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 다이닝 바통 2
최은영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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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등 여러 작가들이 음식을 모티프로 쓴 단편들을 모은 <파인 다이닝>은 은행나무에서 나왔고 5,500원이다.

음식이 주 소재가 아니고 살짝 사용되는 정도라서 '파인 다이닝'이라는 타이틀이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 단편집이 그렇듯 어떤 건(병맛 파스타, 에트르) 인상적이고, 어떤 건(커피 다비드, 배웅) 못 읽겠고, 나머지는 무난했다. 노희준작가 글은 처음인데 '병맛 파스타'는 두 남자의 발랄한 화법이 좋았고, 서유미작가의 '에트르'는 화려한 백화점 케이크 코너에서 일하는 젊은 여자아이 이야기를 매끄럽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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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딩, 턴
서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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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딩, 턴>은 이혼하는 30대 부부의 이야기다. 돌연 이혼을 결정하고 헤어지는 과정과 그 반대의 이야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둘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는 눈부신 순간들을 교차시킨다.
상대의 큰 결함이 아닌 일상의 소소한 흠들이 쌓여 결혼 지속 불가능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지원과 영진. 묘하게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결혼은 일상이니까.
서유미작가는 <틈> 이후 두 번째. 문장이나 구성은 안정적인데, 캐릭터는 다소 평면적이고 훅 빠지기에는 조금 무난하다.

 

청소기란 먼지를 빨아들여 청소를 돕는 기계라 주기적으로 먼지 통을 비우고 부속품을 닦아줘야 제대로 쓸 수 있다. 그런데 영진은 청소기를 꺼낸다, 전원 버튼을 누른다, 집 안을 돌아다닌다, 의 순서만 반복했다. 지원이 뒷마무리까지 부탁해, 하며 먼지 통을 비우는 모습을 몇 번 보여줬지만 매번 알았어, 하고는 잊었다. 지원은 영진의 알았어, 가 지긋지긋했다. 그는 알았다는 말을 곧잘 했지만 행동으로 옮긴 적은 거의 없었다. 그 대답은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 것, 지금을 지나가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41p

영화의 몇 장면과 가을날 오후의 포크댄스에 대해 얘기하면서 지원은 잘 우러난 차 한 잔을 마시는 기분이 되었다. 지나온 어떤 순간, 인상적인 장면을 꺼내 후후 불며 맛볼 수 있는 건 인생이 베푼 행운임에 틀림없다. 그런 면에서 인생에는 언제든 꺼내 뜨거운 물을 부은 뒤 우려먹을 수 있는 티백이 필요하다.
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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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녹는 온도
정이현 지음 / 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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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작가의 <우리가 녹는 온도>는 형식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데, 바로 소설과 에세이의 결합이다. '괜찮다는 말, 괜찮지 않다는 말', '커피 두 잔' 같은 하나의 주제 아래, 짧은 단편과 그에 대한 에세이가 묶여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행 플랜을 세밀하게 세우는 친구와 아닌 친구의 이야기를 그린 '여행의 기초', 인천 부평의 가난한 연인에 대해 쓴 '지상의 유일한 방'이 인상 깊었다.
소설은 심심한 듯하나 이를 에세이가 풀어주니 상승 효과가 있다. 작가는 어차피 녹아 버리고 말 눈사람을 만드는 인간의 행위에 주목해, 스쳐 지나가면서 사람이 사람으로 인해 변화하는, 살짝 녹는 그런 순간을 포착하고 싶다고.

 

사라진 것들은 한때 우리 곁에 있었다.
녹을 줄 알면서도, 아니 어쩌면 녹아버리기 때문에 사람은 눈으로 ‘사람‘을 만든다.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사는 것처럼.
곧 녹아버릴 눈덩이에게 모자와 목도리를 씌워주는 그 마음에 대하여, 연민에 대하여 나는 다만 여기 작게 기록해 둔다.
1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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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 듯 저물지 않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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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의 마지막 날은 에쿠니 가오리, <저물 듯 저물지 않는>을 읽으며 평화롭게 보냈다.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유유자적하는 중년의  미노루는 책을 좋아하는데 늘 책을 읽으며 그쪽 세상을 편하다고 여긴다. 나기사와의 결혼 같으면서 아닌 결혼 생활은 파탄이 났고,  나기사는 평범한 직장 후배 남자와 재혼한다. 미노루와의 사이에서 낳은 하토(비둘기)라는 딸을 데리고. 미노루의 누나 스즈메(참새)는 독일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다가 가끔 귀국해 동생과 만난다.
이외에도 미노루의 친구이자 세무사인 오타케, 세입자이자 이웃인 치카와 사야카 커플, 미노루 소유의 아이스크림 숍 아르바이트생 유마와 아카네 등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온다. 요즘의 에쿠니 가오리가 선호하는, 모든 인물을 거의 등가로, 병렬적으로 늘어놓는 방식으로.
미노루가 읽는 소설이 '책 속의 책'으로 소설 중간에 계속 끼어드는데, 미스터리 장르의 그 소설 내용에는 집중이 잘 안 되었지만, 책 속으로 빠져들어 버리는 미노루의 상태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됐다. 미노루 같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분명히 소외감을 느끼리라. 특히 혈연은 상관없겠지만 아내라든가 하는 위치에서는. 하지만 다른 결혼을 찾아 떠난 나기사는 그 '평범한 행복'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여러 의미에서 결혼이란 참 어려운 것이긴 하다.
에쿠니 가오리는 음식이나 술자리의 묘사를 참 잘하는데, 작가 자신이 상당한 취향의 소유자임이 분명하다.

 

책을 읽고 있을 때면 미노루는 거기에 있으면서 없는 사람 같았다(더구나 늘 그는 책을 읽었다).
38p

이것은 그런 순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있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이라고 형용하는 가족의 단란한 순간, 먼 훗날이 되어서야,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때는 행복했다‘고 깨닫는 유의 순간이다. 그런데 왜, 때로 자신은 도망치고 싶어지는 것일까.
175p

맥주 다음으로 주문한 시원한 정종을 마치 물처럼 꿀꺽꿀꺽 마시면서 말했다.
"멋대로 내놓지 말라고 해."
스즈메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다. 마침 은어 튀김이 나온 참이었다. 이 계절이면 치카가 즐겨 하는 요리 중 하나라서 미노루는 맛있다고 생각하는데, 누나에게는 맛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메뉴판을 달라고 해서 스즈메는 토마토 샐러드와 은대구 된장구이를 주문했다.
180p

"증권회사에서 온 포트폴리오와 파일 정리해놓았으니까, 나중에 무슨 주식인지 이름과 금액이라도 봐둬."
미노루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말리백호, 금계홍차, 동정오룡차, 그리고 이름은 모르겠지만 벚꽃찰떡 향이 나는 차도 있는데, 뭐로 할래?"
276p

지금 좀 긴박한 장면이라서, 이 장이 끝날 때까지 읽지 않으면 궁금해서 안 될 것 같아."
"그건 또 뭔 소리야. 지금 왜 책을 읽는 건데."
오타케는 볼멘소리를 했지만,
"금방 읽을게"
하고 단단히 약속한 미노루는 다시 침대의자에 누워 책을 펼쳤다.
3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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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쓰무라 기쿠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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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덥석 집게 되는 그런 소설이 있다.
쓰무라 기쿠코의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는 30대 초반 직장인 나카코와 시게노부의 사정이 평행선처럼 이어진다. 그리고 가끔 교차한다.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제목처럼 무심하게.
나카코는 여자 직장 동료들의 민감한 감정 변화가 불편하지만 꾹 참으며 일하고, 시게노부는 원치 않는 지역으로 전근하고 개발 일 때문에 지역 주민의 불평을 듣는다.
일본 소설 특유의 담담함이 배어나오는 가운데, 경제난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의 체념도 느껴진다. 두근두근 하는 일은 현실이 아닌 미디어 같은 가상세계 한정인 건가.

 

피클 병을 열면서 구텐모르겐, 하고 중얼거린다.영어로 굿모닝이다.
마가린이 잘 녹지 않아 군데군데가 맨 빵인 토스트를 베어 물면서, 완전히 현실도피 같다고 생각한다.
아침이 좋을 리가 없다. 구텐모르겐도 굿모닝도,
아마 누군가가 자신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일 것이다.
아침이라는 잔혹한 상황을 견디기 위해.
22p

나카코는 다이마루 백화점 지하 1층 양과자 매장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뭔가 적당히 싸고 좋은 것이
있으면 살까 하고
이곳저곳 가게를 둘러보지만,
자신이 정한 수준을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는 것만 있어서
세상 사람들의 양과자 가격에 대한 관대함과 자신의 가난함이 싫어진다.
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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