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정희진 작가의 독서책 한 권, 그 단 한 권을 읽고 작가의 '투박함' 혹은 공격성, 아니면 기존 질서, 정전에 대한 무시에 놀란 적이 있다. 그리고 한동안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 이번 책은 다시 독서, 책읽기와 신념에 대한 글이라 오랜만에 마음을 다잡고 읽었는데 (그러니까, 정희진 작가를 싫어하지 혹은 그에 - 나 나름대로의 기준에 맞추어 -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 읽으면서 계속 나 따위가 감히, 라는 생각만 들었다. 


이 책이 다루는 스물일곱 권, 그 중 내가 읽은 단 두 권에 대한 내용 보다도 정희진의 문장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왔다. 특히 철학적 개념을 짚어내며 짧고 곧은 문장으로 논지를 펼 때, 한 단어 한 단어, 괄호 안의 영어나 한자어와 함께 부옇던 '어떤 생각'을 단단하게 붙잡아 주며 내 앞에 섰다. 곧고 단단하게 읽고 고민하는 그에 비해 나의 책읽기는 얼마나 허랑방탕한가. 하지만 가끔, 혹은 자주 정희진 작가의 '치열한' 글을 만나면 괜찮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권력을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의 속성, 심지어 동사(‘권력하다)로까지 사유하는 것이 권력에 대한 새로운 사유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능력, 세상에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 그리고 개인으로서뿐 아니라 집단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권리다. 많은 여성이 갖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 그렇기에 절실히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의 권력이다. 맨스플레인‘이라는 용어가 (많은 남성이 이 용어에 강렬한 반감을 갖는데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그토록 큰 반향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말이 여성들의 심금을 크게 울리는 이유는, 그것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내가 트위터상에서 로마사 강의를 들을 때 느끼는 감정과 매우 유사하다. 이 어떤 느낌인지를 정확하게 건드리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언극이 시작되는 시점은 허기가 우리를 압도할 때, 허기가 언어의 체계화 역량을 초과할 때다. 언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우리는 다시 몸에 의지하게 되고, 우리가 느끼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을 말하려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는 몸의 행동과 강박과 충동을 허락하게 된다."  


"여자들이 세계 내에서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할 권리를 요구하고 있던 때에, 남자들이 주도하며 동시에 전통적 권력 구조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던(그리고 여전히 그러한) 문화가 여자들에게 반대의 메시지를 날린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자들이 정신적으로 더 큰 존재가 되자, 육체적으로는 더 작아지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한때 남자들이 장악했던 영역(각급 학교, 스포츠, 직장, 침실)에서 여자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하자, 여성을 어린애로 취급하고 수동적이고 연약하며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로 묘사하는 여성성의 이미지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데이아:
아! 아! 이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영리하다는 소문 때문에손해를 보고 낭패를 당한 것이어디 한두 번이겠습니까.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자식들을 너무 영리하게 키워서는 안 되겠군요.
게으른 것도 모자라 영리하다고시기와 질투를 받게 될 테니까요.
바보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꺼냈다간영리하다고 칭찬을 듣기는커녕쓸모없는 바보 취급을 받을 겁니다.
유식하다고 이름난 이들보다당신이 더 유식해 보이면오히려 질시의 대상이 될 겁니다.
제가 지금 바로 그런 처지예요.

남편과 궁합이 잘 맞아서남편이 싫은 기색 없이 살아 주면 모두들 이를 부러운 생활이라고 하지요.

그러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남자들이란 집안일에 싫증이 나면 집 바깥에서 울적한 마음을 풀 수도 있어요.

친구나 또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여자들은 항상한 사람만을 쳐다보고 살아야 합니다.

남정네들은 말합니다.

여자들은 집에서 편하게 살지만남자들은 창을 들고 싸운다고.

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말입니까?

아이를 낳는 고통을 한 번 겪기보다차라리 세 번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게 나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우가 인간의 말과 글을 (독학으로) 배워서 편지를 남겼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호기심이 많은 이 여우8은 철자법이 매우 서툴지만 지적 능력과 공감 능력은 어느 인간 못지 않다. 그가 비관적인 미래를 바꿔보려 인간에게 협력을 구하며 애쓰는 것이 안타깝다. 그에 더해 책이 기대보다 재미가 없어서 더 안타까웠다. (어쩜 조지 손더스의 전작 '바르도의 링컨' 만큼이나 재미가 없어서 마음이 아팠다.)


동물의 목소리, 더 나아가 동물의 글을 '그대로' 전하는 소설은 이미 만난 적이 있다. (소세키의 고양이는 글을 쓰지는 않았고 이야기만 전했지, 아마?) 직접 타자를 쓰느라, 혹은 글자를 쓰느라 (해부학적 어려움을 안고) 고생하는 개를 두 마리 안다. 온다 리쿠의 '충고'의 개는 주인에게 닥친 위험을 경고하고 장자자/메시의 개 리트리버는 타자기를 사용해서 오랜 시간 주인과의 인연, 인간의 생활사를 관찰하고 있다. 



자연의 친근하고 순수한 시선으로 인간의 파괴적 행동을 묘사하고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여우8의 편지는 의미가 크다. 하지만 -해요, 투의 어느 정도 귀엽고 (하지만 애써 안 귀여우려 쿨하게 군다) 망가진 철자로 수십 쪽의 이야기를 따라가기는 지치는 일이다. 나 역시 멍청한 인간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시나 저 '안녕하세요 저는 소설가의 개이고'에 관심이 생기는 분들께, 재미 없어요. 읽지 말아요. 저도 이 책 추천한 친구랑 싸웠어요.) 


그나저나 동물 목소리 (여우8 보다 덜 똘똘한) -새오체는 영화 <검은 사제들>의 돼지의 편지글 패러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게 다 인간 편의주의고 인간 중심이고 인간 나쁘고 못됐고. 압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1-06-26 15: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추천한 친구랑 싸웠 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6-26 18:55   좋아요 3 | URL
친구 추천을 믿고 꾸역꾸역 완독했는데, 정작 친구는 책 앞부분만 읽고 재미있다고 했던 거였어요. ㅎㅎㅎ

미미 2021-06-26 15: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떤 내용으로 싸우셨을지 궁금해오ㅋㅋㅋㅋㅋㅋ저 <아무튼 스릴러>에서 읽고 다짜고짜<나와 춤을> 사서 ‘충고‘읽었어요~♡ 짧지만 넘넘 귀엽고 마음아팠어요! 흑흑

유부만두 2021-06-26 18:55   좋아요 2 | URL
책이 재미가 심하게 읍드라고요. ㅋㅋㅋㅋ ‘충고‘는 은근 슬프고 번역체가 귀여웠어요.

붕붕툐툐 2021-06-26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싸움을 부르는 책이군요!ㅎㅎㅎ
기대보다 재미가 없어서 안타까운 거 넘 웃겨요!ㅎㅎ

유부만두 2021-06-27 07:47   좋아요 0 | URL
붕붕툐툐님께 웃음을 드렸다니 기쁩니다. 네. 전 그걸로 오케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