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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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아프고, 가슴저리면서 답답하고, 원통하다. ˝개새끼들, 잊지 않고 원수 갚을 거야.˝ 이렇게 울부짖는 유족들의 울림을 결코 잊지 않고 살겠다. 아니, 잊을 수 없다. 그날 이후, 짐승같은 것들의 낯짝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평범한 목소리들의 위대함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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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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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음악은 너한테나 좋은 거다.

난 살아가는 데 그런 거 필요 없다.(92)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살아온 아버지.

어른이 되어 바라본 아버지는 점점 왜소해 지고,

그러다 앓아 눕고 죽어 간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서로에게 아무 할 말이 없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93)

 

아니 에르노가 청년을 소개하자

아버지는 자신의 정원, 혼자 힘으로 지은 차고 등을 보여준다.

 

이 청년이 자신의 가치도 인정해 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그저 예의 바르기만 바랐지만,

가장 얻기 힘든 것이었다.(106)

 

그에게 아버지란 무심한 사람이었고,

어머니와 나눌 수 있던 정신적 공유라고는 전혀 없는,

그저 생활을 위해 사는 남자일 뿐이었나보다.

 

아마 그의 '한 여자'는 훨씬 공감과 정감의 유대가 풍부하게 표현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름의 정리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굳이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펼 필요가 있을까?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127)

 

아~ 씁쓸하다.

'아빠는 왜 있지?'하는 초딩의 시처럼,

외롭다.

 

마지막에 그가 몇 년 전 가르친 제자를 마트에서 만나

무의미한 몇 마디를 나누고,

제자에게 '또 봐요'라고 인사를 했지만,

제자는 뒷손님의 물건을 계산하고 있더라는 에피소드를 적는다.

 

그에게 잊혀진 아버지는 그런 관계였다는 이야길까...

무의미한 교사-학생 관계였던 그들처럼,

한때 잠시 이어졌던 아버지-딸의 관계인 듯이...

 

감동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더라도,

무심으로 일관하는 이야기는... 솔직한 표현이라는 것을 장점으로 꼽아줘야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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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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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나 많은 폭력 속에 살고 있고,

그 폭력에 의지하여 살기까지 한다.

긴급한 이유도 없이 강의 물줄기를 바꿔 시멘트를 처바르고,

수수만년 세월이 만든 바닷가의 아름다운 바위를 한 시절의 이득을위해 깨부수는..

모든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세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너는 앞자리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폭력,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 말하는 것도 폭력,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115)

 

아~ 이런 감수성으로 삶을 살아 내기에 세상은 얼마나 걍팍한가.

이 책은 2013년에 나온 책이다.

아마 14년 이후에 나왔다면, 저런 제목을 붙이지도 못했으리라.

 

그는 문학을 '잘 표현된 불행'이라 이름붙일 정도로 감성이 날이 서있는 사람이다.

아직 그 책은 두께에 눌려 사두기만 하였다.

 

어떤 사람에겐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학적이건 한 사람의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된다.(12)

 

용산 이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청소되어,

다른 비슷한 사연을 지닌 동네와 거리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련된 빌딩과 고층 아파트들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 번들거리고 말쑥한 표정으로 치장(진은영, 33)

 

된 시대를 사는 우리는,

눈물도 메마른 현실을 날마다 산다.

거기 '정치적인 것(폴리틱)'은 아무것도 없다는,

'치안(폴리스)'의 세계를 사는 것이다.

 

이세돌과 김대중 대통령과 같은 신안군 작은 섬에서 났다고 말하는

순박한 할아버지 같은 이에게

슬픔의 잘 표현된 글...들이나 써야 하는 시대는,

밤은 과연 선생일까?

 

하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선생을 만나면 선생을 죽여야 하듯,

그 밤 역시 극복해야 할 모순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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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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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삶도 참 파란만장하다.

남북 냉전이 풀리던 시기의 방북과 공안 정국으로 인한 떠돌이 생활 외에도,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고 절집을 나돌던 생활을 보면

그의 사주에는 역마살이 확실히 끼어있을 게다.

 

이 책은 그의 떠돌이 삶과 맞물리는 지점들에서

온갖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을 적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토박이 음식 재료와 음식의 이름들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남자들의 요리프로그램이 대세라지만,

황석영의 이야기는 맛집기행도 아니고, 요리프로도 아닌,

음식에 대한 추억담들이다.

 

시시하다면 시시하지만,

삶이란 원래 시시한 순간들의 적분체 아니던가.

 

베트남에서 돌아와 제대를 하고 집안에서 빈둥거리며 보낸 일년은 악몽이었다.(55)

 

산에 다니면서,

일제에서 해방되었어도 그 전체주의 교육의 잔재였던

규율과 획일화가 그대로 남아있던 학교 감옥에서 놓여나는 기분이었다.(188)

 

그의 어린 시절 작품에 암벽타기가 많은 이유가 그런 것이었구나 싶다.

이 책에서 가장 탁월한 묘사는 그의 홍어 체험담인 듯 싶다.

 

한입 씹자마자 그야말로 오래된 뒷간에서 풍겨올라오는 듯한

암모니아 가스가 입안에서 폭발할 것처럼 가득찼다가

코로 역류하여 터져나왔다.

눈물이 찔끔 솟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단숨에 막걸리를 쭈욱 들이켰다.

잠깐 숨을 돌리고 나니 어쩐지 속이 후련해졌다.

참으로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버리는 맛의 혁명이다.

말 그대로 어리떨떨하다가 정신이 번쩍 나는 것이다.(224)

 

맛의 혁명.

속이 후련해지는 맛.

정신이 번쩍나는 기분.

그런 것들을 먹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맛일 게다.

 

그를 '우리 시대의 거장'이라고 부르기 전에,

그가 다시 후일담 스타일보다는

치열한 삶의 방향 모색에 대한 소설을 써주기를 기대한다면 과한 것일까?

조정래 선생이 하듯,

그의 능력을 발휘하여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 인물이 되어 준다면,

나도 그를 '거장'으로 부를 수 있을 듯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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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한 삶 - 그들은 어떻게 일과 생활, 집까지 정리했나?
이시카와 리에 지음, 김윤경 옮김 / 심플라이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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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하다는 말이 기분좋다.

일본어로 '미가루니'는 身輕이다. 가뿐한 몸과 관계있다.

 

삶은 불필요한 것들을 덕지덕지 붙이고 사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

그 덕지덕지들을 홀연히 떨쳐버리는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첼로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툴툴거리면

알기하는 친구들이 입을 모아

'어느 날 갑자기 된다니까'하고 말하잖아요.

이제 그 말이 이해가 돼요.(26)

 

나이가 들어 첼로를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

그리고 발레를 시작한 사람도 있다.

 

나이가 들면 신체는 급속도로 쇠퇴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마음만 먹으면 몰라보게 좋아지기도 하더라구요.

제가 산 증인이에요.

저희 발레 선생님은 레슨에 근육 트레이닝을 꼭 집어넣는데

복근운동 150회를 하고 나면 힘은 들지만 몸이 확실히 달라지는 게 느껴져요.(38)

 

나이가 들어 훨씬 건강해졌다는 사람이다.

나이를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은 만용이다.

그렇지만 그런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는 현실이기도 하다.

 

돈만 내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리 근사하게 꾸며놓는다 해도 별 의미가 없어요.

절실히 원하고 스스로 노력한 끝에 얻은 것일수록 색다른 만족감을 주잖아요.(90)

 

모두가 같은 구조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문득 본질로 눈을 돌리고 보면

자신의 생각을 가두었던 틀이 스르르 무너지고 곧 마음이 편안해 진다.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힘들어 지기도 해요.(99)

 

길을 잃고 당황하는 사람과,

애초에 길자체를 즐기는 사람의 차이겠다.

 

사랑하는 '너'도 갈 것이고,

나도 언젠가는 갈 것이다.

홀가분한 삶에 대해 좋은 책을 만났다.

 

오늘은 죽기에 딱 좋은 날이란 인도의 시구처럼

나도 품위있게 죽어

맨몸 하나로 대지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

제아무리 많은 물건을 소유한들 죽은 후에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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