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갑 1957-2005 - Kim Young Gap, Photography, and Jejudo
김영갑 사진.글 / 다빈치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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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여러 수식어를 동반한다.  제주를 사랑한 남자, 제주의 바람을 필름에 담은, 그리고, 안타깝게도 불치의 병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사진 작가...

제주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곳을 고향처럼, 이상향처럼 너무도 사랑한 사람.  그래서 이십 여년 동안 오직 제주도에 집착하고 그곳만 파고든 사람.  대체, 제주.. 한라산은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그도 스스로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설명할 수 있었다면 다른 곳으로 갔을 거라고.  그를 가지 못하게 붙잡은 무언가가 그의 사진 안에 있다.

가로로 긴 사진첩인데, 그 사진첩을 양쪽으로 펼쳤을 때 양면에 꽉 차게 사진이 길게 놓여 있다.  영화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더 넓게 제주의 자연을 담아 내었다.

그를 통해서 보는 제주는 고즈넉했고 외로웠다.  그곳엔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문명이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자연만 있었다.  그래서 그 사진 안에는 바람 소리도 가득했다.

그가 말하기를, 5년, 10년이 걸려서야 다시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고 한다.  어떤 풍광은 평생동안 그 한 순간 밖에 보여주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 찰나의 순간을 잡기 위해 그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을 테지.  허나, 그의 사진에는 조바심이 없다.  재촉함도 없고 머뭇거림도 없다.  그저 자연이 있고, 자유가 있었다.

제주를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그곳의 빼어난 풍경을 사진에 담아 온다.  사진 속의 제주는 활기 차다.  그 푸르른 싱그러움에 나도 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 한다.  이미 가을인 것처럼 새파란 하늘이, 대한민국 아닌 외국의 어느 땅인 것처럼 녹음이 우거진 풍경도 그랬고, 남태평양을 연상시키는 파란 바닷빛도 그랬다. 

그런데 김영갑 사진 속의 제주는 달랐다.  태고적 순수함을 간직한 것처럼, 사람의 손이라곤 범접함을 허락치 않은 것처럼 순결하게 때로는 장엄하게 그 위용을 자랑한다.  거긴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신의 세계인 것 같은 분위기마저 감돈다.

그는 자연에서 오르가슴을 느꼈다고도 고백했다.  그가 느꼈을, 그가 받았을 그 희열과 감격을 우리가 고스란히 느끼긴 어렵지만, 그의 사진을 통하여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그곳엔 자연이 있다.  산이 있고, 나무가 있고, 바람이 있다.  살아 숨쉬는, 그러나 외롭고 아릿한 제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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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8-1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보셨군요!!^^

마노아 2006-08-15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이 제일 먼저 리뷰쓰신 것 보았죠^^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 내가 겪은 6.25 전쟁
김원일 외 글, 박도 사진편집 / 눈빛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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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울 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을 몹시 인상 깊게 보았다.  그리고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사진은 거의 겹친다.  지울 수 없는 이미지가 거의 사진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면, 이 책은 그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쟁을 직접 겪은 네 명의 작가를 통해 얘기한다.

전쟁... 우리한테 먼 단어가 아닌데 멀게 느껴진다.  우리가 평상시에 얘기하는 전쟁은 출근전쟁, 예매전쟁 정도랄까.  그 치열함에 '전쟁'이라는 단어를 쓰긴 하지만, 실제로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그 같은 일에 '전쟁'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얼마나 가소롭고 어이 없을까.

얼마 전에 읽은 "쥐"에서 아버지는 친구라는 단어에 대해 설명하기를, 일주일 동안 갇힌 채 굶고나면 친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전쟁이 가져다 주는 굶주림과 추위와 공포 등은 사람이 알고 있는, 이제껏 상식이라고 알아온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어떤 사진에서 굶주린 유엔군이 지친 표정으로 기둥에 기대어 있는 장면이 있었다.  그가 고백하기를, 추위와 졸음과 눈보라가 적군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  한 순간 눈을 감았다가 그 무거운 눈꺼풀을 다시 들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 극한의 상황이라면, 눈앞의 적보다 무서울 수도 있으리라.

전쟁을 겪었던 작가들은, 그때의 상처와 기억을 평생을 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들 작품 속에서 끊임 없이 전쟁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진정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고 나 역시 동의했다.  5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아마 이 땅에서 눈 감는 날까지 지속될 것이다.

공중에서 함흥을 찍은 사진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전쟁을 공부할 때, 교수님께서 북한은 폭격으로 마치 "석기시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현실로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벌집처럼 뻥뻥 구멍이 뚫려 있는 땅이라니, 한순간에 소름이 확 돋았다. 

사진 속에선 인민군이건 국군이건, 중국군이건 유엔군이건 가리지 않고 전쟁에 지친 회의적인 눈동자들을 싣고 있었다.  그가 노인이건 어린아이건, 여자건 남자건... 하나같이 절박한 얼굴들이었다.

어제는 언니와 얘기를 하다가 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언니는 통일의 당위성을 어찌 생각하냐고 물으니, 고등학교 때는 당연히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한다.  왜? 하고 물으니, 먹고 살기 힘들어서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대답을 찬성하진 못하지만 긍정한다.  내가 결혼해서 아이 둘을 키우며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가장 평범한 소시민이라고 한다면 내 대답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슬펐다.  우리는 전쟁을 종결한 것이 아니라 단지 휴전한 것 뿐인데... 우리의 전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닌데 우리는 머나 먼 이야기 다루듯 한국전쟁을 바라보고,그리고 통일을 얘기한다.

전시 작전권을 회수해 오자는 말에 전직 국방부 장관들과 힘있는 언론들이 어떻게 대처했는 가도 함께 떠오른다.  가슴이 묵직하다.  마음도 아프다. 

이 책의 제목은 "나를 울린 한국 전쟁 100장면이다."  나 역시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찌 아니 울까... 어찌 아니 아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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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가 보호하는 우리 문화유산 열두 가지
최준식 외 지음 / 시공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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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건 어른이건, 우리나라 문화유산 중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 몇 개를 아느냐고 물으면? 

일단 대체로 당황한다.  쭈삣거리며 몇 개 이야기한다.  게 중에는 많이 맞추는 사람도 있다.

불국사, 석굴암, 팔만대장경... 뭐 이 정도로 답변이 나온다.

이 책은 우리가 12개까지 등록했을 때 나왔으니 제목이 열 두개지만, 현재 우리나라 문화 유산 중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은 모두 열 네 개다.

먼저 세계유산으로 경주 역사지구, 종묘, 창덕궁, 수원 화성, 해인사 장경각,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 석굴암과 불국사가 있고,

세계 기록 유산으로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 훈민정음이 있고,

세계 무형 유산으로 종묘제례악, 판소리, 그리고 작년에 올라간 강릉단오제가 있다.

이 책을 읽고 제대로 안 것은, 세계 유산은 '유적'에 등록하지, '유물'을 등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팔만대장경이 올라갔다고 여기지만, 팔만대장경이 아니라, 팔만대장경으로 보존하고 있는 건물, 장경각이 등재되어 있다.  움직일 수 없는 것을 등록시킨다고 한다.  하긴, 유물에 매기기 시작하면 그 숫자는 어마어마할 것 같다.

최근에 인기를 끌었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생각의 나무)은 전 세계의 문화유산을 상대로 설명해 놓았는데, 이 책은 우리의 것으로 한정되어 있다.  사진을 생각한다면 앞서 책이 월등히 아름답지만, 설명은 이 책이 더 잘해 놓았다.

여러 사람의 저자가 모아 쓴 책이기 때문에 통일감은 확실히 떨어진다.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잘 쓰는 사람도 있고, 정말 지루하게 쓰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자기의 의견을 강압적으로 강조하는 사람도 있긴 했다.(경주역사지구 쓴 사람이었어..;;;;)

재미보다는 지식과 정보를 주는 책인데, 이 정도의 정보는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아쉬운 점은, 장경각 이야기할 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왜 더 유명해졌는지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루터의 종교개혁과 맞물려 이야기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도 직지심체요절이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이며, 우리나라 것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애쓴 박병선씨 일화는 몹시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유네스코 관련 문화재는 홈페이지를 아주 잘 꾸며놓아서 들어가서 보면 책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창덕궁 홈페이지를 좋아한다. ^^

방학을 기해서 아이들과 이런 주제를 정해서 답사여행이나 혹은 관람을 하고 돌아온다면 좋은 추억과 학습 두 마리를 다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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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의 말과 삶
허영철 지음 / 보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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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래도록 읽었다.  워낙 쉽게 읽혀질 거라고 짐작하지도 못했지만 중간중간 다른 책도 읽어가며 쉬엄쉬엄 읽었다. 


사실 앞부분에서 그가 태어나서 자라고 어떻게 노동자 생활을 했으며 또 사회주의 사상에 발을 담게 되었는가, 해방 후의 행적과 전쟁 시기 북쪽에서 공부한 이야기, 그리고 남파되어 잡히기까지의 행적은... 많이 지루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정신 번쩍 나게 만들었으니, 이번엔 책을 깨끗하게 보려고 했는데 색지를 엄청 붙여가며 읽어야 했다. 지금까진 그저 비전향 장기수 한 명의 이야기를 읽어왔다고 친다면, 이제부터는 역사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스러지지 않았던 한 혁명가의 이야기를 읽게 된 셈이니까.

추천사에서 윤구병 교수님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대한민국 평균 국민이라면 아마도 불편할 것이라고 했다.  당신도 많이 불편했노라고.  읽기 전부터 불편할 것을 예상했지만, 역시나 책을 읽어가면서 혼란이 밀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왜?  대한민국 평균 교육을 받고 자랐고, 딱 그만큼의 사고관을 가진 사람이었으니...

시대가 바뀌어 북한 사람은 모두 머리에 뿔난 도깨비다!라는 말도 안 되는 비방은 먹히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 사람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야!라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그들의 실상이, 우리 역사의 감춰진 이면이 제대로 설명되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에는 어른들 말씀이 다 옳은 줄 알았고, 교과서에 적혀 있는 게 진리라고 믿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의심하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받게 되는 충격과 상처는 내가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고 믿었음에도,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여전히 혼란스럽고 아프고 서러웠다.

허영철은 무려 36년 간이나 감옥에서 신념을 지키며 살았다.  정말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긴 시간이었다.  아니, 거짓으로라도 전향한 척하고 나오면 안 되나?  남겨진 가족은 어떡하고?  그렇게 시간을 죽인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라는 질문이 모두 내 것이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겨가면서부터는 그런 질문들이 부끄러워졌다.  그건 일생을 한 목표를 바라보며 곁눈질하지 않고 달려온 혁명가에 대한 모독이었으며 아픈 역사를 짊어지고 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책임 유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화국이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고 했다.  대체 그 공화국이 무엇이길래... 우리에게는 국민들 굶겨 죽이는 부도덕하고 무능력한 정권이기만 했는데, 그 공화국이 대체 어떤 의미였기에 허영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수십 년의 시간을 바치면서까지 신념을 꺾지 않았을까.  단지 그들이 미쳐서, 혹은 꼴통이어서 그랬다고 한다면 차라리 내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마음 깊숙이 인정하게 되는 순간부터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우린 모두 단체로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실을 모르고 사는 것은 우리가 아닐까?  정말 누구의 표현처럼 우린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식민지로 보이지 않게 이동한 것은 아닐까... 이런 망상 아닌 망상들이 머리 속을 헤엄치고 다니는 것이다.

대학에서 교양 수업으로 한국 현대사를 들었었다.  교수님께선 한국전쟁에 대한 수업 중에 한 전쟁을 두고 어떻게 부르는가 명칭이 매우 다르다고 여러 예를 들어주셨다.  그때 북한이 부르는 이름 중에 “이긴 전쟁”이란 표현이 있었다.  사실, 난 그때 웃었다.  일종의 자기 암시라고 여겼던 탓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그런 내용이 나왔다.  박헌영에 대한 기술이었는데, 남에서는 박헌영에게 전쟁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서 북이 그를 희생시킨 것이라 말한다고... 허영철은 반문한다.  6.25 전쟁은 우리가 승리한 전쟁인데 어째서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 넘기냐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벌어진 전쟁을 두고 그 원인과 과정, 결과가 모두 다르게 해석되어지고 있는, 비틀거리는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서 난 아찔함을 느꼈다.  그리고 당시 받았던 수업 내용이 얼마나 심각했었던가를 새삼 깨달으며 어쩐지 송구한 기분도 들었다.

허영철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혁명의 차이를 얘기할 때에도 아찔함을 넘어 난 비틀거릴 지경이었다.  그의 말을 잠시 옮겨 보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자본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이 다르다는 겁니다.  자본주의는 봉건제도를 무너뜨리고 혁명을 이뤘지만, 그 혁명은 거기에서 멈춘 채 권력을 교체하는 것에서 끝났어요.  자본주의가 자랑하는 삼권분립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봉건 군주들, 승려들, 신생 부르주아지들의 야합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혁명을 이루었다고 하면서도 의회는 신생 부르주아지들이 차지하고, 행정은 봉건 군주 치하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차지하고, 사법은 승려의 몫이 되고 말았잖아요.  그게 소위 삼권분립이라는 것의 요체입니다.

민중은 혁명에 동참했지만, 열매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결국 그런 식의 야합으로 정권 교체를 하니까 혁명이 거기서 멈춰 버리는 것이지요.  혁명이 일어났다고 해도 결국에는 상층부만 교체된 것에 불과하니까요.

사회주의 혁명도 권력을 쟁취한 뒤에 이뤄진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하나의 사회가 완성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인간의식을 개조하면서 좀 더 높은 사회로 전진해야 하죠.  더 높은 수준의 사회는 있을망정 , 완성된 사회는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참으로 매끄럽고 적확한 설명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더 높은 수준의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도 같이 이야기한다.  인간의 의식 개조가 가장 중요하다고.  물질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이라며... 우리가 머리로만 알고 가슴으로는 잘 실천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잘 보여주지 못하는 그 명제를 얘기한다.  그의 말대로, 미국은 전후 50년 이상 북조선을 압박하며 탄압하고 갖은 모략을 다 동원했지만 그 체제를, 그 사회를 온전히 꺾어내지 못하고 축출하지 못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미국이 힘이 부족해서?  남한이 중재를 잘해서?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안다.  어쩌면 그 대답을 일부러 피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북조선의 인민들의 힘이었다.  북이 아무리 독재 사회라지만 인민들의 저항이 거세다면 저렇게 유지될 수가 없는 것을...

우리도 겪어서 알고 있다.  이승만 때에도 그랬고, 박정희, 전두환 때에도 그랬다.  부당한 독재 체제를 벗어나기 위해 학생들도 시민들도 끊임없이 항거했다.  북조선이 유지되는 것은 독재가 너무 강력해서도 아니고, 그곳의 국민들이 모두 온순해서도 아니다.  거기엔 당위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남한 땅보다, 우리가 가엾게 여기는 저 북쪽 땅이, 사실은 더 민주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니 소름이 끼친다. 

그는 4.19와 5.18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모두 감옥 안에서 맞았다.  그럼에도 그가 겪은 체험은 소위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는 우리의 정보망을 앞선다.  우리는 심각한 언론 통제와 세뇌 교육을 너무 오랫동안 받아온 것이다.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서글픔을 넘어서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안타까움대로, 그때 자유를 향한 울부짖음과 투쟁이 좀 더 거세어져서 거국적인 움직임이 되었더라면 통일도 결코 꿈이 아니었을 텐데, 민족의 역량을 얘기할 때 늘 우수한 한국인을 자랑하지만, 그렇지 못한 반대 사례도 많음을 새삼 깨달으며 부끄러움이 치솟았다.  현장에 있어보지 못한 세대로서 함부로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는 출옥하고서 생계 유지를 위해 아파트 경비병으로 일했다.  모두 합해서 7년 4개월의 근무였는데, 해당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감사패를 받을 만큼 성실하게 일했다.  그는 그 까닭을 공산당원이라면 조직을 떠나 있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인 책무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모습이 곧 당을 대신할 수 있으므로.  반 생애를 감옥에서 보내며 고된 삶을 이어온 그의 입에선 그토록 당당한 이유가 나오는데, 만약 같은 경우 우리들은 조국 대한민국의 명예를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수나 있는가?  국가의 명예가 개인의 행복을 앞서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매 순간 부끄럽지 않기 위해 우린 과연 노력해본 적은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의 아내는 그와 함께 산 시간이 도합해서 모두 6개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 시간은 그가 잡혀서 가족이 함께 고통을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 시간이었으며, 그가 무기징역을 받은 이후로는 좌익사범의 가족으로 결코 평범함이 용인되지 않은 살얼음판 같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당연히 원망이 없을 수 없는데, 그런 아내도 남편을 가리켜 정치적으로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솔직히 꽤 충격을 받았다.  소위 배웠다고 하는,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보다 오히려 더 객관적인 판단과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오래도록 통일을 꿈꿔왔다.  그가 남쪽에 내려와 하고자 했던 것도 통일을 위한 초석 다지기였다. (이런 표현을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 한다.) 수구 기득권은 통일을 가리켜 ‘당위’라고 못 박아 얘기하지만 ‘당면’한 문제는 아니라고 역시 못박아 얘기한다.  그들의 속내엔 사실 통일 안 하고 싶은 이유가 백만 배쯤은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이 점차 퍼져가고 있다는 것에 민족의 비극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득, 6.15선언 때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리켜 치매 노인 운운한 모 여인이 떠오른다....;;;;;;)

그는 늙은 몸을 하고서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한다.  지금이야 미군기지 평택이전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어 있지만, 보다 덜 알려져 있던 시기에 이미 반대 집회 등에 참석했던 사람이 허영철이다. 

2005년도에 그는 북한을 4박 5일 동안 방문하고 돌아왔다.  무사히 다녀오긴 했지만 언뜻 생각해도 그 과정이 쉬웠을 리는 없다.  편집자의 말대로 평생을 통일 운동에 헌신한 사람을 못 가게 하는 것이 합법적인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며 갑갑함에 갈증마저 인다.

그는 가난하나 긍지를 잃지 않고 사는 북조선의 현재를 보며 오히려 희망을 읽고 돌아왔다.  오로지 물질적인 척도만 가지고 그들을 적선의 대상으로나 여기며 혹은 이 쌀 받아가서 군수품으로 쓰는 거 아니야? 라며 의심만 하는 우리의 눈이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인터뷰 내용에서 편집자는 묻는다.  “선생님 소원은 통일이지요?”
허영철은 대답한다.  “그럼 여러분은 아니에요?  우리 모두의 소원이 통일이 아니었나요?”
그 반문에, 나는 엉엉 울고 말았다.  왜 우는 지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냥 왈칵 눈물이 치솟았고, 부끄럽고 또 고맙고, 또 한편으론 희망도 보이는 것 같아 복잡한 심정에 목을 놓아 울었다.

문득, 잊고 있던 기억 하나를 두드린다.  99년도에 시립 교향악단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클래식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졸린 시간이었다.  그런데 모든 순서가 다 끝나고 앵콜이 들어왔는데, 앵콜 곡도 끝나고 또 한 차례의 앵콜 요청에 지휘자는 깊이 절을 하고는 특정 곡을 연주하도록 했다.  그 곡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고, 그 순간 장내는 박수 소리 온 데 없이 숙연해지고 말았다.  우리는 누구도 앉아 있지 못하고 기립하여 다 함께 그 노래를 불렀다.  그때도 나는 울컥해서 참 많이 울고 돌아왔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당연한 거였는데, 당연하다는 듯 잊고 살았다.  아직 갈 길이 먼데 내 일 아니라는 듯 태만을 보이고 말았다. 머리로만 알고 심장은 알지 못했던......

이 책의 제목을 다시 한 번 새겨본다.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어디 허영철 뿐이겠는가.  우리 모두 역사의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  그 도도한 흐름을 피해갈 수도 없고 거스를 수도 없다.  그 역사의 바른 흐름을 위해 애써야 할 사람이 우리들이다.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사람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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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8-10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너무 궁금해요!

마노아 2006-08-10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처럼 심장이 뜨거워지는 책을 만났어요. 적극 추천이에요~

Lauren 2006-08-11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정적인 감상평 잘 읽었습니다.
꼭 읽어보도록 할께요. 감사합니다!

마노아 2006-08-11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uren님, 안녕하세요. 열정적이라니, 부끄러워요~ 님의 감상도 기다릴게요. 저야말로 고마워요^^

내이름은김삼순 2006-08-24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뽑히셨군요~축하드려요! 방금 보구선 바로 달려왔어요,,ㅎㅎ
긍데 너무 길어서 지금 다 못 읽겠어요,ㅠ 저녁 먹으로 갈 시간이거든요,
다시 와서 꼭 읽고 가겠습니다,,^^

마노아 2006-08-2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헷, 고맙습니다.^^ 저도 물만두님께서 알려주셔서 알았어용^^;; 알라딘 덕에 호강을 한 거죠^^;;;;

해리포터7 2006-08-25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리뷰 뽑히셨네요..축하드려요!!

마노아 2006-08-25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헷, 고맙습니다^^ 긁적긁적...^^;;;
 
신데렐라가 집을 나간 이유
수니티 남조시 / 책세상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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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품절 도서라 구하기 힘들었는데, 학교 도서관에 신청하니 어케 된 영문인지 구해놓았다.  요술램프라도 있나? 너무 신기^^

“신데렐라가 집을 나간 이유” 독특한 제목을 가진 이 책에 부연 설명으로 ‘페미니즘의 눈으로 새로 쓰는 우리 시대의 우화’라고 써 있다.


책을 펴 보니, 과연 짧은 우화 형식으로 각 시대별 나라별 동화, 전설, 신화 등을 아우르며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짧게 구성되어 있는데, 때로는 허를 찌르며, 때로는 패러디를 하며 풍부한 비판과 풍자를 보여주는데, 몇몇 에피소드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난해해서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다.

작가가 인도사람이어서 그러려나?  어쩌면 그 나라의 전통과 관습에 기반한 이야기여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어디에 방점을 찍으려는 것인지는 읽는 순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성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나가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사회에 나와보고서야 톡톡히 깨달았다.  남성으로 사는 것은 뭐 쉽겠냐마는, 사람들의 인식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여성이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는 남다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어쩐지 공격적으로 들려서 반갑지 않다.  서로가 서로를 적대하거나 대치하는 것이 아닌 '공생'의 관계로 지낼 수 있는 사회를 열심히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태어난 지 일주일 조금 지난 여자조카 아이, 오늘 퇴원하였는데, 그 아이가 자라서 만나게 된 세상은 우리가 느낀 것과는 다른 세상이길 바란다.  굳이 신데렐라가 집을 나가지 않아도 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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