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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평점 :
황석영의 삶도 참 파란만장하다.
남북 냉전이 풀리던 시기의 방북과 공안 정국으로 인한 떠돌이 생활 외에도,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고 절집을 나돌던 생활을 보면
그의 사주에는 역마살이 확실히 끼어있을 게다.
이 책은 그의 떠돌이 삶과 맞물리는 지점들에서
온갖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을 적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토박이 음식 재료와 음식의 이름들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남자들의 요리프로그램이 대세라지만,
황석영의 이야기는 맛집기행도 아니고, 요리프로도 아닌,
음식에 대한 추억담들이다.
시시하다면 시시하지만,
삶이란 원래 시시한 순간들의 적분체 아니던가.
베트남에서 돌아와 제대를 하고 집안에서 빈둥거리며 보낸 일년은 악몽이었다.(55)
산에 다니면서,
일제에서 해방되었어도 그 전체주의 교육의 잔재였던
규율과 획일화가 그대로 남아있던 학교 감옥에서 놓여나는 기분이었다.(188)
그의 어린 시절 작품에 암벽타기가 많은 이유가 그런 것이었구나 싶다.
이 책에서 가장 탁월한 묘사는 그의 홍어 체험담인 듯 싶다.
한입 씹자마자 그야말로 오래된 뒷간에서 풍겨올라오는 듯한
암모니아 가스가 입안에서 폭발할 것처럼 가득찼다가
코로 역류하여 터져나왔다.
눈물이 찔끔 솟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단숨에 막걸리를 쭈욱 들이켰다.
잠깐 숨을 돌리고 나니 어쩐지 속이 후련해졌다.
참으로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버리는 맛의 혁명이다.
말 그대로 어리떨떨하다가 정신이 번쩍 나는 것이다.(224)
맛의 혁명.
속이 후련해지는 맛.
정신이 번쩍나는 기분.
그런 것들을 먹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맛일 게다.
그를 '우리 시대의 거장'이라고 부르기 전에,
그가 다시 후일담 스타일보다는
치열한 삶의 방향 모색에 대한 소설을 써주기를 기대한다면 과한 것일까?
조정래 선생이 하듯,
그의 능력을 발휘하여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 인물이 되어 준다면,
나도 그를 '거장'으로 부를 수 있을 듯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