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옆 철학카페
김용규 지음 / 이론과실천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철학카페에서 읽기 시리즈의 '문학 읽기'와 '시 읽기'의 감동에 비하자면...

이 책은 참 재미 없는 책이다.

이 책 뒤로 반성을 열심히 하고 ^^ 2006년에 문학읽기를, 2011년에 시읽기를 썼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종이가 컬러 프린트도 없는데도 번들거려서 독서에 완전 방해가 된다.

그리고 종이 질이 좋은 만큼 책이 무거워서, 뒹굴거리면서 읽기가 힘들다.

누워서 읽으면 손목이 아프고...

그렇다고 이 책이 카페에서 정말 카푸치노 한 잔 앞에 놓고 읽어야 할 책은 아닌데 말이다.

 

희망, 행복, 시간, 사랑, 죽음, 성에 관한 담론을 펼치고 소개한다.

 

우선, 희망에 대한 이야기에서 오랜 고민을 다시 만났다.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에서, 보통 판도라의 상자 안에 남아있는 '희망'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세상에 온갖 재앙이 퍼져있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는 투의 착각을 하곤 한다.

'희망'을 나오지 못한 '재앙 중 하나'라고 읽어주는 이를 만나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에 김용규의 글에서 의미를 고민하는 일단을 만난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그래. '욕망이나 소망'처럼 물질적이거나 속물적인 것은 노력으로 이룰 수 있다.

그렇지만, '희망'처럼 오지 않는 것을 바라는 마음은 '재앙'으로 보아도 될 것인지...

'희망'이라는, '부재로 인한 존재'의 가치를 바라는 인간의 마음을 읽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희망이란 절망적 현실의 산물이다.(20)

어둠이 빛을 만들어낼 수 없듯, 절망이 희망을 만들 수 없는 것.

그래서 희망은 자연스런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 속한 일이고 의지에 속한 일이다.

인간은 절망의 가장 깊은 곳에서 희망을 길어올리는 존재.

 

역시 철학 카페에서 맛보는 '희망'은 '에스프레소'의 쓰면서 진한 맛, 제대로다.

 

성서 속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면서, 역설적, 고난적, 여정적 상황을 인간의 삶에 내재해있는 보편적 상황으로 일반화한다.  인간의 삶 자체가 기쁨이면서 고통인 역설이고, 고난이고, 그 삶의 여정은 신을 늘 의심하며 살게 한다.

 

그에 대해 '믿음'이란 믿을 만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믿는, 역설적 성격이 '신의 약속'이란다. 재미있다.

 

'잠입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는 게 아니라, 오직 사랑하고 믿는 일이다.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앎을 전달한다.

곧 믿음이 없으면 내적, 도덕적 상태가 파멸에 이르고,

또한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불행해지고 불만스러워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즐겁게 해주길 기다리는 왕자처럼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행복해지긴 언제나 어렵다.

분명한 것은 행복해지길 원지 않는다면 행복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우선 자기가 행복해지길 원하고, 이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알랭의 '행복론'을 들이밀면서,

적극적 삶이 행복을 지향하는 조타수가 될 수 있음을 속삭여 준다.

 

인간의 인식이란 세계 자체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에게 유리하도록 파악한 세계, 즉 임의로 만든 한 세계에 대한 재귀적 인식이다.

앎이 곧 삶이요, 삶이 곧 앎인 셈이다.

삶은 그것을 아름답게 파악하고 있는 힘껏 싸워 그렇게 만들어 나가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어디서나 아름답다.

 

이런 이야기를 영화를 통하여 듣는 일도 쉽진 않다.

카뮈에게 '희망'이란 '치명적 회피', '투쟁의 기피', '기권', '철학적 자살'이라는 말로 등치되었다는데,

적극적 삶의 인식, 곧 '기투'에 대한 하이데거의 이야기가 나올 차례다.

 

삶이란 부조리를 버티는 유일한 길은,

사막(부조리)에서 벗어나지 않은채, 그 속에서 버티는 것이란다.

곧 희망을 갖지 않는 법을 배우고,

구원을 호소함없이 살고,

쓰라리고도 멋진 내기를 지탱하는 것이 '기투'다.

 

사람은 부정 속에서는 살 수 없다.

그 부정을 부정함으로써 긍정에 이르고자 하는 용기.

실존이란 무의미에 의미를 주는 행위. 곧 앙가주망의 등장을 예고한다.

 

그러나 존재 자체의 기쁨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인 바,

탐, 진, 치를 상징하는 저팔계, 사오정, 손오공의 '원을 그리며 도는 자기 파괴적 무한 욕망'을 돌아보게 한다.

八戒처럼 탐욕을 원할 때, <계율>이 필요하고,

悟靜처럼 성냄이 생길 때, <참선>이 필요하고,

悟空처럼 무지가 판칠 때,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경, 률, 론의 <삼장>을 주워온 것이 '서유기'란 이야기에 등장하듯,

욕망은 언제나 정신적 공복 상태에서 오는 것.

 

'매그놀리아'란 영화에서는 '우연'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인생은 결국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의 <마주침>에 대한 현상들이고, <확률>게임에 불과할 따름인 바,

날씨 환경이 수시로 변화하듯, 삶의 궤적들도 수시로 멀어지고 가까워짐을 경험한다.

 

가장 힘든 것은 사람이 사람으로 산다는 것.

 

이 한 마디로 축약하듯,

사람은 시간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찌질함도 인식하지만,

우연의 마주침, 그 우발성 contingency에 대하여 어찌하여볼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

철학 따위가 아무리 필연성 necessity 을 운운하여도, 그 삶이라는 사태는 어쩔 수 없는 것.

 

이런 고뇌를 보여준다.

결국 이야기는 <죽음>으로 번지게 되어있는데,

'나라야마 부시코'의 오린에게 죽음은

우연히 외부로부터 오는 모든 가능성의 종말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의 삶 안에 언제나 있었으며,

매 순간마다 그녀의 모든 행위를 결정하는 요소라고 한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객관적 시간으로는 끝나지 않는 현존재의 기획 투사 Entwurf'라고 보는 것.

그래서 죽음에 대한 사고 역시 삶 전체의 유의미성이며, 고유하고, 뚜렷하게 높여진, 곧 인간에의 길로서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철학적인 시, 장석남의 '번짐'을 읽고 싶다.

 

수묵(水墨) 정원 9 - 번짐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채 번져서

봄 나비 한마리 날아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도, 그림처럼 - 나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일상치유에세이
이주은 지음 / 앨리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학교도 변화의 물결을 비껴갈 순 없어서...

봄방학을 이용하여 직원 워크숍을 가게 된다.

뻔한 강의와 업무들로 가득할 워크숍 가는 길에 마음을 좀 가볍게 덜어내려고 들고간 책.

 

세트로 된 책은 이전에 읽었는데, 확 끌리지 않아서 두고있던 책이다.

 

프롤로그가 끌린다.

 

그림은 삶의 지침서와는 다릅니다.

이것저것 해두라고 등을 떠미는 대신

'자네, 여기 와서 쉬게나.'하고 권합니다.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결심하게 하는 대신

'너에겐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있지.'하고 일깨워줍니다.

그림은 험난한 길을 헤쳐나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구불구불한 길은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야.'하고 보여줄 뿐.

 

허브향이나 포푸리 향에 대한 탐닉과 불안의 거인을 시작으로 하여,

수염기른 남자의 자유로움과,

파워슈즈, 하이힐의 매력까지 그림과 잘 엮고 있다.

 

이주은의 글발은 지극히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편안하게 읽을 정도는 된다.

오주석이나 손철주의 '촌철살인'이나 '직지인심'까지는 이르지 못하지만,

노변정담처럼 그림두고 수다떠는 결이 밉살스럽진 않다.

 

여행길과 출발에 대한 타로 카드로 'the fool'을 집어주는데,

그럴듯하다.

머느 길이든 초심자는 누구나 바보처럼 어색해하기 마련이고,

그 앞에 절벽이 있을지, 물어뜯는 개가 있을지 모르게 되어있다.

 

나는 조지 레슬리의 '포푸리'나, 마네의 '나나' 같은 그림에 끌린다.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의 그림...

 

아마 삶이 부드럽고 편안하지 못해 그런 모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이 그림 같다 - 미술에 홀린, 손철주 미셀러니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손철주의 글에는 맵시가 있다.

여느 글에서 느낄 수 없는 풍미가 그의 글에서는 가득 밀려온다.

예를 들면 이런 글이다.

 

길과 글...

 

선배, 충주호 그 멋진 드라이브 길이 문득 떠오릅니다.

길 주변의 나무는 지금한창 옷을 벗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이 말이죠.

저에게 기막힌 걸 교시합디다.

가을의 낙엽을 땅에 떨군 나무는 봄날의 신록과 여름날의 만화방창을 결코 그리워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길은 결국 길입니다.

길이 글이 되는 이 오묘한 조화를 충주호 나무가 내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불혹을 넘어서

부록이 되어가는 삶을 거닐면서

그의 한 마디는 가슴에 그냥 얹힌다.

 

낙엽을 떨군 나무는 봄날과 여름날을 결코 그리워하지 않더라는 것...

 

그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은 그림을 통해서이지만,

그에게서 들리는 말들은 그냥 그대로 하나의 길이 되어 말들을 걷게 만든다.

예를 들면 이런 거 말이다.

 

혜곡 최순우는 미술 사학자다.

그는 아름다움에 살다 아름다움에 간 사람이다.

평생 아름다움을 찾았고, 아름다움을 키웠고, 아름다움을 퍼뜨렸다.

그리고 그는 아름다움이 되었다.

아름다운 것은 그다운 것이었고, 그다운 것은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그의 본질이자 실존이었다.

혜곡이 찾고, 키우고, 퍼뜨린 아름다움은 우리 것이었다.

우리 것의 아름다움이었다.

우리 것이라서 저절로 알고, 다 아는가. 아니다.

아름다움은 그냥 오지 않는다.

아름다움의 '아름'은 알음이자, 앓음이다.

앓지 않고 아는 아름다움은 없다.

혜곡이 그러했다.

알음을 아름답게 하려고 그는 앓았다. <아름다움에 살다 아름다움에 가다>

 

아름다움과 알음알이와 앓음...

비슷한 발음인데 이렇게 적어두고 보니 또 그렇게 잘 어울린다.

 

그림도 그러하다.

누구나 보는 사물일 뿐이고, 풍경일 뿐인데,

그렇게 그려두고 보면, 그렇게 아름다운 색채감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질감들도 그러하다.

손으로 주물럭거려서 대충 만든 것처럼 보여도

거기 놓아두면, 은근한 멋을 느끼게 한다.

 

손철주 글을 읽는 일은,

오랜 벗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 틀린 곳 하나

 

74. 태양신을 숭배하는 민족치고 새와 상관성을 띄지 않기는 드물다. ... 상관성을 띠지...가 맞다. 띄지는 눈에 뜨이지... 의 준말.


댓글(8)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1-04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5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4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2-01-05 10:17   좋아요 0 | URL
국어샘 다운게 뭘까요? ㅎㅎ
전호인 님도 용의 해 힘이 펄펄 넘치시길...

2012-01-05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5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2-01-05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혹을 넘어서 부록이 되어가는 삶을 거닐면서..." 서글퍼라. 부록. 전 아직은 메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ㅎ
아름다움을 키우고, 퍼뜨리는 일. 참 매력적이네요.

글샘 2012-01-05 20:52   좋아요 0 | URL
그럼 아직 서른 아홉이군요. ㅎㅎ
아름다움을 앓고, 알아가는 세실님... 박사과정까정 쭉~ 가세요. 꼭!!
 
그림과 그림자 - 김혜리 그림산문집
김혜리 지음 / 앨리스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자,를 따라 백화점을 걷는 일.
백화점 워킹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차분차분 한 걸음씩 옮기는 발걸음은,
걷는다기보다는 눈을 따라간다고 하는 편이 어울린다.
여자,의 눈을 끄는 코너는 무엇보다도 '그릇'이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그릇들은 그 효용과 이름도 알기 어려운데,
나름대로 세트를 이루고 겹쳐지고 쌓여져서 일가를 이룬다.
접시들에 아로새겨진 무늬는 형형색색의 영롱한 미술관을 방불케 하는데,
여자,는 그 찻잔과 그릇 세트를 바라보면서 그릇과 찻잔 너머의 행복을 맛보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여자,는 '가구' 또한 사랑한다.
우아한 선을 가진 조붓한 협탁 하나도 지나치지 못한다.
비록 삼각대에 붙여진 가격표엔 동그라미가 너무 많아 내 손안에 들어올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지만,
대리석 식탁과 쿠션 가득한 소파,
오래 뜨끈할 돌침대와 환한 공주 침대도 지나칠 순 없는 것인데,
괜스레 앉아보고 눌러보면서 미래의 행복에 젖어 보기라도 하려는 듯 하다. 

여자,는 또 옷을 찾아 이끌린다.
여자,의 눈을 끄는 마네킹은 인체 비례와는 전혀 무관한 10등신 이상이 되며,
허리는 20인치나 될까말까 하지만, 거기 걸린 옷들은 그래서 인체와 무관한 비례로 조합된 옷이지만,
그 색상과 라인과 맵시에 눈길이 끌리면,
하염없이 들이비치는 하늘거림까지 사랑해 마지않는 발걸음으로
여자,는 백화점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여자,의 발걸음을 마무리하는 곳은 사은품 코너가 될 테지만,
여자에게 사은품 코너의 줄 정도는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리라. 

비너스의 별 금성에서 온 여자와는 달리, 마르스의 별 화성에서 온 남자는 도무지 백화점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남자를 이끄는 팽팽한 긴장감과 힘, 뛰고 닫는 공기의 흐름을 느낄 수 없는 공간에서 남자,는 무기력해지고 만다.
남자를 매혹하는 것은 '탄성'이 아닐까? 탄력적인 근육과 탱탱 튀는 공.
오죽하면 축구,가 욕이 되는 바도 이런 특성의 하나임.
긴장과 탄성 끝에 오는 '승부' 또한 남자가 욕망하는 것인 바,
그래서 남자가 둘만 모이면 온갖 게임에 몰두하고 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혜리의 그림 읽기는 철저히 여자,의 눈을 따라 걷는 워킹이다.
그림,에서 그리움,을 읽는 이도 있지만, 작가는 그림,자를 읽는다.
그림자는 화려한 색상과 외곽선과 양감, 질감, 볼륨감을 다 읽고난 다음에라야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읽기를 마친 뒤에 조우하는 감동과도 같은 실루엣이 아닐까? 

<가난한 여배우의 크리스마스 디너>란 작품 속에 드리워진 삶의 그림자.
그 그림자는 그리움과는 또다른 면을 읽게한다.
삶의 궤적을 따르다 보면 다다르게 되는 한 지점.
거기서 하릴없이 별로 생활에 도움도 안될 사은품 줄에 피로함을 얹어 서듯,
어둡지만 또 그만둘 수 없는 삶의 한 지점에서 만나는 피로와
우리 앞의 生이 던져 주는 삶의 막막한 무상감을 그림의 바닥에서 읽게 한다. 

동키호테,를 그린 그림을 통해 '인간은 어떻게 살도록 허락받아야 하는가?'를 묻는 작가는 짓궂고 얄밉지만,
그나 나나 삶의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동키호테를 손가락질이나 하는 주제임을 깨닫는다면,
그림 속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짙은 어둠 속의 산초 판자의 주제나 작가나 나나 거기서 거기란 생각을 하게 된다. 

드가의 머리 빗기,란 그림은 여자의 몸짓 일체에 우아한 색채를 입힌 화가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데,
머리 빗기는 부인의 체형과 몸짓은 참으로 여실하다.
머리 빗어주는 하녀의 마음 속까진 읽을 수 없으나, 그 마음의 그림자까지 읽기는 어렵지 않다.
쳇, 제 머리조차 못 빗는 주제에 귀부인이랍시고... 하는데,
부인의 배를 보니... 임신부일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럼 조금 봐줄까?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청색과 금색의 야상곡 - 낡은 배터시 다리>에서 들어볼 만한 그림자 이야기가 등장한다. 

빛이 사위고 그림자가 깊어지면
사소한 디테일은 사라지고 자질구레한 모든 것이 퇴장한다.
사물은 위대하고 강력한 덩어리로 보인다.
단추는 보이지 않지만 옷은 남는다.
옷은 보이지 않지만 모델이 남는다.
모델도 보이지 않게 되면 그림자가,
그림자조차 사라지면 마침내 그림이 남는다.(54)

결국, 삶도 그런 거 아닌가... 알 듯 알 듯 알 수 없는 삶이 하나하나 소거되고 나면,
남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그림 한 장.
인상,이라거나, 그 사람의 체취, 라거나...
어쩌면 한 단어로 남을, 아니면 아무 인상도, 체취도, 한 단어의 기억도 남지 않는 그림자일 지도 모르는... 

완성은 소멸로 흩어진다. 절정은 곧 죽음이다.
흡사 벚꽃의 미학이다. 

불꽃놀이를 보며 남긴 글이다.
삶 자체가 그렇게 벚꽃구경(하나미)처럼, 불꽃놀이(하나비)처럼...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고 덧없이 스러지고 마는 것이어늘... 

잊지 말아요.
수억년 전 별이 폭발해 세상의 모든 걸 만들었어요.
당신도 만물처럼
우주의 먼지로 이뤄진 걸 잊지 말아요.(영화 비포 선라이즈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용규의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도 제법 재미있었는데,
이번 시읽기는 몰입의 독서를 경험하게 한다. 

이 책은 '사랑의 모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불안감에 대한 위안과,
자신의 자심없음에 대한 용기와,
사랑에 대하여 무지함에 대한 격려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외로워하는 사람이라도,
사랑이란 것을 우선 만나는 일은 행복할 것이다. 

왜 나는 사랑해야 하는가, 그리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가를,
김용규라는 철학자는 <금속공학>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그는 '바' 안으로 들어가서 '바-리스타'가 되어 커피잔에 하트 무늬 하나 그려진 거품을 올리며,
빙긋 웃는 미소와 함께 손님에게 찻잔을 넘긴다. 

'바'를 사이에 둔 바리스타와 손님을 매개하는 향긋한 한 잔의 커피처럼,
철학자와 무지한 독자 사이에 놓인 달콤 쌉싸롬한 한 편의 '시'는 이야기를 더 짙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사랑이 도대체 왜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거죠?"
이런 물음에 바리스타 철학자는 말한다.
"시를 읽어 보세요. 실존과 사건. 인간 존재의 증명과 평화와 안정을 흩어놓는 사건 사이에서 인간은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거죠." 

자칫 어려워보일 수도 있는 철학적 논술문을
마치 연애편지 쓰듯, 애인에게 녹여 주듯 그는 술술 적어 낸다. 

이 책을 읽는 일은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만나는 일일 것이고,
시를 통하여 인간의 가슴 속에 담긴 다양하고 복잡한 정서들을 끄집어 내서,
나의 정리되지 않은 심장의 핏줄들을 일목요연해 보이게 좌르륵 정리하면서 감동을 이끌어 내는 일이고,
나아가 세상에 대한 <기획투사, 기투>를 하도록 <앙가주망>의 자세까지를 요구하는 경험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일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 될 수도 있겠다. 

이 철학 카페는 사주팔자보는 사주카페보다 훨씬 바리스타가 달콤하다.
사주카페 가서 커피 맛있기를 기대하는 일은 무모할지 몰라도,
이 카페에 와서 듣는 시와 인생론, 그리고 삶의 철학은
지구라는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와 그 에너지의 교환, 피드백에 대하여
심호흡을 하면서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체험을 하도록 도와주는 바리스타를 만날 수 있어 행복할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읽는 김수영의 '풀'은 새롭게 읽힌다.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안 그래도 강신주의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을 괴롭게 읽고 있던 참에...
이 책을 만나게 되어 너무너무 행복해 하면서 읽었다.
이쁜 선물바구니에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선물해 주신 세실님께 감사를...(맛있는 커피는 어제 드셨죠? ㅎㅎ)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1-12-07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요즘 맛난 커피 마시고 있어용. 오늘은 파리빵에서 커피를 단돈 천원에 ㅎ.저두 이책 읽어야지. 겨울에도 역시 시집을 읽어야해요. 참 아드님 이번에 시험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