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란 정말 심오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만들기도하고 교훈을 주기도 하고, 그리고 또 저기….. 아무튼 문학속에는 그런 다양한 이야기가 씌어 있어요. 정말 훌륭합니다! 문학은 그림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선 그림 같고또 거울 같기도 합니다. 욕망에 대한 표현, 신랄한 비평, 가르침을 주는 교훈들, 방대한 자료가 그 안에 들어 있어요. 이건모두 모임에서 주워들은 말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들사이에 끼여 작품을 듣고 있노라면 말이죠, 거기 모인 사람들이 어찌나 언성을 높이며 다양한 소재에 대해서 따지고 드는지 저는 저도 모르게 제가 얼마나 못난 사람인지 인정하게 되고 맙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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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3-14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인데, 갑자기 불쌍한 사람들(레미제라블) 후속편처럼 느껴지네요.
그레이스님,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3-14 20:33   좋아요 1 | URL
^^
평온한 하루 되세요
서니데이님도~~~♡
 
타타르인의 사막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3
디노 부차티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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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펼쳐놓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타타르인의 땅을 찾으려고 하면 실패한다. 어느 시대쯤일까를 생각해봐도 가늠하기가 어렵다. 국경의 요새, 멀리보이는 북쪽 땅, 타타르인 모두 메타포다. 서사로만 읽어도 충분히 의미들을 건져낼 수는 있다. 하지만 설사 그렇게 읽었다고 하더라도 책을 덮은 후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들이 살아난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조반니 드로고는 첫 부임지 바스티아니 요새에 도착한다. 그 요새는 상상하고 멀리서 보이던 것과 달리, 사람이 거주하기 힘들어 보이는 건물과 흉벽, 포대와 탄약고, 그 뒤에 돌투성이의 황량한 사막이 북쪽을 향해 나 있을 뿐이다. 그는 국경을 넘어 언제 올지 모르는 타타르인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요새를 떠날 날을 기다린다.

그들의 행운과 모험, 그리고 적어도 각자가 한 번쯤은 경험할 기적 같은 시간이, 저 북쪽 사막으로부터 올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불분명해지는 이 막막한 우연을 위해, 군인들은 인생의 전성기를 요새에서 소모하고 있었던 것이다.”(71p)

 

3개월 정도가 지나면 요새를 떠나고 싶어 하는 젊은 장교들과 달리, 드로고는 요새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 순간 그는 어떤 고귀한 일을 해냈다고 믿으며 자신한테 생각지도 못한 선의가 있다는 것을”(89p) 발견한다. 그를 떠나지 못하도록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오래전 오르티츠 대위를 처음 마주했던 그날부터 정해져있었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를 그 요새에 붙잡은 것은 그 세계의 부조리다.

누군가는 이 요새가 이 곳에 존재하도록 머물러 있어야한다. 타타르인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믿고. 그를 눌러 앉힌 욕망도, 라차리와 앙구스티나 중위의 죽음도, 오지 않는 타타르인을 기다림도 부조리하다.

 

상관 오르티츠 대위는 말한다.

이곳은 뭐랄까, 유배지 같은 곳이지. 그러니 어떤 분출구를 찾아야 할 필요가,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할 필요가 있어. 어떤 자가 그런 생각을 떠올렸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타타르인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네. 맨 처음 누가 그런 얘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네.”(211p)

 

오르티츠 대위는 퇴임하면서 드로고에게 이년 안에 전쟁이 일어날테니 떠나지 말라고 한다.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니길 바랐다. 사실 그는 드로고 또한 자신처럼 군인으로서 큰 행운을 누리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가길 빌었다. 그러지 않으면 억울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드로고에게 우정을 느꼈고, 그가 잘 지냈으면 했다.”(248)

 

인간의 본래적 감정일까? 아니면 세계에서 길들여진 이기심과 시기심일까?

 

상관들은 너무나 오랜 세월을 그는 헛되이 기다렸고, “너무나 오랜 세월 아침마다 변함없이 황량한 그 저주받을 평야를 봐왔지만”(141p) 부하들에게 그 진실을 알리지 않는다. 나이가 든 드로고 역시 자신이 처음 요새를 찾아왔을 때 오르티츠와 만났던 곳에서 새로 부임하는 모로 중위를 만난다. 그 역시 중위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못한다.

 

요새의 군인들은 오멜라스의 소년이다.(어슐러 르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 마을의 행복을 위해 지하 감옥에 묶여 있는 소년) 세상의 부조리는 내가 빠져있는 덫을 타인이 피해가도록 알리지 않고, 그렇게 그것을 묵인하고 세습하며 집단을 존속시킨다.

 

진실을 알았음에도 드로고는 시시때때로 불안에 시달리며, 일상의 익숙한 리듬에 젖어 들어간다. 그리고 드로고는 삶의 중요한 일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환상을 놓지 않는다. 그는 결코 오지 않은 자기의 때를 인내심 있게 기다린다.”(241)

 

많은 시간이 흘러 마침내 적이 왔을 때, 그는 노쇠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역시 부조리하다. 그는 요새 밖으로 옮겨져 죽음이라는 진정한 적을 기다린다. 어쩌면 이 순간만은 진실하다. 요새라는 세계에서 그를 사로잡았던 희망과 환상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순간이다.

 

인생에서 올 것만 같은 약속된 그 무엇,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시대가 만든 허상일 수 있다. 원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다리는 그것이 원하는 때에 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마치 그럴 수 있을 것처럼 보여 진다. 세계가 만들어낸 신기루다. 가장 확실한 사실은 죽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 마지막에 내가 기다린 것의 실체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미 비껴갔을까? 아직 오지 않았나? 아님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인가?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이 세계가 약속한 영광은 어쩌면 허상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불안감은 커지고, 아직 오지 않은 그 무엇은 실체조차 알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 기다림들의 집합이 세계를 유지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그 오멜라스의 소년일지도!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번 새로운 체계를 따르고, 비교조건을 찾으며, 상황이 더 나쁜 사람들을 보고 위안 받을 필요가 있었다.”(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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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3-12 16: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죽음이라는 진정한 적! 소주맛입니다ㅎㅎ 로맹가리의 말처럼 삶은 결국 죽음의 패러디에 불과하겠죠? 패러디 속에서 아웅다웅. 다 몸부림인듯 합니다.

그레이스 2022-03-12 17:13   좋아요 4 | URL
죽음의 패러디... !
이 세계가 제시하는 허상에 속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생각합니다.

새파랑 2022-03-12 18: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무작정 기다리는,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의 심정을 느꼈어요 ㅋ 그레이스님도 좋게 읽으셨다니 기쁘네요~!!

그레이스 2022-03-12 18:05   좋아요 5 | URL
그 심정도 전달되죠?!
타타르, 사막,,,, 다 미지를 품고 있는 단어인듯요
적을 기다린다는 것도 아이러니이고...!

레삭매냐 2022-03-12 20: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참으로 부조리합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타협을
하고 받아 들이며 살아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치환된
기다림은 하염이 없었던 것
으로 기억합니다.

아무래도 올해 시간 내서
다시 한 번 읽어봐야지 싶네요.

그레이스 2022-03-12 20:54   좋아요 4 | URL
오래 전에 산 책인데 이제야 읽었습니다. 여러가지로 확장되어서 제가 읽어낸 의미보다도 더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mini74 2022-03-12 2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체 죽음은 다가오고. 그럼에도 그만 둘 수 없는 것이 삶인가요 싶다가 ㅎㅎ 그레이스님 글 속 기다림의 집합이 세상을 유지시키고 어쩌면 우리가 오멜라스의 소년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레이스님 글은 언제나 좋아요 *^^*

그레이스 2022-03-12 21:20   좋아요 3 | URL
감사해요^^
미니님 요점정리가 더 감동이예요~♡

희선 2022-03-17 0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다리는 건 오지 않는다 해도 죽은 어김없이 오겠습니다 그때가 찾아오면 아쉬울지, 그때까지 산 것만으로도 괜찮을지... 살아 내는 게 좀 낫겠지요


희선

그레이스 2022-03-17 05:16   좋아요 2 | URL
한편의 시를 만드시네요^^

서니데이 2022-04-09 00: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그레이스 2022-04-09 00:51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님

희선 2022-04-09 02: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또 축하합니다 어느새 주말이에요 한주가 빨리도 갑니다 그레이스 님 주말 즐겁게 지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2-04-09 08:5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희선님 선뜻 다가온 계절 만끽하시길...!

mini74 2022-04-09 08: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ㅎㅎ 감동하며 읽었던 라뷰네요. 축하드려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그레이스 2022-04-09 08:51   좋아요 3 | URL
항상 감사합니다.
미니님~~♡

새파랑 2022-04-09 09: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가 진심 좋아하는 책~!!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2-04-09 18:2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새파랑님 좋아하시는 책인거 진작에 알고 있었죠!^^

미미 2022-04-09 13: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들의 행운과 모험, 그리고 적어도 각자가 한 번쯤은 경험할 기적 같은 시간이, 저 북쪽 사막으로부터 올 것이다.˝이 문장 멋지네요. 그레이스님 2관왕 축하드려요!!.。o♡( ⸝⸝・໐・⸝⸝ )

그레이스 2022-04-09 18:3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왔을까요? 아니면 올까요?
기적같은 시간이라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아서 모르는걸까요?^^
 
기나긴 하루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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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글을 읽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그렇지 않은 세대와 다를 수밖에 없다. 마음과 육체에 남긴 상흔은 생각과 언어로 나타난다. 작가가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쓴 자전적 이야기나, 창조한 인물들에 투사한 생각과 언어는 나의 결과 맞지 않았다. 작가가 지나온 세월도 그렇지만 타고난 기질 때문에 그가 쓰는 언어와 마음에서 퍼내는 솔직한 감정들이 불편했다.

 

이 단편집 역시 그런 지점들이 많았다. 다수의 작품에서 보았던 유년기, 전쟁의 기억, 상실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부정적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하고 있어 마치 가시덤불 사이를 긁히며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는 다른 여러 작품에서 읽었던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기억에 없는 아버지의 부재를 느낄 수조차 없었지만 아버지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이 청승을 떠는 것처럼 보일까봐 그래서 식구들이 불쌍해할 것 같아서 보지 않았던 최초의 자의식에 대한 기억은 작가의 성품을 엿보게 해준다.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잃는 두 번의 상실, 특별히 아들을 잃은 후, 그녀를 힘들게 했던 감정은 수치심이었다고 한다. 스스로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형벌을 받는가라는 질문이 만들어낸 감정이었다. 그 수치심은 자연스럽게 분노로 바뀌었다. 그녀는 부재하는 집에서 헛되게 울릴 전화벨 소리, 쌓여 있는 우편물 생각을 하면 누구에게랄 것 없이 고소한 생각이 드는 것 정도가 즐거움”(36p)인 여행을 떠나고 그 후로도 무감한 상태의 여행은 계속되었다. 이탈리아 여행 중 몸살을 앓으며 버스 안에서 파바로티의 노래를 듣다가 격정에 휩싸인다. 인턴이던 아들의 첫 번째 비행기 여행이 생명유지 장치를 단 임종직전의 환자를 제주의 집까지 데려다주는 임무였다는 기억을 떠올린다. 목 놓아 울고 싶은 감정의 폭발과, 고열로 앓았다. 돌아 온 그녀는 설렘과 볼일도 없는 여행은 다신 안 할 것이라고 결심한다.

 

상실 후 인간이 받아들이는 단계는 비슷할 듯하다. 나도 그런 상황라면 같은 감정에 휩싸일 것 같다. 카프리섬을 향하는 버스에서 행복감일지 슬픔일지 정체 모를 황홀경과 함께 찾아온 누르기 힘든 감정은 내 안에도 파토스를 만들어냈다. 언제 어느 곳에서 무엇에 의해 촉발될지 모르지만, 마음의 둑이 무너지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비상한 상태를 맞게 되는 순간이 있다.

 


수록된 단편 중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빨갱이 바이러스. 친정 부모님께 물려받은 고향집에 가끔 내려오는 주인공 가 폭우 때문에 길이 막힌 날,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 세 여자를 만나는 장면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 세 여자들을 소아마비’ ‘’ ‘보살님이라고 마음속으로 이름을 붙이는데서 나는 불쾌감을 느꼈다. 소설이지만 주인공 '나'의 오만함이 미웠다. 그녀들을 자신의 집에 묵게 하고 식사를 대접한다. ‘가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아마비하고 부르는 장면에서 경악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호칭에 아무 불쾌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여자의 태도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은 소아마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장애를 입게 된 사연과 이 곳에 오게 된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이어서 다른 여자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상상할 수 없는 삶이었다. 자신에게도 비밀을 털어놓으라는 재촉을 뿌리친 는 생각한다.

 “당신들은 왜 나에게 그런 무섭고 천박한 비밀을 털어놓은 거죠? 날 언제 봤다고, 날더러 어쩌라고?”(80p)

사실 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있다. 어릴 적 인민군이었던 삼촌을 아버지가 삽으로 치는 광경을 보았고, 그 삼촌을 삽으로 마당에 묻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친정집을 물려받으면서 그 비밀까지 떠안았다. 그래서 집을 헐고 새집을 짓지도 못한다. 혹시 유골이 나올까봐. 삼촌이 그날 밤 죽지 않고 북쪽에 살아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더 큰데도 어린 나이에 받은 충격은 그 사건을 깊이 묻어두었다. 어른들에게 물어 볼만도 한데, 단단하게 양회를 바른 마당처럼 그녀도 입도 막아버렸다. 마당과 그녀의 입은 둘 다 폭력을 삼켰다.”(90p)

 

어떤 비밀과 상처는 낯선 이를 만나 떠들고 헤어지면 그만이다. ‘의 것은 꺼낼 수 없는 곳에 있다. “어떤 상처하고 만나도 하나가 될 수 없는 상처를 가진 내 몸이 나는 대책 없이 불쌍하다.”(91p) 고 한 마지막 문장은 작가가 가진 정서의 주조(主調)일까? 누군가의 단단한 마음 안에는 오래된 백골과 같은 숨겨져 있는 무시무시한 상처가 있을 테다. 무서운 시절과 아픈 역사가 바르고 다져놓은 시멘트 안에!

 

왜 나는 박완서의 작품을 편하게 보지 못할까를 다시 생각한다. 가끔 읽다가 덮고 싶을 정도로 작가가 표현하는 증오, 분노, 오만, 비루함, 천박함이 공격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이게 문학이야? 하고 날이 선다. 고백하자면 그 추한 감정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은 냄비에 눌러 붙어 있는 찌든 때를 수세미로 벗겨내는 것 같다


여러 개의 단편에는 후배 작가들의 편지 글이나 소감이 붙여있다.

책장을 열면, 당신의 인물들이 기우뚱한 욕망을 안고 내 쪽으로 절름거리며 다가온다. 나는 이들을 잘 알아본다. 허영이 혀영을 알아보듯, 타락이 타락을 알아채듯 제법 간단히. 어떤 악은 하도 반가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알은체할 뻔하기도 한다.”(257p)

김애란 작가가 덧붙인 글을 읽다가, 나야말로 반가워 큰 소리로 알은체할 뻔했다. 책장을 덮지 않고 끝까지 읽기를 잘했다.

 

요즘, 독서를 하는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분열된 자아를 종종 보게 된다. 박완서의 소설 속 인물들이 깊은 아픔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성품은 살아서 불쑥불쑥 드러나는 것에 눈물이 날 정도로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절름거리며 다가오는 그들에게서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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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3-10 18: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 리뷰 너무 좋아요! 무엇이 발췌문이고 무엇이 그레이스님의 글인지 헷갈릴 정도로 온통 마음을 뒤흔드네요.🥲

그레이스 2022-03-10 18:37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

mini74 2022-03-10 20: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냄비에 찌든 때를 수세미로 벗겨내는 거 같다는, 절름거리며 다가오는 그들에게서 나를 본다는 그레이스님 글들 너무 와닿아요. 박완서 글을 읽으며 묘한 감정이 그 속에서 나를 봤기 때문인가봐요. 그레이스님 글 👍 두고 두고 읽고 싶습니다 ~

그레이스 2022-03-10 20:04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오늘은 무지하게 감상적이 되네요^^

2022-03-10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11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2-03-11 0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군가한테 말하고 버려도 괜찮을 비밀이 있는가 하면 말하지 못할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비슷한 곳에 있다 해도 저마다 느끼는 것도 다르고... 이건 병원에서 느꼈던 거기도 한데... 동병상련이라 해도 조금 다르기도 하죠


희선

그레이스 2022-03-11 05:16   좋아요 3 | URL
병원!^^
맞아요
거기서도 같은 병실 사람들끼리 온갖 얘기하죠^^
퇴원하면 다신 안보니까^^

2022-03-11 0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11 0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2-03-12 01: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선생님의 책에서는 80-90년대의 서울 중산층이라는 것도 있지만, 과거 전쟁을 겪고, 일제 식민지 시대를 겪었던 사람이 쓸 수 있을 내용도 있었고, 그 기억이 사라지거나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벌써 10년이 더 지났지만, 한번도 뵙지 못해서인지, 늘 장년기의 흑백사진이 익숙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3-12 07:40   좋아요 3 | URL
그렇죠?!
서니데이님도 즐거온 주말 보내세요~^^
 

그날 밤 남편한테 세미한테 듣고 온 그 말도 안 되는 이혼사유를 말해줬더니 그가 말했다. 남자들의 뇌는 결국은 엄마닮은 여자가 마음 편하게 돼 있다더니 맞는 말이구만, 곰처럼무뚝뚝하고 둔한 어미에게 질려서 아들이 여우 같은 여자에게끌렸을 거라고 말할 때는 언제구. 이 집에서 못된 바람은 다나에게로 불어온다. 대답 대신 큰 소리로 하품을 했다. 걷잡을수 없이 잠이 밀려왔다. 자야겠다.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코 골며, 아 아, 간간이 신음하며, 남편이 관찰한 나의 자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도 나의 꿈속은 들여다보지 못한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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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땅속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면? 실은 내가 더 무서워하는 건 삼촌이 그날 살해되지 않고 북쪽 어딘가에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 삼촌의 성품이나 행적으로봐서 그럴 개연성은 충분했다. 남편이 법조계에 몸담고 승진도 순조로울 때는 세상이 요새보다 훨씬 경직돼 있을 때여서,
처가라도 이북과 연관이 있는 가족이 있으면 승진이나 출세는물론 해외여행에도 지장을 받을 때였다. 남편은 나에게 그런삼촌이 있는 것도 몰랐다. 나는 그 살해 현장을 단지 목격만한 게 아니라 공범자였던 것이다. 나의 시골집 마당은 아직도흙바닥이지만 양회 바닥처럼 단단하다. 내 친구의 어머니 시신까지 하룻밤 사이에 동해바다로 토해낸 폭우도 우리 마당의견고함을 범하진 못했다. 나의 입과 우리 마당은 동일하다. 둘다 폭력을 삼켰다. 폭력을 삼킨 몸은 목석같이 단단한 것 같지만 자주 아프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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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3-09 17: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제목은 들어본 책이지만, 잘 몰라서 찾아봤는데, 박완서 선생님 돌아가시고 1년 지나서 나온 책이네요.
생각해보니, 지난해가 벌써 10주기였어요. 시간이 정말 빨리갑니다.
그레이스님, 오늘 휴일 잘 보내고 계신가요.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3-09 18:54   좋아요 2 | URL

맞아요
이미 알고 있던 내용도 있구요
여전히 감동인 지점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