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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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둑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누구의 마음을 훔친 거였다는 낭만적 도둑도 아니며, 양심에는 걸리나 사정이 워낙 나빠 훔칠 수밖에 없었다는 생계형 도둑도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한 도둑이다. 강도가 아니니 흉기를 지녀서는 안 되며 사람을 해쳐도 안 된다. 몸에 지닌 지갑이나 가방에 손을 대는 소매치기 날치기도 아니다. 나는 거기에 있는 그것을 가지고 나오는, 그런 도둑이다.

도발적인 첫문장이다. 스스로를 도둑이라고 밝힌 이 사람은, 올해 18세의 고등학생이다. 첫 도둑질이 일곱살 때였던, 타고나기를 섬세한 손을 가진, 그런 전천후 도둑이었다. 주인공 해일이 짝꿍 지란의 전자수첩을 훔쳐낸 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감쪽같이 물건을 손에 쥐었다. 훔쳐낸 전자수첩은 중고거래로 현금으로 만들었다. 깔끔하게 손에서 떠나보내고 그 돈은 통장에 모았다. 생계형 도둑도 아닌 해일은 훔쳐내어 만든 돈을 그저 쌓아둘 뿐, 어디에 쓰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이 아이, 어떤 문제아인가? 도벽을 가진 것인가?

 

도벽은 아닌 것 같다. 집안도 표나게 유복하지는 않아도 무척 화목한 편이다. 노상 싸우고 큰 소리가 넘나들지만, 그래도 서로 아껴주고 보듬어주는 가족의 모습이 분명했다. 띠동갑 형은 어릴 적 천재 소리를 들으며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현재는 백수다. 그렇다고 기죽어 사는 것도 아니고 '감정설계사'가 되겠다고 터무니없어 보이는 소리를 당당하게 내뱉으며 아버지의 애를 태운다. 그런데 그 감정설계, 무척 구미가 당긴다. 우리는 모두 감정에 휘둘리는 약한 사람들이 아닌가.

 

해일이 손을 댄 전자수첩의 주인 허지란. 아빠의 전자수첩을 일주일만 빌렸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아빠는 새아빠였다. 친아빠와 엄마가 이혼하고 마음으로 방황하던 아이가 처음으로 새아빠에게 애교를 떨어서 받아낸 전자수첩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니라 아이가 몇 해만에 마음을 열었던 증표였던 것이다. 그랬던 물건을 도난당했다. 그 사정을 도둑이 알까마는...

 

작품이 본격적인 재미를 주기 시작한 것은 해일이 병아리를 부화시키겠다고 유정란을 들이면서부터였다. 급하게 변명을 둘러대느라 눈에 띈 상자에 쓰여진대로 부화를 이야기했을 뿐인데, 그것이 판이 커졌다. 온 가족의 기대와 해일 자신의 격려 속에서 유정란 두개가 수정에 성공했고, 그 안에서 생명이 탄생했다. 이렇게 개인이 알을 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던 독자는 이 모든 과정들이 체험학습 하는 것처럼 신기하고도 신비롭게 보였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병아리를 키우겠다고 하는데 그것을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부모와 형님이라니, 이것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대한민국에 이런 고등학생이 있을 수 있다니! 이 사실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다.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담임과의 사이에 벽을 무너뜨렸고, 병아리송이라는 건전한 노래로 친구들의 시선을 끌었고, 병아리 구경하기 위해서 집으로 놀러오겠다는 아이들마저 생겼다. 그리고 그렇게 몰려온 아이들을 향해 재밌게 놀라고 권하는 엄마도 있다. 아, 이 소박한 모습이 왜 이리 감동적인가.

 

병아리 이야기에 잠시 마음을 빼았겼지만, 해일의 도둑질이 끝난 것은 아니다. 사이사이 해일의 빠른 손은 여전히 그 섬세함을 자랑했다. 그러나 물건에도 사연이 있다. 그 물건을 사용한 사람과의 추억이 있다. 자신이 건드린 무언가가 또 다른 부메랑이 되어서 자신에게로 돌아왔을 때 해일은 당황했다. 차라리 친구들에게 들켜서라도 멈추고 싶은 욕망마저도 있었다. 그렇게라도 벌을 받고 싶은 아픈 자아가 있었다. 대체 해일의 마음 속 무엇이 해일을 이렇게 도둑질하게 만들었을까. 이 다복해 보이는 가정에서 대체 무엇이....

 

지란의 이야기도 깊숙이 들어가본다. 친아빠의 외도, 행복하지 않은 엄마, 더불어 행복하지 않았던 어린 지란이의 상처가 독기로 똘똘 뭉쳐졌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도 작가는 변명을 해준다. 그래도 사랑했다는 것, 그래도 아꼈다는 것을 독자는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해서 마찬가지로 받아낼 수 없는 게 또 사랑 아닌가. 그걸 힘으로, 자격으로 밀어붙이면 그것도 폭력이 될 수 있으니...

 

작품은 무척 입체적이다. 반장병에 걸린 다영이와, 백설공주에 나오는 독사과 권하는 왕비 같은 미연이, 입은 거칠지만 나름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보이는 진오까지 저마다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캐릭터를 소화해낸다. 그 나이 또래 청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누군가는 진지한 역할을, 누군가는 유머러스한 역할을 맡았고, 누구는 다정하고, 누구는 또 까칠하다. 어느 쪽도 넘치지 않고, 어느 쪽도 모자라지 않다. 앞선 작품 완득이나 우아한 거짓말에서 보다 더 균형잡히고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전달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눈물 쏙 빼는 감동이 있다. 이 외로운 청소년들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괜찮다고 말해주는 목소리가 들린다. 궁디 팡팡!! 해가면서 격려해주는 손길이 느껴진다. 그래서 무척, 따뜻하다. 독자도 청소년들만큼이나 위로를 받은 모양이다.

 

작가님은 게다가 센스까지 있다.

 

"야!야!오늘담임중대발표가있나봐엄청엄한얼굴로온다!"

 

이 문장, 어떻게 읽히는가. 띄어쓰기가 없다. 그만큼 빠른 말로 쉬지 않고 말을 했다는 의미다. 아, 이렇게 종이 책을 오디오까지 곁들여서 표현하는 센스라니!!

 

담임 선생님의 과거 이야기가 덜 나온 것은 조금 아쉽다. 제자에게 폭행을 당한 선생님이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교단을 여전히 지킨 이 강인한 선생님. 직설적으로 학생 가린다고 말하는 선생님. 제 능력 이상의 것을 주려고 하지 않고, 오버해서 착한 선생님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여론을 조작해서 제 마음에 안 드는 학생을 따 시키려는 학생을 상징적으로 경고해주는 카리스마 있는 선생님이다. 이 선생님이 제시한 상징이 백설공주 새엄마의 '독사과'다. 요즘 독사과는 뭘까? 라는 질문에 진오가 답한다.

 

"음...... 조작으로 나쁜 여론 만들기? 우르르 몰려가서 끝장낼 수 있잖아요. 나중에 일이 잘못돼도 슬쩍 발 빼기 쉽고요. 쟤도 그랬고 너도 그랬잖아, 그런 식으로 죄책감을 n분의 1로 나누는 거죠."

 

뼈 있는 말이다. 비단 학교에서만 그런 게 아니지 않은가. 우리 살고 있는 세상에서 얼마든지 적용 가능하다. 지금처럼 온라인이 활성화된 상태라면 더더욱.

 

피자를 먹으면서 오고 갔던 독사과 공방은 시사점이 컸다. 과연 이런 목소리를 낼만큼 아이들은 생각이 여물었는가 잠시 머리를 갸우뚱했지만, 이런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는 우리의 교실이 비정상이라고 다시 고개를 끄덕여본다.

 

제목의 가시고백. 해일은 고백하고 싶었다. 자신이 도둑이라는 것을, 자신이 훔쳤다는 것을. 분명 가시를 뽑는 것은 큰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뽑지 않으면 그 상처는 곪을 것이다. 해일은 그 가시를 어떻게 뽑을 것인가. 어떤 고백으로?

지란도 가시가 있다. 친아빠와 새아빠의 사이에서 상처입고 자라지 못한 어린 아이를 해방시켜야 한다. 그렇게 지란의 가시도 뽑아야 한다.

 

청소년 소설은 대개 '성장 소설'로 귀결된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고민과 방황을 이야기하고, 이 아이들이 자신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결핍을 메우고 그렇게 자라가는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아이들은 한뼘씩 자라고, 독자는 그 덕분에 기운을 얻는다. 이미 다 자란 성인이지만, 그 아이들만큼이나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가 가슴 속에 하나씩 있고, 그 아이들처럼 채우지 못한 결핍을 늘 끌어안고 산다. 그리고 이런 작품을 하나씩 만나면 손톱 밑 가시 하나씩 들여다본다. 내 가시를 떨쳐낼 나의 고백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나의 가시가 혹시 나말고 다른 사람도 찌른 것은 아닌지 나의 '거울'을 쳐다본다. 내가 해치고 싶은 상대를 차지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도구로서 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좋은 작품을 만나서 몹시 고맙다. 눈시울이 촉촉해지면서 내 감성 아직 죽지 않았어! 라며 실없는 웃음도 지어본다. 이 작품, 참 좋다. 참 재밌고, 참 따뜻하다. 웃음과 깨달음, 감동을 함께 전달해주는 작가라니, 독자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다. 고맙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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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1-11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시고백, 참 좋았어요~ 다들 읽어보라 추천하고 싶은 책!
리뷰도 훌륭해요~ ^^

마노아 2013-01-11 11:46   좋아요 0 | URL
저 좀 시큰둥하게 읽기 시작했는데 갈수록 좋아지는 거예요. 저력 있어요. 근성도 있구요. 작가님이 더 좋아졌어요. 칭찬 감사해용! 저도 이 책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신기루 푸른도서관 5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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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다인이는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고, 그 가수를 모델로 해서 팬픽도 쓰는 그런 중학생 아이다. 모범생이며 우등생인 오빠에 가려 엄마의 관심을 덜 받는 게 억울하지만, 그 덕분에 엄마의 뜨거운 기대에서 비켜가는 걸 다행으로 여기는 아이이다. 엄마와 엄마 여고 시절 친구들이 함께 떠나는 몽골 여행에 열다섯 아이가 따라가니 공주 대접 받을 줄 알았건만, 엄마와 엄마 친구들은 다시 여고시절로 돌아간 것마냥 잔뜩 들떠 있었고, 다인이는 그닥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불평도 많고 짜증도 많은 중학생 다인이는 근사한 볼거리도 없을 것 같은 몽골 여행이 썩 마뜩치가 않다. 그렇지만 가이드로 나선 학생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와 똑 닮은, 멋진 외모를 가진 터라 사막 위의 로맨스를 꿈꾸며 여행에 대한 새로운 환상을 심는다. 그러나 그렇게 원하는 대로 이야기가 흘러갈리 만무.

 

일행은 고비 사막에서 온갖 고생을 다 했고, 가이드 교체도 겪어야 했고, 길을 잃고 신기루도 보면서 당장엔 고생, 나중의 추억들을 쌓게 된다. 철없고 이기적인 다인이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진행될 때는 그다지 감정이입이 되질 않았다. 나도 그 나이 시절을 안 겪은 것 아니건만, 그래도 내 마음에는 다인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2부가 되니 이야기가 확 달라졌다. 마흔 다섯살 숙희 씨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열다섯 다인이보다 내게 더 큰 공감과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다인이의 엄마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기는 어려웠다. 엄마가 친구에게 느끼는 부끄러운 감정과, 아들 형인이에게 집착하는 왜곡된 감정 역시 불편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만, 그래도 곱게 보이지만은 않는 그런 부분들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이게 누구의 작품인가. 이금이 작가님이시다. 작품은 마지막으로 접어들면서 다시 한 번 전조를 일으킨다. 숙희 씨가 자신의 엄마에 대한 기억을 낱낱이 밝힐 때의 일이다. 언뜻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가 떠올렸다. 엄마라는 존재 때문에 그랬고,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과의 화해가 또한 그랬다. 울컥 눈물이 났다. 가족이라는 이 뜨거운 울타리가 줄 수 있는 실망의 크기와, 그 가족이기 때문에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희생의 크기가 보였기 때문이다.

 

딸 다인이와 엄마 숙희 씨는 여전히 그들 그대로다. 집으로 돌아가면 여전히 아들 형인이에게 마치 자신의 인생에 대한 패자부활전을 기대할 것이고, 숙희는 그런 모든 게 다 불만스러워서 툴툴대며 지낼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사막에서 보았던 그 별과, 그 신기루를 떠올리며 엿새에 걸쳤던 그 여행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때 느꼈던 벅찬 감정과 함께 말이다. 그렇게 자신들의 오늘을 돌아보며, 또 부대끼기도 하며 열심히 살아갈 테지.

 

작가님은 실제로 몽골의 사막을 다녀오셨다. 소설가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이렇게 근사한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것이 몹시 고맙다. 작품에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했기 때문에 작품 후기에 쓸말이 없다는 작가님의 고백에 동의한다.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가 다 담겨 있었다. 넘치지 않게, 모자라지도 않게.

 

엄마에서 딸, 다시 엄마에서 딸. 이 여행이 왜 모녀가 참여해야 했는지 뒤늦게 이해가 되었다.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그리고 어쩌면 그 삶조차도 전해버리는 숙명같은 탯줄이 선명하게 보인다. 나의 엄마도, 깊이깊이 사무친다.

 

그리고 내가 다녀왔던 짧았던 사막의 하룻밤도 떠오른다. 쏟아질 만큼 아름다운 별무리를 보지 못한 게 무척 애석하지만, 그래도 사막 여우도 보았고, 그 황량함도 느껴 보았으니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나중에 신기루를 꼭 보았으면 한다. 역시 고비로 가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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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단의 방문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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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책이다. 퓰리처상 수상이란 이력을 제쳐두고도 이 책은 볼거리가 많다. 13개의 챕터들은 각각 하나씩의 단편으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의 이야기적 완결성이 있다. 게다가 마치 몸의 여러 장기와 세포들처럼 각각의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1번 이야기에서 조연으로 등장한 사람이 2번이나 5번에서 얼마든지 주연으로 등장 가능하다. 게다가 이야기들은 동시대이기도 하고 과거와 미래를 마구 오간다. 약 60여 년을 최대치로 해서 향수 어린 옛 시절과 그 향수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21세기의 이야기도 동시에 진행된다. 어찌 보면 무척 중구난방 식으로 진행이 되지만 그래도 각각의 이야기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향해 귀결된다. 바로 '시간은 깡패야!'라는 메시지로.

 

시간이란 게 그렇다.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고 누구도 멈출 수가 없다. 누군가에겐 한순간에 모든 것을 부수어버릴 수 있는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자기치유와 구원이 될 수도 있다. 오해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이해의 끝이 될 수도 있다. 그 시간을 살아가는 무수한 인간 군상들이 이곳에 있다. 세상에 대한 끊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십대 소년 소녀들이 있고, 주변 사람을 모두 망가뜨리고 착취하는 거물 프로듀서도 등장하고,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자만에 빠져 위험천만한 일을 시도한 대가로 인생이 망가진 홍보 담당자, 무대 위의 죽음을 기획하는 왕년의 록스타, 레코드 레이블 대표가 있고, 그의 유능하지만 도벽이라는 고질병을 갖고 있는 비서가 있다. 이들의 시간은 방사선으로 뻗어나가서 서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맞닿아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챕터에서만 본다면 그들의 다음 이야기를 모르기 때문에 시간이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게 또 이 책의 마력이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분명히 다음장 어디에선가 이들이 마주칠 것 같고, 어디선가 이야기의 또 다른 매듭이 풀릴 것 같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리고 그 기대는 대개 실망을 안겨 주지 않았다.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파워포인트의 향연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처럼 이미 종이 책의 전통을 깨버린 책들은 여럿 등장했기에 그것이 '파워포인트'의 화면이라는 것만으로 독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파워포인트 화면은 그 안에 담긴 글자의 메시지 말고도 도형의 기호성으로 또 이야기를 전개하는 힘이 있었다. 2차원 종이이지만 독자에게는 그것이 애니메이션 화면처럼 움직이는 착각을 준다. 그리고 그 부분이 음악에 관한 이야기였기에 소리까지 들린다는 착각마저 갖게 한다. 때로 검은 화면에 아무 것도 없어도, 그 장면이 암시하는... 혹은 함축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 정도면 이 파격적인 시도가 거둔 효과는 참으로 탁월하다고 하겠다.

 

이처럼 화려한 성찬을 갖춘 이 책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별 다섯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감동의 부재라 하겠다. 각각으로는 아주 맛있는 음식이지만, 또 '시간'이라는 통일성을 갖고 유기적으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들어 흔드는 힘은 다소 부족하다. 또 이 작품의 여러 매력들을 알아차리기까지 몰입의 속도는 제법 느린 편이었다. 사실 이 작품은 두번째 읽을 때에야 감탄할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이미 누구의 이야기인지, 그들이 어떻게 마주치고 헤어지는지를 알고 나서 다시 본문을 읽을 때 행간의 의미와, 강조된 글자의 힘과, 문장의 맛깔스러움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두 번씩이나 다시 읽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게 나와의 맞지 않는 궁합일 것이다. 무척 맛있지만, 내 입맛에 베스트는 아닌 그런 작품 말이다.

 

가장 몰입이 안 되어서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가장 인상깊고 아련하게 만든 이야기는 급류에 휩쓸려 죽은 롭의 이야기 편이었다. 이 장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처럼 주인공 '나'를 '너'로 표기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사샤는 비좁은 침대에서 잠들어 있다. 타오르는 붉은색 머리가 시트에 대비되어 어두워 보인다. 너는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가 잘 때 나는 친숙한 냄새를 맡으며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미안해난 널 믿어언제나 곁에서 널 지켜줄게절대 널 떠나지 않을게, 네가 살아 있는 동안 네 심장을 감싸고 있을게가 뒤섞인 말을. 마침내 내 어깨와 가슴을 내리누르던 물이 나를 으스러뜨려 깨우고, 나는 사샤가 내 얼굴을 향해 절규하는 소리를 듣는다. 버텨! 버텨! 버텨내라고! -303쪽

 

강조된 글씨는 본문에서 적용된 그대로다. 급류에 떠밀려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 롭이 환영을 보는 것처럼 묘사된 구절이다. 절절하게 마음을 담은 뒤 문장은 너에서 '나'로 바뀐다. 그리고 사샤는 그런 나를 향해 절규한다. 버티라고!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을 알기에 독자는 이 부분에서 더 뭉클해지고 말았다.

 

말썽 많고 사고도 많이 일으켰던 사샤가 그러나 미래에 자폐아 아이를 두고, 그 아이가 '쉼표'에 집착하고 탐닉하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그 세계를 공감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조화롭게 보였다. 많이 방황해 보았기 때문에 쉽게 남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아이의 세계도 더 깊게 다가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책을 덮으며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깡패 같은 시간이 날 해코지 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저항해야지. 그 시간에 휘둘리지 않도록 갖은 수를 다 써내야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널리 넓게 시간을 내다보지도 주름잡아보지도 못하는 이 평범한 인간은, 오늘이 금요일 밤이고, 그래서 이미 12시가 넘어 토요일이 된 시간, 출근의 압박이 없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단순한 중생. 그러나 지금 이 시간만큼은 충실히 즐기고 싶은 시간의 숭배자. 시간은 깡패가 아니라 축복이고 선물이라고, 이 시간만큼은 확실히 되뇌어 본다.

 

덧 하나. 작품의 구체적 줄거리는 담지 못하겠다. 방대하기도 하거니와 어쩐지 무의미해 보여서 말이다. 다만 이 깊고도 넓게 뻗쳐 있는 이야기를 '베니'와 '사샤'를 두 중심축으로 읽으면 좀 더 쉽게 몰입이 될 거라고 추천하겠다.

 

덧 둘. 48쪽에 -랄프 로렌 을 입고 나와-로 적혀 있다. 랄프 로렌과 '을'을 띄어 둔 것은 그냥 실수인가? 아님 내가 모르는 어떤 규칙이 있나 궁금하다. 소박한 편집 실수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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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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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과 역경도 묵묵히 이겨내고 감수해내는 노인의 고독한 분투,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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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로 오세요 문지 푸른 문학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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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위저드 베이커리'를 무척 재밌게 읽었다. 몹시 시니컬한 느낌이었지만 그 안에서 아픔도, 진정성도 느껴져서 기대되는 작가였다. 이 작품을 읽고 나서 가장 불행한 감독은 첫번째 영화에서 대박을 터뜨린 감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높이 1.2km, 넓이 39.5km2의 미래 도시 방주. 선택받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 도시에 지상의 아이들이 입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폭파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대결 구도란 식상할 수는 있어도 매번 기대하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이 작품 역시 그런 기대치가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많이 실망스러웠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세상에 창조되었던가. 당연히 모방이 일어나고 재탕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들이 힘을 얻는 건 그 속에서 다시 찾게 되는 감동과 메시지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뭔가 좀 순서가 바꼈다는 생각이 든다. 비약해서 이야기를 비트는 느낌이다. 반전을 위한 반전의 느낌. 청소년들 답지 않은 대화 내용들, 입에 붙지 않는 만연체 문장, 이야기의 수습이 되지 않으니 화자의 입을 빌어 한꺼번에 정리하는 결말. 작품 속에 등장하는 두가지 중요한 반전이 읽기 전에 미리 짐작되었다. 그래도 그건 괜찮다. 다만 설득해주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설득력이 없었다. 이 이야기는 작가가 너무 일찍 내놓은 게 아닐까 싶다. 좀 더 숙성시켰어야 하지 않을까. 겉멋이 잔뜩 든 문장이 부담스러웠다. 이 이야기가 미래가 아닌 현재의 가정법이라는 작가의 말은 인정한다. 이런 양극화현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에 가장 적너라하게 진행되고 있으니까. 그래도 작가의 메시지나 의도가 작품을 통해서 충분히 전달된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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