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 하 소시민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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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발랄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추리물이어서 대만족한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은 학원물 추리소설 계열이다.
학교 배경이니만큼 사건이 너무 무겁지 않고, 약간의 로맨스와 우정이 양념처럼 뿌려져 있다.
'구리킨톤'은 밤으로 만든 일본의 화과자인데 밤 경단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극중에는 서양의 밤 디저트인 '마롱글라쎄'도 모티프로 쓰이는데, 여주인공 오사나이가 디저트 마니아여서 다양한 디저트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같은 소시민 시리즈인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과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래서 제목에 디저트가 항상 나온다.
상,하권으로 구성되어 분량이 긴데도 구성이 절묘해서 지루하지 않고, 두 개의 풋풋한 연애가 교차되면서도, 주인공들이 지향하는 '소시민'의 컨셉이 흥미로워서 여러모로 완성도가 높았다.
학교에 다니면 누구나 똑같이 취급되는 문화가 있고, 튀는 아이는 경계하는데 그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랄까. 나도 학창 시절 소시민이 되지 못해 괴로워하면서도 그렇다고 막 섞이는 것도 싫어했던 기억이 있어, 공감도 갔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빙과>로 대표되는 고전부 시리즈도 그렇고, 다채로운 색깔은 가진 작가다. 팬 인증.
 
상, 하 권의 표지 컬러가 갈색 계열이지만 미묘하게 다르고 일러스트도 훌륭.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과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은 과거 노블마인에서 나왔는데 절판되었고,
최근 엘릭시르에서 새로 냈는데 시리즈로 소장하기 좋아서 다시 사야겠다 결심.  

 

 

오사나이의 입술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정말이야. 고백을 받고 기뻤어. 우리노는 왜, 제법 멋지고 자신감이 넘치잖아. 그 자리에서 사귀기로 했어. 난 궁금했거든.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피가로?
"사랑을 해보려고, 우리노를 뒷바라지했어, 연인이란 그런 건 줄 알았거든. 행동이 마음을 키운다고 생각했어. 제법 잘 하고 있었다고 믿었는데. 하지만 내 행동을 우리노가 어떻게 보았는지…… 아까, 고바토가 본 대로야. 내 바람은 헛수고였어. 나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어."
신문부 뒤에 유난히 오사나이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던 이유가 이건가.
221p

오사나이도 말했다.
"호박에 침주기. 그래, 나도 우리노하고 사귀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
딱딱한 미소.
"얘 참 시시하다고."
224p

우리가 소시민을 표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의식 과잉 때문이다. 혼자 있으면 뼈저리게 느낀다. 하지만 오사나이와 함께 있으면 그 비참함이 가벼워진다. 오사나이는 나의 자만심을 용서해주고, 나는 오사나이의 자만심을 응시한다. 상부상조라고 이름 붙인 어린 자아와, 그래도 소시민을 지향한다는 방침이 서로 충돌해, 우리는 더 이상 함께 있을 수 없었다.
225p

‘소시민’이란 평범해지기 위한 슬로건. 다시는 고립되지 않기 위한 방침. 나는 쓸모없으니까 그냥 내버려두라는 백기.
그런 슬로건을 삼 년이나 내걸고서야 깨달았다. 정말 평범해지고 싶다면, 마지막 순간에 자아를 꾹 눌러 담는 데 그런 슬로건은 필요 없다. 백기를 흔들수록 본심과의 간극이 군소리가 된다. 마음속으로 상대를 우습게 보는 마음이 쌓여서 식어간다.
그게 아니다. 필요한 것은 ‘소시민’의 가면이 아니다.
단 한 사람, 이해해줄 사람이 곁에 있다면 충분하다.
"일 년이나 걸려서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네."
오사나이가 중얼거렸다.
227p

벽에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판매 개시"라는 종이가 붙어 있다. 이게 그건가 생각하고 있는데 오사나이는 메뉴를 손에 들고 집중해서 쳐다보고 있었다. 어찌나 심각한지 무슨 암호라도 적혀 있는 줄 알았는데, 겨우 손에서 떼고 한숨과 함께 한다는 소리가.
"아이스크림 세트는 다음에 먹어야지."
혼잣말이다. 오사나이라면 구리킨톤과 아이스크림 둘 다 태연히 먹어치울 수 있을 텐데, 무슨 걱정이지? 혹시 오사나이만의 미학이 있는 걸까?
239p

그냥 먹기에는 떫은 밤을 누구나 사랑하는 디저트로 만드는 방법.
삶아서 곱게 빻아 반죽해서, 설탕을 넣어 덖은 게 구리킨톤.
조금씩 진한 시럽에 재워 어느새 알맹이까지 달콤해지는 게 마롱글라세.
잘 알겠다.
오사나이가 어쩐지 울적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바토는 어느 게 좋아?"
246p

"맞아. 난 고등학교에 들어온 뒤로 처음으로 진정한 복수를 했어.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은 기껏해야 분풀이 정도였고,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은 방어 수단이었어. 복수란 게 그런 게 아니야. 복수란 상대에게 패배감을 심어주고 자기 행동이 어리석었다는 걸 깨닫게 해서 본인이 진심으로 무력하다고 믿게 만드는 거야."
2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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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 상 소시민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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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발랄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추리물이어서 대만족한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은 학원물 추리소설 계열이다.
학교 배경이니만큼 사건이 너무 무겁지 않고, 약간의 로맨스와 우정이 양념처럼 뿌려져 있다.
'구리킨톤'은 밤으로 만든 일본의 화과자인데 밤 경단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극중에는 서양의 밤 디저트인 '마롱글라쎄'도 모티프로 쓰이는데, 여주인공 오사나이가 디저트 마니아여서 다양한 디저트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같은 소시민 시리즈인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과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래서 제목에 디저트가 항상 나온다.
상,하권으로 구성되어 분량이 긴데도 구성이 절묘해서 지루하지 않고, 두 개의 풋풋한 연애가 교차되면서도, 주인공들이 지향하는 '소시민'의 컨셉이 흥미로워서 여러모로 완성도가 높았다.
학교에 다니면 누구나 똑같이 취급되는 문화가 있고, 튀는 아이는 경계하는데 그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랄까. 나도 학창 시절 소시민이 되지 못해 괴로워하면서도 그렇다고 막 섞이는 것도 싫어했던 기억이 있어, 공감도 갔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빙과>로 대표되는 고전부 시리즈도 그렇고, 다채로운 색깔은 가진 작가다. 팬 인증.
 
상, 하 권의 표지 컬러가 갈색 계열이지만 미묘하게 다르고 일러스트도 훌륭.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과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은 과거 노블마인에서 나왔는데 절판되었고,
최근 엘릭시르에서 새로 냈는데 시리즈로 소장하기 좋아서 다시 사야겠다 결심.  

 

 

"마롱글라세……. 지금이 가을이었다면 이 가게에서 구리킨톤을 팔 텐데. 그것도 맛있어. 햇밤이 나는 계절에 오면 좋겠다."
"그러네, 꼭 같이 오자."
183p

"달콤한 설탕 옷 위에 또 설탕 옷을 입고, 몇 겹이나 겹쳐 입는 거야. 그러다 보면 밤도 어느새 사탕처럼 달콤해지거든. 원래는 그렇게 달지 않았는데, 설탕 옷만 달콤했는데, 표면이 본심과 뒤바뀌는 거야. 수단은 언젠가 목적이 돼……. 난 마롱글라세가 정말 좋아. 왜, 좀 귀엽잖아?"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사나이가 옻칠이 된 스푼으로 나를 가리켰다.
"네가 바로 나의 시럽이야."
184p

"수법이 노골적이야. 오사나이 스타일이 아니야."
나는 잠시 겐고의 존재도 잊고 그렇게 중얼거겼다.
오사나이는 달콤한 디저트와 복수를 사랑한다. 오사나이를 건드리면 반드시 반격을 당한다. 오사나이는 복수를 좋아하니까.
하지만 그 복수는 세일러복에 기관총을 들고 적을 몰살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오사나이는 덫을 치고 적을 유혹해 함정에 빠뜨린 다음 그 위에 강철 뚜껑을 덮어 복수한다.
2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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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 준코,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만 : '사십춘기'라는 말이 유행하듯 중년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숙제. 여자 입장에서 본 담담한 에세이인데 글맛은 좀 떨어지지만 내용은 공감이 간다.
조해진, 목요일에 만나요 : <여름을 지나가다>를 재미있게 읽어서 구입한 같은 작가의 단편집이다. 국내 작가 발굴은 늘 숙제.
오현종,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 오현종작가가 오랜만에 낸 단편집. 다 읽어봤는데 뭔가 톤이 바뀌었다. 순문학 시도인가, 발랄한 원래 색깔을 잃어버린 건가.
박찬일, 미식가의 허기 : 경향신문에 연재한 칼럼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을 엮은 책. 그가 운영하는 술집 로칸다몽로의 철학이 뭔지 알 수 있는, 늘 읽을 만한 글을 쓰는.
신큐 치에, 와카코와 술6 : 여자 혼자 마시는 혼술을 주제로 밋밋하지만 뭔가 힐링이 되는 만화, 드디어 6권이 나왔네. 딸이 표지의 주인공 표정이 귀엽다며 술과 안 어울린다고 한마디.
아베 야로/사코 후미오, 오아시스 식당 : 아베 야로는 믿고 보는데, 이 책은 20곳 정도의 식당을 취재한 에세이다. 아재들이 쇼와 시대를 그리워하며 쓴 미식 기행이라고.
이와이 슌지, 립반윙클의 신부 : 이 영화의 전반부는 너무나 좋았다. 이와이 슌지가 쓴 소설의 디테일이 궁금해서 구입.
아리요시 사와코, 악녀에 대하여 : 서점에서 보고 흥미로워보여서 구입한 추리소설. 이런 장르소설 읽는 맛은 따로 있으니까.
시바타 요시키, 성스러운 검은 밤 상/하 : 추리소설이자 두 남자의 BL물이라니. BL 세계를 잘 모르지만 요즘 입문해보려고 노력 중.

 
벌써 5월.
책을 사다보면 일본 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한국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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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누아르 1 : 3월의 제비꽃 (북스피어X) 개봉열독 X시리즈
필립 커 지음, 박진세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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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북스피어, 마음산책, 은행나무에서 콜라보로 기획한 '개봉열독X' 시리즈. 일본 서점에서 래핑해서 표지를 숨긴  논픽션 '문고X' 시리즈를 보고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내가 구입한 건 북스피어X. 아직 출간 안 된 신간이 시크릿으로 래핑되어 있는데, 모르는 작가라 두근두근. 5월 16일에 공개한다고 하니 나도 비밀에 붙여둔다. 북스피어 출판사 팬으로서 나름 재미있는, 어떤 책들의 라인업이 공개될지 신간 알리는 데 절묘한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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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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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을 읽었다.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흥미로운 작품이 많아서, 장편 <없는 사람> 이후 또 한번 만족스러운 경험을 안겨준 작가.
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세한 균열을 보여주는데 특히 '구두', '홍로', '대머리' 등이 인상적이었다.
가사 도우미의 분열을 그린 '구두'는 왓챠에서 본 단편영화, 가사 도우미와 SNS 문제를 결합한 '그녀'와 비슷한 설정.
'홍로'는 계약 관계의 노부부 이야기를 하루 동안의 단막 꽁뜨 느낌으로 잘 그려냈다.
'대머리'는 여자친구의 사촌에게 잘 보이려는 중년 남자의 애달픈 이야기다.
관계의 불안함을 그려내는 작가의 태도가 한발짝 떨어진 관점이고 골계미가 살아 있어 읽기 편했다.

표지 이미지를 잘 뽑아낸 것 같다. 줄무늬가 오돌토돌 입체적으로 만져진다.
제목의 '지'가 뾰족 솟은 것이 균열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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