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펭귄클래식 7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진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행복한 왕자와 거인의 정원으로만 만났던 오스카 와일드. 내가 읽은 그의 가장 긴 이야기가 되겠다. 

책장에 꽂힌 지는 오래였는데 표지가 비호감이라 오래오래 먼지만 덮였던 이 책을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 먼저 꺼내들었다. 

성남 아트센터에서 '도리안 그레이'를 공연했는데, 인간적으로 너무 멀었다. 주말표는 매진이었고, 평일에 다녀오면 새벽 귀가를 감수해야 하는 그곳을 '김준수' 이름 하나였다면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박은태'가 있었으니까 가야 마땅했다.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청년 도리언 그레이. 그는 유미주의자 헨리 경으로 인해 자신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 이제껏 특별히 인식하지 못했던 그 아름다움이 청년을 애달프게 했다. 이 아름다움이 사라져가는 걸 지켜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강렬한 바람 때문이었을까. 청년의 시간이 멈춰버렸다. 아름다웠던 젊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늙지 않았다. 대신 그를 그린 초상화가 시간을 먹었다. 도리언이 죄를 지을수록, 추악한 마음을 먹을수록 초상화가 흉칙하게 변해갔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초상화로...


흥미로운 소재였다. 어느 정도 결말이 예상되기도 했지만 그걸 지켜보는 재미가 못지 않았다. 아름다움은 인류고 오랫동안 집착해왔던 소재가 아닌가. 늘어나는 주름과 흰머리가 애석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돈을 좀 쓰면 시간을 되돌리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 방법도 계속 늘고 있다. 이건 얼마나 어마어마한 유혹인가. 그래서 얼굴에 손대지 않는 배우들이 더 멋져보이긴 하다. 


다시 잠시 뮤지컬 이야기를 해보자면, '아름다운' 청년 역할에 김준수는 탁월한 캐스팅이었다. 티켓파워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다른 배우를 쉽게 연상시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자리에 비쥬얼 아이돌은 제격이다. 이미 이런 찬사에는 충분히 익숙해져 있을 테니 어색하거나 뻘쭘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18세 소년과 청년의 경계를 연기하기엔 다소 연기력이 부족했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것이다. 부러 내는 어린 목소리가 많이 불편했다. 1막은 박은태의 열연이 아니었으면 망칠 뻔...


그러나 역시 아이돌은 아이돌이었던 게, 격렬한 '춤'을 선보이자 배우의 매력이 몇 곱절이나 뛰었다. 흔히 성공한 소설이나 만화 등을 영화로 다시 옮길 때 단지 베끼기만 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았었다. 매체가 달라질 때는 또 다른 '창조'가 따라와야 하는 법. 이번 뮤지컬은 그걸 잘 해냈다. 무려 체코까지 가서 촬영해온 영상과 현지 싱크를 100%로 맞추어서 갑절의 효과를 주었고, 적절한 배역의 변신도 시도했다. 돌아오는 길의 삽질을 포함해서 새벽 2시에 귀가하는 피곤함을 감수할 만한 작품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다시 책으로 가보자. 


내가 늦으면 그이가 노발대발할 게 분명한데, 이 모자를 쓰고서 난리를 피울 수는 없죠. 모자가 너무 약하거든요. 모진 말만 들어도 망가질 거예요. -102쪽

땀흘려 수고해서 일할 필요 없는 사람의 말장난이지만, 나름은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매너로 철저하게 무장한 헨리 경의 입발린 소리는 또 얼마나 달콤한가. 


"공작부인과의 약속이라면 누구와의 약속도 뿌리치겠습니다."


여자를 추켜세울 줄은 알지만 마음으로부터 존중은 하지 않는 이 남자의 다른 반응들도 지켜보자. 


"결혼이란 걸 아예 하지 말게, 도리언. 남자가 결혼하는 이유는 피곤하기 때문이지. 여자가 결혼하는 건 호기심 때문이라네. 피차 실망할 뿐이지." -109쪽


"여보게, 친구, 여성 중에는 천재가 없네. 여성은 장식적인 존재라네. 그들은 결코 중요하게 할 말이 없으면서 그래도 매력적으로 말을 하지. 여성은 물질이 정신을 이긴다는 걸 보여주는 존재라네. 도덕보다 정신이 우위에 있다는 걸 남성이 보여 주듯이." -109쪽


오늘날 이렇게 소설을 쓰면 돌 맞겠지만,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을 테지. 이런 사람들도 똑같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할 테지만...


"일생에 단 한 번만 사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천박한 사람들이라네. 그들이 헌신이라든지 정절이라고 부르는 것을, 난 무기력한 습관이나 상상력의 부족이라 부른다네. 감정적인 삶에서 충실함이란 지적인 삶에서의 일관성과 같다네. 그건 단지 실패를 자백하는 거소가 마찬가지일세." -112쪽


매력은 있지만 많이 오만하고 게다가 편협한 사고를 가진 19세기의 남자를 21세기 뮤지컬에선 잘 포장해서 바꿔주어서 다행이다. 그렇지만 그의 말들에 귀 기울이게 될 때도 분명히 있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처음에는 늘 자신을 속이는 것에서 출발하지. 그리고 맨 마지막엔 다른 사람을 속이게 된다네. 그게 바로 세상에서 낭만이라 일컫는 것일세." -116쪽


누군과와 사랑에 빠질 때, 누군가의 매력에 풍덩 빠질 때는 장점만 보였다. 만나서 즐겁고 광대가 터질 것처럼 신나게 웃고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 관계가 좀 더 진전되면 다른 면들이 보인다. 잘 안 맞는 부분도 생기고 싫어지는 부분도 당연히 생긴다. 관계에 위기가 발생한다. 애석하게도 여기서 관계가 끝날 수도 있지만, 그 갈등을 시간의 도움을 받아서 인정(해결은 힘들 것이다)하고 나면 다시 평안함이 찾아올 것이다. 나는 이 관계가 나를 속이고 당신을 속이는 관계가 되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엔 추억이 많다.


늙지 않고 유지되는 아름다움이 큰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대신 추악하게 변해가는 초상화는 큰 스트레스가 되었을 것이다. 초상화를 골방에 가둬놓고 그림을 보지 않는다고 잊혀지진 않는다. 그러기엔 양심은 지나치게 정직하고 우리의 기억력은 쓸만하다. 내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초상화라니...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라든가, 내 마음을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의 사람들 이야기를 종종 하게 되지만, 내 마음을 내가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빼박도 못하는 자기검열이지 않은가.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는 불멸의 생을 사는 자신을 저주받은 존재라고 여겼다. 반지의 제왕에서 아르웬의 아버지는 인간을 사랑한 딸을 용납하지 못한다. 에드워드는 평생의 반려를 자기와 같은 족속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해피엔딩이 가능했다. 아르웬은 아라곤이 생을 마감한 이후의 길고도 긴 일생을 그리움으로 보내야 한다. 인간 아닌 그들의 삶과 그들의 특별한 능력이 분명 부럽기는 하지만, 삶은 뭐든 자연스러운 게 최고라고... 가지 못한, 갈 수 없는 길의 아쉬움을 달래 본다. 


죄를 지었으면 속죄를 해야 하고 응당 벌을 받아야 한다. 자격이 없으면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 배터리도 5%밖에 안 남아 있으면 갈아 끼우는 게 순리인 것처럼. 그 순리가 누군가에게도 좀 전달됐으면 한다. 도리언 그레이의 비극적 결말을 떠올리면서...


헨리 경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는 원칙적으로 항상 늦었는데, 시간을 엄수하는 것을 시간을 도둑맞는 것으로 여기는 때문이었다. -105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문과도 같은 인생에 지나치게 많이 투자해서 결국 망하지. 시에 자신을 투자해서 망한다면 그건 영광일 거야. -117쪽

도리언은 그 책의 후반부를 읽을 때면 잔인함에 가까운 기쁨을 느꼈는데, (아마도 모든 기쁨이란 것에는 모든 쾌락과 마찬가지로 잔인한 데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세상 속에서 자신이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던 것을 잃어버리게 된 사람의 슬픔과 절망이, 다소 과장되었다고는 해도, 정말로 비극적으로 서술되어 있던 까닭이었다.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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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11-13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도 그림 잘 그리시네요.^^ 캔버스 안의 인물은 김준수인가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마노아 2016-11-13 23:35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서니데이님! 저건 포토존이에요. 제가 그린 게 아니라 컴퓨터로 작업해 놓은 그림 같았어요.^^
제가 저렇게 잘 그렸으면 좋겠습니다.
모처럼 집에서 시간을 보낸 하루였어요. 그 하루가 끝나가네요.
새롭게 시작하는 한주도 힘차게 화이팅해봅시다.^^

BRINY 2016-11-14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남아트센터에 저런 포토존이 있었나요? 2번 갔는데도 전혀 몰랐네요. 늘 헐레벌떡 표 찾아 입장하느라...

마노아 2016-11-14 21:26   좋아요 0 | URL
로비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줄 서서 사진 찍었어요. 저도 일행과 함께 찰칵~ ^^

2016-11-14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4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을 배운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6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시리즈가 여섯 권 있다. 내가 구입한 순서대로 읽었는데, 하필 세번째로 읽은 게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이었다. '하필'이라고 말한 것은 이 책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아직 읽지 못한 세권이 혹시 덜 만족스러울까 하는 기우 때문이다. 작년 12월 23일에 읽었으니 한달 여 만에 리뷰를 쓴다. 한해의 끄트머리에 읽었는데 작년 한 해 동안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좋았다. 역시 애거사 크리스티! 대가의 내공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앞서 읽은 시리즈의 두권도 그랬지만 이 작가의 인간을 향한 깊은 성찰에 크게 놀랐다. 단지 오래 살았다고 해서 갖춰지는 것이 아닌 인간을 향한 오랜 관찰과 애정이 그런 혜안을 낳은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보았다.


옮긴이가 정리한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오빠가 죽자 로라는 부모의 사랑을 받을 거라는 은밀한 기대에 들뜨지만 갓 태어난 동생에게 또다시 부모의 사랑을 뺏긴다. 로라가 하느님에게 동생을 천국으로 데려가달라고 기도하던 날 밤에 집에 화재가 나고, 로라는 위험에 처한 동생 셜리를 구하면서 죄책감과 강한 사랑을 느낀다. 이후 로라의 삶은 오직 셜리에 대한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채워지고, 이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애거사 크리스티는 사랑을 주고받는 것의 본질을 탐구한다. -312쪽


작품 초반 죽은 큰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살아남은 아이를 향한 아쉬움(?)이 참으로 사실적으로 다가와 몹시 섬뜩했다. 엄마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오빠의 사랑을 이제는 독차지할 줄 알았는데, 그건 곧 이어 태어난 동생의 몫이라는 걸 알게 된 로라가 동생이 그만 죽었으면 하는 바람은 또 얼마나 현실적으로 다가왔던가. 그랬기에 화재가 나던 날 벼락같이 찾아온 사랑의 감정으로 동생을 살려낸 로라의 헌신은 몹시 소설적이었고 영화적이었는데, 그게 또 이해가 갔다. 그럴 수 있겠다는 리얼리티를 작가는 결코 놓치지 않는다.


내가 구해냈으니 내것이라는 생각을, 어린 로라가 했다. 이웃에 사는 늙은 역사학자 존은 이런 로라가 걱정이 되어 꼭 필요한 조언들을 해주지만 로라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훗날 셜리가 로라의 충고를 흘려들은 것처럼 말이다. 


부모님마저 사고로 돌아가시고 셜리와 로라, 두 자매는 이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식구가 되었다. 로라는 셜리의 보호자로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 하지만 사랑에 눈이 먼 셜리는 언니의 충고나 조언에 도리어 불행함을 느낀다.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은 것도 아니고 약혼 기간을 조금 가지고 결혼을 하라는 것마저도 거부하는 성급한 남자의 구애에 셜리는 넘어갔다. 그 인간은 겉만 번지르하고 책임감은 눈곱만큼도 없으며 가족이든 아내든 남의 피 빨아서 기생할 스타일이라고, 독자인 내가 귀에 대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제 팔자 자기가 꼬는 데 막을 방법이 있겠는가.


독자는 막을 수 없었지만, 언니인 로라는 셜리가 계속해서 불행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아니, 막으려고 하였다. 그것이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이 책의 원제인 '짐'이 된 것이다. '사랑을 배운다'라는 한글 제목도 나쁘지 않다. '짐'이 소재라고 한다면 '사랑을 배운다'는 주제랄까. '짐'이 더 마음에 와닿기는 하지만, 제목으로서는 다소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로라로 시작되었던 이야기는 중간부분에서 온통 셜리와 셜리가 만난 세 명의 남자 이야기로 채우고, 마지막은 다시 로라가 닫는다. 세번째 남자 루엘린이 자신의 가책을, 죄의식을, 그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든 해내려고 애쓰는 로라에게 당신은 보상할 수 없다고 소리쳤을 때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결국엔 그것이 나를 위한 변명임을, 회피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많은 것들. 반성하고, 변명하고, 자책도 해보지만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사실들이 있다. 그저 인정하고,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그렇게 살아간다. 우리 인간은.


"당신은 계속 살아가야 해요, 로라. 과거를 잊지 말고 마음에 담아둬요. 과거를 묻어버리지 말고 그것이 있어야 할 당신 기억 속에 간직해요. 당신은 벌이 아니라 행복을 받아들여야 해요. 그래요, 행복! 이제는 주는 것을 멈추고 받는 법을 배워요. 신은 오묘하게 우리를 다루십니다. 전 그분이 당신에게 행복과 사랑을 선물하려 한다고 확신해요. 겸손하게 받아들여요.” -307쪽


어쩌면 당신은 '벌'을 받을 때 더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 그런 당신이 '행복'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이 주시는 벌일 수도 있다. 그 앞에 저항하는 것은 죄를 청하는 겸손한 모습이 아니라 도리어 갚을 수 없는 것을 갚으려 드는 오만함일 수도...


그토록 오랜 시간 어깨를 눌렀던 짐 하나를 덜어내자, 꼭 그만큼의 사랑의 무게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원제 '짐'은 얼마나 오묘한가. 그리고 그걸 '사랑을 배운다'로 의역한 것은 얼마나 절묘한가.


옮긴이는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노작가는 우리가 행복을 당연시하고 불행을 엄청난 시련으로 느끼지만 사실 불행 또한 삶의 한 축일 뿐이며, 타인의 불행을 떠안을 수 없으니 우리는 그저 스스로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313쪽


독자 역시 크게 공감한다. 묵묵히 그 길을 걸아가라. 당신의 몫을 감당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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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1-22 0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아직인데..읽고싶네요..딸은 딸이다.
봄에 나는없었다 .하나더있는데..세권 보았는데..
저도..

마노아 2016-01-24 01:50   좋아요 1 | URL
아직 더 읽을 게 세권 있다는 게 참 기뻐요. 역시 대가다 싶더라구요.^^

[그장소] 2016-01-24 01:59   좋아요 0 | URL
저도 ㅡ이 심리자전소설같은 쪽 이 너무 맘에 들어서 아끼고 싶기까지...마음이 왔다갔다...
반이나 남았...반밖에..안남았...이런 마음이요!^^

마노아 2016-01-24 19:11   좋아요 1 | URL
하하핫, 이심전심이에요.^^

moonnight 2016-01-22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못 읽었는데 작년 한 해 책들 중 가장 좋으셨다니! 남겨두어서 행복하네요.^^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마노아 2016-01-24 01:51   좋아요 1 | URL
보통 소설 책은 다 읽으면 팔기 바빴는데 이 책은 너무 좋아서 선물을 했어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분한테요. ^^

[그장소] 2016-01-24 19:15   좋아요 0 | URL
아..프필 대문이 바뀌셨어요?!^^
마노아 님도 그렇고 새해 ㅡ새얼굴 ㅡ?

마노아 2016-01-25 20:46   좋아요 1 | URL
바꾼지 좀 되었지만, 새 해 새기분 맞아요~ 내님, 우리 공장장님, 공연장 뒷태 모습입니다.^^ㅎㅎㅎ

[그장소] 2016-01-25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공장공장장~캬~!승환 옹~!!을!!!^^저도 좋아해요.
한참 뒤늦긴 하지만~!!^^ㅎㅎㅎ대박 기운~~~!

마노아 2016-01-26 21:16   좋아요 1 | URL
오늘도 공연 예매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포레버 승환옹이에요~ (>_<)

[그장소] 2016-01-26 23:47   좋아요 0 | URL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생각해보니 그당시엔 어디서건 음악이 흘렀기때문에 고루들어서 대부분의곡을 알게되는 일이 많았어요. 앨범들을 전부 찾아 보니..너무너무 새로운거죠..세상에...ㅎㅎㅎ

마노아 2016-01-27 00:31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예요. 딱히 외우려고, 익히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는 노래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런 환경이 아니네요. 미디어 환경은 발전했지만 추억은 덜 쌓이는 구조예요. 아쉽네요.^^

[그장소] 2016-01-27 02:04   좋아요 0 | URL
음 ㅡ소음공해 어쩌고 하는데..그게 외부에서 조용하니..오히려 내부 ..그러니까 층간 소음같은 것에 연연하게 되는게 아닌가 싶기도하고 너무 적당한 선이란 게 없어요.
뭐든 극단을 오간달까요..
 
목격자들 1 - 조운선 침몰 사건 백탑파 시리즈 4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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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조선 후기 정조 연간, 전국의 조운선이 동시에 침몰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임금은 홍대용과 의금부 도사 이명방에게, 그리고 꽃에 미친 사내 화광 김진에게 이 일을 파헤치라 명을 내린다. 아무리 험한 바다라 할지라도 어떻게 똑같은 시기에 배들이 한꺼번에 침몰할 수 있을까. 그것도 세곡을 실은 조운선만! 누가 봐도 음모가 있는 사건이었다. 필시 세곡을 빼돌린 자들이 있으리라. 그러나 권력과 비리의 카테고리는 너무도 실한지라 아무에게나 일을 맡길 수 없다. 임금이 이들에게 일을 맡긴 건 그들이 부정을 파헤칠 만큼 명석하고 또 정직한 자들이라는 걸 알고 있기도 하거니와, 여차하면 잘라내고 입 씻을 만큼의 세력붙이라는 것도 한몫을 차지했다. 그런 게 또 권력의 비정한 속성이리라. 


이미 열녀문의 비밀, 방각본 살인 사건, 열하광인 등 '백탑파' 시리즈는 캐릭터들에 생명력을 부여하며 장수한 전력이 있다. 거기에 덧붙여 이 책이 나오게 된 지난 해 4월 16일의 사고는 작가를 더 책찍질 했음이 분명하다. 


호학 군주 정조와, 지음 홍대용, 그리고 명민한 김진과 우직한 이명방은 각각의 성정에 맡는 대사와 활동들로 독자를 즐겁게 했다. 



별 하나가 빛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둠이 깔려야만 하는지를, 어떤 이들은 가르쳐 주어도 알지 못한다. 



이미 있었던 끔찍한 사고를 거울 삼아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 차원에서 예방을 해왔다. 무릇 국가란 그런 일을 해내는 조직이다. 그래야 마땅하다. 그게 정상이다.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라. 티끌만한 사실도 바다에 가라앉아선 아니 될 것이야. 명심하렷다!


이렇게 단호한 목소리를 내는 군주가 우리도 필요했다. 민주공화국에서 본인이 군주인 줄 착각하는 지도자는 있는데, 헤아려 품고 지키려드는 백성은 이곳에 없구나.


작품이 시작할 때 76년 만에 도달하는 혜성을 관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때 김진이 평생 품어온 여인의 이름이 소개된다. 그 여인이 1권 253쪽이 되어서야 등장한다. 하핫, 오래 기다렸다. 등장한 두 명의 여인들은 조선의 평균치 여성들 같지 않았고 톡톡 튀는 발랄함이 있었다. 그야말로 '소설'다웠다. 괜찮은 캐릭터들이었지만, 그 캐릭터들을 소모하는 방식은 다소 진부했다. 내가 늘 염려하는 '용두사미' 진행처럼. 


작품 1권은 무척 재밌게 읽었다. 특히 기대치 않았던 백동수의 등장은 '두둥' 음향 효과가 들릴 지경이었다. 


부딪혀서 침몰한 게 아니라고 단언할 때는 천안함이 떠올랐고, 불법 증축한 배에서는 당연히 세월호가 떠올랐다. 작가의 의도적인 배치였으리라. 그런데 작가는 그 '사건' 이후라고는 밝혀도 세월호의 'ㅅ'자도 꺼내지 않는다. 꼭 그렇게까지 입을 닫아야 했을까? 누가 봐도 거기서 시작한 이야기임을 알게 썼음에도? 


작가의 선택이니 존중하자. 1권을 더 재밌게 읽었고, 2권은 다소 김이 빠지긴 했다. 사건의 부피를 많이 키웠는데 다소 맥빠지게 마무리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래서 부러 2권이 아닌 1권에 리뷰를 쓴다. 1권은 분명 별 다섯의 재미를 충분히 주었으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법! 분명 목격자들이 있을 것이다. 거짓을 언제까지 저 바다에 가라앉힌 채 숨죽이고 살지는 못할 것이다. 언젠가는 진실이 떠오를 것이다. 그걸 기다리는 게 몹시 힘들지만, 반드시 그 끝을 볼 거라고, 봐야만 한다고 다시 힘주어 얘기해 본다. 그게 진실의 힘이고 속성이고 의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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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5-11-10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탑파 시리즈 신작이 진작에 나와있었군요! 알라딘 마법사가 왜 이걸 추천안해줬는지!

마노아 2015-11-12 13:28   좋아요 0 | URL
얼마 뒤 개봉하는 조선마술사도 원작이 김탁환이더라구요. 이분은 저작권 수입 엄청나겠어요. ^^
그래도 백탑파 시리즈가 가장 애정이 가요.^^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 제1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62
김진희 지음, 손지희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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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인 동우는 등교길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염라대왕 앞에 불려간다. 그런데 동우가 당한 사고는 저승사자의 실수 때문이었다. 이승으로 되돌아가야 하지만 그러려면 '노잣돈'이 필요하다. 가까운 사람에게 노잣돈을 급하게 빌려야 했는데 하필 그 대상이 같은 반 친구인 준희다. 준희는 약골 녀석으로 동우가 툭하면 '삥' 뜯는 왕따의 대상이었다. 일단 살아 돌아가는 게 중요했으므로 노잣돈을 빌렸는데, 이걸 갚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돈'을 준다고 해서 저승사자의 장부에 기록된 빚이 줄지를 않는다. 게다가 누구한테 설명할 수도 없고 마감일(49일)은 다가오고, 동우는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이 작품이 훌륭한 건 '가해자'가 주인공이 되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가해자의 심리가 이해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괴롭힐 마땅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일을 해내는 그 뻔뻔한 맨 얼굴을 보게 된단든 것이다. 이건 참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성악설'이 맞는 게 아닐까 싶은 사람들이 뉴스에서 심심찮게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일상 생활 속에서도, 게다가 어린아이의 얼굴로 그런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을 찾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이런 학생들이 종종 나온다. 누가 봐도 명백한 가해자. 그런데 본인은 '장난'이었다고 한다. 용인 벽돌 투척사건처럼 그 동기가 의심스러운 사례 말고, '진심으로' 본인은 모르는 가해자들이 있다. 그래서 상담이 필요하고 교육이 필요하다.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어!락 윽박지르고 싶어지지만, 얼척없게도 정말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학생들이, 동우 같은 아이들이 있다. 이 작품에선 그런 동우가 노잣돈을 갚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어떤 게 상대방을 불편하게 했는지 스스로 알아가게 했다는 것이다. 


동우는 항상 자기 입장에서 생각했다. 급식 당번일 때 자기가 좋아하는 맛있는 반찬을 준희에게 듬뿍 담아주면서 노잣돈을 조금이나마 갚고자 했다. 하지만 준희는 고기 반찬을 싫어했다. 동우 입장에선 어떻게 고기를 싫어할 수가 있어! 싶지만, 그건 자기 기준이다. 친구들과 축구할 때 팀으로 껴주고 생색 좀 내려 했는데 준희는 뛰어노는 걸 안 좋아한다. 조용히 책보는 걸 더 좋아한다. 누군가는 그렇다. 그런 다양성이 있다는 걸, 서로의 취향이 다르다는 걸 동우는 처음으로 알아차리고 또 인정하게 된다. 뭐, 다양성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 국정교과서를 만들려고 하는 그런 나라에서 동우같은 아이가 나오는 게 별로 이상하진 않다만...;;;;


준희뿐 아니라 친한 친구들과의 관계도 삐걱거린다. 지금껏 해왔던 나쁜 습관들, 나쁜 행동들이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왔다. '억울한' 게 무엇인지를 진심으로 알아차릴 순간들이 온다. 동우가 갚아야 할 노잣돈은 참으로 많았다. 다행히 아름다운 결말을 도출해 내지만 동우처럼 저승 구경 좀 하고 노잣돈 좀 갚아야 할 아이들은 동우 주변에도 더 있었다. 동우와 같은 바람직한 결말이 동화 속에만 있지 말고, 제발 현실 세계에도, 무엇보다도 나쁜 어른들에게도 생겼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저승사자는 뭘 하나. 저 인간들 좀 안 잡아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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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제3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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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샀던 건 순전히 표지 때문이었다. 강렬한 노란색이 유혹적으로 보였는데 제목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뭐랄까. 어떤 간절함이 느껴졌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 말이다. 책을 사고 얼마 뒤 이 작품이 큰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홋, 굽이굽이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조건들을 계속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냉큼 읽어야지!


제목에서 내가 느낀 것은 장편 소설이었는데 단편 소설집이었다. 아핫, 역시 나의 감은 역시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군..;;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나 역시 구병모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위저드 베이커리'였다. 당시 그 작품이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과도한, 혹은 의도적인 희망 만들기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늘 끝난 드라마 '여왕의 꽃'을 화장품 바르면서 1분 정도 보았는데 악행을 지속했던 인물들이 인과응보 형식으로 벌을 받아서 비참한 형편이 된 게 묘사되었다. 으레 그렇듯이 이번에도 권선징악형 해피엔딩인가 보다. 사실, 현실처럼 좋은 놈은 계속 안 풀리고 나쁜 놈은 승승장구하는 내용으로 드라마가 끝난다면 방송국 홈페이지가 마비될 테지.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과 동떨어지게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구성으로 그리하여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끝나는 것도 너무 후지지 않던가. 그런 연장 선상에서 구병모 작가의 책들이 좋았다. 새침하고 시크하고 날카로운 이야기들의 서릿발 말이다.


물론,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고, 그 후유증으로 읽고 나면 우울해질 수 있다. 더군다나 작가님의 문장 스타일은 길게길게길게 이어진다. 문장이 마침표를 찍지 않고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의도된 문장 스타일이지만 이런 글은 읽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안 그래도 너저분한 현실의 고리들을 계속해서 보여주는데, 문장마저도 숨이 턱 막히게 만드니 책을 읽으며 내가 소모되는 느낌이 드는 게 유일한 단점이다. 그런데 여러 권을 읽는 동안 계속 이런 스타일을 고수하시는 걸 보니, 작가님의 소신이라고 봐야겠다. 독자가 나름의 완급을 조절해서 알아서 읽을 수밖에. 그런 의미로 이 책이 단편집인 건 다행이었다. 쉬어갈 호흡을 마련해 주었으므로.


8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의 내력에 주목하게 되었다. '여기 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에서는 대학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는 을 중의 을이 되어버린 시간 강사가 나오고, 그밖의 작품에서도 근거 없는 폭력에 노출되어버리는 사회복지사와 비서가 등장하고, 사회의 말단에서 언제든지 소모품으로 사라질 것만 같은 경비원, 콜센터 직원 등이 출연한다. 이들은 단지 설정 상의 바닥 계급이 아니라 작가의 치밀한 인터뷰나 사전조가사 뒷받침 되었을 것 같은 디테일함을 갖추고서 각자의 위치에서의 고단함을 보여주는데, 그 모든 현실들이 내일처럼 다가올 만큼 현실적이었다. 그것이, 몹시 슬펐다. 


그가 피 흘리며 구호도 외치는 사람이었을 적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쇠지레로 쑤시거나 구둣발로 걷어질러 해산을 종용했던 용역들이 주위에 집결했지만, 이제는 누구도 섣불리 그를 철거할 염을 내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225쪽


살아서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한 그가 하루아침에 덩굴식물의 형태로 괴상하게 죽어버리자 그 죽음 앞에서 주춤거리는 자가 나타났다. 멀쩡한 사람의 얼굴로서는 해내지 못할 일이었다. 이런 현실 인식이 슬프다. 그러나 이런 죽음이 도처에서 나타나자 이것도 무뎌져서 한때 사람이었던 그 사체는 쓰레기처럼 취급된다. 


흉흉한 소문이 돌아 일시적으로 매출이 급감하여 한때 문을 닫을 뻔했던 패션몰은 각종 공격적인 이벤트와 모기업의 조직적 뒷받침으로 기사회생해서 오늘도 순조로운 영업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저가 패션몰 업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이는 툭하면 픽픽 쓰러지거나 부서지거나 덩굴식물이 되어버리는 나약한 사람들보다는 자본의 흐름이 훨씬 정직하고 믿을 만하며 삶을 이루는 근간이 된다는 진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사례로 남게 되었다. -231쪽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우리나라가 OECD자살률 1위를 또 기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인구 10만 명당 29명 꼴이란다. 이는 우리가 1위를 가로채기 전까진 부동의 1위를 자랑하던 일본의 18명 보다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숫자다. 작품 속에서 덩굴 식물이 되어버린 사체를 치우는 미화원은 건조한 목소리로 이 일을 설명한다. 


"보기에 좀 불편해 그렇지, 못 본 척하고 가만있으면 지낼만은 합니다." -238쪽


미화원의 심드렁한 목소리에서 생명 경시 사상이 느껴진다고 성토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만연한 죽음이, 특히나 노동자의 죽음이 지나치게 익숙해져서 그 모든 걸 배경화면처럼 스윽 보고 지나가는 것은 아닌지, 그런 무관심이 우리에게 깊숙이 자리한 것은 아닌지 섬뜩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마지막 단편에서 택시에 오른 콜센터 계약직 직원은 자신의 집안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주 못사는 건 아니고 두 분 다 평범한 서민층이에요, 옛날 정치경제 교과서에서는 중산층이라고 주입시켰던 그 서민층요. 딱 먹고살 정도는 되고 그 이상 행복해지려거나 사치를 부리려면 다른 것을 반드시 희생해야 하는 그런 계층이죠.  -257쪽


적나라한 묘사다. 몇 해 전인가, 회원 수가 아주 많은 유명 주부 사이트에서 중산층이란 어떤 계층인가라는 질문이 베스트 게시물이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사람들이 댓글로 표현한 중산층의 재산 규모에 입이 쩍 벌어졌다. 내 기준으로는 '재벌급'인 사람들이었는데, 그 정도 규모의 돈은 있어야 '중산층'이란다. 아니 내집 하나 있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밥먹고 살 정도면 중산층이 아니었던가? 그럼 대한민국은 죄다 서민만 있고 아주 조금의 중산층과 극소수에 해당하는 자산가들이 사는 나라였던가? 내가 부러워했던 정도가 기껏해야 이 나라에서는 서민이라는 이 씁쓸한 현실 인식에 웃플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마지막 단편의 인물은 혼자서 모든 대화를 주르륵 쏟아내는데, 서른을 코앞에 둔 이 젊은 여성의 한맺힌 듯한 수다에는 공감 가는 내용이 너무 많아서 몇 번이나 한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지나친 리얼리티는 독자를 통곡하게 만든다. 빌어먹을 현실이여!


이렇듯 절절한 사랑 얘기가 실려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가슴 저미며 책을 읽어야 했다. 그래서 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나 고르라면 단연코 두번째 수록작인 '파르마코스'다. 앞을 못보는 소년을 붙잡고 온 마을이 다 잠기도록 긴긴 이야기를 끝내지 않았던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현실이라면 언감생신 결코 내릴 수 없는 결정, 누군가 그런 시늉이라도 한다면 결사반대했을 결정이지만, 그것이 문학이라면... 대리만족하는 마음으로 어쩐지 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흡사 유시진 작가님의 '폐쇄자'처럼, 세상을 닫을 능력이 있다면, 이 세상이 마땅히 닫혀져야 할 만큼 더럽고 악하고 무의미하다면, 기꺼이 그 결정을 내리는 절대적 힘을 지닌 사람의 결정을 지지할 만큼, 마음이 슬퍼졌기 때문이다. 내가 내릴 수는 없는 결정, 내 손으로는 끊을 수 없는 세상의 고리. 그런데 그걸 해낼 누군가가 있다면 어쩐지 지지하고 싶어지는 그런 슬픈 마음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서 또 아프다. 아마도 그런 마음이 나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작가님이 76쪽에 인용한 이 구절이 더 마음을 파고든다.


어느 곳이라도 좋다! 어느 곳이라도!

그것이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


보들레르


덧글) 69쪽 첫번째 줄의 문장이 부자연스럽다. 

꿀벌은 수분을 시키기 위해 취하며


>> 시키기 위해가 맞는가?? 내가 읽기에는 좀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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