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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평점 :
290. 길가다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이라지요. 밤새우며 글자락을 스치면 얼마나 큰 인연일까요.
이외수의 글은 기발한 따스함이 있다.
수수하면서도 속되지 않고, 기품이 없어보이지만 탈속의 멋이 있다.
블로그질 하는 이의 정서를 저렇게 잡아내기도 쉽지 않다.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
그럼, 내가 흘러야, 시간도 흐른다? 내가 흐른다는 것은?
변화하는 것일까? 유연하게 살자는 것일까? 세상 흐름을 느끼며 살자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맞춰 흐르자는 건지...
뭐, 이런 것들이 자유자재로 두루뭉술 뭉쳐진 것을 '흐름'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이외수는 한국에서 책으로 먹고 사는 3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나머지는 공과 황.
써 놓고 보니 좀 웃긴다.
하나는 바깐 外
하나는 빌 空
하나는 거칠 荒 ... 농담이다.
이외수의 짧은 생각들을 적은 이 책을 시집이라 하기엔 좀 뭣하고, 단문집으로 부르련다.
괜찮은 글들이 많다. 좀 적어 둬야겠다.
7. 친구가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꿈을 꾸고 울다가 일어났는데 친구가 머리맡에서 내가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햐아, 이 개쉐키, 내뱉는 욕 한마디의 정겨움이여.
15. 대한민국 정부가 진실로 녹색성장을 꿈꾼다면 먼저 갈색으로 변해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부터 녹색으로 바꾸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자연은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녹색으로 성장한다.
74. 바로 앞에서 마주보고 있어도 천 리나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바로 앞에서 마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대가 생각하는 사람과 그대 사이의 간격은 어느 정도인가요.
82. 지구에도, 우주에도 봄여름가을겨울이 있다. 물론 사람들 인생에도.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인생 전체가 봄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불행해진다.
124. 지갑이 빈곤해서 친구와 술 한 잔, 밥 한 끼를 같이 먹지 못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친구와 술 한 잔, 밥 한 끼를 같이 먹지 못하느냐. 결론은 하나. 지갑은 두둑해졌는데 감성이 빈곤해졌기 때문이다.
140. 그리움이 얼마나 간절하면 저토록 아름다운 빛깔로 불타겠느냐. 가을 단풍.
145. 고수는 머릿속이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하수는 머릿속이 만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175. 이것 봐. 방금 니가 씨팔이라고 말하는 순간, 별 하나가 깨져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니까.
191. 낱말도 씨앗이다. 하지만 씨앗을 심는다고 다 싹이 트는 것은 아니다. 싹이 튼다고 하더라도 다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꽃이 핀다고 하더라도 다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다. 심었는가. 이제 살과 뼈로 거름을 삼고 피와 눈물로 뿌리를 적실 각오를 하라.
242. 가을 찻잔에 달빛 한 조각을 녹여서 마셨습니다. 당신이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244. 사람들은 대개 프라이팬 위의 파전이나 빈대떡은 곧잘 뒤집으면서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은 좀처럼 뒤집으려들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인생은 한쪽 면이 타버렸거나 한쪽 면이 익지 않아서 맛대가리가 없다.
287. 매미가 날개를 가지기 위해 칠 년 동안을 땅 속에서 굼벵이로 살았다는 사실엔 경탄하면서, 대부분 자신이 칠 년을 바쳐 날개를 가질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평생토록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애벌레 형국의 인생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311. 어리석은 자의 인생엔 반전이 있어도, 게으른 자의 인생엔 반전이 없다.
아~ 마지막 이 말은 정말 공감 백 배다.
내가 아이들에게 늘 들려주는 말이다. 게으른 자의 인생엔 반전이 없다.
어쩜,
이런 말을 이렇게 흘려 놓을 수 있을까... 하고 감탄하다가도,
그가 흘린 말이 아니라,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걸 못 봐서 그렇게 쉬워 보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어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