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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0살,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 100년간의 삶을 통해 얻은 지혜의 메시지
엠마뉘엘 수녀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100세 생신을 좀 앞두고 돌아가신 엠마뉘엘 수녀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인터뷰한 내용이 책으로 나온 것이다.
수녀님은 이집트의 빈민가에서 아이들과 함께 평생을 일하며 늙으신 분이다.
이런 이에게 종교란... 글쎄, 이 책에 담긴 그이의 종교란 신념이고 믿음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라면 그 종교의 이러저러한 교리들은 충분히 수정 가능한 것이다.
내가 온갖 종교의 샐러드볼인 나라에서 살면서 아무 종교를 가지지 않고 사는 것도,
이 나라의 종교란 것들은 이 짧은 역사를 가진 나라의 투박한 삶 속에서 모지라진 형식들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것들이어서 종교가 오히려 마음을 팍팍하게 만들 것 같단 우려를 앞세운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낙태나 피임을 반대한다.
하느님께서 이 땅에 보내는 아이들을 인위적으로 막는 일은 죄악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녀님은 똑같은 일이라도, 어린 소녀들이 결혼을 하고 숱한 시련에 시달리는 현실을 무시하고 '낙태 반대'나 '순결'같은 배부른 소리를 지껄이는 대신, 교황청에 편지를 넣는다.
교황청에서 물론, 특별한 경우에는 낙태를 해도 된다거나 피임이 가능하다는 응답을 보내진 않았지만, 명확하게 수녀님에게 반대의견을 피력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수녀님의 생각이 옳을 것임을 보여준 것이라고 한다.
"네가 아픈 곳의 고통으로 내가 아프다"는 말은 다모란 드라마에서도 들었던 말 같다.
인류에 대한 사랑... 같은 것을 나는 모르지만, 자식의 아픔을 마음으로 느끼는 부모와 같이, 가난한 아이들의 아픔 곁에서 평생을 함께한 수녀님의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가볍지 않다.
행복...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저는 지금 행복하고, 행복한 사람들을 만나 보았지요. 행복은 존재합니다.(26)
그이는 '타인이 천국이다'란 책을 썼단다.
지옥이란 자기 자신이며, 자신 속에 갇히는 것이고,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날 천국이 열리고 시작된다고 확신하시는 그이. 그이의 행복을 보며, 나는 배운다.
그이는 약자들의 편에 서다 보니, 자연스레 여성들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아이들을 기르는 여성들은 사회에서 취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여성들을 해방시켜야하므로, 왜냐면 자유란 존엄이기 때문에...(152)
학교에서 여성들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데... 나는 그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남성다운 편이라 생각할 때면, 슬퍼지고도 한다.
남성보다도 더 남성스런 여성들이 높은 자리에 몇 올라갔다고 해서 세상이 여성에 관대해진 곳이라 일컫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신뢰를 갖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139)
빈민가의 아이들에게 세상을 열어주는 사람의 역할을 하셨던 수녀님.
지금의 나는 어느 정도 먹고 사는 나라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자리에 섰다.
아이들에게 신뢰를 갖게 하기는 경제적 여유와 반비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다.
수녀님의 잔잔한 목소리를 듣는 일은,
세상의 팍팍한 소리들을 잠재우는 일이 된다.
밖에서 들리는 더러운 욕심들로 추잡해진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음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또 가끔은 더러운 욕심들과 맞서야 할 때 용감해야 함도 그이는 가르치신다.
100살 가까이 옳게 사신 이의 이야기. 읽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