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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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자기 감정을 토로하는 데 절묘한 수사법을 구사하는 사람이다.

비유를 쓰기도 하고,

전혀 다른 소재를 가져다가 빗대는 데 명수들이지만,

읽는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을 금세 파악한다.

'홍당무'의 작가 쥘 르나르가 쓴 '뱀'이라는 시, 전문은 '너무 길다' 였다.

그 시대가 나치 독재 시대라고도 하고, 인생은 너무 길다는 의미라고도 한다.

 

유시민은 남을 가르치려 들면 금세 티가 나는 듯 싶다.

그의 뜨거운 열정을 쏟아넣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나도 얼마나 불밝히며 읽었던가 생각해 보면,

이제 그나 나나 나이가 들어 노하우를 생각하게도 되지만,

그의 '글쓰기' 책이라니... 읽으면서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글들이 좋았던 점은,

그의 글이 가졌던 시의적절함과,

그의 글이 바라보는 방향의 신선함, 자유주의자로서의 자유로운 행보 같은 것과 연관있었나보다.

그의 '정치가로서의 글'은 어울리지 않는 서양 옷을 입고 갓을 쓴 격으로 겉도는 글도 많았고,

역시 '글쓰기'에 대한 이 책도 맘에 쏙 들지는 않는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에 대비되게 비판적으로 읽게 되는 지점이다.

 

'알아야 면장' 이라는 말이 있다.

알아야 잘할 수 있는 게 어디 면장 뿐이겠는가.(134)

 

'면장'은 면사무소의 대빵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마치 쌍팔년도가 '1988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듯.(쌍팔년도는 단기 4288년 - 2333 = 195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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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옛말에 알아야 면장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공자가 아들 리()에게 너는 주남(), 소남()의 시를 공부했느냐? 사람이 이것을 읽지 않으면 마치 담장을 마주 대하고 서 있는 것과 같아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말에서 유래됐다. 주남과 소남은 시경(詩經)의 편명으로 그 내용이 수신(修身)과 제가(齊家)에 대한 것이다. 즉 이를 공부하면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난다(면면장免面牆)”는 의미로 시간이 흐르면서 알아야 면장(面牆 또는 面墻)한다는 말로 불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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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쓰기가 전적으로 어불성설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책으로 낼 만큼 그의 글이 전범인 것도 아니지 않는가.

 

못난 글은 다 비슷하지만, 훌륭한 글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168)

 

스스로 인용했듯, 안나카레니나의 첫구절을 비튼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이유가 다 다르다.

톨스토이의 말은 불행하다고 생각하기는 쉽지만, 행복하려면 모든 조건에서 구멍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좋은 글은 다 비슷비슷하지만, 못난 글은 저마다 이유가 다 다르다'처럼 인용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어떤 한 가지만 부족해도 못난 글이 되기 쉬우니 말이다.

작가가 썼듯, 우리말을 너무 모르고 써도 그러하고,

부족한 사고를 드러내는 글도 그러하고 말이다.

 

무엇보다

그가 '논술'에 대해서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아이들의 논술은 예전처럼 장문을 쓰는 것이 아니다.

글을 읽고 요약하기부터, 비교하며 자기 생각 쓰기 등 채점하기 쉬운 것들 위주다.

 

그리고 논리적인 글을 중시한다는 예로 든 것이 '공무원 연금법'에 관련된 글이라니...

별로 논리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 시점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 여당뿐 아니라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공무원 연금법 개정을 개악이 아닌 개선, 개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30)

 

다수가 그러하다고 논증하는 오류가 있다.

숫자가 많다고 논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자신도 '어떤 여론조사'를 인용한 것인지 명쾌하게 밝히지 않았다.

 

공무원 연금의 문제는 당연히 고쳤어야 할 것인데,

수십 년 동안 차근차근 개선하지 못한 책임이 오롯이 국가에 있고,

국민의 수명이 급격히 늘어난 데 비해 제때 대응하지 못한 책임 역시 국가에 있다.

차근차근 장기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당연히 '개악'이다.

 

공부라는 전투를 뚫고 서울대에 입성하여 학생운동을 했던 그가,

그의 딸까지 외고를 나와 서울대에서 단과대 학생회장을 한 줄 다 아는데,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건 겸손이 아니다. 특히 이런 책을 쓰는 입장에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지하조직에서도 '글 쓰는' 일을 할 정도로 문장을 조직하는 솜씨가 있었던 사람인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요약을 잘 하는 것 하나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은 단지 많이 팔렸을 뿐이다.

훌륭한 책은 아니다.

문장을 잘 쓴 책도 아니었다.(64)

 

겸손할 것이 따로 있고, 자신을 내세울 것도 따로 있어야 한다.

그가 잘하는 것은 '이런 책을 읽어왔다' 같은 것인 듯 싶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1. 인간, 사회, 문화, 역사, 생명, 자연, 우주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개념과 지식을 담은 책

2. 정확하고 바른 문장을 구사한 책.

3. 지적 긴장과 흥미를 일으키는 책.이란다.

 

이런 것도 좋고, 그가 감옥에서 읽었다던 '토지'와 '코스모스'도 참 좋다.

 

그가 글쓰기 선생님으로 '이오덕'을 칭찬하는 것도 반반이다.

이오덕 선생님의 글은 국어 교사나, 초등 교사를 위한 것이지, 일반인을 위한 것은 아닐 정도로 전문적이다.

결코 쉽지도 않고, 그 후예라는 이름으로 한자어를 아예 안 쓰려는 사람들도 되려 이상한 사람들이다.

 

 

결국 이 책은 작가가 의도한

'논리적 글쓰기'를 잘 하게 되는 길을 얼마나 잘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일는지 의문이다.

자신의 글쓰기 역정을 쓰고 싶었다면 그것까지를 투정할 수는 없지만,

하긴, 뭐 '특강'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어떤 말이든 할 수 있겠지만,

뒤표지에서 '어떻게 원하는 대로 글을 쓸 수 있을까'를 드러내기엔 아무래도 그의 논리가 체계적이지 못한 듯 싶다.

 

190. 주격조사 '은,는,이,가'... '은'과'는'은 주격조사가 아니라 '보조사'이다. 편집자가 바로잡았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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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 흔적과 상상, 건축가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
오영욱 글.그림.사진 / 페이퍼스토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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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내가 한 십년을 생활한 도시.

그러나 그때는 길치여서 지하철타고 갈 수 있는 곳 몇 군데,

또 반포, 개포동, 삼성동 등 과외하러 다니던 곳 몇 군데 정도 알았지만,

작년 여름 돌아다닌 서울과 엊그제 가본 홍대 앞은 사뭇 내가 알던 서울과 달랐다.

 

30년 전,

청운의 꿈도 없이 무작정 대학 진학으로 올라간 서울 생활은,

난생 처음 아파트 형 기숙사와 침대 생활을 제공해 주었고,

생각보다 서울 역시 초라한 도시였다는 기억이 남는다.

하긴, 1980년대 서울은 얼마나 개발 중인 도시였던가...

 

서울은 대략 길들이 격자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사동 길의 모습을 보면 그런 격자 구조에서 벗어나

대각선으로 뻗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옛 청계천의 지류로서 물이 흘렀던 길이다.

근대에 이르러 하천이 복개되면서 현재까지 지도상 대각선의 형태로 길이 남은 것.

내 꿈 하나는 구도심에 작은 땅 하나를 갖는 것이다.

만약 자금이 생긴다면,

나는 대각선 방향으로 난 골목길에 접한 땅을 사고,

손님이 오면 도도한 표정으로

" 이 앞길이 조선 시대에는 하수도였다고." 하는 상상을 한다.(27)

 

아는 만큼 보인다.

나도 인사동 길은 숱하게 가봤지만,

그 길이 대각선인 것도 느꼈지만, 그 이유를 생각해본 적은 없다.

 

공항이란 공간은 낯설다.

모든 절차가 사람을 낯설게 한다는 것.

 

한 시간 전에 번뜩였던 생각이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세상의 모든 잘난 사람들에게 지금을 맡겨두고

한숨을 쉬러 여행을 가지요.(83)

 

소격동, 원서동, 인사동, 계동

뭔가 고색창연한 듯한 이름들 사이로 난 골목길들과,

한옥들, 궁궐 건물들...

 

그런 것들만 존재하는 서울이 아니다.

강남은 개발되었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바글거린다.

 

요즘엔 가로수길에 이어 세로수길도 생겼다 하고,

맛집도 많다고 하지만,

사람 사는 입맛이야 다 거기서 거기고,

대도시일수록 상업적으로 전락하기 쉽다.

 

오기사의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의 즐거움은,

그의 그림을 보는 것이다.

직선이라고는 없는 그의 그림들을 보노라면,

직선으로 생겨먹은 세상을 좀 유화시켜 볼 수도 있는 듯 해서다.

 

서울 역시 그의 시선 안에서 유화제를 뿌려 부드럽게 누그러졌다.

 

사람들은 서울로 진학하기를 꿈꾸고,

한이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광화문 광장에서 엎드린다.

서울은 꿈과 한이 오롯이 살아 펄떡이는 도시의 상징이다.

그렇지만, 꼭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이 그런 것은 아니다.

 

오기사의 승무원 친구가 남긴 다음 말은 그래서 명대사다.

 

휴가를 갔다가 착륙하는 곳이 직장이라는 느낌, 알아?(81)

 

서울 사람들에게 서울이란,

그런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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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3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3
파리 리뷰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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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에서는 앨리스 먼로, 트루먼 커포티, 커트 보네거트, 어슐리 르귄

줄리언 반스, 잭 케루악, 프리모 레비, 수전 손택

돈 드릴로, 존 치버, 가즈오 이시구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12명이 실려있다.

 

관심있게 먼저 찾아본 작가는 프리모 레비와 커트 보네거트, 가즈오 이시구로였다.

 

작가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건 매우 중요하지요.

어떤 작가가 정직한 사람이고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있다면,

나쁜 작가가 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명확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옮길 수가 있으니까요.

반대로 할 말이 없는 작가라면, 글이라는 도구가 있다고 해도 그는 이류랍니다.(294)

 

프리모 레비의 삶을 관통하는 주제는 수용소의 삶이었다.

그가 수용소를 빼고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인가.

할 말이 없는 작가...라는 말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관통하는 주제를 드러내는 일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으로 보자.

 

전 외출하기, 여행, 말하기, 듣기를 좋아하고 구경하고 관찰하기를 좋아해요.

주의력 과잉장애가 있는지 몰라요.

제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집중하는 거랍니다.(수전 손택, 316)

 

관찰은 모든 작가의 필수품이다.

그러나, 그 역시 소설의 초고는 쉽지 않다.

 

어려운 것은 도입부예요.

언제나 엄청난 공포와 불안을 느끼며 시작해요.

니체는 글을 시작하겠다는 결심이 차가운 호수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고 말했죠.

삼분의 일쯤 진행되어야 그게 그럭저럭 괜찮은지 아닌지 알 수 있어요.(316)

 

그런 손택에게 소설은 세상을 향한 말하기의 한 형식이었다.

 

사색, 반추, 독자를 향한 직접적 연설은 전적으로 소설 고유의 특성이에요.

소설은 큰 배예요.

저는 제 속에 있는 추방된 에세이스트를 구조할 수 없었어요.

제 속에 있는 에세이스트는 소설가의 일부였을 뿐이에요.

제가 마침내 되었다고 인정한 소설가의 일부 말이에요.(334)

 

소설은 스토리만을 전달하는 형식이 아니다.

소설을 통하여 에세이와 같은 연설을 더욱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는 형식을 갖추는 셈이다.

그런 속에서 문학은 황홀경마저 담긴 예술인 셈.

 

문학은 황홀경을 주나요?

물론이죠. 음악이나 춤보다는 확실하지 않지만...

문학은 그 정신에 더 많은 것이 담겨있어요. 우린 책에 엄격해야 해요.

저는 다시 읽고싶어지는 책만 읽고 싶어요.(337)

 

인생은 짧다.

그는 암과 백혈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가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만 읽고 싶다'고 말한 데는 인생의 유한함을 느끼는 감회가 짙게 서려있다.

 

이시구로의 '집사'는 독특한 은유다.

'남아있는 날들'의 집사에 대한 설명이 멋지다.

 

하나는 특정한 종류의 정서적 냉랭함이고,

다른 하나는 중대한 정치적 결정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사람을 상징해요.(445)

 

많은 일을 하면서도, 모든 일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2차적인 관계로 냉랭함을 지켜야 하는 집사의 삶.

이시구로는 그런 현대인의 삶에 대해 꿰뚫는 소설을 쓴 걸까?

이 작품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둘 만 하다.

 

도덕적 판단은 결코 내리지 않아요.

제가 하는 말이라고는

그 인물이 익살맞다거나 쾌활하다거나 따분하다는 정도예요.

등장인물들에게 동조하거나 반대하는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건 몹시 지루한 일이에요.

전혀 흥미롭지 않아요.

소설가에게는 자신의 미학에 대한 도덕성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469)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윤리나 도덕에서는 어떤 이야기도 뽑아내기 어렵다.

오히려 그 윤리가 무너진 틈새에서 아파하는 사람들에게서 이야기가 나온다.

장르 소설에 등장하는 그 많은 가난한 사람들, 되는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도덕을 들이대는 건 무의미하다.

소설은 그런 이야기이여서 가치로운 것이기도 하다.

 

어슐리 K 르 귄은 같은 이야기를 '리듬'이라고 한다.

 

이야기에 앞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리듬이 있기를 원해요.

그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위의 핵심이죠.

우린 여행 중이에요.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중이죠. 게속 움직여야 해요.

리듬이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더라도,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바로 그거잖아요.(169)

 

커트 보네거트는 참 유쾌한 사람인데,

그는 '쓸모있는 농담'으로 자기 작품을 요약한다.

 

매사에 너무 심각하게 굴지 마시오.

백지 위에 적힌 검은 흔적 몇 개로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든다면

그게 유용한 농담이 아니고 뭐겠어요.

모든 훌륭한 이야기는 사람들을 반복해서 속아 넘어가게 하는 위대한 농담예요.(121)

 

그에게 글쓰기를 배울 수 있는 거냐고 물으니 유사한 비유를 들이민다.

 

골프와 비슷해요. 전문가가 제 스윙의 결점을 지적해 줄 수 있잖아요.(120)

 

결국 글은 스스로 쓰는 것. 배울 수 있는 것은 결점을 지적해 줄 수 있다는 정도.

그가 들려주는 또 하나의 비결은 머릿속의 독자다.

소설가라면 이런 비결들에서 반짝이는 공감을 격하게 표현하지 싶다.

 

성공한 작가들은 머릿속에 있는 한 명의 독자와 함께 창작을 해요.

그게 예술적 통일성의 비밀이지요.

머릿속에 있는 사람과 뭔가를 만들게 된다면 누구나 통일성을 달성할 수 있어요.(118)

 

작가라면 누구나 칭찬을 듣고 싶어할 것이지만,

반드시 혹평에 도가 튼 편집자를 만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트루먼 커포티의 충고가 도움이 된다.

 

이제는 가장 모욕적인 욕설을 읽고도 맥박이 조금도 빨라지지 않아요.

작가들에게 강력하게 권하고 싶은 조언은

평론가에게 반박함으로써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지 마란 것.

또한 머릿속으로 편집자에게 반박하는 편지를 쓰되,

종이 위에는 절대 옮기지 마세요.(81)

 

2013 노벨문학상 수상자 앨리스 먼로를 읽으면서

 글쓰기와 삶에 대한 통찰에서 큰 조언을 들었다.

 

제가 두려운 건 글쓰기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글을 쓰게 만드는 이 모든 설레는 느낌을 포기하는 거지요.

공허함을 없애줄 뭔가를 찾게 되는... 그렇게 되는 게 두려워요. (54)

 

소설가의 일은

소설가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설가가 일한다는 것은,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과 상관관계가 밀접하다 볼 수 있는데,

누구나 일하기를 그만두어야 할 때가 올 것이고, 그것에 대비하는 생각도 가져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소설가들 중 성공한 사람들의 글을 읽노라면,

모두들 참 열심히 노력했음을 실감하게 된다.

어려운 시기의 두려움을 꿋꿋이 참아 이겨낸 사람들이고,

자신의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나름의 비결을 개발해 내는 이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인터뷰를 읽는 일만으로도,

인생 공부이자 문학 공부가 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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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1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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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중한 경험...

 

한국에서는 구하기 귀한 로이스 초콜릿을 선물받아 냉장고에 넣어 두고는,

괜스레 하루 한두 차례 냉장고 문을 열면서 스무 개의 직사각형 조각이 하나씩 스러짐을 아쉬워하듯...

야금야금 읽었거늘,

어쩌다 보니 2권을 전에 읽었고, 이제 1권을 다 읽었다.

 

소설도 아닌 이런 인터뷰집을 아쉬워하며 읽게 되기도 참 드문 경험이다.

책을 읽는 순간들마다 이런 책이 번역되어 나왔음을

그런 나라에 살고 있음을 가슴 벅차하는 경험을 한다.

비록 그 나라가 참 징그럽게 더러운 현실일지라도...

 

2권은 움베르토 에코, 오르한파묵, 하루키, 폴 오스터

이언매큐언, 필립로스, 밀란 쿤데라, 레이먼드 카버

마르케스, 헤밍웨이, 포크너와 포스터가 실려있다.

내가 가장 먼저 읽은 것은 유명한 마르케스와 헤밍웨이, 쿤데라 순이었는데,

읽고 나서 인상적인 사람들은 달다.

필립 로스와 레이먼드 카버 같은 사람들의 인터뷰도 기억에 진하게 남는다.

 

2. 쓴다는 일

 

올해 우리반에 들어온 아이 중 한 명이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

선발집단인데도 입학할 때 성적이 3등일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는데,

공부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방황하다가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글쓰기를 하고자 한다는데...

정작 그 아이의 글을 읽어볼 만큼, 아니 그 아이가 선뜻 내게 원고를 뵈줄 만큼 아직 래포 형성이 된 건 아니다.

갑갑한 어른의 시선으로는, 그 아이가 일단 공부에 매진하고, 나중에 글쓰기를 하면 어떠냐고 떠봤더니,

이제까지 어른들은 다들 먹고 사는 이야길 하면서 공부하라고 했단다.

쩝~ 나도 맨날 소설을 읽고 문학을 강의하는 주제에, 글쓰기를 택하겠다는 아이를 전적으로 지원하지 못했다니...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그 아이가 밥벌이가 가능한 곳에 가서 천천히 생각했으면... 하는 생각이 지울 수 없다.

공부를 힘들지 않게 해낼 수 있는 능력도 하나의 큰 능력 아닌가 말이다.

올해는 그 아이랑 재미있게 지내는 게 과제다.

그렇지만, 쓴다는 일에 대하여 읽으면서, 그 아이에게 이 책을 권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삶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것이 삶이 아니던가.

 

3. 소설과 삶의 거리, 스토리와 도덕 사이...

 

흔히 소설의 스토리를 두고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둥, 청소년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는 둥 하는 소리를 한다.

참으로 허무맹랑하다. 삶이란 것이 도덕과 한치의 겹칩도 없이 부조리한 것이거늘, 소수의 권력자들이 손가락질하며

비윤리적이라는 둥 하는 소리를 소설에 갖다 대는 것은 가소롭다.

 

글쓰기는 정교한 가면을 씀으로써 개인적인 것을 공적인 행위로 바꾸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당신의 도덕적인 성품에는 낯선 특질을,

당신이란 존재를 통해 빨아올리는 매우 고된 정신적인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는 작가는 사람들이 뭘 보여주길 원하고 뭘 숨기고 싶어하는지

방향을 정해주는 보통 인간의 본능을 따른 여유가 없답니다.(필립 로스, 249)

 

난 필립의 소설을 한 편도 읽은 것이 없지만, 그의 이야기엔 전적으로 공감했다.

나도 리뷰를 쓰면서 윤리적 측면이나 상식의 측면에서 비평을 가하기도 하지만,

사실 개인적인 삶의 부조리함을 생각해 본다면, 문학 작품에 어떤 잣대를 들이대는 일 자체가 무용하다.

 

인류 전체의 선을 위해 사람들이 하는 척하는 일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오류라곤 없는 이론가들의 체계적인 효율성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제 관심은 사람들이 정말로 하는 일에 대해 글을 쓰는 것입니다.(로스, 259)

 

페미니즘 소설이라 욕하고 누구는 저급한 소설이라 욕하지만,

그런 욕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소설이란 현실의 개연성을 취하는 허구임을 잊은 꼰대에 불과할 따름이다.

원래 윤리, 도덕을 외치는 자들은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에 불과한 것이다.

다만, 거기 편승해 개떼처럼 짖어대는 몰지각한 지성과 언론 등이 처참한 게 인간의 한계이고...

 

소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독자들이 책을 읽는 방식을 바꿀 뿐입니다.

소설을 읽는 것은 깊고 독특한 기쁨이며,

성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정치적 정당화를 요구하지 않는 신비로운 인간 활동입니다.(로스, 279)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나도 너무 편향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신비로움을 굳이 외면하고 도덕적, 정치적 정당화에 쏠려있었던 것을 보면...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걸 혐오하는 것이야말로

서정시적인 재능과 소설적 재능을 구별해주는 것이다.(쿤데라, 286)

 

그렇다. 서정시는 자신의 이야기를 감춰가면서 한다.

소설적 재능이란 자신의 이야기조차도 전혀 아닌 것처럼 꾸밀 수 있는 재능이다.

남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처럼 서술자를 내세우는 것이 소설가의 재능인 셈.

쿤데라의 소설이 온갖 이야기의 잡탕처럼 혼잡스러 보이는 것은, 실존이 그래서라고 한다.

인간의 삶은 온갖 상황이 번잡스러이 널부러진 혼잡 그 자체가 아닌가 말이다.

 

브로흐가 '소설적 지식'이라 부르는 그 특정 대상이란 바로 실존입니다.

그의 백과사전적이란 단어는,

실존에 빛을 비추기 위해서 모든 장치와 모든 형태의 지식을 함께 모아 놓은 것입니다.(289)

 

소설은 결국 인간을 드러내기 위해, 모든 형태의 지식을 혼잡스럽게 모을 수밖에 없다는 데서,

그의 소설의 난삽함이 설명된다.

이 책을 읽으면, 밀란 쿤데라의 그 혼잡성이 용서되면서, 그가 급 사랑스러지고, 읽고싶어진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들은 모든 책의 제목이 혼잡하다.

 

제 소설 중 어떤 것에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우스운 사랑들'로 이름 붙여도 무방합니다.

그제목들은 저를 사로잡고, 정읳고, 한편으로는 불행히도 저를 제한하는 몇 개의 주제들을 반영하거든요.

이 주제를 넘어서서는 다른 아무것도 말하거나 쓸 게 없습니다.(306)

 

그렇다.

현실도 그러하다.

4월 16일을 열흘 앞둔 오늘도,

한국 정부 앞에 국민이란 이름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고,

농담이자 헛소리를 언론이라 떠들고,

정말 우스운 사랑들로 세상은 혼잡하다.

 

레이먼드 카버의 이야기는,

그의 960페이지짜리 평전을 훑어보고 싶게 만든다.

 

한 단편에 스무 가지나 서른 가지의 다른 수정본이 있는 경우도 있어요.(332)

 

평범한 삶을 영위해온 작가들은 '명성'에 대하여 겸손하다. 그러나 그는 솔직하다.

 

명성은 - 아니면 새로 발견한 저에 대한 관심과 흥미라고 해야할지 -

아주 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신감이 필요할 때 자신감을 강화시켜 주었지요.(342)

 

그에게 소설의 가치란 이러하다.

 

소설은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설은 단지 그것에서 얻는 강렬한 즐거움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뭔지 지속적으로 오래가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어떤 것을 읽은 데서 오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지요.(348)

 

실패한 혁명의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은 굳이 부정해 왔으나,

소설의 힘은 역시 이야기의 강렬함이고 즐거움이지, 도덕이나 정의와는 차별되는 것이다.

 

문학과 목수 일은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적은 반면,

일은 엄청나게 많이 고되게 해야 하지요.

10%의 영감과 90%의 노력을 필요로 한답니다.(369, 마르케스)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첫 단락입니다.

여기서 주제와 스타일, 어조가 정해집니다.

그래서 단편을 쓰는 것이 더욱 어렵지요.

단편을 쓸 때마다 작가는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요.(마르케스, 377)

 

대부분의 작가들이 시작을 어렵다고 말한다.

글은 그냥 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번 시작을 실패해서, 개념이 잡히기 시작해야 써나가는 어떤 것이므로.

 

헤밍웨이의 문체가 건조하듯, 그의 인터뷰도 건조 그자체다.

 

신문기사를 쓰는 것은 젊은 작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고,

적당한 때에 신문사를 벗어난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406)

 

적당한... 이라니, ㅋ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은 눈으로 읽히길 바라는 것이지

어떤 설명이나 논문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414)

 

글쓰기 기법에 대해 물으면 이렇게 바삭거리게 대답한다.

어떻게 글쓰는지 이야기하는 일은 부적당하다는 일갈이다.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왜 그런것으로 골머리를 앓나요.

일어난 일로부터,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재현이 아니라 창작을 통해 살아있는 어떤 것보다 더 진실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지요.(428)

 

살아가는 사회에 따라 모순을 느끼는 밀도는 다르다.

식민지 시대, 독재와 온갖 부조리를 겪은 사람들과

비교적 자유를 만끽한 국가의 사람들은 다른 질문과 대답을 한다.

배부른 소리면서도, 예술이란 그런 것에 더 가깝다. 자유에 더욱 가까운...

 

영화 대본이 글쓰기를 망칠 수 있나요.

일류 작가라면 어떤 무엇도 그의 글에 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만일 일류 작가가 아니라면 그 어떤 것으로도 그가 좋은 글을 쓰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윌리엄 포크너, 441)

 

이것이 정답이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음악가가 되지 않았고,

의대를 나오지 않은 허준이 명의가 되었듯,

어떤 것도 훌륭한 작가를 망칠 수 없고, 무명의 얼뜨기를 작가로 만드는 왕도 역시 없는 법이다.

 

포크너는 돈 키호테를 워낙 많이 읽었단다.

 

그래서 저는 친구를 만나 잠깐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 장면이나 한 인물에 집중해서 읽습니다.(458)

 

고전은 그런 것이다.

마치 판소리가 스토리의 한 장면을 편집하여 '판'을 짜듯이,

고전은 완독보다는 부분부분 읽으면서도 정독을 통해 재미를 주는 책들이다.

 

세상의 고통은 스무 살에서 마흔 살 사이의 사람들에 의해 야기됩니다.(464)

 

삶에 대한 포크너의 통찰이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불멸은 언제나 살아 움직여

불멸인 어떤 것을 남겨 놓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항상 움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466)

 

그의 '내가 누워 죽어갈 때'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쓰고 있다.

그가 죽어도 그 많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시선은 죽지 않을 것이다.

 

야구 경기는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알려주었고(158, 폴 오스터)

 

나 역시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해 난감하게 자랐다.

오스터에게 야구 경기가 그런 것이듯,

나에게는 술자리가 그러했고, 책 이야기가 그러했다.

80년대의 세미나 문화와 뒤풀이 문화가 나를 가르친 것이 팔할이다.

그리하여 리뷰쓰는 일이 나의 소통의 힘이 된 원천이기도 한 것이다.

 

진리를 찾아 나설 때 예상치 못한 일들에 대비하라,

진리를 찾는 것은 어려우며, 그것을 찾았을 때 당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오스터, 163)

 

소설을 통해, 예술을 통해 당혹함을 느끼는 일은 진리에 가깝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일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덕에서 벼락에 맞아 죽은 바로 곁의 친구...

그에게 청취자들의 각기 다른 사연들은 힘을 주었다.

 

저 혼자 기이한 경험을 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뻤지요.

바깥 세상은 광란의 도가니였어요.(168)

 

모든 인간의 삶은 기이하다.

누군가는 나면서부터 장애를 갖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부모가 없이 자라나고,

누군가는 부모가 있어도 고독 속에서 살아간다.

사랑하지 못해 고독한 인간도 있지만,

사랑함으로 인해 더욱 고독한 인간도 있다.

세상은 광란의 도가니임을 알면, 삶이 지옥만은 아니다.

삶이 그런 것임을 알면,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함께 걷게 된다.

 

청취자 사연 프로젝트는,

보통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요.

우리 모두는 강렬한 내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격렬한 열정으로 불타고 있고,

여러 가지로 기억할 만한 경험을 겪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170)

 

그의 빵굽는 타자기 아래서 모든 사람은 귀하다.

 

노동계급의 지적 수준을 얕보는 경향이 있는데,

제 경험에 기초해 보면 노동자 대부분은 지배하는 사람들만큼 똑똑합니다.

단지 그들만큼 야심차지 않을 뿐이에요.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너무나 재미있어요.(175)

 

그의 이야기는 이론은 아니지만 강하다.

 

인생은 너무도 짧고 너무도 연약하고 너무도 알 수 없지요.

결국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정말로 사랑할까요.

어린아이가 늙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178)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명쾌하다.

왜 쓰는지 핑계대지 않고, 지어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러므로... 쓰게 된다는 것이다.

 

빨간 책방... 에서 인상적이었던 이언 매큐언 역시 소설의 힘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이야기가 우아하거나 조밀한 것을 찬탄하지 않아요.

말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길 바라며,

곧바로 사건 그 자체로 이끌어 가주길 바라지요.

그리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합니다.(227)

 

이야기를 지루하게 이끄는 작자들이 읽어볼 글이다.

 

에코는 중세에 끌린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을 왜 사랑하게 되는거죠?

제가 보기에 중세는 아주 찬란하게 빛나는 시대였고

그 시대의 비옥한 토양에서 르네상스가 출현했죠.

혼란스럽고 활기찬 변화의 시대였죠.(29)

 

남들과 같이 보면, 활기를 읽기는 힘들다.

 

역사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 시대와의 유사성을 깊이 있게 찾아내는 것.(30)

 

스스로를 구식이라고 일컫는 움베르토 에코의 저력이 느껴진다.

번역에 대하여도 에코는 관심 많다.

 

번역을 위해서는

그의 세계가 갖는 혼, 그것의 호흡, 정확한 속도를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48)

 

아마 고전을 읽는 것도 그러할 것이다.

고전의 시대가 갖는 혼과 호흡, 작품의 의의를...

 

텍스트가 작가보다 더 똑똑해요.

텍스트는 작가가 염두에 두지 않았던 생각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번역가는 텍스트를 다른 언어로 옮기면서 새로운 생각들을 발견해서 알려줄 수 있지요.(49)

 

이쯤되면 번역은 새로운 창작을 넘어 새로운 작품이 되는 셈인가.

 

세밀화가를 그린 오르한 파묵은 역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작법을 이야기한다.

 

소설가는 본질적으로 개미처럼 끈기있고 천천히 장거리를 나아가는 사람이에요.

소설가는 악마적이고 낭만적인 비전때문이 아니라, 끈기때문에 인상적이지요.(74)

 

터키는 내가 몰랐던 악마적 민족주의에 휩싸여 있기도 한 모양이다.

 

우리는 그렇게도 국제적이지 못한 민족주의를 최고로 여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95)

 

하루키에 대해서는 별로 감명깊지 못했으나,

인터뷰어의 이 말은 매력적이다.

 

제일 좋아하는 두 가지인 재즈와 마라톤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스무 살은 젊어보였다.

아니면 마치 마흔 일곱 먹은 소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110)

 

어쩌면 ㅋ 그에 대한 디스일 수도 있으나, 그렇게 마니아인 사람은 젊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잃어버리고 찾아다니고 발견하기,

그러고 나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인 실망이 기다리고 있지요.(129)

 

부지런히 쓰는 작가인 하루키의 소설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열광하지만,

나는 저 '실망'에 실망했던 모양이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모색과 발견에 대하여 열광하기는 쉽지만, 그 실망에 애착을 주기엔 내 삶이 너무 뜨거웠나보다.

돌출된 덩어리, 단카이 시대의 하루키는 그렇게 나와 비슷하여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불길이 잦아든 지점에서,

첫 작품은 작가에게 검은색이다.

불이 타오르고 남은 그을림의 흔적이니까.

그러나 시인은 계속 불을 찾아 나설 것이지만,

소설가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 체력이나 건강과 같은...(김연수, 머리말에서)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을 먼저 읽은 나로서는,

이 책을 읽고 실소를 머금었다.

그 책은 이 책에 의한, 이 책에 대한 오마주이자,

이 책의 나란히 쓰기에 불과하였음을 느끼게 되어서다.

 

이 책은 여느 리뷰집보다도 더 독서의 열망을 부추긴다.

그리고 여느 작가의 평전보다도 더 작가에 대하여 궁금하게 여기도록 한다.

파리 리뷰... 그들의 지난했던 작업의 결과,

나는 이렇게 행복한 독서에 푹 빠질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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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7첩 반상 - 인류 최고 스승 7명이 말하는 삶의 맛
성소은 지음 / 판미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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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이라고 하면 흔히 종교를 떠올리기 쉬운데,

'4서3경'을 생각해 보면 굳이 종교라고 확정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이 책에는 양반가 7첩반상에 빗대어 일곱 가지 경전을 해설하고 있다.

 

그 해설은 깊이가 적당하여 초심자도 핵심에 쉽사리 다다를 수 있을 정도로 잘 쓰여져 있다.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선생과 함께한 경전읽기 모임의 결과라 하니

경전 읽기에 낯설던 사람들에게도 좋은 지침이 될 것 같다.

 

강유원이 '고전'을 일컬어 '나 요즘 일리아드를 다시 읽고 있어.' 이렇게 말하면 뽀대가 난다고 했던가.

그렇게 치자면 '경전'은 매일 읽고 또 읽어 마음을 다스리는 그런 글들이 아닌가 싶다.

나는 책상 위에 임제 스님의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든지,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같은 것들을

몇 자 끄적여 붙여두곤 하는데,

가끔 '반야심경'을 사경하는 것 등으로 마음의 번잡함을 다스리려 이용한다.

 

이 책의 경전들 역시 부담없이,

마음을 다스리는 도구들로 접하면 좋겠다.

로마의 치하에서 벗어나는 유대인들의 이야기인 '성경'이나,

봉건의 계급사회에서 벗어나려는 조선의 이야기 '동경대전' 같은 것들은 시대를 벗어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노자의 도덕경도 전쟁터의 지도자가 가져야할 정치 언설일 게고,

중용 역시 혼란통 안에서 군자가 가져야할 삶의 자세를 다루는 것이다.

 

경전들은 결국 전쟁터와 같은 삶의 공간에서,

인간의 고뇌를 해소하기 위한 지난한 투쟁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공통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經을 鏡삼아 輕하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전을 거울삼아 삶을 가볍게 해보자는 의도다.

주제는 무겁지만 책은 의외로 가볍다.

 

성경에서 왜 하필이면 '도마복음'인지는, 오강남의 '또다른 예수'를 읽어봐야 알 것이다.

 

나를 추종하지 말고 나처럼 되라.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아를 아는 것이 곧 하느님을 아는 것이며,

자아와 신성은 동일하다.(24)

 

불교 경전을 읽는 듯 하다.

 

'나그네가 되십시오.'

나그나게 되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장소를 옮겨 다니는 떠돌이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이 세상에 안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습적이고 관습적인 사고에 빠져있지 말고

새로운 차원의 열림과 깨달음을 향해 길을 떠나라는 말씀이다.(29)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도 자기를 모르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43)

 

여느 성경과는 다르게 스스로 깨어남을 가르치고,

예수를 따라 살지 말고, 니 스스로 예수임을 알아라~! 마치 불교의 한마디와 상통하는 글이다.

그러니 교회에서는 싫어할 수도 있겠다.

 

삶의 마디마디에서 천명인 性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현실은 중용으로 발현할 것이다.

큰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 홀로 먼저 조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신독이다.(57)

 

돌~ 선생의 중용도 읽었지만, 또 기억에서 가물가물한데,

이 책을 읽으면서 천명인 성을 '도'라 하고 그 길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게 된다.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지속되는 사랑이 있을 뿐.(58)

존재한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고,

변화한다는 것은 성숙한다는 것이며,

성숙해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창조한다는 것.(72)

 

그렇다. 세상 만물은 변하는 것이 진리다.

그래서 인간의 자세, 태도가 문제시 되는 것이다. 신독만이 중용을 이룰 수 있다.

인간은 늘 경전을 읽으며 지속시키기 위하여 수시로 자신의 변화율을 측정해 내야 한다.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줄광대는 줄에서 떨어진다.

 

힘 중에서 가장 센 힘이 '홀로 있을 수 있는 힘'이다.

홀로 있는 시간이 자유롭고 풍성한 이는 남도 자유롭게 하고 풍성하게 한다.

혼자를 견디지 못하고 이내 헛헛해져 술친구를 찾고, 성급하게 결혼해 결국 삐걱대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사이버 세상에서 존재아닌존재로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외로움을 면하고자 하는 일들이 오히려 나를 잃고, 시간을 잃고 덩달아 삶의 생명력까지 고갈시켜

낭패가 된다면 차라리 혼자 있는 것에 비할 바 아니다.(82)

 

그래서 숫타니파타에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이 그토록 많이 나온다.

 

집에 불이 난 것을 물로 꺼 버리듯이,

지혜로운 사람들은 걱정이 생기면 이내 지워버린다.

마치 바람에 솜털을 날려 버리듯이.(95)

 

인간에게 '걱정'은 날마다 생기지 않는가?

걱정 인형에게 맡기고 편안하게 살 수는 없다.

솜털을 바람에 날려버리듯, 살려면, 경전을 읽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오직 모를 뿐.(104)

 

경전을 이해하기는 참 쉽다.

허나, 마음에 끄달려 사는 중생에게 그것을 실천하고 마음을 툭, 털어버리는 일은 참 어렵다.

 

기타에서 '요가'라는 말의 풀이가 읽을만 하다.

 

'요가'라는 말은

신에게 닿는 것, 우주를 주관하는 힘에 자신을 잡아 매는 것, 절대자와 인간의 접촉을 의미한다.

요가란 더욱 심원한 본체와 하나가 되려는 인간의 실천적 노력이다.(172)

 

보통 요가를 기묘한 동작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그것은 모두 인간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한 실천이라는 것이다.

 

요가의 힘으로 모든 행위를 놓아버린 이,

지혜로써 의심을 끊어버린 이,

참나에 머무르는 이, 그는 어떤 행위도 속박될 수가 없다.

오 부를 차지하는 이여.(178)

 

명상은 특별한 날에 먹는 외식이 아니다.

정신을 맑게 하고 마음을 살찌우기 위해 매일 먹어야 하는 정신의 밥이다.(189)

 

경전이란 것이 그런 것이다.

가끔 기분전환으로 먹는 외식처럼 섭취할 것이 아니라,

매일 먹는 정신의 밥.

 

형체도 모양도 없는 그 마음을 닦아야만

한울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은덕을 알 수 있는 것이요,

한울님 덕을 밝히는 것이 바로 도이다.(222)

 

동경대전은 동학의 경전이다.

조선의 천민, 여성들에게 동학은 그대로 예수였다.

마음을 닦으면 스스로가 한울님이 되는 지경을 한번 경험한 자에게 두려울 것은 없었다.

그래서 절두산에서 머리잘리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릎 꿇고 비루하게 천민으로 사느니 한울님의 자녀가 되어,

스스로 한울님이 되어 사는 것이 꿈이었을지니...

 

차를 마실 때는,

천천히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마치 차가 온 지구가 될고 있는 축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천천히 한결같은 속도로 미래를 향해 서두름 없이 마시기를 바랍니다.

실제적인 순간을 사십시오.

그런 실제적인 순간만이 생명입니다.(225, 틱 낫한)

 

살아 숨쉰다고 모두 생명이 숨쉬는 것은 아니라는 말은 두렵다.

실제적인 순간만이 생명이라는 말에서,

터무니없이 불필요한 속도를 내는 스스로를 돌아본다.

 

 

이 책은 제목이 참 맛깔스럽게 잘 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한번 읽은 지금은, 생각이 좀 다르다.

어차피 잘 차린 칠첩 반상이랬자,

그 하나하나는 반찬이고, 한끼 먹으면 후딱 치워버릴 밥상이다.

여기 소개하는 경전들은 칠첩 반상 류가 아니다.

매일 꼭꼭 씹어 먹으며 음미해야할 영혼의 밥상이라 해야 더 비근한 예가 아닐까 싶다.

 

 

19. 오심즉여심의 한자를 '나 오'가 아닌 '나라 오 吳'로 쓰는 곳이 여러 군데다. 204, 205쪽에서도 틀려있다. 205쪽의 제목에서는 또 맞게 적고 있고... 편집자여, 한자 공부  하시라... 125쪽의 오상아 에서도 마찬가지 실수를...

 

14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의 '즉'자는 '卽 곧 즉'이다. '則'이 아니다. '則'은 접속사로 쓰일 때 then, thus 이런 이어짐의 시간 관계를 나타내는 글자이고, 卽은 곧바로, 즉시...를 나타내는 한자다.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님을 보면 <바로> 여래를 만난다...는 의미지, 이리하여... 여래를 만난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한자는 중요한 한자이므로 '경전'이란 책에서 틀리면 안 된다. 그리고 같은 페이지의 '아상'과 '인상'에서 '인상'을 '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으로 풀고 있는데, '아상'과 상반된 '타인'을 의미하는 '남'이라는 의미가 더 큰 것이다. 나는 소중하고 남은 가벼이 여기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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