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 홈(Fun Home)'은 저자가 살았던 Funeral Home을 말한다. 벡델 장례식장의 애칭이다. 아버지는 가업을 이어 장례업을 운영했지만 작은 마을인지라 수입이 적어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어머니는 뛰어난 연극배우이자 교사였다. 천재 예술가 앨리슨 벡델의 출현이 가능했던 건 예술적 조예가 깊었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앨리슨의당신 엄마 맞아?』를 읽으면서는 그녀의 엄마를 원망했다. 그녀는 왜 앨리슨에게 그렇게 차갑게 대했을까? 엄마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딸에게 왜 그렇게 무심했을까? 나 역시 엄마이고, 하나에서 열까지(이건 아닌 것 같다. 하나에서 열까지는 아니다. 하나는 잘 하겠지. 적어도 하나는), 하나에서 아홉까지 부족한 엄마지만, 앨리슨의 엄마가 앨리슨의 감정을 일부러 모른 척 하는 부분에서는 좀 화가 났다. 마지막 부분, 앨리슨이 완전하게 엄마에게서 벗어날 때, 앨리슨은 그녀의 엄마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닫는다. 그 즈음에는 나도 마음이 풀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녀의 엄마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고 할까. 박물관처럼 집을 꾸미고 완벽한 정원을 추구하는 독특한 취향의 남편과 시부모, 그리고 자신의 아이 셋을 돌보면서 산다는 것.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시댁 식구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에 산다는 것. 연극무대에 서서 빅토리아 여왕을 연기하고, 그리고 재봉실을 서재로 삼아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는 것. 사람의 지성과 감정, 그리고 육체적 에너지는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마법의 샘이 아니다. 모든 일을 그런대로 잘해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일을 다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 생각엔 그렇다.

 


자신의 커밍아웃과 어머니의 이혼 요구, 아버지의 죽음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는 떠나버린 아버지와의 추억을 곱씹는다. 그가 좋아했던 일들을 기억하고, 그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감춘 듯 하지만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듯한 그의 사진을 발견하고, 그가 남긴 편지를 다시 읽는다. 아버지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뭉개는 게 주특기인 사람이었다(71). 아버지는 책 속의 문장을 가지고 자신의 심경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정도가 아니라, 통째로 그 문장을 가져다 썼다. 아버지가 사랑한 책들과 아버지가 추천한 책들이 열쇠가 되어 그의 유추를 돕는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이런 책들이 읽고 싶지 않다면, 앨리슨의펀 홈』을 제대로 읽지 않을 거라 말해도 되겠다. 나마저도, 심지어 나마저도 책장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을 찾아 책상에 대기자세로 놓아두었다. (물론 이번이 세번째이기는 하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좋은 책의 제1기준을 만족시키는 책. 책 속의 책을 궁금하게 하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앨리슨 벡델은 여성 퀴어 서사 분야의 개척자로, 그래픽 노블 작가이다. 1983년부터 25년에 걸쳐 신문에 연재한 <주목할 만한 레즈비언들(Dykes to watch out for)>로 널리 알려졌고, 『펀 홈Fun Home』은 그의 영웅이자 영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에 대한 회고록이다. 『당신 엄마 맞아? Are you my mother?』 역시 자전적 서사이며 현대 여성의 표본인 어머니에 대한 회고록이다.



기본 골격은 아주 어릴 적 어머니와의 추억을 시작으로 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복합적 감정과 창작의 어려움을 겪는 작가가 심리 치료를 받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어머니와의 관계 변화가 그녀의 꿈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한다.



버지니아 울프, 에이드리언 리치, 실비아 플라스의 작품과 수전노, 소야곡, 로얄 패미리 등의 연극을 비롯해 도널드 위니캇과 앨리스 밀러, 프로이트, 라캉 등의 정신 분석학 개념들이 그녀의 고민에 어떤 답을 주었는지를 보여준다. 목차는 이 책이 여성주의에 대한 저자의 연구 결과일 뿐 아니라, 스스로 환자인 자기 자신을 치료하려는 열정과 치열함을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이 읽는 책을 보여준다. 그대로 옮기고 그대로 그린다. 번역자는 그 부분을 한글로 바꾸는 수고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읽고 싶은 책이 쌓여간다.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을 살 때(아무런 기억은 없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살게 되었을 때), 전폭적인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돌봐주는 외부의 존재가 없다면 인간은 생존할 수 없다. 아기는 절대적으로 외부의 존재에게 의존한다. 외부의 돌봄은 물질적, 육체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기에게 필요한 것은 젖, 분유, 우유, 빵과 밥, 그 이상이다. 외부 세계의 사람들 중 완벽한 존재가 되기를 강요 받는 엄마라는 입장에서 읽을 때, 내게 그런 존재였던 엄마를 생각했다. 딸을 둔 엄마로서, 평생 동안 엄마에게 인정받고자 애쓰는 딸의 고통이 느껴져 마음이 짠했다.



엄마가 천재가 아니라서 감사했다.(사실 엄마에겐 천재성이 다분하다) 내가 천재가 아니라서(당연한 말씀을), 우리 딸이 천재가 아닌 것 같아서(10대니까 가능성을 아주 조금은 남겨두자) 감사했다. 그녀의 괴로움은 그녀가 천재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그걸 보여준다. 문제는 아버지도 천재, 어머니도 천재라는 것. 천재 병목 현상. 천재 쏠림 현상.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슬비 2020-05-18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계획이 있는책이라 나중에 책을 읽은루에 페이퍼을 읽어야겠어요.😊 선 좋아요~~

단발머리 2020-05-20 19:19   좋아요 0 | URL
네, 보슬비님~~ 보슬비님께도 좋은 독서의 시간이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공쟝쟝 2020-05-27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벡델은 벡델테스트와 벌새 시나리오집 인터뷰로 알게되었어요. 이렇게 단발님 페이퍼로 만나니 반가워요. 아직 읽진 못했지만, 꼭 읽어보고 싶은 책 목록에 껴두렵니다

단발머리 2020-05-27 08:35   좋아요 1 | URL
전 벡델테스트가 존재한다는 것도 이 책 읽으면서 알게 되었어요^^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공쟝쟝님께도 유익하고 즐거운 독서시간이 되시길요! 씨 유 순!
 
 전출처 : 단발머리 > 5. 18 광주

5. 18. 광주의 희생이 없었다면... 정권교체도 K방역도 전수조사도 BTS도 없었을 것이다.
우린 모두 광주에 빚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당신을 두근거리게 할
이 시대의
스테디셀러 레즈비언 작가, 앨리슨 벡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상적/일탈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여러 가정은 여성을 좋은 여자/나쁜 여자로 이름 붙이는 데 일조하면서 여성 섹슈얼리티를 두 범주로 나눈다. (237)


보다 자세히 검토해 보면, 여성들간의 구분이 그들의 성적 활동에 근거함을 알 수 있다. 집안의 여성들, 즉 한 남성의 보호 아래 그를 위해 성적 서비스를 하는 여성들은 여기서 베일이 씌워지는 존중받을 만한여성들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한 남자의 보호와 성적 통제 아래에 있지 않은 여성들은 공공의 여성들’(public women)로 지정되고 따라서 베일을 씌우지 않는다. (『가부장제의 창조』, 241)



남성은, 여성을 결혼 제도 속에 보호해야 하는 좋은여자와 결혼 제도 밖의 부도덕한 나쁜여성으로 구분했다. 여성은 처녀와 창녀로 나뉘었다. 미국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모든 흑인여성은 나쁜여자로 범주화되었다.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피부색으로 그들의 습관, 성격, 성향이 유추되었고, 이는 동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 백인남성, 백인여성, 흑인남성 그리고 흑인여성에게 강력한 힘으로 작동했다.   


백인여성은 백인남성보다 자연에 더 가까운 존재로 여겨졌는데, 이제 그들보다 더 자연에 가까운 존재가 등장하게 되었다. 흑인은 백인보다 동물에 더 가까운 존재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흑인여성은 동물과 가장 비슷한 존재로 여겨졌다. 아프리카 여성 사라 바트만이 유럽사회에 동물처럼 전시되는 과정을 통해, 흑인여성과 백인창녀의 이미지가 연결되었는데, 이는 생식기 질병으로 구체화되었다(255). 19세기 전반 미국 남부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 흑인노예여성 성매매를 통해, 흑인여성은 백인여성의 대립적 존재가 되었다. 흑인 집단 전체가 창녀가 됨으로써 백인 여성 전체를 처녀로 만들어 준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남부의 오래된 노예제 사회에서 점차적으로 백인여성과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의도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길러졌으며) 바로 이 때문에 애첩인 노예로 매우 중시되었던 아름다운 젊은 혼혈여성 (백인 신사의 손에서) 가학적으로 다루어졌다는 사실만 보아도 분명하다. (239)


첩과 번식용 여자라는 역할은 노예제의 마지막 10년 동안 노골적인 성매매 형태로 발전했다. 가장 예쁘고 백인에 가까운노예를 뉴올리언스 시장에서 대놓고 성적인 용도로 팔았다. 이때 쓰인 무신경한 용어가 팬시걸이었다. 포르노 문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인-노예 관계의 도착 환상이 현실에서 이루어졌다.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258)



이성은 인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감정이 옳고 그름을 훨씬 더 명확히 드러내준다. 특정한 상황에 대한 이해는 사실과 판단에 근거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상상이 상황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여성은 침입자로 여겨지는 수정란을 10개월 동안 배에 품고 다닌다. 갖은 어려움과 죽음의 위기를 넘어서면 타자였던 아이와 물리적으로 분리된다. 원치 않은 아이였을지라도, 죽도록 미워하는 이의 아이임이 분명하다 할지라도, 반경 2m너머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가득 찰 때, 자신도 모르게 아이와의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남성은, 백인 농장주는, 백인 농장주의 아들과 백인 관리자들은, 범죄(강간)의 결과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 한다. 알 필요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본다. 눈에 띄게 하얀 피부를 가진 아이. , , 입의 이목구비가 자신을 똑 닮은 아이. 그 아이를 또 다시 잔혹한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 아이를, 그 아이의 아이를, 이젠 거의 백인에 가까운 그 아이를 노예시장에 내다 판다. 팬시걸, 아름다운 젊은 혼혈여성.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추구해도 될 때, 그것이 범죄인가 아닌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돈이 된다면, 그리고 그 순간 즐겁기만 한다면 일말의 가책은 한 잔 술로 털어버리고 말 일이다. 아니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가책을 느낄 수 없는 구조였고, 가책을 느낀 사람이 있었다면, 그런 사람들이 있었더라면, 흑인노예여성 매매가 산업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에게 희망이 있는가. 인간 남자에게 희망이 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