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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어찌하다 보니 올해는 한국 소설을 많이 읽게 되었다.
출퇴근 시간에 팟캐스트로 '라디오 독서실'을 들은 덕도 있다.
아마도... 그 중의 최고작이 아닌가 싶다.
표지가 내용을 잘 함축한 듯한 느낌이다.
여느 에스 라인 모델에 비하면
좀 처져내린 어깨에 다듬지 않은 머리를 한 여자 아이의 측후방 뒷모습.
조금 서럽고
툭 건드리면 눈물이 주르르 흐를 듯 싶다.
인간이 그 알량한 권력 때문에 무고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죽일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은 차마 상상조차 못했던 여자애였다.(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106)
아무도 우리를 죽일 수 없어.(언니, 121)
사형은 대법원 판결 열여덟 시간 만에 집행되었다.
세상은 사람에 대한 사람의 사랑을,
제 목숨을 몇 번이고 팔아서라도 사람을 살려내고 싶다는 그 간절한 마음을 도리어 비웃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그러니 너희 힘없는 인간들은 언제나 조심하고 사는 것이 좋을 거라고.(108)
저희 고향에서는요... 군인들이 전쟁 막바지에 동네 여자들과 아이들을 모두 부역자로 몰아 총살했어요.
학교 운동장에 모이라고 한 다음에 줄을 세워 다 죽여버렸대요.(111)
구역질이 나는 역사다.
이 사법살인의 결과를 그 딸년이 부정했다가 곤란을 겪기도 했다.
국가는 사죄해야 한다.
일본에게 뭐라고 하기 전에, 자신들의 과오부터 사죄해야 한다.
그것은 '신짜오'의 베트남에도 마찬가지다.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쇼코의 미소, 35)
새벽에 눈을 뜨면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단단한 땅도 결국 흘러가는 맨틀 위에 불완전하게 떠 있는 판자같은 것이니까.
그런 불확실함에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주제에,
그런 사람인 주제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쇼코, 57)
젊음이라는 것은 그저 황홀한 것만은 아니다.
아직 불안한 삶이 막막하게 펼쳐진 광야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꿈, 이나 미래, 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계.
프로작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의 세계뿐 아니라, 좀 돌아보며 살아야 한다.
네가 다시는 그렇게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네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먼 곳에서 온 노래, 205)
학번이 벼슬입니까?
민주주의 사랑한다고 하셨어요?
이 작은 집단에서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 위에 서야 후련한 사람이 무슨 민주주의운운이에요.
인간이 평등하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잖아요.(먼 노래 199)
5월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지
대학에 와서야 토론할 수 있게 된 스물, 스물 하나의 아이들이 그게 너무 아프고 괴로워 노래를 불렀어.
나는 우리 노래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다고 생각해.
나만은 어둠을 따라 살지 말자는 다짐.(201)
괴물과 싸우는 자 괴물이 되기 십상이다.
이 땅의 민주투사들은 이미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서로 권위를 내세우고,
남녀의 알량한 경험으로 서로 싸운다.
그 경험들이 '다짐'이 되지 못하는 한,
추억만으로 학번이라는 기득권의 벼슬을 휘두르는 꼰대에 불과한 자들도 많다.
겸손하게 다짐해야 한다.
우리 노래들이 담아내려 했던, 그 다짐들을 잊지 않으려 해야한다.
84년 생인 작가가, 이런 세계를 그려낸다는 일이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쇼코, 24)
내게 이 소설 읽기는, 연애같기도 했고,
또한 이 소설들을 통해 우정을 나누거나 감격을 느끼기도 했다.
오래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미카엘라, 239)
중국으로 멀리멀리 선생님을 떠난
지민이 부디부디
잘 지내고 있기를 빈다.
간절히 빈다.
이제 첫 소설집이지만,
앞으로 그의 건투를 빌면서,
태그에 이름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