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은 어떤 식으로든 파울리를 따라다녔다. 동료들 사이에, 특히 실험물리학자들 사이에, '파울리 효과' 라는 말이 유행했다. 물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이론이 하나 있다. 이론물리학자와 실험물리학자 사이에 '천재 보존의 법칙' 이 적용된다는 이론이다. 천재 이론가가 한 명 있으면, 멍청한 실험가가 한 명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파울리는 이 이론의 살아 있는 증거이다. 그의 천재성은 모두 이론 쪽에 쏠려 있다. 파울리가 등장하는 곳에서는 뭔가가 깨진다는 미신이 자리를 잡았다. 파울리가 천문대를 방문하자, 갑자기 거대한 굴절망원경이 고장 났다. 한 번은 괴팅겐의 한 실험실에서 원자를 연구하기 위한 복잡한 실험 장치가 뚜렷한 이유 없이 갑자기 망가졌다. 실험가들이 놀랐다. 파울리는 지금 멀리 스위스에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실험실 책임자가 취리히의 파울리 주소지로 이 사건에 대한 익살맞은 편지를 보냈다. 덴마크 소인이 찍힌 답장이 왔다. 파울리는 코펜하겐에서 잡장을 쓴 것이다. 실험 장치가 고장 난 바로 그 순간에 파울리가 탄 기차가 괴팅겐역에 정차해 있었다! 함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실험가는 실험실 문이 잠겨 있을 때만 파울리와 얘기했다. 자신의 실험 장치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p354


 예전부터 '파울리 효과'는 참 신기하고 재밌는 이야기였다. 물리학자들도 미신을 믿었다니 왠지 더 귀엽다. 실제로 '파울리 효과'는 굉장히 유명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수에 사로잡혀 있다. 파울리는 종종 알파로 표기되는 전자기력의 강도를 나타내는 우주의 기본값, 미세구조 상수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한다. 그의 스승 조머펠트는 그것을 1/137이라고 기록했다. 왜 하필 137일까? 누가 또는 무엇이 알파를 그렇게 지정하여 원자와 붕괴가 붕괴하지 않게 했을까? 

 137! 융은 이 수를 카발라에서 보았다. 그렇다. 137은 카발라다! 히브리어의 모든 알파벳은 수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카발라' 라는 단어의 알파벳을 합하면 137이 된다. 융과 파울리는 그것이 우연일 수가 없다고 믿었다. -p366 


 (중략) 그리고 1958년 12월 5일 극심한 위통으로 적십자병원에 이송되었고, 병실 번호를 본 파울리가 외쳤다. "137호야! 살아서 나갈 수 없겠군." 그는 열흘 뒤에 사망했다. -p367


 파울리에 관한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다. 파울리는 정신과 상담을 위해 융을 방문했다. 둘은 137이라는 숫자에서 물리학과 유대교 신비주의의 연관성을 보았다. 둘은 <자연의 해석과 정신>이라는 책을 같이 썼다. 어떤 책일지 궁금하다. 


 
















 1945년 8월 6싱 라침, 히로시마에 햇살이 비친다. 8시에 25만 명의 시민 대다수가 아침을 먹고 신문을 읽고 출근을 하거나 등교했다. 분홍색 불빛이 하늘을 밝히고 나자 8만 명이 즉사했다. -p474


 찬란했던 양자역학은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쳐 히로시마 원자폭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책은 1945년으로 막을 내린다.



 아래는 이 책의 에필로그 마지막 글이다. 


 양자역학은 누구도 혼자 힘으로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아주 기이한 이론이였다. 그들은 양자역학을 탄생시키기 위해 협력하고 경쟁하고 친구이자 적이 되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썼던 편지, 메모, 연구 논문, 일기, 회고록에서 양분을 얻어 이 책이 탄생했다. 

 진짜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은 언젠가 끝난다. 이 책의 물리학자들은 1945년 이후에도 계속 활동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누구도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에 견줄 만한 진보를 더는 이루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세계 공식을 찾고자 했다. 하이젠베르크 역시 뭔가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100년 전에 세운 그들의 이론은 오늘날까지 굳건히 서 있고, 우리의 컴퓨터칩과 의료장비 안에 들어 있고, 당시 이런 이론의 해석을 두고 그들이 겨뤘던 논쟁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심에 있다.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에 제기한 이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회의적인 물리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이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p479 



 뉴턴의 중력 법칙이후 200년의 시간이 흘러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나왔다. 그리고 100년이 지났다. 앞으로 이만큼 거대한 이론, 세계들 변화시킬 이론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상상하긴 힘들지만 아마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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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미술 관련 책을 읽는다. <방구석 미술관>은 3년 연속 예술 분야 베스트셀러 1위라고 한다. 베스트셀러라 그런지 책 제목을 많이 들어봤다. 19세기에서 20세기 서양미술가들의 이야기와 작품, 작품에 얽힌 이야기들을 다룬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미술 입문서이다. 

 


˝지금 나는 용기도 재능도 부족하다. 곡물 창고로 가서 목을 매는 게 낫지 않은가 매일 자문한다. 그림만이 나를 지탱해준다.˝

-p155


˝내 그림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이젠 명성을 기대하지 않아. 모든 것이 암담한 지경이고 무엇보다도 나는 여전히 빈털터리야. 좌절과 치욕, 기대 그리고 더 큰 좌절.˝ -p208


 첫 번째는 고갱의 말이고 두 번째는 모네의 말이다. 둘 다 미술을 시작하고 10년 후에 한 말이다. 10년을 열심히 그림을 그렸지만 둘 다 인정을 받지 못하고 좌절한다. 다행인 건 좌절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그만큼 둘은 그림에 대한 열망이 컸다.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만큼.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이들을 혐오한다. 회화는 탐구이며 실험일 뿐이다." -p255 


 피카소가 한 말이다. 나는 이런 말을 한 피카소를 혐오한다. 미술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피카소가 시작이 아닌가 싶다. 아름다움과 멀어진. 그 후 현대미술은 정말 아름다움과 결별하고 탐구와 실험이 되어갔다. 나는 아름다운 미술이 좋다. 반 고흐와 모네의 그림이 좋다. 


 아직 예술가 두 명이 남았지만 미리 페이퍼를 쓴다. 혹시 추가할 게 있으면 추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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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자역학은 막스 플랑크로 인해 시작된다. 그는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했다. 그가 한 교수에게 음악대학의 전망을 묻자 퉁명스럽게 생각을 바꾸라고 이야기했다. 막스가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자 아버지가 그를 물리학교수에게 보냈다. 그런데 그 교수는 물리학을 전공하지 말라고 열심히 설득하는 사람이었다. 뉴턴의 운동법칙, 에너지 보존법칙의 발견이후 물리학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학문이고 완성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시각이 그 당시 팽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막스 플랑크는 이런 물리학이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막스 플랑크는 혁명가라기보다 공무원같은 인물이었다. 막스는 양자를 발견했지만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몰랐다. 


 막스 플랑크는 양자에서 다시 벗어나려고 수년간 노력했다. 영국의 존 윌리엄 스트럿, 제임스 진스, 핸드릭 로렌츠 같은 다른 물리학자들도 양자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그들은 에테르의 연속체를 믿었다. 그들은 뉴턴과 맥스웰을 믿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양자는 유지될 것이다. -p29  



 시간은 흘러 1918년 스페인 독감에 관한 재미난 사실이 있어서 이야기해본다. 1918년 세계 1차대전시기에 세계를 강타한 독감이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5천만명이 이 바이러스로 인해 죽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두 배나 많은 수치다. '스페인 독감'은 스페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지만 그 당시 스페인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전쟁 선전과 보안 검열이 없었다. 그래서 스페인 신문만이 전명병 기사를 낼 수 있었다. 



 아래는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재미난 일화이다. 3년 만에 조우한 두 사람은 만자나마다 물리학에 관한 대화에 깊이 빠져들었다. 전차를 타고 보어의 연구소로 향하는데 이야기에 몰두하느라 계속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쳤다. 


 보어는 나중에 이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전차를 타고 같은 구간을 여러 번 오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안중에 없었다." -p150  

 

 두 천재의 집중과 몰입을 보여주는 재미난 일화이다. 


 

 아래는 디랙에 관한 재미난 일화이다. 나중에 밝혀졌듯이, 디랙은 자폐 성향이 있었다. 


 하루는 식사 도중 어떤 사람이 디랙과 대화를 나눠보기 위해 휴가 때 어디로 갈 생각인지 물었다. 그러나 그는 침묵했다. 후식을 먹은 뒤에 디랙이 되물었다. "그게 왜 궁금합니까?" 타인의 관심이 싫어서 이렇게 대꾸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그런 일에 관심이 있을 수 있는지 그로서는 정말로 이해되지 않아서였다. 디랙은 스몰토크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원자와 특수상대성이론이다. 그리고 위대한 시간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p190


 디랙은 뛰어난 수학자였다. 나도 스몰토크 감각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디랙에게 공감이 됐다. 



 책을 보면 재밌게도 세계의 모든 의견은 대립하는 거 같다. 물리학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할 때 기분이 상한다. 인격에 대한 공격이 아니지만 인격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아래는 파울리가 슈뢰딩거에게 보내는 사과의 편지의 내용이다. 

 

 "친애하는 슈뢰딩거 교수님, 부디 날 비난하진 마십시오. 당신의 이론은 아주 멋집니다만, 세계와 맞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티끌만큼도 인격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이 곧 인격인 사람이라면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p250  



 아래는 다시 디랙에 관한 글이다.


 디랙은 코펜하겐에서 단 세 가지 표현으로 대부분의 대화를 해결했다. "네", "아니요.", "모릅니다." 그는 거의 이마누엘 칸트처럼 매우 규칙적으로 생활했다. 일주일에 5일은 이론을 작업하고, 토요일에는 기술 프로젝트를 작업했다. 일요일에는 트레킹을 했다. 매주 똑같은 리듬이 다시 반복되었다. -p259



 아래는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의 원리를 논문으로 쓴 후의 이야기다.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의 논문으로,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가 물리학의 토대라고 여겼던 인과성을 흔들었다. "현재를 정확히 알면, 미래를 계산할 수 있다'는 인과법칙의 명확한 진술에서 틀린 것은 결론이 아니라 전제조건이다." 우리는 현재를 알 수 없다. 우리는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전자의 미래 위치와 속도의 가능성 확률만을 계산할 수 있다. "양자역학을 통해 인과법칙의 무효성이 명확히 입증된다." 논문의 마지막 문장이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통한 시공간혁명에서 감히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 못했었다. 한때 뉴턴이 상상했던 시계태엽 우주는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변화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는 이마누엘 칸트의 문장도 더는 통하지 않는다. -p287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물리학 세계를 굳걷히 지탱했던 인과법칙이 양자의 세계에서는 더는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가 없다. 확률만을 계산할 수 있다.


 

 아래는 물리학자들의 모임인 제 5차 솔베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의 발표이다. 


 아인슈타인이 조심스럽게 발표를 시작했다. "나는 양자역학의 본질에 대해 충분히 깊이 숙고하지 않았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나는 몇 가지 일반적인 언급만 하고자 합니다." 이 말은 완전히 거짓말이었다. 그는 나중에 한 친구에게 "일반상대성이론보다 양자 문제를 100배나 많이 숙고했다" 고 털어놓았다. 어떤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이 약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잘못 알았다. 그는 양자역학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이해했다. 그는 그것이 불완전하다고 여겼기에 단지 동의하지 않았을뿐이다. -p317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확률론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양자역학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받아들이던지 받아들이지 않던지 둘 중 하나다. 받아들이던지 받아들이지 않던지 양자역학은 현실세계에서 아주 잘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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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하루키 - 그만큼 네가 좋아 아무튼 시리즈 26
이지수 지음 / 제철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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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뛰는 덕후 위에 나는 덕후있다. 나는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이 책의 저자에겐 한참을 못 미친다. 저자는 하루키의 문장을 원서로 읽기 위해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으로 유학까지 가는 진짜 하루키 덕후이다.  

 하루키의 팬으로서 즐겁게 이 책을 읽었다. 하루키의 책과 문장들을 만나고 그에 대한 저자의 감상을 듣고 저자의 이야기까지 재밌게 들었다. 그녀는 지금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으며 하루키의 책을 의뢰받는 날까지 번역을 계속해볼 생각이라고 한다. 꼭 그녀가 하루키의 책을 번역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번역가는 오래 버티는 사람이 최고라고 한다. 바위 밑에 붙어있는 따개비처럼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끈덕지게 버티기 바란다!


 아래는 이 책에서 좋았던 저자의 문장이다. 하루키만큼 뛰어난 비유다. 


 (중략) 하루키의 문장은 언제까지고 나를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충직한 개처럼, 끈기 있는 스승처럼, 배신하지 않는 연인처럼.

 생각해보면 나를 그 타향의 침대 위로 데려간 것도 하루키의 문장이었다. 그 문장들과 함께 나는 내가 원래 속했던 곳에서 나날이 멀어져갔다. 나날이 낯설어져갔다. 나날이 가벼워져갔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 어느 시절의 내가 간절히 바라던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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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6-07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작가님 진정한 하루키 덕후가 맞는거 같습니다 ㅋ 꼭 작가님이 하루키 책을 번역했으면 좋겠네요 ^^

고양이라디오 2023-06-07 16:20   좋아요 1 | URL
저는 명함도 못 내밀겠더라고요ㅎㅎ 새파랑님 덕분에 즐겁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점 7.5

 감독 이상용

 출연 마동석, 이준혁, 아오키 무네타카, 김민재, 이범수

 장르 범죄, 액션



 프랜차이즈 영화의 한계를 보여줬다. 어쩔 수 없는 수순이지만 씁쓸하다. <범죄도시 2>가 예상보다 훨씬 괜찮아서 <범죄도시 3>도 기대를 했었다. 그럭저럭 즐기면서 재밌게 볼 수 있지만 1, 2편에 한참 못미친다. 


 어제 영화를 봤다. 좌석은 몇몇 좌석을 빼곤 꽉 찼다. 내 양 옆에 앉은 아주머님과 젊은 여성 분은 감탄사나 하시는 말씀을 봤을 때 재밌게 보시는 거 같았다. 관람객은 벌써 450만명이다. 네이버 평점은 8점에 못 미치는 7.87이다. 1편이 9.28, 2편이 8.99인 걸 비교해봤을 때 많이 낮은 수준이다. 평점은 더 낮아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손인분기점은 넘었고 어느 정도 흥행할 듯 보인다. 볼만한 영화가 요즘 없기도 하고 마동석과 범죄도시의 티켓파워는 상당하니까. 그리고 못 볼 정도의 영화도 아니니까. 타격감과 유머는 전작들보다 나아졌다. 하지만 긴장감과 빌런의 매력도는 많이 감소했다. 내가 느끼기에는 거의 없었다.


 단점들을 분석해보자. 


 첫번째, 역시 빌런의 존재감, 서사, 매력도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내 누군지 아니~?" 의 장첸, "너 납치된 거야." 의 강해상에 비하면 주성철은 명대사도 없고 명장면도 없다. 잔혹하지만 특별히 사악해보이지도 않고 아주 평면적이고 단순한 캐릭터다. 장첸과 강해상의 포스는 어마어마했다. 꼭 잡아야 되는 범죄자였다. 하지만 3의 주성철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빌런의 존재감이 약해진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다시 첫번째, 빌런이 두 명이 되면서 오히려 둘 다 애매해졌다. 개인적으로 리키라는 인물은 빼고 다시 스토리를 짰으면 싶다. 한 영화에 빌런은 한 명이면 족하다. 나머지는 빌런과 주인공을 부각시켜줘야 한다. 그래서 둘의 대립구조가 강해진다. 한정된 분량을 둘로 나누면 둘 다 약해진다. 빌런은 주성철 한 명으로 하고 주성철에 대한 서사를 좀 더 쌓았어야 한다. 그가 얼마나 나쁜 인물인지, 얼마나 위험인물인지를 부각시켜야 한다. 스토리 상으로 참 허점, 문제가 많다. 주성철은 가만히 놔둬도 자멸할 인물이었다. 주위에 계속 적을 만드는 모습을 보며 '그냥 놔둬도 알아서 죽겠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의 적들은 자신보다 훨씬 강한 조직들이다. 잔혹함과 막가파식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그랬을까? 모르겠다. 암튼 덕분에 주성철 연기의 폭은 단조로웠다. 표정 한 두 개로 영화를 찍었다. 인상쓰면서 위협하기. 웃으면서 여유부리기. 최근에 본 <스파이던 맨3>에서도 너무 많은 빌런이 등장하면서 각각의 빌런의 서사는 약해지고 스토리도 쓸데없이 중구난방이 됐다. 개인적으로 굳이 스토리를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 영화에 빌런은 한 명, 중심 스토리는 하나. 나머지는 주인공과 빌런, 중심 스토리는 보완해야 한다. 큰 줄기가 너무 많으면 안된다.


 두번째는 역시 비슷한 이유인데 서사를 몰아줘야 되는데 분량이 나눠지다 보니깐 주성철에 대한 서사가 너무 없었다. 쓸데없는 서사를 덜어내고 주성철이 어떻게 해서 빌런이 되었는지나 빌런으로써 어떤 나쁜 짓들을 저질렀는지 등 빌런으로써의 서사가 필요하다. 단순히 잔혹한 모습을 보여줘봐야 전혀 무섭지 않다. 특히 관람등급이 15세로 낮아지면서 1, 2편에 비해 확연히 잔인함의 수위가 낮아졌다. 잔인한 장면은 카메라 씬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세번째는 일반인들에 대한 위협, 공포감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도 서사에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3편에서는 주성철이 야쿠자, 중국조직과의 대립만 보여주다보니 마약범죄가 일반인들에게 어떤 피해와 공포를 주는지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었다. 영화 초반에 마약 때문에 호텔에서 떨어져 죽은 여성만 잠깐 나왔을 뿐이다. 범죄도시 2에서 강해상이 한국이 재벌2세를 납치해서 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딴 판이다. 실제로 마약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서사가 더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렸어야했다고 생각한다. 


 단점 두 번째, 매력적인 조연들의 부족. 1, 2편에 비해 조연들의 비중이나 역할이 약했다. 1, 2편은 금천경찰서 강력반 식구들과의 케미가 좋았는데 3편에서는 광역수사대로 옮기면서 그런 조연들이 비중이 대폭 축소됐다. 그 외에도 1, 2편은 장이수 등의 감초 캐릭터가 활약했는데, 3편은 초롱이가 있긴 했지만 약한 느낌이었다. 


 단점 세 번째. 사실상 시나리오의 완성도 부족.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핍진성을 중요시하게 생각한다. 핍진성은 작품에서 얼마나 그럴듯하고 있음직한 이야기로 그려내느냐 하는 것이다. 핍진성은 개연성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는 눈감아 주지만 핍진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계속 보이면 몰입이 힘들다. 핍진성이 떨어지면 영화나 소설에 푹 빠지지 못하고 한 발 떨어져서 평가를 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핍진성이나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들이 눈에 종종 띄였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조금 씁쓸했다. 재밌긴 했지만 기대만큼이 아니라 아쉬웠다. 이제 다음 시리즈는 기대가 안된다. 이 수순이라면 <범죄도시 4>는 망작의 가능성도 있다. 

 

 

 평점 10 : 말이 필요없는 인생 최고의 영화. 

 평점 9.5: 9.5점 이상부터 인생영화. 걸작명작

 평점 9 : 환상적. 주위에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영화. 수작

 평점 8 : 재밌고 괜찮은 영화. 보길 잘한 영화. 

 평점 7 : 나쁘진 않은 영화. 안 봤어도 무방한 영화. 범작

 평점 6 :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 6점 이하부터 시간이 아까운 영화. 

 평점 5 : 영화를 다 보기 위해선 인내심이 필요한 영화. 

 평점 4~1 : 4점 이하부터는 보는 걸 말리고 싶은 영화. 망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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