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 - "세상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나 자신은 확실히 깨트렸다"
TBWA 주니어보드.박웅현 지음 / 루페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은 도끼다...의 작가 박웅현 팀에서 운영하는 tbwa 주니어 보드라는 곳에서

망치라는 주제의 '토킹'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그 발표 대본을 정리한 책이다.

 

카프카가 '책이라는 도끼로 인생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며 가자'고 선동했던 시대는

순진했던 시대였다.

이제 글로벌 착취가 일어나는 현대는,

99퍼센트가 민주사회라고 착각하는 가상 현실 속에서 1퍼센트에게 억압당하는 세상이다.

 

세상을 박살내야하는데,

점점 길들이는 손들은 인간을 틀에 넣는다.

 

이 책에서 발표에 나선 친구들은 적어도 대학생이고,

또 어떻게든 망치,라는 프로그램에 등장할 실력을 갖춘 친구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친구들임은 틀림없다.

 

끝까지 오세요

... 떨어질 것 같아요

끝까지 오세요

... 너무 높아요

끝까지 오세요

 

그들은 왔고

우리는 그들을 밀어버렸다

그렇게 그들은 날기 시작했다

 

세상을 살기 전에는 세상이 두렵게 마련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날기 위해서는 첫 날갯짓이 필요한 법.

 

아들아, 세상을 살 때는 이렇게 살아라~

하는 꼰대들의 이야기에 아이들은 핏, 코웃음을 칠지 모르지만,

친구들의 눈물과 하소연 앞에서,

그러나 그들이 그저 하염없이 술잔을 기울이거나 한숨만 짓지 않고,

또 하나의 콤마를 찍으면서 마음의 나이테에 하나의 금을 그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앞길이 막막하고

시야가 불투명한 오리무중의 미래에 두려워 떨 청년들에게

이 책은 나침반도 아니고, 지도나 이정표도 아니지만,

위안이고 격려고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동병상련.

결국 아픈자에게 유일한 위안은, 자기처럼 아픈 이들이 세상에 많다는 것.

그렇지만, 그들도 어떻게든 살아나가고 있음을 몸소 체험하는 것.

 

엄마, 친구들, 선생님, 아빠... 이런 것들로 이루어진 어린 시절을 지나고 나면,

주변에서 믿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아니 불안하기만 한 리조트와 여객선과 온갖 재난의 대명사인 사회에서 살 청년들에게 이 책은

폐허에서 만난 전사들처럼 마주보고 웃게 만드는 힘을 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내면은

코끼리보다 훨씬 큰 것이고

인간은 결국 서로의 일부를 더듬는 소경일 뿐(박민규, 파반느 중, 120)

 

서로를 더듬는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는 일이 중요하다.

고등학생 까지는 대입의 로드 매니저를 자처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친구도, 인터넷강사도, 담임이나 부모도 가능하다.

그러나, 대학생 이후에는 스스로 살아나갈 수밖에 없다.

 

인생은 멋대가리 하나도 없는 '~~하지 말입니다'하는 군대 용어에 환장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곳도 아니고,

주변에 고소득의 잘나가는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는 가상현실이 닥치는 동화속 세상도 아니다.

 

삶의 지침보다는

함께 사는 온기를 배우도록 격려해줄 수 있는 책.

대학생 자녀들에게 권해줄 책.

서른이 됐는데 아직 결혼을 못하고 방황하는 젊음들에게 커피 한 잔과 함께 건네주면 좋을 책.

 

부작용] 어떤 작용에도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찌질해보이는 청년들 역시, 굉장한 스펙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므로,

자칫 비교대상이 되어버리면 의지박약을 더 공고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S 다큐프라임 죽음 - 국내 최초, 죽음을 실험하다!
EBS <데스> 제작팀 지음 / 책담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때 웰빙이 모든 사고의 중심에 놓이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삶의 질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유기농 등의 웰빙은 사업으로 변신중이다.

바야흐로 삶의 가운데 '웰다잉'이 놓여야 하지 않나 싶다.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웰다잉'이라 할 수 있습니다.(228)

 

웰빙이야말로 웰다잉이라는 쉬운 말이 깊이 울린다.

 

죽더라도

죽으면서  죽는 것이 아닌

살면서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239)

 

죽음의 선고를 받으면서,

인간은 고통 속에서 삶의 빛을 잃고 죽어간다.

그것이 죽으면서 죽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앞에 두고라도,

육신의 고통은 어쩔 수 없지만

마음의 고통은 조절하며 죽어갈 수 있다.

그것이 살면서 죽는 것이고, 웰다잉이라 하겠다.

 

말은 논리적으로 쉬우나...

죽음 앞에서 인간은 약해진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카프카)

 

인간은 유한하다.

소월이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고, 진다'고 했듯,

가을이 지나면 또 꽃이 피는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다시 가을이 오며, 또 봄이 온다.

 

끝에 강조점을 두면 답답하고 갑갑하지만,

짧을수록 그 과정에 다양한 색채를 부여하며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고은, 문의 마을에 가서)

요즘 '~전해라' 노래가 흔히 들린다.

어딜 가나 휴게소 노래는 이 노래다.

왜 백세가 되어도 저승이 가기 싫다고 전하라 하는지,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굳이 위안하며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세태가 역겹다.

 

죽음은 인간이 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범주다.

그래서 두려워할 필요도, 거부할 이유도 없다.

다만, 이해할 수 없으니, 이해할 수 있는 삶의 결을 쓸어가면서 잘 살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사들의 문장강화 - 이 시대 대표 지성들의 글과 삶에 관한 성찰
한정원 지음 / 나무의철학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글을 잘 쓰고 싶은 것은 인간의 많은 욕망 중의 하나다.

그렇지만, 다 거기서 거기이고, 우뚝한 사람들을 따라가기엔 그 높이가 너무 높다고 느끼기 쉬운데,

그들 역시 한 계단 한 계단 차근차근 올라갔을 것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그래서 '지식인의 서재'의 한정원이 다시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고은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그의 '눈길'을 읽듯 마음이 편안한 어둠으로 가득 찬다.

비록 걸어온 길은 험난하고 구질구질한 시궁창같은 길이었을지라도,

이제 돌아보니 눈으로 하얗게 덮인 그 길은

더럽지도 그렇다고 고귀하지도 않은 길이었던 것이다.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의 고백.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 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고은, 눈길)

 

같은 이야기가 김영현의 이야기에서도 '추사적거지'에서 만난

'만휴'로 돌아온다.

 

만휴는 모든 것이 다 평화롭다는 뜻.

김정희 선생이 마음이 평화로워서 그런 글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유배가신 분이 뭐가 그리 편했겠어요.

마음이 들끓었겠죠.

그 듫끓는 마음이 만휴라는 글자로 나왔을 때의 심정이 느껴졌던 거예요.

그때의 나도 들끓고 있었거든요.

단 두 글자지만 정말 훌륭한 문장이라고 생각해요.(285)

 

많이 쓰고 잘 쓰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많이 쓰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들의 노트를 읽노라면, 저절로 읽고 싶은 책들이 넘쳐난다.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그리고 릴케의 '말테의 수기'

 

이것은 고 남경태 선생의 도서 목록이다.

 

드라마 작가 김영현은 '대장금'의 작가라는데,

그가 글쟁이 출신이 아님은 새롭다.

글을 잘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표본이 아닐까 싶다.

 

우석훈의 이야기에서 '에코'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에코의 아메리카노에 대한 표현은

미국사람이나 마시는 커피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요.

세상에 어느 누가 커피를 구정물이니 시체 썩은 물이라고 하겠어요.

무서워서 엄두도 못 내죠.

그런데 에코는 개의치 않아요.

글은 에코처럼 써야한다고 생각해요.

눈치보지 않고 용감하게.(375)

 

그러나, 눈치보지 않고 쓰기 얼마나 힘들랴.

 

오죽하면, 주제 사라마구도 죽지 전에야 '카인'을 세상에 내놨을라고.

 

암튼, 이 책은 책읽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글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어볼 만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고,

재미있게 대화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어 읽어볼 법한 책이다.

 

최재천과 김정운, 남경태 등 꽤 괜찮은 사람들 이야기가 제법 읽음직 하다.

 

 

고칠 곳.

260.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의 한자가 틀렸다. 헤아릴 상 商이 들어갈 자리에 항상 상 常 이 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16-03-07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은 이제 달인이시잖아여
 
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아, 사형을 언도 받고,

이런글을 머릿속에 그려 놓으셨는데...

이제 고통 없는 곳으로 가셨기를...

차별 없는 곳에서,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 보시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훈의 글은 나름의 맛이 있다.

그의 소설에서는

묘사를 위해 말들이 물결쳐 일렁이듯 겹쳐지고 늘어지지만,

그 말들은 헤설프게 흩어져버리진 않고,

마음 속에 더 짙은 생각들의 앙금을 가라앉게 만들면서 수런거리며 퍼진다.

 

이 수필집은 수이 읽히지 않는다.

'밥벌이의 지겨움'과 겹치는 느낌이 강하다.

그저 그렇다.

그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형상화되어가는 인물들을 통해 나의 의식을 이리저리 뒤척여보는 경험들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는 별로 뒤척일 것이 없었다고나 할까.

 

새벽의 꿈에,

배 빠진 맹골수로에도 사월이 와서 봄빛이 내리는 바다는 반짝이는 물비늘에 덮여 있었다.

그 바다에서 하얀 손목들이 새순처럼 올라와서 대통령의 한복 치맛자락을 붙잡고,

친박 비박 친노 비노 장관 차관 이사관 들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우는데,

바짓가랑이들은 그 매달리는 손목들을 뿌리치고 있었다.

그 바다는 국가가 없고 정부가 없고 인기척이 없는 무인지경이었다.

손목들은 사람 사는 육지를 손짓하다가

손목들끼리 끌어안고 울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하였다.(120)

 

'돈'이라는 파트의 한 구절이다.

그래.

돈이 세상을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더 이상 글이 찰지게 나오기 힘들겠구나 했다.

 

국가 개조는 안전관리와 구조구난의 지휘부와 조직을 재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뉘우침의 진정성에 도달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뉘우침의 진정성 위에서 자신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서 뭉개다가 무너질 뿐이다.(176)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

사람은 고난을 당해서만 까닭의 실꾸리는 감게 되고

그 실꾸리를 감아가면 영원의 문간에 이르고 만다.(함석헌)

 

글에 슬픔이, 한이 가득 묻었을 때는

글이 매끄럽게 죽죽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뭔가 이물감이 들어 껄끄럽게 자꾸 뒤적거리게 될 뿐이다.

 

김훈의 재치가

성석제의 그것처럼

한들거리면서 '인간 삶의 던적스러움'에 대해서 넌덜머리를 내고 있음이 보이는 글들이다.

 

아,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려나?

하긴, 응답하라 1988에서 묘사한 것처럼, 세상은 분홍빛이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올림픽이 일어나던 그 해에도,

구사대의 폭력과 노점상들에 대한 국가 폭력은 여전히 징그러웠던 것이니...

 

얼마 전에 나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나는 라면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을 먹고 싶어 하는 거라고.

무지개를 찾는 소년처럼 헛되이,

저 멀리에서 황홀하게 빛나는 그 시절을 되찾으려는 것이라고.(성석제, ‘라면의 맛중에서)

 

 

이런 재미난 글을 읽으면서 낄낄 거리는 날들이

다시 올 수나 있을 것인지...

날이 흐리고 다시 기온이 급강하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