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만큼 왔니, 사랑아 - 한 예술가의 뒤란
이일호 글.조각 / 생각의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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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호의 작품과

글을 담은 책이다.

가벼이 읽어볼 요량으로 펴들었던 이 책을 몇 장 넘기지 않아,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생각처럼 말랑하지 않다.

아니, 충분히 말랑한 예술혼 앞에서... 기쁘게 그의 생각과 교감하도록 더듬이를 촉촉하게 만들어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격물치지...사물을 따져보아 앎에 이르다...

동양에서 학문하는 자세로 따지라고 만든 말이다.

조소과... 돌을 깎아내면 조각이고, 뭔가 들이부어 빚어내면 소조가 된다. 합하여 조소라 일컫는다.

 

돌을 깎거나 뭘 들이 붓거나,

그 양감과 질감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조차 쉬운 일은 아닌데,

거기서 '생각'을 빚어내는 일은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에 올라야 할 일이다.

 

이일호 작품들의 주제는 <인생>이다.

삶에서 만나게 되는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고, 곤란하고, 당혹스러운 순간들을 포착하는 눈은 일품을 넘어,

그야말로 명품이다.

그런 안목은 그저 나오는 것이 아님은 그의 글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얼마나 깊은 독서와 사유가 있어야 이런 쉽고도 풍부한 글이 나오게 되는 것일까?

 

 

 

인간의 욕망의 이면을 이처럼 잘 보여주는 작품을 만나기도 힘들 거 같다.

죽으면 다 똑같이 썩어질 육신이면서,

멋모르고 추구하는 이면은, 종잇장 한 장 뒤적이면 튀어나올 '육체'와 '자본'에 대한 탐닉이라니...

 

 

그러니 무조건 욕망을 버리라고 닦달할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욕망을 발산한 다음 욕망을 약화시켜서 다른 이에게 떠넘기는 것이 욕망의 지혜일 터이다.

욕망은 결국 나누어진다.(107)

 

 

 

 

 

육감적이고 섹시한,

어쩌면 너무 적나라한 여체의 자궁 위치에

<반가 사유>의 자세로 한쪽 가부좌를 튼 작품은...

인간의 삶의 시원(始源)의 본질을 한 작품으로 보여준다.

 

 

생명을 잉태하고 세속의 환희를 꽃 피우는 여자의 성황당 터는

세속과 성스러움이 교차되는 세상의 장터이다.

모두가 여기에서 태어났고 특히 남정네는 여기에다 소원을 빈다.(219)

 

자연은 어눌하면서도 치밀하다. 치밀함을 어눌하게 감춰서 자연이라 부른다.

그 무방비한 전략을 아는 생물들은 극소수인데 이 미천한 생물들이야말로

자연의 전략을 너무나 소상히 꿰뚫어서 허접하게 보인다.

하잘것없고 불편하게 보이는 거미, 개미, 지렁이, 파리, 모기, 이런 종류의 것들이

완벽한 자연의 일척 계보이다.

그들은 인간처럼 치사하게 존재의 근원을 물으며 버둥대지 않고 순하게 태어나서 순하게 적응하며 죽는다.

그들은 선악과 미추를 가리지 않고 그저 좋아서 살기에 그들 하루의 삶은 인간의 십 년과도 비교될 수 없다.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삽시간에 적멸하고 별안간에 태어난다.(91)


 

 

 

 

거울은 사실인가, 거울은 볼 때만 사실이 된다.

나는 사실인가,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볼 때만 사실같다.

그러니 나는 거의 사실이 아니다.(62)


사람은 평생 자기만 들여다보며 산다.

온종일 이사람 저사람 세상 풍경 다 보고 나서도

결국엔 이사람 저사람 세상 풍경을 보고 온

나를 내가 보며 살아간다.

 

라깡인가 하는 사람은

인간이 어린 시절,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세상을 배워간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거울을 바라보는 눈은 내 시선이 아니라,

그건 바로 <타자>의 시선이며, <타자의 욕망>이 물든 시선이다.

어린 아이가 엄마한테 인정받고 싶어하면서 그걸 자기의 욕망이라 착각하듯,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자기 관점이라고 착각하며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산다.

 

이일호의 작품들은 <욕망>을 억누르지 않는다.

그래서 한편 보는 이를 당황스럽게 만들고,

일반적인 착한 사람의 도덕적인 시선을 부끄럽게 만든다.

그렇지만, 그의 사유를 곰곰 읽어보면,

인간이, 내가, 얼마나 허위에 휘둘려 살아가고 있는 건지... 깨닫게 된다.

내 욕망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고, 안심하게 된다.

 

그의 예술에 대한 성찰들은 생각이 깊어서 읽어둘 만한 것들이 많다.

언어 사용도 예술이다.

마치 바람타고 흐르는 선율처럼 형체가 보이지 않으면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예술과 인간 존재에 대한 그의 생각들 몇 토막...


혼자 있으면 말들은 안으로 굽어든다.

밖으로 튀지 못한 말들은 뇌로 갔다가 귀로 갔다가 이명으로 와글거린다.

누군가를 만나 말문을 열면 내용없는 소리만 왁자하게 떠들다가 나중에는 혼자 궁벽해진다.

몇 번 그러고 나면 말은 함부로 할 게 못 되어 말이 다시 안으로 쌓인다.(10)


내 마음을 믿고 내 몸에 의지하여 사는 길만이 내 삶의 유일한 항로표지이다.

나의 예술은 시큼하게 홀로 숙성할 수밖에 없을 모양이다.(15)


생명을 한없이 잘게 쪼개면 한 톨의 먼지보다 작은, 미시화된 원자가 된다.

한 톨의 입자들이 켜켜이 쌓여 사람이 되고 그 안에 사유하는 이미지가 들어선다.

어디쯤에서 정신이 물질이 되고 물질이 정신이 되는지 나는 이것이 늘 궁금하다.(17)


바람 부는 저 허허한 공간에 말을 풀어 놓으면, 말들은 바람에 불려가 숲을 이루고,

산에서 계곡으로 흘러 바다가 되고, 거기서 다시 구름이 된다.

말들이 비바람에 씻기고, 흐르는 강물의 조약돌에 갈리고 다시 바람에 실려 구름을 타고 흘러서, 곱게 저문 노을 속으로 스며들 때,

나는 말을 몰라서 말할 수 없는 빈곤함으로 가슴이 멘다.(28)


사람은 여섯 개의 구멍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보고 듣고 마시고 숨 쉬고 배설하여 세상을 저어간다.

그렇게 많이 보고 듣고 먹고 마셔도 남는 건 하나도 없다.

나는 시간이 스쳐가는 통로이다.(43)


나는 예술을 한답시고 인생을 너무 심오하고 칙칙하게 살았다.

좋은 미술에 감동할 때 “재밌다”라고 표현하듯 한 번뿐인 인생.

재밌으면 됐지 애써 훌륭해지려거나 위대해질 필요가 있을까...

죽거나 떠나기 전에 지금 처한 자리에서 재밌게 살아야 한다.

돈을 벌어도 재밌게, 섹스를 해도 재밌게, 예술도 재밌게,

지금 내 말이 좀 언짢더라도 같이 한번 따라해봐~ “재밌다~”(47)


우주는 파동과 입자가 서로 부비고 핥고 충돌하고 밀어냈다가

다시 엉기어 별이 되고 은하군이 되었다가도

블랙홀에 껴당겨 흔적도 없어지거나 암흑 물질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영혼이 우주의 기와 동일함을 깨달을 때 비로소 초월자가 된다.(55)


떡갈나무는 우리더러 ‘떡갈나무’라고 불러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자작나무, 때죽나무, 소나무, 참나무, 밤나무, 모두가 그랬다.

우리가 괜히 친근한 척 그들을 불러서 패고 쪼개고 썰며 끝장을 낸다.

나무들의 이름을 모르는 채 숲속에 있지만 나는 전혀 부끄럽지 않다.

몰라야 한다. 알면 서로 괴롭힌다.(76)


나는 나의 불우한 삶에 열등감을 갖는 만큼 거듭날 것이다.(109)


시간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가만히 있으면 시간은 연못처럼 고요하게 모인다.

고요한 시간들이 가득 쌓이면 쇳덩어리보다 더 무겁게 짓누른다.

이 시간들은 못 참아서 바쁜 척 시간을 흐트러뜨린다.

바쁘게 보낸 시간은 흔적도 없고 고요히 모여드는 시간은 무겁고 무섭다.(87)


얼마나 좋냐, 예술이라는 것, 백수인데도 거의 신적인 기분으로 살 수 있는 게 예술 아닌가.

“제 작품 어때요?”

작품은 작가의 창조적 자존심을 십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결코 싫다라는 말은 할 수 없게 되어있다.

안 그랬다가는 고흐처럼 귀라도 자르면 어찌할 건가.

이럴 땐 “재밌는데?”하면서 ‘데’라는 말끝을 치켜 올려 물음표 식으로 발음한다.(134)


그의 예술은 <마디와 꼭지>에서 맺히고, 도드라진다.

밋밋한 흐름보다는 어딘가에서 생각이 맺히는 멋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톡 튀어나온 '임팩트'가 예술의 화룡점정이다.

그런 걸 '마디와 꼭지'라고 말할 줄 아는 예술가도 드물다.

아득한 사유의 지평선에 <가공할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순간, 예술이 된다.

그걸 '마디와 꼭지'라 부르다니...

가공(可恐)할 만 하다. ^^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신기한 것이 순환과 전환 사이의 간격에서 잇대어지는 '마디와 꼭지'이다.

다윈은 순환과 전환 사이의 꼭지와 마디를 더듬어서 예수를 넘어섰다.

이 꼭지와 마디가 없다면 세상은 영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꼭지와 마디가 있어 세상은 혼돈이다.

하나씩 마디 지워 꼭지가 되어 멸하고 다시 생하는 게 세상의 소통방식이고 자연과학이 말하는 아득한 사건 지평선이다.

삶 속에 끼인 잠은 삶과 삶의 마디로서 순환이고, 죽음은 삶의 마지막 꼭지로서 전환이다.

오, 이 가공할 전환. (85)

 

예술가는 외로운 법.

속으로 속으로 침잠하는 그 역시 에필로그에서 '좋은 벗'을 찾는다.

좋은 벗을 찾아,

그 좋은 벗과 도란도란... 지혜를 풀어내고...(사람 욕하는 친구는... ㅎㅎ 친구가 아닌 모양... 하긴... 이해된다.)

이 적막한 현세를 위로받을 친구를 목마르게 그린다.


고요하게 만나 서로 뜻 맞아 신명나고 도타워지는 그런 친구 없을까?

사람 욕하지 말고 개울물 흐르듯 도란도란 자연과 현자들의 숨은 지혜를 풀어내고

또 우리의 생각을 융숭한 언어로 포개어 이 적막한 현세를 위로받을

그런 지혜로운 사람이 목마르게 그립다.(266)


고요하게 만나 서로 뜻 맞아 신명나고 도타워지는 그런 친구...

그런 친구는 '일기일회'의 친구 아닐까?

내 일생 단 한번...

일본어로 읽으면 '이치고 이치에'가 되는 이 말은,

다도에서,

차를 한 잔 대접할 '손님'같은 자세로 '한 평생 단 한 번' 만나게 될 귀한 인연에 감사하며,

상대방을 소중하게 대하는 깍듯한 자세를 일컫는 말이다.

 

이치고 이치에를 만날 수 있는 삶은 흔하지 않은 일이겠지만,

만나고도 어리석어서 그 일기일회의 행운을 제발로 차버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아무튼, 적막한 현세...

위로받을 지혜로운 친구에 목말라하는 그를 만남으로서 위안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인데,

이 책을 선물해준 친구에게서 난 삶의 큰 위안을 받고 있는 중이어서,

이 책은 그렇게 더 소중하고 귀한 책이 되었고, 저 말이 마음에 새로이 새겨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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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의 편지 - 화가 아버지가 딸에게 보낸 그림편지
김종학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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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일단 그림을 먼저 곰곰 읽었다.

내 맘에 쏙 드는 그림들이 몇 점 있는데,

짙푸른 밤바다... 그리고 화사한 진홍빛 진달래 빛이다.

그 색감이 환상적이면서 깊이가 있어서

가히 매혹적이다.

 

골라 보니, 내가 좋아하는 색감이 바다와 하늘의 블루와,

환상적인 진달래 꽃빛 핑크계열임을 알겠다.

 

 

 

 

 

 

 

 

그 절정은 핑크와 마린 블루가 서로 휘영청 빛을 섞고 있는

<벼루 위에 스민 봄기운>이다.

 

 

 

 

 

 

 

 

 

 

 

 

 

 

 

 

 

 

 

 

 

그리고 세찬 물살과 어울린 자연들을 좋아한단 걸 그림을 보고 알게 된다.

 

 

 

 

 

아, <철쭉산>이란 그림이다.

세상이 온통 철쭉으로 휘감긴 느낌이 살아있다.

 

 

 

 

 

빛이 살아 숨쉬는 생명력으로 약동하는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막 살고 싶어질 것 같다.

그의 인물 그림보다, 이런 자연을 그린 꽃, 새, 나무 그림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당연한 거 아닐까?

사람을 보고 스트레스를 받은 인간은 이런 자연의 원색을 만나면서 풀릴 수 있을 거니까.

그림에서조차 사람을 보고싶지 않을 게다.

 

그가 같은 길을 걷는 딸에게 주는 편지글에선,

화가로서의 고민, 노하우와 팁이 가득해서

바구니 가득 풍성한 수확을 얻는 농부의 기분으로 가슴이 벅차다.

 

요즘 그림이 막 쏟아지고 있다. 이럴 때 많이 그려야지.

그림이랑 연애하는 것 같아. 그림은 자기만 좋아하기를 바라는 처녀같아서,

열심히 사랑해야 방긋 웃는 모습을 보여준단다.

미술의 길은 어려우나 오십이 넘으면 이 일처럼 즐거운 일도 드물 거야.

 

요즘은 무언가를 그리고 싶다는 확고한 세계가 있어서 하루에도 두 장, 세 장씩 마구 그린다.

온 정성과 생명을 걸고 일해 나가고 있다.

 

정말 마음을 비우니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고 마치 태양이 내게

"종학이, 이 괴짜야, 오늘은 일만 해, 끈풀린 강아지 마냥 싸돌아 다니지 말고 네 남은 생애 모두를 걸고 작품을 만들어봐."

하고 명령하는 것 같구나.

 

그림은 많이 그려야 해. 양에서 질을 찾아야 해.

마음 놓고 제 멋대로 그리도록 해.

그림을 겁없이 푹푹 그린다는 것도 꽤 힘든 경지란다.

 

무엇을 창조한다는 것은 창조의 길을 가는 사람만이 갖는 특권이다.

물론 외롭고 고달프고 때로는 겁도 나지만 오직 자기 홀로 서서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아니 길이 없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재미를 다른 사람들은 모를 거야.

 

미술은 남에게서 배우는 것보다 자기가 많이 실패하며 배우는,

혼자 하는 공부니까 열심히 하는 분위기만 있으면 너무 일류학교를 따질 것도 없다.

 

아빠가 꽃을 그리고, 나비를 그리고, 나무를 그리고, 냇가며 폭포 등을 그리는 것은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아니, 수쳔년 동안 좋아하는 대상을 그리는 것에 그치는 게 아냐.

그런 대상을 그리면 타락한 화가로 여기는 20세기 회화에 반발하는 의미도 있단다.

 

좋은 인간, 예술가가 되려면 시를 꼭 알아야 해요.

(음, 좋은 말이다. 이 문장만 높임말로 쓴 것도 맘에 든다. ^^)

 

화단에선 꽃을 그리는 야생화 작가로 통하지만 곱게만 그린다는 비난도 있다.

고와서 곱게 그리는데 난 별로 개의치 않는다.

다만 좀 더 힘차고 박력 있게 못 그리는 게 한이 된다.

 

영감은 무수한 노력의 순간에 온다.

한 사람의 진리는 만인의 진리가 된다.(로댕)

 

모든 걸 다 잊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무의식 속에서 창의력이 솟아난다.

좋은 작품을 많이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좋은 작품을 보면 가슴이 찡해지는 것처럼 자기 그림도 가슴에 찡한 게 오도록 그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항상 그리고 있어야 한다.

영감은 노력 속에서 가끔 솟아나는 샘물과 같다.

 

자연을 열심히 관찰해야 좋은 화가가 될 자격을 얻는다.

 

기운생동이 느껴져야 그림의 가치가 있다.

 

내 그림의 단점은 여자들이 좋아하기 좋은, 좀 곱다는 점에 있으나 때로는 심각하고 단순한 그림도 그린다.

 

루소 그림은 아빠가 좋아하는 그림이다.

좋은 그림은 시대를 초월해서 좋구나.

반 고흐 역시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얼마나 진실되게 열심히 그렸니.

루소는 비전문가로서 얼마나 아름다운 환상을 그려냈고.

사심없이 자기를 다 바쳐 그린 그림은 시간을 초월해서 사람 가슴에 감동을 준단다.

 

예술은 젊어서 하루 아침에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 묵은 된장이 썩지 않고 발효되어 그 깊은 맛을 내듯,

치열하게 추구하는 예술의 세계가 지긋한 나이가 들어야 깊은 빛을 낼 수 있는 것일 게다.

 

이런 아름다운 세계를 만나게 해주는 삶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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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6-29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동해어화다.
역쉬 미친 색감예요, 환상적이다~^______^
개나리는 줌 인에 인색하셨네여~--;

전 그 구절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정치나 재벌은 3,40대에 이룰 수 있지만...
그림은 60이 넘어야 하고,
시는 70이 넘어야 이루어진다.
왠지 희망적이지 않아요?^^

글샘 2012-06-30 00:10   좋아요 0 | URL
얼마만이세요? ^^
미친 색감... 그래요. 미친 색감이죠. ^^
이 책 전체가 그렇더라구요. (개나리는 키웠습니다.)

이 책 전체가 그림그리는 사람에겐 희망인 거 같애요.
저는 저 빨간 문장이 그렇게 맘에 들더라구요. ^^
주말 잘 보내시길...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폴 세르주 카콩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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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책이 참 이쁘다.

마음산책은 책을 이쁘게 만들 줄 아는 출판사다.

표지 디자인도 물론이거니와, 노란 양장 표지에 황금색 책갈피끈까지...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한 시대를 풍미한 소설가 로맹 가리가 45세에 21세의 신인 여배우와 사랑에 빠진다.

그 사랑은 뜨겁게 지속되지만, 41세 진 세버그의 자살과 66세 대 작가의 자살로 비극적 결말을 맺는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삶이 자살로 마감되었다고 해서, 비극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미지근하지도 않게 식어빠진 생을 100년 이상 유지하는 것이,

과연 뜨겁게 열정을 다 쏟아부은 40년, 60년의 생에 비하여 더 가치있는 것일지... 고민하게 만드는 인생 이야기다.

 

아주 고리타분한 결혼관과 보수적 봉건주의에 얽매인 한국인인 내가 읽기엔,

그들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숱한 염문들을 접하는 일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렇지만, 자신의 삶에 운명적으로 다가온 사랑 앞에서 정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그들의 사랑이 부럽기도 하다.

 

이 책은 전기문으로 볼 수 있는데 문체가 참 유려하다.

가리의 부인 레슬리와의 만남에 대한 서술 역시 멋진데,

 

가리는 레슬리에게서 분신같은 나그네의 영혼을 알아보고 춤이라도 추려는 듯 그녀의 손을 잡았다.(68)

 

두 사람은 존재와 사물의 영을 제 것으로 삼아 변화시키려는 욕망을 가졌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렇게 그들은 마치 스스로 무대에 올라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바꿔놓으려는 자신들의 욕구에 응하려는 듯 했다.(69)

 

때로는 한쪽의 자아를, 때로는 상대 쪽의 '나'를 성가셔하며 레슬리와 가리는 미숙하거나 유감스런 행동의 한계를 일러주고

인도해주는 특별한 직감을 갖춘 관계를 유지했다.

은밀한 떨림이 적절한 때에 찰칵 하고 당신을 관용으로, 신중함으로, 사랑으로 이끌어주는 관계 말이다.(68)

 

나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모든 사람에 반대한다.

 

알베르 카뮈의 말이다.

1960년대 미국은 흑인 인권 운동, 베트남전 반전 운동, 뉴에이지 운동의 실험실이었다.

진 세버그는 그 와중에 인권 운동에 뛰어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상처를 많이 받게 된다.

 

행복은 때때로 여행의 얼굴을 하지만,

목적지인 경우는 드물다.

 

이렇게 비유적으로 가리와 진의 삶에 드리운 불행의 그림자를 커튼을 치듯 비추어 준다.

가리가 마요르카 섬의 어린 소녀 파브라와 사랑을 나눈 부분은 짧지만 문학적이다. 재밌다.

 

이제 겨우 청소년기를 벗어난 파블라는 젊은 아가씨들이 그렇듯이

새끼 고양이가 스치거나 강아지가 살짝 깨무는 것처럼 넋을 빼앗는 미소를 지녔다.

여자들은 배울 필요가 없다.

그네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떻게 하면 남자들에게 사랑의 전율을 일으키는지를 안다.

가리는 어린 사내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별수 없었다.

모든 남자는 평생 어느 정도는 어린 사내로 남는다.

청춘의 환상과 장년기의 환상을 채우는 불륜의 욕망을 서로가 상대에게 반사하는 이 거울 놀이에서

두 사람은 각자 얻을 것을 얻고 있었다.

그들은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브역을, 그는 악마 역을.

그것은 '잃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기다리면서 그는 그를 도발하고, 유혹하고, 우연히 만난 것처럼 꾸미려고 꾀를 부리는 그녀를 보며 좋아했다.

성숙한 여인의 나이가 되자 그녀는 이 마법을 끝내고 청소년기의 내밀한 일기를 덮고 싶어 했다.

가리는 여전히 그의 내면에서 포효하던 악마로부터 해방되었다.

늙어버린 사자가 숨을 돌리기 위해 수풀 뒤로 숨는 것처럼 악마는 이제 슬그머니 사라질 일밖에 남지 않았다.(143)

 

가리와 진, 그 두 사람의 사랑을 비유한 슬픈 문장도 있다.

 

진은 언제나 달아나는 행복의 그림자 뒤를 좇아 달렸다.

가리는 어쩌면 행복을 만났는지 몰라도 붙잡을 줄은 몰랐다.(175)

 

에밀 아자르란 분신을 만들어 프랑스 문단을 농락한 가리.

 

글쓰기란 원래 인간과 그의 그림자 사이의 결판내기이기도 하다.(218)

 

글이 사람을, 삶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

그림자가 승하느냐, 인간의 삶이 승하느냐...

판정은 어쩌면 독자의 몫이다.

 

한 여인을 온 눈으로 사랑하고,

자신의 모든 아침과 숲과 밭과 샘과 새들을 다 바쳐 사랑해도

그 여인을 충분히 사랑한 것이 아니며,

세상은 당신에게 남은 모든 것의 시작일 뿐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230)

 

아, 알기에 더 서글픈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권총을 입에 물고 당기는 로맹 가리의 심사를 추측할 수도 없지만,

그 뜨거운 삶에 대하여 읽는 일만으로도 삶의 온도가 조금은 올라갈 수도 있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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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치킨 - 까칠한 아티스트의 황당 자살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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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만화다.

 

나세르 알리 칸.

현악기 타르 연주로 유명한 그는

마음속 깊이 사랑하던 이란느란 여자를 사랑하지만,

부모의 반대로 현실 속에서 나히드와 결혼한다.

 

자녀를 기르며 일하기에 지친 나히드는

집안 일을 돌봐주지 않는 나세르에게 격분하여 타르를 부숴버린다.

결국 더 좋은 타르를 구하지 못한 나히드...

자살을 결심하는데...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은 또 어떻게 상처받고 살아가는지... 그런 것을 볼 수 있다.

 

인생은 모두 각자의 관점에서 의미를 부여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죽음을 앞두고 그는 상상도 못할 막내가 그를 위해 기도할 수도 있고,

그의 마음 속 연인 이란느는 그를 만나고도 알아보지도 못할 수도 있다.

 

인생을 한 가지 관점에서만 보고,

정말 소중한 자두 치킨을 놓쳐버리고 죽음에 다다르게 될 수도 있다.

어리석게도 인간은 그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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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발명 - 유준상의 유쾌하고 엉뚱한 일상 모험
유준상 지음 / 열림원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유명한 여배우가 어떤 사람(남자겠지?) 집에 가서 80만원짜리 지갑에 든 현금 80만원과 수표 백여만원을 '가지고 나와' 수표를 은행에서 바꾸려고 하다가... 잡혔다.

도대체 어떤 사이기에 그 남자의 허락도 없이 수백 만원을 그냥 가져나와 써도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내 한 달 월급을, 저런 여자가 가져다 써도 되는 사이?

그 남자는 도둑이 훔쳐간 줄 알고 신고를 했다가, 그여자가 가져간 걸 알고 처벌할 필요 없다고 했단다.

참 편리한 사이다. ㅎㅎㅎ

 

배우란 사람들은 남들의 이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소위 출세한 배우들은 줄을 잘 서서, 또는 연기를 좀 잘 해서 배우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가~~아끔, 좀 멋진 배우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요즘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란 드라마의 좀 어색한 귀남이 역할로 등장하는 유준상...

난 그의 연기를 보면, 아무래도 좀 브라운관에선 어색하단 생각이 맨날 드는데, 이 책을 보고 나서, 음... 좀 멋지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은 그의 기록 정신 때문이다.

내가 읽고 쓰는 일이 하나의 '기록 정신'의 소산이므로, 그의 기록 정신을 기꺼이 사랑해줄 자세가 되어있는지도 모르지만,

암튼 뮤지컬, 영화, 드라마 등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이 소화하는 캐릭터에 대하여 기록하는 일은... 소중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가장 잘 남겨둘 수 있는 것은 스케치다.

유준상은 뭐, 그림을 잘 그리진 않는다. 그렇지만 그림에서 필~이 살아 있다.

그 그림을 그렸을 당시의 느낌이 그림에서 오롯이 살아있다.

기록 정신의 승리다.

 

우리네 인생에서 삶와 예술에 진정한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깔은 바로 사랑의 색이다.(샤갈)

 

이런 기록을 남겨두었다가 표현할 줄 아는 사람도 드물다.

가끔 피아노도 친단다.

 

요즘 나를 피아노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곡이 바로 쇼팽의 녹턴 C# minor

한 음을 칠 때마다 정확한 음을 치세요. 라는 아내의 전문가 이상의 조언을 들으면서...

 

난 일단 악보를 구하기 전까진 치지는 못하지만...

cd가 닳도록 쇼팽의 녹턴을 듣고 또 들었다.

그를 읽고 듣는 쇼팽의 녹턴은 참 '정확한 음'의 모음이란 생각을 하면서 듣게 한다.

 

나랑 하는 짓이 비슷한 구석도 있다. ㅎㅎ

화장실 휴지 삼각 접기... 나도 가끔 해보는데, 아내한테 물어보진 않았다. ㅋ

아내는 그걸로 한 번도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가 없다. ㅠㅜ

 

아무런 피드백이 없지만 나는 다시 휴지를 접는다.

 

ㅎㅎㅎ 이런 기록을 남기다니... 음... 일기의 힘인가부다.

난 주로 리뷰 위주로 글을 쓰노라면, 내 생각은 기록되지만, 거기 일상은 휘발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일기를 쓸 염도 내기 어렵다.

노트도 옆에 두지 않고... 가끔 스케치나 그림을 그릴 뿐...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다는 것

내가 진짜 여유를 갖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맞어. 여유... '진짜 여유' 말이다.

저 문장에서 '진짜'가 문장 전체를 수식하는 부사어가 아니라, 여유를 수식하는 관형어로 느껴지면서,

'진짜 여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뭘 해도 자유로운 시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풍족한 마음... 아, 그게 있기나 했나? 돌아보게 한다.

 

이별!

사랑과는 또 다른 류의 사랑

조금씩 세차게 다가오는 감각.

 

그래. 이별은 사랑의 한 조각이다. 이별은 사랑과 대척점에 선 다른 존재가 아닌 거다.

이별은, 그래. 감각이다.

사랑은 감정이라면... 이별은, 감각이다.

이런 걸 느끼는 사람이라면... 무지 까칠하기도 할 거다. ㅋ

감각을 건드리는 거만으로도... 확 발을 내지를지 모른다. ㅠㅜ

 

사랑!

다가오거나 사라지는 미묘한 차이

그차이의 관계 속에서 얻는 결실.

 

사랑은... 다가오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데, 거기서 느껴지는 미묘한 마음의 울렁거림..

그 울렁거림이 어디서 오냐면... 오거나 사라지는 <미묘한 차이>에서 온단다.

와~ 사랑을 이렇게 시각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구나~ 신기하다, 이 남자.

사랑은 감정이 울렁거리며 움직이는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시각적 거리감으로 현실화해놓고 나니...

비로소, 인간과 인간의 <관계>와 <거리>에 놓인 상관관계가

신비로움을 벗고 <객관적 사물>처럼 관찰과 고찰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멋지다.

 

그는 어쩜 그런 것들을 다 볼까? 궁금했는데,

마지막 페이지에서 답을 달아 준다.

 

천천히 가다보면 보게 된다.

그 느낌, 그 풍경들, 그 찰나의 움직임.

언덕에서 바라본 도시는 어제는 별이 되어 떠 있었고,

오늘 아침은 땅에 들어가 있다.

 

반복은 여유를 만들고 여유는 쉼을 만든다.

 

뭐, 삶에 정답은 없다.

그렇지만, 인생에서 마주치는 숱한 '주제'들을,

골목을 돌 때마다 우리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잊고 산다.

그 '주제'들을 기록해두고, 스케치해 둔다면,

충분히 어떤 타이밍에선 <변주>로 되살릴 수 있을 노릇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복을 지겨워말고, <여유> 또는 <쉼>과 연결지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속도감만을 내세우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선 안 된다.

천천히 가야 보게 된단다.

 

내 인생도, 천천히 보면, 멋진 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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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7 0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2-06-27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은 노력하고 언제나 지치지 않고 발전하려는 게 멋진 것 같아요
글샘님은 당연히 멋지신데요 ~ 모르셨죠?

글샘 2012-06-27 10:4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노력하고 지치지 않으려는 거...
당연히 멋지다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