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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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와 애자, 그리고 소라와 나나,

순자와 나기,

삯이라는 가게.

 

황정은스러운 이름들이다.

문체가 딱 황정은인데, 그의 말투도 딱 그러하던데,

그것이 정겹고 좋다.

 

모두가 공평하게 하나뿐이니까

하나뿐으로 사라질 뿐이다.

그뿐.

너도 나도 결국은 이렇게 하나뿐이라는 부족으로 멸종하고 엎어지는...(207)

 

고독하다.

그렇지만 무겁지도 않고

짓눌리지도 않지만,

묵직한 무게감은 남는다.

 

그럼 길게 망해가자.

망해야 돼?

그렇게 금방 망하지는 않겠다는 얘기야.(222)

 

인생이라는 것에 지지 않겠다는 오기다.

그 오기가 '나'를 가장 강하게 하는 것이 '나나'이고,

작지만 나를 지키려는 힘이 '소라'이다.

세상에 가장 힘든 것이 '나로 사는 것'이므로 그 소년은 '나기'

 

가슴이 미어진다는 것은 이런 말이었구나.

여러개의 매듭이 묶이는 느낌.

가슴이 묶이고 마는 느낌.(225)

 

나나는 숱한 태몽을 꾼다.

어미가 되는 느낌.

그것이 즐겁지만은 않고, 미어지면서 묶이는 느낌을 갖는다.

삶이란 그런 게다.

명치 끝에 매인 뭔가가 늘 가슴을 누르는 것.

 

아름답다고 나는 생각했지.

무섭다고 여겼던 것도 같은 풍경.

몹시 격렬하게 두드리고 있는데도 들리지는 않던 그의 드럼.

아무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듯한 그 기묘한 발광.(211)

 

지난 주에 국카스텐 공연에 갔더랬는데,

드럼이 배우고 싶어졌다.

배운다면 드럼이다.

나이들어 뿡뿡거리며 색소폰 부는 건 별로다.

아름답고 무서운 것. 그것이 삶일까?

 

물방울 세 개를 찍었다.

그런데... 나기가 너무 조그맣다.

왜 이렇게 조그매.

제일 조그매.

맘에 안 든다는 둥 말하며 나기라는 물방울에 물방울을 보태고 보태다가 섞이고 말았다.

세개의 물방울이 뭉쳐 조금 더 큰 한개의 물방울이 되고 만 것이다.

에이, 죽었네.

죽은 게 아니야, 이건.

합체한 거야.(202)

 

그래.

삶의 작은 물방울은 합체할 때도 있다.

죽은 듯 보일 때 합체하게 된다.

그렇게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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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자세로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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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3
김이설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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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그냥 선화에게 미안했다.

 

나면서부터 얼굴의 반쪽에 드리운 흉터의 흔적으로 힘들어 하는데,

어머니의 자살, 악의적인 언니와의 불화 등으로 삶은 재미라곤 없는 것이다.

어머니가 하던 꽃집을 이어받아 하는데,

바깥에서 보면 이쁜 꽃들로 만발한 꽃집 아가씨는 몸을 움직여야 하는 거센 일이다.

 

선화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선화의 삶은 잘못 끼워진 단추마냥 아팠다.

키가 150도 안 되는 남자친구도 서러웠고,

최가희라는 여자와 영흠이라는 남자처럼 제정신 아닌 사람들과 엮이는 것도 서러웠다.

거기다가 아버지의 죽음까지...

 

그의 <환영>에서 오리고깃집 일하던 평범한 사람이 수직으로 추락하는 삶을 그린 반면,

<선화>는 꽃집 아가씨여서, 그나마 수직으로 추락하진 않아서 내심 다행이었다.

 

엄마는 왜 꽃을 좋아해?

꽃은 아무 말을 안 하니까.

나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46)

 

아, 세상의 '아무 말'이나 내뱉은 것들은 저주받으라.

어버이 연합이 그렇고, 엄마 부대가 그렇고,

갑질하는 모든 것들이 그렇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들이 그렇다.

아무 말을 안 하는 꽃보다 못한 것들... 많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72)

 

생활의 달인 코너에 등장한 사람들이 다 그렇다.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되었나요?

아, 그 시대에는 그냥 먹고 사는 일이 곁에 있으면 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들...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 중요했다.

두렵지 않다면, 그들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77)

 

두려울 것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두려워하면 더 두려운 존재가 된다.

 

병준은 운명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나는 학습된 기억이라고 생각했다.

상처를 가진 것들은 상처를 겪은 것들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들에게 배인 특유의 냄새가 보였기 때문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인 상처가 곪고, 물러터진 후에 딱지로 내려앉아,

거친 흉터로 남기까지의 세월이 만든 냄새였던 탓이었다.

그것을 알아내는 감각은 직관적으로 발생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경험으로 훈련되어 발달된 감각이었다.(91)

 

선화가 잘 살면 좋겠다.

학습된 것이든,

운명이든,

세월이 남긴 냄새를 안고 한 세월을 잘 건너가기를...

빌어줄 수밖에 나는 힘이 없었다.

 

이번에 나온 그의 소설집,

<오늘처럼 고요히>의 해설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빈집'을 포함해 총 9편의 소설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을 통해,

김이설은 그 벗어날 길 없는 세계에서 삶은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가,

아니 그런 삶도 과연 지켜나갈 만한 것인가,

 라는 둔중하고도 무서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하여 '오늘처럼 고요히'라는 제목은

수록된 소설들의 전체 이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오지 않으리라는 걸 체득한 인물들이 내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바람이 된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오지 않는다면...

그런 인물들을 만나서 다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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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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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소설집의 제목이 되기도 한 소설에서는,

운도 없게 길거리에서 줘 터지는 아이가 나온다.

경찰서로 가면 늘 진술서를 쓰게 마련.

맞는 사람은 '왜'가 없다.

 

그건 원래 처음부터 이유란 게 없었던 일이었거든.

근데 어떡하든 서류를 작성해야 해.

그러니 어떡해?

그때부터 이유란 게 생길 수밖에...

뭐, 사는 것도 다 똑같지만..;(282)

 

그래. 삶은 원래 그런 거다.

이기호가 삶을 대하는 시선이 그렇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운운하는 김형철의 해설은 웃기는 나발인 거다.

요즘 뉴스에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과연 '정치적으로 올바른'이 세상에 있는가를 묻게 된다.

없다. 그 따위는 없다.

이유란 게 없었던 거다.

그냥 조정해서 짤라버리고 싶은 거다.

 

우연을 대하는 각자의 자세...가 있다.

우연이란, 지배해야 마땅한 어떤 영토 같은 것으로 배워왔다.

그러나 나는 그 논리가 버거워~(268)

 

자신의 작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래서 그는 '나쁜 소설'을 쓴다.

메타 소설이라고나 할까.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소설에 대한 소설이고,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이야기를 대하는 각자의 자세가 있을 뿐이지,

지배적인, 그리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논리따위는 애초에 없는 것이다.

작가의 그런 의도가 마음에 쏙 든다.

 

그래서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만의 세계에도 부끄럽지 않다.

 

나는 걸어가면서

정확히 열한 걸음 간격으로 서있을 뿐인 플라타너스 나무들에게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해주었다.(124)

 

여기 네 친구 방바닥하고 인사 나누렴,

저런 방바닥이 어깨가 없네.

그럼 네가 방바닥에게 어깨동무를 해주고,

자, 치이즈~(104)

 

남자는 자신이 껴안고 있던 국기게양대 굴곡에

눈을 감고 입을 맞추었다.

조심스럽게.

고개까지 사십오 도로 기울이고.(174)

 

나무와, 방바닥과 국기게양대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

뭣이 이렇게 말도 안 되냐고 할 수 없다.

시봉과 진만이처럼 덜떨어진 인간이 어디 있냐고 물을 수도 없다.

그럼,

가난한 사람들의 나라 발전를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짤라야 하겠다는 건 말이 되냐고 되묻고 싶어 지니까.

 

그런 인간들보다는

플라타너스가

방바닥이

국기게양대 굴곡이 더 섹시하고 아름다우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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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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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탔다고, 그래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내가 한강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대의 차가운 손'과 '소년이 온다'를 읽었는데,

그 두 작품의 거리감은 컸다.

 

채식주의자(2004~5)를 읽으면서 '그대의 차가운 손(2002)'에서

그녀는 별로 자라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소년이 온다(2014)'를 보면 좀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도...

 

'소년~'은 한국 소설이고, '채식~'은 그냥 소설이다.

몽고반점을 가진 그녀,

그가 채식주의자가 되고 거식증이 되고,

스스로 나무가 되고 싶어하는 그 세계를 그린 것에 대하여,

나는 독자에게 이해시키지 못하는 작품은 성공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너무 막연하다.

그대는 차가운 손보다는 개연성이 늘어 잘 읽히는 편이었으나,

이 소설이 상을 받았다고 나까지 칭찬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든다.

작가 후기에서 쓴 것처럼,

그저 쓰고 싶은 것들을 썼을 뿐...

 

그의 나무가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눈물들의 이유를 더 찾고, 더 처절하게 뿌리박힌 삶들을 그려내도록 성장하기를 바란다.

더 많은 소년과 형제, 어머니들의 눈물을

나무가 먹고 이야기들려주면 좋겠다.

 

그의 나무가, 그런 의미로 성장한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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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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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뺨을 맞고 나뒹굴어 보았고,

오뚝이처럼 다시 서서 나뒹굴도록 맞아 보았다.

엎드린 채로 각목에 내 허벅지를 유린당했고,

칠판에 기댄 채 종아리에 수십 대를 맞기도 했다.

원인은 모두 사소한 것들이었다.

군대에서도 허벅지 근육 사이를 쥐어박히고, 숱하게 얻어 터졌다.

 

그러면서 내가 습득한 것은 꼰대 의식 같은 것이었나보다.

학생부 교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때렸고,

반항하는 아이들을 더 때리거나 혼냈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매를 안겼다.

이제 생각하니, 사랑의 매는... 없다는 말이 맞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복지원'은 특수한 시설이다.

그렇지만, 그곳은 이 나라 어디에나 있다.

복지원에서는 폭력, 폭언, 인권 유린, 살해까지가 공공연히 일어난다.

이 사회 역시 그렇다.

 

성폭행 피해자가 신고를 하면, 철없다고 비웃는다.

오히려 가해자 가족들이 탄원을 하는 현실이다.

 

죄는 원래 있던 것이 아니다.

죄는 가르치는 것이고,

맞다 보면 죄가 생겨나는 것이다.

 

양반에게 맞고, 식민지에서 맞고,

미군에게 맞고, 포로가 되어 맞던 그 비겁함이

김수영 말대로 이제 '정서'가 되어버린 걸까...

 

사과는 잘 한다.

 

비겁하게도...

 

이기호 소설은 재미있고 코믹한 면을 보자면 성석제를 잇는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성석제의 시선이 결코 갈 수 없는 깊은 곳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기호가 더 큰 소설가 같다.

 

이기호가 더더더 자랐으면 좋겠다.

무럭무럭 자라서 한국 문학의 거대한 뿌리가 되고 밑거름이 되면 좋겠다.

 

아니, 그가 이 세상의 얻어맞고 우는 존재들 이야기를

이렇게 찰지게 더 들려주기를 바란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월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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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3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