게다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넘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마야도 그의 어머니도 그런 류의 사람들이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더라도 성공했을 사람이다. 마야 안젤루는 자신의 어머니 덕분에 오늘의 자신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찬사를 들을 만하다.

 

하지만 마야 안젤루의 어머니가 어떠해서 마야 안젤루가 이런 사람이 되었다고, 될 수 있었다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은 후, 더 정확히는 이 책을 번역한 후, ‘자신의 아이를 끝까지 응원하는 엄마가 되겠다'는 옮긴이의 결심이 나는 좀 부담스럽다. 모성이 부족한 사람으로서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다. 위대한 인물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는 말에 대한 반감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냥 내가 삐뚤어진 엄마여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난 그런 결심을 할 수 없기 때문이고, 모든 엄마가 그런 결심을 해야한다고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마야 안젤루의 책을 마친 후 읽게 된 옮긴이의 말은 마야 안젤루의 원래의 의도와는 거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엄마, 나 그리고 엄마』는 전체적으로는 어머니 비비언 백스터에 대한 이야기인데,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자신이 지금 이런 여자로 성장하게 된 것은 사랑하는 할머니와 흠모하게 된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한다.(10)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며, 다리가 불편한 아들과 부모가 키울 수 없다고 해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손자, 손녀를 키우고 있는 흑인 할머니가 자신의 손녀를 사랑하는 법을 묘사한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일부러 그 문단을 옮겨 적지 않았다. 감동을 반감시켜서는 안 될 일이다. 시간이 넉넉치 않아 이 책을 다 읽을 수 없다면 프롤로그 두세쪽이라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필요로 하고, 그 사랑은 꼭 엄마가 아니어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할머니여도 되고, 외할머니여도 된다. 외삼촌 혹은 이모, 고모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한 명, 적어도 이 드넓은 우주에서 한 명은, 아이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느낀다. 너는 똑똑한 아이야. 너는 특별한 아이란다. 네가 그런 아이라는 걸 난 알아. 난 그런 네가 자랑스럽구나.

 

엄마라면 좋겠지만 항상 엄마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랑 사이가 안 좋은 사춘기 때는 이모가, 외할머니가, 교회 삼촌이,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여도 좋지만, 엄마 아닌 사람도 사랑을, 충분한 사랑을 전해줄 수 있다.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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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5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7-15 11:58   좋아요 0 | URL
후회 없는 선택일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다락방 2020-07-15 12: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항상 저희 엄마를 볼 때마다 생각하거든요. 물론 살면서 엄마를 원망한 적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엄마가 된다면 우리 엄마의 절반도 못할거다‘란 생각을요. 저희 엄마는 제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최상의 엄마라는 생각을 해요. 엄마는 저에게 너무 좋은 엄마에요. (아 근데 이 말 쓰는데 왜이렇게 눈물이 날 것 같죠?)

그리고 여동생이 조카와 있는 모습을 보면 또 좋은 엄마 같아요. 실제 여동생의 자식들이 제엄마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너무나 이상적인 엄마인 거에요. 그래서 동생을 볼 때마다 ‘나에게 애가 없는건 저런 엄마가 결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기 합리화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그래서 저는 제가 이모인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저한테 가장 잘 맞는 역할이 이모가 아닌가 싶어요. 때로는 엄마인 적 없고 엄마일 수 없다는 게 삶에서 무언가 놓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하지만, 그러나 제가 제일 잘 할수 있는건 이모인 것 같아요.

단발머리님, 그거 너무 좋잖아요. 한 생명이 태어나고 그 생명이 아기에서 어린이로 청소년으로 그리고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옆에서 함께 겪는다는거요. 저는 그것이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너무나 커다란 축복이 아닌가해요. 그래서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양육자도 성장할 수 있는 것일테고요. 저는 비록 이모이지만, 그래도 조카가 있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직 마야 안젤루 한 권도 안읽었는데, [엄마, 나 그리고 엄마]도 살래요. 읽어보기도 전부터 어쩐지 울것같지만 말예요.

잠자냥 2020-07-15 13:24   좋아요 0 | URL
이 댓글은 웬만한 포스팅보다 좋네요. ㅎㅎ

단발머리 2020-07-15 19:08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댓글 읽다가 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다락방님 어머님도 생각나고, 다락방님 동생분도 생각나고, 물론 저희 엄마도 생각나고요.

좋은 엄마를 만나고, 그 엄마와 친밀한 관계를 오래오래 맺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인것 같아요. 저는 다 그런 줄 알았어요. 대학에 가서야 저의 엄마가 오히려 특별한 경우라는 걸 알았어요. 한편으로는 한국의 진정한 어머니 상과 같은 엄마에게 많이 미안하고요. 엄마의 희생 때문에 오늘 내가 이렇게 편하게 산다 생각할 때가 많아요. 사실이 그렇기도 하구요.

저는 제가 엄마니까.... (사실 아직도 어색해요. 제가 엄마라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좋은 엄마가 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어렴픗 알것 같아요. 사랑에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고요. 하지만 이제는 큰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야 엄마를 행복하게 해드릴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되요. 그래서. 저는 엄마한테 자주 가요. (응?!?)

모든 이모가 좋은 이모는 아니거든요. 근데 다락방님은 좋은 이모에요. 앞으로도 타미는 다락방님을 통해서 다른 세상, 다른 세계에 대해 배우게 될 거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게 될 것 같아요. 좋은 이모, 좋은 고모, 좋은 외할머니, 좋은 할머니, 삼촌, 할아버지가 아이에게는 필요한 것 같아요. 한 인간이 인간으로 자라게 하는데요.

제 친구는 전업주부인데 같은 동네 사는 고등학교 친구의 아이를 오후 시간에 돌봐줘요. 특별히 뭐를 해 준다기 보다 안전하게 지켜주는 거죠. 같이 있어주고요. 만날 때마다 제가 훌륭하다고 칭찬을 해요. 그 친구는 혈연적으로 연결된 것도 아닌데 그 아이의 이모가 되기로 한 거니까요. 우리 사는 세상이 이렇게 확장되는구나 감동이 되요.

이 책은 너무 좋은 책이라 뭉클한 구석이 많으니 특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0-07-15 19:07   좋아요 0 | URL
그래서, 다락방님 댓글은 따로 페이퍼로 나와야한다고 전 생각합니다^^
 




 













인간은 단지 숨을 쉬고 심장의 고동을 울리는 것만으로도 다른 누군가에게, 그리고 지구 전체의 대기와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44)

 

 

어제 기사를 읽다가 일반인 인터뷰를 보았다. “공적인 장에서 애도를 하는 글을 올리고 고인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를 반복해 적는 것은 피해자를 향한 폭력이라는 글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고, 어쩌면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으니 모르는 일이다. 처벌받지 않았다고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무책임했다는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지.

 

하지만, 묻고 싶다. 내 슬픔이 피해자를 향한 폭력인가. 알라딘은, 알라딘 서재는, 이 공간은 공적인 공간인가. 아니면 나 혼자 일기 같은 걸 끄적이는 나만의 공간, 사적인 공간인가. 나는 여기에, 슬프다는 말조차 할 수 없다는 말인가.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고인을 물어뜯기 전 숨고르기를 하는 언론의 작태를 바라보면서, 그의 공적과 희생과 평생을 부인하기 위해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는 언론의 야만적 얼굴 바로 앞에서, 나는 슬퍼할 수도 없단 말인가.

 


고마웠던 사람의 죽음을, 의지했던 사람의 죽음을, 그의 심장 고동이 멈추고, 우리의 세계와 우주 속에서 영원히 사라졌음을, 슬퍼할 수도 없단 말인가. 슬퍼해서도 안 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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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7-11 1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다른 인간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는 것마저 비난하는 것은 정의라는 이름이 폭력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각자의 신념과 가치관이 존중되어야 하는 만큼, 각자의 감정 역시 같은 이유로 존중받아야 할 것입니다...

단발머리 2020-07-12 16:43   좋아요 1 | URL
조용한 하루, 딱 하루가 이렇게 어려운건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불어닥칠 일들이 걱정스럽기도 하구요.
 




 













『레베카』를 읽었다. 레베카는 실제로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작품 전체를 주도하는 인물이다. 아름답고 똑똑하며 자신만만한 맨덜리 저택의 안주인.

 


『나의 사촌 레이첼』을 3월에 읽었다. 도서관책으로 읽었는데, 단숨에 다 읽고 바로 책을 구입했다.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한 문장, 한 문장씩 아끼면서 천천히 읽는다. 『레베카』를 시작하면서도 최고의 자리는 『나의 사촌 레이첼』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렇게 차분히 소설을 따라 읽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알 수 없는 것. 레이첼과는 또 다른 매력의 레베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최고의 작품을 꼭 하나만 골라야 하나.

 


















나는 그런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의 소개로 『제인 에어』를 알게 된 그 날부터 내게 최고는 제인 에어였고, 제인 에어였으며, 영원히 제인 에어여야 했다. 샬롯 브론테의 『빌레뜨』를 읽으면서 제인 에어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원하던 바는 아니었지만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샬롯 브론테가 샬롯 브론테와 싸우고 있었다. 끝내 승부는 나지 않았다. 『빌레뜨』는 『제인 에어』만큼 좋았고, 『레베카』는 『나의 사촌 레이첼』에 못지 않았다.  

 


강력한 아우라를 풍기는 레베카를 아직 만나기 전, 작품이 끝날 때까지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는 주인공 가 등장한다. 이 세상 어디 하나 기댈 곳 없이 가난하고 파랗게 젊은 여성. 하녀는 아니지만 하녀의 일을 해야 하는 여성. 고단하고 지루한 삶을 살아가던 그녀에게 왕자님이 나타난다. 재투성이 그녀와 드라이브를 즐기고 함께 식사를 한다. 그녀로서는 어쩔 수 없는, 그래서 더욱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별을 목전에 두고 그는 그녀에게 청혼한다. 그녀는 가난으로부터, 떠돌이 생활로부터, 가족 하나 없는 불쌍한 처지로부터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맥심과 결혼한다.

 

그와 함께 돌아간 맨덜리에는 저택의 안주인이었던 레베카, 드윈터 부인의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 새색시 는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에 더욱 더 위축된다. ‘와 맥심의 결혼 축하 파티를 준비하는 장면에서 이런 면이 특히 도드라진다. 근처의 마을 사람들 대부분을 초대하는 성대한 파티를 준비하면서 맨덜리 저택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로 모두 바쁘게 움직인다. 가구를 재배치하고, 홀을 들꽃으로 장식하고, 음식을 장만하고 악단을 접대한다. 드윈터 부인, 마님인 는 무슨 일을 해야할까.

 


는 할 일이 없다. 댄버스 부인이 예전 파티의 세세한 것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어 파티 준비를 총괄하고, 하인들은 각각 자기의 일을 하고 있는데, ‘는 할 일이 없다. 그저 예쁘게 꾸미고 앉아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것이 에게 주어진 일이다. 고된 육체 노동의 무게를 무시하려는 뜻은 전혀 없지만, 할 일이 없는 의 처지 역시 서글퍼 보인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하인들의 마님, 저쪽으로 조금만 비켜주세요를 들으며 미안해요를 연발하는 힘없는 마님. 친하지 않은 사람들을 초대해야만 하는 파티에서 무슨 옷을 입을까, 무슨 가발을 쓸까, 어떤 화장을 할까,에만 신경 쓰는 삶이다 보니 그녀는 더욱 맥심에게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어느 현자가 말했던가. 우리 인생에서 연애는 5프로 정도라고. 5프로에 목매는 가 안타깝고, 맥심의 기분을 살피는 가 안쓰럽다. 흥미롭고 인상 깊은 장면들은 아직 레베카를 읽지 않은 '부러운' 사람들을 위해 남겨 둔다. 읽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시라.

 


부푼 기대를 안고 시작했던 『레베카』를 한 번 더 읽고 싶다. 『나의 사촌 레이첼』처럼 『레베카』도, 영원한 나의 읽고 싶어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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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0-07-08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의 사촌 레이첼보다 레베카가 훨씬 좋아요.

단발머리 2020-07-08 19:22   좋아요 1 | URL
비밀입니다만...... 저는 5.5 : 4.5의 비율로 나의 사촌 레이첼이 더 좋아요.

비연 2020-07-08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사촌 레이첼도... 보관함에 푱... 정말 이러시깁니까..ㅜㅜㅜㅜ

단발머리 2020-07-08 20:11   좋아요 0 | URL
저도 아까 <팬더믹패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더하기 <사라진 후작>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anca 2020-07-08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읽으셨군요. 저는 올해 대프니 듀 모리에를 안 게 참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메이카 여인숙>은 또 어떨까 기대중이랍니다. 자서전도 남겼다는데 그것도 읽고 싶어요. 그냥 이 사람은 소설을 만드는 게 아니라 어떤 이야기가 이 사람한테 떨어진 느낌이에요. 등장인물들이 다 살아 있어요.

아, 나 <빌레뜨> 읽어야 하는 걸까요? 이 와중에 침이..죄송해요. 저거 빙수인가요? 저 간헐적 단식중이란 말이에요. ㅋㅋ

단발머리 2020-07-08 22:15   좋아요 1 | URL
저도 대프니 듀 모리에가 올해의 발견이에요. <자메이카 여인숙>도 읽고 싶은데 좀 기다렸다가 블랑카님 읽으신 후에 부러움을 받으면서 읽고 싶습니다. 블랑카님 읽으신 현대문학 단편집도 남아있구요.

아... <빌레뜨>는 전 아주 좋았어요. 샬롯 브론테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구요. 샬롯 브론테의 작품이 얼마 안 되기도 하지만, 아무튼 추천하고 싶은 소설입니다. 저거는... 과일빙수입니다. 전 팥빙수 더 좋아하는데 일행이 꼭 과일빙수여야 한대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7-08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레베카> 쪽이 훨씬 좋았습니다! ㅎㅎ 아마 단발머리 님은 로맨스가 있는 쪽을 조금 더 좋아하시나봐요. ㅎㅎ

단발머리 2020-07-08 22:19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인형> 페이퍼 읽고 나서 저도 그 책 샀거든요. 아직 다 읽지는 못했는데, 장편을 좋아해서 <나의 사촌 레이첼>을 읽게 되고, <레베카>를 이어 읽게 되었네요. 잠자냥님의 의견은 옳습니다. 저는 로맨스가 있는 쪽을 더 좋아해요.
하나만 고르라면......아, 하나만 고르라면,의 이 압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나의 사촌 레이첼>입니다. 아이 러브 레이첼, 아이 러브 필립!!!

Breeze 2020-07-0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베카>나 <나의 사촌 레이첼>이나 대프니 듀 모리에의 작품은 정말 재미있죠.
그 뒤로도 몇 권을 더 읽었는데,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샬럿 브론테의 <빌레뜨> 읽고 싶더라고요. ^^

단발머리 2020-07-09 17:32   좋아요 1 | URL
사실 <레베카>의 작가가 누군지도 몰랐거든요. 대프니 듀 모리에를 알게 되어 너무 행복합니다.
전 <빌레뜨>가 아주 좋았거든요. 추천하고 싶은 소설입니다.

유부만두 2020-07-10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좋아요, 전 제인 에어가 최고인데요.... 레베카....

단발머리 2020-07-12 16:43   좋아요 0 | URL
저도 제인 에어가 최고에요. 레베카도 좋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