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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대학 때 경제학 강의를 한 강좌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건 필수과목이어서 어쩔 수 없는 거였고, 살면서 경제학 용어와 가까와질 일도 별로 없었고, 사실 관심도 없었건만, 한미FTA만은 그렇게 비켜갈 수 없는 이름이었다. 그건 곧 '생존'에 직결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이 책의 저자는 초반부터 참으로 적나라하게 결론을 제시한다. 한미FTA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생각해본다면, 최소한 4인 가족 기준으로 연소득 6,000만원 이하의 국민들에게 한국땅은 '지옥'이 된다. 그러니까 '이민'을 고려하는 게 좋을 수 있다. 한미FTA가 돌이키기 어려운 것은 그 상대가 '미국'이기 때문이라고.
여기까지만 읽고 너무 겁나고 또 너무 화가 나서 책을 덮지는 말자. 이제 시작이니까. 좀 더 놀라고, 좀 더 안심할 이야기도 물론, 나온다. 그렇다고 너무 낙관적인 것은 또 곤란하다...;;;
우리가 한미FTA를 우려의 눈으로 볼 때 그 예시로 등장하는 나라가 멕시코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협정에는 '인적 이동'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점이 EU와의 차이점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경제적 이득만을 챙겨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다. 미국은 국경에 새로운 장벽을 치는 것, 혹은 군대를 투입시키는 것만으로 멕시코 경제의 붕괴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떠안지 않고 안전하게 이익만 챙길 수 있다.
우리의 협상 상대인 미국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짐작할 수 있는 예시도 등장한다. EU는 스크린쿼터 문제를 해결할 때 '문화주권'의 개념을 EU헌법에 포함시키면서 해결하였다. 미국과의 통상마찰 분야를 해결하기 위해서 헌법이라는 초강수를 활용하는 EU가 옹색해 보이기는 하지만 상대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미국'이라는 것이다.
온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고 또 답답해 하는 문제가 그것 아닐까. 대체 왜 정부는 한미FTA를 그토록 목숨 걸고 추진하려고 하는가? 한미FTA를 추진함으로 인해서 과연 우리에게 얻을 것이 잃을 것보다 많다고 믿는 것인가. 물론, 충분히 검토했고 잘 알고 있다고 말할 테지만, 그 근거는 너무나 빈약하다. 정부는 미국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가. 아니,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가. 제시하는 모든 단서는 소박하다 못해 빈곤하다. 허면 과연 정부가 알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이 책의 텍스트 중 가장 재밌게, 그래서 더 처참하게 읽히는 부분을 옮겨본다.
가. 농업은 망한다. 현재 국민의 8% 정도인 농민이 4%대로 줄어들지, 아니면 정부의 목표대로 1%대로 내려앉을지가 문제일 뿐이다.
나. 월마트한테는 안 당한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계속 죽어나갈 것이다.
다. 한국영화 안 본다고 죽는 거 아니다. 국내 영화산업은 일단 현재의 절반 정도로 축소될 것이다.
라. 병원 안 간다고 다 죽는 건 아니다. 아마도 국민의 30%에서 40% 정도는 한미FTA 이후 5년이 지나면 의료비와 보험료가 비싸져서 병원에 가기 어려워지는 게 사실이다.
마. 공무원들한테는 별일 안 생긴다. 만약 공무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지금 같은 방식으로 한미FTA 추진이 가능했을까?
바. 국민들은 농민 편 안 들어준다. 정부도 인정하는 것과 같이 사실 한미FTA로 가장 많은 타격을 받을 사람들은 농민들이다.
사. 한나라당은 꼼짝할 수가 없다. 한나라당에는 한미FTA가 어떠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어떤 부문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분석할 수 있는 실무 전문가가 없다. 상당수 한나라당 당원들은 일단 '자유무역'이란 말이 들어가면 무조건 찬성하는 경향이 있다.
아. 국민들은 벤츠를 좋아해. 자동차 조금 더 팔자고 3,000cc 이상의 대형 자동차에게나 적용될 제도들을 없애고, 배기가스 배출기준을 없애고, 심지어는 수도권 대기관리대책까지 없애라고 하는 미국의 요구는 내정간섭에 해당한다.
자. 국민들은 식품안전에 관심이 없다. 물론 사고가 터지면 벌떼처럼 떠들지만, 길어야 일주일이다.
차. 그래봐야 이민 갈 용기가 있는 국민은 별로 없다. 가끔 소주 마시며 대통령을 씹어대긴 하지만, 사실 국민들이 미래를 불안하게 기다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라는 점을 노무현 정부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정부는 한미FTA와 관련해서 꼭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을 거의 모른다. 그런데 국민들과의 협상에서 이기는 방법은 너무 잘 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남해장악을 결정지은 한산대첩이나 정유재란 초기 전라도 우회를 막아낸 결정적 해전인 명량대첩 정도에 해당하는 결과물은 에서 '노동시장 개방' 외에는 없다고 저자는 잘라 말한다.
누군가가 단 한장, 아니 단 한줄이라도 한국인의 미국 노동시장 접근과 관련된 조항을 집어넣는 데 성공한다면, 한미FTA 협상에 '이순신 현상'이 발생했다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협상이 완전히 끝났는데도 이순신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이 전쟁은 진 전쟁이다.(저자가 '원균'의 이름을 빌려 사용한 비유는 적절한 예가 아니므로 생략!)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약자로 대변되는 우리의 모델인 '양'들이 살아남는 방법에 대하여 몇 가지 제시를 한다. 그 중 가장 '희망'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87년 체제라는 안전장치를 이용하는 것이다.
제9차 개정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권한을 '국민투표 부의권'이라고 한다.
50% 정도의 국민이 투표로 자신들의 운명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랄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역시 '경고'도 잊지 않는다. 국민들이 늑대 앞의 양이 되지 않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생존전략은 개개인이 똑똑해지는 것 외에는 별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 황우석 사태의 경우처럼 거의 온 국민이 까막눈이 되어서 '국익'을 외치고 있는 한, 우리의 시스템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은 점점 더 희박해진다는 것이다.
이미 한미FTA가 국민경제에 얼마만큼의 실익을 주는가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어졌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어떻게 폭주를 멈출 것인가'이다.
이미 배는 항구를 떠났다. 가다가 풍랑을 만나 좌초하던가,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가는 이제부터의 문제이다. 과거 87년처럼 온 국민의 공공의 적이 무엇이었는지 보인다면 국민들이 한 힘을 모으는 것은 좀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한미FTA에서 우리의 공공의 적이 무엇인지 손에 잡힐 만큼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앉은 자리에서 코 베어가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결국 '폭주'를 멈추게 하는 최종 키는 국민에게 있다.(정부 측에서 멈춰준다면 정말 고맙겠지만.) 무관심만큼 무서운 부메랑이 없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감시하고, 그리고 필요하다면 실력행사를 위해 나서야 한다. 결국엔 우리의 '생존'을 위한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