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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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 송혜교 영화로도 유명한 책인데,

마침 아이들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 일부분을 읽은 참에

전체 소설을 읽었다.

 

아름이의 투병과 방송 이야기를 중심으로 알고 있었는데,

전체를 읽다 보니 

이 소설의 문체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기는 자식이 되고 싶다던 아름이의 말 외에도,

참 아름답다고 생각된 구절들이 많다.

 

시인과 소설가는 스타일이 조금 다른 거 같다.

시인은 자기 내면을 끝없이 들여파는

삽질의 대가 같고

소설가는 남들의 삶을 끝없이 관찰하는

관찰의 대가인 듯...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는 거나

남들의 삶을 들이 파는 거나

비슷해 보이지만,

시인의 공사가 개인적인 반면

소설가의 공사는 정치적이 되기 쉽다.. 정도?

 

김애란은 그러니깐,

남들의 이야기를 쓰는데

개인의 관점이 마구 틈입하는

뭐, 그런 소설인데

언어가 참 예쁘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예요.(143)

 

가을 추, 물결 파, 가을 물결...

'예쁘구나, 너 예쁜 단어였구나...'

그런데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보내는 눈빛을 추파라고 하다니

하고많은 말 중에 왜?

'가을 다음엔 바로 겨울이니까.'

불모와 가사의 계절이 코앞이니까.

가을이야말로 추파가 다급해 지는 시절이라고...

나는 오래전 추라를 추파라 부르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가만 웃었다.

아, 만권의 책을 읽어도,

천수의 삶을 누려도,

인간이 끝끝내 멈출 수 없는 것이 추파겠구나.(196)

 

현미경으로 찍은 눈 결정 모양도 봤어요?

그럼.

나는 그게 참 이상했는데.

뭐가?

뭐하러 그렇게 아름답나.(287)

 

그런 뒤 물뱀처럼 허리를 꺾어 어디론가 재빠르게 달아난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까.(324)

 

이름도 아름다운 열일곱의 여든살 아름이의 죽음을 어떻게 그릴까 했는데,

물뱀처럼 허리를 꺾어 재빠르게 달아나는 형상을 보여준다.

말도 예쁘고,

소설도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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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여울 황금알 시인선 127
이수익 지음 / 황금알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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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종말단계 고고도 미사일방어’라고도 한다. 사드는 포물선으로 날아오다 목표물을 향해 낙하하는 단계(종말단계)의 적 탄도미사일을 고도 40~150km에서 요격하는 미사일 체계다. (daum 백과사전)

 

1년 뒤면 대통령 선거인데,

이렇게도 가만가만

발자국 소리도 내지않고 저런 말도 안 되는 무기를 사들여도 되는 것일까?

그리고, '종말단계'의 요격체계인데,

왜 저걸 한국에 배치한다는 이야기일까?

그냥 팔아치운다고 떠민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민중은 개, 돼지...라고 표현한 무슨 교육부 관료가 잘한 건 하나 없지만,

과연 그 사람을 혼내는 일이 '싸드' 배치보다 중요한 것일까?

싸드는 박유천 화장실 사건만도 못한 일일까?

그런데 왜 대구 의원님들은

대통령이 추진하신 그 소중한 싸드를 거절하는 것일까, 싸가지 없게...

 

가만히 있어라...

소리가 늘 들려왔다.

환청처럼.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만히 있었고,

중고등학교 때도 몽둥이 아래서 가만히...

군대에서도 가만히...

침묵의 굴종이 '정서'가 되었다. 비겁하게도...

 

캄캄한 눈이 진흙바닥에 파묻혀 생사 분간조차 하지 못하는

이 참혹한 시절

어디쯤 봄은 서성대며

잔뜩 풀이 죽어 나서기를 거부하는가

 

그렇지만 오라, 봄이여 전면에 나서서 크게 한 번

피투성이 싸움에서 이기는 자만이 초록의 잎을 피울 것이니,

그대는 못숨 걸고 불온한 지배세력을 향하여 뜨겁게 울부짖음으로써

저항하라 끝까지

투쟁하라 최후를 사수하라

싸움은 지는 법도 예견하나니, 설령 봄이여 가혹하게

처참하게 패배할지라도 다시 한 번 늠름하게 설욕의

고통을 견뎌내자는 것이므로

담담히 이를 받아들이도록 하자(입춘 부근, 부분)

 

이 시는 어떤 사건 이후에 쓴 시일까.

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이런 시들은 유신 시대

암흑 속에서도 쓰여졌으나,

아직도 유효한 것을 보면,

세상이 참 슬프다.

여울이 흐르기나 하는 걸까...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나의 열망

나의 자존

그런 긍지

시간의 밥풀되어 헛되게 풀어지고 흩어지는 것을

멍청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때의 목마름,

그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때때로 미친 듯이

세월의 문턱에다 대고 불 지르고 싶다.

위험한 방화범이 되고 싶다. 반역의 칼날이

되고 싶다. 불화의 언덕 위에

나를 세워다오.(둘레, 부분)

 

세월과 불화하고 싶은 마음...

자존과 긍지가 흩어진 자의 비탄...

이런 것이 두드러진 시집은 아닌데,

굳이 내 시선은 그런 것들을 찾아 읽는다.

 

어쩌면 옛날 같은, 이 세상 끝 이야기

 

사람이 하나 없어도 좋을, 짐승이 하나 없어도 좋을, 이런 날들 속에

돌멩이처럼 굳건하게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돌멩이처럼, 부분)

 

나 하나만 스러지는 문제가 아니라,

멸망 이후를 상상하기도 한다.

위화의 '제7일'을 읽으면서,

인간이란 존재가 가진 부조리를 마음으로 줍는다.

어쩔 수 없음 앞에서,

존재는 떨다가, 상상하는 힘마저 놓치지는 않아야겠다고 마음 먹는 것이다.

 

책들이 사라졌다

사물과 사물 간의 거리가 아득히 멀어졌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고독을 씹는 자의 한숨 소리 거칠다

눈에 보이는 것들 시계를 가린채

하염없이 둥둥, 떠내려간다

내가 버린 책들 하얗게 거리를 헤매며 떠돌아 다니는

불우한 지금, 알 수 없는 벽들 사이에서

소름 끼치게 그리워지는

그들 이름은

누구?(사라지는 책들, 전문)

 

책은

사물과 사물 간을 연결하는

사람과 사람 간을 연결하는 그리움이라는 실로 짠 거미줄 같은 것이었나보다.

이제

알 수 없는 별들 사이에서

그리움으로 떠올리는 그들...

 

책을 읽지 않고

이미지를 소화하는 시대,

볼 것도 없는 페이스 북을 넘기면서 시간을 보내는 세월,

세월은 넘어지고 빠지고 구조되지 못했으나,

비명도 없이 잠긴 세월 위에

더께가 앉듯 비열하게 흐르는 세월들...

 

이수익의 시집에서

서늘한 <결빙의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던 것인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의 혹한을 막아주는 등허리를 더듬고 싶었는데,

시리게 아픈 시대의 비명을 읽게 된다.

 

아픈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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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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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동'의 그들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자동차에서는 인간적인 기록과 표면적 기록 사이에서 기형적 삶이 파생된다.

 

결국 인간은 '본질'이나 '형식'으로 존재하지 않고,

'당신의 이야기'라는 실존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세상은 얼마나 사람을 좌익으로, 보수당으로, 민주인사로, 고위 관료로 판단하는지...

 

늘 어리숙한 인물들을 통해 세상을 비틀어 보기 좋아하는 이기호의 목소리는

'화라지송침'의 기종 씨로 형상화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참아내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지금 참아내고 있는 그 무엇으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가 어떤 괴물 같은 짓을 하더라도,

그것을 누가 참아내고 있는가,

누가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는가,

그것이 우리의 현재를 말해주는, 숨겨진, 또 하나의 눈금일 것이다.(322)

 

화라지는 '옆으로 길게 뻗어나간 땔나무'이고 '송침'은 땔감으로 쓰기 위해 말려둔 솔가지이고,

화라지 + 송침 = 땔감이라는 뜻이다.

우리 존재가 땔감처럼 1회용이라는 이야기일까.

 

비로소 가려져 있던 어떤 부분이 내 안에서 훅,

두루마리 휴지의 마지막 몇 마디처럼 풀려버렸기 때문이었다.(315)

 

삶의 비의는 훅, 풀리기 힘들다.

그렇지만, 또 어떤 고리인가가 그렇게 후루룩 풀릴 수도 있는 것이다. 좋은 비유다.

 

김 박사님... 이 개새끼야.

정말 네 이야기를 하라고!

남의 이야기를 하지 말고.

네 이야기.

어디에 배치해도 변하지 않는 네 이야기 말이야.

나에겐 지금 그게 필요하단 말이야.

김 박사, 이 개새끼야.(130)

 

상담자인 김 박사는 누구일까?

독자인 나는 작가인 이기호를 그 자리에 넣고 싶어지기도 하고,

아이들을 상담하는 나를 그 자리에 넣어 보기도 한다.

개새끼이긴 마찬가지다.

 

자기 이야기를 하기는 쉽지 않다.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결국 남의 이야기일 따름이라는 자괴감.

그 이야기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부끄러움이 묻어난다.

 

뒤로 가는 자동차의 패킹을 하나 빼버린 삼촌.

그를 이해하는 인문학적 정비소 직원은...

 

- 아무래도 엔진에 무리가 덜 가지 않겠수?

원래 잡다한 기능들 때문에 제 기능들이 망가지는 법이라우.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그렇지.(81)

 

80년대의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운동의 변두리에서 차계부를 적던 삼촌을 이해하기 힘든 지점에서,

엔진에 무리를 덜 가게 한다는 따스한 한 마디는,

당신이 누구이든,

누구 편이든,

이기호의 이야기들을 더 읽고싶어지게 만드는 힘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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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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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참 더럽다.

검사가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한다는 세상이니,

권력에 미치지 못한 사람들의 삶은 어떠하랴.

 

그저 다 떠나버리고 싶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으냐.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합니다.'

이런 바틀비의 강한 의지 표명이 부러울 지경이다.

 

단적으로 국가와 세월호의 파장을 보면 그렇다.

아니, 청와대에서 전화를 넣으면 무조건 언론 탄압인 것이지,

별 병신같은 걸 말이라고 하고 있나.

 

김금희의 소설집에서 '반월'을 만난다.

 

 

 

반월은 안산시의 옛이름이다.

반월이라는 제목을 보고,

섬으로 가는 이야기와,

죽음에 관한 농담들과,

딱히 안산에 대한 이야기들이기도 하면서 아닌 이야기를 읽는다.

더 마음이 아프다.

 

표제작인 '너무 한낮의 연애'는 부조리극 같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끝없이 기다리는 고도처럼 오지 않는 세상은,

사람을 좌천시키고 밀쳐버리는 현실 앞에서 다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너무 한낮'은 '연애'와 어울리지 않는 시간대이다.

연애는 좀 으스름한 시각부터 가슴 콩닥거리는 일이고,

그것도 '연애는 돈지랄'이라는 명언이 있을 정도로 비용이 드는 일인데,

두 사람은 너무 한낮부터 맥도날드에서 만난다.

그걸 사랑이라 불러야 좋을지,

읽어보면 쓰라리다.

양희의 형편과 삶의 조건이 쓰라리고,

그래서 'ㅋㅋㅋ 웃지 않는 나무'를 보면서 위안을 받는...

그러나 또 현실의 '너무 한낮'은 주인공을 종로 맥도날드로 회귀하게 하는 비극적 시간이다.

 

 

그의 '무리 중 고를 균, 중균씨'는 바틀비같다.

그러나 바틀비는 그가 아무리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한다고 그래도,

화자가 마음써주지 않는가 말이다.

 

김금희 소설을 읽으면서

단편 소설은 이북으로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험한 세상을 다 본 사람들...

그들에게 '여기는 볼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비웃음 날 일이란 것을 그는 외친다.

 

그래. 나는 잊을 수 없다.

 

너무, 한낮에 일어난, 모든 슬픈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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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품격 - 조선의 문장가에게 배우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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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는 명문장가들이 많았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이는 박지원과 이옥인데,

허균, 이덕무도 좋다.

이 책에는 그런 이들의 글들이 그윽한 향을 풍긴다.

 

수능특강에서 심생전을 가르치고 있는데,

마침 전문을 읽게 되어 좋았다.

이옥의 정서가 잘 묻어났다.

 

만약 저 여러 군자가 이 시대를 직접 본다면 어떤 생각을 품을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통곡할 겨를도 없이,

모두들 팽함이나 굴원이 그랬듯 바위를 안고 물에 몸을 던지려 하지나 않을까.(19)

 

허균의 '통곡헌기'다.

허균의 시대나, 지금이나, 통곡의 시대임은 변하지 않았다.

 

이 집은 이 사람이 사는 이곳이다.

이곳은 바로 이 나라 이 고을 이 마을이고,

이 사람은 나이 젊고 식견이 높으며 고문을 좋아하는 기이한 선비다.

만약 그를 찾으려거든 마땅히 이 글 속으로 들어와야 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쇠신이 뚫어지도록 대지를 두루 돌아다녀도

끝내 찾지 못하리라.(53)

 

이용휴의 '차거기'이다.

사람을 알아보는 일, 참 어렵다.

 

이 한 몸 다 마치도록

나 자신과 더불어 살겠노라.(64)

 

역시 이용휴다. 나 자신으로 돌아가자는 '환아잠'이다.

 

공부하지 않은 날은

아직 오지 않은 날과 한가지로 공일이다.

그대는 모름지기 눈앞에 환하게 빛나는 이 하루를

공일로 만들지 말고 당일로 만들어라.(73)

 

공일과 당일...

공일도 좋다.

 

말똥구리는 스스로의 말똥을 아낄 뿐,

여룡이 머금은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룡도 구슬이 있다고 하여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99)

 

박지원이다.

낭환집의 '낭환'이 螂丸... 말똥구리란 뜻이다.

 

고요한 고전을 읽으면 마음이 잠잠해 진다.

허균의 분노에 가득찬 글조차도 마음을 잠기게 한다.

품격은 역시
자신을 돌아보는 잠잠한 곳에서도 오고

분노할 줄 아는 곳에 분노하는 데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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