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컴퓨터를 쓰고 있는 동안 다이어리를 들춰보았다. 올해 본 영화는 70편으로 2편 누락된 것을 발견했다. 책들도 어쩌면 누락된 게 있을 수 있지만, 다 찾아보기엔 너무 귀찮다. -_-;;;;

 

올해 읽은 만화책은 100권, 동화책은 153권, 소설은 33권, 그밖의 기타 책은 68권으로 도합 354권이다.

 

강풀의 어게인이웃 사람, 당신의 모든 순간은 올 한 해 나의 눈물을 쏙 뺐다. 그는 종합 예술가다. 항상 완결되고 나서 책이 한꺼번에 출간되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조명 가게'만은 1권만 먼저 출간되었다. 궁금하지만 완결되면 보리라.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의 발견은 올해의 쾌거였다. 2차원 만화의 고차원 승격! 흑백 그림으로 아주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해낼 수 있다. 철학적이고도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주호민의 '신과 함께'는 중독이었다. 매주 연재되는 날에 클릭클릭으로 바빴다. 다만 저승 편의 밀도에 비해 이승 편은 많이 약했다. 저승 편은 소장했지만, 이승 편은 연재분으로 보고 나서 굳이 소장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신화' 편이 기막히게 좋다면 세트를 맞추기 위해 뒤늦게 구입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라도 '착하게 살자!'라는 다짐을 새길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반응이라면....

 

 

 

 

 

 

 

 

 

읽고 있던 시리즈 중에는 세븐 시즈와 비밀, 흑집사와 이키가미, 에뷔오네와 키친, 신부이야기와 칼바니아 이야기(윗줄로 링크 걸어서 미안!) 모두 좋았고, 완결을 본 노다메 칸타빌레에게 수고의 의미로 박수를!!!

 

 

 

 

 

 

 

 

 

 

 

 

 

 

 

 

 

 

 

 

 

 

 

 

 

 

 

 

 

 

 

좋았던 동화책은 정말 많았다. 워낙 좋아하던 작가들의 책들이 줄줄이 나왔고, 기획이 우수한 책이 있는가 하면,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책과, 그림에 흠뻑 빠져들게 하는 책, 눈물 짓게 하는 따뜻한 이야기까지.... 그림책을 많이 읽는 것은 내 정서를 정화시키는 일종의 보너스 같은 기분이다. 내가 나에게 아낌 없이 주는 선물. 이번에 책장 정리를 하면서 선물용이 아닌 소장본으로 갖고 있는 그림책들을 따로 분류해 놓았다. 어찌나 흐뭇하던지.... 음하하하핫!!!

 

 

글없는 그림책이 대박일 경우도 있다. 글이 없어서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함축하고, 상상의 여지를 넓혀 준다. 대단한 작가님들께 존경의 박수를!!!

 

 

 

 

 

 

 

 

 

 

 

 

올해 읽은 소설책은 33권에 불과하지만 그 중 11권이 참 좋았다면 꽤 괜찮은 선택이 아니었던가. 아름답기로 치면 1월 0일은 압도적이었다. 그 서늘한 감촉이라니! 1월에 읽은 책이지만 올해의 책으로 능가하는 책을 만나지 못했다.

벚꽂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반전이 놀라워서 최근에 읽은 '변호측 증인'의 충격이 약했다. 사실은 이 책이 더 먼저 써졌음에도...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은 이 발칙한 조선판 로맨스 소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들었고, 코끼리에게 물을은 좋아하는 로버트 패틴슨 주연의 영화를 별볼일 없게 만들었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 밤을 새워 읽을 만큼 재밌었고, 귀가도의 윤영수는 착한 사람 문성현에 이어 그 감성을 자랑했다. 꿈을 빌려드립니다에서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실력을 확인했고, '헬프'는 그야말로 촉촉하다 못해 축축하게, 그리고 빵과 장미도 가슴을 짠하게 만들었다. 역사적 배경이 있는 소설들이었기에 그 진실성과 값진 승리로 더 큰 감동을 주었으리라.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는 여러 차례 울컥!하게 만들었더랬다. 워밍업을 했으니 미국 민중사도 봐야 하는데 좀 두꺼워야 엄두가 나지....;;;;

 

강준만의 '한국 근대사 산책'은 현대사 산책보다 더 잘 읽혔다. 수많은 오탈자와 표기 오류로 스트레스를 꽤 받았지만, 그럼에도 많은 도움을 받은 고마운 책이다. 함규진 샘을 처음 만난 '왕의 투쟁'은 꽤 재미있었다. 덕분에 그의 다른 책들을 쓸어 모았는데 아직 손을 못 댄...;;;; 그렇지마 공교롭게도 이분의 다음 책을 모니터링 하고 교정/교열의 기회를 만난 것은 놀라운 인연이다. 출판사에서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아직 갈 길이 좀 멀겠지만....  춘추전국 이야기는 원고를 쓰기 위해서 다시 읽었다. 다시 읽어도 역시 1권이 제일 좋았다. 최근에 4권이 나왔는데 아직 구매 전이다. 시리즈가 기대되고 있다. 부여 답사를 계기로 부랴부랴 읽었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6권. 그 인연이 보길도 완도 답사로까지 이어졌던 지난 늦여름의 행운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 정말 좋았더랬지. 표정 관리 안 되었던 사진이 퍼뜩 생각난다. ㅎㅎㅎ

 

십자군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 번역가의 승리랄까, 여사님의 승리랄까. 하여간에 최고십니다. 노병은 죽지 않았어.....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는 감히 사기 힘든 금액이었는데, 도서관의 힘으로 즐겁게 보았다. 음하하하핫, 우리 동네 도서관 만세다!

 

 

 

 

 

 

 

 

 

오디션 메이킹 북은 만듦새에 감탄! 정작 본만화 오디션보다 더 나를 놀래켰다. 오랜만에 다시 읽은 기생수는, 중고책으로 팔면서 아까워서 한 번 더 읽었는데, 읽고 나니 팔기 싫어져서 큰일이었다. 나중에 다시 장만할지도...

 

본격 시사인 만화에서는 굽시니스트의 끔찍(!) 발랄함에 여러 번 넘어갔다. 청구회 추억도 짠했고, 노무현이 없다 역시 눈물 꽤 뺐다. 외로워서 그랬어요-는 파수꾼과 함께 묶어서 추천하고 싶다.

 

커플 천국 솔로 지옥을 외치는 '어쿠스틱 라이프'와 '마조 앤 새디'는 웃으면서 보고 한숨을 쉬면서 책을 덮어야 했다. 하아, 연말이 되니 더 외로워, 외로워!!!

 

영화에 이어 책 결산도 마쳤다. 빼먹은 게 있나? 아, 공연 및 각종 전시회! 콘서트나 오페라, 뮤지컬과 동호회 모임까지 모두 더하면 2011년에는 48번의 나들이가 있었다. 이 중 1/4은 이승환이 차지한다. 공연과 행사와 공개방송을 모두 합한 숫자다. 훗! 올해엔 소박했군!

 

유난히 좋았던 전시회로 훈데르트바서 전, 카쉬 전, 오르세미술관 전, 초상화의 비밀이 있다.

 

뮤지컬로는 미라클 씨어터에서 본 '여우비'와 세종문화회관에서 본 '삼총사'가 좋았고, 경복궁 야간 개장의 기억도 아름답게 남아 있다.


좋았던 작품들은 참 많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이승환 이름 석자 앞에서는 무조건 무너진다는 것! 그가 가장 좋지 않았던 목 상태로 노래를 불렀던 지난 크리스마스의 감동보다는 모두 못했다고 감히 말해 본다. 콩깍지라도 할 수 없다. 내게는 그랬으니까.^^

 

오늘 다녀온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사진전'에서 찍어온 사진들이다. 사진 촬영을 허락해 주었는지 모두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착칵찰칵! 나는 후진 핸드폰 카메라로 몇 컷 찍었다. 화질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마지막 사진은 3층에서 찍었는데 이 사진의 전후 좌우는 모두 누드 사진이었다. 무슨 그리스 신화에 나올 법한 조각들의 향연! 저게 인간의 몸인가 싶어 움찔했다. 사진으로 담아오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지만, 꾹 참았다. 그냥 기억에 만족하리라!

 

 

2011년이 한 시간 조금 넘게 남았다. 11시 반부터는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게 되어 있으니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더 조금 남았다. 초조하다. 뭔가 빼먹은 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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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1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1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2-01-01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라온 책 중에 열여덟 권만 읽은 책이네요.
의외로 겹치는 게 적은 것 같네요.

마노아 2012-01-03 22:03   좋아요 0 | URL
아마 산 책은 많이 겹칠 텐데, 사놓고 못 읽은 책이 많아서 별로 안 겹치는 것 같아요. 신간을 좀 읽어줘야 하는데 매번 밀리네요.^^;;;

BRINY 2012-01-05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는 '이키가미' 뻬고는 다 저도 읽은 거네요. 이키가미는 뭘까요~ 책 정보 보러 갑니다~

마노아 2012-01-05 16:02   좋아요 0 | URL
이키가미, 좋아하실 만한 책이에요. 강추입니다!!ㅎㅎㅎ
 

2011년에 본 영화들이다. 일단 리스트부터 작성해 보자.

 

 

 

 

 

 

 

 

 

 

 

 

 

 

 

 

 

 

 

 

 

 

 

 

 

 

 

 

 

 

 

 

 

 

 

 

 

 

 

 

 

 

 

 

 

 

 

 

 

 

 

 

 

 

 

 

 

 

 

 

 

 

 

 

 

 

모두 70편이다. 이 중 세 편만 집에서 보았고, 나머지는 모두 극장에서 보았다.

 

공포영화를 빼면 거의 모든 장르의 영화가 다 재밌다.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도, 흥미진진한 액션영화도, 그리고 감성을 자극하는 드라마도 모두 좋다. 특히 좋아하는 게 있다면 음악이나 춤, 스포츠 등등... 배우들의 재연 연기에 아주 공을 들여야 하는 그런 영화들이다.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마지막에 반지 낀 손으로의 연주가, '블랙 스완'에서 신들린 듯한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가, '마오의 라스트 댄서' 마지막 씬에서 고향 땅 흙바닥에서 무반주로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에서 전율을 느꼈다. 영화적 완성도는 떨어졌지만, 출연 가수들의 노래가 좋았던 '플레이', 그리고 전설을 추모할 수 있었던 '뮤직 네버 스탑'도 올해의 쾌거다. 두 야구 영화였던 '머니볼'과 '퍼펙트 게임'도 만족도가 높았다. 브래드 피트의 대사처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야구의 세계가 보였다. 나야 아직 야구의 열광적인 팬은 아니지만 팬들의 그 불같은 열정은 이해가 간다.

 

최강 액션을 선보인 영화로는 '최종병기 활', '미션 임파서블4'를 꼽겠다. 아마도 '킬러 엘리트'도 액션으로는 뒤지지 않았을 테지만, 언젠가 말했듯이 영화를 한 시간 정도 졸면서 봐서 도대체 머리에 남은 게 없다. ;;;;;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도 좀 보인다. '킹스 스피치', '언피니시드', '사라의 열쇠', '마이웨이'

이 중에서 언피니시드가 주목을 별로 받지 못하고 사라진 게 많이 아쉽다. 전쟁도 여러 차례 이야기 했고 홀로코스트도 수차례 얘기했지만, 그들 투쟁자들 내부의 문제와 갈등에 대해서 이렇게 깊이 들어간 영화는 내게 드물었다. 게다가 출연진들의 연기는 또 얼마나 훌륭하던지!

 

'마이웨이'는 참 갑갑했다. 강제규 감독은 '대작'에 너무 집착하는 게 아닐까. 지나치게 많은 물량과 돈을 투입하고, 스케일도 장황하지만 메시지는 조금 부족한 느낌? 태극기 휘날리며 때도 그랬었다. 하고자 하는 말들을 위해서 너무 많은 것들을 쏟아낸다. 장동건도 이제는 좀 작은 규모의 영화에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로 굿모닝 프레지던트 같은 영화에 좀 '멀끔하게' 나왔으면 한다. 몸이 부서져라 뛰고, 눈을 희번득 떠야만 연기에 물이 오르는 것은 아니니까. 역시 같은 맥락으로, 그래서 장동건보다 김인권이, 그리고 오디기리죠가, 그리고 조승우보다 양동근의 연기가 더 좋았다. 처음부터 착한 인물보다 갈등과 변화를 통해서 성숙해지는 인간이 더 매력적이다.

 

올해의 졸작은 '7광구'와 '특수본', '써니' 되시겠다. 티끌모아 로맨스는 그저 그만한 영화일 거라고 예상하고 본 거니까 '졸작'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고, 역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위해서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투입해서 과잉 역효과를 낸 7광구와, '진부 오부 진부'의 정점을 찍은 특수본은 반성 좀 해야한다. 그리고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하고도 그 안에 물들어 있는 천박한 사고관이 불쾌했던 '써니'가 관객 동원을 성공했음에도 내게는 참 별로인 영화로 남았다.

 

공포 영화를 좀처럼 보지 못하는 내게 올해의 '섬뜩' 영화는 '돼지의 왕'이 차지했다. 청소년 관람불가 애니메이션의 힘은 대단했다. 공포스러웠고, 두려웠고, 무서웠다. 돼지같이 살까봐, 개처럼 살까봐. 혹은 그런 줄도 모르고 살까 봐...

 

음악이 좋았던 영화로는 '인 어 베러 월드', '세 얼간이', '뮤직 네버 스탑'

인도 영화는 워낙에 음악적 요소가 강세지만, '알 이즈 웰'의 효과는 대단했다. 유쾌함과 위로의 영화였다. 뮤직 네버 스탑은 워낙에 음악 영화였으니 말이 필요 없지만!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들이 많은데, 내가 원작도 같이 본 경우 비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경우 영화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원작에서 주었던 치밀어오르는 감동의 깊이에는 부족했다. 그래도 엄마와 함께 볼 수 있는 괜찮은 영화였다. '워터 포 엘리펀트'는 영화가 좀 심심했다. 일단 캐스팅이 별로. 원작은 참 좋았다. 작가의 신작도 언능 봐야 하는데.... '영원한 제국'은 고3 수능 끝나고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영화보다는 책이 훨씬 재밌었다. 그 안에 깔려있는 어떤 불순함에 대해서는 일단 덮어두자. 영화 '도가니'는 원작과 비등비등했다. 아무래도 영상이 주는 힘이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을 자극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원작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헬프'는 원작을 읽지 않고 보았다면 그냥 평범한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원작을 보고서 비교한다면 '졸작'에 가까웠다. 배우들이 연기는 잘했지만 시나리오가...;;;; 원작의 깊이를 다 담아내지 못한 역량이 아쉬었다. 뒤늦게 누락된 책 한 권 포함시킨다. 영화와 원작의 차이가 아주 컸던 또 하나의 작품이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였다. 원작이 너무 재미있어서 밤을 꼴딱 세우고 읽었는데, 영화는 그 긴박함과 절정으로 치닫는 묘미가 좀 부족했다. 이 역시 원작을 보지 못하고 영화만 보았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차이리라. 덕분에 한국 영화 '의뢰인'은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아류로 전락했다. 복선과 반전의 구조가 지나치게 흡사했다. 그럼에도 하정우의 연기는 좋았지만.

 

또 어떤 주제로 묶을 수 있으려나... 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있었다. '후아유', '킹스 스피치', '호로비츠를 위하여', '블라인드', '통증', '카운트다운', '도가니', '청원'

이 중 가장 아까운 영화는 '카운트다운'이다. 전도연이 그 물오른 연기에도 불구하고 관객동원 운이 좀 없다. 난 이 영화에서 정재영이 다운증후군 아들을 키우면서 겪어야 했던 그 심적방황과 폭력, 그리고 그 사죄에 많이 울었더랬다. 더불어 생각난 책은 펄벅의 '자라지 않는 아이'였다. 언니가 누군가 책을 빌려주면서 읽어보라고 권했다는데, 본인이 도저히 읽을 생각이 안 나서 나더러 읽게 하고는 줄거리를 전해 듣고는 읽은 척!을 했던 책이다. 우연히 만났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다. 카운트다운 역시 그럴 것이다.

 

존엄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만든 '청원'도 깊이 각인된 영화였다. 그 강렬한 색감과 장엄했던 음악도 모두 배경으로 밀어낼 만큼 메시지가 강렬했다. 

 

벅찬 '감동'과 슬픔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인 어 베러 월드''그을린 사랑', 그리고 '파수꾼'도 빠질 수 없다. 앞의 영화는 그림이 훨씬 크고 파수꾼은 보다 소박하지만, 요즘처럼 청소년 범죄가 눈에 띄는 시점에서는 더 필요한 영화였다. 그리고 '고지전'과 함께 올 해의 발견은 '이제훈'이다. 아, 눈빛이 살아 있어. 더 젊었을 적의 이병헌을 보는 것 같다.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한참 했는데, 드라마 얘기 살짝 끼워본다.

2007년의 드라마는 '한성별곡 '정이었다.

2008년의 드라마는 '일지매'(그리고 '베토벤 바이러스')

2009년의 드라마는 '미남이시네요'

2010년의 드라마는 '성균관 스캔들'이었다.

그렇다면 대망의 2011년은? 당근 '뿌리 깊은 나무'가 차지한다.

 

원작보다 훨씬 좋은 드라마가 여기에 있다. 오늘 밤 진행되는 SBS 연기대상에서 한석규를 응원해 본다.(수애 미안!)

 

또 최민수 얘기도 살짝! '무사 백동수'는 꽤 졸작이었지만 최민수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대사가 없어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도, 돌아선 등짝 만으로도 배우가 연기를 해낸다는 것에 감탄했다. 만약 백동수가 하반기 드라마였다면 나는 연기 대상에 최민수를 응원했을 것이다.

 

아, 쓰다 보니 자꾸 길어지네. 올해의 가수도 있다. 올해 발견한 최고의 보석은 단연코 알리다.

 

365일과 별짓 다 해 봤는데, '뭐 이런 게 다 있어'도 좋았지만 압도적으로 알리의 매력을 보여준 것은 아무래도 '킬리만자로의 표범'이었다. 목소리는 물론 손동작 하나까지도 모두 '고혹' 그 자체랄까!

 

그 덕분에 '불후의 명곡2'를 아주 애청하고 있다. 가볍고 촐싹대는 신동엽의 진행도 재미있고, '경쟁'이라는 구도를 스트레스보다 긴장감 조성 정도로 희석시킨 진행 방식도 괜찮다. 아무래도 '나는 가수다' 보다는 덜 피곤하다.  

 

 

이제 2012년에 기대하는 영화로는 일단 월요일에 수영을 제끼고 시사회에 참석할 '원더풀 라디오', 그리고 김명민이 또 몸을 부수며 연기했을 것 같은 '페이스 메이커', 맷 데이먼의 선택은 언제나 옳아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엄정화와 황정민의 능청스런 궁합이 기대되는 '댄싱퀸', 그리고 긴 겨울밤을 가득 채워줄 것만 같은 '원스 어게인' 등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보면서 눈물 꽤나 쏟을 것 같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까지... 이 제목은 읊는 순간 벌써 벅차오른다.

 

그리고 당장 돌아오는 주부터 시작하는 '해를 품은 달'

오오, 책 사놓고 표지도 못 열어봤는데 2012년에 첫번째 독서는 해를 품은 달이 되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 임금 역에 김수현이 캐스팅 되었던데, 원작을 보지 않아서 아역인지 성인역인지, 혼자 다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기꺼이 봐주리라.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과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에서 보여준 내공에 거는 기대가 크다.

 

좋은 영화, 좋은 드라마,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다. 많아서 좋은데, 그것들을 다 소화하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서 뜨끔할 때가 많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 내가, 2012년에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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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2-3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와아아- 두 번 으와 하고 가요.
첫번째는 저 많은 영화를 세 편 빼고 모두 극장에서 보셨다는 대목에서-
두번째는 알리가 부른 킬리만자로의 표범 들으면서-

항상 감탄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마노아님의 서재를, 사랑합니다!
더 예뻐지시고 더 사랑받으시고 더 건강하시고, 에 또, 더 영화 많이 보시고 더 책 많이 읽으시고 더 깊고 더 넓은 마노아님의 모습 보여주세요. 새해 복 마아니, 대따 대따 많이 많이 받으세요, 마노아님^^

마노아 2011-12-31 18:2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생각보다 많이 보았다고 생각했어요. 극장에서 보지 못하면 대체로 못 보고 지나가더라구요. 알리 노래 참 잘하죠? 불후의 명곡2는 아이돌 가수들의 재발견이기도 했어요. 의외로 노래 잘하는 친구들이 참 많더라구요. ㅎㅎㅎ

좋은 말씀 한가득 해주셨어요, 메리포핀스님! 아주 따뜻한 덕담입니다. 메리포핀스님의 2012년도 아름답고 따뜻하고 반짝반짝 빛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같이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무스탕 2011-12-31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를 여는 순간 포스터만 좌~~~악 화면을 채우면서 휠을 몇 번 굴려도 계속 포스터만 보이는거에요. 세상에!!
68편이면 한달에 5.666..편의 영화를 보셨어요. 그거 다 기억하기도 힘들거에요, 전 ^^;
제가 워낙 티비쪽은 그냥그냥 이라서 티비쪽으론 뭐 꼽을게 없어요.
해를 품은 달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건 '온양' 이라는 지명에 대한 해석이에요. 전 그걸 읽고 무릎을 탁-! 쳤다니까요.

채 4시간도 안 남은 올해네요. 내년엔 건강 잘 살피시면서 하시는 모든 일들 고속도로마냥 뻥뻥 뚫리길 바랍니다.
새해 복 겁나게 많이 받으세요~ ^^

마노아 2011-12-31 21:28   좋아요 0 | URL
으하하핫, 두 편 누락된 걸 찾았어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와 '오싹한 연애'를 놓쳤네요. 두 개 포함시키니 70편이에요. 아, 많이 보긴 했어요. ㅎㅎㅎ
해를 품은 달을 보며 저도 '온양'을 주의 깊게 볼게요.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집니다.
고속도로 마냥 뻥뻥 뚫리는 2012년, 겁나게 복 받는 우리 되어요. 유후~!!!

이진 2011-12-31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68편이라니...
마노아님의 문화생활을 저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ㅋㅋㅋ
저는 올해 영화관을 한 번 갔나... 두 번 갔나.. ㅠㅠ
시골이라 영화관이 없답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2012년에도 건강한 서재활동되세요!

마노아 2011-12-31 21:29   좋아요 0 | URL
아직 다이어리 집계가 덜 끝났는데 각종 전시회와 공연을 더하면 문화생활로 도배한 한 해가 될 거예요.ㅎㅎㅎㅎ
소이진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무엇보다도 건강히 지내셔요. 대한민국의 미래 아닙니까! 건강한 미래가 되어주세요.^^

순오기 2012-01-01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21편 겹쳐요, 올해는 내가 저조했어요.
그래도 21편이면 나쁜 성적은 아니네요.^^

마노아 2012-01-03 22:02   좋아요 0 | URL
히힛, 댓글 다신 분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겹치는 게 아닐까 싶어요.ㅎㅎㅎ
 
멈춰버린 기억 속에서도 음악은 멈추지 않는다.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1월 2주

최근에 본 영화들에서 유독 아버지의 사랑이 눈에 띄었다. 엄마의 사랑과 질적 양적 우위를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지만,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이 두드러졌던 영화들을 꼽아 본다. 

1. 먼저 요새 제법 좋은 흥행성적을 보이고 있는 '완득이'다.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고 있고, 김윤석과 유아인이라는 믿을 만한 배우들을 주연으로 선택해서 최소 본전 생각은 안 나게 만들 영화라는 확신을 갖고 극장을 찾게 만들었다.  

소설 완득이와 거의 흡사하지만, '똥주' 선생의 로맨스라는 새로운 카드가 제시되었고, 그게 또 제법 재밌다. 똥주 선생 파트너와, 완득이가 좋아하는 여자 친구를 맡은 배우들의 연기가 다소 미흡했지만, 완득이와 똥주 선생의 캐릭터는 제대로 잘 살려내었다. 무엇보다도 일등 공신은 똥주 선생의 김윤석이다. 수업은 뒷전에 입도 험한 선생이지만, 그 바탕에는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애정과 인간에 대한 예의와 이해가 짙게 깔려 있다. 현실에서 저런 선생이 있다면, 사립이라면 잘렸을 것이고, 공립이었다면 절대 승진은 못할 것 같다. 다행히 학생들이 그 진심을 알아주고 의지해 준다면 좋겠는데, 그게 또 가능할까 물음표가 먼저 떠오른다.  

곱추 아버지에 집 나간 어머니는 알고 보니 필리핀에서 오셨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된 가난한 집 아들 완득이! 그래도 삐뚤어지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준 착한 아이다. 똥주 선생의 지나친 애정(?)으로 '똥주 좀 죽여주세요!'라는 기도를 간절히 드리는 얄궂은 녀석이지만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잘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자 열심으로 도전하는 당찬 녀석이고, 효심도 깊은 좋은 아들이다. 춤추는 남편이 싫어서 집을 나갔다고 말을 하는 어머니의 변명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지만, 그 부분은 원작에서도 개연성이 적은 편이었으니 영화의 탓은 아니다.  

작품 속에서 아버지는 불편한 몸을 하고서도 악착같은 생활력을 보여주며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도 않는 성실한 사람으로 나온다. 완득이는 속이 상했던 어느 날 가출을 꿈꾸지만, 지방 시장에 돈을 벌러 간 아버지는 부재중이고, 가출하겠다고 남긴 메시지는 본인이 먼저 확인을 하고야 만다. 완득이가 조금 더 독한 녀석이었다면 제시할 '핑계'는 아주 많았겠지만, 아버지의 존재는 완득이가 늘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심점 역할을 해주었다. 또한 비록 총각 선생이지만 옆에서 시시콜콜 완득이를 못살게(?) 굴며 보살펴주는 똥주 선생의 마음씀씀이도 아버지의 아들을 향한 마음과 무척 닮아 보인다.  

완득이는 연극으로도 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원작 소설, 영화, 연극 중 연극이 가장 좋았다. 며칠 전에 엄마도 이 영화를 재밌게 보고 오셨는데 가족이 함께 보기 좋은 즐거운 영화다. 

★★★☆

2. 두번째 영화는 SF영화로 보이지만 뜻밖에도 무척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을 지닌 영화 '리얼스틸'이다. 

2020년이라는 근미래에 로봇 파이터를 꾸리며 근근히 살아가는 전직 복싱 선수 찰리 캔튼(휴 잭맨). 빚은 나날이 늘어가고, 일은 잘 풀리지 않고, 유일한 재산인 로봇마저도 망가져서 앞날이 막막하던 때에 오래 전 헤어진 아내의 부고 소식과 아들의 친권 문제가 그에게 떨어진다. 죽은 아내의 여동생은 아들을 데려다 키우고 싶어하고, 그러기 위해서 그가 친권을 포기하기를 원한다. 척 봐도 돈 좀 있어 보이는 그들 부부에게서 거액을 받아내고 기꺼이 친권을 포기하겠다고 각서를 쓰는 캔튼에게서 부정이란 찾을래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들 맥스 캔튼의 등장부터다. 찰리는 휴가를 간 처제 부부 대신 한동안 맥스를 맡아주기로 했는데, 알고 보니 맥스가 로봇 복싱의 광팬이었던 것이다. 아들과 맞바꾼 돈으로 로봇을 구입해서 재차 재기를 꿈꿔보지만 냉정한 머리 대신 다혈적 기질이 앞서는 찰리는 로봇도 잃고, 돈도 잃고, 아들에게 면박만 받는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게 되는 '아톰'이 등장하는데 그 과정에서 맞닥뜨린 위기 속에서 그래도 찰리가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는 게 아님을 알게 되고, 이 육중한 드라마 속에서 소소한 유머와 즐겁게 조우한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로봇'에 대해서 물으면 그 차가운 금속성을 먼저 떠올리며 비인간적인 느낌을 먼저 얘기하지만 일본 사람들에게 물으면 애완용으로 여길 만큼 무척 친근하게 받아들인다는 얘기를 들었더랬다.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거기에는 데즈카 오사무의 활약도 큰몫을 해내지 않았나 싶다. 영화 속에서 나온 무척 인간미 느껴지는 로봇의 이름이 '아톰'인 것도 그에 대한 일종의 오마쥬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자신을 돈과 맞바꾼 아빠라는 것을 알고 있는 맥스와, 그것을 들켜버린 찰리가 쉽게 친해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거듭되는 시합과 좌절과 재도전이 겹쳐지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지난 시간의 애증을 닦아낼 우정이 쌓이게 된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인정과 사과라고 생각한다. 찰리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아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해주지 않으려고 했다면, 아무리 두 사람 사이에 좋은 추억이 쌓여도 진정한 의미의 가족으로 거듭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신을 먼저 내려놓고, 지난 시간을 인정하고 나서야 두 사람 사이에 새로운 시간이 의미있게 채워졌다. 그 훈훈한 이야기는 영화로 직접 확인해 보시기를! 

마지막 시합에서 심판들이 내린 결말은 참으로 현실을 닮아 있어서 씁쓸했다. 지난 무상급식 주민 투표의 결과에 대해서 홍준표 의원이 내린 결말고 몹시 닮았다고나 할까.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싸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비단 영화 속의 경기뿐 아니라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도 얼마든지 대입할 수 있는 이야기이니까.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이고 격투기와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지만, 남자들만 좋아할 영화는 아니다. 가족이 함께 보기 좋은 영화이고 누구라도 좋아할 훈훈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스티븐 스필버그는 될성 부른 아역 배우를 골라내는 안목이 확실하다!

★★★★ 

3. 세번째는 오늘 소개하는 영화 중에서 가장 뜨겁고 감동적인 영화 '뮤직 네버 스탑'이다. 

기억이 멈춘 아들과 추억이 멈춘 아버지,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 -이라는 영화이 소개 문구부터 벌써 가슴이 뭉클해진다.

영화의 시작은 20년 전 가출했던 아들을 찾았다는 전화 한통으로 출발한다. 노숙자 생활을 하던 아들은 뇌종양에 걸렸고, 수술을 받았지만 15년 전 기억에 멈춰있는 상태이며, 새로운 정보는 받아들여도 금방 잊어버리는 상태에 있었다. 때마침 아버지는 실직을 했고, 엄마가 대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들을 돌보는 일은 전적으로 아버지에게 돌아왔다. 음악을 통해서 아들을 치료해보려는 시도를 하던 와중에, 아버지는 아들과 떨어져 지낸 20년 세월의 간극에 많은 상처가 노출되었음을 알게 된다.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진심을 전달하지 못했던 시간을 되돌려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아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아버지의 고군분투가 아주 재밌고 감동적으로 그려졌다. 더군다나,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전설적인 노래들은 영화의 가치를 한껏 더 높여주고 말았다. 그야말로 눈과 귀가 함께 호강하는 영화다. 이제는 이미 고인이 된 많은 뮤지션들의 곡이, 그리고 여전히 전설로 남아 함께 호흡하는 그들이 노래가, 그리고 노익장을 과시하며 지금도 활동하는 뮤지션들에게는 응원과 감사의 박수가 절로 나오게 한다.  

 

 

 

 

음악을 주요 소재로 삼은 영화들은 늘 가슴을 후벼파는 감동을 주던 지난 실적에 한 표를 더 던져주며 극장을 나올 수 있었다. 동일 소재로 국내에서 이 작품을 재현한다면 어떤 노래와 어떤 뮤지션들이 나올 수 있을까 상상해 보았다. 상상만으로도 몹시 벅찬 느낌이다. 역시 음악은 아름다운 언어이며 시이고, 대화다. 결코 끝나지 않는!  

★★★★★ 




 

4. 마지막 영화는 '트리 오브 라이프'다. 사실 뮤직 네버 스탑을 보던 날 예매했던 영화였는데, 뮤직 네버 스탑이 상영관이 별로 없어서 좀 더 보기 수월한 영화를 한 주 뒤로 미뤘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이라는 큰 상을 받은 영화이니 한 번 더 관심이 가기도 했고, 브래드 피트와 숀팬이 주연을 맡았다고 하니 또 한 번 관심을 끌었다.  

얼굴만 보면 숀팬이 아버지 역할일 것 같지만, 브래드 피트가 아버지이고, 숀팬은 그 아들이 자라고 난 뒤의 모습이다. 몹시 가부장적이고 엄격한 모습의 아버지 브래드는 세아들 중 장남에게 유독 더 엄한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 말라는 것 투성이에 권위적이고 때로 모순덩어리로 보이는 아버지가 큰아들 잭은 밉기만 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가장 닮으면서 자란 것도 큰아들 잭이었다.  

영화는 사고로 아이를 잃은 엄마의 목소리로, 동시에 동생을 잃은 큰아들 잭의 목소리로 신에게 문답하는 형식으로 긴 서사를 이끌어간다. 그리고 그 여정을 우주의 창조에 맞물려 생명의 신비를 화면 가득 보여준다. 대사가 많지 않고 압도적인 영상미와 장엄한 음악으로 그 자리를 채워내는 감독의 재주가 놀라웠다. 다만 이런 느낌의 영화를 선호하지 않는 관객이라면 두시간이 넘는 영화의 런닝 타임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위험은 있다.  

캐스팅이 참으로 놀라웠는데, 아들 셋이 하나같이 브래드 피트와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특히 막내아들은 브래드 피트 진짜 아들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잭' 역할을 캐스팅하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경쟁률의 오디션을 보고 그 중 세명이 최종 후보가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그 세 명이 세 아들 역할을 나눠 맡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탁월한 선택이다.   

엄한 아버지와 달리 자애롭고 감싸주기 바쁜 엄마 역은 제시카 차스테인이 맡았다. '언피니시드'에서 이미 얼굴을 익힌 배우인지라 반가웠다. 그런데 프로필을 보니, 세상에 내가 본 영화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헬프'였다!

 

언피니시드와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의 외관상 이미지가 비슷해서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는데, 헬프에서 맡은 셀리아 푸트 역할은 전혀 다른 이미지여서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다양한 색깔을 연기해내는 배우였구나 싶어 괜히 또 반가워지고 말았다.  

이런 조합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국에서도 익숙한 풍경이다. 또 그 아버지를 닮은 큰 아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는 고구려 3대 임금 대무신왕과 아들 호동왕자가 떠오른다. 물론, 그 세계관은 만화가 김진의 것이긴 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결, 일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올리게 하는 구도는 영조와 사도세자도 있고 여러 유형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신에게 묻는 형식으로 줄곧 진행되는데, 그때의 신은 이 영화 속에서는 분명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분명하지만, 영화의 스타일을 보건대 꼭 기독교의 신 하나로 단정지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절대적 존재로서 커다란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쉽게 대입이 될 것이다. 착한 사람이 시련을 겪고 나쁜 사람이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것을 볼 때 인간은 누구나 의문을 품고 회의를 갖게 된다. 어린 잭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커다랗고 힘센 사람이었지만, 그 아버지도 직장 내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좌천을 겪기도 하고 여러 시련 속에서 작아지는 존재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내려놓는 일은 자존심을 떠나서 아버지라는 위상을 생각할 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또 그 속에서 서로를 제대로 응시하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영화의 빼어난 영상미는 두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데, 마지막에 생명의 신비와 우주의 진화를 마무리하는 영상에 다가갈수록 그 압도적인 힘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렇게 대사를 아끼고도 많은 이야기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각자 받아들이는 몫이 다르니 또 무수한 가지 수의 감동이 피어날 터이니 역시 경이롭기 그지 없다.   

★★★★☆

네 편의 최신작이 모두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한데 묶어 보았다. 아버지와 아들... 영원한 닮은꼴, 넘어서야 하는 존재, 인정받고 싶은 존재, 무엇보다 안기고 싶은 따스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머니와 딸, 혹은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도 마찬가지의 구도이긴 하다.) 때로 '애증'의 대상이어서 질투의 상대이기도 하고 결투의 상대이기도 하지만, 결국엔 동반자가 되고 형제가 되는 애정의 상대. 그 오래고 질긴 인연은 곧 나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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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1-11-08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 영화 완득이랑 리얼스틸, 안 본 영화 뮤직네버스탑, 트리오브라이프를 한 몫에 훑었어요.
트리..는 영화가 어렵다는 소문을 듣고는 선뜻 나서질 못하고 있네요. 뮤직..도 보고 싶은 영화는 맞는데 역시 머뭇거려지고 있어요.
역시 전 영화를 가볍게 즐겨야 할 팔자인가봐요.
하여간 멋지게 잘 읽었어요 :)

마노아 2011-11-08 15:36   좋아요 0 | URL
트리오브라이프는 확실히 좀 무겁고 어려운 감이 있는데, 영상은 무겁지 않았고요.
뮤직 네버 스탑은 어렵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아요. 작품성과 재미 면에서 모두 떨어지지 않는데, 개봉관이 지나치게 적어서 만나기 힘든 영화예요. 그게 무척 아쉬워요.
균형을 맞추어 한국영화도 두 편이면 좋았을 텐데 좀 편중되었네요.^^;;;

hnine 2011-11-08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 영화 한편도 없음! ㅠㅠ
이런 페이퍼 쓰기가 정말 시간 많이 걸리지 않나요? 생각도 많이 해야하고 나름 분석도 해야하고.
수고 많으셨네요.
마지막 문단에, 넘어서야 하는 존재, 인정받고 싶은 존재 라는데 동의해요. 특히 아들에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인 것 같더라고요.

마노아 2011-11-09 00:14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개별적으로 영화 리뷰 쓰는 것보다는 적게 걸렸지만, 그래도 꽤 걸려서 저장해 놓고 수정했어요. 쓰다가 날리는 바람에...ㅜ.ㅜ
오늘 털어버린 '구운몽도'에도 주인공 남자와 아버지를 물리적으로 분리시켜 놓아야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얘기가 나와요. 넘어서야 하는 존재는 비물리적인 것이지만 일견 통한다는 느낌이에요.

순오기 2011-11-09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 영화는 완득이 뿐이네요.
리얼 스틸은 집 가까운 영화관에서 상영중인데 볼 수 있으려나...
음악도 좋고 영화 소개도 훌륭해요, 가능하면 다 보고 싶어요.

마노아 2011-11-09 09:09   좋아요 0 | URL
좋은 영화들이니까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순오기님 요새 일정이 너무 바빠서 영화 볼 짬이 날지 모르겠어요.(>_<)

이진 2011-11-09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득이 정말 보고싶습니다 ㅠㅠㅠ저도 본 영화가 하나도 없군요....
저의 문화활동을 의심해봐야겠습니다 ㅎㅎ

마노아 2011-11-10 01:01   좋아요 0 | URL
요새 잘 나가고 있는 완득이에요. 이참에 보고 오셔요.^^
 

목요일에는 '초상화의 비밀을'을 보러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그리고 10월이다. 간송 미술관의 일년에 두 번 있는 전시회가 열리는 달이다. 이번 가을 전시회(10/16-10/30)는 <풍속인물화 대전>이다. 신윤복의 그림을 맘껏 감상할 수 있다. 놓치지 말고 꼭 가보리라! 


  • 혜원 신윤복 作 '연소답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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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jy 2011-10-10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궐은 놓쳤고, 쌍둥이 조카 돌보기도 힘들지만 그래도 짬내서 미술관 도전해보겠습니다^^

    마노아 2011-10-10 15:02   좋아요 0 | URL
    헤헷, 미술관은 놓치지 마셔요. 불끈!

    레와 2011-10-10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꼼한 리뷰 고마워요 마노아님. ^^

    마노아 2011-10-10 15:03   좋아요 0 | URL
    헤에, 감사해요, 레와님.^^

    무스탕 2011-10-14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이런 전시는 마노아님을 '모시고' 가야 한다니까요! 가서 직접 본것보다 더 꼼꼼하게 읽었어요.
    그렇잖아도 어제 서울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길에 들려볼까.. 심각히 고민했는데 몸이 피곤해서 그냥 넘겼지요;;;
    10월 내로 뭔 수를 내야겠습니다. 초상화를 모아 전시 한다니 기획이 기발하지 않나요? ^^

    마노아 2011-10-14 10:17   좋아요 0 | URL
    아하하핫, 도슨트를 잘 듣고 온 덕분이에요. ^^
    저도 어제 신사동에서 하는 책표지에 사용된 그림 전시회 보고 싶었는데 피곤해서 집으로 고고씽했어요. 이제 막 내렸는데 살짝 아쉽긴 하답니다. 그치만 간송미술관이 남았으니 10월은 황금기에요.^^

    순오기 2011-11-12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내가 못보고 지났나 봐요. 이달의 당선작이라 놓친 걸 보게 되었네요.^^
    역시 역사선생님 답게 오류를 바로 잡아주는 실력~~ 고마워요!!

    2011-11-12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1-11-12 23:27   좋아요 0 | URL
    헤헷, 덕분에 오타를 수정했어요. 감사해요.
    제가 썼지만 길어서 다시 안 읽어보게 되더라구요.^^ㅎㅎㅎ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9월 5주

    홍콩 출장에서 돌아온 베스(기네스 펠트로)가 발작을 일으키고는 병원에 실려간다. 미처 손쓸 새도 없이 아내가 죽는 것을 목격한 토마스(멧 데이먼)은 집에 오자마자 아들마저 똑같은 증세로 잃고 만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죽어가는 사람들과 감염 증세를 보이는 이들이 속출한다. 세계 보건기구에서는 오란테스 박사(마리옹 꼬띠아르)를 파견해 바이러스가 처음 발병한 경로를 조사하게 했고,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치버 박사(로렌스 피시번)는 현장경험이 풍부한 박사(케이트 윈슬렛)를 파견해서 상황을 파악해 보지만 갈수록 막막해질 뿐이다.  

    질병의 원인도 파악하지 못했으니 백신은 오리무중, 다만 접촉을 통해서 감염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감염증세가 보이면 즉시 격리조치하는 것만이 최선일 뿐이었다. 사람은 하루에 자기 얼굴만 무려 3천 번이나 만진다고 하는데, 우리가 만지는 컵, 핸드폰, 손잡이, 터치패드 등등 무수한 감염경로가 도처에 널려 있어, 이런 바이러스가 한 번 번지면 문명 자체가 소멸된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만 같았다. 이 와중에 정부와 제약회사 등이 이익을 위해서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칭 프리랜서 기자(주드 로)의 활약(?)으로 시민들의 불안함은 더욱 가중된다. 영화는 사건 발발 2일 째부터 시작해서 두 번의 계절이 바뀌는 지점까지의 과정을 보고서 작성하듯 차분히 내용을 쌓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첫째 날 감염이 시작된 순간을 보여주면서 극적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당긴 다음 끝을 맺는다.  

     

    제법 완성도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평점은 왜 그리 낮고 졸다가 나왔다는 사람도 많은지 모르겠다. 나로서는 무척 집중해서 잘 보고 나왔는데 말이다. 개인차가 있다지만 좀 속상하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영화의 제목을 이용한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는 대도시들일수록 감염의 속도는 더 빠르고 혼란의 깊이도 깊기만 하다. 아무 것도 만질 수 없고, 누구도 만날 수 없는, 그리하여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의 참담함이라니...  

     

    작품 속에는 이름난 배우들이 대거 출동하는데 모두들 관록을 제대로 보이며 물오른 연기를 보여준다. 이들의 연기가 실감날수록 정체불명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감도 가파르게 상승한다. 더욱이 이러한 질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지만, 그것에 대처하고 또 피해가는 과정은 지극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어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암담하기까지 했다. 누구라도 이런 재앙 앞에서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급에 따른 구원을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리고 이런 비극적 재앙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꽤 아찔함을 느꼈다. 이를테면 파워블로거의 영향력이랄까...

    그나저나 케이트 윈슬렛의 눈썹은 너무 강렬한 것이 마치 문신같은 느낌이다. 국내 배우로는 김정화가 꼭 그런 눈썹을 가졌다. 주드 로는 셜록 홈즈와 같은 시대극에서의 느낌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말끔한 옷차림의 신사로 다시 만나고 싶다. 오란테스 박사로 분한 마리옹 꼬띠아르는 인셉션으로 만난 배우인데 여전히 고혹적인 미모를 자랑한다. 다음 번엔 '다크나이트 라이즈'로 만날 테지. 무척 기대하고 있다. 맷 데이먼이 얼마나 좋았는지는 두말하면 잔소리!(그는 아빠로 나와도 멋지기만 하다!) 

     

     

     

     

    영화를 보다 보니 얼마 전에 읽은 강풀 작가의 '당신의 모든 순간'도 함께 떠올랐다. 정체 불명 바이러스가 퍼지고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버려 모든 문명의 기능이 정지되고 정보가 차단된 비극 속에서도 멀쩡히 살아남아 여전히 국회에서 싸우고 있다는 국회의원까지 등장했던 이야기 말이다. '숙주'를 매개체로 해서 인간을 순식간에 점령했던 것을 떠올리면 기생수도 비켜가지 않는다. 좀 더 나아가자면 생명을 매개체로 악마가 이동했던 '다크 엔젤'도 떠오른다. 비슷한 소재의 영화로는 아웃 브레이크도 있고, 급속도로 번지는 바이러스의 속도를 생각하면 얼마 전에 본 '혹성탈출-진화의 시작'도 중첩된다.  

    영화들은 모두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우리가 가파르게 쌓아올린 문명의 이기가 다시 우리의 목에 칼날을 들이대는 것을 어렵지 않게 목격시켜 준다. 

     

    과학자 윌(제임스 프랭코)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아버지를 치료하고자 인간의 손상된 뇌기능을 회복시켜주는 ‘큐어’를 개발한다. 이 약의 임상실험으로 침팬지들이 이용되었는데 엄청난 두뇌회전이 목격되었다. 그러나 그 침팬지는 임신중이었고, 그 바람에 과잉반응을 보여 결국 사살된다. 실험은 중지되었고, 새끼마저 죽을 위기였지만 윌은 차마 죽이지 못하고 집에서 어린 침팬지를 키우게 된다.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계시던 아버지는 그날 세익스피어를 읽으셨는데, 그 바람에 이 침팬지의 이름은 시적 되었다. 애완동물보다 가족같은 느낌으로 함께 살며 성장하게 된 시저. 그리고 큐어의 힘으로 아버지는 건강을 회복한 채 몇 년을 더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병은 재발했고, 큐어의 문제점도 발견된다. 그 과정에서 이웃과 시비가 붙은 아버지를 도우려던 시저가 이웃 사람을 공격하는 바람에 보호 시설로 보내지게 되고, 그곳에서 시저는 자신과 같이 잡혀 있는 유인원들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제약회사와 인간 사회에 대한 혐오감을 품고 인간들과의 전쟁을 결심한다.  

    혹성탈출은 침팬지가 저렇게 섹시하고 멋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영화이기도 하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자각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우친 선동가이자 정복자에 가까운 침팬지의 이름이 '시저'라는 것은 무척 의미심장하다.  시저의 역할을 해낸 배우는 앤디 서키스인데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골룸 역을 맡았던 그 배우다. 이쯤 되면 비인간 전문 배우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침팬지의 유연한 몸놀림이 그의 빼어난 연기와 뛰어난 컴퓨터 그래픽의 힘으로 영화에 역동성을 부여해 주었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내게 한 원작 영화에게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꽤 자주 TV에서 방영해 주었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본 적이 없다. 기회가 되면 원작 영화부터 찾아보리라. 

    그간 많은 바이러스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100년전 스페인 독감으로 올라갈 필요도 없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류독감이나 신종 플루니, 구제역이니 하며 많은 생명들을 앗아갔었다. 그렇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발생하지 않아도 사실 재수 없으면 죽기도 하는 위험한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함은 물론이지만, 무언가에 너무 집착해서 현재를, 오늘을 돌아보지 않고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일이 덧없다는 느낌을 자꾸 받게 된다. 그 지점에서 이번엔 영화 푸른소금이 겹쳐버렸다. 

    주인공 두헌(송강호)은 조직 세계에서 발을 빼고 식당을 차릴 생각으로 요리 학원에 다니며 나머지 시간은 그저 바다만 바라보며 지내는 중년 사내다. 그는 발을 뺐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모시던 보스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죽으면서 그를 후계자로 점찍어버렸다. 이전부터 그를 감시할 목적으로 같은 요리학원에 다니던 조세빈(신세경)에게 이제 그를 제거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부상으로 그만두었지만 전직 사격선수로 빼어난 저격술을 가진 세빈은 두헌을 죽이지 못해 망설이다가, 룸메이트가 납치를 당하는 비극을 겪는다. 어느새 가까워진 두 사람은 서로의 정체를 알지만, 도망치지도 못하고 벗어나지도 못한다. '푸른' 이미지가 주는 창백하고도 슬픈, 그리고 서늘한 느낌이 영화 전반에 깔리고, 무엇보다도 푸른색을 강조한 영상미가 무척 돋보이는 영화였다. 

     

    워낙 주변의 악평이 심했기 때문에 전혀 기대 없이 보아서인지 생각보다 볼만했다. 다만 영화가 너무 긴 게 흠이었는데 20분 정도만 잘랐더라면 좀 더 압축적인 긴장감을 보태며 흥미를 돋우지 않았을까 싶다. 대부분의 캐스팅은 좀 너무 뻔해서 식상했는데 천정명 캐릭터가 잘 어울리면서 호감을 주었다. (덕분에 공주의 남자 끝나고 하는 천정명 주연의 드라마가 기대가 되려 한다. 제목은 모르겠다...;;;;) 그리고 신세경이 분한 '조세빈'은 영화의 캐릭터와 인물 이름이 너무 안 어울리는 흠이 있었다. 게다가 영화의 결말이 지나치게 낭만적이어서 지독히 영화스럽지만, 주인공이 던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금' 세가지는 이 영화가 내게 준 아주 값진 선물이 되어버렸다. 누구나 좋아해 마지않는 황금, 그리고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소금, 그리고 '지금' 말이다.  

    혹성탈출과 컨테이전과 푸른소금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는 '지금'이 되겠다. 지금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무엇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지 거듭 되물어 볼 일이다. 지금 해야 하는 말, 사랑해, 지금 해야 하는 말, 고마워, 지금 해야 하는 말 미안해!까지 말이다.  

    상업영화의 룰과 공식을 제대로 따르는 영화들이었지만, 보고 나서 따라오는 느낌과 감동 등은 주관적이고 철학적이게 되어버렸다. 영화가 선사해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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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로그인 2011-09-30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은 영화가 잔뜩 쌓여만 가네요. 영화를 볼 때 너무 기대를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면 어떻게든 감동 받을 만한 장면 찾다가 제 풀에 실망하게 되어요. [컨테이젼]은 기대감을 낮추고 봐야 하는데... 제가 케이트 윈슬렛 참 좋아해서, 기대감 낮추기 힘들겠어요;;

    그런데요, 모 국어학 교수님이 [혹성 탈출] 같은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답니다. 원숭이는 인간이랑 구강 구조가 달라서 언어를 말할 수가 없다나요. 유전자도 다르대요. HOKP2라나 뭐라나... 그래도 뭔가 백퍼센트 안도감은 들지 않네요 ( '')...

    마노아 2011-09-30 13: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기대가 없어서 푸른소금이 괜찮았어요. 컨테이전은 나름 기대를 했는데 평점이 너무 낮아서 의아해하며 봤답니다.
    혹성탈출처럼 말을 하는 건 저도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마지막에 세계지도에서 번져가는 경로를 보고 나니 너무 아찔해서요. 앞의 일은 불가능해도, 뒤의 일은 충분히 가능해 보였거든요. 일찍 자리를 차고 나간 관객은 못 봤을 수도 있는 한 컷이었어요.^^

    hnine 2011-09-30 16:47   좋아요 0 | URL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자는 98.7% 동일하답니다 ^^

    마노아 2011-09-30 22:27   좋아요 0 | URL
    우와, 그 정도로 흡사한가요? 기대 이상의 확률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