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스케치 장 자끄 상뻬의 그림 이야기 3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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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뻬가 들여다본 파리 사람들...

 

이 책에는 그림만 가득하다.

책이 워낙 조그만한데, 그림이 조그맣게 들어가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사람들의 움직임, 표정, 행동의 특성들이 보인다.

 

파리의 조붓한 골목길 사이로 자동차들이 늘 빡빡하고,

사람들과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가 가득 얽혀 있지만,

사람들은 커피를 즐기고 햇볕을 즐기고 이야기를 즐긴다.

 

자동차들도 다양하다. 출퇴근 자가용 외에도, 사고난 버스 충돌, 레미콘 트럭, 청소차 또는 가로수 정비 차량들도 가득하고,

사람들도 어두운 데 출근하는 사람,

환한 햇살을 온 몸에 맞으며 행복하게 두 팔을 벌리고 출근하는 사람,

무슨 이야긴가를 긴밀하게 나누는 행인들, 휴대폰 삼매경에 빠진 여성 등 흔한 모습이 그득하다.

 

빵집 아저씨, 청소부, 강변의 고독남, 공원의 쓸쓸녀 등 파리장과 파리지엔들은

여느 도시의 사람들과 똑같은 굴레 속에서 삶과 고독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경찰의 비호하에 도로를 질주하는 인라인 스케이터와,

경찰의 인도로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

 

파리의 인상적인 예각의 건물들 사이로 복잡하게 만들어진 도로들 사이에서,

사람들은 나날을 만들고 살아간다.

 

흡연 카페의 자유가 있고,

애완 동물들과 삶을 누리는 모습들이 가득 담긴 화첩을 보노라면,

삶은 어느 곳에 서서 버티든, 나름의 특색이 있는 것일 따름이지,

어느 곳이 무조건 좋고, 어느 곳은 절대적으로 나쁘단 생각을 버릴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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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제일 유명한 다리가 퐁 뇌프~ 그리고 알렉상드르 3세 다리일 거다.

퐁 뇌프...는 9호 다리... 란 말이다. 그러니... 5쪽의 '퐁 뇌프 다리'는 잘못된 표현이다.

6쪽의 퐁 뇌자르(예술의 다리) 처럼 하려면 퐁 뇌프(아홉번째 다리) 이렇게 처리해야 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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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2-08-23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빼의 그림은, 마음이 다소 산란할때 보는 편입니다. 나온 상빼의 책은 거의 다 구입한 것 같아요. ㅎㅎ

글샘 2012-08-23 19:00   좋아요 0 | URL
상뻬 그림은 한눈에 스~윽 보는 게 아니라, 숨은그림찾기나 다른그림찾기처럼 몰두해서 구석구석 읽는 재미가 있죠. 상뻬 그림이 주는 위안이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어 저도 상뻬 좋아라 합니다.
 
죽어야 사는 나무 예술과 심리 동화 시리즈 4
무세중 그림, 고희선 글 / 나한기획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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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카 나무...

이름이 벌써 죽음이다. ㅋ~

 

잘난 체하기의 극치인 킹카 나무에게 못생긴 씨앗이 하나 날아 든다.

인연이 생긴 거다.

 

그 씨앗을 떨쳐내고 싶었지만,

킹카 나무, 시름시름 자신을 다 빼앗긴다.

 

빼앗긴 것이 아니라,

다 주고 만 것.

 

산다는 건 그런 거다.

산 것은 죽은 것에 기대어 살고,

큰 것이 볼품없는 것에 기대어 살게 되는 법.

그런 순환의 원리를 바라보는 시간만큼은,

잘아지지 않는 것.

 

예술과 심리 동화란 이름으로 나온 책이다.

자신을 돌아보기 원하는 사람에게 권해줄 법한 책.

 

복효근의 '버팀목에 대하여' 같은 시를 읽고,

삶의 의미를 곱씹어 보고픈 사람이라면 한번쯤 만나도 좋을 책.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틔우고 꽃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복효근, 버팀목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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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씹는 당나귀
사석원 글.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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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옛날 사람들은 워낙 질병에 취약하고 섭생이 부실하여 삶의 길이를 중시했다.

이제 예방접종으로 질병도 많이 극복되었고, 영양이 충분하여 백세 건강 시대가 열리고 있다.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가 '길이'에서 '가치'로 변화해 갈 것이다.

 

당나귀가 지고온 붉은 장미꽃은 당신 것,

묵묵히 힘든 세상을 견뎌 온 착한 사람에게 주는 선물입니다.(표지글)

 

사석원이 그리는 당나귀는 순박함과 착함으로 가득하다.

순진해서 사기 당하기 딱 좋은 캐릭이다.

꾀를 부리거나 재바른 행동으로 얄미움을 받진 않을 스타일.

이런 진중한 사람에게 세상은 제자리걸음만 하는 어리석은 사람 취급을 하기 쉽다.

그런 삶에 사석원은 위로를 던진다.

 

손철주의 발문도 참 좋다.

 

'찰나의 황홀'은 '영원'이 부럽지 않다. 그리하여 기꺼이 눈먼다.

 

이런 제목은 이 책을 충분히 안고 갈 수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손철주의 발문이 여운이 남는다.

그렇지만 과하지 않다.

충분히 내용들을 감싸안으면서 주제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석원의 생각들은 '미래'를 위해 마시멜로를 남겨두지 않는다.

'죽어도 좋아' 하면서 늙은이라고 얕보지 말라~!는 자세로

일초 일초를 산다며,

그리하여 '찰나의 황홀'을 살 수 있다면, '영원'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는 거다.

 

멋진 두 사람이 메기고 받는 노래를 듣고 있는 기분이다.

절창들이 주고받는 노래들은 그림과 글의 바다에 풍덩 젖어든다.

이 책은 생각을 하며 읽는 책이 아니다.

그저 편안한 옷을 입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따가 뭘 하겠다는 마음을 텅~~~ 비운 상태로,

제주 바다의 청량감을 맛보겠다는 자세로,

온 몸을 푹 담그면 되는 책이다.

 

그림을 평가할 것도 없고, 글을 해석할 것도 없다.

그저 푹 빠지는 것만으로도 '찰나'를 행복하게 누릴 수 있다.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마음이 조금씩 후련해 진다. 노래에서 위안을 받았나. 용기가 움튼다.

그래. 그까짓 것,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지.

초봄 꽃봉오리가 터지듯 꿈들이 분출한다.

빛 바래기 시작한 인생이 다시 반짝거린다.

이젠 꿈들을 외면하지 말자.

행복한 후반전을 위하여.(행진)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것은 '몰입'의 찰나다.

황홀의 찰나를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빛 바랜 삶이라고 지치지 말고,

반짝거리고 외면하지 말자는 제안은 독자에게 "파이팅!"을 외쳐주는 듯 하다.

 

사실 누구나 알고 있다.

선착순이 무의미하다는 걸.

빨리 가는 동안엔, 허둥지둥 가는 동안엔 놓치는 게 너무 많다.

발리빨리 해서 얻게 된 남은 시간에 도대체 무얼 하자는 것인가.

그냥 천천히, 누리게 황홀한 세상을 누려보자.

소중한 인생이다. 맘껏 휴식을 갖자.(꽃과 거북이)

 

속도의 시대, 길이의 시대를 너머 삶의 질을 따지는 몰입의 시대가 되었다.

소중한 인생임을 아는 일.

알기만 해선 안된다. 황홀한 세상을 사는 일. 그것이 성공한 삶의 비결이다.

 

그가 위로하는 것은,

자신이기도 하고,

글을 읽는 당신이기도 하다.

이 책의 부제가 <우울한 당신의 마음을 치유하는 마술 같은 그림책>이다.

치유의 마술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와 함께 먼동이 트는 바다를 바라보며,

등허리 가득 짊어진 장미꽃 백 송이를 선사하는 그의 그림과 글을 만날 일이다.

 

다신 널 힘들게 하지 않을 거야.

 

열렬하게 상처받은 너,

열렬하게 사랑할게.

내 마음을 열렬하게 받아줄래? (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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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 팸플릿 시리즈 (자음과모음) 1
손철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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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주의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란 책의 강의판.

 

출판된 책의 장점은, 도판이 제법 크고, 부분적으로 설명이 필요한 경우 상세도를 붙여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손철주의 저 책은 그림뿐만 아니라 글도 작품이다.

짧은 분량 안에서 어쩜 그렇게 매력적인 품새를 갖추었던지,

읽으면서도 샘이 나서 그의 글솜씨를 질투하곤 했던 것이다.

다만, 책의 체재를 춘하추동에 맞추다 보니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마음껏 줄기를 잡아 펼치지는 못하는 거여서,

독자로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에 나온 이 책은 손철주의 강의를 옮긴 책이다.

그러노라니, 손철주가 정말 마음 가득 사랑하는 그림들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한국화의 가장 특징적인 면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을 고르고 골라서 설명한 흔적이 확연하다.

 

손철주의 '옛 그림 보면~'이나, '다, 그림이다'를 읽은 이라면,

특별한 이야기를 더 들을 것은 없다.

그렇지만, 구수한 입담과 함께 그림 이야기를 킥킥대면서 듣기엔 이 책이 제격이다.

 

더운 날, 찻간에서 읽고 싶은 가벼운 책을 찾는다면, 바로 이 책이다.

표지화로 간택된 <서생과 처녀>의 절절함을 느낀다면 책을 결코 가격으로 귀함을 따질 수 없을 게다.

 

제1장에서 산수에서 느끼는 인생의 단맛 쓴맛을 보여준다. 최북과 이인상의 삶의 궤적은 고흐의 그것과 다름없다.

 

제2장은 손철주의 전공분야가 아닐까 싶은 '사랑' 이야기다.

아마 손철주랑 소주 한 잔 기울인다면, 사랑에 대해서 밤을 새도 이어지는 이야기에 빠질 듯 싶다.

 

제3장의 꽃이 속삭이고 동물이 노래하는 장면들, 자연을 그린 속에서 의미를 담아내는 선인들의 삶을 읽을 수 있다.

 

제4장, 선비는 숨어도 속세는 즐겁다에서는 선비들, 스님들 등의 삶에 얽힌 그림들을 재밌게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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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쪽. 삿갓쓴 사람 : 입부...는 한자로 삿갓 笠을 써야 옳다. 책에는 설 립 立이 적혀 있다.

 

127쪽. 소나무에 기댄 노인... 들고 있는 지팡이를 볼까요??? 지팡이 보이세요? 손 샘? 음... 아무래도 콜택시 불러 드려야겠네... 저거 지팡이 아니고 장죽이걸랑요. ㅋ~ 술값이나 계산하고 얼른 가셔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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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6 1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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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6 1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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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6 15: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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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6 15: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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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7 08: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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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7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엘렌 그리모의 특별 수업
엘렌 그리모 지음, 김남주 옮김 / 현실문화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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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편의 우화다.

부제가 '피아니스트 엘렌 그리모가 여행길에서 띄우는 삶의 피아니시모'인데,

피아니시모는 '아주 여리게'라는 뜻이다.

그미의 연주를 보면, 힘이 넘치다 못해 피아노를 두드리듯 연주하는 기교파이며,

청중을 무지 의식하는 <관객파> 연주자임을 생각해 보면, 그의 '피아니시모'는 스스로 반성의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관객 없이 연주의 구조적인 단단함과 예리한 리듬감을 추구하는 '글렌 굴드'를  <우상>으로 섬긴다는 그녀는

<관객파>와 <순수 연주파>의 ,

그러니까 호로비츠와 리흐테르의 양편을 모두 욕심내는 욕심쟁이일 테다.

 

근데 이 욕심쟁이는 피아노 연주에만 몰두하지 않고, 이렇게 글을 쓴다.

근데, 이 글이 단순한 '기행문'에 머무르지 않는다.

꿈을 열고 닫으며 드나드는 품이, 장자깨나 읽은 품이다.

 

<나는 심한 허기를 느끼면서 잠에서 깼다>로 시작하는 소설은, <잠에서 깨니 정오였다>로 마친다.

코엘료의 우화 소설처럼 읽어 달라는 주문으로 보고 넘어가겠다.

 

장자의 나비의 꿈을 염두에 두고 쓴 이야기 구조가 아닐는지... 뭐, 아님 말고~ ㅋ~

훌륭한 사람은 유쾌해야 한다. 그가 훌륭한 사람이라면 농담도 이해할 거다. ㅎㅎㅎ

 

 

피아노 앞에 앉아 내가 원하는 소리, 공격적일 정도로 절실하지만

명징한 동시에 어둡게 남아 있는 그런 긴박하고도 직접적인 소리를 끌어내야 했다.

소리?

당연히 명료해야 하지만 물리적인 공격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람을 휘감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다.(16)

 

이것이 그의 '허기'의 본질이다.

자, 그는 욕심쟁이이므로, 늘 허기에 시달렸을 터이다.

절대음에의 도달이 아니라, 호로비츠와 리흐테르 사이를 욕심낸다면, 이런 허기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필연에 부딪칠 거다.

그가 원하는 소리는

<관객이 충격을 받을 정도로 공격적이며 절실한 소리>여야 하지만,

<관객과는 상관없는 명징한 소리> 그리고 동시에 그저 명징하게 순수하기만 한 게 아니라 깊이가 있는 음감,

즉 <어둡게 남아있는 긴박하고 직접적인 소리>를 얻고자 하는 왕 욕심쟁이임을 방증한다.

그러므로 리흐테르 편에서 <명료>가 필수요건이지만,

지나치게 <명료>에 강박적으로 응대하노라면, 호로비츠 편에선 <강박적 물리적 공격>으로 느낄지도 모르겠단 거다.

우~~~ 이 아가씨, 무지 대왕 욕심쟁이다. ㅋ~

 

욕심쟁이가 잠에서 깨며 <허기>에서 시작했으니,

그 소설이 <고갈>에서 시작하는 건 당연지사... 근데, 사전을 뒤적거려, 고갈의 상대 개념을 처방으로 삼는 것도 유쾌하다. ㅋ

반의어 : 충만, 부유, 풍요, 호화, 번영, 개화...를 뒤적거려 <떠나리라, 걸으리라, 숨쉬리라>는 꿈을 꾼다.

 

피아니시모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열렬한 <명징>과 <공격>의 틈바구니에서

<포르테 f (강하게)>정도가 아니라

<포르티시시시모 ffff>(아주아주아주 강하게)적인 삶을 살아온 그녀로서는

<숨쉬리라>의 빈칸, 또는 '숨표'를 강하게 요구했을지도 모른다.

 

그처럼 사노라면 조급증과 안달함이 심리의 기본 바탕이 되기 쉽다.

그것을 기다림의 미학이 가득한, 피아니시모의 레가토(부드럽게 연결하듯 건반을 바꿔 누름)로 변화시키려면, 여행이 답인 건 옳다.

 

어린 시절 유럽의 단조롭던 음악 체험에서 떠난 그는 미국의 음악에서 '푸가'를 경험했단다.

처음엔 여러 선율이 동시에 웅장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푸가 양식에서 감동을 받던 그도 그 생활에 질려 유럽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적은 것이 이 책이다.

 

그녀가 처음 만난 나이든 교사는 <스승의 가치>를 역설한다.

아마 <초심>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일 게다.

"인간이란 각자의 운명에 의해 읊조려진 음악일 뿐"이란 스승의 말에서,

엘렌의 운명은 피아니스트란 운명을 타고나 거기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는 소박한 깨달음을 전해주는 듯 하다.

 

허기진 그녀에게 교사는 말한다.

 

인간은 배움의 과정 가운데 열심히 헌신하기만 한다면,

인간의 최상의 것을 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현재 있는 것을 무시하지 않는 겸손,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소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오만을 가져야 하죠.(44)

 

<처음처럼>이라도 한잔 마시면서 나눌 이야기 아닐까? ㅋ~

좀 지나치게 우연을 강조하여 우화가 시시해지려고 하지만, 대단한 사람의 이야기임을 염두에 두고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삶의 힘이란,

상대를 향한 생의 약동,

상대의 자유를 완벽하게 존중하면서 아무런 강요 없이 상대를 사랑하고 경탄하는 능력입니다.

삶의 힘, 곧 권력이 아닌 그 힘에 집중할 때

우리는 새처럼,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집니다.(49)

 

힘 power과 권력 force 정도를 가르려는 것일까?

사랑하는 이가 힘을 얻을 수 있다. 권력에 집중하면,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그 힘은 억지로 얻으려해도 안된다.

'겸손'과 '오만'의 미묘한 밀고 당기기의 적절한 배려의 어디쯤에 묘미가 있다.

 

노 교사와의 대화를 마치고,

소나타의 마지막 음이 끝났을 때처럼,

침묵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이 풍미있는 이야기에 대한 진정한 찬사였고,

우리는 미소를 지었고 바깥 풍경을 응시했다... 고 감상을 이야기한다.

 

수녀원의 일꾼 베아트리스에게서 얻는 교훈은 '자연스러움'이다.

 

자연속에서 제가 들을 수 있는 어떤 방대한 음악,

존재 전체를 뒤흔들고 그 울적함에서 놓여날 수 없는 음악을 찾게 되지 않을까요?

제게 음악이, 내밀하고 본질적인 음악이 될 수 있는

어떤 소리, 어떤 외침, 어떤 한탄, 어떤 소음...을 말이죠.(87)

 

작가가 직업적 작가라 해도 이런 정도 교훈을 나무라긴 힘들 터인데,

그미는 전문 피아니스트 아닌가. 뛰어나다고 찬탄할 밖에...

 

그녀에게 '그저 존재한다는 것이야말로 둘도 없는 행복함' 가르쳐 주려고 심부름도 시킨다.

결국 그녀는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은 내 영혼의 가치에 어울리는 존재가 된다는 것>임을 깨닫는다. (246)

 

상당히 동양적 사고를 하는 엘렌은 베아트리스의 힘을 빌려 관계의 인드라망을 이야기하려 한다.

 

하나의 아이리스는 보이지 않는 땅 속의 핏줄로 때로는 수백 미터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아이리스와 연결되어 있답니다.

또한 많은 야생초들 간에는 수액과 힘과 생기를 순환시키는 무수한 도관과 뿌리줄기의 그물망이 있는 셈이죠.(103)

 

옳다. 존재는 홀로가 아니다.

음악은 명징함을 추구하여야 하지만, 독고다이로, 글렌 굴드처럼만 살 순 없는 법.

 

늑대에 대한 부분은 <대인관계, 또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와 연관된다.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서로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인간, 또는 늑대와 말이다.

 

내가 그를 사랑하므로 그도 나를 사랑한다는 대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은 좋지만 실상과 달랐다.

그것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었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든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든

시작되었다고 해서 상호적인 강렬한 친밀감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관계는 줄곧 가꾸어 나가야 한다.

관계의 설정만으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고 내어줄 것도 없다.

귀한 관계일수록 - 늑대와의 관계는 얼마나 경이롭고 귀하며 특별한가 - 깨어지기 쉽고 통제하기 어려운 법(135)

 

그렇다. 사랑은 시작이 반이 아니다.

언제나 귀한 관계일수록, 손님처럼 온 마음을 다해 대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일이다.

 

요가는 동작과 동작 사이가 떨어진 듯 이어져야 한다.

피아노 용어로 '레가토' 기법이다.

삶 역시 그런 것 아닐까?

삶도 분절된 사건들을 하나하나 밟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삶의 이야기들이 떨어진 듯 이어져 나가는 것이다.

엘렌은 그런 삶의 흐름을 피아노의 '레가토'와 연관지어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포르테시시시모'에 가까운 삶으로 점철된 과거를 돌아보며, 피아니시모를 추구하는지도 모른다.

 

뮤직 박스 이야기에서 동양적 사고가 짙게 풍긴다.

 

"당신이 가진 뮤직 박스는 수집가에게 무척 흥미로운 물건입니다. 제가 사고 싶은데요."

"저로서는 이걸 판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사실 이 물건은 제 것이 아닙니다. 잠시 빌린 것, 아니 맡아두고 있을 뿐이죠."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삶이 그렇듯이 말이군요."

 

삶은 우주에서 잠시 기운을 빌린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삶이 영원한 자기 소유인 양 여기고 산다. 겸허해질 노릇이다.

포르테시시시모에서 피아니시모로... 허기를 숨기며 겸손하게...

 

인생은 제각기 나름의 향기를 가진 것들이다.

그 향기를 제대로 파악하고 풍길 줄 알면 남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구름에는 미묘하고 수줍은 빛깔에다 먼 남쪽 하늘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더하고, 거기에 바람의 서명을 남겨두었다.

바람마다 특유의 문장을, 자신의 테시투라(음역)를, 자신의 지형을 갖고 있다는 것.

독특한 형태로 하늘을 장악한다는 것을 아는가?

늑대들과 함께 길게 누워있는 나를 커다란 그림자로 어루만져 주는 구름을 나는 사랑한다.(215)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미묘한 흐름을 읽는 일...

거기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일... 그것 역시 동양적 사고에 가깝다.

그녀가 마지막 찾아간 목적지에서 역시 큰 얻음을 깨닫는다.

 

오늘날 우리는 음악을 사탄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오늘날 음 하나하나, 휴지부 하나하나에 자신의 삶 전체를 투사하지 않고

열정 없이 기계적으로 연주하는 건 비단 음악만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전체를 배신하고 영혼을 배신하고 나아가 신을 배신하는 것.

인간은 자신이 훼손한 아름다움, 조롱했던 사랑에 헌신해야 한다.(225)

 

예술이 음악이 찾아야할 것.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아야할 지점을 생각한다.

삶의 한 순간 한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 못하면, 삶의 나침반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듯,

음 하나하나, 쉼표 하나하나도 열정으로 짚어야 하는 자세를 생각한다.

 

결국 작가 엘렌은 길은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길은 아는 사람에게 묻지 마라.

길은 너처럼 길을 찾는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

갑자기 장애물이 나타나 발이 걸릴 수도 있다. 슬픔이라는 장애물에 비틀거릴 수도...(234)

 

길은 거기 있는 것이 아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다.

장애물이 나타나 비틀거릴 수도 있으나,

길은 찾고 물으며 나아가는 것일 뿐. 완성태의 '존재'가 아닌 것이다.

길은 영원히 '-되기'의 형태로 나타나는 '리좀 Rhizome'의 일종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베아트리스를 빌려 '뿌리줄기'란 표현을 집어넣은 모양이다.

 

늑대 토템의 후예,

영원한 유목민의 자유를 추구하는 엘렌.

그에게 '노마디즘'은 자연스런 철학적 만남이었을 것이고,

그에게 세상은 '천 개의 고원'이더라도, 그 고원은 낯설고 힘들게하는 곳이라기보다,

찾아가 보고 싶고, 거기서 새로운 삶을 만나고 누려 보고 싶어하게 만드는, 일종의 유혹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세상과 하나로 연결되어있는 한뿌리임을 찾는다.

 

세상이라는 웅장한 교향곡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다면 그런 심오한 관점이,

청중이 없는 그런 연주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서로 나누지 않는다면 사랑, 예술, 음악, 자연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성인이 광야에 있다면 그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아무도 읽지 않는다면 완벽한 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온다.

꿈을 깨는 것만으로도 그는 바로 복귀가 가능하다.

삶은 한바탕 꿈에 불과한 것일 뿐.

 

피아노 앞에 앉아 내가 원하는 소리, 공격적일 정도로 절실하지만

명징한 동시에 어둡게 남아 있는 그런 긴박하고도 직접적인 소리를 끌어내야 했다.

소리?

당연히 명료해야 하지만 물리적인 공격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람을 휘감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다.

 

수미상관.

그가 원하는 소리는 '명징'해야 하지만,

'물리적 공격'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람을 압도해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을,

그는 '교향곡' 속의 자신, '청중이 필요한 연주'로 회귀한다.

 

결국 '궁한즉 변하고 변한즉 통한다. 통하면 아프지 않는다. 통하는 것은 오래 간다'는 주역의 도돌이표를 읽는 듯 마무리한다.

 

예술과, 문학과, 삶과 꿈을 비볐는데도,

각각의 맛이 산뜻하게 살아있는 책을 찾는다면, 이 책도 아주 괜찮은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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