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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
사라 베이크웰 지음, 김유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고백하자면 아마도 내가 유일하게 다 읽지 않고 리뷰를 올리는 책 목록에 올라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에도 이런 일이 또 벌어질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거의 드물것이라 본다. 3월 중순에 욕심을 부려 한 번에 3개의 도서관에서 한도까지 다 빌린 것은 괜찮았는데 빌린 책들의 두께나 내용이 만만치 않아 쉽지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도전한다는 생각에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도 했고 여러가지로 신경 써야 할 것이 있다 보니 책을 집중하지 못하고 하다보니 그만 500페이지 되는 책에서 400페이지 정도까지만 읽게 되었다. 그럼에도 대여한 책이라 반납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성격상 연체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 후일을 기약하며 반납하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는 최대의 장점이자 단점이 바로 이렇게 기한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내 의지로 얼마든지 기간을 변경할 수 있지만 - 연체를 통해 - 그것은 말이 안된다. 더구나, 이 책의 제목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누구도 지켜보지 않고 관심도 두지 않을테지만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키며 살아 갈 것인가,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내 맘대로 생활하며 원칙 따위는 없다는 생활을 할 것인가는 내가 택할 수 있는 내 고유의 영역이다. 누구도 함부로 간섭내지 충고는 할 수 있어도 침입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100명 중에 10명이 될까? 아니면 다들 개똥철학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만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스스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힌다. 아직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아니, 평생을 못할 것 같다.
너무 어려운 문제이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잘못하면 스스로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질문이다. 나는 이렇게 살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 대답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된다면 스스로 엄청난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 거릴테고 어떻게 살 겠다고 다짐을 하고 살아가다가 늘 반대되는 태도나 철학이나 가치관이 왔을 때 혼돈에 빠져 허우적 걸릴 것 같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나름대로 답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느 정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원칙과 중심이 잡혀 있는 인물이라 칭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어떤 선택의 질문에 봉착했을 때 평소 이러한 질문을 갖고 고민을 한 사람에게 그 선택은 평소 자신의 고민에 대한 답이 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평생을 살면서 끊임없는 선택이라는 기로에 서 있을 때마다 우리는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자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나중에 후회를 할 수도 있고, 잘했다 칭찬할 수 도 있는 결정을 내리겠지만 그런 선택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일관성이 나라는 사람을 만들고 나라는 사람의 인격체가 형성되고 도와주고 사람들부터 나라는 인물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준다. 최소한 사람들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은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주위 사람들과 상관없이 나라는 인물에만 초점을 맞춰 잘 살면 그만이겠지만 초원에서 혼자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나 혼자의 삶은 무의미하고 있을 수도 없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믿을 수 있다는 평판은 내가 눈을 감고 이 세상에서 숨을 쉬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사라질 때 그나마 뿌듯하지 않을까 한다.
어느 책인가 영화에서 나온 대사라고 하는데 사람은 그 사람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한다. 이 선택은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는 내가 하는 선택에 의해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내 자신이 알게 된다. 물론, 여기서 선택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흑백논리에 빠지면 안된다. 이것은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말과 상통될 수 있기 때문에 그나마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나름 대략적으로라도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이 어떤 책인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다. 책 제목이 너무 훌륭해서 갖고 다니면 뽐나고 어디 지하철에서도 '나 이런 책 읽는다~~'라고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제목과 표지라는 점도 어느 정도 솔직하게 작용을 했고 책 내부를 얼핏 보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철학자들의 생각을 소개하는 책으로 보았다. 쉽게 빨리 읽기는 힘들겠지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최근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에 나도 모르게 고민을 하고 있던게 원인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는 다르지 않겠지만 이제부터 어떤 삶을 이 세상에서 살아 갈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당장 현실에 닥친 여러가지 산적한 문제들이 더욱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될 듯 하다.
몽테뉴라는 인물에 대해선 알고 있는 것은 없다. 그저 그가 철학자라는 사실이나 몇 가지 표피적이고 원론적으로 교과서에나 나오는 소개 정도만 알고 있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몽테뉴의 삶과 사고와 철학에 대해 소개를 하며 당시를 살던 사람들의 사고를 몽테뉴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그 이후 사상가들이 몽테뉴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승계내지 배척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는 책이였다.
한마디로 고상한 철학책이라 할 수 있는데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고 해도 내가 교과서를 통해 입시를 보는 것도 아닌데 억지로 읽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 일단 읽기로 선택한 책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내 원칙이 있기는 하지만 - 재미가 없다면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지만 책이 쉽게 읽히지 않고 페이지를 마구 마구 넘기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책이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재미가 그래도 솔찮았다.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몽테뉴라는 한 인물의 사상을 통해 이야기를 해 주지만 몽테뉴 역시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통해 본인이 받아 들인것과 거부한 것과 보태서 생각한 것을 포함하여 이 책의 저자가 쓴 몽테뉴라는 외피를 입어 자신의 생각을 함께 버무려 이야기한다. 솔직히 내가 생각하는 그 많은 것들이 온전하게 내 생각이라 여길 수 있을까한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들도 온전히 전적으로 내 스스로 생각하고 깨달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입한 사람들의 많은 사상들이 나도 모르게 내 머리속에 자리잡고 내 스스로 내것이라 착각하고 바라보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한 부분들을 걸러 보는 것도 좋겠지만 꼭 그럴 필요는 또한 없을 것이다. 내 머리속에 있는 다양한 사상들은 나만 받아들이고 갖고 있고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같이 함께 공유하고 인지하고 승낙한 것들이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무임승차만큼 편하고 좋은 것은 없는 것처럼 굳이 혼자 잘 나거나 세상을 다르게 바라본다고 특별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자신의 시선 없이 타인이 주입한 시선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면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우리가 인터넷 게임에서 조정하는 캐릭터이자 아바타와 다를바 없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그정도를 벗어나기 위한 자신만의 시선을 갖고 있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한다.
어차피 이런 종류의 책은 책의 내용이 어떻고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책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나 책을 통해 내가 깨닫거나 알게 된 사실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렇게 거창하게 썼지만 이 책을 통해 딱히 더 많이 알게 되거나 깨닫게 되거나 얻게된 새로운 시선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이유는 없다. 몽테뉴라는 인물이 이후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인간이 인간인 이유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고 그에 대한 사상에 반론을 하고 칭송을 하게 만든 그의 '에세'라는 책이 결론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읽기는 했어도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나는 워낙 다양한 인문주의 사상에 물 들어 있고 또는 배척하고 살아가고 있어 어떤 영향을 이 책을 통해 받았는지 모르겠다.
철학책을 읽고 리뷰를 써서 그런지 내용이 무척이나 현학적인 듯 싶기도 하고 무슨 말을 이리 열심히 주저리 주저리 떠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결정을 완벽하게 내리지 못했고 평생 내리지 못하겠지만 책 초반에 나온 내용은 내가 살아가려고 한 것과 비슷하다. '느리게 살고 망각하고 사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삶과 조금은 비슷하다. 잠도 못잘 정도로 열심히 작업내지 무엇인가에 골돌히 골몰해서 살아보기 싶기도 하지만 그런 적이 없었고 그런 일을 만날 수 있는 날을 알게 모르게 기다리는지도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내 삶의 스타일은 느리게이다. 나 자신은 상당히 빠르고 민첩한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망각이라는 것은 삶을 편하게 만든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불리한 것은 망각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하여 책 초반에 나온 '느리게 살고 망각하고 살기'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