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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고요히
김이설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평점 :
오늘만도 두 번 당했다...
이기호의 꽁트...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에서 표제작을 찾아 읽으려 했으나, 없었다.
김이설의 이 책에서도 표제작은 없었다.
조금, 실망이다.
단편집은 한편을 읽을 때 몰입해서 읽어야 하는 성격인데,
표제작이 없다니... 뭔가 꽝,을 뽑은 느낌의 실망감이 남는다.
김애란의 '비행운' 같은 것은 소설집을 포괄할 수 있는 단어여서 좀 덜했는데...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고요히' 살 수 없다.
가장 중요한 누군가(어린 시절의 부모나 성인의 배우자 같은)가 죽어버리거나,
남아 있다 해도, 없느니만 못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늘 '오늘도 역시 난장판'을 벌이는 존재들이다.
'오늘처럼 고요히' 하루를 보내면 얼마나 불안할까...
그들에게 고요한 날들이 오기나 했을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은 단편보다 장편을 찾게 된다.
그의 숨결을 따라 조금이라도 오래 호흡하고 싶어서다.
이 책에서는 중편이라 할 만한 '비밀들'부터 읽었다.
제목들처럼 '폭염'이거나 '한파 특보'같은 날씨는 극한 환경을 조성한다.
딱히 그것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분쇄기가 놓인 창고의 '미끼'는 더 잔인한 상상을 부른다.
극한까지 밀고가는 허구의 이야기는 단편이어서 더 빛난다.
기묘하게 얽히는 삶을 살게 되는 인생들의 이야기 역시 처참하다.
여럿의 어머니가 등장하여 독서를 방해하는 '부고'나,
없던 남편의 등장이 더 혼란을 부추기는 '흉몽'은 모두 <부재>의 이야기들이다.
'비밀들' 역시 <부재>에서 오는 귀농이고,
'폭염'이 여자는 남편이 죽고 트럭을 몰면서 딸의 결혼까지 망가지는 현실을 목도한다.
'복기'는 아무리 되돌려봐도 떠오르지 않고, 결국 이해할 수 없는 아내의 사라짐의 허망함이고,
'빈집'은 '리빙센스'를 흉내내고, 신식 물건들로 채울수록 채워지지 않는 물신의 존재가 자아의 부재를 부추기는 소설이다.
가장 아픈 소설은 '쌍차'와 '반올림'을 떠오르게 하는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사람을 죽이고 받는 벌도 이보다는 낫지 않으까.
설사 남편이 노조원들이 중죄를 지었다고 치자.
그럼 죄지은 사람만 벌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
왜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과 부모들까지 같은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282)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부재를 부추기는 구조적 결함'에 외치는 비명에 가깝다.
전기세 운운하며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라는 사모 때문에 언제나 계단으로 다녔다.
남들은 즐기려고 빨리 올라가고,
나는 일하기 위해 느리게 올랐다.(119)
'흉몽'의 그녀는 모텔 청소원이다.
결국 피묻은 옷과 돈뭉치를 들고온 남편과,
그녀를 덮치는 주인집 남자의 죽음과 그의 아들...
'인생은 아름다워'의 정반대에 놓인 극한의 존재가 내지르는 단말마는, '이건 삶이 아니야, 지독한 흉몽이야'이다.
누구든지 겪기 전에는 세월의 더께가 알려주는 교훈을 얻을 수 없었다.(96)
그렇다.
겪기 전에는,
삶이 지독한 악몽만도 못한 것인지를 모른다.
앞으로 나아질 것도 없었다.
그저 고만고만하게, 지금처럼만 살면 다행이었다.
행복이 뭐 별거나, 싶었다.(92)
행복은 좀 특별한 날들에 붙이는 호칭이다.
일종의 훈장과 같은 것이랄까.
그저 하루하루에 대하여는 '다행'이란 정도가 맞다.
폭염의 그녀에게 '오늘도 무사히'라는 직업이 돌아왔듯이,
그 남편은 '오늘을 무사하지 못하게' 보냈던 것이다.
그저 '다행'스럽게 하루를 살고자 하는 것이 서민의 희망사항인데,
그것마저도 얼마나 쉬이 꺾이고
나름나름의 이유로 급전직하 '지독한 흉몽'의 세상으로 추락하는 것인지...
이 소설의 인물들은 보여주고 있다.
그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었다.(87)
폭염의 여자가 서른 하나에 남편을 잃고,
남편을 못 잊어서도,
딸의 장래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뿐.
그들이 흉몽같은 삶을 살든,
한파나 폭염 속에서 견디는 삶을 살든,
죽느니만 못해 제 자식의 얼굴에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베개를 누르는 어미를
이해까지는 하지 못해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턱도 없는 속어를 중얼거리지나 않게 해주는 소설들이고
인물들이 그득한 소설집이다.
더 그악스러워지는 세상은,
삶들을 어쩌다 보니,
그저,
그렇게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욱 양산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처럼,
고요한 밤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