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 이영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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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살인 출산'은 본인 희망으로 10명의 아기를 인공 출산하면 1명을 살인할 수 있는 합법적 권리를 얻게 되는 가상의 세계를 그린다. 단 한 번의 살인 기회를 얻기 위해 10년 이상 출산의 고통에 시달린다는 이상한 시스템, 게다가 남자도 출산을 할 수 있다는. 그리고 그러한 목적을 달성한 사람을 칭송하는. 출산 저하율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이라고는 하나, 비틀려도 한참 비틀린 세계다.
'트리플'은 남녀 관계없이 세 명이 같이 연애를 하는 이야기다. 남남녀 커플도, 남녀녀 커플도 허용된다. 일반적인 커플을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청결한 결혼'은 서로의 합의하에 남매 같은, 계약만 있는 결혼 생활을 다룬다. 성행위는 다른 관계에서 풀고, 결혼은 공동의 생활일 뿐이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라는 일본 드라마의 설정과도 유사하다. 네 편의 단편 중에 그나마 가장 무난하고 설득력 있다.
'여명'은 수명이 연장되어 200년씩 사는 세상에서 죽을 시점을 선택하는 이야기다. 아주 짧은 소품이다.

<편의점 인간>보다 너무 나아간 상상력, 게다가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가 조금은 불편했다. 그러한 세계를, 비록 문학이지만 받아들여주는 건 역시 일본이라서 가능한 것 아닐까. 읽기 전에 선택과 심호흡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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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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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신작 발표는 문단 안팎에서 큰 이슈다. 국내 판권료 경쟁부터, 작품에 대한 해석까지. 

<1Q84>에 이어 <기사단장 죽이기>도 문학동네에서 가져갔고 10억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팔리니까.

소설의 주인공은 아내의 외도로 집을 나온 초상화 전문 화가의 이야기다. 그는 유명한 일본화가의 집에 혼자 살게 되고, 멘시키라는 불가사의한 이웃을 만나고,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시도하고, 멘시키가 딸이라고 여기는 중학생 여자애의 초상을 그리면서, 비현실적인 여러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런 류의 환상문학은 하루키의 전문 분야다. <댄스 댄스 댄스>부터 <1Q84>까지, 작가는 정교한 환상 세계를 창조해낸 후 독자를 초대한다. 그러한 세계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뛰어넘는 경험을 하는 듯한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소설 제목과 같은, 극 중 그림 제목인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실체로 현현한 '이데아'와 '메타포'에 대해 작가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지 해석하는, 가볍게 두뇌를 쓰면서 독서하는 즐거움도 더해진다. 주인공은 와인과 커피와 홍차를 마시며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폼잡는데(삐딱하게 보면), 그런 부분까지도 참 하루키답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소설은 북아사히의 '이것이 하루키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다 들어 있다'라는 평으로 압축할 수 있다. 환상과 경계를 넘나들기, 어디에도 흔들림 없는 남자 주인공(평범을 가장한 비범한), 여자들과의 섹스 등등.

어떤 작가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진정한 하루키 문학의 힘 아닐까.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특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북케이스, 비하인드북 두 개의 사은품은 소액의 포인트를 내고 구매 가능. 

1, 2권을 사면 증정하는 북케이스에 책을 보관할 수 있다. 괜찮은 마케팅.


 

 

 

 

 

그러한 작업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고객에게 조금이라도 친애의 마음을 품는 일이었다. 물론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러나 제한된 장소에서 일시적인 관계만 맺을 ‘방문객‘이라면, 좋게 볼 자질을 하나둘쯤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떤 인간이든 저 안쪽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잘 찾아내어, 혹시 표면이 뿌옇다면(뿌연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헝겊으로 말씀히 닦아준다. 그런 마음가짐이 으레 작품에 배어나오기 때문이다.
1권. 27p

단출한 짐을 자동차 트렁크에 실어두고 부엌으로 돌아와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홍차 티백을 우려 식탁에 앉아 마셨다. 이 정도는 해도 상관없으리라.
1권, 63p

그런 새로운 환경에 놓이니 뭔가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솟아났다. 그것은 소리 없는 욱신거림과 비슷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거의 무제한으로 주어져 있다. 생계를 위해 내키지 않는 그림을 그릴 필요도 없고, 퇴근하고 돌아올 아내를 위해 식사를 준비할 의무도 없다. 그뿐 아니라 원한다면 식사 따위는 하지 않고 마음대로 굶을 권리도 있다.
1권. 77p

"호기심은 언제나 리스크를 동반합니다. 리스크를 전혀 수용하지 않고 호기심을 충족시키기란 불가능하지요. 호기심이 죽이는 건 고양이만이 아닙니다."
1권. 322p

커피가 나와서 잔을 들어 마셨다. 커피 같은 맛이 났지만 그다지 맛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커피였고, 충분히 뜨거웠다.
1권. 353p

발랄라이카는 보드카와 쿠앵트로와 레몬주스를 3분의 1씩 섞어서 만드는 칵테일이다. 과정은 심픓지만 북극지방처럼 쨍하게 차갑지 않으면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어설픈 솜씨로는 미지근하고 밍밍하기 일쑤다. 그러나 그 발랄라이카는 놀라울 정도로 맛있었다. 거의 완벽에 가깝게 예리한 맛이 났다. (중략) 물론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연히 멘시키가 솜씨 나쁜 바텐더를 데려왔을 리 없다, 쿠앵트로를 준비하지 않을 리도, 앤티크 크리스탈 칵테일과 고이마리 접시를 갖추지 않을 리도 없다.
1권. 429p

나이가 몇이든 모든 여자에게 모든 나이는 곧 미묘한 나이다. 마흔한 살이든 열세 살이든 그녀들은 언제나 미묘한 나이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여성에 대한 소소한 경험을 통해 내가 얻은 교훈 중 하나였다.
2권. 82p

"하지만 일단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남녀의 관계를 멈추기란 그리 간단하지 않아." 하고 내가 말했다.
정말로 간단하지 않다고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그것은 힌두교 교회에서 말하는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온갖 것을 숙명적으로 짓밟으며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뒤로 물러나는 법은 없다.
2권. 2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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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 2017-08-12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기사단장 죽이기를 샀는데 아직 읽어보진 못했어요. 사실 하루키에 관심이 적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베쯔님 리뷰 덕분에 이 책 당장 읽고 싶네요. 다행히 제 옆에 책이 바로 있어서 좋습니다. ㅎㅎ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베쯔 2017-08-12 14:2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는 20여 년간 하루키를 읽어왔지만 늘 변화하면서 새로운 작품을 써내는 그의 작품세계가 참 좋아요.
재미있게 읽으시길 바래요^^!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 미쓰다 신조 작가 시리즈 1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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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미스터리 장르는 좋아하지만, 공포 소설을 찾아 읽는 편은 아니다.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들을 좋아한 적은 있지만. '황금벌레' 같은.

미쓰다 신조는 미스터리에 호러가 결합된 스타일이서 읽을 때 늘 으스스함을 느끼게 만든다.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도 그렇고.

이번에 읽은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은 소설가가 주인공인 '작가' 시리즈의 첫 편이자, 데뷔작이다.

어떤 소설가가 영국에서 이축해온 사연 있는 집에 이끌려 들어가 살게 되고, 거기서 여러가지 일을 겪는다는 내용.

스티븐 킹의 <샤이닝>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는 무척 흡입력 강한 소설이었다.

소설가가 현재 집필 중인 공포소설의 원고가 중간중간 이어 나오는데, 원래 스토리와의 연결 지점이 놀라울 정도로 매끄럽다.

'인형의 집'이라도 설정도 으스스하고, 작가가 목표로 한 '분위기로 승부하는 괴기 환상 소설'이라는 지점에 놀랍도록 부합한다.

책 속에 현존하는 미스터리 작가들(스티븐 킹, 에도가와 란포, 렌조 미키히코 등)에 대한 평도 나오고 영국 괴기소설들에 대한 방대한 지식도 슬쩍 보여주는 통에, 미스터리 마니아로서 푹 빠져들어 읽었다.

국내 발간 제목이 좀 아쉽고, 그래서인지 큰 인기를 못 끈 것 같다. 재정가되어 5천원이다.

 

책 정리는 즐거운 반면, 중노동일 뿐 아니라 조심하지 않으면 시간을 상당히 빼앗긴다. 고향 집에 있던 수천 권과 도쿄에서 사모은 수백 권이 다이기에 개인 장서로서는 극히 보잘것없었지만, 그저 책장에 꽂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저자와 출판사, 판형을 생각하면서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제법 어렵다. 게다가 자료로 자주 사용하는 책은 꺼내기 쉬운 곳에 꽂아두고 싶고, 에도가와 란포, 존 딕슨 카, 스티븐 킹, 아와사카 쓰마오, 렌조 미키히코 같은 작가의 책은 역시나 특별한 취급을 하고 싶다. 결국 책을 꽂는 순서와 넣는 장소가 결정될 때까지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120p

(괴기 환상 소설은) 이야기를 꺼낸 김에 말하자면 단편이 좋다. 이건 유령의 집을 주제로 한 소설 운운하기 이전에 모든 괴기 환상 소설은 단편이 최고라는 뜻이다. 미스터리와 달리 괴기 환상 계열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분위기가 중요하다. 플롯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장편이라고 해도 축적되는 분위기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호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의 작품은 세부적인 요소가 단단하기 때문에 괴이한 현상이나 공포의 대상이 출현하기까지 굳건히 뿌리를 내린 내용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기는 하지만, 괴기나 환상을 즐길 수 있을 법한 짜임새는 아니다. 엔터테인먼트로서 걸출하기는 하지만 장대한 만큼 다양한 요소가 들어가기 때문에 순수한 형태의 공포를 즐길 수 없다.
125p

괴기소설을 쓰는 작가 스스로 공포를 느끼는 소설.
그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상황이다. 작품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작가가 어떤 의미에서 무섭다고 느끼지 않는 소설은, 좀 거칠게 말해 괴기소설로서는 실패작이리라. (중략)
하지만 쓰고 싶다. <모두 꺼리는 집>의 다음 이야기를 쓰고 싶다. 이렇게 무서워하면서도 이야기를 자아내고 싶다는 욕구와 함께 이다음 이야기를 알고 싶다는 바람과도 같은 감정이 들끓었다. 지금 내 몸속에는 작가로서의 나, 독자로서의 나, 그리고 뭔가를 두려워하는 나, 이렇게 세 사람의 내가 있다.
1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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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 2014년 발표한 소설 <리바이벌>. 한 소년이 어린 시절 한 목사를 만난다. 전기를 사랑하는 목사는 인생에 닥친 크나큰 불행을 계기로 변화하고. 소년은 자라서 인생의 고비에서 다시 그 목사와 마주치는데.
공포가 훅 다가오지는 않지만 은근히 깔고 가는 성장소설로 읽으면 좋을 듯. 사람 심리를 바닥까지 낱낱이 드러내는 재주가 있다니까. 내게 미국은 메인 주와 스티븐 킹이 그려내는 그 세계가 전부임을 고백한다.
 
최근 스티븐 킹이 발표한 탐정소설 <미스터 메르세데스>와 같은 시기에 집필했다는데, 이렇게 다른 색깔의 작품을 한번에 써내려가다니 역시 킹이다 싶은.

˝그들은 진실을 알 자격이 없으니까. 너는 그들을 시골 사람이라고 부르는데 얼마나 알맞은 표현이냐. 그들은 머리라는 것을 쓰지 않아. 머리가 상당히 좋은 경우가 많은데도 말이다. 그리고 종교라는 거대한 허위 보험회사만 맹신하지. 종교는 이승에서 규칙을 준수하면 저승에서 영원토록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약속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고통이 찾아오면 그들은 기적을 바라거든. 그들에게 나는 머리 위에서 뼈를 흔드는 대신 마법의 반지를 몸에 갖다 대는 주술사에 불과해.˝
˝진실을 알아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나요?˝
3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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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피리 꽃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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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북스피어에서 나온 단편집 <구적초>의 개정판

<비둘기피리꽃>은 세 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렇게 책 제목이 바뀐 경우 다른 책으로 오인하기 쉽다.

읽어보고도 또 사서 읽고 나서야 뭔가 기시감이 느껴진다거나. 내가 그랬다.

 

수록된 단편은 다음 세 편이다.

스러질 때까지 / 번제 / 비둘기피리꽃

'번제'는 장편 <크로스파이어>의 원형이 된 단편이어서 더욱 익숙했다.

인상깊었던 건 '비둘기피리꽃'이다. 속 깊은 사랑이란 그런 건가 찡-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었다.

세 편 다 남다른 초능력을 가진 여자가 주인공인데, 그래서 본격 추리물은 아니고 애매하다.

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작품을 다 읽고 나서 한번쯤 찾아볼 만한 작품집이다.

표지는 이번에 같이 출간된 <사라진 왕국의 성>과 같은 포맷이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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