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이 끝나는 곳 동화 보물창고 34
셸 실버스타인 지음, 이순미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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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달 전에 도서관에서 양장본으로 된 이 책을 절반쯤 보고 왔는데,
다시 읽으니 새롭다. 

이 책은 아주 재미있지도,
그렇다고 유익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이 책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같은 작품이 나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이야기의 씨앗들이 '상상력 보따리'안에 들어있을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무릇 작가라면,
이런 상상력의 '씨앗 주머니'인 뒤웅박 하나쯤 철철 넘치게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어른을 위한 동화를 1,000페이지 가량 써낼 수도 있을 씨앗 주머니인데,
간략하게,
그렇지만 경쾌하게 읽는이를 콕 찌르기도 한다. 

자루에 뭐가 들었니? 

자루에 뭐가 들었지? 자루에 뭐가 들었니?
버섯이 들었니? 달이 들었니?
연애 편지니? 솜털 같은 거위 털이니?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큰 풍선이 들었니? 

자루에 뭐가 들었니? 모드들 내게 묻는 건 그것뿐.
팝콘, 구슬, 아니면 책이 들었니?
2년 동안 쌓인 빨랫감이니?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큰 고기 완자가 들었니? 

누가 내게 이런 것 좀 물어 줘.
"네 생일은 언제니? 모노폴리 게임을 할 줄 아니?
콩 좋아하니? 유고슬라비아의 수도는 어디니?
아니면, 네 청바지에 누가 수를 놓았니?"

자루에 뭐가 들었니? 모두들 관심있는 건 그것뿐.
바위가 들었니? 돌돌 만 기린이 들었니?
오이절임, 동전, 아니면 펑크난 자전거가 들었니?
우리가 알아맞히면 반만 줄래?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얼마나 오래 머무를 건지,
어디로 갈 건지, 언제 돌아올 건지,
아니면 "안녕?", "무슨 일이야?", "왜 쓸쓸해 보여?"
이런 것 좀 물어 주면 안 되겠니?
하지만 모두들 자꾸자꾸 묻는 건
"자루에 뭐가 들었니? 자루에 뭐가 들었니?"
다음에 또 그렇게 묻는 사람에겐 화를 낼 거야.
뭐라고?
오, 맙소사, 너마저도! 

이걸 책 한 권으로 쓴 사람은 '소유냐 존재냐'란 제목을 붙였더랬고,
소설로 쓴 사람은 '어린 왕자'란 제목을 붙이기도 했더랬다. 

골목길이 끝나는 곳,
거기서 작가는 거기까지 왔던 걸 후회하는 게 아니라,
피식 웃으며 뭔가 이야깃거리 하나쯤 주워 돌아섰으리라.
아니, 거기서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암튼, 내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네 자루엔 뭐가 들었는지,
갑갑한 거 묻지 않는 선생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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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6-27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쉘 실버스타인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페이퍼를 읽으니 반갑네요.
저는 '나-찌게' 라는 시를 오랫동안 간직했었답니다.
국물을 끓이고, 마지막에 '내가 퐁당 뛰어드는거야, 맛있게 먹길 바래, 잘 있어'
대략 이런 뉘앙스였는데...... 정말 인상이 강했었어요.

오늘처럼 흐린 날 어울리는걸요.

글샘 2011-06-28 00:11   좋아요 0 | URL
ㅋㅋ 좋네요. 찌개...
흐린 날은 찌개에 소주 한 잔! 캬~

2011-06-27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8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와글와글 철학학교 톡 꼬마 철학자 1
안느 소피 쉴라르 지음, 강미란 옮김, 파스칼 르메트르 그림, 황경식 감수 / 톡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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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라는 제목으로 나온 철학 이야기다. 

어린이들은 판단의 기준이 어른들과 다를 수 있지만,
아이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올바른 사고 방식으로 자라나는 것은 사회의 건강이 필수적이다.
아이들을 억누르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만큼 어두운 곳은 없을 것이다. 

부끄러움이 뭘까?
공부를 하는 이유는 뭘까?
성공이 뭘까? 

이 책은 그림과 간단한 문제들을 통하여 많은 생각할 거리와
이야기할 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내가 아빠라면,
이 책의 한 페이지를 펴놓고는,
아이랑 저녁 한나절은 보낼 수 있겠다. 

아이를 낳아 실천할 순 없고, ^^
좋은 책이니 아이들이랑 토론하라고 권하는 글을 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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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바이러스
김자환 지음, 김상섭 그림 / 문공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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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에 걸려 생명이 길게 남지 않은 젊은 여자가 마지막 혼을 불사르겠다며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부임한다. 

이름도 예쁜 금나래 선생님은
별나기로 유명한 초딩 6학년 3반으로 들어간다. 

주머니에 재크나이프를 들고 다니는 진우를 사랑으로 감싸안아주는 선생님의 마음씨는 참 다사롭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한 마음으로 교실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꿈과 같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물론 진우가 까불이 경훈이를 때려서 다치게 하기도 하고,
장애자 동생을 놀려준 3학년을 패줘서 선생님께 혼나기도 한다.
그런 진우를 대신하여 무서운 조광호 선생님을 마구 때리며 욕하는 대목은 순진하면서도 공감이 간다. 

사랑이 없이 오로지 질서만을 위하여 학생들에게 겁을 주는 일은 학생들이 안다.
그것이 매든 체벌이든 거기 '사랑'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를 아이들은 잘 안다.
아무리 심해도 사랑이 담겼음을 아는 체벌은 약이 될 수도 있다.
한국처럼 특수한 국가에서 특수한 학교를 두고 그저 '체벌 금지'란 명사만 달랑 던져두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 명사 뒤에는 정말 많은 '동사'들이 움직여 줘야 하는 것인데...
아직도 진보는 '명사'에서 머물고 있다. 
물론 한 발자국 앞서야 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아이들에게 해가 될 건지를 잘 따져야 한다.
진보의 이름을 대고 무지막지하게 '명사'부터 들이밀고 보는 사람들은 독재자와 다를 게 없다.
상처를 입을 사람에겐 그렇다는 것이다. 

교사들을 제발 수단으로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밥벌려고 수업을 하는 사람들은 적다.
밥벌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교사들의 마음은 가볍지 않다.
다 내 새끼처럼 보이고, 아이들의 처지가 몹시 안쓰럽고, 사회가 원망스러운 매일이다. 

금나래 선생님처럼
열정적으로 학생을 사랑하며 지도할 수 있는 기간은,
발령받고 10년 정도다.
10년이 지나고 나면 숙련된 교사의 테크닉으로 학생의 학습과 생활을 지도한다.
20년이 지나면 아이들이 제 자식처럼 보인다.
신규 교사를 많이 뽑아 배치하는 일이 학교를 살리는 길이다.
근데... 돈 없다고 학교 문을 닫고 있으니 한숨만 날 뿐이다.
우리 학교 교사들의 평균 연령은 40대 후반이다.
열정...은 글쎄다. 신규 교사에 임용되려면, 열정 따위는 애초에 버리고 들어와야 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학교에서 <사랑> 바이러스가 가득했으면 좋겠다.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날 밤 늦게까지 이 책을 읽었다.
그래선지, 오늘 입학식날, 우리 반 신입생 서른 명이 왜 그리 귀여웠는지 모른다.
별로 열정은 없지만(23년이나 다닌 직장에서 열정은 휴=3=3)
슬렁슬렁해도 하나도 빼먹지 않는 노하우로 아이들은 금세 순한 양이 된다.
아이들 고등학교에 입학시켜 두고는 불안해할지도 모를 부모님께 편지를 가득 썼다.
다 사랑 바이러스 덕이다. 

급훈을 '사랑 바이러스'로 할까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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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3-03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사랑 바이러스. 저도 가훈을 사랑 바이러스로 할까봐요.
경력 20년 넘으니 열정은 사라지고 없는데 왜 아직도 열정이 있다고 믿는건지 원.
전 진짜 일 욕심 없는데 말입니다. 에이~~~

글샘 2011-03-03 23:04   좋아요 0 | URL
괜찮을까요? 사랑 바이러스...
저도 열정은 별로 없는데, 일복은 독판 차지하고 있답니다. ^^
운명이려니 하고 있어요.
이제 일 시작해야 해요. ㅠㅜ
 
동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아동청소년문학도서관 8
황수대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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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들을 읽노라면,
고 이오덕 선생님이 생각난다.
선생님의 책들을 읽던 내 뜨거운 젊은 날들이 생각나고,
자라는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문학이란 것들도 생각난다. 

이오덕 선생님의 비평은
비판적이면서도 날카롭지 않았고,
체계적이면서도 한편한편의 각편의 시들을 허투루 여기지 않으셨다. 

황수대의 평론을 읽노라면,
오랫동안 '어린이 문학'을 노심초사 연구하신 이오덕 선생님을 좀 배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느껴졌다.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비평은 자칫 시인을 주눅들게 할 수 있고,
두루뭉술한 칭찬은 시인의 자존심을 치켜세우긴커녕 평론의 본령을 망각하는 일일 수도 있다. 

황수대의 평론을 평할 수준은 되지 못하지만,
이오덕 선생님의 글들을 즐겨 읽던 내 눈에는 아직 그의 글이 꼭지가 덜 떨어진 과실처럼 보였다.
애정이 지속되다 보면, 선생님의 글처럼 농익어 떨어지는 경지를 바라볼 수도 있으리라. 

78쪽과 90쪽의 서덕출의 글에 대한 비평에서 '7.5조의 정형시'란 말을 두 번이나 썼다.
'7.5조의 외형률'은 말이 되지만, 그런 걸 두고 <정형시>라고 할 순 없다.
<정형시>란 '한시'나 '하이쿠' 또는 영어의 '소네트' 같은 것을 일컫는 말이다.
시평을 한다는 사람이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못마땅하다. 

할머니가 옛날 사탕을 하나 주면서, 사탕 하나에 든 달고 고소한 맛이 얼마나 긴 줄
아느냐고 물었다 맛의 길이를 어떻게 재느냐고 되물었더니, 걸으면서 재 보면 운동장
열 바퀴도 넘는다고 했다 뛰면서 재면 스무 바퀴도 넘겠다고 했더니, 자동차를 타고
재면 서울에서 천안도 갈거라 했다 비행기 타고 제주도도 가겠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사탕 하나 물고 다녀올 수 있는 거리
황해도 옹진이 고향이신 할머니 (곽해룡, 맛의 거리) 

이런 시들은 재미도 있고 아이들을 생각하게도 하는 시다.
문제제기로 좋은 시들이다.  

좋은 시란, 좋은 동시란 어떤 것인가를,
지나치게 <환경 생태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어차피 인간은 환경 속에서 파괴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심정을 잘 드러내 좋은 시도 있고,
아이들 모습을 잘 드러내 좋은 시도 있고,
아이들에게 좋은 얘기를 들려줘 좋은 시도 있다. 

환경 문제를 제기한다고 좋은 시도 아니다. 

문제는, 그 시가 얼마나 시적으로 완성되었으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시인가... 이런 관점을 평론가가 정립해 나갈 필요성을 정면으로 돌파하였는가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남의 이야기를 들고 긁적이는 일은 '가죽신 신고 가려운 발 긁는' 격화소양의 우를 범할 수 있다.
평론가라면 자신의 관점을 세우고,
그 관점에서 시인들의 시를 조물거려 보는 일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오로지 생태주의를 논하는 것은, 남성보다 더 뻣뻣한 페미니스트를 보는 일처럼 재미없다.
친환경적인 글쓰기는, 독자들에게 말랑말랑하게 다가서는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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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죽음을 이야기하자 1218 보물창고 3
게어트루트 엔눌라트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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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독특한 주제의 책이다.
죽음 - 은 삶의 반댓말처럼 여겨지기 쉽다.
태어남 - 을 서양사람들은 '창조'처럼 여기지만, 동양사람들은 '연속'으로 여긴다.
원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있던 존재가 열 달 전에 수정이 되어 피가 엉겼고,
열 달 자라 탄생하는 것으로... 

그렇게 본다면,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다.
삶의 끄트머리가 죽음이라면, 삶이 다하면 삶이 끝나야 한다.
정말 그렇다면, 죽음에 대하여 왜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느냐 이거다. 

삶의 반댓말, 또는 삶의 끝이 죽음인 것이 아니라,
삶은 죽음이라는 형식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끝도 없이 이어지지는 않는다. 스르르 희미해 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죽음은 삶에서 스르르 풀려진 물감마냥 번져가서
남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고 애도가 필요하기도 하고,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생기게 한다. 

죽음은 슬픔이기도 하고, 깨달음이기도 하다.
여느 죽음은 슬픔이지만, 안중근이나 윤봉길의 죽음은 깨달음과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는 것이다. 

어른들도 죽음을 이해하는 양식이 다양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워하는데,
하물며, 아직 세상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죽음은 그저 '없어짐'과는 또다른 경험일 것이다.
그것은 '상실'에서 오는 '두려움' '소외감'같은 것일 수도 있고, 더 크게는 삶에 대한 '자신없음'이나 '죄책감'까지 갖게 될 수도 있다. 

아직 삶의 세계에 명확하게 발을 들여놓지 않은 아이들의 상상력 속에서
죽음의 세계는 자신의 존재조차 확신하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으리라. 

그림 형제의 동화에 나온다는 '작은 눈물단지'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헤아리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잃고 한없이 괴로워하는 한 어머니.
죽은 아이는 엄마에게 제발 그만 울라고 애원한다.
아이의 눈물단지가 꽉 찼기 때문.
엄마가 자꾸 울면, 눈물단지는 넘칠 것이고, 자신이 무덤 속에서 편히 쉬지 못할 것이라고 아이는 말한다.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가 서로 의존하고 결합되어 있음을 인정하지만,
산 사람이 삶에 몰두해 열심히 살아가려고 할 때,
비로소 죽은 자들도 자신의 자리를 찾고 고이 잠들 것을 상상한 이야기다. 

   
 

이를 닦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났어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요.
엄마가 내게 왔어요.
난 막 옷을 입으려고 했지요.
하지만 엄마는 내 침대에 누웠어요.
나는 엄마 품에 꼭 안겼어요.
그러자 엄마가 말해줬어요.
아빠가 죽었다고요.
그래서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느끼는 죽음은 상상 속에서 부풀어 오를 수도 있지만, 객관적 사건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충분한 애도를 위하여 상담 교실이 열리는 곳도 많다고 한다.
아이들만의 세계에 들어가서 바라본 죽음의 세계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준다. 

아이들이 죽음을 대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은,
어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어른들이 더 슬플지도 모른다.
오랜 기간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상황을 좀더 자세히 알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애도는 필요하고, 이해받기도 필요하다. 

이런 책들은 특정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심한 경우 사망 후 5년 정도까지 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더 오랜동안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옆에서 같이 애도해 주는 일도 필요하고,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마음도 필요한데, 이런 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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