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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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역사교사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 이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주인공은 어느날 동료교사의 추천으로 비디오를 한편 빌려보았다. 영화에 대한 감상은 그닥 만족스럽지 않았으나 어느 순간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으니, 조연 중의 주연으로 등장한 한 배우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것이다. 심지어 오년 전 자신이 수염을 길렀을 때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했다. 지난 앨범을 찾아가면서까지 확인해본 일이다. 잠이 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던 이 사나이의 지나치게 조용한 일상에 큰 파문이 인 것이다. 


작품 속에서는 비디오를 돌려보는 시절이어서 영화처럼 간단한 구글링으로 상대 배우가 누구인지 금세 알아차리지 못한다. 남자는 아주 집요하고 끈질기게 자신과 똑닮은 배우를 찾아낸다. 해당 영화사의 영화를 대거 빌려서, 마지막에 나오는 자막의 이름을 대조해서 해당 배우가 나오지 않은 작품의 이름은 지워가면서 범위를 좁혀가는 것이다. 


주제사라마구 특징이 문장이 아주 길다. 지칠만큼! 눈 먼 자들의 도시나 눈 뜬 자들의 도시는 그것도 매력이었는데, 이 작품이 그 작품만큼 재미가 없어서인지 아주 힘들었다. 읽다가 말장난에 지쳐서 나가 떨어지는 기분이다. 


당신도 나와 똑같은 일을 겪을 겁니다,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것이 당신의 얼굴인지 내 얼굴인지 결코 알 수 없을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아무래도 당신이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 흉터를 생각해 봐요, 만약 내가 미쳤다면, 아마 당신도 미쳤을걸요.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글쎄요, 경찰이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질까요, 내가 한 일이라고는 다니엘 산타클라라라는 배우와 통화를 하려고 전화를 두 번 건 것뿐인데, 내가 그 배우를 협박한 것도 아니고, 모욕한 것도 아니고, 해를 끼친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정확히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는 거죠. 어쨌든 아내와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죠, 그거면 충분해요, 이제 전화 끊겠습니다. -246쪽


하여간 이 남자의 고단한 작업이 끝나고,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흉터까지 지닌 이 조연 배우를 만나기까지, 정확하게 이 책의 절반을 소요한다. 긴 기다림이 필요했다. 이쪽이야 이미 충격을 받았고, 마음의 준비도 했지만, 상대방은 어디 그렇던가. 그러나 나와 똑같은 존재가 세상에 있다는데, 만나고 나면 그것으로 인해 도리어 일상의 평온이 깨질 거라고 예상이 가능하다고 해도 어떻게 그 궁금증을 포기하겠는가. 나라도 당연히 만난다. 그리고 만나지 않으면 그 불안은 어쩔 것인가? 나와 똑같이 생긴 생명체가 버젓이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도 좀 무섭지 않은가? 클론도 아니고? (클론이면 더 무섭겠지만...)


배우 다니엘 뿐아니라 아내 헬레나도 혼란에 빠져 있다. 남편과 똑같다는 그 사람, 이미 확인한 바로는 목소리도 똑같다. 그런 사람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만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이미 상대방은 그들의 머릿속을 점령했다. 


그는 아침식사를 준비하려고 부엌으로 갔다. 아내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 사람이 우리 머릿속에 들어와 있어. 그녀는 원래 그렇게 단호하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단호한 것은 아니다. 간결함이라는 재능을 갖고 있을 뿐이다. 짧고 함축적이고 간결한 말 네 마디로 다른 사람 같으면 사십 마디를 말해도 할 수 없는 말을 하는 것. -258쪽 

그녀가 눈을 떠보니 방 안이 거의 어둠에 가까운 어스름 속에 잠겨 있었다. 남편의 느리고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갑자기 집 안에서 다른 숨소리가 들려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집 안으로 들어와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거실일 수도 있고, 부엌일 수도 있고, 복도로 통하는 문 뒷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 존재가 바로 여기 있었다. 두려움으로 몸을 떨면서 헬레나는 남편을 깨우려고 팔을 뻗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이성이 그녀를 제지했다. 여긴 아무도 없어,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바깥에 누가 있을 리가 없어, 그냥 내가 지레 겁을 먹은 거야, 가끔 꿈이 그 꿈을 꾸고 있는 뇌에서 빠져나오는 경우가 정말 있지, 사람들은 그런 걸 환영, 환상, 예감, 징조, 다른 세상에서 온 경고라고 해, 숨소리를 내며 집안을 돌아다니는 사람, 방금 내 소파에 앉은 사람, 커튼 뒤에 숨은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내 머릿속의 환상이야, 나를 향해 곧바로 다가와서 내 옆에서 자고 있는 이 남자와 똑같은 손으로 나를 어루만지며 똑같은 눈으로 나를 보는 사람, -252쪽


두 사람은 기어이 만났다. 만났고, 경악했다. 심지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온 아폰소마저도 충격을 받았다. 두 사람은 이 놀라운 사태 앞에서도 우스운 기싸움을 벌인다. 바로 민증깐 것이다. 


그래, 태어난 시각이 언제죠. 오후 두 시예요. 안토니오 클라로가 유감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보다 삼십 분 전, 아니 정확히 말해서 십삼시 이십구분에 머리를 내밀었어요, 미안하지만 당신이 태어났을 때 내가 이미 세상에 있었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복사본이에요.-302쪽 


일방적으로 '복사본'이라는 호칭으로 불려버렸다. 졸지에 클론으로 전락해버린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로 먼저 자신이 원조라고 강요할 만큼, 다니엘 쪽이 더 흔들렸다. 그랬기 때문에 무리수를 두었고, 그것이 그들의 파멸을 불러왔다. 자신이 원본이라고 우기는 순간, 상대방의 여자 역시 내 여자로 만들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훑고 지나간 전율이 사본이라는 첫 번째 단어가 아니라 복사본이라는 두 번째 단어 때문에 생겨난 것임을 의식했다. -331쪽 


이제부터는 작품이 좀 더 흥미로워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작들의 아우라만큼 빛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해서 '그을린 사랑'을 연출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에너미'는 훨씬 흥미롭고 역설적이고 충격적인 작품을 만들어 냈다. 소설로 시큰둥했던 반응을 오오! 하며 등받이에서 몸을 떼게 만들어 냈으니까. 


소설은 정말 나와 똑같이 생긴 유기체로서의 도플갱어를 만들어 냈지만, 영화는 그보다 나의 욕망이 투여된 또 하나의 자아로서의 도플갱어를 표현해 냈다. 전제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결말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탄탄한 원작이 있기 때문에 그걸 뛰어넘는 패러디도 나오는 거겠지만, 그래도 내 저울은 영화 쪽으로 더 기울었다. 그래도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봤기 때문에 더 수월하게 다가간 것은 맞다. 영화가 친절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방금 떠오른 이 생각은 마치 오랫동안 지연되다가 샤워기에서 떨어져내린 축복 같았다. 세 여자가 발코니에서 벌거벗고 즐긴 샤워(『눈먼 자들의 도시』에 나온 장면-옮긴이)가 아니라, 안전이 언제 깨어질지 몰라 불안한 아파트에 혼자 갇혀 있는 이 남자가 누린, 정화의 샤워. 물과 비누를 가지고 연민 어린 손길로 그의 몸을 더러움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그의 영혼을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샤워. 그는 일종의 향수와도 같은 고요한 마음으로 마리아 다 파즈를 생각했다. -369쪽


이런 식으로 전작의 한 대목을 가져오는 장치는 소설가가 해낼 수 있는 하나의 특권이 아닐까. 그 작품을 즐겁게 본 독자로서도 반가운 장치다. 


'눈 먼 자들의 도시'와 '도플갱어' 그리고 '동굴'까지 포함해서 주제 사라마구의 '인간 3부작'으로 꼽는다. 흠, 기왕이면 세트를 맞춰서 동굴까지 읽어야 하지 않을까 잠시 생각이 스친다. 모두 인간의 내재된 욕망, 욕심, 진심... 이런 것들이 보였다. 동굴에선 무엇을 찾아야 할까? 몹시, 철학적인 느낌이다.


혼돈은 해석되기를 기다리는 질서일 뿐이다.

-『반대의 책』                                          -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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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8-28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으면서 제가 보지 못한 영화 [에너미]를 떠올렸거든요. 혹시 그 영화가 이게 원작인가? 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맞네요. 저도 에너미를 보도록 해야겠어요.

마노아 2014-08-29 09:17   좋아요 0 | URL
묵혀둔 책을 영화 보기 전에 보려고 부랴부랴 읽었어요. 근데 그러고 또 한참 지났네요. 감독에 대한 애정 때문에 역으로 책을 보게 된 경우예요.^^

아무개 2014-08-28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8년도인가 그쯤에 눈먼자들의 도시를 친구에게 선물 받았었어요.
뭐 이렇게 재미없고 두꺼운 책을 나더라 읽으라는거냐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십년 넘게 책장에 꽂혀만 있던 책은 얼마전 파지 할머니 손으로 넘어 갔지요. ㅜ..ㅜ

이 책 주었던 친구가 책을 참 많이 읽던 녀석이었어요. 데미안도 고딩때 이놈땜시 읽고 이게 뭔소리야 싶었던 기억이...
그러고 보면 저는 책을 읽지 않아도 많이 읽는 친구들을 항상 좋아했던거 같네요.

마노아 2014-08-29 09:19   좋아요 0 | URL
앞서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는 재밌게 읽었는데, 이 책 읽을 때 꼭 그런 기분이었어요.
뭐 이렇게 재미 없이 두껍기만 할까...ㅎㅎ
책보는 친구가 많은 건 어쩐지 무척 기분 좋은 관계인 걸요. 우리도 독서 클럽 하나 만들어 볼까요? ^^ㅎㅎ
 
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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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35년이 소설의 시작이다. 아주 더운 여름날이었고, 세실리아의 오빠가 집에 돌아오는 날이었다. 세실리아는 아침부터 심경이 불편했다. 로비와 자꾸 부딪혔기 때문이다. 가정부의 아들인 로비는 캠브리지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아버지는 로비가 의대에 진학할 수 있게 6년 동안 학자금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캠브리지에서 몇 년 간 공부했지만 형편없는 점수를 받고 돌아온 세실리아와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그렇지만 세실리아가 로비를 불편하게 여겼던 것은 성적 차이에서 오는 자격지심 따위가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감정을 깨닫지 못했지만 둘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엇갈리고 부딪히고 소모적인 감정 싸움을 했다. 사과 편지를 쓰려던 로비는 세실리아를 마음 깊이 원하던 자신의 속내-굉장히 원색적인 표현-가 들어간 편지를 잘못 보내고 만다. 문제는 편지를 전달해준 게 세실리아의 열살 어린 여동생 브리오니였는데, 열세살 소녀가 이 편지를 몰래 봤다는 게 사건을 더 키웠다. 이 날 분수대에서 있었던 두 사람 사이의 갈등 장면, 이어서 편지, 마지막으로 서재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모두 목격했던 브리오니는 이 둘의 관계를 제대로 오해하고 말았다. 


생각은 늘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궁금증은 또다른 궁금증을 낳았다. 다른 사람들도 정말 그녀처럼 살아 있는 것일까? 예를 들어 세실리아 언니는 브리오니가 그렇듯이 자기 자신에게 중요하고 가치 있는 존재일까? 세실리아 언니가 된다는 것은 브리오니가 되는 것만큼이나 생생한 경험일까? 언니도 부서지는 파도 뒤에 진짜 자기를 숨기고 있을까? 그리고 손가락을 얼굴 가까이 대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봤을까? 아버지나 베티, 하드만 씨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일까? 그렇다면, 20억 명의 사람들이 20억 개의 목소리와 하나같이 중요하다고 아우성치는 20억 개의 생각들을 가지고 자신만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곳이었다. 이런 세상에서는 사실 어느 누구도 특별할 수 없었다. 모두 자신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아무도 특별하지 않았다. 만일 그렇다면, 브리오니는 겉으로는 대단히 지적이고 유쾌하지만 속으로는 그녀처럼 명민하고 은밀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기계들에 둘러싸여 있는 셈이었다. 그것은 불길하고 외로운 일일 뿐 아니라 실제로 그럴 가능성도 희박했다. 질서정연함을 좋아하는 그녀의 신경에 거슬리는 일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그녀처럼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그녀가 이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피부로 느끼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61쪽


상상력이 풍부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감수성이 풍부한 브리오니. 이날도 자신이 완성한 희곡으로 오빠를 환영하는 선물로 연극을 올리려고 했던 브리오니는 자신이 상상한 그대로, 그리고 믿고 싶은 그대로 로비를 오해하고 말았다.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낳아 버렸다. 한 사람, 아니 로비와 그를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을 모두 함께 파멸로 인도하는 참극이 되어버린 것이다. 로비는 억울한 누명, 그것도 강간범이라는 아주 치욕적인 죄명으로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불우한 환경이었지만 빼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탄탄한 앞날이 열려 있던 한 청년의 인생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는 문학작품을 많이 읽었으므로 더 나은 의사가 될 수 있으리라, 방대하고 폭넓은 독서를 통해, 인간이 겪어야 하는 고통, 병을 부르는 자기 파괴적인 어리석음이나 불운을 머리로 알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의사가 될 것이다. 탄생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에 겪게 되는 질병과 노화, 번영과 퇴락. 이것은 의학의 관심사이자 문학-예를 들어 19세기 소설-의 관심사였다. 넓은 아량과 앞을 바라보는 혜안, 따뜻한 마음과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의사 로비 터너는 운명의 기구한 장난과,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해보려는 인간의 헛되고 터무니없는 발버둥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희미해진 맥박을 짚고, 꺼져가는 숨소리를 들으며, 따뜻하던 손이 천천히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문학과 종교만이 가르쳐줄 수 있는 인간의 하찮음과 숭고함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136쪽


그 자신이 예상했던 것처럼, 이 비극적인 사건이 없었다면, 그는 보다 좋은 의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읽은 문학작품들이, 그의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이 그를 좀 더 인간적인 의사로 만들었을 거라고 부질없는 짐작을 해본다. 그러나 이런 예상되었던 모든 미래는 다 날라갔다. 미래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여기까지가 1부의 내용이고, 이 책의 거의 정확하게 절반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이제 시간은 5년을 뛰어넘어 1940년으로 향한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감옥에 갇혀 있던 로비는 징집되어 전선에서 날마다 사선을 오고 갔다. 안 그래도 황폐해진 그의 심신은 전쟁으로 더 심하게 망가지고 말았다. 제정신이라면 그게 더 이상할 터였다.


그가 앞을 막고 길을 건너가자 차 안에 있던 운전사가 경적을 울려댔다. 날카로운 경적 소리에 깜짝 놀란 로비는 순간 엄청난 분노에 휩싸였다. 참는 건 이제 충분해! 그는 몸을 돌려 운전석 옆으로 가서는 차 문을 강제로 열어젖혔다. (...) 왼손으로 그 남자의 멱살을 잡은 로비가 오른쪽 주먹으로 그 얼간이 같은 얼굴을 치려는 순간, 다른 억센 손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 사람은 적이 아니야, 대장.”

메이스 상병이 그의 손목을 잡아 차에서 떼어냈다. -307쪽


작은 불씨 하나만으로도 화르륵 불이 붙는 심리 상태가 되었다. 억울함이 가득한 그의 내면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다. 살아남는 것이 최고의 목표였고, 그러기 위해선 얼마든지 이기적인 사람이 되겠노라고 자신을 담금질하는 로비였다. 


군화를 벗자 발을 짓누르던 무게는 사라지고, 황홀한 편안함이 무릎을 타고 올라왔으므로 네틀이 뭐라고 해도 오늘밤에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몇날 며칠을 걸어서인지 바닥에 앉아서도 걷는 느낌이 들었다. 어둠 속에 앉아 있지만 갑자기 다리가 기울어지고 헛발질을 하게 되었다. 이제 다른 군인들에게 들켜서 뺏기는 일 없이 음식을 먹는 게 문제였다. 살아남으려면 이기적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만 있었고, 마음도 텅 비어 있었다. -366쪽


그러나 그런 마음에 죄책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전쟁이고, 그로 인해 발생한 사상자이건만, 도처에 널려 있는 시신을 접할 때마다 로비의 마음은 점점 더 지옥으로 변한다. 이럴 때 그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고 버틸 힘이 되어주는 것은 세실리아의 존재였다. 지금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세실리아. 


너는 항상 내 생각 속에 있어. 사랑해. 기다릴게. 돌아와. -301쪽


돌아오라는 이 말은 이 책 속에서 여러 번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시점에서! 영화에서도 come back이라는 말이 자꾸 반복되어 나온다. 로비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 혼미한 정신 속에서 한줄기 빛으로 잡고 있는 중심줄이기도 하다. 


2부는 전쟁터에 가 있는 로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세실리아의 이야기는 두 사람이 나눈 편지를 통해서, 로비의 기억과 마음 속에서 재생된다. 오년 전의 사건 이후 세실리아는 가족과 의절하고 간호사가 되었다. 로비는 그런 세실리아가 안타깝다. 자신과의 은원이 남아 있지만 자기에게 아무 빚도 없는 세실리아가 가족과 완전히 등지고 사는 것은 원치 않는다. 로비는 그런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따뜻한 사람. 착한 사람이 터무니없이 희생을 당했기 때문에 더 억울한 게 이 책의 단점이다. 그렇다면 로비와 세실리아를 지옥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3부로 가보자. 


이제 열 여덟살이 되어버린 브리오니는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죄를 지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캠브리지로 가기로 되어 있던 브리오니는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이 언니의 뒤를 따라 수련 간호사가 되었다. 이제라도 다시 잘못을 바로잡고 싶지만 언니는 자신이 보낸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는다. 전쟁 중의 병원이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공간. 이제 수련간호사에 불과한 브리오니는 끔찍한 피로와 싸우면서도 몸이 힘든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상념에 젖을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 시간은 온통 괴로움과 번민, 그리고 후회로 덮일 테니까.


그녀는 구속과 규칙, 복종과 잡일, 그리고 비난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이 전부인 삶에 자신을 내던지고 있었다. 그녀는 많은 수련 간호사들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고-이삼 개월마다 신입 수련 간호사들이 들어왔다-명찰에 새겨진 이름 외에 다른 자아란 없었다. 이곳에는 개인지도도 없었고, 지적 계발을 위해 밤잠을 설치는 사람도 없었다. 그녀는 호나자용 변기를 비운 다음 물로 씻어내고, 병실 바닥을 쓸고 윤을 내고, 코코아와 쇠고기 수프를 만들고,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물건을 가져오는 심부름을 하면서 자기 반성에서 해방되었다. (...) 그녀는 다른 일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늦은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창가에 서서 불이 꺼진 도시와 강을 바라볼 때면 병실뿐만 아니라 저 밖의 거리에도 퍼져 있는, 마치 어둠 같은 불안을 기억해냈다. 피곤한 일과나 드러먼드 수간호사조차 그녀를 불안으로부터 보호해줄 수는 없을 듯했다. -386쪽


브리오니의 잘못은 명백했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 본 것을 참이라고 확신했고, 확신이 흔들릴 때조차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스스로 정한 '의로움'과 '정의'가 그녀를 씻을 수 없는 죄인으로 만들었다. 이후 평생에 걸쳐서 속죄하려고 한 그녀의 행보를 볼 때 그녀는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악'이 아니어도 '마'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전쟁은 그런 그녀의 죄를 더 진하게 채색하고 말았다. 그것이 그들에게 떨어진 더 큰 비극이었다.


로비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세실리아와 로비가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면...... 그녀만의 비밀스런 고통과 전쟁이라는 사회적 격변은 항상 서로 다른 세계의 일처럼 보였는데, 전쟁이 그녀의 범죄를 얼마나 더 무겁게 만들 수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과거를 되돌리는 것밖에 없었다. 그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브리오니는 다른 누군가의 과거를 갖고 싶었고, 다른 누군가가 되기를 간절히 열망했다. -403쪽


그녀가 어떻게 자신이 다른 사람을 로비로 착각했는지 소설에서는 묘사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영화에서는 그녀가 보았던 인물의 얼굴이 뒤늦게 떠오른 것으로 표현된다. 소설을 읽을 때 내가 짐작했던 사람이 범인이 아니어서 다소 김이 샜는데, 나중에 내가 지목했던 사람이 진범이라는 것이 밝혀져서 약간 시원했다. 그 역할을 영화에서는 베네딕트 컴버비치가 맡았다. 이 때는 셜록으로 스타가 되기 전이었는데 이 소설이, 그리고 이 영화가 제법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3부부터는 온전히 브리오니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1부가 가장 지루하게 전개됐고, 2부는 전쟁터의 로비의 시점이어서 안쓰러움을 갖게 했다면 3부는 참회의 마음으로 가득찬 브리오니의 시선을 따라가는데 여러모로 연민을 갖게 했다. 그녀가 마침내 언니를 찾아가고, 거기서 감히 짐작하지도 못하고 바라지도 못한 인물을 만났을 때, 마침내 속죄의 시간이 다가오는가 기대도 갖게 되고 응원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3부 막바지의 단 두줄은 이제껏 주인공들의 해피엔딩을 기원하며 따라온 독자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무려 59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뛰어버린 사인 하나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이 작품의 최대 반전. 세상에, 이게 이언 매큐언이구나!


부커상에 빛나는 이언 매큐언 최고의 걸작이라는 수사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깨달았다. 시간은 새벽 세시. 나는 팔에 잔뜩 돋은 소름을 문지르며 천천히 문장들을 씹었다. 아련하고, 아프고, 안타까운 감정과 감탄이 모두 함께 터져나왔다. 이 작품은 2003년 작인데, 언뜻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떠올랐고,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도 같이 생각났다. 그런데 그 작품 뭐더라? 두 가지 결말을 내리고 그 둘을 모두 따라가라고 하는 식은 늘 별로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미학적으로도 완벽했다. 뒤늦게야 깨닫게 되는 소설 곳곳의 장치들이 떠오르면서 이 영리한 작가의 완벽한 덫에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명을 지르지만 기꺼이 잡히고 싶은 덫이었다. 


브리오니가 마지막에 베풀었던 그 친절은 사실 세실리아와의 기억에서 온 것이었다. 어린 시절 악몽에서 깨어날 때 돌아오라고 말해주던 다정한 세실리아. 다정한 그 언니가 얼마나 그리울까. 그녀의 행복을 앗아간 자신이 얼마나 미웠을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제일 잘못한 것은 브리오니가 맞지만, 더 미운 것은 롤라와 그녀의 남편이다. 한명은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가해자가 되었고, 또 한명은 가해자에서 공범자가 되었다. 그렇게 누군가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려놓고도 잘 먹고 잘 살고, 게다가 장수까지 하는 그들.... 아, 소설 속으로 들어가 때려주고 싶은 충동을 갖게 했다. 비단 그게, 소설 속만의 일은 아니지 않은가.


500쪽이 훌쩍 넘는 이야기를 두시간 짜리 영화로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원작이 훌륭하기 때문에 그걸 영화로 옮겨서 더 낫기는커녕 동급으로 만들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원작보다 꽤 아쉬웠던 영화도 그리 나쁘지 않았던 거라고 정리해본다. 내가 생각한 로비의 이미지와 제임스 맥어보이는 아주 안 어울리지만, 세실리아 역에 키이라 나이틀리는 맞춤 배역이었다. 고집 세고 강인해 보이는 인상이 그녀의 얼굴에 있다. 


브리오니는 그 넘치는 상상력과 작가적 오만함으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었지만, 바로 그 재능을 통해 속죄의 길을 걸었다. 이 역시 역설적인 운명이다.


지난 오십구 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물음은 이것이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521쪽


시간이 걸려도 속죄할 수 있다면, 용서받을 수 있다면 다행일 테지만, 시간이 늘 인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런 기회가 반드시 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타이밍을 잡아야만 한다. 애초에 이런 참혹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게 더 중요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잘못으로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면, 나도 모르게 어마어마한 폭력을 휘둘렀다면, 제발 더 늦기 전에, 기회를 잃어버리기 전에 속죄하기를.... 그 사람과 당신,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당신의 인생뿐 아니라 역사라는 큰 그림 안에서도......

그리워할 집도 없는데 그리움이 일었다. 언니를 떠나는 것이 슬펐다. 그녀가 그리워하는 것은 집이 아니라 언니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로비와 함께 있는 언니였다. 그들의 사랑이었다. 브리오니도 전쟁도 그들의 사랑을 파괴하지는 못했다. 이 사실이 도시 아래로 더 깊숙이 가라앉고 있는 그녀에게 위로가 되었다. -490쪽

(역자 후기)
누가 내게 『속죄』의 주제를 묻는다면, ‘폭력’이라고 말하겠다. 『속죄』는 전쟁이라는 이름의 폭력, 다른 이의 말에 귀기울이기보다는 자신의 눈과 판단만 믿는 오만함이라는 폭력,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휘두르는 폭력까지 실감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자기가 본 것을 진실이라 믿으며 세상을 재구성하려는 브리오니의 상상력은 두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이끈다.
이언 매큐언은 9.l11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사건이 발생한 직후 『가디언』지에 다음과 같은 논평을 실었다. "비행기 납치범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승객들의 생각과 느낌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을 계획했더라도 끝까지 진행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떻게 느낄까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성의 본질이며 동정과 연민의 핵심이고, 도덕성의 시작이다." 세상을 파괴하는 폭력적인 상상력과 세상을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주는 상상력....... 그 경계는 어디인가. 이언 매큐언은 참으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시하는 작가이다. -5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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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4-08-18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죄, 저도 읽었던 책인데요 님의 리뷰를 보니까 제가 이 책을 과연 읽었던가 싶네요. 의미를 놓친 부분이 많다는 게 그 첫째고, 둘째로 이 책을 매개로 이토록 깊은 사유가 가능하다는 게 존경스러워서입니다...

마노아 2014-08-19 11:38   좋아요 0 | URL
어이쿠 마태우스님! 왜 이리 과찮을 하십니까. 몸둘 바를 모르게요.(>_<)
이언 매큐언 정말 대단해요. 어제 이언 매큐언 책을 하나 더 구입했어요. 지금 오고 있어요. 기대 중입니다.^^
 
플루트의 골짜기 - 소설 고종석 선집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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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열두 편을 묶어낸 선집이다. 그간 고종석의 단편 '제 망매가'와 '엘리야의 제야'가 절판인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글을 몇 차례 보았던지라 그의 글빨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읽어보고 난 뒤, 확실히 그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꼭 매력적이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어제는 영화 '군도'를 보았다. 감독의 기본 내공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고, 괜찮은 배우가 여럿 출연하니 당연히 기대를 갖는 게 자연스러웠다. 또 좋아하는 사극 영화니 더더욱 기대감이 있었는데 먼저 보고 온 언니가 별로라고 해서 한풀 기대치를 꺾고 보았음에도 나 역시 그냥 그랬다. 본 걸 후회하진 않지만 기대에는 못 미쳤다. 굳이 따지자면, 아주 못 만든 건 아닌데 '매력'이 없었다. 이 괜찮은 배우들로 이 만큼밖에 못 만들다니.


어쩌면 그건 취향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단편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긴 호흡으로 큰원을 그리면서 하나로 수렴되어지는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이야기가 시작되고, 이야기를 키워서 절정을 맞이하고 마침내 결말에서 모든 것이 정리되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원하는데, 단편소설은 그런 그림을 그리기에는 호흡이 너무 짧으니까. 


이 책의 여러 단편들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고종석이 확실히 언어학을 공부한 사람이구나.... 라는 것과, 자기 잘난 맛에 도취된 면(사실 이건 그의 트위터 글을 줄곧 보다가 극도로 피곤함이 몰려와서 결국은 언팔하게 된 경험 때문일 수도 있다.)이 있구나 정도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근친의 뉘앙스를 꽤 풍겼는데 이건 의도된 것인가? 직전에 읽은 '해피 패밀리'와 겹쳐서 더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고전소설이나 혹은 고전 시가의 제목을 가져와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덮은 것은 꽤 신선했다. 특히 '찬 기 파랑'이 그랬다. 홍세화 씨를 연상시키는 이야기가 두편 있었는데 두분이 어떤 친분이 있나?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하거나 혹은 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데 본인의 경력에 기반한 것일 테지? 


깔끔한 문장이 돋보였지만 크게 가슴에 남지는 않았고 그간 절판되었던 책들을 드디어 만났다는 반가움도 그리 크지 않았다. 나하고는 그다지 궁합이 좋지 않다. 

언어라는 건 권력인 것 같아. 아니 억압인 것 같아. 무지막지한 억압. 예컨대 타자기로 글씰 쓰다가 ‘사랑’이란 말을 ‘사렁’이라고 오타를 냈대봐. 종이 위에 찍힌 그 ‘사렁’이라는 말을 그리도 촌스럽고 낯설게 만드는 게 결국 말이 가진 억압의 힘 아냐. 말의 그 전제주의, 표준어의 그 전제주의 말이야. 자기와 다른 걸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릇된 것으로 판정해 매정하게 배제해버리는 그 완고한 전제주의 말이야. ‘사랑’이란 말의 어감이 ‘사렁’이란 말의 어감보다 꼭 그 자체로서 더 사랑다운 건 아니잖아. 그런데도 ‘사렁’이라는 말은 전혀 ‘사랑’의 감정을 환기시키지 못하잖아. 정말 끔찍한 독재자야, 말은. 물론 그 독재력의 원천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힘이나 귀함 때문이겠지만. -36쪽

그날만은 아니었다. 골수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그러니까 사실상의 사형선고를 받고 병원에 입원한 뒤로 줄곧 그 아이는 주위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려고 애썼고, 그럼으로써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45쪽

일본 사람과 조선 사람은 표정이 다르다. 묘하게도 일본 사람들의 표정은 뭔가 어둡고 비장한 데 견주어 조선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낙천적이다. 그 거꾸로가 아니고 말이다. 그것은 영국인과 에이레인의 표정에 대한 내 관찰과도 일치한다. 그런 낙관주의 때문에 나라를 잃게 된 건지, 아니면 나라를 잃은 아픔을 견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낙관적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것과는 무관한 일일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엔 프랑스인들이나 심지어 앵글로·색슨계 미국인들의 표정도 영국인들의 표정에 비하면 대체로 밝고 낙천적이니까. 그 인과관계가 어찌 되었든. 내가 에이레 사람들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듯이 나는 조선 사람들을 금방 좋아하게 돼버렸다.
-270쪽

그는 전 스페인 총리 펠리페 곤살레스가 이 자유의 투사들에게 올린 감사의 말에 대한 답사를 옛 전우들을 대표해서 했다. 그때 그가 한 말은, 비록 의례적인 말일지라도, 겸손과 연대로 무르익은 어떤 정신의 경지로서 기록해둘 만하다: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당신들이 아닙니다. 우리들입니다. 당신들 덕분에 우리들은 파시즘과 싸울 기회를 얻었고, 참다운 국제주의를 배울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들 가운데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옛 전우들과 스페인 사람들을 눈물범벅으로 만든 기 파랑의 그 답사는 그가 오십팔 년 전에 피에르 맹데스-프랑스에게 한 말을 다시 연상시킨다. "모든 정치가 더러운 것은 아니다. 모든 행동이 헛된 것은 아니다."
-308쪽

뒷자리의 아이에게 뭔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싶어 주머니를 뒤저보았지만, 줄 만한 것이 없었다. 차창 밖으로 24시간 편의점이 눈에 띄었다. 나는 민우에게 그 앞에 차를 잠시 세우도록 부탁한 뒤 초콜릿을 한 상자 사다가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가 한국어로 고맙다고 말하며 수줍게, 환히 웃었다. 민우도 뒤질세라 콘솔 박스를 뒤지더니 오르골 하나를 꺼냈다. 민우가 태엽을 돌리니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흘러나왔다. 오르골을 받아든 아이는 다시 한 번 환히 웃었다. 아이는 주머니를 뒤져 땅콩 한 줌씩을 민우와 나에게 내밀었다. 우리도 환한 웃음으로 그것을 받으며 아이에게 사의를 표했다. 차는 다시 출발했고 뒷자리에서는 오르골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계속 흘러 나왔다. 오늘 밤 이 캐럴은 온 누리에서 수백 개의 언어로 울려 퍼지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네팔에도 그 나라 말로 이 멜로디가 울려 퍼지고 있을지 모른다. 한 움큼의 허우룩함 속에서 그들의 초라한 집 앞에 세 식구를 내려주었을 때 시각은 자정이 넘어 있었다. 구세주가 오신 날이었다.
-4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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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4-07-27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도 고종석에게서 근친의 혐의를 몇번 느꼈어요. 해피패밀리 말고도 제망매인가 거기서도 그랬던 것 같은데요. 저는 저희 자매님들과 그닥 사이가 좋지 않아 공감은 안갔답니다. 그나저나 저는 원래 사극을 안좋아해서, 역린도 안보고 민란도 안봤어요. 그러면서도 광해같은 영화는 봤단 말이죠. 아무튼 사극을 피하는 제 선택이 이번엔 연속으로 맞은 것 같네요

마노아 2014-07-27 16:17   좋아요 0 | URL
이 책 안에 제 망매가 있는데 그거 포함해서 둘인가 셋인가에서 근친 내용이 좀 있더라구요. 의도한 것인가 싶어 궁금해졌어요.
역린은 평가보다 재밌었는데 너무 폄하된 느낌이 있고요. 광해는 만들어진 폼새보다 더 과장되게 평가받은 것 같지만 그래도 충분히 수긍이 가요. 군도는 강동원 헌정 영화였어요. 여자들은 비명을 지를만큼 멋진 강동원을 보고 올 수 있지만 그게 다였거든요. 이제 저는 '명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ㅎㅎㅎ
 
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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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솜씨는 역시 다르다. 어마어마한 흡인력으로 빨아들이는데, 엄청 속도감 있게 읽었다. 작년 한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이 작품이었던가. 무려 세권이나 되는데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저자의 공력에 새삼 감탄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배경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정점을 찍고 있는 인물 군상들을 보여준다. 지리적으로 아주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그리 가깝지 않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이렇게 책을 통해 엿보고는, 내가 모르고 있던 모습들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어느새 중국이 이렇게까지!


확실히 중국은 놀라운 나라다. 불과 몇해 전까지만 해도 메이드 인 차이나는 조롱과 함께 들먹인 이름이었는데, 이제 중국은 G2의 양축이 되어 세계 어디에서도 대국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G20 개막식에도 미국보다도 늦게 도착했던 중국 대표가 떠오른다. 그게 그들이 내세우는 오늘날의 위상이며 자존심인 게지. 


3권 분량의 책인데 내가 읽은 것은 아직 1권 분량인지라 여러 등장인물들이 소개되는 정도에서 그쳤다. 본격적인 진행은 2권에 들어가야 가능할 듯하다. 한국에서 쫓겨가다시피 해서 상해로 들어선 성형외과 의사 이야기도 궁금하고, 역사학도가 되기로 결정한 유학생의 중국인 여친의 집안도 궁금하다. 중국 사람 한국 사람 모두 무시하는 일본인 종합상사가 종국엔 큰 코 다치는지도 얼른 알고 싶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해도 감정이 생겨서 말이다...;;;;;


문장이 빠르게 진행되고, 책 읽는 속도도 쭉쭉 빠진다. 그렇지만 문장을 곱씹으며 느끼게 되는 향기나 맛은 많이 부족했다. 그런 서정성은 작품의 성격과도 좀 안 어울리기도 하지만.


아직 2권과 3권을 주문하지 못했다. 리뷰 쓰고 책 주문하련다. 고고씽!

중국이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G2가 되었을 때 전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당사자인 중국도 어리뻥뻥했다니 다른 나라들이야 더 말해서 뭐하겠습니까. G2는 그만두고, 중국 1인당 GDP가 4천 불이 되려면 2040년쯤에나 가능하다고 생각했었지요.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도, 일본도, 당사자 중국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작년 2010년에 일본을 걷어차고 G2 자리를 차지한 겁니다. 참, 예상을 30년이나 앞당겨버렸으니 각 나라가 받은 충격이 어땠겠어요. 일본은 날벼락 맞아 기절해 버렸고, 미국은 야구방망이로 뒤통수 맞아 정신이 어질어질하고, 유럽 국가들은 라이트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맞아 비틀비틀하고, 우리 한국사람들은 무슨 소린지 감이 잘 안 잡혀 눈을 껌벅껌벅하고 있는 상태지요.

G2를 한마디로 하자면 ‘세계 공장’이었던 중국이 ‘세계 시장’으로 바뀌었다는 뜻이고, 세계의 소비시장이 된 구체적인 예는 많지만, 두 가지만 들겠습니다. 상용차를 포함한 모든 자동차의 수가 2억 대를 넘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되었고, 여성들의 명품 사냥이 브라질을 밀어내고 2위가 되었으며, 미국마저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여성들의 그 기세는 이미 성형으로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14억 중에서 절반이 여성이고, 7억 중에서 절반이 예뻐지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래도 시장이 무궁무진하고 망망대해라는 것이 실감이 안 되십니까?
-17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 하면 싼 인건비, 짝퉁, 불량식품 같은 것만 생각하지 초스피드의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모든 분야의 기술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요. 상대방을 얕잡아 보는 선입관도 있고, 발전이나 변화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심사도 작용하고 그런 거지요.
-32

중국 특유의 꽌시란 한자로 관계라고 썼고, 그 뜻은 ‘연줄, 뒷배, 네트워크’ 등이 뭉뚱그려진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고, 나라 망치는 학연, 지연, 혈연을 다 합쳐서 이루어지는 그 어떤 것이었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그러면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그 꽌시 때문에 중국에 처음 진출한 외국기업들은 한동안 정글을 헤매며 허방을 딛고, 넘어지고,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것 같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61

일본은 아주 괴상스러운 나라야, 아시아에서 솔선해서 서양문화를 제일 먼저 받아들였는데 딴 나라들에 비해서 별로 영향을 받지 않고 거의 변하지 않은 세 가지가 있었어. 예수교가 전혀 기세를 펴지 못해 확산되지 않았고, 커피가 녹차에 막혀 영 맥을 못 추었고, 코카콜라가 마구 광고를 해대도 고전을 면치 못했지. 그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서양에서는 일본의 3대 불가사의라고 불렀어. 옷이나 건물들이 거의 서양식으로 바뀐 것하고는 영 딴판이었으니까. 근데 말야, 몇 년 전부터 한 가지에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어. 젊은 사람들이 커다란 종이컵을 들고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거리를 활보하는 유행을 일으킨 거야. 그런데 더 문제는 중국이야. 4천 년이 넘는 중국차의 아성 앞에서 커피 제까짓 게 꼼짝 못할 줄 알았지. 헌데 중국차의 만리장성마저 커피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거야.(...) 10위안짜리 점심 먹고 30위안짜리 커피컵 들고 나서면서, 그게 아주 세련되고 멋지고, 첨단 문화인이 된 것처럼 으스대는 꼴들 하고는.
-66

중국에서는 흑인을 보기가 드물었다. 서양 대기업들은 중국 사람들이 유난히 흑인을 싫어한다는 걸 일찌감치 눈치챈 게 분명했다. 비즈니스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흑인들을 파견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리 없었던 것이다.
-99

중국인들은 8자를 광적으로 좋아하고, 그 맹신은 가히 신앙적이다. 그 이유는 돈과 직결되어 있었다. 중국말 파차이는 ‘돈을 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발음 ‘파’가 숫자 8의 발음 ‘빠’와 얼핏 혼동할 정도로 같이 들린다. 돈을 많이 많이 벌어 떼부자가 되고 싶은 중국사람들에게 8자는 곧 돈이라 믿는 행운의 숫자가 되었다. 그래서 8자는 빨간색보다도 더 위에 오르는 신앙의 대상으로 떠받들려졌다. 그들의 8자에 대한 집착과 열광은 생활 도처에 나타난다. 8자 들어가는 날은 무조건 길일이 되고, 그래서 8월 8일 오후 8시에 결혼식을 시작하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축의금도 888위안을 내는 사람이 최고의 하객이 되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믿지 못하겠으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보면 된다. 그 개막식 날짜와 시간은 어떠했는가.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에 성화가 타올랐다.(...) 아파트 분양 때 8자 들어가는 동들의 8층 8호에 엄청난 웃돈이 붙고, 자동차 번호 8888이 1억 원에 거래되는 나라가 중국이었다. 이러한 광풍은 개혁개방과 함께 시작된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 세월이 해를 거듭해갈수록 점점 가속도가 붙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반대로 천대받는 숫자가 있었다. 4자였다. 그 발음 ‘쓰'와 죽을 사(死) 자 발음 ‘쓰’가 높낮이만 약간 다를 뿐 음은 똑같았던 것이다.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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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기침 2014-06-27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장의 글을 한권도 읽지 못한 1인입니다 ㅠ
죽기 전에 태백산맥이라도 읽고 싶습니다 ^^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마노아 2014-07-01 13:30   좋아요 0 | URL
저도 대하소설은 아리랑만 읽었네요. 태백산맥은 사두고서 먼지만 쌓이고...;;;
댓글이 많이 늦었네요. 푸른기침님도 7월 첫날, 즐거이 시작하셔요~
 
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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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주 어릴 때부터 신께 바쳐진 아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마치 사무엘처럼. '신'의 이름으로 낙인 찍힌 그 말이 주술처럼 나를 옭아매어서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소망하는 것도 안 된다고 여기며 살았다. 인생의 행로가, 도착지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다른 샛길로 나가봐야 무엇하는가 싶었다. 교생 실습을 목전에 두고 있던 대학교 4학년 봄, 답답한 마음에 교수님께 고민을 털어놓았다. 교수님은 아주 심플하게 충고해 주셨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내가 아무리 피해가려고 해도 그 길을 가야 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길이라면 내가 가고자 기를 써도 갈 수 없다고. 그 말은 나에게 구원과도 같았다.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이 모두 무색해졌다. 신의 섭리는 삶의 모든 과정에서 드러나지 목적지 하나만 두고 말하지 않을 것인데, 나는 불필요한 고민에 너무 오래 내 몸을 담그고 괴로워했다. 


이후 파울로 코엘료의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에서도 비슷한 깨달음과 감동을 얻었다. 사랑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치유의 은사를 접고 신에게로 향하던 진로를 내려놓은 남자를 보는 것이 여자는 괴로워서 도망쳤다. 하지만 남자는 따라와서 그녀를 잡았다. 그가 아니더라도 신이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필요하다면, 신은 그리 할 것이다.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물론, 나는 겁먹고 내쳤었지만......


이 작품은 W수도원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작품 후기를 보고서 이곳이 왜관이겠구나 싶었다. 요한 신부님께 아빠스님(대수도원장)은 자신의 조카 이야기를 어렵사리 꺼냈다. 아마도 죽을 병에 걸린 모양이다. 10년 전에 불같은 사랑을 나누었던, 그래서 신부 서품을 앞두고 있던 젊은 사제 요한이 소명을 내려놓으려고 결심하게 만들었던 그녀가 자신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슴 속 불덩이가 다시 치올랐고, 그들의 10년 전 이야기가 재생된다. 


천주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그다지 없어서,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고 수사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내게 무척 신선했다. 요한에게는 삼총사로 묶이는 친구 수사가 둘 있었다. 냉철하고 이지적인 미카엘과 천생 천사같은 착한 심성의 조각같은 얼굴의 안젤로. 둘의 성격을 보여주는 말투를 들어보자.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 역설하면서 가난한 자들이 왜 가난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살펴보려고 하지 않는 교회, 낙태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왜 젊은 엄마들이 배 속에 든 자신의 아이를 죽일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조금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교회, 수백 명의 인명을 살상하려는 강대국의 무기 판매에 아무 경고도 하지 못하는 교회! 이혼은 죄라고 하면서 이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만큼 불행하게 사는지 보이는데도 모른 척하는 교회! 동성애가 무슨 취향인 줄 아는 교회! 그 교회가 나를, 여자들과 성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수도원의 형제들이 노동한 대가인 그 돈을 떼어먹고 도망간 수사들과 같은 수위로 처벌하려 하는군. ‘부자가 재산을 자랑할 때 약탈과 착취가 묵인되고, 군지휘관이 승전보를 알릴 때 대량 학살이 묵인되고, 고관대작이 권력을 뽐낼 때 폭력이 묵인되어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이것들이 그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도 그 부류 속에 있음을 의심하라!’하고 톨스토이가 말했던가......” -67쪽


교회와 장상들을 거침없이 비판하던 미카엘의 각진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에 비하면 안젤로의 목소리는 좀 더 느리고 보다 부드럽고, 그리고 반짝반짝 빛이 난다.


안젤로는 초콜릿을 노수사님들의 입에 넣어주고는 노수사님들의 식판에 담긴 밥을 자신의 입에도 넣었다.

예수님이 당신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통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가 꼭 같이 고통받기를 정말 바라실까요? 토마스 수사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우리 엄마는 병실에서 자기는 아파서 물도 삼키지 못하면서 제가 친척들이 사 온 주스며 빵을 먹고 있는 걸 보기를 그리 좋아하셨는데요.” -37쪽


안젤로는 요한이나 미카엘에 비해서는 배움이 짧았다. 그래서 모르는 것도 많았고 실수도 아주 잦은 수사님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말에는 본질적인 깨달음이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금식하는 것을 자랑삼던, 계율을 지키는 것을 특권으로 여겼던 바리새인의 오만함이 그에게는 없다. 예수님이 당신이 십자가를 지는 고통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가 꼭 같이 고통받기를, 정말 바라실까? 신이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부모도 그리 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교회와 장상의 처사에 염증을 느낀 미카엘 수사가 신부 서품을 아예 내려놓으려고 할 때 요한 수사가 말렸다. 


 

“긴 인생에서 겨우 한 해 늦추어졌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잖아요. 우리 수련수사 때 수련장 신부님 말씀하신 거 전 가끔 생각해요. 나가는 것도 좋다. 길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요한 결정은 반드시 평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69쪽


분노와 충동 속에서 급하게 내린 결정은 반드시 후회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평화 속에서, 그리고 침묵 속에서 스스로와 만난 뒤 내려야 한다. 이렇게 강조한 요한도 10년 공부를 물리고 사랑하는 여자, 그것도 약혼자가 있는 여자의 손을 잡기 위해 수도원을 나가려고 했다. 비극적인 그 사고가 없었다면 그리 했을 것이다. 


큰 사고가 일어났고 죄없는 사람이 죽었다. 많이 사랑한 만큼 더 큰 슬픔이었고, 젊은 목숨이었기에 더 아까워 했다. 사랑은 뜨겁고 사랑은 달달했고 사랑은 또 더없이 가슴을 충만하게 만들었지만 현실의 벽은 언제나 그보다 높고 견고했다. 살아온 배경이 달랐고, 넘어야 할 산도 많았으며, 앞으로는 더 막막했다. 세상의 비난과 손가락질보다 무서운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누군가는 제동을 걸어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은 소희 자신이었을까, 아빠스님이었을까, 아님 신이었을까. 


작품은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서, 가난한 자들을 향한 한 사제의 연민과, 수도원 가족들을 향한 동지애와 신을 향한 사제들의 사랑까지 다양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북한 자강도 옥사덕 수용소에서 생지옥을 경험하고도 고국 독일을 떠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한 토마스 신부의 이야기와, 흥남부두 철수 때 무려 14,000명의 피난민을 무사히 실어나르고, 이후 신께 바쳐진 삶을 살았던 마리너스 신부의 이야기는 독자마저도 숙연하게 만들었다. 특히 마리너스 신부님의 이야기는 실화이기 때문에 더 뜨겁다. 배는 기름을 끌어안고 있었고, 폭격이 시작되면 모두 죽을 판이었다. 당장 떠나도 위험한 판에 끝도 없이 밀려드는 피난민들을 싣겠다는 선장을, 선원들은 당연히 말렸다. 그런 그들에게 캡틴은 이렇게 말했다.


‘압니다. 할 수 없는 이유 9999가지를요. 그러나 합시다. 이건 생명의 문제입니다. 이건 흥정의 대상도 고려의 대상도 아닙니다. -334쪽


지난 삼주간, 우리는 사람의 생명이 돈 앞에서 얼마나 휴지조각처럼 취급되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았다. 그래서 더 가슴을 쳤을 것이다. 이런 선장을, 이런 배를......


영하 20도의 눈보라 치는 항구를 떠나 사흘 만에 도착한 그 나라의 남쪽 항구는 영상 1도. 생명과도 같이 보드라운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거제도의 주민들이 우리 배가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제히 주먹밥을 준비해 부두에 나와 있었다는 것입니다. 맑고 신선한 이 나라의 물도 함께 말입니다. 우리 선원들은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지요. 예수라는 이름도 없고 교회도 없고 심지어 십자가도 없는 이곳에서 진정한 크리스마스가 펼쳐지고 있다고 말이지요. -341쪽


사흘동안 무사히 항해를 했다는 것도 기적이었다. 그런데 그 사흘동안 정원의 몇 배를 초과한 승객들이 보여준 질서도 기적이었다. 누구하나 죽지 않고 누구하나 해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버텨낸 기적의 사흘 뒤 도착한 전혀 다른 풍경의 항구 모습. 누구라도 이 순간을 목격했다면 진정한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사랑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2부에 도착했던 따듯한 남쪽 항구에서 읊조린 '메리 크리스마스'에 눈물이 났다. 전쟁 중에도 인간은 이렇게 사랑을, 기적을 보여주는구나. 그리고 지금 우리는 전쟁이 아닌 데에도 이토록 비참한 죽음들을 본 것이구나......


속세를 떠난 사제들이 겪는 유혹이나 스트레스를 논문 주제로 삼았던 소희는 그 자신이 바로 유혹이 된 셈이었다. 그녀의 행보는 충동적이었고 이기적이기도 했지만, 그 자신에게 충실했고 솔직했다. 마지막 순간에 더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에도 그녀의 사랑이 깔려 있었다. 신과 대결하기에는 한없이 약한 인간이지만, 그래서 아름다울 수 있었던 사랑이 그녀에게 있었다. 


다시 십년 전의 나로 돌아가 본다. 그 사람은 중학교 때 이미 신께 자신을 바치겠다고 스스로 서원한 사람이었다. 선교사가 되고 싶었고, 이미 그 길을 걸었던 전력도 있는 사람이었다. 맑고 투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힘들었다. 지극히 세속적인 내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함께 가자고 하면 가지 않을 나를 알기에 그는 스스로 내려오겠다고 했다. 소명도 내려놓고 서원도 팽개치고 내 곁에 있어도 되겠냐고 했지만 그 순간 나는 더 무서워졌다. 마치 내가 신을 향해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살면서 해본 거절 중에 가장 매몰찼던 순간이 아닐까. 그 순간의 이별은 오래도록 나를 아프게 했다. 다시 십년이 지나고 그때의 내 선택을 후회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할 때에, 늘 내게 잔잔한 조명불이 되어주던 야곱이 충고해 주었다. 인연이 아니었던 거라고. 


동의한다. 결과를 보고서 되짚는 설명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야 편해질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거기까지가 우리의 인연이었을 거라는 지적에도 수긍한다. 진정 연이 닿았다면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의 남자 주인공처럼 그녀를 끝까지 붙잡았을 것이다. 그 사람도 나도 그러지 않았으니까 우린 여기까지인 것이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알고 있는 공지영 작가의 이 책에서는 무턱대고 강조하는 종교성이 없다. 오히려 나같이 그 세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다가가기 좋은 책이다. 신에 대한 사랑과 인간을 향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요한 수사에게서 지극히 작고 평범한 우리네 사람을 본다. 그 혹독한 갈등과 시련 속에서 성장해가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본다. 우리의 역사와 맞물려서 펼쳐놓은 기적같은 이야기들은 더 진한 여운과 감동도 주었다. 좋은 책이다.


연재를 마치고 떠난 에스파냐의 수도원에서 작가는 후기를 썼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더 깊이 절망하겠습니다. 더 높이 희망하기 위해서. -379쪽


야곱이 환상 속에서 보았던 높고 푸른 사다리를 작가를 통해서 보았다. 이 깊은 절망 뒤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다. 날기 위한 이 추락을...fall to 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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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5-07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가 나올꺼라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좋네요.^^

마노아 2014-05-07 16:20   좋아요 0 | URL
의도한 건 아닌데 하필 부처님 오신 날에 수도원 배경으로 한 성직자가 주인공인 책 리뷰를 썼네요. 어쩐지 살짝 미안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