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서정오 지음 / 현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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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이집트 신화 북유럽 신화 중국 신화 등등... 여러 신화들을 재밌게 보았지만 정작 우리나라 신화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는데...

나를 더 당혹하게 한 것은, 책이 너무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마땅히 재밌을 법도 한데 왜 그리 낯설고 진도가 나가지 않던지...;;;

곰곰히 짚어보니,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불편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텔레비전 만화로도 또 교과서에서도, 하다 못해 만화책이나 기타 여러 매체에서도 우린 서양의 신화에 더 자주, 그리고 깊이 노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고 우리 신화의 부재에 대해서 의아해하지 않았다.  때문에 순수 우리말로 되어 있는 신들의 이름이 더 낯설고,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란 전혀 딴 나라 이야기로 비쳐지는 것이다.

이는 작품의 문제가 아니라 독자의 문제였다. 깊은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  하여 맘 먹고 천국의 신화를 읽어 보았는데, 2부까지 보면서 여전히 쉽게 친해지지 않는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물론, 작가의 상상력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부분들도 있었지만 우리의 고대사와 또 신화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하여, 이 책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를 읽어본 다른 사람에게 어떠했냐고 물었더니 아주 재밌었다고 했다.  물론 그 사람이 평소 우리 신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긴 했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게서 받아들여진 재미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근래에 들어 사극 열풍이 불고 창작 뮤지컬에서 우리 신화를 다루는 모습도 보게 되었는데, 우리 것만 찾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와 역사, 신화 등등 다방면에 걸친 관심의 고양이 필요할 때임을 절감한다.  남에게만 말할 것이 아니라 나자신부터 먼저!

우리 신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또 다른 책을 찾으러 그럼 나는 가야겠다.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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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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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정형화된 느낌이지만, 뜻을 새겨보면 참 아픈 제목이다.  전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것도 아프지만, 남한 내에서도 극심한 대립으로 할퀴고 뜯는 모습을 지금도 너무 쉽게 보기 때문이다. (이글을 쓰는 시점은 지방선거를 앞둔 상태)

전작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보다 감상적인 느낌이었다면 이 책은 좀 더 감정을 빼고 객관적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한 느낌이 난다.  프랑스와 프랑스인을 얘기하면서 우리의 사회를 투영해보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는데, 부럽고 안타까운 기분이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 민주주의가 급속도로 들어오는 바람에, 그것도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서, 혹은 타국 주도로 들어왔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자체적으로 정착한 서양보다 정치의식 혹은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정치인이 존경 받는 대한민국을 오매불망 꿈꾼다.)

또 트집 잡기 위한, 상대를 꺾어내기 위한 정책 우선의 모습이 많은 것도 기막히고, 언론이 정치와 유착하여서 주구 노릇을 하는 것은 화딱지 나고, 거기에 휘둘리는 대중의 모습은 눈물날 지경이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프랑스 시민들의 모습에 많이 감탄했다.  대통령일지라도, 실업자일지라도, 그들의 의견을 내놓는 자리에서는 똑같은 자격의 프랑스인이라는 것을, 언론이 먼저 걸러내고 시민들이 인정하는 모습이 눈부시기까지 했다. 

또 파업 이야기에서 너무 쓰라렸는데, 우리 사회의 이기적인 모습 때문에 마음이 영 불편했다.  우리나라에서 파업이 발생하면, 시민들의 반응은 "또?"이며, 불편하다라는 이유로 파업자들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모습을 본다.  그들이 왜 파업을 했으며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들이 받은 부당한 대우가 무엇인지 언론은 말해주지 않는다.  수구 언론과 부자 신문들은 앞다투어 시민들이 얼마만큼 불편했고, 그로 인해 받은 경제적 손실이 얼마인가를 요란한 수치로 떠들어댈 뿐이다.  그러다 보면 시민들의 옹호와 지지를 받지 못한 파업 세력은 결국 그들의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하고 또 다시 불평부당한 대우를 감내하며 일자리로 돌아간다(끝까지 버틴 사람은 공권력을 맛보거나 실업자가 된다.ㅡ.ㅡ;;;)

내가 기억하는 범위 안에서 우리 사회가 하나되어 똘똘 뭉친 기억은 월드컵 때 온 국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하나된 응원을 했던 그때 뿐이었다.  과거 80년대에 서울에 봄이 왔다고 외치던 시절, 힘 닿는 데까지 민주화를 위해 애썼던 우리의 윗 세대분들이 계셨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서 기억하는 범위 안에서는 사회적 착취와 부당함에 대항해 하나되어 싸우고 국민이 지지했던 기억이라고는 전무하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한계점이 보이는 듯하다.  아무리 개인화되었고 삭막한 정서적 환경 속에 놓여 있다지만, 공공선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회에 어떤 미래가 있을 수 있는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와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등, 우리가 속해 있거나 혹은 관련되어 있는, 전혀 무관하지 않은 사회적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  내 일이 아니라고 나몰라라 한다면, 내가 같은 일을 당했을 때 나를 몰라라 하는 사회에 대해 뭐라고 항의할 것인가.  잠깐의 불편을 감수하여 더 많은 사람이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에 살 수 있도록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은 정녕 가질 수 없는가 말이다.

이 책에서 또 부끄러웠던 부분은, 우리나라 뉴스의 보도 능력 혹은 태도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프랑스에 방문했을 때 뉴스에서 중요 보도를 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아무 공적인 이유 없는 사적인 방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대통령이 어디를 가면, 반드시 그 정황을 보도해주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해왔다.  늘 그런 뉴스를 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문제가 있는 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갑자기 눈이 커진 느낌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 딱 그 기분

잠시 역사 이야기를 해보자.  조선시대에 사림 세력은 훈구 세력에 대항하여 네차례의 사화를 겪으면서도 끝끝내 살아남아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반대파가 사라진 다음엔 자체 분열하여 당파 싸움을 하였다.(우리만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좀 더 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것은 심히 유감이다.)  그때 율곡 이이는 우리가 "싸울 때가 아니라 개혁해야 할 때"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동인들에 의해 서인 편들기로 몰려가면서 공허한 외침이 되고 말았다.  당시의 국제 정세는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일해 가던 무렵이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꺾고 전국을 통일해 가는 과정이었다. 내부 싸움에 바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귀기울이지도 눈여겨 보지도 못한 조선은 "임진왜란"이라는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우리 사회도 그렇지 않을까. 좌파니 우파니, 중도니 하면서 서로 편가르기를 하면서 세력 다툼을 할 때, 중국은 고구려가 지네 역사라고 하고, 일본은 지치지도 않고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  봄만 되면 중국에서 황사가 불어오는데, 우리는 눈과 귀와 코로 다 받아낼 뿐, 무엇도 대처하지 못한다. 

한 번은 학생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통일의 당위성을 아느냐고.  통일을 왜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안 되었으면 바란다고 답한다.  이유가 뭐냐고 묻자, "대학 가기 더 힘들어지잖아요."라고 대답한다.

단지, 그네들이 어린 탓에 철없는 대답을 한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아는 까닭에 씁쓸했다.  지금도 이럴 진데, 더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아예 서로 다른 길을 가지 않을까.  왜 남과 북이 하나되어야 하는지, 그 까닭을 떠올릴 수 없지 않을까.

딱 집어서 어느 하나를 고쳐야 한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런 게 가능하다고도 보지 않는다.  모든 것은 동시에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고치고 다듬고 바꿔나가야 한다.

정치인은 정치판에서, 경제인은 경제를 이끌어가는 구조 속에서, 언론인은 살아있는 정직한 필력으로, 학생들은 자신들의 본분인 공부에서, 모두모두 제 일에 최선을 다하고 바르게 살아야 하고, 사회의 부당한 모습에 적극적으로 개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했다.  내 주변에 우리 사회에, 당장은 나와 무관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책이야기를 하다가 많이 흥분했다..;;;; 그만큼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과 탄식을 병행했다는 이야기이다.  정치 선진국 대열에 대한민국도 속히 들어가기를 바라며... 나 자신도 업그레이드 된 사회의식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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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지음 / 창비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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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이 출간된지는 십년이 넘었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대학생이었던 언니가 무척 재밌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앞부분의 서두에 해당하는 부분만 읽고, 마무리지어 읽지 못했는데, 십여년 뒤에 도서관에서 다시 찾게 되었다.  읽고 나서는 결국 구입하고 말았다.  이런 책은 소장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외치면서.

지금이야 망명자의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에서, 예의 그 필력을 떨치며 일하고 계시지만,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만 해도 저자는 세계 그 어느 나라도 갈 수 있지만 꼬레아 만은 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가 하는 말들은 감상적이기보다 차라리 절실할 정도로 호소력이 있어 보였다.

서두에서 빠리에 오면 자신이 안내해 주겠다고, 이리저리 둘러 보여주는 장면은 말씨가 몹시 예뻤다.  거북선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달라며 말문을 여는데,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얼마나 억울했으며, 얼마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겠는가.

역설적이게도 홍세화씨는 독재정권 시기에 탄압을 받았던 다른 사람들보다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망명에 성공했고, 지금은 돌아와 있으니까.  그의 고난과 역경은 모두 귀한 체험이 되어 그의 필력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고, 사회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는 채찍질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결과를 어느 정도 보고 난 지금 할 수 있는 얘기들이다.  매 순간순간 그와 그의 가족들이 부딪혀 싸워야 했던 현실들은 얼마나 가혹하고 참담했을까.

그래서 그가 택한 나라가 프랑스였던 것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라고 차별이 없고 억압이 없을 리 없지만, 적어도 똘레랑스, 관용이 사회의 미덕이며 습관으로 정착되어 있는 곳이니 말이다.  그가 택시 운전 시험에서 있었던 시험관과의 일화 등도 그런 예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을 보는 즐거움 중 하나가 그것인데,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를 보는 재미가 꽤 놀라웠다.  금지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허용된 나라라는 설명이 그대로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런 사회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을 무렵에 저자는 한국에 돌아온 셈인데, 떠나갈 때와 너무도 달라진 조국은, 여전히 똘레랑스와는 거리가 멀어서, 그는 가끔 프랑스를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을 거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때로 답답한 마음이 느껴질 것 같다.  직접 보지 못하고 간접 경험만 한 내게도 답답한 구석이 있으니, 긴 시간을 살아온 그는 오죽할까 싶은 것이다.

자신에게는 냉정하되, 타인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라고 하는 말을 우리는 듣곤 한다.  고개 끄덕여 동의하지만 쉽지 않다.  게다가 팔은 어찌나 안으로만 굽는지...;;;

우리 사회 안에 만연된 학연 지연 등등.. 사람이 생활의, 삶의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은 바람직하나, 번지 수가 틀리면 그것은 우리 사회를 좀 먹는 벌레가 될 것이다.  부패한 사회가 발전하는 것을 어디 보았던가.

그래서 '관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스스로에게는 보다 냉철해지되 이웃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푸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사회라면, 보다 정직하고 보다 따뜻하고 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리고 덧붙이는 말은, 홍세화씨처럼 독재정권 시기에 억압받고 피해를 본 이들에게, 반드시 보상과 해명, 사과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교황은 십자군 전쟁 시기의 교회의 잘못을 천년도 더 넘은 시간 뒤에 공식 사과를 하였다.  이제라도 하였으니 다행이지만, 제발 그렇게 긴 역사의 심판을 기다리며 잘잘못이 묻어가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휘청거리며 어렵게 지내는 것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않고 심판하지 않고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제발, 부디! 당대인이 살아있을 때에, 당사자가 있는 앞에서 사죄와 용서가 이루어지기를... 그 또한 우리 사회에 관용이 넘치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마땅히 되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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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풍속화집 서문문고 311
이서지 지음 / 서문당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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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한국의 풍속을 담은 그림책이다.  김홍도 하면 떠오르는 그 풍속화들을 상상하면 비슷할 것이다.  그림은 인상적이지만, 설명은 최대한 짧고 간단하게.  더불어 영어 설명도 포함시켰다.  가끔 영어로 대치할 수 없는 문장들은 그에 맞게 표현을 돌리기도 하는데, 그 차이점을 들여다보는 것도 제법 재밌을 것이다. (물론, 머리 아플 수도 있다^^;;;)

이 책을,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고 애정이 있는, 그러나 한국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 방한중인 하인즈 워드 선수 같은 경우도 물론이고^^

그림이 2/3이고 글은 짧기 때문에 페이지도 금방 넘어가고 쉽게 한권을 읽지만 임팩트는 제법 되지 싶다.  우리가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익숙한 우리 조상들의 삶, 혹은 지금도 우리가 간혹 구경할 수 있는 모습들에 향수를 느낄 테니까.  그래서 시골 할머니에게 옛이야기 들으며 군밤을 까먹는 모습과(내가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익히 상상할 수 있는 모습) 우리네 시골 정겹고 푸짐한 인심도 느껴지고, 그러다 보니 도시 생활에 익숙한, 그리고 젖어 있는 나로서는 그 가깝고 낯선 세계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좀 더 자연으로 가까이 다가선 기분이랄까.

다른 독자들도 그런 기분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지 싶다.  그래서 이런 책 하나 정도 책꽂이에 꽂아두고 간혹 들춰보기, 또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서로가 정을 나누는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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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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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제목은 딱딱하다. 표지 그림의 호랑이도 조금은 부담스럽다.  그러나 속을 열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저자 오주석 선생님의 강의 내용을 활자로 옮겨놓은 강의인데, 그 쉽고 재미있는 설명과 말투는 몹시 친절하고 소개되는 그림들은 영롱하기 그지 없다. 

오주석 선생님은 김홍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신 분인데, 책을 읽고 나면 비록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김홍도에게 조금은 가까이 간 기분이 들만큼 자세한 설명이 고맙다.  물론 책은 김홍도의 작품만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스승 강세황과 기타 다른 그림들도 매력적으로 언급하신다.

보면서, 그림을 보는, 미술관을 관람하는 '교양'이라고 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부족한가를 깨달으며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  또 너무나 서양 중심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인의 내 모습에 또 부끄러움을 느꼈다.  우리는 음악을 생각해도 서양 음악이 기준이요, 우리 것은 '한국음악/전통 음악'이다. 미술도 그렇다. 한국 미술/동양 미술 등으로 불러버린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다. 안타깝고 답답한 현실이다.

있는 것 그대로 그리고 보여주는 초상화인 터라, 그것이 검버섯이든, 사마귀이든, 자연 그대로를 담아낸 화폭, 인생을, 삶의 연륜을 보여주어야 하기에 오히려 젊을 때에는 초상화를 남기지 않았다던 조선의 그림들, 이쁘고 젊고 화려한 것에만 집착하는 우리네 삶을 돌아보면서 역시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주에 "표암 강세황 전"을 보게 되었다. 원래 루벤스 전을 보러 갔던 것인데, 옆 건물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었고, 며칠 뒤면 끝날 전시회였다.  뜻밖에 반가운 이름에 들렀는데, 오히려 루벤스 전에서 보지 못한 멋과 느끼지 못한 감동을 여기에서 채웠다.  흔히 말하지 않던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알고 나서 들여다 본 그림과 서예와 각 작품들의 멋은 매혹 그 이상이었다.  책에서 보았던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이해하던 고마운 시간이었다.

이 작품을 지인에게 추천하고 엄청 고맙다는 인사를 들은 기억이 난다.  이런 책을 만나게 해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나 역시 그랬다.  이책을 만날 수 있어서 참 많이 행복했다.

오주석 선생님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도 그래서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타계하셔서 너무 충격이었고, 다시 그 분의 작품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도 우리 사회의 크나큰 손실이라고 생각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런 책이 베스트 중에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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