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신화 - 그림에 깃든 신화의 꿈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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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전문가 조지프 캠벨(신화와 인생, 신화의 이미지, 세계 신화 시리즈 등)은 신화를 이렇게 말한다. 

신화는 '이 세상의 꿈'이고,
'인간의 거대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원형적인 꿈'이라고... 

이윤기가 그리스 신화를 읽어주었듯, 황경신의 자기 나름의 여성적 감각을 한껏 살리고,
아름다운 그림들을 듬뿍 집어 넣어 멋진 레시피로 훌륭한 요리법을 선보인다. 

우선 그가 잡은 아우트라인은 봄,여름,가을,겨울에 어울리는 단어들이었다.
봄에 사랑,
여름에 욕망,
가을에 슬픔,
겨울에 외로움...을 배당해 주었다. 일리가 있는 배당이다.
그리고, 각각의 계절과 상징에 또 어울리는 신화속 이야기들을 배치한다. 

봄의 사랑에 '아리아드네, 프시케, 프로크리스, 세멜레'를,
여름의 욕망에 '갈라테이아, 아프로디테, 다프네, 엔디미온'을,
가을의 슬픔에 '에우리디케, 페르세포네, 메두사, 메데이아'를
겨울의 외로움에 '미노타우루스, 에코, 판도라, 시빌레'를 배치했다. 

독특한 것은 성별을 구별하기 힘든 미노스의 황소를 빼고는 모두 여성들을 주된 신화의 해석 열쇠로 맞춘 것인데,
그가 일하고 있는 여성지의 패턴과도 잘 어울리는 것이라 하겠다. 

나리키소스를 주인공으로 삼을 수 있지만, 에코를 전경화시키는 방식 말이다. 

그리스 신화 속의 숱한 이름들은 들었다가도 또 까먹고 만다.
그것이 신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읽을 때마다 신선한 느낌이랄까. 

어리석게도 상자를 열어 인간을 재앙으로 몰아 넣은 '판도라'같은 여성도 저자는 적극 변호한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정황에 대한 이해와, '희망'을 가두어 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해석.
희망이란 것은 바라고 바라는 마음,
모든 욕망이 흘러나오는 곳, 우리를 눈멀게 하는 마음의 감옥,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불행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희망이란 것은, 그곳에 그것이 있다, 정도로만 족한 것.(282)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이야기 역시, 갈라테이아를 중심에 놓는다.
피그말리온의 끝없는 욕심. 신화는 해피엔딩이지만, 버나드 쇼의 희곡은 야릇한 맛을 느끼게 해 준다.(104) 

큐피드의 사랑의 화살이 아폴론을 쏘아 다프네를 쫓았다는 이야기, 월계수 이야기.
저자는 이것도 재미있게 해석한다. 

당신이 죽었다 깨나도 모르는 사실 하나.
그 시절 나는 당신을 사랑했어요.
당신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을 때, 나는 당신의 품속으로 곧장 뛰어들고 싶었지만, 나는 달아나기 시작했죠.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이야말로 사랑을 잃지 않는 유일한 길임을 느꼈어요.
나는 순간 당신이 소유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야 했어요. 그래서 나무가 된 거죠.
만약 내가 그 날 순순히 당신에게 나를 맡겼다면,
저항을 포기하고 당신의 것이 되었다면,
당신은 나를 벌써 잊어버렸을 거예요.
당신은 나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나를 잊을 수 없었던 거예요.(135) 

신화를 읽고, 또 그림도 찾아 보고,
그 신화 속 인물들에게로 마음을 투영하여 글을 쓰는 작가의 투명한 심사게 연못에 비치기라도 할 듯 하다. 

자식을 죽이는 걸로 잔인한 어머니로 일컬어지는 메데이아.
그도 변호해 준다. 

일생 사랑에 관해 배우지 못한 한 여자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나요.
조건 없는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조건없는 사랑을 할 수 없었고,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여자.
마법으로 사랑을 사려고 했던 여자.
그리하여 죽는 날까지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여자.
그를 동정해 줄 수는 없나요.
당신에게는 아마 연민이라는 감정이 있겠죠.
누군가에게 연민과 동정을 받아본 적이 있을 테니까요.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그보다 훨씬 행복한 사람이에요.(228) 

신화 속 여성들에 대한 변호는 신선하면서도 경쾌하다. 

990년을 살게 된 시빌레.
그는 한 가지 실수를 한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살게 해 달라는 부탁을 잊어버린 것.
사망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는 현대, 시빌레의 비극은 남의 것이 아니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기회주의자이며 도덕적 가치관은 없이 재주만 뛰어났던 다이달로스 이야기.
그래서 신화는 우리 사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오래 잊히지 않는다.
신화는 인생에 대한 교훈이나 대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삶에 선행된 경험이며,
인생에 대한 사소하고 거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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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학교에서 배운 것들 - 임영균의 사진과 삶의 대한 단상
임영균 지음 / 브리즈(토네이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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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혼자서 양주를 홀짝이며 읽은 책.  

사진에 대한 다양한 가르침을 담은 책이어서, 나처럼 사진집의 감상을 느끼려는 독자에게 적절한 책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사진에 담긴 의미를 반추해 볼만한 좋은 구절들이 많아 기록을 남겨 둔다.
디카 들고 사진 찍기에 몰입한 사람이라면 꼭 몇 번은 반복해서 읽어볼 만한 좋은 책이다.

사진은 기록과 진실을 담은 예술이어야 한다. 사진은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표현해야 한다.
그섯이 아름다운 것이든, 추한 것이든, 참혹한 것이든... 임응식 선생 

사진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 사물의 죽음, 연약함, 무상함에 동참하는 것.
그런 순간을 정확히 베어내 꽁꽁 얼려놓는 식으로,
모든 사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증언해 준다.(수잔 손택) 

사진가는 호크아이를 가져야 한다.
어두운 밤 희미한 빛 아래서도 시야를 확보해 사물을 또렷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매의 눈.  

숫자 8을 표현한 안경을 찍은 나의 사진과 클래스 메이트의 풍만한 가슴을 찍어낸 사진을 보면서... 과감하게 생각하는 마음과 피사체를 탁월하게 바라보는 눈을 가질 것을 결심... 

좋은 사진은 피사체가 좋은 포즈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셔터만 누를 뿐이다.(살가도)
사진가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이기심을 앞세우면 진실된 사진이 나올 수 없음.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쟌 모리스)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은 말할 나위 없이 유명한 말이다. 
<브레송, 생 라자르역 뒤편>  

아날로그 사진과 디지털 사진을 비교하자면, 유리와 거울.
유리로 된 창문 앞에 서면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는 나무가 보이고
햇볕이 내리쬐는 교회가 보인다.
그러나 거울 앞에 서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유리는 빛을 투과하고 거울을 빛을 반사한다.
아날로그 사진은 유리처럼 렌즈 안으로 들어간 것처럼 볼 수 있고,
디지털 사진은 거울처럼 렌즈가 반사한 것을 보는 듯 느껴진다.
나는 피사체의 표면만 아니라
그 속까지 파고드는 느낌을 얻는 사진,
그리고 그 속에 사진가의 영혼을 채워줄 수 있는 사진을 만나고 싶다.(69) 

 최근 몇 년 사이, 디카가 확산되면서
예쁘고 감각적인 사진은 수없이 등장하지만,
살가도의 사진처럼 목마른 우리 영혼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사진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사진이란 작가의 끊임없는 관찰과 정신력을 렌즈 한 곳에 집중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결정체다.
이것이 사진, 즉 영혼이 담긴 사진에 대한 내 생각이다.(아마존에서 제자에게) 

중요한 것은 스스로 확인하기 전까지 무엇이든 외부의 해석을 믿어서는 안 된다.(체스터 히긴스)

저는 결코 유럽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미 다다이스트였기 대문이죠.
그래서 다다이즘의 기본 개념이라고 하는 기존의 관습과 관념, 그리고 체제도 거부하는 작업을 이미 진행하고 있었습니다.(만 레이) 

빈티지 : 경작이 좋은 해. 낡은 것이라도 어느 해에 나온 것이 품질이 좋다는 ... 오래되어 좋은 게 아니라, 제조 연도에 따라 일조량이 달라, 포도주의 질이 다르다는 어원.  

고칠 곳 몇 군데...

54, 55쪽의 6.8 혁명은... 점이 없어야 옳을 듯 싶다.

136, 몇 번이나 '유셉 카쉬, 와 유서프 카쉬'를 섞어 쓰고있다. 통일이 필요한 고유 명사. 

142. 국립문화제청... 문화재청이 옳은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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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a Photographer 나는 사진쟁이다 - 신미식 포토에세이
신미식 지음 / 푸른솔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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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I'm a photographer. 나는 사진쟁이다.... 이렇다.
'-쟁이'란 접미사와 '-장이'란 접미사는 구별해서 쓰는데, 전자가 속성, 특성에 쓴다면, 후자는 전문적 기술과 직업에 쓴다.
멋쟁이, 욕심쟁이와 석수장이, 미장이... 이런 차이.
사진을 찍기 좋아하는 정도라면, 사진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걸 전문적 기술로 기예를 닦고 싶을 땐 장이라고 써야 옳다. 

신미식이란 이름은 이 책에서 처음 만났다.
'감동이 오기 전에 셔터를 누르지 마라', '떠나지 않으면 만남도 없다' 이런 책들이 제법 검색된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과 산비탈 다락 염전의 사진도 인상적이다.
페루의 쿠스코와 알파카, 만년설 사진도 숨이 컥 막히게 아름답다. 

좋은 카메라와 여행, 그리고 멋진 사진...
그걸 내가 꼭 하고 싶은 생각이 내겐 없다. 이런 사람의 책을 만나면 되는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보고 싶은 생각은 간혹 나지만... 

인도, 베트남, 캄보디아의 사진들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표지 사진이 된, 횟가루가 묻은 남자의 억센 발 사진.
그의 발이 원래 처음부터 그렇게 억세었던 것은 아니리라.
아이들의 웃음은 천진난만 그 자체지만,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의 고단한 삶이 오버랩되면, 그 웃음이 지나간 자리에 고일 우울이 슬프기도 하다.
그렇든 말든, 바라나시의 금빛 물결을 대신 응시하게 해 주는 사진, 고대의 사원을 찍으려 목발을 짚고 선 외다리 여인의 사진,
삶이란 어디서든 그렇게 치열하게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임을 보여주는 사진들은 삶의 스승이다.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 나무들은 인간의 자질구레한 욕심을 비웃는 듯 하다.
그리고 이 섬의 바위들의 절리는 '만물상' 운운하는 금강산을 금세라도 비웃을 듯...
사는 거 뭐 있어? 이렇게 미끈하게 생긴 나무들. 곁을 주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금세 친숙해지는 그림들...
뉴 칼레도니아의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 황금빛 노을...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운운하며 국수주의적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이런 사진집은 세계 시민으로서의 열린 마음을 말없이 전달해주는 기능도 할 것이다. 

수십 번 숨을 참아가며, 한 순간, 결정적 순간을 포획하려는 사진가의 노력은
휙휙 책장 넘기는 성의없는 독자조차도 한 순간 그림을 한참 바라보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한다. 

멋진 사진장이의 사진은 독자를 사로잡고, 열린 세계로 나아가게 만든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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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신 -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
서경식 지음, 김석희 옮김 / 창비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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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에 나온 이 책이 나를 이끈 것은 책 제목도, 주제도 아닌... 저자의 이름 석 자였다. 

서경식의 글에서 묻어나는 가슴 저린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왠지 모를 저릿한 통쾌함이랄까 이런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저, 너무도 삶이 힘들어 일본 또는 유럽의 미술관들을 돌면서 만난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일 뿐인데, 그의 그림 이야기는 읽는 이에게 공포를 이기는 힘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이 무섭지?
그렇지만, 너보다 더 세상이 무서웠던 사람들도 많단다.
그리 두려워할 것만은 아니야.
모든 것은 지나가게 되어있거든...
이렇게 공포에 젖은 눈으로 더 두려운 21세기를 바라보는 독자를 다독거리는 목소리가 들리기라도 할 듯하다. 

벤 샨의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129)은 항의 운동의 성화란 제목이 붙어 있다.
이민자로서 무정부주의자였기때문에 <제화공장 회계 담당과 경비원이 총에 맞아 죽고 현금 1만 6천 달러가 강탈당한> 사건에 대하여 '병역 기피는 비겁하다고 생각지 않느냐'는 등의 재판 끝에 1927년 처형을 당한다. 

아, 이 부분을 읽으면서, 미국의 세례를 제대로 받은 어떤 나라가 떠오른다.
정당에 가입하지도 않고서 후원금을 냈다는 '죄'를 저질렀는데,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성큼성큼 <해직>을 거론하는 어떤 나라 말이다. 후원금을 2만원 낸 사람도 있다고 한다. 많이 내 봤자 몇십 만원인데, 그걸로 교단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직업인에게 <해직>이라는 사형선고를 마구 남발하는 이런 것이 국가라면, 정말 국민을 포기하고 싶다. 죄에 따른 '벌'은 법정에서 판결이 나고 징계위원회를 소집하여도 될 노릇이거늘, 일단 직위해제부터 시켜 두고, 빨리 파면, 또는 해임을 시키겠다는 것은 교사를 국가의 시녀로 전락시키겠다는 폭력적 사고의 일단을 보여주는 일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더럽다. 사는 일이 더럽다.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를 보면서, 알라딘에서 이 그림을 쓰시는 분이 생각나 빙긋 웃었다.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도 보인다.




루오가 이런 말을 남겼다.
예술을 칭찬하는 게 아니라면 나에 대해 말하지 말아 달라.
나를 혁명이나 반항의 횃불처럼 그렇게 중요시하지 말아 달라.
내가 한 일은 하찮으니까. 그것은 밤의 절규, 낙오자의 오열, 목멘 웃음이다.
세상에서는 날마다 나보다 가치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일 때문에 수없이 죽어가고 있다.(46)

멋지다. 

죠지 그로스의 '매장식 - 오스카르 파니짜에게 바친다'를 보고 있자니,
온통 가식과 거짓으로 가득한 대한민국의 현대가 비친다.
서울 광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페스티벌은 환장하게 현란하기 그지없는데,
오로지 소비로 가는 길, 처먹고 퍼마시는 길로는 광장이 열려있지만, 
비판으로 가는 길에는 완전 '좁은 문'이 설치되어 있어 광장은 꽉 막히고 만다.
주구장창 부어라 마시자... 하는 환락의 도시에 곧 퍼부어질 '월드컵 응원의 세례'는 다시 소비로 가는 일방 통행로가 되어 광장에 붉은 대열을 퍼뜨릴 것이다.  

그림은 곧 작가의 세계관을 표상하는 것이고,
그림 속에 담긴 세계는 곧 작가와 독자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인 것이다.
그림 속의 세계와 화가가 별천지에 있는 것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아도,
우리가 사는 부조리한 세계가 그림 안에 오롯이 담겨 있어 그림읽는 일은 슬프고 가슴 아린 일이다.
특히 서경식처럼 아픔을 온몸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애린 정도가 더할 수밖에 없는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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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2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이 무섭지?
그렇지만, 너보다 더 세상이 무서웠던 사람들도 많단다.
그리 두려워할 것만은 아니야.
모든 것은 지나가게 되어있거든...

아~~~멋있다!

글샘님 때문에 맨날 지름신이랑 싸워서 지고나면...
멋지게 들어차는 책장은 배불러 좋지만...
주인의 머릿속도 배불러야 되는데...ㅠㅠ

 
러시아 미술사 - 위대한 유토피아의 꿈
이진숙 지음 / 민음인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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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풍만한 러시아 미녀가 사파이어빛 눈동자를 뽐내고 있다. 쿠스토지예프의 '미녀'다.
이콘이란 러시아 미술에서 아이콘이 나왔다는 정도의 상식 외에는 '러시아 미술'이란 것이 과연 있었는지도 몰랐던 나로서는 이 책이 상당한 충격이었다. 내가 배웠던 시답잖은 세계사 안에 들어있지 않았던 나라, 러시아.
러시아 혁명의 미화로 가득하던 시대에 대학을 다닌 나는 소련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결국 러시아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었던지를 무심하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90년대 초반, 나이트클럽이란 곳에 가면 러시아 미녀들이 백색 피부를 빛내며 엉덩이를 실룩거리던 모습을 본 것이 러시아에 대한 실존적 체험이었고, 소문으로는 러시아 피스톨도 거래된다는 이야기들도 들리곤 했지만... 사실 러시아는 혁명이 없어지고 나서는 관심 밖의 나라였다. 

요즘 들여다본 러시아 미술사는 마치 조선의 미술을 서양인들이 안 알아준다고 투덜대는 한국 학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러시아의 삶에 관심도 없었으면서,
남들의 삶에는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왜 내 존재를 알아주지 않느냐는 투덜거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니콜라이 야로센코의 <그네에서>(209), <청강생>(211), <삶은 어디에나>(212) 이런 그림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청강생의 그 풋풋한 젊음에도 눈물이 나고, 그네에서 속삭이는 밀어를 떠올려도 눈물이 나고, 수용소로 가는 열차에서 밝게 웃으며 비둘기에게 모이를 던지는 어린 아이에게서 '인생은 아름다워'의 역설을 보는데도 눈물이 난다. 

바실리 페로프의 <트로이카>에서 힘겨운 러시아를 끌고가는 세 어린 아이의 모습도 눈물겹다.
이 책에 이렇게 눈물겨운 그림들만 있는 건 아닌데, 나는 이 그림들이 몹시 마음에 밟혔다.
삶은 어디에나... 힘겨운 사람들로 가득하고, 그 속의 자잘한 삶의 냄새로 그윽한 모양. 

블라디미르 마코프스키의 <가로수 길에서>도 가난하지만 따스한 인간들의 마음을 엿보게 하는 그림이다.(206) 

이 책에서 가장 알아들을 법한 대목이 <나의 사랑 비테프스크>다.
마르크 샤갈의 이야기이기 때문. 그는 러시아 태생이며 그림속 마을 비테프스크(배가 고픈지 자꾸 비프스테이크로 보임)는 러시아에서 독립한 벨로루시의 한 마을이란다. 샤갈의 그림들에 나오는 고즈넉하고 아담한 마을...
그리고 그림의 전반에 흩뿌려진 듯한 푸른 빛.
그의 환상적인 푸른 빛에 대하여는, 샤갈 하면 떠올리는 슬픔의 푸른색에는 343쪽과 같은 숨은 이야기가 있다.
환상적인 푸른 꽃, 바실료뇩. - 이 색은 샤갈이 떠돌이 생활 끝네 사랑하는 아내 벨라를 잃고 그린 투명한 푸른 색의 원형이었던 것이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우리의 구세주>(48)는 기적적으로도 성스러운 이의 이마에서 가슴 부분만 살아 남았다. 신비를 더한다.  



이반 크람스코이의 <미지의 여인>이다. 러시아 귀족의 오만함, 그리고 아름다움이 화면에 가득하다.
대기마저도 러시아의 그것을 호흡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흐린 것이 오히려 더욱... 

<레닌은 살았었고, 살아 있고, 영원히 살 것이다>처럼, 레닌의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리는 뮤즈의 그림은 충격적이다.(424)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 알려진 뮤스에게 영감을 주었던 존재, 레닌.
그의 죽음은 영감을 상실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같지만,
이 그림에서 죽은 레닌의 시신이 방부 처리되어 아직도 붉은 광장에 영구 보존되듯,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신랄한 자기 비판에 맞닥뜨리게 된다. 

프라우다(진실이라는 뜻, 소련의 당 기관지)가 보여주었던 끝없는 '거짓'들은 현대 미술에서도 비판에 마주한다.
마치 이 나라를 쪼개는 것이 '한나라'란 이름을 쓰는 파당이고,
정의를 가장 짓뭉갰던 세력이 '민주정의'란 이름을 썼던 깡패당이었던 것과 같다. 

눈을 돌리면 어디나 사람의 냄새는 가득하다.
그렇지만, 눈을 감으면, 거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이 인간이다.
부지런히 눈을 뜨고 눈길을 보내야, 거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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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쪽.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이렇게 써야할 곳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으로 쓰고 있다. 사소한 잘못이지만 고쳐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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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경험...
위의 쿠스토지예프의 <미녀> 이미지를 혹시 얻을까 하여 '다음'에서 '미녀'를 검색하고 '이미지'를 눌렀더니... 온갖 '므흣'한 여인들의 비키니 옷차림을 만날 수 있었다. 수백 장의 므흣한 사진 또는 그림들을 감상하면서 혹시나 하면서 넘기는데, 허걱, 닭그네 공주가 있는 사진이 하나 있다. 닭그네와 미녀의 공통점은??? 검색 엔진의 실수가 아니었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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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10-04-0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책이죠. 저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친구들에게 추천도 많이 했고요 ^^

글샘 2010-04-11 23:25   좋아요 0 | URL
네, 관심없어 잘 모르던 러시아 미술사를 재미있게 읽어주는 책이예요.
근데... 러시아 사람들 이름은 좀...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