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핫~한 작가들보다 깊이있는 작가를 읽었다.

젊은 작가들의 이야기에서 아직 익지 않은 겉저리같은 맛을 보았다면,

권여선의 작품에서는 묵은지같은 깊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모'의 삶에서 느끼는 비애나,

'봄밤'에서 읽게 되는 삶과 죽음의 의미, 존재의 이유 같은 것들을,

아직 어린 작가들은 직접 말하는데,

권여선은 '인물'로 그려서 보여준다.

단편이 만들어내기 힘든 경지인데,

그들은 술을 마시면서 한 세상을 살아 간다.

 

'카메라'가 갖는 사람의 의미에 드러난 것과 감춰진 것들,

'층'이 보여주는 인격의 다양한 층위, 건장한 몸과 맛깔난 음식과 감춰진 성격...

 

작가가 '봄밤'이란 제목을 그리도 사랑했다 했지만,

역시 편집자들의 '주정뱅이'가 판매에는 일조한 모양이다.

 

인생은 '봄밤'의 아스라한 으스름달과 같이

우수 속에 흐르는 감미로운 엘레지에
꺽꺽거리며 우는 소리처럼 가슴답답하게 하는 건지도 모르는데,

'그들'의 사랑처럼, 갈곳 모르고 표류하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책팔기엔 '봄밤'보다 '주정뱅이'가 더 쎄니깐.

 

우리를 술푸게 하는 것들...은,

안톤 슈낙의 <초추의 양광>이기도 한 것이니깐.

 

성가시고 귀찮은 것이 삶이고, 인간이다.

부박한 인간 사이에서 남의 손바닥에 상처를 남긴 여자가,

자신의 손바닥에 상처를 남긴다.

그저, 삶은 그런 것이다.

죽이지 않은 게 어디냐면서 위로받는 것.

 

나도 애초에, 이렇게 생겨먹지는, 않았겠지.

불가촉천민처럼, 아무에게도, 가닿지 못하게. 내 탓도 아니고, 세상 탓도 아니다.

그래도 내가, 성가시고 귀찮다고, 누굴 죽이지 않은 게, 어디냐?

그냥 좀, 지진 거야. 손바닥이라, 금세 아물었지.

그게 나를, 살게 한 거고.” (이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의 맛 한겨레 동시나무 1
이정록 시, 오윤화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정록 시인의 어머니의 말투를 닮은 사유를 써내려서

멋진 시 세계를 품은 것도 멋지지만,

이렇게 그 시들을 동시로 풀어내는 것도 멋진 일이다.

 

'지구의 맛'을 핥아보고 알려주겠다는 주인공은 '달팽이'이다.

결국 지구를 핥는 일은 사는 일이고,

살아본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란 말이겠다.

 

생각이 많아 자동차 밑으로 들어간 고양이가

내 복잡한 생각을 조금씩 떼어 간다.(골목, 부분)

 

이 시집에서 이 구절이 젤 좋다.

생각이 많아 자동차 밑으로 들어간 고양이.

시를 쓰는 이는 늘상 생각을 해야하겠지만,

누구나 생각은 하므로,

생각은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외부의 감각되는 세상에 대하여 자신의 느낌을 갖게되는 것이 모두 생각이므로,

생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에 부지런한 사람이렷다.

 

골목은

내 생각을 생각하려고

가로등을 환하게 밝힌다.

 

생각을 생각하는 일.

필요하다.

지나친 생각은 해가 되지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반은 한 명만 빼고 다 바보야."

천천히 전교 일등에게 눈길이 쏠린다.

담임 샘은 자기라고 가슴을 토닥인다.

 

"우리 반은 정말 바보가 한 명 있다니까."

아이들이 빙긋이 선생님을 바라본다.

담임 샘을 뚫어지게 쳐다본다.(바보, 부분)

 

서름서름하지 않아 좋다.

담임 샘과 이런 나눔을 할 수 있다면, 좋은 교실이다.

적어도 억압은 없는 교실.

 

딸기 상자를 열면

위층엔 굵고 실한 넘이 있지만,

아래층엔 시답잖은 것이 들어있어 화날 법도 하건만,

시인의 눈은 그들을 안쓰러이 바라본다.

 

어린 막내가

형과 누나를 업고

먼 길 왔구나.

 

너무 작은

 1층 딸기들

 

문드러지고 멍든

코흘리개 꼬맹이들(딸기 상자, 부분)

 

상인의 부도덕한 상술을

비판적으로 꼬인 눈으로 보지 않고,

그 꼬임을 다시 반대쪽으로 꼬아서,

풀리게 하는 마음도 읽힌다.

 

옥수수 수염의 구수한 맛이 그득한 동시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 문학에서 찾은 사랑해야 하는 이유 아우름 2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학의 영원한 주제는 '사랑'이다.

짝짓기와 비슷하지만,

보통 '사랑'이라고 하면, 낭만주의 시대 이후의 '로망'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장영희도 '폭풍의 언덕'을 최고의 사랑으로 꼽는데,

논어에 나온 '애지욕기생'과는 전혀 류가 다른 급수다.

논어의 사랑이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라면,

남녀간의 불같은 정열의 사랑은 죽음의 경지와 넘나드는 불꽃이다.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나,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에 있어.

바로 나 자신으로 내 마음 속에 있는 거야.(101)

이 세상에 그녀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뭐가 있길래.

그녀 생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단 말이야.

바로 지금 땅바닥을 내려다보기만 해도 깔려있는 돌마다 그녀 모습이 떠올라.

온세상이 그녀가 존재했고 내가 그녀를 잃었다는 끔찍한 기억을 모아놓은 진열장이란 말야.(102)

 

시인들의 연애편지 속에 담긴 열정도 낭만주의 시대의 '로망스'를 넘지 않는다.

 

사랑이란 느릿느릿 들어와 어느덧 마음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앉아

눈치없이 아무때나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힘들고 거추장스러우니 제발 나가달라고 부탁해도

바보같이 못 알아듣고 꿈쩍도 않습니다.(15)

 

사랑이란 눈치없는 녀석에 대해 참 이쁘게 다뤄 주었다.

 

피츠제럴드의 개츠비에게 '위대한'이란 수식어를 갖다 붙인 이유를 밝힙니다.

그것은 아무리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아무리 미미해도

삶속의 희망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

사랑에 실패해도 다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

그리고 삶의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능력이라고...(120)

 

아버지의 사랑도 심금을 둥~ 울린다.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자녀의
성적이 좋지 않을때 겉으로는
'괜찮아,괜찮아'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지만 속은
잘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이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 시킬때
속으론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딸이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을때
어머니는 열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루소의 '고백록',

괴테의 '시와 진실' 등과 함께 안데르센의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역경에 대한 이야기도 멋지다.

 

내 인생은 멋진 이야기다.

그 어떤 착한 요정이 나를 지켜주고 안내했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좋은 삶을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133)

 

가엾은 어머니를 위해 '성냥팔이 소녀'를 썼던 그가 자신의 인생에 남긴 말은,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남은 날들에 대하여,

장영희 선생이 주는 화두가 아닐까?

네 인생을 멋진 이야기로 만드는 건 바로 '당신'이라고...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8-17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의 법칙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은 점이 아니다.
그 점은 밀고 나아가지노라면 선을 그린다.
그 흔적,궤적이 선이다.

이책의 선들은 곧지않다.
구부러지고 얽힌 선들에게도 무슨 법칙이 있을까보냐 싶다가도,
간혹 다스한 손길이나 숨결과 마주하게도 된다.

많이 불편한 소설이다.
다단계도, 사채업자도...

댓글(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8-17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침묵의 미래 - 2013년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침묵의 미래'는 주제가 독특하다.

소수 언어 박물관이라는 곳이 있고,

소수 언어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쓰고 있다.

재미는 없지만 소설이 생각할 거리는 많다.

 

나는 이 세계에서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

그 말에서 빠져나온 숨결들과 기운들로 이뤄진 영이다.(13)

 

이런 서술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가 찾아 나서는 것이 어떤 순간일지는 상상할 수 있을 듯 싶으나,

언어라는 것 자체가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이니 꼭 그리 생각해야 싶나 하게도 된다.

 

중앙에서는 멸종 위기에 처한 세계 곳곳의 언어를 보호하고,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이 단지를 세웠다.

결과는 그 반대였다.

그리고 그건 중앙에서 내심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

멸시하기 위해 치켜세웠고, 죽여버리기 위해 기념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모두 기획된 거였는지 몰랐다.(20)

 

인간이란 하찮은 종족이 하는 일들이 늘상 그러하다.

이 구절은 요즘 시끄러운, 아니 시끄러워야 하지만

이화여대 작은 시위보다 조용한 '위안부 협상'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할머니들이 모두 나비가 되어 날아가 버리기를 진심으로 '중앙'에서는 바랄지도 모른다.

 

내 첫 이름은 '오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나를 점점 '이해'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내 이름이었거나 내 이름의 일부였을지 모르는 그 단어를 좋아했다.

나는 복잡한 문법 안에 담긴 단순한 사랑,

단수이자 복수,

시원이자 결말,

거의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노래였다.(33)

 

언어는 참 웃긴다.

호남을 철저히 짓밟은 당의 대표로 뽑힌 사람더러 '호남의 인물'이라 부르고,

전기세와 고통의 누진적 고통을 '여왕님'께서 한마디로 해결한 듯 보이게 만드는 게 언어의 힘이다.

결국 '오해'로 점철되는...

 

김이설의 '흉몽'은 '라디오 독서실'이라는 팟캐스트 프로그램에서 들은 작품이었다.

그야말로 흉몽이었으면 좋겠을 상황이

그만 현실일 때,

다들 제 정신이 아니다.

누군가 죽고 누군가 미치지만,

오히려 그것이 정상이다.

 

모두 병들었지만 누구도 아파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미친 세상이다.

 

세상을 말로 이해하는 일은 '오해'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해'를 찾아 나서는 일에 '말'을 뺄 수는 없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