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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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는 이 소설 가난한 사람들의 탄생을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묘사하고 있다.

동이 환하게 틀 때까지 두 친구는 서로 황홀해 하며 즐겁게 말을 나누었다. 이윽고 네크라소프는 서둘러 러시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비평가인 벨린스키에게 향했다. 그는 깃발처럼 원고를 흔들며 새로운 고골리가 태어났다며 문가에서부터 외쳤다. 의심쩍어 하는 벨린스키는 당신들 집에서는 고골리들이 버섯처럼 쑥쑥 자라는가 보구려하며 시큰둥하게 투덜거리며, 지나친 감격에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다음날 도스토예프스키가 방문했을 때, 그의 태도는 달라져 있었다. “대체 당신이 무엇을 만들어 냈는지 아시겠습니까?”하며 벨린스키는 흥분한 목소리로 어리둥절해 하는 젊은 도스토옙스키에게 외쳤다. 이 새롭고 갑작스런 명성 앞에서 심지어 공포와 달콤한 전율이 그를 엄습해 오기도 하였다.”

(32~33p 도스토옙스키를 쓰다슈테판 츠바이크)

 

184424세의 도스토옙스키가 쓴 인간연구서, 눈물이 흐를 정도의 열정의 화염으로라는 가제를 달고 있었던 이 소설은 그의 가난이 낳았고, 이후에도 그는 마치 자신의 소설의 주인공인 듯 가난과 병, 상실에 시달리며 살아갔다. 이 작품은 주인공 마까르 제부쉬낀과 바르바라 도브로셀로바(바렌까)의 편지글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편지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빈민들의 삶과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읽게 된다.

 

제부쉬낀은 외투의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를 떠올리게 한다. 가난한 하급관리, 필경사, 볼품없는 외모, 독신은 아까끼를 닮았다. 마까르 살고 있는 주거환경은 목로주점의 아파트를, 그가 살고 있는 하숙집 부엌 한쪽에 칸막이를 세워 만든 방은 브뤼 영감이 지내던 계단 밑 골방을 연상케 한다. 그가 이런 곳에 머무르게 된 것은 자신의 소유를 하나 둘씩 팔아 바롄카의 필요를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바렌까를 향한 감정을 무엇이었을까? 두 번째 편지에서 그는 늙은 나이에 사랑의 감정에 빠져 횡설수설”(20p) 했다고 후회하다가 다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순수한 부성애”(21p)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의 진심은 사랑이지만 많은 나이 차이와 사람들의 시선, 관습 등에 둘러싸여 자신의 감정에 한계를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기에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꼬프와 결혼하는 바롄까를 만류하지 못한다.

 

책에 따라 살기에서 작가 김수환은 이 소설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 중 하나는 그의 문체가 작품의 말미에 이를수록 현저히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그는 떠나는 바르바라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 이 편지가 마지막이라니오,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 이제 제게도 좋은 문장력이 생겨나고 있는데…….”라고 탄원하고 있다.(219p) 실제로 그의 편지를 읽어가면서 처음의 거칠고 직설적인 표현이 비유나 상징의 아름다운 언어들로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문체가 좋아지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고 한 후, 그가 써내려간 문장들은 비애감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가끔 저는 아침 일찍 관청에 서둘러 가다가 넋 놓고 도시를 바라보는 경우가 있어요.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모습, 연기를 피워 올리며 무엇인가 끓이는 모습, 왁자지껄하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모습 등을요. 가끔 그런 모습을 재미있게 보다가 저는 난데없이 코라도 한 방 얻어맞은 사람처럼 풀이 싹 죽어 버립니다. 그리고 조용하고 겸손하게 가던 길을 재촉하며 손을 내젓고 말죠.”(175p)

도시 빈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변화무쌍하고 화려한 도시 속에서 느낄 법한 감정을 하나의 풍경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의 문장이 좋아진 이유는 책을 읽고 계속 해서 써왔기 때문이다. 바르바라가 첫사랑 뽀끄로프스끼의 영향으로 책을 읽게 된 것처럼 제부쉬낀은 문학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바르바라가 권해 주는 책들을 통해 독서 경험을 넓혀간다. 바르바라가 노트에 쓴 뽀끄로프스끼에 대한 기억은 한 편의 뛰어난 소설이다. 액자소설의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에 보였던 마까르와 바르바라의 글쓰기와 독서에서의 간격은 차츰 좁혀지고 있다. 마까르는

그리고 제가 당신의 책을 좋아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런 겁니다. 어떤 작품이든 가끔 다른 책들은 아무리 읽어도, 아무리 애를 써도 마치 그 책은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것처럼 아주 묘한 책들이 있습니다. 저로 말하면, 저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어요. 따라서 저는 너무 수준 높은 작품들은 읽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주신 작품은 마치 제가 쓴 것처럼 정말 제 생각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더군요. 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사람들 앞에서 뒤집어 보인 것 같았다니까요! 그 정도로 자세하게 씌어 있었습니다! 정말 그랬어요!” (109p)

라고 고백한다.

 

그런 그도 바르바라가 빌려준 고골의 외투를 읽고는 몹시 불쾌한 감정을 담은 답장을 보낸다. 바렌까에게 서운해하고 이 책의 내용을 비판한다.

도대체 당신은 어떻게 이런 책을 저에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바렌까, 이건 몹쓸 책이에요. 진실성이 결여된 책이라고요.”(119p)

그는 왜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도 아까끼의 처지와 비참한 가난과 굴종적인 태도에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가 각하라 부르는 상관에게 불려가 파랗게 질려있는 모습은 아까끼의 태도와 유사하다. “마치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내 이야기가 자세하게 씌어 있는 책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살면서 그것을 모르고 지나치는 일이 가끔 있었다는 것”(109p), 이전에는 전혀 모르고 지나쳤던 일들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생각나게 되고, 기억이 되살아나고, 내막을 알게”(109p)되어서 그녀의 책을 좋아한다고 하던 그도 외투는 피하고 싶은 내용이었다. 아까끼의 불행한 죽음 또한 그에게 불안을 안겨주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책의 끝부분에서라도 상황이 호전되고 분위기가 좀 누그러졌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분노한다.

 

그러나 아까끼는 자신이 머무는 방과 직장의 책상, 돈을 모아서 맞춰 입은 외투에 갇혀있는 인간이다. 반면 제부쉬낀은 타인을 향한 연민과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천성, 신앙, 전통적인 윤리…, 그 중 어느 것에서 비롯되었든 그는 당장 자신이 굶더라도 더 비참한 사람을 위해 적은 소유를 내놓는다. 이런 태도는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그 가치가 실체화되고 사유로 자리 잡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쨌든 바르바라의 책은 그에게 변화를 일으켰고, 같은 처지의 아까끼와는 다른 방향으로 삶을 이끌었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바렌까. 저의 이런 생각은 어쩌면 정도를 넘어 버린 자유사상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이여, 가끔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쩝니까? 그런 생각이 들면 저도 모르게 가슴속에서 뜨거운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어쩌죠. 따라서 도시의 소음과 굉음에 기가 죽어서 스스로를 가치 없는 사람으로 여길 필요는 없는 겁니다.”(177p)

 

바르바라의 노트에서 뽀끄로프스끼의 아버지가 죽은 아들의 관을 울부짖으며 쫒아가는 모습, 아들에게 선물했던 푸쉬킨의 책들이 그의 주머니에서 비어져 나와 비바람이 부는 거리 진흙탕 속에 떨어지는 장면은 처절했다. 제부쉬킨의 마지막 편지에서 떠나는 바르바라에게 계속 편지를 쓰겠다고, 문장이 좋아지고 있는데 그녀가 떠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비탄은 그 장례식 장면과 연결되며 상실의 아픔을 극적으로 그리고 있다. 뽀끄로프스끼의 죽음으로 그가 아끼던 책이 의미 없어지듯이, 제부쉬낀의 문장력 또한 읽어줄 그녀가 없이 소용없는 것이다. 스스로도 자신을 싫어했던 그의 마음과 영혼에 밝은 빛이 들게”(162p) 해주고, “자신이 가슴도 있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162p) 해준 그녀를 상실함은 존재의미를 잃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제부쉬낀은 계속 쓰겠다고 말했고, 계속 쓰리라 생각된다. 바르바라를 사랑한 기억 안에 갇혀 살더라도, 문학은 그에게 위로가 되고, 아픔은 글이 될 것이다. 어쩌면 계속 쓰겠다는 이 절규는 도스토옙스키의 외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세상사에 어둡고, 현실에 열정적이기에 현실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츠바이크는 그들 개개의 불확실성은 민족의 불확실성을 뜻한다고 한다. 19세기 도스토옙스키의 인물 개개인의 비극과 분열, 장애가 러시아 민족 전체의 운명에서 나온 것임을 감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통이라는 뿌리를 상실한 도스토옙스키의 작중 인물들은 순수 러시아 혈통의 과도기적 인간들로서, 가슴에는 새로운 시대의 카오스를 안은 채 각종 장애와 불확실성에 시달렸다. ……그들 모두가 과도기의 인간, 새로운 시작의 인간들이었다.”(95p 도스토옙스키를 쓰다슈테판 츠바이크)

 

제부쉬낀 역시 제정러시아 관료주의 사회와 전통의 정신의 지배를 받고 있으면서, 책을 통해 자유주의적이 사상을 키워나가는 지식인들의 대열에 막 들어서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앞으로 도스토예프스키가 쓰게 될 작품 속 인물들은 이런 혼란과 불안감을 통과하며 어떤 인간형을 보여줄지 전망해본다. 그리고 저 멀리에 있는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코프를 지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드미트리와 이반과 알렉세이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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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3-18 15: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그 가치가 실체화되고 사유로 자리 잡는 것‘과 ‘문학은 그에게 위로가 되고, 아픔은 글이 될 것이다.‘이 대목들이 저는 와닿습니다. 오래전 읽어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문장이 좋아지고 있다는게 왜 슬픈 역설인지 읽고 나니 이해되고요. <가난한 사람들>도<외투>도 꼭 재독하고 츠바이크의 평전도 읽어보고 싶은 리뷰입니다.🥲

그레이스 2022-03-18 16:07   좋아요 6 | URL
읽어야할 책들은 많고 시간이 없음을 느낄때, 미리 더 많이 읽어놀걸 하는 후회를 하지만, 가끔 오래전 읽은 책들 다시 읽으면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때, 차라리 지금 읽는게 낫겠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읽었다는 이유로 생각도 가물가물한 책들을 리스트에서 제외시키는 경우가 있어요^@^
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2-03-18 18: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 책탑이 완전 멋지네요. 오래된 느낌이 드는게 더 깊이 있어 보입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 읽으면서 저렇게 깊게 생각을 못했는데 역시 그레이스님은 깊이가 다른거 같아요 ^^ 문장이 좋아진다니 한번 그 부분을 집중해서 읽어봐야 할거 같아요~!!

그레이스 2022-03-18 19:39   좋아요 6 | URL
^^
낡은 책들은 남편의 오래된 책들이예요
사회과학서적도 이런게 많아요
신간으로 교체하고 싶어도 출간이 안되서, 그냥 읽는데, 깊이가 있는 내용이어서 읽고 버릴수도 없네요^^

mini74 2022-03-19 21: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고골리들이 버섯처럼 쑥쑥 자란다니 ㅎㅎ그레이스님 인용문 너무 웃겨요 하다가 책탑을 보며 우와 그레이스님 👍계속 쓰고 계속 읽는 것은 역경을 이겨내는 힘인거 같아요. 그레이스님 글 솜씨 닮고싶습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2-03-19 21:28   좋아요 2 | URL
부끄럽습니다;;
독서는 과거의 경험을 끌어와서 현재를 살고 미래를 전망하는 행위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scott 2022-03-19 23: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장이 좋아지고 있다는 건

눈,,,
안구 건강을 챙겨야 하능!ㅎㅎ

고골리들이 버섯처럼 쑥!쑥 자라듯이
그레이스님 집안 곳 곳 책탑이 쑥!쑥!ㅎㅎ

도끼옹 만한 작가
요즘 세상에 없고
읽어도 읽어도
거듭 읽어도
매번 느끼는 감동은 새로운 ^ㅅ^

그레이스 2022-03-19 23:44   좋아요 2 | URL
예~
그런것 같아요
다시 읽어도 감동이고, 그의 삶도 작품도 변주하는 작가들이 많은 걸 보면...!

희선 2022-03-20 0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고 하는 건 도스토옙스키 자신인 듯하네요 책을 읽고 글을 쓰다보니 글이 좋아졌다니, 왜 그게 부럽기도 한지 모르겠네요 그레이스 님도 다르지 않겠습니다 책도 한권이 아니고 여러 권을 보셨군요 멋지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2-03-20 08:17   좋아요 2 | URL
제게는 제부쉬낀이 겪은 어려움들이 도스토예프스키의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누군가 읽어줄 사람이 없는 글쓰기의 고독감까지...ㅠ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2-03-23 2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장이 좋아지고 있다˝
왜 슬픈 역설인지,
그레이스님 글 읽으며 끄덕끄덕....


동시에
보통 사람(?) 이라면 같은 작품 안에서 문장이 좋아지는 빠른 발전 이루기 힘든데 역시 Master Master...

그레이스 2022-03-24 12:57   좋아요 1 | URL
그렇죠?! 대가는 대가!
 

큰 일!
다음주 발표인데 이제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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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필드 2022-03-18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반가와요 ^^ 저도 예술에 관심이 많은데 이책도 호기심이 가네여

그레이스 2022-03-18 20:34   좋아요 1 | URL
모임에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발표할 차례여서 읽고 있어요
이번 기회에 조금더 잘 알게 되길 바래요~♡
저도 반갑습니다

가필드 2022-03-18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가능하시면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그레이스 2022-03-18 20:41   좋아요 1 | URL
해보도록 하죠
저도 모르는게 많아서...^^

가필드 2022-03-18 20:46   좋아요 1 | URL
응원드립니다 ☺️ 평안한 밤 되세요 그레이스님

얄라알라 2022-03-23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꾸준한 공부와 꾸준한 ˝함께 공부하심˝ 정말 멋지세요.

21시 46분이었나? 맨 위의 포스팅 속 문서가 뭔지 짐작하게 되었네요. 힌트 주셨어요. 친절하신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2-03-24 12:56   좋아요 1 | URL
오늘 모임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
오늘 다다 발표하느라 새벽3시까지 정리했어요@@
돌아가는 길 마음은 가볍네요
그런데 이제 서재에 다시 정리해 올릴 생각을 하니 ㅠ
 

〈초현실주의, 남성 명사. 순수 상태의 심리적 자동운동으로, 사고의 실제 작용을, 때로는 구두로, 때로는필기로, 때로는 여타의 모든 수단으로, 표현하기를 꾀하는 방법이 된다. 이성이 행사하는 모든 통제가 부재하는 가운데, 미학적이거나 도덕적인 모든 배려에서 벗어난, 사고의 받아쓰기>(89~90면), 이성의 간섭이 사라지면 사고의 실제 작용이어떤 말이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고, 작가가 그것을 자동기술, 곧 받아쓰기한다는 생각은 인간의 정신에 우리가 모르는 다른 부분이 있다는 이론에 토대를 둔다. - P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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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정말 심오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만들기도하고 교훈을 주기도 하고, 그리고 또 저기….. 아무튼 문학속에는 그런 다양한 이야기가 씌어 있어요. 정말 훌륭합니다! 문학은 그림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선 그림 같고또 거울 같기도 합니다. 욕망에 대한 표현, 신랄한 비평, 가르침을 주는 교훈들, 방대한 자료가 그 안에 들어 있어요. 이건모두 모임에서 주워들은 말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들사이에 끼여 작품을 듣고 있노라면 말이죠, 거기 모인 사람들이 어찌나 언성을 높이며 다양한 소재에 대해서 따지고 드는지 저는 저도 모르게 제가 얼마나 못난 사람인지 인정하게 되고 맙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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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3-14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인데, 갑자기 불쌍한 사람들(레미제라블) 후속편처럼 느껴지네요.
그레이스님,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3-14 20:33   좋아요 1 | URL
^^
평온한 하루 되세요
서니데이님도~~~♡
 
타타르인의 사막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3
디노 부차티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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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펼쳐놓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타타르인의 땅을 찾으려고 하면 실패한다. 어느 시대쯤일까를 생각해봐도 가늠하기가 어렵다. 국경의 요새, 멀리보이는 북쪽 땅, 타타르인 모두 메타포다. 서사로만 읽어도 충분히 의미들을 건져낼 수는 있다. 하지만 설사 그렇게 읽었다고 하더라도 책을 덮은 후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들이 살아난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조반니 드로고는 첫 부임지 바스티아니 요새에 도착한다. 그 요새는 상상하고 멀리서 보이던 것과 달리, 사람이 거주하기 힘들어 보이는 건물과 흉벽, 포대와 탄약고, 그 뒤에 돌투성이의 황량한 사막이 북쪽을 향해 나 있을 뿐이다. 그는 국경을 넘어 언제 올지 모르는 타타르인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요새를 떠날 날을 기다린다.

그들의 행운과 모험, 그리고 적어도 각자가 한 번쯤은 경험할 기적 같은 시간이, 저 북쪽 사막으로부터 올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불분명해지는 이 막막한 우연을 위해, 군인들은 인생의 전성기를 요새에서 소모하고 있었던 것이다.”(71p)

 

3개월 정도가 지나면 요새를 떠나고 싶어 하는 젊은 장교들과 달리, 드로고는 요새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 순간 그는 어떤 고귀한 일을 해냈다고 믿으며 자신한테 생각지도 못한 선의가 있다는 것을”(89p) 발견한다. 그를 떠나지 못하도록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오래전 오르티츠 대위를 처음 마주했던 그날부터 정해져있었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를 그 요새에 붙잡은 것은 그 세계의 부조리다.

누군가는 이 요새가 이 곳에 존재하도록 머물러 있어야한다. 타타르인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믿고. 그를 눌러 앉힌 욕망도, 라차리와 앙구스티나 중위의 죽음도, 오지 않는 타타르인을 기다림도 부조리하다.

 

상관 오르티츠 대위는 말한다.

이곳은 뭐랄까, 유배지 같은 곳이지. 그러니 어떤 분출구를 찾아야 할 필요가,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할 필요가 있어. 어떤 자가 그런 생각을 떠올렸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타타르인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네. 맨 처음 누가 그런 얘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네.”(211p)

 

오르티츠 대위는 퇴임하면서 드로고에게 이년 안에 전쟁이 일어날테니 떠나지 말라고 한다.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니길 바랐다. 사실 그는 드로고 또한 자신처럼 군인으로서 큰 행운을 누리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가길 빌었다. 그러지 않으면 억울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드로고에게 우정을 느꼈고, 그가 잘 지냈으면 했다.”(248)

 

인간의 본래적 감정일까? 아니면 세계에서 길들여진 이기심과 시기심일까?

 

상관들은 너무나 오랜 세월을 그는 헛되이 기다렸고, “너무나 오랜 세월 아침마다 변함없이 황량한 그 저주받을 평야를 봐왔지만”(141p) 부하들에게 그 진실을 알리지 않는다. 나이가 든 드로고 역시 자신이 처음 요새를 찾아왔을 때 오르티츠와 만났던 곳에서 새로 부임하는 모로 중위를 만난다. 그 역시 중위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못한다.

 

요새의 군인들은 오멜라스의 소년이다.(어슐러 르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 마을의 행복을 위해 지하 감옥에 묶여 있는 소년) 세상의 부조리는 내가 빠져있는 덫을 타인이 피해가도록 알리지 않고, 그렇게 그것을 묵인하고 세습하며 집단을 존속시킨다.

 

진실을 알았음에도 드로고는 시시때때로 불안에 시달리며, 일상의 익숙한 리듬에 젖어 들어간다. 그리고 드로고는 삶의 중요한 일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환상을 놓지 않는다. 그는 결코 오지 않은 자기의 때를 인내심 있게 기다린다.”(241)

 

많은 시간이 흘러 마침내 적이 왔을 때, 그는 노쇠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역시 부조리하다. 그는 요새 밖으로 옮겨져 죽음이라는 진정한 적을 기다린다. 어쩌면 이 순간만은 진실하다. 요새라는 세계에서 그를 사로잡았던 희망과 환상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순간이다.

 

인생에서 올 것만 같은 약속된 그 무엇,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시대가 만든 허상일 수 있다. 원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다리는 그것이 원하는 때에 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마치 그럴 수 있을 것처럼 보여 진다. 세계가 만들어낸 신기루다. 가장 확실한 사실은 죽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 마지막에 내가 기다린 것의 실체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미 비껴갔을까? 아직 오지 않았나? 아님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인가?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이 세계가 약속한 영광은 어쩌면 허상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불안감은 커지고, 아직 오지 않은 그 무엇은 실체조차 알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 기다림들의 집합이 세계를 유지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그 오멜라스의 소년일지도!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번 새로운 체계를 따르고, 비교조건을 찾으며, 상황이 더 나쁜 사람들을 보고 위안 받을 필요가 있었다.”(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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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3-12 16: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죽음이라는 진정한 적! 소주맛입니다ㅎㅎ 로맹가리의 말처럼 삶은 결국 죽음의 패러디에 불과하겠죠? 패러디 속에서 아웅다웅. 다 몸부림인듯 합니다.

그레이스 2022-03-12 17:13   좋아요 4 | URL
죽음의 패러디... !
이 세계가 제시하는 허상에 속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생각합니다.

새파랑 2022-03-12 18: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무작정 기다리는,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의 심정을 느꼈어요 ㅋ 그레이스님도 좋게 읽으셨다니 기쁘네요~!!

그레이스 2022-03-12 18:05   좋아요 5 | URL
그 심정도 전달되죠?!
타타르, 사막,,,, 다 미지를 품고 있는 단어인듯요
적을 기다린다는 것도 아이러니이고...!

레삭매냐 2022-03-12 20: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참으로 부조리합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타협을
하고 받아 들이며 살아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치환된
기다림은 하염이 없었던 것
으로 기억합니다.

아무래도 올해 시간 내서
다시 한 번 읽어봐야지 싶네요.

그레이스 2022-03-12 20:54   좋아요 4 | URL
오래 전에 산 책인데 이제야 읽었습니다. 여러가지로 확장되어서 제가 읽어낸 의미보다도 더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mini74 2022-03-12 2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체 죽음은 다가오고. 그럼에도 그만 둘 수 없는 것이 삶인가요 싶다가 ㅎㅎ 그레이스님 글 속 기다림의 집합이 세상을 유지시키고 어쩌면 우리가 오멜라스의 소년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레이스님 글은 언제나 좋아요 *^^*

그레이스 2022-03-12 21:20   좋아요 3 | URL
감사해요^^
미니님 요점정리가 더 감동이예요~♡

희선 2022-03-17 0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다리는 건 오지 않는다 해도 죽은 어김없이 오겠습니다 그때가 찾아오면 아쉬울지, 그때까지 산 것만으로도 괜찮을지... 살아 내는 게 좀 낫겠지요


희선

그레이스 2022-03-17 05:16   좋아요 2 | URL
한편의 시를 만드시네요^^

서니데이 2022-04-09 00: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그레이스 2022-04-09 00:51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님

희선 2022-04-09 02: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또 축하합니다 어느새 주말이에요 한주가 빨리도 갑니다 그레이스 님 주말 즐겁게 지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2-04-09 08:5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희선님 선뜻 다가온 계절 만끽하시길...!

mini74 2022-04-09 08: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ㅎㅎ 감동하며 읽었던 라뷰네요. 축하드려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그레이스 2022-04-09 08:51   좋아요 3 | URL
항상 감사합니다.
미니님~~♡

새파랑 2022-04-09 09: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가 진심 좋아하는 책~!!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2-04-09 18:2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새파랑님 좋아하시는 책인거 진작에 알고 있었죠!^^

미미 2022-04-09 13: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들의 행운과 모험, 그리고 적어도 각자가 한 번쯤은 경험할 기적 같은 시간이, 저 북쪽 사막으로부터 올 것이다.˝이 문장 멋지네요. 그레이스님 2관왕 축하드려요!!.。o♡( ⸝⸝・໐・⸝⸝ )

그레이스 2022-04-09 18:3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왔을까요? 아니면 올까요?
기적같은 시간이라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아서 모르는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