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한도 - 천 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 ㅣ 키워드 한국문화 1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평점 :
그림, 하면 보는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문인화는 다만 보고 감상하는 것에 머물 수 없다.
문인화에는 그려진 것보다, 거기 담긴 뜻을 새기는 작업이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인데,
추사의 세한도도 얼핏 보아서는 붓솜씨가 세밀하지 못한 사람의 그림처럼 보일 뿐이지만,
김정희의 삶과 그 그림이 탄생한 배경에 얽힌 이야기들을 읽고 보면 그 그림이 다시 보인다.
유홍준이 인용했던 말처럼 '사랑해서 알게 된 것은, 전과 같지 않은 법'인가.
오주석이 단원을 숭배하여 김홍도를 펴냈듯, 유홍준도 추사를 흠모하여 완당평전 3권을 펼쳤다.
키워드 한국 문화 시리즈의 1권인 '세한도'는 전체적으로 응집력이 약해 보인다.
세한도 세부를 읽어나가기에는 작가의 필력이 독자를 감싸고 이끄는 힘이 다루는 자료의 양에 억눌린 형세다.
좀 욕심을 낸다면, 큐레이터 입장에서 세한도 세부에 대한 설명을 '오주석 선생님'마냥 읊어 주는 일이 선행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었다.
그래서 그림은 이렇고, 글씨는 이렇고, 도서(인장)는 이렇다는 것을 대략적으로 설명한 연후에,
다시 장을 나누어서 추사가 귀양간 상황이 이렇고, 거기서 이상적과 교류한 내용은 이러하며, 나무에 얽힌 이야기와 글귀, 도서에 대한 이야기로 풀려 나갔으면 좀더 타이트하게 글맛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좀 난삽한 맛을 차마 떨구지 못하여, 유홍준의 완당평전을 열어 보니 열 장 남짓한 공간에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의 요약편이 쫄깃하게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이 책을 읽기 전에, 완당평전 1권의 393쪽. 세한도 제작 과정 이하를 섭렵한 다음에 읽는다면 훨씬 체계가 잡힌 독서를 했을 것을... 거꾸로 읽은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143쪽의 오송도와 관련된 나무 그림 부분과, 장무상망(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에 대한 설명 등은 이 책에서 자세히 다루어 도움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논어의 자한 편에 나오는 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 歲寒然後知 松柏之後凋 날씨가 추워지고서야 송백이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유명한 구절에서 '세한도'의 풍조가 나왔다고 한다.
작금의 철새들의 정치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런 선비 정신의 성성한 서릿발같은 결기가 아쉽기 그지없다.
설명을 듣고서야 다시 보게 되는 글귀의 마지막 구절이 비부 悲夫! 슬프구나! 이다.
이 그림의 모든 감정이 이 두 글자에 가득 담긴 듯이 보였다. 비부!
그림과 글씨에서 문자향, 서권기를 강조했던 추사의 정신 세계가 과연 세한도에는 적실하게 그려있다. 문자를 쓴 자리에선 향이 느껴지고, 책을 읽은 선비의 결기가 느껴져야 한다는 그 말은, 날씨가 추워지고서야 송백의 시들지 않음을 깨닫는다는 글귀와 삶이 하나로 어울리는 풍경인 듯 보인다.
우선이 김추사 선생이 그린 세한도에 보인 것은,
우선을 격려하고 겸하여 추사 자신이 스스로를 가다듬어 장차 세상을 떠나 숨어 살아도 비관하지 않는 심회를 보인 것으로 추사옹의 높은 절개를 우러러본다.(양호 장악진)
우선이 청나라 학자 16인의 찬을 받은 글 중 한 구절이다.
세한도가 어찌하여 살아남게 되었는지를 읽고 나면, 다시금 마음이 허허로워진다. 인생 일장춘몽인 것이다. 세한도가 거기 남아 있음도 잠시잠깐의 일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